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찌 집에만 갇혀 있어야 하나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집에서 지낸다고 해서 답답한 것만은 아니다. 의외로 재미있는 일이 가득하다. 그 중의 하나는 독서 그리고 또 독서. 특 소설 읽기는 이럴 때 하는 것이다. 굳이 소설만 읽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독서, 책 읽기, 


윤성근의 신간이다. <서점의 말들> 유유에서 나온 다른 두 권. <도서관의 말들> <습관의 말들> '말들' 시리즈로 만들 생각인가 보다. 어떻든... 서점에 얽힌 윤성근의 추억 그리고 기억, 경험. 생각들을 담았다. 수년 전에서 이런 책을 많이 읽었지만 요즘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 책이 읽고 싶어 진다. 윤성근이 누군가 싶어 찾아보니 <책이 좀 많습니다>의 저자이다. 2015년에 출간된 책이다. 분명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내용은 완전 백지다. 그리 마음에 닿지 않아서인지 표지만 보고 읽었다고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세 권은 모두 읽어 보고 싶다. 















부담 없이 책 읽기는 꼭 필요하다.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고보니 마음 편히 책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필사 따라쓰기 옮겨 적기


필사는 천천히 읽기다. 손과 입이 동시에 움직이면 더 좋다. 지금은 잘 하지 않지만 예전에 책 을 읽다 좋은 문장 발견하면 항상 스프링 노트에 옮겨 적었다. 손을 다치고 나니 타자 외에는 힘들다. 그래도 천천히 쓰고 싶다. 필사는 깊이 읽기가 아니던가. 집에서 놀면 뭐하나 필사나 하지.. 필사하기 좋은 글은 시, 수필, 명문, 등등 















낭독 소리내어 읽기 입으로 생각 말하기


낭독은 어떨까? 독서의 완성은 낭독이다. 회화도 말하기, 쓰기도 말하기, 삶도 말하기. 결국 말하고 살고, 살면서 말한다. 뭐 이번 기회에 말하는 법도 배우면 좋지 않을까? 또박또박 말하는 연습을 하고, 영어 회화도 배우고, 뭐 그렇게 지내면 어떨까?














악기 배우기 또는 기타치기 


악보는 사 놓고 두 달째 모셔 놓고 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악기를 배우자. 기타는 어떨까? 삶이 노래이고, 노래가 삶이니 악기 하나라도 배우자. 드럼을 배우자니 드럼이 없고, 바이올린 배우자니 남자로서 멋이 없어 보이고... 그래서 기타를 선택했다. 여전히 모셔 놓고 있지만 뭐라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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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 필요한 책들이 보여 일단 모아 놓기로 한다. 코로나 의학 경제 민주적 바이러스 전쟁 정치 등등이 엮이고 묶인다. 이게 세상인가 보다. 


미국에 계시는 분은 한결같이 이번에 자본주의에 함몰된 미국 의료계의 치부가 드러났다고 말한다. 민영화된 의료체계는 코로나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고, 엄청난 의료비와 혐오로 인해 숨어 다녀야할 판이란다. 지금까지 의료보험 내는 것을 '낭비'라고 여겼던 많은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 졌다.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 사스나 메르스도 코로나 바이러스였음이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백신이 없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좋은 듯하나 위험한 도박인 셈이다. 이유야 어떻든 대한민국은 잘 버티고 있다. 앞으로 더 잘 하리라 생각한다. 
















전염병의 세계사라... 문화사도 보인다. 다함에서 출간된 기독교 서적도 보인다. <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 중 한 축은 의료사업이었는데 이상하게 최근에 보이는 교회들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신천지도 신천지 나름이지만 대부분의 많은 교회들은 전염병 방치 대책을 '핍박'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이건 뭔가 이상한 해석이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나 칼뱅도 그러지는 않았다. 미국처럼 한국교회도 퇴보할 것인지... 어쨌든 읽을 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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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책


책을 급하게 읽는다. 수백쪽은 몇 시간 만에 읽어 낸다. 속독가는 아니지만 굉장히 빠르게 읽는 편이다. 잘 몰랐지만 최근들어 빠르게 읽으면 '맛'을 못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도널드 매킴의 <칼빈과 함께하는 매일 기도>를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짜깁기 느낌이 강했다. 왜냐하면 칼빈의 서적들에서 발췌하거나 설명한 것들은 다시 풀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의도는 알지만 입에 착 달라 붙지 않아 겉돌았다. 번역을 잘못 한 것 같지 않으니 아마도 원저자가 글을 깊이 없이 쓴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오늘 다시 서평을 기고하기 위해 읽었다. 지난 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아주 맛깔스럽다. 문장들에게서 은은한 향도 나고 달콤새콤한 맛도 난다. 

아하.. 이런 맛이구나. 

급하게 음식을 먹으며 맛을 잘 느끼지 못하듯, 책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읽으면 맛을 느끼지 못한다. 뭐.. 그렇다고 책을 천천히 읽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이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했든 글이란 너무 빨리 읽지도 말고, 너무 천천히 읽지도 말아야 한다. 왜 둘 다 맛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적당한 독서의 속도가 필요한 시기다.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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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장이 신간 분노와 스트레스


총선이 마무리되었다. 이번처럼 극명하게 동서가 갈리기는 오랫만인 듯 싶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코로나가 많은 변화를 주었다는 점이다. 토기장에서 '분노'에 대한 책을 두 권 이어 출간했다. 물론 <악한 분노 선한 분노>는 작년(2019년) 6월에 출간했으니 10달을 넘긴 구간이다. 하지만 그 맥은 동일하다. 분노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옳다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분노는 긍정적 측면에서 정의이고, 부정적 측면에서 절제 못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사이에서 늘 긴장하며 살아간다. 


