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경 하는 사람들에게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 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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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올리신 길도 이 사진도 무지 좋네요.
ㅇ, 그런데 사진이 바뀌었네요.
근사합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그런데 왜 요즘 제 방엔 놀러 안 오시는지ㅠ.ㅜ

에레혼 2004-09-2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금살금 놀러 갔었는데...... 까치발이라, 발소리가 안 났었나봐요
로드무비님, 삐진 건 아니죠?^^
지금 다시 들러 볼게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9-27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교회를 가는데 하늘이 정말 대단했어요. 오랜만에 구름을 보면서
왜 그간 구름도 못 보고 살았을까, 싶었죠...
그랬는데 라일락와인이 또 밤하늘을 보여주시네요. 참... ^^
이 비주얼에 관한 설명은요? ^^

에레혼 2004-09-28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며칠 전 저런 구름을 보셨나 보군요
구름이나 하늘이나 그런 표정에 때로 감정이입이 되는 건 아마 그것들에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Ansel Adams의 "Moonrise, Hernandes, New Mexico 1941"입니다.
뉴 멕시코란 곳의 하늘과 땅이 지금도 저런 풍경을 지니고 있지는 않겠지요......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악몽에 시달리거나 가위에 눌리거나 한 것도 아닌데, 오래 나쁜 꿈속을 헤매다 깨어난 것처럼 몸이 무겁고 어딘가가 아팠다.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이런 느낌이 뭐지? 모욕감. 그 낯설고도 지독히 생생한 단어가 까마귀처럼 내 감은 눈 위를 휙 지나갔다.
 
전날 그가 나에게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 아니 지극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가정과 논리에서 던진 한 마디 말이 지금 나를 이런 감정에 빠뜨리고 있다.
그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걸까. 그가 '보고 있는' 나는 나와 얼마나 겹쳐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멀리 있는가. 나는 그에게 오랫동안 내 얘기를 해 왔으나 그는 내 얘기를 듣고 있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의 통찰력에 비친 내 모습만을 줄기차게 바라보면서, 나로부터 전달되는 모든 정보와 이미지들을 그 상에 맞추어 분석, 종합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기는 그만 그랬겠는가. 나 역시 사람들에 대해 그런 과오를 수없이 저지르며 살아왔다.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힌 뒤 컴퓨터를 켜고 국어사전에서 낱말을 찾아본다.

모욕(侮辱): 깔보고 욕보임.
모독(冒瀆): (신성한 것이나 존엄한 것, 청정한 것 등을) 욕되게 함.
치욕(恥辱): 수치와 모욕.

모욕은, 모독은 '오독(誤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상대방이 나를 잘못 읽는 데서 오거나, 내가 상대방의 진의를 잘못 해석하는 데서 생기는 상처와 흔적.
세상의 모든 이해가 기껏해야 '잘한 오해'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오독(誤讀)은 깊게 패인 바퀴자국을 남기며 시간과 함께 지나간다.

아프다거나 슬프다거나 따위의 엄살스런 감각에 무뎌지려는 기제의 발동으로, 잠 속으로 들어간다.
내 밖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저 혼자 웅얼거리는 라디오 음악처럼, 시간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흘러갔다.
날이 저물어 버렸다.
아직 내 안에 무엇이 고여 있는지,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주말 저녁의 드라마를 보고, 비디오를 두 편 보고, 책을 읽는다.
몇몇 말들이 내 안에 잠시 머물러 빙빙 맴돈다.

"너는 좋은 가수가 될 거야."
"좋은 가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 주는 가수가 좋은 가수지."

"예쁜 게 죄야?"
"아니. 예쁜 건 잘못이 아니야. 예쁜 척 하는 게 죄야."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주 이상하다."
"우주의 끝을 찾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에, 우주의 중심에 서서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곳이 바로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는 언제나 우주의 중심에 있을 뿐이다."


 

Handel's Sarab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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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9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 사진만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려요..떠나야 하는데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과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나에 대한 동정심? 뭘까요..이런 어중간한 기분..


에레혼 2004-09-2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저와 거의 비슷한 증세이군요
이즈음 "늘 혼자이면서도 혼자 있기를 꿈꾼다"는 시 구절이 가슴에 콱 박혀 있어요
이 공간에 처박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어쩌면 어디엔가 내가 있을 곳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적 희구와 상통하는 게 아닐까요
 

 

 

아버지와 딸(Father and Daughter)


마이클 두독 데 비트(Michael Dudok de Wit) 감독.


2001년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히로시마 애니 페스티벌 대상,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 부문 상 석권. 



*  배경음악 : 요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

연필과 목탄을 이용해 수묵 담채화풍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는 대사가 없
다. 대신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연주하는 슬라브 민요풍의 구슬픈 아코디
언 음색이 보는 이들의 가슴 속을 파고든다.

