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라딘에 '나의 서재'를 마련한 것은 지난 8월 28일. 그새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 한 달 새 나도 '알라디너'로서의 어떤 리듬과 형식-- 이 안에서 형성되고 있는 어법과 소통의 양식과 독특한 뉘앙스들--을 몸에 익히게 된 듯하다. 어떤 변화라면 변화가, 작은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 그 시간 속에 있었다.
 
이렇게 알라딘에 서재를 갖기 전까지, 나는 인터넷 세계에서 내 이름으로 된 땅을 분양 받거나 어느 지붕 아래 세 들어 본 적이 없다. 다종 다양한 홈페이지들로부터 '엠블'이니 '네이버'니 '이글루'니 하는 블로그 나라들, 그리고 거미줄처럼 모든 인맥을 추적하고 인간 관계의 친밀도를 판정, 분류하게 하는 'n세대 친족 세계'의 새로운 제국 '싸이'에 이르기까지, 나는 늘 그 세계의 말없는 구경꾼이자 국외자였을 뿐이다.

구경만으로도 그리 무료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 내킬 때마다 산책 삼아, 끼니와 끼니 사이 군것질거리를 찾듯이 이 거리 저 거리 기웃거리던 시간이 제법 오래 흘렀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마음의 인자들의 집적 때문인지, 마침내 나도 이 허공의 영토에 내 방을 하나 마련하기로 마음먹게 되는 어느 순간이 왔다. 그건 심심함과 나른함과 허접한 외로움에 시들어 가고 있는 자신으로부터의 도망이거나 또 다른 내 안으로의 망명 신청이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서재 문을 열면서 내가 가졌던 기대는 이런 것이었다.
 
1. 이 방은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공간과 시간으로서 존재한다. 느리느릿하게, 가볍게, 즐겁고 쾌적하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 자신과 더 잘 노는 법을 배워 가는 어둑하고 편안한 다락방 같은 공간과 시간.
2.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제목처럼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그 무엇, 일상의 소소한 사건과 상념들을 그때그때 적어두자. 날마다 10분씩 하는 '맨손체조'와 같은 글쓰기.
3. '책'과 '글읽기'에 관한 경험담과 추억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보고 싶다.
4. 타인에게 속내 이야기나 사적인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잘 못하는 나의 낯가림과 의뭉스러움을 깨 보자. 습관을 고치고 방식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닫혀 있던 문 하나를 열면 조망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5. 문제나 상황에 직면하지 않고 에돌아가는 고질적인 어법과 치장과 엄살을 벗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훈련을 하는 수련장.
 

 

 

 

 

 

 

 

 

 

 

 

