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바벨의도서관 (바벨의도서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patho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은 곧 하나의 세계이고,세계 또한 하나의 책이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5 Oct 2026 18:29:59 +0900</lastBuildDate><image><title>바벨의도서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124278_63923034097711821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patho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바벨의도서관</description></image><item><author>바벨의도서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 비평의 곁과 결 (2) - 반인간주의 담론과 인간 주체 - [비평의 곁과 결]</title><link>https://blog.aladin.co.kr/pathos/17558898</link><pubDate>Wed, 07 Oct 2026 13: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pathos/175588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56&TPaperId=175588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8/65/coveroff/89320453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56&TPaperId=175588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평의 곁과 결</a><br/>이은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1.<br>신유물론 등 반(反)인간주의 담론이 횡행하고, 담론의 트렌드에 민감한 문학(과 나아가 문학 비평)에도 이는 반영된다. 이은지 평론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br>"그 실천적 효능 여부와 무관하게 [...] 만물을 객촤하하려는 신유물론의 기획을 신유물론 자체에, 나아가 신유물론과 공명하는 문학 자체에도 공평하게 되돌려줄 필요가 있다"(167쪽)<br>서구에서 주목받았다는 이유로, 요즘 핫하다는 이유로 신유물론 등 반인간주의 담론의 광풍이 부는 현실에 대한 차분한 문제제기이다.물론 신유물론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화하라는 것이다. 상식적이고 균형잡힌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을 적절히 수용한다면, 신유물론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br>"[신유물론이]그러한 자기 반영을 거쳤을 때에야, 마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을 내비치는 최신 유행의 철학적 주관 또한 상대화될 수 있으며, 절대적 진리를 자처하려는 치기를 내려놓고 만물과 공존함으로써 '철학 스스로가 객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167쪽)<br>반인간주의 담론에 열광하는 이들이 정말로 반인간주의자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nbsp;(이은지 평론가가 아니라) 필자가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nbsp;물론 '오만한 근대적 주체'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명백히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nbsp;겸손한 주체로 거듭나야 하리라는 뜻이다.&nbsp;<br>"인간이 만물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 그들과 공평하게 공존하는 주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인간이 자신을 포함하여 만물이 동등함을 '승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주체인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면 [...]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기도 한 우리 자신의 가변적인 속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nbsp;인간은 자신이 '객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주체'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167-168쪽)&nbsp;<br>인간은 성찰성을 가지고 있다. I를 Me로 직시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이미 "칸트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168쪽)에 함축된 바이다. "즉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 바라볼 능력이 있는 존재, 나아가 그 능력을 마땅히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로 보았다."(169쪽) 다시 말해 인간이&nbsp;성찰성을 극대화하면, 겸손한 주체가 될 수 있다.&nbsp;<br>"칸트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넘어섰다고 성급하게 자평하는 신유물론은 어찌 보면 칸트의 보편적 존재론을 단순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168쪽)<br>2.<br>반인간주의 담론은 인공지능의 대두와 만나 힘을 받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에 영혼이 있는 지에 대해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로봇과의 화해에 대한 문학적 상상"(189쪽)을 보여주는 일련의 소설들은 인간중심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다.&nbsp;더욱이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실존을 위협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다.&nbsp;로봇의 창조자가 인간이고, 인공지능의 창조자도 인간이지 않는가.<br>"어떤 기술 진보라 할지라도 그 사회의 물적 토대라는 한계 내에서 굴절되어 현상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굴절시키는 토대를 검토하고 재조정하는 역할은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 인간을 구속하는 것도 인간이 개발한 기술을 수속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베이컨이 비판한 '종족의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189쪽)<br>물론 이것은 전통적 인간 중심주의의 순진무구한 찬가가 아니다. 오히려 위에서 말한 겸손한 주체의 촉구에 다름 아니다. 나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br>"나아가 지금의 인간을 인간으로 부르게 해온 낡은 것들과 결별할 용기를, 근대의 태동기에 요청되었던 바로 그것을 로봇을 비롯한 기계와 협력하여 다시금 발굴하고 작동시켜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189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8/65/cover150/89320453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86513</link></image></item><item><author>바벨의도서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비평의 곁과 결 (1) - 문학장은 민주적인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 [비평의 곁과 결]</title><link>https://blog.aladin.co.kr/pathos/17466033</link><pubDate>Sat, 22 Aug 2026 2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pathos/174660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56&TPaperId=174660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8/65/coveroff/89320453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56&TPaperId=174660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평의 곁과 결</a><br/>이은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lt;비평의 곁과 결&gt;은 한 번에 다루기에 벅찰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1부의 맨 처음에 실린 두 편의 글이다.&nbsp;"최근의 문학이 이른바 도덕주의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신념의 공동체'로 경화되는 것에 우려를 표한"(24쪽) 첫글(문학은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하는가)은 문단에 적잖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nbsp;"소수자가 다수로 탈바꿈하는 착시"(24쪽)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지적한 부분에 나는 크게 공감하였다. 저자는 "문학에 대한 사심 없는 판단, 즉 문학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판단[을] 새로이 정립"(29쪽)하기를 바란다.&nbsp;도덕주의에 경도되어 특정한 관심과 신념이 주도한 문단에게 저자는&nbsp;후속 원고(한국문학의 숭고한 타자를 기다리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nbsp;<br>"궁극적으로 문학장은 특정한 관심에 복무하며 구부러진 가치를 생산하는 '주의'들의 부딪침을 무한히 권장하는, 민주적인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nbsp;그동안의 문학장이 미적 가치에 대한 특정한 관심을 세력화하여 그 우위를 뽐내는 과시적 공론장으로 기능해왔다면, 관심'들'의 유입은 이를 와해시키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견해가 이합집산하는 공중이야말로 민주적 공론장이 성립하는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28-29쪽)<br>이것은 그저 글 한두 편에서 엿보이는 단편적 생각이 아니다. 저자는 문단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원고들(한국문학의 숭고한 타자를 기다리며, 신인 평론상의 구조적 욕망과 환상 등)에서 스스로를 문단의 외부자 혹은 이방인으로 포지셔닝한다(45쪽).&nbsp;아래와 같은 저자의 기대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nbsp;<br>"문단에 진입하면서 내가 문학에 막연하게 기대한 것은 세월호 배지를 가방에 매단 청년과 태극기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이 남은 삶의 낙이 된 노인이 서로 마주 앉아 토론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순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현실의 어디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니까."(53쪽)<br>나는 그 기대에 동의한다. 문학이 '가상을 통한 화해의 실현'이라는 고전적인 미학 테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의 문학을 보면, 화해를 도모하는 것 같지 않다.<br>"서로의 진정성을 맞대어보고 부딪쳐볼 기회는 매우 희소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문학 또한 나의 진정성을 긍정하기 위해 너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여러 채널 중 하나와 같은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54쪽)<br>문학이 나와 다른 너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채널로 자리잡은 상황으로 인해 작가는 고통 받는다. 더욱이 그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결과로 한 번 더 고통 받는다(48-49쪽). 담담하게 쓰인 네 번째 원고(비평의 오물)를 읽다보면, 저자의 일관된 문제의식에 공감하기에 더욱 안타깝다.&nbsp;나는 &lt;비평의 곁과 결&gt;의 1부 원고 상당수를 예전에 읽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아진 글들로 다시 보니 저자의 문제의식이 새롭게 와닿는다. 여러분도 1부를 한번 정주행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nbsp;문학, 특히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러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8/65/cover150/89320453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8651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