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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사의 백조를 추는 Irma Nioradze

 

 

▒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

발레 [빈사의 백조]의 배경 음악은 생상이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부분이다. 생상은 51세 때 오스트리아의 한 소도시에서 열리는 사육제 마지막 날의 음악회를 위해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했다. 생상은 이 곡에서 재미있는 악기 편성으로 당나귀, 닭, 캥거루, 백조, 뻐꾸기 등 여러가지 동물의 특징을 매우 풍자적으로 그리고있다.

포킨은 당시 발레 뤼스의 스타였던 안나 파블로바(아래 페이퍼)를 위해 ‘동물의 사육제’ 여러 곡 중 첼로 독주로 만들어진 ‘백조’를 선택한다.
부상당한 백조가 어떻게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날아보지만 결국 기진맥진하여 죽어가는(빈사의) 처절한 노력은 파블로바의 손끝의 떨림과 떨어뜨려진 목선, 날개짓 치는 팔의 곡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속에 2분짜리 발레 걸작을 탄생시켰다.

파블로바가 춤춘 [빈사의 백조]는 초연된 바로 그날(1907년. 12. 22)부터 발레사의 전설이 되었다.


 

▒ 줄거리

이 작품은 미하일 포킨의 안무로 1707년 12월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 초연됐다.일반적으로 ‘빈사의 백조’ 하면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를 떠올리곤 한다.이는 당시 안무가였던 포킨이 ‘동물의 사육제’ 가운데 ‘백조’의 테마곡을 만돌린으로 연주하는 것을 듣다가 영감을 얻어,무용수 안나 파블로바를 위해 작품을 안무했다는 일화 때문이다.


생상스는 원래 ‘동물의 사육제’를 소품으로 14곡을 작곡했는데 당시 첼로 독주곡인 ‘백조’만이 무용곡으로 유명해졌고,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그러나 후에 안무가들에 의해 전곡이 안무되어 ‘동물의 사육제’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는데,페스티벌이나 야외 공연 등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무대에서 동물들의 움직임과 해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빈사의 백조’가 지니고 있는 스토리는 무척 간단하다.죽음에 이른 백조가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쓸쓸히 죽어간다는 내용이 2분간의 춤을 통해 처절하게 표현된다.특히 놀라운 사실은 포킨이 이 작품에서 사용한 스텝은 마루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부레(bourre 파 드 부레)뿐이라는 점이다.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백조의 움직임은 죽음의 포로가 되어 이제는 더 이상 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을 완벽하게 표현해야 한다.


무용수는 팔과 발의 동작을 통해 각각 작품의 멜로디와 반주를 표현한다.다 죽어가는 백조가 생명에 대해 보이는 원초적 본능은 손과 팔을 통한 날개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그래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발레리나에게는 테크닉은 물론 연기력 역시 최고 수준의 기대치가 요구된다.


한때 파블로바에게서 넘쳐나는 생생한 연기력은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려,그녀를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마르코바,울라노바,크라소프스카야,마카르바 등이 이에 도전했다.파블로바의 백조가 ‘애절함’ 을 표현했다면,울라노바는 ‘품위 있는’ 백조를,프리체스카야는 ‘생명력 있는’ 백조를 보여주는 등 저마다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빈사의 백조’를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이다.


또한 발레리나 의상인 튜튜도 차이를 보인다.파블로바는 하얀 깃털을 붙이고 가슴에는 피로 물든 듯 보이는 진홍빛 루비를 장식하여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이에 반해 이후의 무용수들은 보다 심플한 백색 의상을 선호했다.
여성 프리마 발레리나 솔로 춤인 이 작품은 무덥고 지루한 한여름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야외공연 무대에 어울린다.한 마리의 백조가 물 위를 나는 것처럼 보일 때 느껴지는 시원한 청량감으로,무더운 여름을 시원스럽게 보낼 수 있는 훌륭한 동반자와 같은 작품이다.

