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바벨의도서관 (바벨의도서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patho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은 곧 하나의 세계이고,세계 또한 하나의 책이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1 Sep 2026 02:46: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바벨의도서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124278_63923034097711821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patho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바벨의도서관</description></image><item><author>바벨의도서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비평의 곁과 결 (1) - 문학장은 민주적인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 [비평의 곁과 결]</title><link>https://blog.aladin.co.kr/pathos/17466033</link><pubDate>Sat, 22 Aug 2026 2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pathos/174660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56&TPaperId=174660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8/65/coveroff/89320453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56&TPaperId=174660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평의 곁과 결</a><br/>이은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lt;비평의 곁과 결&gt;은 한 번에 다루기에 벅찰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1부의 맨 처음에 실린 두 편의 글이다.&nbsp;"최근의 문학이 이른바 도덕주의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신념의 공동체'로 경화되는 것에 우려를 표한"(24쪽) 첫글(문학은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하는가)은 문단에 적잖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nbsp;"소수자가 다수로 탈바꿈하는 착시"(24쪽)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지적한 부분에 나는 크게 공감하였다. 저자는 "문학에 대한 사심 없는 판단, 즉 문학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판단[을] 새로이 정립"(29쪽)하기를 바란다.&nbsp;도덕주의에 경도되어 특정한 관심과 신념이 주도한 문단에게 저자는&nbsp;후속 원고(한국문학의 숭고한 타자를 기다리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nbsp;<br>"궁극적으로 문학장은 특정한 관심에 복무하며 구부러진 가치를 생산하는 '주의'들의 부딪침을 무한히 권장하는, 민주적인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nbsp;그동안의 문학장이 미적 가치에 대한 특정한 관심을 세력화하여 그 우위를 뽐내는 과시적 공론장으로 기능해왔다면, 관심'들'의 유입은 이를 와해시키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견해가 이합집산하는 공중이야말로 민주적 공론장이 성립하는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28-29쪽)<br>이것은 그저 글 한두 편에서 엿보이는 단편적 생각이 아니다. 저자는 문단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원고들(한국문학의 숭고한 타자를 기다리며, 신인 평론상의 구조적 욕망과 환상 등)에서 스스로를 문단의 외부자 혹은 이방인으로 포지셔닝한다(45쪽).&nbsp;아래와 같은 저자의 기대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nbsp;<br>"문단에 진입하면서 내가 문학에 막연하게 기대한 것은 세월호 배지를 가방에 매단 청년과 태극기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이 남은 삶의 낙이 된 노인이 서로 마주 앉아 토론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순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현실의 어디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니까."(53쪽)<br>나는 그 기대에 동의한다. 문학이 '가상을 통한 화해의 실현'이라는 고전적인 미학 테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의 문학을 보면, 화해를 도모하는 것 같지 않다.<br>"서로의 진정성을 맞대어보고 부딪쳐볼 기회는 매우 희소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문학 또한 나의 진정성을 긍정하기 위해 너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여러 채널 중 하나와 같은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54쪽)<br>문학이 나와 다른 너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채널로 자리잡은 상황으로 인해 작가는 고통 받는다. 더욱이 그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결과로 한 번 더 고통 받는다(48-49쪽). 담담하게 쓰인 네 번째 원고(비평의 오물)를 읽다보면, 저자의 일관된 문제의식에 공감하기에 더욱 안타깝다.&nbsp;나는 &lt;비평의 곁과 결&gt;의 1부 원고 상당수를 예전에 읽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아진 글들로 다시 보니 저자의 문제의식이 새롭게 와닿는다. 여러분도 1부를 한번 정주행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nbsp;문학, 특히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러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8/65/cover150/89320453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8651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