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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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대담집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완벽하게 생각이 일치하는 두 경제학자가 기자의 사회 하에 상호보완과 맞장구를 병행하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는 책입니다.

아주 잘 써진 에세이가 아닌 한, 대담이나 인터뷰는 에세이보다 잘 읽히기 마련입니다. 구어체이고, 자신은 잘 안다고 생각해서 에세이라면 그냥 넘어갈 부분을 짚어주는 인터뷰어(이 점에서 인터뷰어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가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이 책은 매우 쉽게 읽힙니다.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이 책의 또 한 가지의 장점은 시종일관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한국경제를 일관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위치에 대한 곤혹스러움을 토로합니다. 좌파에서는 박정희주의자로, 우파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좌파로, 재벌로부터는 친노동자적 경제학자로, 노동자로부터는 재벌 옹호론자, 반노동운동학자로 불리고 있는, 그야말로 우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자신들의 곤란한 처지를 이야기하죠.

이상하죠? 박정희주의자이자, 반 신자유주의자이자, 친노동적이자 친재벌적인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관성이 있냐구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면 이해가 됩니다.

이들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일관되고 중요한 논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나 기술에 의해 돈을 벌어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1. 신자유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금융자본주의, 즉 큰 자본이 세계를 돌면서 세계의 부를 독점하는 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 박정희 시대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적어도 이 때 한국경제는 노동력에 의해 돈을 벌고 경제를 성장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3. 재벌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재벌은 적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멀리 보고 투자하지만, 요즈음 재벌을 해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외국자본은 단기간에 자신들에게 돈을 넣은 이들에게 수익을 남겨주는 데에만 신경쓰기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4. 사람 마구 자르거나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구조조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장기적으로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은 한 자리에서 고도로 숙련된 고급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5. 다시 박정희로 돌아가서, 박정희같은 독재는 아니라도 국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요즈음 이야기되는 무조건적인 시장주의, 비개입주의는 결국 투자보다는 부동산과 같은 손쉬운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귀결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6.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파트너가 아니라 늘 적대관계였습니다. 자유주의는 언제나 자본가들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배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자유주의에 기반한 시장 중심의 국가(미국/영국)보다 차라리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이들이 임명한 정부가 끌고가는 국가(북유럽)가 더 낫다고 봅니다.

물론 저는 여기에 대해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들은 노동운동, 시민운동이 재벌타도를 위해 외국 투기자본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지지한다고 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재벌이 과연 장기적으로 용감한 투자를 하는가에 대해서도 저는 다소 의문스럽습니다. 또한 투기자본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단기이익만 내고 빠진다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재벌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현재 투자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투기자본이 장악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비록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예전 재벌이 운영하던 때보다 훨씬 더 우수한 경영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건 이들은 멍청한 재벌 3세보다 훨씬 우수한 기업운영의 노하우를 가진 전문경영자들을 데려오고 있고, 다시 이 기업을 팔 때 단기적으로 쥐어짜서 만든 수익만 보고 이 기업을 비싼값에 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죠. 

그럼에도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시각들, 이를테면  

1. 한국경제는 폐쇄경제였기에 성공했다.
2. 한국경제는 반 시장주의였기에 성공했다.
3.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반대했던 관치금융은 필요하다.
4. 여당에서조차 반시장주의자가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5. 노조는 사람자르는 것은 반대해도 직장내 전환배치는 막지 말고 환영해라.
6. 후진국이 기술은 없어도 노동만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비판할 일이 아니다.

같이 이제까지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들은 전부 강력한 논리를 갖고 제시되기에 별로 비판할 여지가 없습니다. 

생각의 유연성, 혹은 교조적인 도그마로부터의 탈피를 위해서 한 번쯤 꼭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로 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것이 느껴지는 오랫만의 독서경험이었습니다.  


* 여담으로 덧붙이면, 제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샀던 책은 한겨레 21 칼럼리스트 김경의 뷰티플 몬스터란 책입니다. 그런데, 며칠전 김경씨의 뷰티플 몬스터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보니 김경씨가 바로 이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추천하더군요.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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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국화 2005-10-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승렬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세상 일이란 모든 것이 장단점이 있기에 현재의 한국 경제나 현실이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이 나 이념이 앞서기보다 좀더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현실! 물적자원보다 인적자원이 풍부한 한국의 현실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아직 배를 더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고성장' 아주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대타협 한번 찾아봅시다.
 
바우돌리노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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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바우돌리노가 처음 나왔을 때 썼던 북리뷰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북리뷰로는 처음 썼던 것이기도 하구요.)

 일천한 분야에 손을 대려니까 두렵기도 하고, 결국 잡식성 취향이 여기까지 손을 뻗었느냐는 힐난도 들리는 듯하군요. 그러니 제가 잘 아는, 안전한 방향으로 가야겠죠. 바우돌리노 자체보다는 '작가' 에코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영화에서의 작가주의를 슬쩍 들여올 생각입니다.

