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박권일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건방진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의 책을 두 권째 사서 읽어본 (첫 번째 책은 '도마위에 오른 밥상' 이다)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그의 짧은 칼럼들은 참 마음에 들지만, 이 두 책을 읽어본 결과는 흡사 단편은 잘 만들었는데, 장편은 실망스러운 영화감독을 떠올리게 만든다.

왜 그럴까? 좀 더 아픈 말이겠지만 우박사는 책을 지나치게 쉽게 생각한 듯 싶다. 개별 문장들에는 별 문제가 없다. 속에 담긴 아이디어들도 산뜻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묶여지면서 너무나 두서가 없다. 체계가 잡히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쭉 쉽게쉽게 써나간 느낌이다. 두 페이지쯤 읽고 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 감이 안잡히거나, 앞에서 한 말의 동어반복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책을 치열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디어들은 나름대로 좋은데 그것들이 제대로 된 논증없이 그냥 가볍게 나열되고 있으며, 용어들도 별로 고민없이 쓰인 티를 낸다.

예를 들어 보자.

초기에 출발점이 어디에 있더라도 대부분의 개인 전략이 특정 지점으로 수렴하게 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끌개와 같은 고정점들이 자꾸 등장하게 되면...(중략) 수렴점이 복수로 나타나면...(중략)

(108페이지) 여기서는 같은 용어를 같은 문장 내에서 고정점과 수렴점이라고 다르게 쓰고 있다. 글을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나간 것이다. 구어에서는 허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에서는 아니다.

기업의 내부는 아무리 경쟁의 룰을 새롭게 도입하거나 효율성을 최고의 기준으로 제시한다고 해도 결국은 조직의 세계이고, 이 속에서는 시장의 원리가 일단 정지하거나 굴절되고, 조직이라는 특수한 원칙들이 움직이는 세계이다. 조직 내부에서 경쟁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장을 모방한 '의태'에 불과하고, 완전경쟁 시장에서 발생하는 것 같은 무한경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조직 내부의 경쟁은 그래서 제도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사회 조직에서 소그룹이 생겨나는 것처럼 기업 내부에서도 소그룹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계약 관계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사실 조직의 틀 내로 들어오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 경쟁은 제한되고, 제도적 관계들이 작동할 여지가 더 많아진다.

(113페이지) 헉헉...치느라 힘들었다. 이 문장들은...내가 논술 강사는 아니지만 논술학원이라면 잘못된 사례로 제시하기 딱 좋은 문장들이다. 일단 첫 번째 문장은 별로 문제가 없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을 보면, 흡사 첫 번째 문장의 근거를 제시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약간의 부연 설명에 불과하다. 일종의 다시쓰기(paraphrase)를 한 셈인데, 마지막 문장은 엉뚱하게 '그래서'라는 단어가 흡사 결론처럼 제시된다. 결론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이 단정적으로 주장만 이어지니 논리는 빈약해진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경제학을 다루는 책에 글의 경제적 효율성이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네 번째 문장인데, 조직 내부의 경쟁이 제도라는 것과 기업에서 소그룹이 생긴다는 것의 인과관계가 전혀 제시되지 않는데 '그래서'라는 문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우석훈의 머릿속에서는 이 사이의 연결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읽는 이에게는 황당한 논법일 뿐이다. 마지막 문장은 또 엉뚱하게 소그룹 이야기를 단절시키고 다시 조직,계약, 경쟁 이야기로 돌아온다. 거의 널뛰기 수준이다.

이건 일종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대로 쓴 '자동기술법적'기술인데, 문학이 아닌 논리를 이야기하는 경제학에서 이런 글은....전대미문이다. 그의 블로그의 글을 보니, 몇 달 새 이 책을 비롯한 두 권을 썼고, 또 두 권을 바로 마무리할 모양인데,  낭패다. 좀 더 늦추고 생각을 가다듬고 집필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괜찮은 문제제기와 아이디어가 이런 식의 책으로 나오는게 안타까워서 던지는 충고이다. 우박사가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나 역시 그처럼 이 책에서 이야기한 2%의 반 황우석에 섰던 사람으로서, 그가 좀 더 좋은 책을 냈어 던지는 고언임을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7-09-1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책이라고 다 글이 되는 건 아니지요~~ 공감!

저도심슨팬 2007-09-1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쓰신 분 말씀에 동의하는 내용도 있고 그런데 고정점하고 수렴점은 다른 말이에요.