그러나, 서재 생활 한 달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 기대는 이미 모두 어긋나 있다.
그런 어긋남의 징조는 서재 문을 열고 나서 고작 일주일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한 주일을 보내고 나서 맞은 월요일 아침, 알라딘의 관리자가 보내는 메일을 받은 것이다. '서재의 달인' 30위 안에 들었다는 '축하의 메시지'. 이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 가볍게, 즐겁게 하려던 서재놀이의 행보를 어둡게 하는 불길한 징조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또 그때까지 나는 그 서재 순위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매겨지는 건지도 잘 알지 못했다. 지금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대략 리뷰와 페이퍼와 리스트를 올린 횟수와 추천 받은 수에 근거해 점수가 올라가는 모양이다. 그때부터 내 서재의 문을 들어설 때마다 내 눈길은 그 날의 방문객 수와 즐겨찾기의 숫자에 매이게 되었다. '그런 따위...' 하면서 담담하고 의연해지고 싶었으나, 그러기에 나는 너무 일찍부터 '서재의 달인' 대열에 들어서 버린 뒤였다. 그 뒤 나는 3주째 매주 5000원씩, 지금까지 모두 15000원의 적립금을 알라딘으로부터 받았다(아직 사용한 적이 없으니, 그대로 내 통장에 들어 있는 셈이다).
처음에 단지 새로운 걸 알고 익힌다는 기쁨에 공부에 재미 들인 아이에게 '우등상'과 '참 잘했어요' 따위의 상표를 안겨 주고 나면, 그 아이는 그 뒤 더 이상 공부를 재미로 할 수 없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희열과 성취감의 그 위험한 묘미를 맛봐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의 서재 문을 열어 보고, 외출하거나 다른 볼일이 있거나 한 때를 빼놓고는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줄창 서재 문을 열어놓고 지낸다. 밤새 누군가가 들렀다 한 줄의 코멘트라도 남기고 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또, 내 서재를 즐겨찾기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늘어나는 것만큼 내 기분을 붕 띄워 주는 게 이즈음 있었던가.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시시때때로 페이퍼를 반죽하거나, 굽거나, 만들고 있다. 이걸 글로 한번 써봐?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 볼까? 여기에 어울리는 데코레이션은 어떤 걸까?...... 비눗방울처럼 계속 통통거리며 부풀렸다 터져 버리는 얇고 가벼운 반죽들. 그 반죽들은 숙련되지 않은 솜씨와 그에 상응하는 조바심과 성급함에 먹음직한 빵으로 구워지기도 전에 찢어지거나 반은 설익고 반은 타 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쇼케이스 안에 담을 제대로 만들어진 빵은 금세 동이 나 버리고, 나는 손쉬운 대로 단맛 나는 쿠키와 알록달록한 사탕 봉지를 문간에 주욱 늘어놓기 시작한다. 오늘도 제 서재에 들러 주세요. 이거 한번 맛보고 가세요. 이런 것도 있는데, 드실 만하지요?... 아, 오늘은 또 무엇으로 사람들 입맛에 맞는 걸 내놓을까.

어느 날 문득 고개 들어 살펴보니 '나의 서재'에서 내가 이러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지상의 방 한 칸' 마련한 처지에 걸맞게 할랑하고 먼지투성이인 서재의 책장을 한 칸 한 칸 정성스레 닦고 천천히 '나의' 책을 하나 둘 정리해 꽂아 나가는 대신에, 대체 그 '서재의 달인'이 뭐라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상냥한 미소와 과장된 화장, 간드러진 목소리로 일종의 '호객 행위'에 나서고 있다니...... 고작 한 달만에 초심을 잃어버리다니. 나 자신을 위한, 가볍고 솔직하고 즐거운 방 하나 갖고 싶다더니......

결국 자인하기에는 아프지만, 지금 내 서재의 모양새가 바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의 투영체인 것이다. 내 안의 빈곤함, 내 것 아닌 것들로 잔뜩 채워져 있는 너저분함, 진짜는 텅 비어 있는 것과 다름 아닌 나를 회피하거나 감추려고 하는 치장과 겉멋부림......
허리와 팔뚝에만 나잇살과 군살이 붙는 게 아니다. 내 정신의 이 군살을 빼는 운동, 그 맨손체조를 지금부터 꾸준히, 게으름 피우지 말고 해야겠다. 마음에 드는 옷을 내 정신이 도무지 소화해 내지 못하는 '허약한 비만 체질'이 되는 슬픈 상황을 막으려면, 최소한 자기 혐오와 냉소와 무미건조함에 빠진 괴팍한 노년을 보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정신의 몸 관리에 들어가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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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약한 약골 체질인 저는 어찌하오리까... 님 초심에 정진하시기 바라며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근데 이 병이 잘 안 낫는 병인데, 약도 없는데 참...

에레혼 2004-09-2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이게 한번 걸리면 쉬 안 낫는 고질병이라는 불안한 자각 증세가 느껴집니다.... 초장에 좀 쎈 약을 처방 받아야겠어요(물만두님은 긴 세월 변함없이 정상권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걸로 보아, 아주 특수한 泌藥을 복용한 듯 보입니다만^^)

물만두님도 추석 잘 쇠세요, 보름달 뜨면 소원도 빌고, 맛있는 것 고루고루 드시구요!