 

 

 



 

영화 <안나 파블로바>의 한 장면

영화속에서 파블로바는 생상스의 '백조'에 맞추어
'빈사의 백조'를 추고 있었다.
 
피아노로 '백조'를 연주하는 사람.
 
파블로바는 그에게 말한다.
'저기요. 여기선 한박자 쉬어야 한다구요.
당신 대체 누구죠?
연주도 제대로 못하고...'
 
그는 대답한다.
'네 저는 생상입니다.'
 
 
 
 

빈사의 백조를 추는 안나 파블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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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9-16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만화 SWAN에서의 빈사의 백조가 생각이 났어요.. ^^

soyo12 2004-09-17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하죠? 생각해보면 전 백조공연을 본 적이 없어요.
지난 번에 본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가 처음이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빈사의 백조도 한번도 본 적도 거의 들어본 적도 없는데,
왠지 아는 공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어렸을 때 읽었던 그 많은 일본 만화들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차성진씨인가요? 그분이 그리던 스포츠 만화에서는 스케이트 선수나 체조 선수들은 꼭
빈사의 백조를 했었는데. ^.~

호랑녀 2004-09-17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치아 라카라 있잖아요, 그녀가 추는 빈사의 백조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언젠가... 누군줄도 모르고 그냥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빈사의 백조를 봤는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끝나고 보니 제가 울고 있었죠... 누구였을까...

panda78 2004-09-1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누구였을까요, 궁금합니다. 전 니나 어쩌구저쩌구(죄송..)양의 짧은 동영상만 봤는데도 숨이 헉- 하던데.. 다 보면 정말 울 지도 모르겠군요. 더욱 기대됩니다만, 과연 언제 볼 수 있을런지... 흠..

맞아요, 소요님! ^^ 차성진 씨 체조만화중에 디게 좋아하는 거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 나네요.;;;

실론티님, 저 SWAN 다시 보려구요. 흐흐
 


 

 

 

어렸을 때 읽은 지경사 문고 <꿈꾸는 발레리나>가 발레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네요. 만화가 김숙씨가 그린 삽화도 참 예뻤는데..
안나 파블로바 이야기였구요. 그 얇은 책 한권으로 미하엘 포킨이며, 니진스키며, 디아길레프 등의 이름에 익숙해지게 되었지요.

실제로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지 궁금했는데 (안나 파블로바의 빈사의 백조를 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  사진을 보니..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정말 멋진 모습이네요.  오랜 궁금증이 풀려서 시원-합니다.  

 


 

 

 

 

 

파블로바와 니진스키

 

 


왼쪽 사진 : 니진스키와 파블로바

 

 

 
안나 파블로바 Anna Pavlova

 

무대 위에서 우아한 "빈사의 백조"를 춤추는 위대한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1881.1.3-1931.1.23)!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따뜻한 피가 통하는 활기찬 여자였다.  안나 파블로바처럼 포카를 못하는 사람은 이미 없을 것이다.  좋은 카드가 오면 콧노래를 부르거나 쓸데없이 유쾌한 말을 지껄이든지 아니면 애써 시치미를 떼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때문에 상대는 금방 눈치 차리게 되고, 반대로 나쁜 카드가 오면 마치 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안나 파블로바라고 하면 발레계의 제1인자로 전설적인 명성을 지닌 여성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아직도 발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나 발레에 전혀 흥미없는 사람들 에게 까지도 알려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파블로바는 실제 살아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찬란히 빛나는 영원한 우상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활기있고 따뜻한 마음의 여성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의 비오는 필름으로 밖에 파블로바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아주 먼 과거의 존재로만 보일 것이 당연하다.  그 멋지고 차가울 정도로 아름다운-깊은 조각의 얼굴.  그리고 슬픔을 머금은 크고 검은 눈동자.

