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을 읽고 있다. 이런 책을 무던히 읽을 수 있는 내 자신의 교양수준을 보며 감탄한다. 기실 이러한 감탄은 자기만족에 불과하지만 이런 소소한 만족이 무던한 삶을 운치있게 만들어 준다.

신입사원이라서 휴가를 3일 가게 됐다. 타인들은 6일이나 5일 이지만 난 3일이다. 그 3일동안 무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날짜를 내 마음대로 택할 수 없음을 알고 짧은 행복마저 사치라 여기며 고개를 떨군다. 연인이 없으니 휴가가 로맨틱할리 없고 친구가 적잖이 떨어져 나갔으니 풍성할 리도 없다. 또 책읽고 음악듣고 영화보며 소일하자니 언제까지 그따위로 살거냐는 마음속의 외침이 울린다. 아직 한달이 넘게 남았으니 그저 두고볼 일이다.

요즘 내게 부쩍 잘해주는 직속 선배를 보며 그의 살가움이 고맙고 정겹지만 한편으론 불안하다. 나의 모자람이 언젠가 그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까하는 부족한 자존감 탓일 테다. 그래도 여유 속에 믿음이 싹트고 스스로를 아낄 수 있는 힘이 자라나는 법이니 그 도타운 정 또한 내 것이라 여기며 다스워지련다. 오늘 서울의 바람은 따뜻했지만 거세기도 했다. 간만에 학교 뒷동산을 달려야겠다.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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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7-2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뵈요. 바밤바님. 저같은 아줌마는 어떻게 하면 혼자 있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휴가도 혼자만 보낼 수 있으면 진짜 휴가라고 좋아하는데..바밤바님은 저와는 정반대시네요.

바밤바 2010-07-27 16:47   좋아요 0 | URL
다들 자신이 가진 걸 평가절하하고 타인이 가진 걸 평가절상하곤 하죠.
덥네요. 마음의 휴가가 필요할 듯~ 씽씽!!ㅎ

무해한모리군 2010-07-2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궈요.
아 서경식.. 저도 이번 휴가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고향집에서 조카랑 엄마랑 보낼까해요.

바밤바 2010-07-27 16:48   좋아요 0 | URL
오.. 멋지다.
엄마랑 조카랑 계곡 살자~~ㅎ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잔실수가 많았던 근자였다. 나를 돌봄이 여의치 않으니 이래저래 핍진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요즘 살만하다 싶으니 지극히 삶의 본질과 연관된 질문이 마음을 할퀴고 계속 부스럼을 낸다. 지친 마음을 달래러 간만에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모차르트가 작곡한 27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24번과 함께 단조곡이다.

장조는 밝고 단조는 우울하다 하나 기실 아름다움에 있어선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매우 아름다운 모차르트 교향곡 40번도 G단조의 조성을 띄고 있다. 기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40번 교향곡은 서두의 모티브가 인상적이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그 모티브는 모차르트가 왜 가장 위대하지는 않아도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인지 말해준다.

주피터라고도 불리는 41번 교향곡을 위대하다고 꼽는 사람이 많으나 풍부한 관현악 외에 41번에서 딱히 떠오르는 멜로디가 없다. 모차르트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연구하여 정점에 이른 대위법 실력을 41번에서 뽐냈다고 하나 말 그대로 울림이 좋은 것이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다시 귓가에 울리는 음악에 집중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굴다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의 협연으로 듣는다. 몇 년 전 타계한 굴다를 일컬어 매우 순수한 영혼을 가진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 그가 들려주는 음악만으로는 그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곡을 상당히 화사하게 연주하고 있다. 풍성한 느낌이다. 모차르트 시대엔 지금처럼 교향악단이 대규모가 아니었을 테니 피아노 연주 부분만이 오롯이 모차르트의 느낌을 담아낸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굴다는 20번을 작곡할 당시 모차르트에게서 밝음을 느꼈나 보다. 교향악단의 반주도 좋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선 괴짜로 그려진 모차르트지만 기실 평범한 사람이었고 음악에 있어서만 말 그대로 천재였을 테다. 그의 삶을 추적한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꽤나 보아온 바 생활인 모차르트와 음악인 모차르트는 거의 분리된 다른 자아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포개짐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음악인 모차르트는 신격화해도 좋을만큼 비범하고 생활인 모차르트는 눈에 띄지 않을만큼 범상하다. 지금 이 곡을 들으면서도 다시금 느낀다.

간만에 모차르트를 듣는 건 오늘 회사 선배와의 대화 때문이다. 선배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30번이 나오는 영화 제목이 생각 안 난다며 스스로를 채근하였고 나는 혹 엘비라 마디간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어린 니가 그 영화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나는 고등학생 시절 그 영화를 봤다고 답했다. 가난한 삶은 아름답지만 행복하기 어렵다는 인생의 씁쓸함을 가르쳐 준 영화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 곡은 30번이 아니라 21번이고 모차르트의 피협은 27개 밖에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21번이 듣고 싶었고 굴다의 앨범에 커플링된 20번을 듣고 차후 울릴 21번을 기다리고 있다.