분노는 존경 받지 못함에 대한 인간의 본서잉 아니던가. 왜곡되게 받아 들인다면 문제가 될 것이고, 선하다면 옳은 분노이다. 투표도 분노가 아닌가. 정의에 분노와 지키고자하는 분노... 우리는 그것을 정치라고 부른다. 


시간은 흐르고 또 다른 투표가 기다린다. 그 때는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그 때는 어떤 분노를 표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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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morning prayer

 

Eternal Father of my soul, let my first thought today be of Thee, let my first impulse be to worship Thee, let my first speech be Thy name, let my first action be to kneel before Thee in prayer.

 

For Thy perfect wisdom and perfect goodness:

For the love wherewith Thou lovest mankind:

For the love wherewith Thou lovest me:

For the great and mysterious opportunity of my life:

For the indwelling of Thy Spirit in my heart:

For the sevenfold gifts of Thy Spirit:

I praise and worship Thee, O Lord.

 

Yet let me not, when this morning prayer is said, think my worship ended and spend the day in forgetfulness of Thee. Rather from these moments of quietness let light go forth, and joy, and power, that will remain with me through all the hours of the day;

 

Keeping me chaste in thought:

Keeping me temperate and truthful in speech:

Keeping me faithful and diligent in my work:

Keeping me humble in my estimation of myself:

Keeping me honourable and generous in my dealings with others:

Keeping me loyal to every hallowed memory of the past:

Keeping me mindful of my eternal destiny as a child of Thine.

O God, who hast been the Refuge of my fathers through many generations, be my Refuge to-day in every time and circumstance of need. Be my Guide through all that is dark and doubtful. Be my Guard against all that threatens my spirit's welfare. Be my Strength in time of testing. Gladden my heart with Thy peace; through Jesus Christ my Lord. Amen.


박대영 번역


내 영혼의 영원하신 하나님,

오늘 저의 첫 생각이 당신이게 하시고,

오늘 저의 첫 열망이 당신을 향한 예배이게 하시고,

오늘 저의 첫 말이 당신의 이름이게 하시고,

오늘 저의 첫 행동이 당신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이게 하소서.

당신의 완전한 지혜와 선하심으로 인해,

인류를 향한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저를 향한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제 삶에 허락하신 위대하고 신비로운 기회로 인해,

제 맘에 임재하신 성령님으로 인해,

당신의 영이 부어주시는 칠 배의 은사로 인하여,

오 주님, 당신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이 아침 기도하는 이것으로 오늘의 제 예배가 끝난 것으로 생각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잊어버린 채 이 날을 보내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이 침묵의 순간부터 하루 온 종일 시간시간마다

빛과 기쁨 그리고 권능이 제 안에서 흘러 나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생각을 정결케 하시고,

말에서와 절제와 진실을,

일에서와 충성과 성실함을 다하게 하소서.

저 자신을 평가할 때는 늘 겸허함으로,

이웃을 대할 때는 존경과 너그러움으로 대하게 하시고,

과거에 관한 모든 신성한 기억들을 잘 간직하게 하시며,

당신의 자녀들 제 영원한 운명에 마음을 기울이게 하소서.

많은 세대 동안 제 선조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신 오 하나님,

오늘도 곤란할 때가 되면 언제든 또 어떤 환경에서든

저의 피난처가 되어 주옵소서.

캄캄한 의심의 터널을 지날 때 저를 인도하시고,

제 영혼의 평강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서 저를 지켜 주옵소서.

시험 받을 때에 저를 능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평화로 제 마음이 늘 기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존 베일리의 기도문이다. 성서유니온 판을 보고 있는데... 아.. 원문과 비교해 보니 운율의 거의 사라졌네요... 에구.. 박대영 목사님. 우짭니까. 

















선한용 번역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 오늘 나의 첫 생각을 기리게 하시고, 나의 첫 감성은 당신을 예배하게 하시며, 나의 첫 발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나의 첫 행동은 당신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하소서.


이제 당신의 완전하신 지혜와 완전하신 선하심에대하여,

인류를 향한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나에게 허락하신 위대하고도 신비로운 내 생의 기회에 대하여,

나의 마음에 임재하시는 당신의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오 주님, 당신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선한용 목사님은 더하네요... 너무 딱딱해요. 그리고 '영원하신'이 빠져 있어요... 심각한데요... 우짜죠?


Eternal Father of my soul, 는 '영원하신 내 영혼의 아버이여!  또는 '내 영혼의 영원하신 아버지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은 번역으로 보인다.



let my first thought today be of Thee,

이 부분도 ... 나의 첫 생각이.. 당신이 되게하라.는 의미는 아니기에..  박대영 목사의 번역처럼 '오늘 저의 생각이 당신이게 하시고'가 더 원문에 가까우면서도 잘된 번역이다. 기도문은 직역보다는 의역을 해야 옳다.


오늘 저의 첫 생각이...

오늘 저의 첫 열망이...

오늘 저의 첫 행동이... 


이 부분은 박대영 목사가 잘 살려 냈다.




Eternal Father of my soul, 

let my first thought today be of Thee, 

let my first impulse be to worship Thee, 

let my first speech be Thy name, 

let my first action be to kneel before Thee in prayer.



일반 번역도 어렵지만.. 기도문도 결코 쉽지 않네요.. 하여튼 박대영 목사님의 번역이 더 잘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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