 

 실제 무대 위의 그녀는 너무도 섬세하여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환상적이며 이 땅 위의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그 "빈사의 백조".  어느 때는 꿈속의 사람같은 여인.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왕.  새 하얗게 화장하고 검은 머리를 꽉 졸라맨 순백의 발레 의상을 입은 그녀는 틀림없는 환상의 세계에서 온 천사 그것이었다.  말하자면 발레 팬들이 알고 있는 파블로바는 이런 존재였다.  그러나 57년 이란 긴 세월동안 대 예술가들의 매니저를 해온 나로서는 지난날은 물론, 앞으로는 그녀와 같이 발랄한 생명력을 지닌 사람과 만난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녀와 처음 만날 때의 일은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때 나는 이미 흥행사로서 꽤 알려져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나는 안나 파블로바에게 반해 버려 뉴욕의 히포드롬 극장으로 매일 밤 관객의 제일 뒤쪽에 서서 그녀의 모습에 심취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 친구가 나를 무대 뒤에서 그녀를 만나게 해주기로 되어 나는 첫 대면하는 그녀에게 영어와 러시아의 인사말을 할 양으로 연습하고 갔었는데 분장실에 첫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 인사말이 잊혀져 마치 벙어리처럼 돼 버려 그녀가 내미는 손등에 키스하는 것이 겨우 였다.  그리고 저녁식사에 초대되었을 때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꿈까지 꾼 나의 우상을 현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발레의 여신 안나 파블로바는 대체 어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까? 나는 호화롭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요리를 우아하게 맛보는 그녀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한 레스토랑은 뉴저지주에 있는 파리에이즈 유원지 속의 야외 카페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거기서 5센트짜리 스테이크와 프릿트(감자를 잘 게 썰어 기름에 튀긴 것),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겨우 내 앞의 요리에 손을 댈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는 의자를 뒤로 밀치면서 장난끼 있게 웃으며 '자! 좀 보시지 않겠어요?'했다.  파블로바의 '놀음'이란 유원지 내의 오락시설을 돌면서 걷는 것이었다.  요철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깔깔대고 로라코스타에서는 꽥 소리를 지르고 마지막 댄스홀에서는 나를 끌어 당겼다.  그는 포크.트로트를 멋지게 췄었다.

 

 이것은 미국의 극작가 J.반 드루덴으로 하여금 '그림자처럼 보리밭을 지나가는 미풍' 이라고 까지 감탄케 하였던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의 화장기 없는 얼굴-. 반 드루덴이 물에서 헤엄치는 파블로바를 몰랐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을 것이다.  파블로바는 수영을 좋아했으나 물 속에선 놀랍게도 서툴렀다.  손발로 물장구를 칠 뿐 몸은 뜨지 않고 밸런스를 잡지 못했다.  더욱 심한 것은 다이빙을 할 때의 모습이다.  무대 위에서는 찬란한 빛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워 마치 공기처럼 가볍게 보이는 그녀가 다이빙 할 때면 큰 대자로 물 위에 부딪쳤다. 따라서 나는 그때마다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안나 파블로바는 애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애기를 좋아해 애기를 보면 쓰다듬고 안아주고 하였다.  이것은 그녀가 러시아에서 피난 온 30명 가까운 아이들을 위하여 파리에 집을 가진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또 발레단의 젊은 처녀들을 병아리를 품는 어미 닭처럼 애정을 붓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인 양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한 축제날이나 생일에는 틀림없이 좋은 선물을 하곤 하였다.  1923년에는 모국 러시아에 큰 기근이 생겼을 때 구제물품을 보내기도.  볼쇼이 극장이나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들이 파블로바 한테서 온 구제물품을 받으려고 한 줄로 서던 광경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파블로바가 태어난 고향 러시아를 떠난 것은 혁명 전 1913년의 일이다.  지금의 소련에서도 그녀의 명성은 모두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블로바가 그 재능을 바쳐 최대한 공헌을 한 것은 러시아 이외의 나라들, 특히 미국에서였다.  파블로바의 무엇보다도 큰 공적은 이런 나라들의 발레 예술을 대중들에게 소개한 일이다.