에코는 참으로 특이한 인물입니다. 소설과 잡문과 시사평론과 학술서를 종횡무진하는 다작+잡식성 저작, 수많은 인용과 패러디의 향연으로 구성되는 현학 등이 그를 특이한 작가-학자로 자리매김하는 근거가 되겠지요. 그러나 그는 동시에 동시대 최고의 정통(orthodox) 기호학자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들은 그의 소설들입니다. 제가 읽어보지 않은 '전날의 섬'을 제외한 세 작품 - 장미의 이름, 푸꼬의 진자, 바우돌리노- 는 모두 동일한 주제 하나를 위해 복무하는 일관성 하에 쓰여진 작품들입니다. 그것을 영화적 개념에서 차용해 정의한다면 일관된 주제의식과 연출방향을 가지고 있는 감독- 다시 말해 '작가주의'라 할 수 있겠지요.

무슨 근거에서 세 소설이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단언하는가. 그 소설들은 모두 문학개론 1장 1절에 있는 소설의 정의, 즉 허구적인 이야기(fiction)에 대한 메타소설(meta-fiction)인 동시에 기호학의 1장 1절, 즉 '기호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는 학술적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세 소설은 모두 실제 유럽 역사-특히 이태리- 속에 소설적 허구들을 절묘하게 배치해내고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이 중세의 수도원과 마을간의 주종관계, 그리고 수도원의 생활사를 치밀하게 묘사해내면서 그 속에 가상의 서적-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이야기를 끼워넣었다면, '푸꼬의 진자'는 전 유럽의 비밀결사 전통에 대해 거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방대한 역사적 현학을 보여주면서, 사실은 이들이 모두 푸꼬의 진자,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는 세상의 중심을 찾아 다녔다는 허구를 밀어 넣습니다.  '바우돌리노' 역시 마찬가지여서, 프리드리히 대제 시대의 역사 뒤안에 그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만들어 낸 바우돌리노라는 인물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우돌리노'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소설속 기록자의 입을 빌려 이런 그럴싸한 거짓말들이 자신의 소설세계임을 밝힙니다. ("언젠가 바우돌리노보다 더한 이야기꾼이 나타나서 이런 거짓말들을 들려줄걸세.")

재미있게도 이 소설들은 모두 허구적 대상을 찾아 죽을 고생을 하며 헤매는 모험소설 형식을 갖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 푸꼬의 진자, 요한 사제의 왕국으로 각각 대표되는 이 허구들은 그러나 실제로는 사라지거나(희곡), 없는 것을 재현해 내거나(진자),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왕국). 주인공들은 모두 이것들을 획득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이것들은 기호이지 그것이 표상하는 사물 자체가 아니니까요.

기호와 사물간의 관계가 벌어지는 성향은 최근작으로 올수록 점점 더 심해집니다. 속되게 말해 뻥이 점점 심해지다는 말이지요. '바우돌리노'는 전체가 '뻥'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연대기형식을 띄고 있고, 각 소제목들은 그 장의 바우돌리노의 행적을 간단히 말해줍니다. 이를테면 '바우돌리노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성배를 찾다'는 식이죠. 그러나 그 내용들은 이 소제목들을 배반합니다. 거의 모든 바우돌리노의 행적은 자신이 조작하거나 만들어낸 것들이지요. 이를테면 성배는 자신의 아버지의 잔이고, 찾아냈다는 요한사제의 왕국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유지 수단으로 만들어진 가짜 왕국이고, 동방박사의 유해도 모두 가짜입니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 퍼진 가짜 성물들을 주인공 일행이 만들어내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제의 살해 또한 알고 보니 허구적 사실임이 밝혀집니다. 재미있게도 이 모든 조작 사건들은 악의가 아닌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받은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수많은 일들을 역사 막후에서 해 낸 것처럼 보이는 바우돌리노는 한 번도 진정한 업적을 이뤄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서에 남을 수 없었고, 결국 그의 일대기를 듣던 사가 역시 이를 사서에 등재하기를 거부합니다.

그 소제목들이 기호라면, 그 기호들은 소설속 사건이나 내용, 즉 기호가 표상하는 사물들이 아닙니다. 많은 사회학자, 기호학자들이 지적하듯 이러한 경향은 현대의 지배적인 현상 중 하나이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지요. 에코는 이러한 현실을 '가벼운' 소설의 틀을 빌어 비판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코에게 그런 냉소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시 '희대의 뻥장이'에게로 돌아가 보면, 바우돌리노는 그 기호들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끈질기게 집착합니다. 그런 모습은 이미 현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지요. 현대인들은 기표와 어긋나는 기의들에 대해 냉소하거나,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따름입니다.