로드무비 2004-09-24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은 역시 저보다 100배 현명하십니다.
저는 그 회의와 깨달음이 서재활동 3개월 만인 며칠 전 비로소 찾아왔더이다.
너무 큰 의미는 부여하지 말고...다짐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코멘트 하나에
1희 1비 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얼마나 충격 받았는지......
10분은 너무 짧고 1시간 정도 공들여 하는 국민체조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답니다.^^
글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즐거우니 어떡하겠어요.
그 정도 엄살과 어리광은 받아줘야지......^^

에레혼 2004-09-2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또 제가 대략 칭찬에 약해서... 그렇게 말하면 진짜 제가 님보다 100배 현명한 줄 압니다!^^

그 정도 엄살과 어리광은 기꺼이 받아드리지요, 국민체조 부지런히, 즐겁게 하세요!!

선인장 2004-09-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서재의 달인이 되는 길은 험난하군요. 저는 딱 한 번인가, 5000원 받아보고, 그거 포기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 창을 열어놓고는 있지만, 그냥 슬렁슬렁 마음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산책...
5000원씩 매주 모이면 꽤 큰 돈이 되겠군요. 그거 모아서, 라일락와인님은 모 하시려나?

에레혼 2004-09-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님에게만 귓속말]
그냥 슬렁슬렁 마음 가는 대로... 바로 제가 다다르고 싶은 경지가 거기라는 말씀입지요
님께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부디 사사를.....
님, 제게 님이 거처하는 사막의 주소를 좀 알려주세요, 달인의 상금(?)을 봇짐 속에 넣어 찾아가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객행위라고 규정하시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와서... 세상에 그렇게 우아하게 호객행위하는 사람도 있답니까. 껄껄. 그런데 라일락와인님 서재달인이시군요. 전 오천 원 한번도 못 받아봤는데... ^^

urblue 2004-09-2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생각 했습니다만, 뭐 그런 생각도 그냥 잊기로 했습니다. 이거저거 다 신경쓰고 사는 거 너무 피곤해요. ㅠ.ㅜ 재미를 느끼는 동안 만큼은 그저 재미나게 서재질하기로 했습니다.

선인장 2004-09-2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경지랄 게 있나요...
이유 1. 집에 있던 노트북을 회사에 가져다 놓은 관계로 집에서는 컴퓨터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유 2. 아무리 널널해도 월급쟁이인데, 눈치 보면서 해야 하는 서재질, 눈치에 집중까지 하려다보면 체력이 딸려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이유 3. 워낙에 뭔가 특별한 필을 받아야 글을 쓰는 체질이라, 글 쓰는 양이 늘지 않는다. 음악이나 동영상 파일은 올릴 줄도 모르니 글로 떼울 밖에...
이유 4. 낯가림이 심해 말 걸어주는 이에게만 겨우 아는 척 하는지라, 자주 들여다보는 서재가 한정되어 있다.
이유 5. 이유 4로 인해, 내 서재에 오는 이도 특정한 몇몇으로 한정되어 있다 보니, 챙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이유로, 널널하게, 산책하듯, 바람 쐬듯, 이 서재 저 서재 다니는 거죠...뭐...

그리고, 사막에는 주소도 번지수도 없답니다. 발길 닿는 대로 따라오세요. 님이 찾아오신다면, 긴 모래밭에 제가 길 하나 만들어두겠습니다. ^*^

2004-09-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 달 만에 심한 노쇠현상이..ㅋㅋ 적당히가 힘든 거 같아요, 아예 안하면 모를까..전 그냥 즐기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상으로 속얘기 하는 것 처음엔 아주 어색했는데..이젠 점점 무덤덤해지다 결국 희열^----------^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지족초 박예진양부터 수암님까지 모두 배울 점들이 너무 많고 따듯하고 정겹고..하하 호호 그리구 전 기분에 따라 읽었다 안 읽었다 썼다가 안썼다가 하는 정도가 심한데 서재 관리^__^하려면 꾸준해야 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성격교정에 도움 된다지요. 넋두리도 하고 뻘소리도 하면서..좋은 밤~!
 

