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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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태계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Romain gary)의 단편 작품집을 읽었다.

 

 이 책의 제목을 차지하게 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이외에 모두 15편의 주옥같은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어떤 휴머니스트>, <벽-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본 능의 기쁨>등이 기억에 많이 남는 인상적이 작품들이다. 특히 <벽-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작품은 현대 산업사회의 파편화된 개인들이 얇은 벽이라는 장애물을 사이에 두고 겪는 소통의 근본적 불가능성을 액자식 구성과 기막힌 반전의 기법을 사용하여 묘사한 수작이다.

 

 이 <벽>이라는 작품은 보통 단편소설의 평균적 분량보다 훨씬 짧은 이야기이지만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를 읽고 났을 때의 그 허무적이고 충격적인 반전에 한동안 망연자실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벽>이 준비해놓은 슬프고 참담한 반전에 또 한번 놀라고 절망하게 될 것이다. <벽>의 이야기는 어떤 의사가 상상력과 영감이 떠나버린 한 작가에 대해 ‘벽’에 관한 실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사는 소설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벽은 원래의 뜻도 되고 비유적인 뜻이기도 하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세 들어 사는 젊은 남자와 아름다운 젊은 여자. 젊은 남자는 외로움에 지쳐 있지만 옆집의 아름다운 처녀를 순수하게 사랑하게 된다. 그녀 또한 지독한 고독과 세상과의 단절로 고통을 겪다가 어느 날 독약인 비소로 자살을 하게 되는데 비소 중독으로 인해 죽어가는 그 여자가 내지른 고통의 신음을 옆방의 청년은 얇은 벽의 반대편에서 듣고 그녀와 다른 남자의 잠자리에서 생긴 소리로 오해하고 크게 실망하여 전깃줄로 자살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결코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시니컬하게 묘사한 안타깝고 가슴을 저리게 하는 사랑이야기이다. 의사가 말했듯이 그 벽은 인간과 인간과의 진실한 소통을 방해하는 모든 허위의식과 관념, 물질적 욕망을 대변한다. 불통을 상징하는 벽이 사라진다면 사람과 사람은 소통될 수 있을 것인가? 로맹가리의<벽>을 읽고 나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개별적 고독에 대해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다른 단편 <어떤 휴머니스트>에서는 인간성의 이중성, 속물적 근성을 2차 세계 대전의 나치 치하 독일이라는 배경에서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 로맹가리는 인간이성의 숭고함과 속물적 근성 모두에 대해 그 어떤 선악적 가치판단을 유보한다. 요컨대 인간의 본성인 이성과 욕망이 결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20살 연하의 유명한 여배우와 결혼하고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맹가리의 인생 자체도 그의 비극적인 단편만큼 기이하고 특이하다.

 

 

                                                                                          2011년 7월 5일  patr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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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lee 2014-11-29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쾌한 해석 감사합니다
로맹가리 ˝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