아마도 에코는 그런 바우돌리노의 어리석은 모습이 결국 이성적인 것만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고, 모험가나 허구의 모험가인 소설가(둘 다 현대에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아 버린!)의 운명 아니겠냐고 이야기하는 듯 싶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우돌리노가 이순의 나이에 '실재하지 않는' 요한사제의 왕국으로 다시 길을 떠나는 소설의 마지막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에코는 실제 바우돌리노의 고향인 알렉산드리아 출신이고, 역시 환갑을 넘겼으며, 희대의 이야기꾼이 아닙니까? 아마도 이 장면은 그에 대한 세간의 비난, 그러니까 현학만 있고 따뜻한 가슴은 없는 차가운 소설들을 쓴다는 험담들에 대해 날리는 그의 대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몽상가의 발걸음이 어디에 가 닿을 지를 살펴보는 건 정말로 멋진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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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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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서 가장 읽을만한 칼럼은 언제나 맨 뒤에 실리는 비장미 넘치는 시사컬럼이 아니라 1/2쪽에 불과한 김경의 칼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저없이 그녀의 칼럼집을 사게 되었다. 비록 절반 가까운 내용이 이미 한겨레21에서 읽었던 것이지만 다시 읽어도 그녀의 글은 매력적이다.

스스로 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녀는 화려한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면서도 '주렌더' 같은 영화속 패션계 종사자들처럼 멍청이가 되기에는 너무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중간자적인 자신의 위치와 그것으로부터 자주 불거져 나오는 모순에 대해 고민한다.


거의 동시에 나온 그녀의 인터뷰집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직업적 세계에 더 가깝다면, 이 칼럼집은 조금 더 인문학도로써 정치와 사회를 읽어내는 본질적인 그녀에 가깝다. 그래서 두 책은 각각 다른 저자소개명을 표지에 달고 있다. 인터뷰집은 '바자 피쳐 디렉터 김경'으로, 이 칼럼집은 '한겨레21 칼럼리스트 김경'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직함은 당연히 그녀 자신이 붙인 것일테지. 그녀는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물론 다중인격자가 아닌 그녀는 완전히 분리되진 않는다.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곳곳에서 예리한 인문교양에 기반한 이성적인 사고를 드러내고, 칼럼집에서도 와인 이야기를 하거나, 남성 슈트에 대한 일장 강의를 할 때에는 영락없는 패션지 기자의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 책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성공한 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서 지워졌던 모순, 혹은 인간적인 측면이 칼럼속의 김경에게서는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녀가 인터뷰했던 많은 인물들이 이른바 '자수성가형' 인물들이다. 지독하게 어려운 시절을 겪고 성공해서 상류사회로 편입된 사람들,  그러나 불과 한두시간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예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의 '차이'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다. 환상을 부추키고 남루한 현실을 최대한 감추어야 하는 패션지의 특성 탓인지 이 인터뷰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쿨'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현재에 대해 너무나 만족하고, 가난하고 신산스러웠던 과거를 그냥 단지 성공을 위한 디딤돌 정도로만 여긴다.

반면 칼럼속의 그녀는 끊임없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인문학, 혹은 정치과잉의 홍수를 겪어왔던 과거의 자신과 현재 청담동 사회에서 화려한 삶을 목격하거나 혹은 동참하는 자신간의 괴리, 혹은 모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래서 유독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성장기에 대해 자주 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망가져버린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때로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자의식을 상기하고, 때로는 '이렇게 쿨하게 사는 것이 왜 나빠?' 라고 역으로 물어보면서. 이게 바로 '사람'이다. 칼럼집의 발가벗겨진 김경에게서는 너무 완벽한 인터뷰이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사람 냄새가 난다.

내 생각인데, 실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녀는 이 칼럼집에서 밝히듯이 명품에 대해 그렇게 초연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건 그녀의 남아있는 자의식이 만들어낸 일종의 심리적 방어벽일 뿐, 실제의 그녀는 아마도 가끔씩 너무나 아름다운 디자이너 부띠끄의 상품에 넋을 잃고 지갑을 열곤 할 것이라고 추측된다. 만일 그녀가 정말로  정말 명품 따위는 바보같은 사람들의 소비행태일 뿐이라고 콧방귀를 뀌며 살아간다면 난 다소 실망할 것이다. 그건 이 칼럼집 내내 그녀가 보여준 솔직함과 거리가 멀다.

고백하건데 이 칼럼집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적당히 먹물티 내고 적당히 벌어 가끔 터무니없는 소비를 즐기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엔 늘 90년대 초반 박혀버린 어떤 원죄의식같은 걸 담고 살아가는 (그리 많지않은) 부류. 아, 그러고보니,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반가워, 김경.