 

그는 오래도록 문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으로 태어난 듯했다. 거기에는 좋고 그름도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가는 건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 나쓰메 소세키, <문> 중에서

 

 북미 나바호족의 노래 'Seed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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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9-2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 Seed of Life... 바다가 퍼렇게 하늘로 올라가 있는 바깥을 문을 통해서만 느끼는 사람... 라일락와인님은 코디를 참 잘하세요. ^^ 글과 음악과 그림을 이렇게 훌륭하게 꿰어놓는 페이퍼들을 보면...

플레져 2004-09-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닫힌 문이 악귀 보다 더 공포스럽다는 걸 확인하지요.
어릴때 엄마가 없는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때, 짙은 녹색의 대문은 참 무서웠어요...

에레혼 2004-09-2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코디를 잘한다는 말, 칭찬으로 해주신 말일 테지만... 흑흑... 지금 저는 그 말이 아프게 들리네요, 이 방에서 내 목소리로 내 얘기는 안하고 혹은 못하고 '코디만' 줄창 하고 있는 내가 무척 답답하거든요......

플레져님, 유년 시절에 딱 멈춰 있는 그런 두려움, 공포의 기억이 있지요, 왜 엄마가 없으면 늘 익숙한 공간도 그렇게 커다란 미궁의 공간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시커먼 우물 바닥처럼 다가왔던 건지....... 겉은 멀쩡하게 '어른'이 된 지금도 간혹 그런 막막한 순간과 맞닥뜨릴 때가 있기는 해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라인님, 정말요? 제 무심한 말이 님을 슬프게 했다니... 저도 역시 흑흑. 하지만 님의 목소리가 없다는 건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요? 저는 향기가 충천한 이 서재가 얼마나 부러운데... 거참. 그림 한 점 없는 제 서재에 오늘 띄워주신 그림이 제겐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전 고맙다는 인사 하러 들어왔는데...

에레혼 2004-09-2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안님께 공연한 부담과 자책감(?)을 안겨 드렸네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님의 말 그 자체가 저를 슬프게 만든 게 아니구요(칭찬해 주신 걸로 접수됐어요^^), 오늘 내내 저 자신 이 서재에 대해 그런 착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서재 활동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됐는데, 이런저런 느낌과 생각을 페이퍼로 하나 써보려구요...

그나저나 그림 마음에 드셨나요? 님의 리뷰 보자마자 그 그림이 떠오르기에 얼른 제 창고에 가서 먼지 털고 끌고 나왔지요 ^^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행이다. 저 무지 새가슴이죠? 하하.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 싶어서 정말로 자책이 됐더랬어요. 흑. 칭찬으로 완전히 접수가 된 걸로 알고 그만 안심하겠습니다. ^^ 제가 서재주인들을 많이 사귀는 편이 아닌데 그러다 보니 연을 이어가는 분들은 글을 보면서 외모도 상상이 되고 글의 취향이나 사고의 방향도 많이 짐작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제가 발걸음하는 라일락와인님은 어떤 분이실까 내심 궁금했지요. 페이퍼 기다릴게요!
 

 

 

희망의 수만큼 실망은 늘어가겠지......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그 실망의 엄연한 공존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은 아닐는지

때로 아직 덜 자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가능성을 믿어 주고  잘할 수 있다고 어깨 두드려 주는, 변함없는 내 삶의 지원군을 바라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런 실의와 허탈감에 바탕한 기대와 슬픔을 드러낼 때

나는 섣부른 위로를 줄  수 없다.  

누군가가 내게 '선인의 얼굴'로 나를 쉽고도 다정하게 위로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제제의 라임 오렌지 나무......

