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적 상상력 - 구약연구시리즈 24
W.브루지만 지음, 김쾌상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1981년 11월
품절


오늘 우리들의 의식은 허위의식과 언어와 논리의 우상적 체계에 의해 물들어있다.-11쪽

이와같은 문화적응 현상을 빚어낸 내적인 원인은 우리가 신상의 전승을 버림으로써 우리의 주체성을 상실한 때문이다. 우리의 소비문화는 역사에 거슬러 조직화된 것이다. 기억을 얕잡아보고 희망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모든 것을 현재-그것이 코 앞의 현재이거나 영원한 현재이거나-에 붙박아 두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한, 모든 형태의 신앙상의 권위란 빛을 잃고,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목회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12쪽

모세의 대항문화란 결핍된 세계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모든 군왕들이 항상 인식했듯이 이와 같은 의식에 대항 할 수 있는 단하나의 길은 포만이다. 포만한 상황에서 자유와 정의의 혁명을 지속시킨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44쪽

이스라엘 예언자의 특징적인 방식은 시와 서정이다. 모든 것을 실현 가능케 하는 이 왕권의식이 상상력을 위축시킨다. 따라서 전체 주의적 체제는 예외 없이 예술가를 두려워한다.-64쪽

따지고 보면 지배적인 현실에 도전하고 그와 맞서는 마지막 남겨진 길은 시적인 상상력이다. 지배적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산문적이다.-65쪽

이렇듯 현재의 질서의 지나친 권리주장은 희망없음을 전제로 한다. 실현된 종말론의 이 음험한 형태는 인간들로 하여 희망 없이 살 것을 요구한다.-94쪽

이 아픔을 느끼는 인간이 무감각해져 버린 예루살렘 한복판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오로지 이 아픔만이 마침내 무감각 상태에 침투할 수 있다.-142쪽

예수가 여기서 선언한 희망은 무겁고 힘들다. 이 희망은 왕권의식에서 나온 값싸고 십자가 없는 희망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미 부요하고 배부르고 지금 웃어대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안이하고 옅은 것이지만, 부를 거부당하고 배부름에서 차단되고 도대체 웃을 사연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힘든 것이다. 이러한 예언자적 동력화의 신기함은 그것이 바로 역사 없는 무인격들에겍 전해진다는 점에 있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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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다룰 문제는 교회사에 관련된 부분이다. 사실 두번째 성경해석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 전부 다를 수는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교리 속에 갇히 메시야 예수 - 24쪽..[ 알다시피 오늘 대개의 사람들에게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온 메시아도 유다에서 온 메시아도 아닌 '교리 속에서 온 메시아'다.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그 연원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325년 최초의 기독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여기서도 라틴어를 쓰고있다. 무엇때문일까?. 영어로는 콘스탄틴이다)는 니케아에 있는 제 별장에 세계의 주요한 주교들을 모아놓고 회유와 협박으로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한다...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강화할 수 있다는 것도...그리고 그 결정이 오늘 우리가 알고있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다] 

정말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다. 김규항에 의하면 지금의 예수는 후대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 예수인 셈이다. 처음에 예수는단지 좋은 사람에 불과했는데 그를 신의 아들로 만들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콘스탄틴이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무지 교회사를 배우고 이 것을 주장하는 것인지. 모르고 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 알고 했다면 참으로 의도적 거짓으로 만든 것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모한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난 그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끄집여 들여는지 알지 못하지만 황당하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다.  

이것이 진정으로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는 것일까? 그가 주장한 대로 마가복음이 가장 처음 쓰여진 책이라면 왜 그곳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표기되어 있으며, 가장 덜 종교적이라는 마가복음에 강력한 복음이 들어가 있단 말인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은 300년 뒤에 생긴 것이 아니고 예수 당신에 이미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마가복음은 학자들에 의하면 AD 1세기 중반쯤으며, 후에 기록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1세기 후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에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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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향씨의 예수전에 대한 문제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역시 그의 성경해석에 관한 것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형식이 예수에 관한 '김규항의 견해'를 전달하는 데 효율적이지만, '예수의 견해'를 전달하는 데는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12쪽)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이 자신의 견해가 아닌 예수의 견해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의 예수의 견해를 한번 분석하고 그것이 과연 옳은가를 진단해 보자.  