 

 

 어떤 때에는 9개월도 안되는 기간에 2백38회나 되는 공연을 하여 미국의 77개 크고 작은 고장을 찾아다니며 공연했다.  그는 무대생활을 통하여 총 80만킬로미터를 여행했으며 세계 각지의 관객에게 사랑을 받았다.(주:1923년 동아일보에 '파블로바 부인'으로 소개 되었음)-그것도 지금처럼 비행기편이 없었던 때의 일이다.

 

 내가 파블로바의 매니저를 한 긴 세월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약속한 공연을 취소한 적이 없었다.  미시시피주의 잭슨에서는 오히려 내 쪽에서 공연을 그만 둘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공연하기로 되어 있는 극증에 가보니 낡은 차고였으며 무대도 없는 그저 형편없는 연단 뿐이었다.  물론 분장실 같은 것도 있을 리 없고, 쥐가 들끓는 지하실에는 커튼이 두 석장 걸려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녀는 불평 하나 없이 '여러분께 나의 춤을 보이고 싶어 왔습니다 -' 라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극장 지붕에 큰 구멍이 나 있어서 비가 샜기 때문에 출연자들의 의상이나 배경들이 젖어 버렸으나 파블로바는 그 빗물 속에서 피루엣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이면 이런 말을 하였다.

 

 '멋있어....조명 같은 것은 필요없어....번개불이 극장 속까지 비쳐주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파블로바도 인간, 성녀는 아니었다.  참다 못해 메니저인 나에게 발레슈즈를 던진 일도 있었으며, 러시아 말로 독설을 퍼붓는 일도 있었다.  그녀는 러시아어는 물론, 폴란드어, 프랑스어, 영어 등으로 마음대로 욕할 수 있었다.  자기가 자기자신에 대하여 또는 분을 참을 수 없을 때에는 몇 번이고 십자를 긋고는 러시아말로 '쌍것들!'이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단원들에게 욕할 때의 그녀 모습이 지금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들 가만이만 있지 말고, 뭐라고 대답을 해요...'라고 소리를 지르던 그녀.   그리고 때로는 아주 잔소리꾼이 되기도 하였다.  워싱턴에서 공연할 때의 일이다.

 

 공연 첫날 '사소한 잘못'으로 무대 연습과 레슨 시간을 스케줄에 넣지 않았다.  그날 밤, 개막 10분전이 되어 전원을 무대에 한 줄로 세운 파블로바는 일부러 침착한 표정을 짓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지고 캐묻는 것이었다.  '오늘 연습을 하였습니까?' 한 사람도 남김없이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그녀는 '좋아요! 알았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나는 발레리나이다.  너희들도 발레리나이다.  너희들이 아무 것도 안할 때 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부터 레슨을 시작한다-'고 말하고는 막 오르기를 기다리는 관객을 생각지 않은 듯 단원들을 연습시켜서 개막 시간 30분이나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나 파블로바는 1881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미망인이된 어머니와 생활은 말이 아니게 가난했다.  모녀 두 사람은 검은 빵과 양배추 스프만으로 하루를 지내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파블로바가 열살되는 때 '제실 발레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아 학교에서 주는 간유로 야위었던 몸이 제 못습을 찾게 되었다.

 

 마침 호아제 알렉산더 3세와 그의 황후가 이 발레 학교를 방문, 학생들과 같이 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러한 차마시는 자리에서 어느날 황제는 한 소녀를 그의 무릎에 앉혔다.  그러니까 이것을 본 작은 소녀 안나 파블로바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깜짝 놀란 황제는 왠일이냐고 안나에게 묻자 안나는 흐느끼면서 대답하였다.

 

 '나도 황제의 무릎에 앉고 싶어요...'라고.  할 수 없이 곁에 있던 블라디미르 대공이 안나를 안았다. 그러나 안나는 대신 안킨 것이 싫다고 더 크게 울부짖었다.