고정점은 focal point, 수렴은 convergence지요. 고정점이란 건 포물선 운동이나 타원운동 같은 거에서 궤도가 지나가지는 않지만 그 점을 중심으로 운동하게 하는 그런 거고요,
수렴은 파동이나 성장에서 쓰는 말인데 운동의 결과 결국 도착하는 한 지점을 말하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우석훈박사가 이런 용어의 차이를 책에서 설명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용어는 이공계는 알지만 고등학교 문과전공에서는 수학시간에 배우지 않는 말이죠.

phlipismine 2007-09-1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윗분 말씀은 맞는 것 같습니다만...(경제학에서도 focal/covergence 개념은 씁니다만 정확하게 정의는 잘 모르고 씁니다. 저도 경제학 전공자죠) 위에서 문제는 그게 아니라, 우박사의 경우 둘을 같은 의미로 쓴 겁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윗분 정의가 정확하다면 전부 수렴점이라고 썼어야 맞는데, 엉뚱하게 고정점이라는 말을 (생각없이) 써 버린 겁니다. 윗 글의 문맥을 보면 이건 명확한 겁니다.

"특정 지점으로 수렴하게 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끌개와 같은 고정점들이 " 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런'은 말할 것도 없이 '수렴하는 특정 지점'을 지칭하는 것이겠죠?

295 2008-02-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우박사의 글쓰기가 굉장히 전략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박사에게 정갈한 글쓰기나 이론적인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정말 아카데미아에서는 이렇게 미친듯이 변화하고 질주하는 세계에 대해서 기술할 언어 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데(사스키아 사센이 이렇게 말했었죠) 우박사는 재빠르게 그것을 포착해서 어떻게든 언어로 만들다 보니깐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재빠르게 스케치에서 나타나는 까끌까끌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를 쉽게 생각하거나 그가 아직까지 2류 학자이거나 그래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문제를 제대로 포착하고 설명해내는 그의 글쓰기가 저는 굉장히 맘에 듭니다.
 
Jamiroquai - High Times : Singles 1992-2006
자미로콰이 (Jamiroquai)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망할것들은 자미로콰이 이야기가 아님은 아실거고,

아랫분이랑 마찬가지로 이런 거지같은 패키징을 한 소니 욕을 안할 수가 없다.

정말, 미국에서 수입반이라도 주문해서 다 이런지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이다.

세상에 프로모션 시디도 아닌 정품이 마분지 종이팩에 담겨서 온 시디는 내 시디구매사상

처음이다. 포장을 뜯었을 때 나는 본드냄새도 아랫분이 말한 대로이고, 열자마자 쏟아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종이팩들...(얇은 종이팩들이 두툼한 케이스에 담겨있으니 헐겁기

짝이 없다. 약간만 아래로 기울이면 다 쏟아진다)

 

구매후 이틀, 결국 우려했던대로 출근 직전 차에서 들으려고 갖고 내려가다가 

집앞에서 쏟아져 땅으로 굴렀고, 황급히 수습해서 주워담고 차를 출발시켰는데...

회사를 와서 보니 1번 시디-핵심!-는 종이팩만 남고 시디는 빠져서 어디로 굴러간 모양이고,

2번시디는 엄청나게 손상되어 버렸다. 겨우 나오긴 하지만...

 

젠장, 딱 한 번 듣고 시디가 사라진거다. 집에 다시 와서 주차장을 찾았지만 당연히 없고.

이게 뭐냐? 아무리 시디가 장사가 안된다고 이런식으로 무성의하게 굴어도 되는거냐?

망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군. 소니에서 이 글을 보면 최소한 사과하는 댓글이라도 하나

달아라. 그럴 리 만무하겠지만. (쓰다보니 열받아서 소니BMG로 전화 한 번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자히르 - 코엘료, 또 하나의 거품이구나

(영어판을 읽은 서평입니다만, 아무래도 더 많은 분들이 보실 한국어판에 서평을 올립니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가 한국에서 떴을 때,  좀 궁금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어공부도 할 겸 (사실 포르투칼어로 글쓰는 작가 소설을 영어로 읽는다는 것이 넌센스겠지만) "The Zahir"를 샀답니다.

잡담인데, 영어판 제목은  "
" 자히르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건지 찾아보니 포르투칼어 원서는 못 찾았습니다만, 스페인어판이  "
" 자히르인걸 보니, 이 쪽이 맞는 듯 싶습니다. 하여간에, 제 감상을 말씀드리면...

