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꿈은 소박했다. 극장 배우와 결혼하는 것.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슬픔은 컸다. 자살을 기도하며 약을 먹었다. 그리고선 잠이 들었다. 죽음과 맞닿은 꿈은 환상적이었다. 깨고 싶지 않은 몽환이었다. 눈을 떴다. 자살 실패였다. 그래도 꿈은 생생했다. 악상이 샘솟았다. 악보에 꿈을 그렸다. 5악장으로 이뤄진 교향곡이 만들어졌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를 칭송했다. 몇몇은 지나치게 열광했다. 유명한 교향곡 작곡가가 없는 프랑스에서 제일가는 음악가가 되었다. 배우인 그녀와 결혼도 했다. 최초의 표제음악이라 불리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탄생 비화다.
죽음을 꿈꾸다 낙원에 닿았다. 명성도 부도 넘쳤다. 관현악을 잘 다루는 천재란 찬사가 잇달았다. 하지만 그만의 베아트리체와 속살이 닿자 심장이 식어 버렸다. 둘은 헤어졌다. 그의 작품 또한 점점 범작에 가까워진다. 환상 교향곡의 명성으로 근근이 버티는 정도였다. 타나토스(죽음의 충동)에 의지했던 전도유망한 작곡가의 명성은 시나브로 옅어져 간다. 환상 교향곡을 제외하곤 괴테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파우스트의 겁벌’ 정도만이 후세에 회자된다. 결국 그는 표제음악의 창시자로만 이름을 남긴다. 모든 게 한바탕 꿈같다.
그들의 꿈도 나름 소박하다. 경제적 안정을 얻는 것. 하지만 세상은 쉬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픔은 컸다. 방황하기 시작한다. 몇몇은 자살을 꿈꾼다. 하지만 두터운 현실은 자살마저 용납지 않는다. 소수를 제외하곤 모두가 패잔병이다. 다들 환상을 꿈꾼다. 죽음의 충동을 이기기 위한 현실 도피다. 그리고선 그들 각자의 환상 교향곡을 연주한다. 지휘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세기말적 불안이 가득한 뭉크의 그림처럼 핍진한 얼굴이 거리에 가득하다. 반전은 없다. 거친 삶의 무한 반복이다.
환상 교향곡만으론 세상을 표현하기 버겁다. 점점 레퀴엠(진혼곡)에 자리를 내줘야 할 지 모른다. 모두가 낙원에 닿을 순 없다. 혹 낙원의 속살에 다다른다 해도 쉬이 질려버릴지 모른다. 거친 불꽃은 쉬이 사위어드는 법이기에 그렇다. 타나토스가 아닌 에로스가 답이다. 긍정의 힘 말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같은 희망의 선율이 필요하다. 설렘을 주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도 좋다. 현실 도피의 환상 교향곡이 아닌 현실을 수긍하고 연대하는 합창 교향곡을 부를 때다.
모든 게 한바탕 꿈이었으면 할 정도로 힘든 청춘도 있을 테다.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에 독설을 내 뱉는 젊음도 있을 것이다. 비루한 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제 깜냥에 맞춰 꿈을 낮추거나 실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말하지 않았나. ‘위대함이란 다른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익숙한 길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질식할 만큼 세상이 팍팍하진 않다. 전체 5악장 중 이제 2악장 전개부에 다다른 젊음이다. 남은 악장이 어떠한 선율을 만들어낼 지 아직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