아르농쿠르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41번 연주더 불현듯 듣고 싶다. 자취방에는 칼뵘의 연주밖에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없음이 사뭇 안타깝다. 오늘 밤하늘엔 모차르트가 들려주는 추억하나와 몇 곡의 음악이 가득하다. 창밖에 비가 오기에 꽤나 운치 있고 적적한 것이 조금은 나른하다. 굴드는 모차르트가 너무 오래 살았다 타박했다는데 나는 그의 6분지 5만큼의 삶을 살아왔는데 이리도 남긴 것이 없다. 시저도 알랙산더 대왕의 동상 앞에서 제 자신의 느린 성취와 미욱함을 탓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도 어떤 조급함을 느꼈을라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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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니면 어제는 뭔가 간결하면서도 그 자체로 순수한 어떤 삶을 바라보셨나 봅니다. 하늘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물이 그런 느낌에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바밤바님 :D

바밤바 2010-07-17 11:5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빗방울이 참 우직하네요. 하늘만 곱다시 바라보다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찬 제헌절 되세요. ^^
 

 

잗다란 일상과 대거리하다 보면 삶이 그리도 비루해 보이더라. 밥먹고 가란 사람도 없고 맘 맞기는커녕 말 맞는 사람 찾기도 어려운 시절에 사람 사이에 나는 혼자더라. 그 외로됨이 종종 원망스러워 나를 삭이고 마음을 눅이곤 했지만 마음은 정녕 내 것이 아니더라.

간만에 넋두리를 했다. 주말엔 정독 도서관을 갔다. 대출증을 만들고 책을 빌렸다. 음악에 관한 책 2권과 미술에 관한 책 2권이다. 둘 다 쉽고 어렵지 않게 와 닿는 지라 하루를 빌리면 책을 다 읽을 줄 알았다. 허나 일상에 찌든 몸은 책보단 좀 더 자극적인 유혹-예를 들면 온라인 게임이나 친구들과의 담화-을 찾아 헤메이는 바, 책은 쉬이 넘겨지지가 않더란 말이다.

친구와 서울 성곽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점점 무식해지는 자신이 부끄러워 말도 다 부질없어지는 걸 느끼며 그냥 어제 하루는 그렇게 간 것이외다. 세월의 무게가 더께로 느껴지는 요즘인바-지인들은 내 시간은 그들 보다 2배는 빨리 가는 것 같다며 조로(早老)한 친구를 못내 가엽게 여기곤 한다- 더더욱 책을 읽어야 하건만.

책은 보지 않고 ‘뜨거운 형제들’을 보고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바. 마음에 가물이 들었는데 물을 끌어올 생각은 않고 시절을 그냥 곱씹고 있는 바. 이젠 좀 마음 한 곳을 헛헛하게 한 후 옴팡지게 살아야 되지 않것서라.

좀 있으면 퇴근인데 말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마냥 여전히 신기한 게 많은 사회생활이지만 내 시간은 ‘고꼬로’ 가는 듯하다. 뿔뿔이 흩어진 내 회사 동료들은 잘 있으려나 모르겠다. 클래식 들으며 음풍농월(吟風弄月) 하던 시절도 아스라이 바스라진다. 그래서, 지금 들으러 갑니다.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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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회사일 때문에 신라호텔에 있었다. 오전 일을 끝내고 밥을 먹기 위해 어느 돌계단을 선배와 거닐었다. 길은 새로웠고 주위는 색달랐다. 아침엔 보지 못했던 길이었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이 미로에 갇힌 것 같은 묘한 재미도 줬다.

밥을 먹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아까 그리도 신기했던 길이 신라호텔로 향하던 내 발길이 닿았던 아침의 그 길이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올라갈 때의 길과 내려갈 때의 길이 그리도 달라보였던 것이다.

다들 삶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다. 그 말에 첨언하자면 삶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것 같다. 내려다보며 걷다 보니 나무도 보이고 계단 아래 펼쳐진 사람도 보였다. 올려다보며 걷다 보니 내 발만 보이고 땀만 자욱했다. 아니, 올라가는 길에도 나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걸음을 내려다보고 피곤에 가득할 그 날 하루를 무거운 듯이 내려다 봤다.

내게 두 가지 모습을 보여 준 돌계단은 호텔을 나서는 늦은 오후에도 그대로였다. 계단은 그렇게 조용히 머물렀고 나는 이른 퇴근을 기뻐하며 주위를 살피지 않은 채 발걸음만 주시했다. 다름을 살피는 여유는 마음이 차분할 때에야 생기는 휴식같은 것인가. 그냥 길치라서 내가 걸어 온 길을 살피지 못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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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고 사람 돌보지 않고 여유 없다고 블로그 안했더니 

마음은 편한데 머리는 비는 듯하다. 예전처럼 칭얼대지 않고 마음이 밝으니 

글이 덜 맛깔나겠지만은  

그런 글도 다 제 몫이 있는 법이니 겸허히 사랑해야겠다.  

오늘부터 다시 글 써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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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7-0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은 잘하지요?
몸은 불지 않았는지?(저는 일을 처음 시작하고 10킬로나 쪘었답니다 ㅎㅎㅎ)
건강조심토록해요.

바밤바 2010-07-08 15:24   좋아요 0 | URL
몸은 약간 불엇어요. ㅎ
나날이 핍진해 지는 듯 하여 무리해서라도 운동하려 합니다.
보고싶네요. 모리님. ㅎ

비로그인 2010-07-0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다시 오셨군욥. 저도 휘님처럼 먼저 건강 조심하시라고 말씀 드리고요.
앞으로도 자주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바밤바 2010-07-08 15:25   좋아요 0 | URL
네. 어제 피곤해서 일찍 잤더니 책 한권을 못봤네요.
이번주 주말엔 책도 읽고 공부좀 하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