*재미있게도 그녀는 최근 책 홍보를 위한 인터뷰에서 내가 바로 이 책 다음에 읽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노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나도 추천하는 바이며, 리뷰도 썼다) 나만큼이나 이 여자의 취향도 잡식성이다. 정말 닮은 꼴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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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hlipismine 2013-06-1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영광입니다! 아이디에서 역시 동갑내기의 냄새가 풀풀 풍기시네요 ^^
새 책은 바로 사서 읽어야 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도 졸저가 하나 있긴 합니다. 지금은 사기도 힘든 책이긴 하지만요.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이라고 동세대로써 혹시 기회되시면 도서관에 가서 찾아서 읽어봐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런치타임 경제학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황해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1/3쯤 읽다가 접었다.  그러나 책이 나빠서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리뷰 제목에 힌트가 있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번역이 너무나 형편없다.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도저히 무슨 맥락에서 쓴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글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직독직해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나쁜 번역책을 볼 때 흔히 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무슨 단어를 이렇게 번역한 걸까?'를 역으로 유추해서 영문으로 재구성한 다음 생각해 보면 이해가 어느정도 가게 된다. 이런 번역자는 미안하지만 번역료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본다.

내가 잘났다거나 영어를 잘한다는 자랑하는 게 아니다. 난  경제학 전공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경제학에서 흔히 미시경제학 문제로 나오는 내용들이다. (몇 년간 경제학을 전혀 접할 기회가 없어서 제목과 목차를 보고 경제학 마인드를 잃지 않기 위해 샀던 책이다)  그래서 대략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번역 탓에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보자. 58페이지이다. 액션영화를 보고픈 필자와 멜로영화를 보고픈 아내가 결정하는 과정이다.

"아내와 나는 각자 종이에 금액을 적었다.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원하는 영화를 보기로 하고 진 사람의 금액만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내게 영화는 8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내가 이기면 나는 아내가 적은 금액만큼 기부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내 아내가 8달러보다 낮은 금액을 써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보거나, 아내가 그 이상을 적어 내가 지는 것을 기대했다.나는 정확히 8달러를 적어서 위와 같은 결과를 보증할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일까?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어려운 내용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재번역을 통해 내가 다시 구성한 뒤 우리말로 옮긴 내용은 이런 것이다.

"아내와 나는 각자 종이에 금액을 적었다.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이기되,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이 적은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규칙이다. 내가 액션영화에 매긴 가치는 8달러이다. 내가 이기면 나는 아내가 적은 금액을 지불하는 셈이기 때문에, 아내가 8달러보다 낮은 금액을 쓰면 내가 매긴 가치보다 적은 돈을 내고 액션영화를 보는 것이 되고, 아내가 그 이상을 적어서 내가 지면 보기 싫은 멜로영화를 공짜로 보면 그만이다. 따라서 나는 정확히 8달러를 적어내면 된다 ."

번역은 직역, 해석이 아니다. 때로는 어려운 문맥을 쉽게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결과를 보증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주 전형적인 번역체, 영어에서나 쓰는 표현이다. 국어에 소양이 없거나, 시간에 쫓겼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리고 굳이 책에 대해 흠을 더 잡는다면, 우선, 이 책은 미국에서 90년대 초에 나온 책이다. 드는 예들이 좀 진부하다.  그걸 메꾼다고 우리나라 출판사측에서 최신 사진들을 삽화처럼 삽입했는데, 좀 생뚱맞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 교수는 매우 보수적인 미시경제학자이다. 대부분의 미국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런 입장이지만, 이 사람은 좀 강한 보수주의자로 보인다. 오해마라. 고리타분하게 보수=악 이런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는 이런 관점도 있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서 읽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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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0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지금 읽고 있습니다 ㅜㅜ 대략 안넘어갑니다. 예도 진부하지만, 우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번역도 껄끄럽고, 그러네요.

냥냥 2006-04-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는 경제학전공자는 아니라 경제학자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내용도 별로던데요? 이슈에비해 내용이 허접...게다가 저는 오타도 발견해서 볼펜으로 고쳐놨어요~ㅋㅋ.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탐사와 산책 3
정운영 지음, 조용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정운영 선생이 중앙일보로 가서 변절했네, 보수화되었네 말이 많다.

뭐,  이 책을 보면 간단히 증명된다. 그는 변했다.

내용을 꼼꼼히 따져서 그가 보수화되었다는 분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그가 보수화된 것인지, 세상이 변하는데 스스로 흐름을 잘 읽어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이제 예전의 성실하고 날카로운, 글만으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거장은 아니다.  

다섯 권이 넘는 내가 산 그의 책 중 돈이 아까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상 누구라도 중국 한 번 돌아보면 쓸 수 있는 기행문과 사진모음집이 그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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