"
", 끔찍해라. 최근 년간 읽은 소설 중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데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변 늘어놓기(요즘 이문열이 재미들인)더군요. 그나마도 깊이있는 사유에 바탕한 것도 아녜요. 지금 한 절반까지 읽었는데, 도저히 더는 못 읽겠습니다.
(절대 영어로 읽기가 귀찮아서는 아닙니다. ^^; 원문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영역판은 아주 간단한 단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단어도 매우 쉽습니다. 요즘 고등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어 보입니다)

이야기는 뻔하디 뻔한데 계속 반복되는 대화들로 줄줄 이야기를 늘여가고 있는 것이 초짜에게도 보입니다. 스토리도 전체가 우화 내지는 잠언인 셈인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냥 이겁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고생해봐야 얻어진다. 쉽게 살면 잊혀지는 거다"
(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고, 신분상승에 성공한 이들이 인터뷰마다 늘어놓는 뻔하디 뻔한 레파토리 아닙니까?)

그러니까, 코엘료가 왜 이 이야기를 썼는지도 짐작이 갑니다. 자기가 쉽게 살고 있다는 자기반성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소설속의 작가는 자기 자신이겠죠. 젊은 시절에 고생하면서 얻은 체험으로 나오는 소설이 아주 유명해졌고, 그 이후엔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 적당히 쓰다 보니, 이젠 더 할 이야기가 없어져버린...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정말 소설 속 에스테르(영문판에서는 에스더로 읽힙니다만...원어상 이 이름이 맞겠죠)처럼 전쟁터로 나가거나, 순례를 나선다던가 하는 새로운 체험으로 돌파구를 만들면 모를까, 이게 뭡니까? 차라리 펜을 꺾지.

저도 제 주변부터 시작해 이런 작가들- 제도권에 편입해버린-많이 봤습니다.(특히 젊은 시절의 강렬한 체험으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전후세대의 작가들이 이런 경우가 많죠) 다시 시작하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양심적으로  펜을 놓더군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나태함을 벌거벗기면서 또 태작 하나를 내놓는 건 첨 봤습니다.
(본인이야 초심으로 돌아가서 쓴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하여간에, 책을 덮습니다. 이 책과 '연금술사' (맨 첫장과 맨 뒷장만 보면 더 볼 필요가 없었던)밖에 코엘료의 작품은 안읽어봤지만, ™D부르게 판단 내리기에는...

이 작가는 또 하나의 거품이고, 그럼에도 (잘난 척 한다는 말 듣기 딱 좋은 말이지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고, 영적인 것 강조하고, 글은 쉽고,이야기는 단순하고, 우화같고, 짧고...읽고나면 공연히 뭔가 깨달은 것 같고... 팔리기 딱 좋은 책이죠.

*재미있는 것이, 여기 알라딘이건, YES24이건 초반에는 저같은 악평들이 대세인데, 나중으로 갈수록 호평들로 채워지는 경향이...혹시 영화판의 '알바'악몽이 여기서까지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노파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영훈 - 옛사랑 : The Story Of Musicians
Various Artists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재미있게도 이 앨범에는 '옛사랑'이 없습니다. 이문세 7집에 수록되었던,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이영훈이 만든 최고의 곡인 이 곡은...아이러니하게도 이 앨범에는 수록이 안되어 있단 말이죠.

(참고로, 저는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저자입니다. 이 50대 명반속에는 이문세 7집이 수록되어 있구요, 이 앨범 및 이 특별한 곡 '옛사랑'에 대해서 저희가 평해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사보세요^^)

이 앨범은 이영훈이 정말로 오랫만에 이문세라는 자신의 파트너를 떠나서 만든 앨범입니다. 80년대를 지나오며 엄청난 판매고로 발라드의 시대를 열었던 이들 파트너는 90년대 들어 만남과 결별을 반복했고,  아마도 이제는 서로의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정리가 된 듯 싶습니다.

전제덕이 연주한 신곡 한 곡을 빼면 당연스럽게도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이문세가 원래 불렀던 곡들입니다. 일종의 리메이크 앨범인 셈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슬적 드는 생각. 그렇다면 여기서 '옛사랑'이란 혹시...이문세를 상징(오해는 마세요^^ 두 사람 다 가족이 있는 분들이죠. 영혼의 파트너라는 의미입니다.)하는 것일까요? 일종의 홀로서기를 위한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는 앨범?

앨범의 속지를 펼치면 그런 생각이 좀 더 강해집니다. 앨범 속지에는 이영훈씨가 직접 쓴 곡에 대한 해설이나 소회가 담겨 있는데, 그는 이문세라는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몇 곡에서는 '이제야 내가 만든 의도대로 불리워졌다'는 표현을 씁니다. 물론 그것은 이제까지 나왔던  자신의 노래에 대한 질낮은 리메이크들에 대한 언급일수도, 부족한 연주에 대한 언급일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상당부분 그 화살은 이문세에게 향합니다. (특히 붉은노을 에서는 그 대상이 이문세임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또 제가 이문세의 오랜 팬이어선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하게 평하건데 이 리메이크 앨범은 그런 이별과 홀로서기의 선언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몇 곡들에서는 과연 이영훈이 속지에서 비판하고 있는 '내가 관여하지 않은 질낮은 리메이크' 와 뭐가 다른가 싶은 형편없는 곡해석과 노래실력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 제작의도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부분들은 기획사측의 상업적인 의도가 많이 개입되었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듭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양심상 이런 의도는 배제하셨어야죠. 신인 작곡가도 아닌 한국 최고의 작곡가 중 한분이라는 분이요.)