우리들 마음속 어린아이의 쿠루미(호두나무)는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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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울고 있다

이제까지 못 보던

벽에 난 구멍에서

-- 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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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 벌레가 돈벌레이기를... 바퀴벌레 절대 사양...

책읽는나무 2004-09-2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돈벌레 좋으네요..^^
 

때이른 죽음, 드라마가 된 음악

에바 캐시디의 `Time After Time`

`Time After Time` 에바 캐시디/명음레코드 수입

음반이든 영화든 소위 리뷰라는 글줄들을 읽다 보면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 단어가 ‘effortless’이다. 별 힘 안 들이고 그냥 설겅설겅하는 것 같은데도 그게 전부 걸출하다는 뉘앙스의 칭찬이다. 말하자면 자연스러워서 능란하다는. 헌데 자연스럽다는 것은 기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전략도 없다. 전략이 없기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에바 캐시디의 노래는 이런 상념을 가능하게 한다. ‘effortless’한 가수의 전략 없는 한줌 인생. 팝송은 물론 재즈, 트래디셔널 민요 및 포크, 블루스와 리듬앤블루스, 가스펠 모두를 똑같은 강도의 감정으로 소화할 줄 아는 그녀 최고의 매력을 확신하고서 그녀에게 정식 레이블 계약을 맺게 해 주려고 애썼던 그녀의 매니저는, 역설적으로 주 스타일이 뭔지 분명히 하라며 번번이 거절하는 음반사 직원들만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 사이 주변의 친우들과 평소 그녀의 (자신의 노래를 취미 이상의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는) 성격을 아는 몇명의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음반들이 그들만의 추억거리로 제작되었고, 오직 그 반경 내에서 사랑받았다. 이 과정은 모두, 너무 자연스러워서 참 이상한 여자였던 에바 캐시디가 한사코 자신의 노래 재능을 확신하지 않으려 했고, 그것이 설상가상 답답할 정도로 수줍은 그녀의 성격을 통해 가당찮은 겸손으로 받아들여진 탓에 거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 워싱턴 시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와 전원을 (너무) 사랑하며 사는 풍경화가 에바 캐시디에게 음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질, 친구들 사이의 놀라움, 소박한 자기만족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에바 캐시디는 1996년, 서른세살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이 지점에서 그녀의 노래는 드라마가 되기 시작했다. 죽음, 그것도 때 이른 죽음은 필연적으로 때늦은 후회를 부추기고 불필요한 미화를 낳게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결코 야단법석처럼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노래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모두 커버곡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그 모든 곡의 싱어송라이터처럼 들린다. 리메이크의 키포인트가 되는 ‘해석’의 경지에서 그녀가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보여주는 감탄할 만한 중용의 도(中庸之道)는 스팅의 `Fields Of Gold`나 샹송의 고전인 `Autumn Leaves`,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 그리고 상당수의 에바 캐시디 팬들을 양산한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 `Over The Rainbow` 들을 통해서 조용히 웅변적으로 체험된다. `Time After Time`은 이전에 나왔던 `Songbird`와 함께 에바 캐시디의 그와 같은 면모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앨범이다. 타이틀곡이자 아까 언급된 신디 로퍼의 80년대 히트곡인 `Time After Time`을 비롯,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 조니 미첼의 `Woodstock`, 전해내려오는 포크 고전 `I Wandered By A Brookside`와 가스펠 고전 `Way Beyond The Blue`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Way Beyond The Blue`와 `Time After Time` 그리고 첫 곡인 폴 사이먼의 `Kathy’s Song`을 역순으로 듣는 체험은, 아쉬우나마 왜 모든 레코드사에서 그녀에게 주 스타일이 뭔지 분명히 하라고 말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해줄 훌륭한 샘플 코스가 될 것이다. 더불어 전략 없는 인생에 발버둥치지 않는 ‘effortless’의 노래가 어떤 방식으로 위안이 될 수 있는지도 알려줄 지 모르는.

성문영/ 팝음악애호가

Autumn Leaves

 

 

  What A Wonderfu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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