지난해 안시 페스티벌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두독 데 비트는 "갈망과
이별, 그 뒤의 결합은 내 작품의 공통된 주제"라며 "어릴 적 살던 시골
의 풍경을 떠올리며 부모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갈망
하는 것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와 중국의 붓글씨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
다"며 "다음 작품은 붓글씨에서 아이디어를 딴, 좀 더 추상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78년 영국 웨스트서리 예술대에 입학해 첫 작품 "인터뷰"로 자신을 알
린 그는 80년 런던에 정착한 뒤 네슬레.하인즈.켈로그 같은 대기업의 광
고를 만들며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
작품으로는 "톰 스위프(Tom Sweep.92)"를 비롯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
션 후보에 올랐던 "승려와 물고기(The Monk and the Fish.94)", 30분짜
리 TV스페셜 프로그램인 "그레로의 아이(L"enfant au Grelot.97)"등이 있
다. 현재 전세계 순회 강연을 하면서 광고 제작, 어린이책 삽화 그리기 등
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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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를 꿈속에서라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잘 보고 갑니다.^^
 

가수 김윤아

박상순

 

 내 이름은 윤아야. 가수 김윤아. 좋아하는 뮤지션? 그런 건 없어. 시집. 그런 건 안 읽어. 책? 『고원 - 정신분열증2』를 몇 쪽 봤을까? 책 표지는 기억해. 시인. 빵공장. 마라나. 그런 시를 쓴 시인의 디자인일 거야. 아무튼 내 이름은 윤아야.

 

 까르푸에서 그 시인을 보았어. 내 얼굴은 몰라. 그 사람은 나를 몰라. 그는 파니 프라이스만 생각해. 그 여자는 화가 지망생. 이탈리아에서 죽었대. 이야기 속의 이야기야. 엑스트라였나 봐. 그런데도 그 여자만 생각해. 하지만 내가 만든 노래야.

 

 사실 내 이름은 파니야. 스페인어 할 줄 아니? 내가 복사했어. 가수 김윤아의 노래. 내 친구 윤아가 감기약을 먹고 누워 잠들었을 때 내가 했어. 어떻게 된 거냐구? 물음표를 뒤집어봐. 새우 한 마리. 바다에서 잡혀온 새우 한 마리. 탱고 춤을 출꺼야.

 

 하지만 잘 생각해! 속으면 안 돼! 내 이름은 윤아야. 가수 김윤아. 정신적인 윤아. 즉물적인 윤아. 하지만 내게는 없어. 인상적인 윤아. 사실적인 윤아. 표현적인 윤아. 대면적(對面的)인 윤아. 침투적인 윤아. 음악은 좀 아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이 슬프다고 생각하니? 미니멀하지! 잘 생각해. 내가 복사했어.

 

 미니멀한 것으로 한 곡 들려줄까? 하지마 뒤틀 줄도 알아야 해. 내 비극의 컬러를 모르면 마라톤 경주를 관람할 수 없단다. 본능이라고 생각하지 마! 눈을 감으면 잘 들리니? 귀를 막으면 더 크게 들리지? 그 사람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 빵공장, 마라나. 그런 시를 쓴 사람있잖아. 사실은 내 시야. 새우 한 마리. 바다에서 잡혀 온 새우 한 마리.

 

 내 이름은 윤아야. 가수 김윤아. 너에게도 써줄까? 아니면 한 곡 들려줄까? 컬러풀한 걸루. 아이덴티티는 너무 20세기적이야. 난 움직여. 움직이고 있다구. 하얗게 밀려오는 밤바다의 파도. 이른 아침 7시 50분에 시청사 정문 앞 도로변에 서보면 다 보야. 현대적으로, 21세기적으로, 그렇지만 능숙하게 르네상스식으로도.

 

 너도 한번 볼래? 하지만 잘 생각해! 속으면 안 돼. 나 말고, 나 말고. 너에게 속으면 안 돼. 사실 내 이름은 꿀벌이야. 레이스가 달린 새하얀 속옥이야. 새우야. 메타피지컬이야. 하얗게 밀려오는 밤바다의 파도. 동사야. 명사야. 알탈미라 벽화야. 칫솔을 사러 가는 곰인 형이야. 변신이야. 장치야.

 

 밤이야. 아침이야. 하늘이야. 땅이야. 새벽이야. 바다야. 33, 44, 66 - 나야. 나.

 

김윤아, 봄날은 간다

 

김윤아, 야상곡 (夜想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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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윤아에게 질투를 느껴요...안 퍼갑니다..저 와인 한 잔 밖엔 안마셨어요. 헐~

로드무비 2004-09-2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왜 질투를?
저 김윤아 음반 샀어요.
야상곡이 좋더군요.
잘 듣고 가요.^^

에레혼 2004-09-2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님이 간밤에 마신 와인 향이 지금 제 방에서 나는군요 ^^

로드무비님, 음반까지 제돈 주고 사신 걸 보니 님이야말로 김윤아의 노래를 누릴 만하십니다
 

* 이번 주에 산 책

 

 

 

 

 

 

 

 

* 지금 읽고 있는 책

크리스토프 하인, <낯선 연인>, 현대소설사

아니 에르노, <아버지의 자리>, 책세상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마법의 등>, 이론과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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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사고 싶었던 책이구요...김혜순 시집은 신간인가요? 검색하러 가야 겠당 휘리릭~!

2004-09-2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 <떡갈나무 바라보기><중국문화기행><톨킨><곤충일기> 연휴 기간안에 다 읽어뿌려야지...캬캬캬.

에레혼 2004-09-2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살 때는 어떤 이끌림과 욕심 때문에 이것저것 집어들게 되는데...... 집에 가져와서는 표지와 차례만 한번 살펴보고는 또 한참 밀쳐져 있곤 합니다, 순서가 밀려서요
님이 독서중인 책들은 모두 제가 읽지 않은 책들이네요
저는 <떡갈나무 바라보기>에 마음이 동하지만, 일단...... 참나님의 리뷰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