예를 들어  '슬픈 사랑의 노래'의 해설을 보면 이영훈씨는 이소라가 처음 이 노래를 불렀던 때의 전율을 언급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왜 이소라보다 훨씬 떨어지는 이 리메이크를 여기 넣어야 하는 걸까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아, 이러한 머리로부터의 불만들에도 불구하고, 어쩌겠어요. 그냥 이 노래들만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80년대 이문세의 3집,4집, 5집, 6집과 함께 했던 사춘기가 떠오르는데... 이 앨범은 '영원한 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기억의 초상' 트리오만으로도 제 세대에게는 충분한 구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곡들은 분명 이문세가 보여주지 못했던 원곡의 놀라운 점들을 최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제덕의 연주곡 '기쁨의 날들' 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죠.

상업적인 의도가 거슬리고, 특히 '아이돌 가수 출신이 부른'  한 곡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앨범을 들을 때마다 이 곡은 스킵합니다) 그럼에도 추억의 곡들을 새롭게 재해석한 몇 곡들만으로도 이 앨범은 요즘 제 필청 리스트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파트 2가 곧 나온다는데 기다려 봐야겠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빛 구두 - 전3권 세트
정연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런 또디같은 사람같으니, 우정이 밥먹여주나?"

또디는 이 만화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대부분 알듯이 작가 정연식의 출세작이다. 스포츠신문에 연재되었던 이 세줄짜리 카툰의 제목인 '또디'는 만화속 작가의 개 이름이다. 그리고 또디는 경상도 사투리로 '덜떨어진 이, 멍청이'를 뜻한다. (예문: 것도 모리나? 이 또디같은 자슥아~)

자신의 데뷔작에서 과감하게 사투리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연식에게 고향 경남은 각별하다. 뭐, 누가 안 그렇겠냐만. 그러니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인 '달빛구두'에서도 그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동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겹쳐보이는 것은 국민영화인 곽경택의 필생의 영화  '친구'이다.  그러고보면 '친구'와 이 '달빛구두'의 첫 부분은 매우 비슷하다. 범생이 주인공과 껄렁한 친구, 그들간의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 그리고, '친구'와 '달빛구두'가 또 한 번 겹쳐지는 부분은 후반부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성대로,  성장한 친구들은 자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 없이 서로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우정을 위해 자신의 상처를 군말 없이 감수한다.

글쎄다. 서울 출신인 나에게는 이런 정서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지역 남성들이 요즘 연애 관련 우스개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정서 탓이다. 내가 접한 상당수의 경상도 사람들도 안으로는 다정다감하면서 유난히 겉으로는 이렇게 표현을 꺼리는 걸 봤다. 그게 사나이답다고 생각해서일까.  적어도 남녀관계에서는 이런 모습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남자들간의 우정에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 그리 많은 말을 섞지 않고도 맺어진 친구들간의 우정이라면, '쪽팔려서라도'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중요한 걸 잃어도 배신할 수 없는 우정이다. 그래서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또 세상의 이익과 우정 사이에서 우정으로 기울어진다. 그걸 '훗까시'라고 쳐도 그렇게 쉽게 비웃을 수만은 없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은 '너무나 소중한 진실'을 수십년 간 감출 수 있는 힘이고, 이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을 기여코 감동시키고 만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만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이 정도만 언급하자.)

곽경택 감독은 '친구'의 마지막에서 이 우정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현실을 보라. 그건 우정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일갈한다. (그 진의조차도 사람들은 반대로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연식은 '여전히 우정은 현실을 뛰어넘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면 그가 키우는 개가 아닌 그 자신이 '또디'인지도 모르겠다.

이 또디의 홈페이지 대문(http://www.ddody.net/)에는 지금 '사랑의 내일을 믿는 당신께, 06년 가을'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맞다. 진짜 또디다.  요즘 이 각박한 세상에 무슨 사랑의(그리고 우정의) 내일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난 세상에 이런 또디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도 좀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나도 또디인가보다.

* 사족 : 출판사 이름을 보니, 출판사도 또디들인가 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