 

 

 안나 파블로바에게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발레는 그녀 자신이 안무한 "마른 잎 새"였다.  작품을 무대에서 춤춘 때에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무대 뒤로 들어오던 일이 생각난다.  이 발레는 그 옛날 그녀가 러시아에 있을 때 사귄 한 청년에게 바친 춤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청년은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마른 잎 새"는 이 젊은이를 사랑했던 파블로바의 추도의 춤이었다.

 

 '사랑을 모르고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어요. 사랑의 비림을 알지 못하면 안돼요.  그러면서 그것이 없어도 살아가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돼요.'  그녀는 이런 말을 나에게 한 일이 있었다.

 

 파블로바는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겨 사람들을 자주 초대하였다.  런던 교외에 있는 그녀의 화려한 저택에는 버나드 쇼나 샬리아핀(러시아의 바리톤 성악가) 등 명사가 종종 나타나곤 하였다.  파티할 때면 아주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는 그런 여성이었다.  파블로바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불경기 때는 보수를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녀는 '나는 돈이 필요없어요.  당신이 괜찮으시면 우리 단원들에게는 주십시오'라고 자기의 보수는 사양하였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으로 공연갈 때 배 위에서 단원들은 모두가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하게 된 것에 쓸쓸한 감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눈치 챈 파블로바는 모두를 놀라게 할 계획을 몰래 세웠다.  배가 적도를 통과하자 그녀는 단원 전부를 자기 선실에 초대하였다.  거기에는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던 것이 아닌가.  이미 배에 오를 때 선창에 감춰놨던 나무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한 사람씩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공연 때의 일. 파블로바는 막이 내리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크게 화가나 있었다.  그래서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하면서 무대 뒤로 퇴장을 해 버렸다.  마침 그때 분장실 입구에 한 여인이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서있었다. 그 소녀는 파블로바에게 왜 무대로 나타나지 않느냐고 묻고, 답을 듣더니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백조의 춤을 보여준다고 내게 약속했는데....'하면서.    

 

 사실 어머니는 딸의 생일 축하고 파블로바 공연 티켓을 사주었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자 파블로바는 그 소녀에게 키스를 하면서 무대로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10분 후 파블로바는 그 소녀를 위해 백조를 춤추었다.  바로 이 백조야 말로 사람들이 아직까지 안나 파블로바라고 하면 금방 연상하는 "빈사의 백조"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음의 고통을 표현하는 빈사의 백조는 그녀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그녀의 태크닉이라기 보다 죽어가는 백조의 마음으로부터의 연민의 정이 그녀의 춤에 스며 나오기 때문일까.

 

 파블로바가 죽은 후 런던에서 행해진 추도공연에는 콘스탄트 람바드가 "빈사의 백조"를 지휘하였다.

 

 오케스트라의 첫 멜로디와 더불어 막이 오르면 무대는 캄캄하게 어두운 채 아무 장식이 없고 등장 인물도 없다.  그리고 한줄기 스포트 라이트가 지금은 가고 없는 발레리나를 뒤쫗아 좌로 우로 비쳤다.  그리고 관객은 오케스트라가 벌써 영원히 파블로바와는 끊을 수 없는 생상의 그 곡을 마칠 때까지 일어선 채 침묵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최후의 파블로바를 만난 것은 1930년 가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런던에서 공연 중인 파블로바한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사잔 푸톤에서 승선해 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 날은 기분 나쁘게 흐린 날이었는데  파블로바는 내가 타는 배로 와서 선실을 점검하고 침대가 편안한가까지를 돌아보고는 사무장에게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마치 자식을 대하듯이 음식물 주의며 매일 체조를 잊지 말라고, 그리고 잠을 잘 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감기 걸리면 안되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녀에게 빨리 배에서 내리라고 권했으나 그녀는 '괜찮아요'라고 목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 될지도 모르는데 -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 되어 버렸다.