 먼저 마가복음에 관하여  

이 책은 마가복음을 주 텍스트로 삼아 서술되었다. 역시 12쪽에서 "이 책은 바로 마르코복음을 읽기 위한 책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왜 마가복음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네 개의 복음서,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이고 그만큼 종교적 첨가도 적"기 때문이다.(12쪽) 

 

[마르코복음]이는 용어에 있어서-마르코는 영어식으로하면  [Mark]이고 한국 개신교는 [마가]로 번역했다. 그럼 마르코는 어디서 왔는가? 천주교식 용어이다. 이 말은 라틴어를 그대로 번역한 글로 마르코라고 읽혀진다. 그가 채택한 성경도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이 아니라 천주교에서만 사용되는 천주교전용 성경이다. 그는 일러두기에서 이것을 밝히고 있는데,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200주년 신약성서]이다. 이건 분명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천주교는 2차 바티칸 회의를 통해 방향자체를 완전히 틀어버렸다. 보수꼴통에서(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한스큉이있다) 완전한 개방과 진보로.. 그러나 여전히 라틴어는 살아있다. 라틴어로 미사를 들여야 한다는 보수주의 말이다.  

또 다른 마가복음은.. 

그는 분명 마르코 복음을 선택한 이유가 덜 종교적이고, 가장 먼저 기록되었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사실일까? 당연히 거짓이다. 마가복음은 덜 종교적이지 않다. 누구나 알듯이 마가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상을 돋보이기 위해 기록된 가장 강력한 복음이다. 마가복음 자체가 복음이라는 뜻이다. 마가복음 1:1을 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한글개정개역판 / 김규항은 끊임없이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며, 오로지 그의 인간됨에 촛점을 맞추려 하지만 틀렸다. 성경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단정하고 시작한다. 그런데도 애써 이것을 부인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를 읽기를 원하다면서  자신 마음대로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하나.. 마가복음이 과연 가장 처음 기록되었는가?  

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이 가장 처음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요 설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상당한 부분들이 마가복음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비평학의 원리에 따라 원문서는 가장 간단하고 명료하다는 것에서 [마가복음우선설]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식이다. 비평학에 의하면,, 초기의 문서는 아주 간단한 몇개의 문장으로 되었있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것을 설명하거나 첨가해서 더 부풀려진다는 식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러한 비평학의 중요한 원리는 어느정도 권위를 잃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초기의 작품이 책10권의 분량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싶지만 많은 분량에 눌려 읽지 못하자. 어떤 사람이 요약본을 내어 놓는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수도없이 많다. 만약 이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폴터 사이트에서 마가복음 우선설을 검색해보라.

이러한 간단한 예만으로 이 책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마가복음 우선설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다음 사이트로가서 송영목교수의 공관복음의 유래라는 글을 읽어보라.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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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고 안상영 부산 시장의 유서이다. 그가 왜 자살했을까? 그는 노무현 정권때 열린 우리당 입당강요를 거부하자 갑자기 1억 뇌물 수수죄를 뒤집어 씌웠다. 그는 수치속에서 모욕당하다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을 욕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을 이명박 대통령이 죽였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글을 보여주고 싶다. 그들은 할말이 있는가? 답을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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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遺書) 

 


국민여러분! 
 