 

 3개월 후 파블로바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그 생애를 마쳤다.  폐렴에 걸렸던 것이다.  그 날 미명 3시에 그녀는 높은 열 때문에 눈을 뜨고 하인을 불러 '백조의 의상을 트렁크에게 꺼내 달라고 말하고 매니저인 나에게 병이 모두 나았으니 내일부터 무대연습이 된다고 전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 시간후 그녀는 숨졌다.  49세였다.  파블로바가 죽은 다음 해 봄, 나는 런던에 갔었다.  유럽을 여행하고 파블로바를 만나지 않은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다스 그린의 화장터로 간 나는 거기에 일하는 사람에게 파블로바가 묻힌 묘가 어디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동쪽 벽의 3/7/11호'라는 답이었다.

 

  그 묘는 이 세상에 있어서의 안나 파블로바의 전부였다.  나는 작은 오랑캐 꽃다발을 놓았다.  

 

그녀가 생전에 사랑했던 꽃이었다.

 

 

솔 휴록(Sol Huro)
 
(리더스 다이제스트)



 

 

 

 


 

빈사의 백조를 추는 안나 파블로바


 

 



 

 

 




사진은 여기저기서 짜집기해서 퍼 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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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9-16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정말 백조의 호수를 다룬 만화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입니다..ㅎㅎ

panda78 2004-09-1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ㅂ^ 멋지죠, 물장구님--- 흐흐
결국.. 올해도 발레 한 번 못보고 지나가기에.. 이런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답니다. ^^;;

비로그인 2004-09-1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발레를 좋아하시나요? 왜요? (기냥 궁금해서요 ^^)

panda78 2004-09-1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서요.... ^^ 발끝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출처 : http://blog.naver.com/vivij.do

 

1. 백조의 호수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별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완]의 처음을 시작하는 발레로 나온다..

주인공 '히지리 마스미'가 '알렉세이 세르게예프'와 '쿠사카베 히쇼', '쿄고쿠 사요코'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총 4막으로 구성된 이 발레에서 3막 흑조의 32회전이 가장 유명하다.

후에 마스미가 볼쇼이 발레단의 주역후보전에서 라리사, 리리아나와 겨루게 되는 발레도,
국제 콩쿨대회에서 1차과제, 솔로 과제 모두가 바로 이 백조의 호수(특히 3막 흑조)였다.

제목부터 시작하여 만화 내내 제일 많이 나오며 제일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발레가 [백조의 호수]이다.
모든 발레리나의 꿈은 '백조'이기 때문이다...

2. 레이몬다(라이몬다)

마스미가 알렉세이의 추천으로 나간 콩쿨에서 '야나기사와 아오이'와 함께 1차 과제로 춘 춤이다..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한 3막 발레.

줄거리는 매우 간략하다. 숙모인 백작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귀족 아가씨 라이몬다는

기사(騎士) 브리엔과 약혼한 사이이지만, 브리엔은 십자군에 참가하여 싸움터에 나가고 없다.

그런데 그녀의 약혼자가 없는 틈을 타서 사라센 영주(領主)가 온갖 수단을 써서

그녀를 유혹하다가 끝내는 유괴하려 한다. 라이몬다는 끝까지 정조를 지키며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약혼자 브리엔이 개선하여 사라센 영주를 응징한다.

1막과 2막은 라이몬다의 기다림과 두려움, 마지막 3막은 라이몬다와 브리엔의 결혼 축제이다.

 

3. 신데렐라

생각보다 많은 동화들이 발레화된 것을 이 만화를 통해서 알았다..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마스미가 2차예선에서 사요코와 같이 춘 춤으로 여기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마스미는 콩쿨에서 떨어지게 된다.

F.애슈턴이 안무한 영국 최초의 창작 장편 발레(3막 7장).

17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를 대본으로 한 여러 발레가 공연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1939년부터《신데렐라》의 안무를 생각하고 있던 애슈턴은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입수하자 1948년 페로의 동화를 번안하여 발레를 완성하였다.