사마천의 사기라는 책을 보면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형벌은 사대부에 이르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대부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은 산에서는 백수의 왕인 호랑이도 우리속에 갇히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걸하게 됩니다1 협박을 당하고 고통을 받은 결과가 그러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손발을 묶이고 벌거벗겨저서 채찍을맞고 감옥속에 쳐박히면 옥리만 보아도 머리를 땅에 박고 간수나 잡역부에게조차 겁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때 오히려 자기가 기개를 세우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 입니다. 
무릇 영웅 호걸들도 당국에 잡혀 감옥속에 갇히게 되면 자결하지도 못하고 치욕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저 안상영이는 감옥속 추운 방에서 盧武鉉의 말을 듣지를 않았다는 그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모함을 당하여 치욕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두툼한 솜옷도 감방속으로 차입이 되지를 못 하였습니다 
모든 명예를 다 버리고 용기도 없이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용기있다거나 비겁하다는 것도 사실 상황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사대부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았던 것은 실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모, 처자를 걱정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입니다. 

저는 절대로 돈을 받지를 않았습니다! 억울 합니다! 

 

제가 盧武鉉의 요구대로 열린 우리당으로 입당을 하였다면 저는 이 추운 감옥속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나라당에서 추천을 받아 선거를 해서 부산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한나라당을 떠나서 열린 우리당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 입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부산 시민들을 절대로 실망을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저들은 그런 고집을 부리는 저를 서울로 데리고 다니면서 주리를 틀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마천의 글 속에서 저 거대한 나라의 형법도 당상관은 감옥속에서도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저 안상영은 서울 구치소에 잡범들 방으로 들어가서 잡범들에게 무수하게 몰매를 맞았습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잡범들 방에 저를 몰아넣고 잡범들에게 몰매를 맞는 그 순간에 저 안상영이는

모든 것이 무너저 버렸습니다. 


저 안상영은 생명을 아까워하는 비겁한 자에 불과하지만 거취만은 분명하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어찌 치욕을 모르고 죄인 노룻만 하고 있겠습니까? 

 

저 盧武鉉이는 그렇게 악독한 人間 입니다. 
국민들은 절대로 저 위장된 盧武鉉에게 속아서는 않됩니다! 
盧武鉉은 강금실을 시켜서 서울 구치소 잡범들 방에서 저를 잡범들을 시켜서 무수하게 구타를

하게 하면서 마지막까지 열린 우리당 입당하라고 몰아부쳤습니다. 


盧武鉉이 盧武鉉당인 열린 우리당을 창당 한 것 자체가 경남과 부산에서 열린 우리당을 한 석

이라도 더 당선시키려는 부정한 기획으로 민든 당 이기에 저를 부정한 부산시장으로 몰아부쳐 저

를 감옥속에 처 넣어야 했던 것 입니다. 
그 이유는 盧武鉉이 끝까지 저 안상영이를 죄를 물었고 자백을 하게 하였고 마지막까지 열린 우

리당으로 입당하라고 몰아부쳤던 것입니다.

 

저는 죽음의 길로 걸어가면서 저 부정한 盧武鉉 정권에 죽음으로 항거합니다. 
저는 어둠속의 감방속에서 또 하나의 진실된 조국 대한민국 역사의 장래를 진심으로 다시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盧武鉉은 나 안상영이를 죽음으로 몰아 갔지만 저 부정한 정권은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할 것 입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무수하게 몰매를 맞고 부산 구치소로 돌아오니 부산은 나의 집 이었습니다. 

국민여러분 평안 하십시오! 

 

 

 

안상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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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09-06-26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직도 왜 전노무현 대통령을 추종하는 이들이 고안시장의 유서 이야기를 한번도 꺼내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서운 것일까?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까봐서..

알려주마 2019-10-06 15: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위 안상영 유서는 한마디로 가짜 유서입니다. 안상영은 노무현 집권 때인 2004년 2월 4일 자살했습니다. 2월 5일 유족이 유서와 일기를 공개했습니다. 공개한 유서에는 정치적인 내용은 없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 개인적인 내용이 주류라고 합니다. 2009년 5월 말부터 돌아다니는 가짜유서는 <국민여러분! 사마천의 사기라는 책을 보면~>으로 시작하는 글입니다.(안상영 부산시장 가짜 유서 http://tszmo.tistory.com/6 ) 안상영 가짜유서가 만들어져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5월 23일 직후입니다. 진짜유서는 이미 언론에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아래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실린 유서 내용입니다.

故안상영 부산시장 유서 공개
동아일보 2004-02-05 12:32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40205/8026656/1

안상영 유서 수감고통・가족에 미안함 토로
한겨레 2004.02.05(목) 23:38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2/005000000200402052338510.html

자살한 安相英 부산시장의 유서와 일기
조갑제닷컴(월간조선 보도를 인용)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7608&C_CC=AD

안상영 시장 유서 공개
http://m.news.naver.com/read.nhn?oid=052&aid=0000026223&sid1=&mode=LSD

고 안상영 시장 유서 공개
http://m.news.naver.com/read.nhn?oid=052&aid=0000026217&sid1=&mode=LSd

그래서 다음과 네이버를 통해서 안상영 유서를 검색해봤습니다. 언제부터 안상영의 가짜 유서가 돌아다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에는 2009년 5월 30일에 실린 <안상영 부산시장 유서>가 처음 등장합니다. 이에 2009.05.31. <유서마저 위조하는 수꼴놈들!>이란 글도 올라왔습니다.

안상영 부산시장 (가짜)유서
http://tszmo.tistory.com/6

유서마저 위조하는 수꼴놈들!
http://roricon.egloos.com/1912263

네이버에는 <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한 의문>이 2009년 5월 29일 노노데모(우리가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에 처음 등장합니다. 글쓴이는 유서 내용을 소개하지 않고 읽은 소감을 썼는데요, 감옥소에서 잡범들에게 몰래 어쩌고 하는 구절을 보니 안상영 가짜 유서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2009년 5월 29일에는 누군가가 가짜 유서를 작성했고 유포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한 의문
https://cafe.naver.com/nonodemo/146703

결국 다음과 네이버에는 2009년 5월 31일부터 본격적으로 안상영 유서가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는 거지요. 지금은 엄청난 양의 안상영 가짜유서가 블로그와 카페에 게시돼 있습니다. 그럼 이 시기는 어느 때인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2009년 5월 23일 직후입니다. 미루어 짐작건대 이명박 측이든 누구 측이든 알 수는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존경받는 상황을 싫어하는 무리였을 것으로 봅니다. 가짜 유서의 내용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할 내용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그 유서가 진짜라면 언론을 탈 만큼 충격적인 내용인데도 신문과 방송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야당도 안상영 사망 후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고요.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야 한다면.. 정말 슬픈일이다.  

난 이 책을 읽지 않았다. 또 읽지도 않을 것이다. 쓰디쓴 추억 때문에..  전라도가 고향인 내게 광주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주체 할 수 없이 흥분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신작로 위로 군인차들이 군인들을 싣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모습들을 자주 보았다. 어린 마음에 군인들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고 건빵을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당시엔 그것이 추억인지 악몽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임께서 지금은 너희들에게 말해도 모르지만 나중에 반드시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이 말을 잊지 못하는 것은 정확하게 잘은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사뭇 진지하고 무엇가에 극히 조심하는 말투 때문에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광주항쟁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대학교를 다니면서 점차 알게되었다. 청문회 당시에도 난 광주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광주항쟁을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피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에 갑자기 보이지 않던 형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그 이야기는 많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현재화된 악몽이다.  

임신한 아이들의 배가 갈라지고, 지나가는 여고생들을 머리채를 잡아 옷을 벗기고, 진압하는 전투경찰(특수부대들이었다.)들에게 마약을 투여하는 수다한 사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끓게했다.  

 

난 이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쓰러질 것 같다.. 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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