이복언니들한테 구박을 받던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를 충실히 다루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화려한 마차를 타고

궁에 도착하자 그녀를 본 왕자가 사랑에 빠진다. 뒤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의 주인이 밝혀져

그녀가 왕자와 결혼한다.

 


4.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콩쿨에 실패한 마스미는 알렉세이의 전폭적인,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추천을 받아 국립발레학교의 학생이 된다. 여기서 발레에 대한 기초가 없어 고생하던 마스미는 알렉세이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모스크바 특별 공연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역을 두고 선배이자 동경의 대상인 사요코와 겨루게 된다..

러시아 작곡가 P.I.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C.페로의 같은 이름의 작품을 후세볼로지스키가 각본을 쓰고 M.프치파가

구성대본과 안무를 맡아 18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의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프롤로그는 오로라공주의 탄생 명명식(命名式)이다. 요정들이 공주를 지킬 것을 맹세하는데,

명명식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 카라보스는 공주에게 마법을 건다. 제 1 막은 공주의

16세 탄생일 축하연이다. 각 나라에서 구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왕자 4명과 공주가

변형 로즈 아다지오를 춘다. 이 때 카라보스가 나타나 공주에게 물레가락을 건네자

그 바늘에 찔린 공주를 비롯한 모두가 백년 동안 잠들게 된다. 제 2 막은 백년 후의 장면이다.

사냥하러 온 왕자가 리라요정과 만나 숲속에 잠들어 있는 오로라 공주를 구해낸다. 제3막은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이다. 페로동화의 주인공들의 춤 등 여러 가지 춤이 이어진다.

이 작품은 불사성(不死性)에 대한 원망(願望)과 궁정발레시대의 결혼축하연의 흔적이

신선하게 나타나, 오늘날까지 여러 형태의 연출로 상연되고 있다


결국 오로라 역은 사요코에게 돌아가지만 모스크바 공연에서 사요코가 불의의 부상으로 볼쇼이 발레단의 주역후보에서 빠지게 되자 마스미가 대신 추천되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는 발레이다.

5. 꼽추망아지

볼쇼이 주역후보전을 치르기 전에 영국 로열 아카데미로 한달간 유학을 간 마스미는 유학생반에서 꼽추망아지역을 맡게 된다. 이전까지 그저 가르쳐준 안무대로 춤을 추던 마스미에게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여 내면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한 작품이다.

여기서 배운 점을 활용하여 볼쇼이 주역후보전에서 [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해석하여 라리사를 이기게 되지만 숨겨진 천재소녀 리리아나에겐 패하여 주역은 결국 리리아나에게 돌아간다.

엘쇼프가 쓴 러시아 민화를 발레화한 작품으로, 초연은 1864년 볼쇼이 극장에서이고

전 4막이었는데 현재 상연되는 것은 1960년 라든스키가 개작한 전 3막이다.

꼽추 망아지가 바보 이반을 도와 여러가지 일을 해결하는 발레이다.

(이 발레는 자세한 정보가 없다..--;;;)

 


6. 숲의 노래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마스미는 국립학교 창립작품으로 선택된 '숲의 노래'의 주인공 마프카 역을 두고 후배 카오루와 선발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스미는 카오루 어머니와 자신의 어머니가 예전의 경쟁관계였다는 사실과 짝사랑하는 히쇼의 사요코에 대한 연모의 정도 알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역 마프카로 결정된 마스미는 드디어 공식 데뷔를 하게 된다.


미하일 스콜리스키 작곡, 1946년 초연. 전 3막. 레이샤 우크라잉카의 희곡 '숲의 노래'를 발레화

한 것이다. 인간 청년 루카슈와 숲의 정령 마프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발레이다.

(역시 자세한 정보가 없다..)

 

7. 사랑의 전설

제 1회 도쿄 세계 발레 콩쿨대회에 참가한 마스미가 2차 과제로 춘 발레이다. 사랑을 위해 언니를 배신한 실링의 감정에 몰입하지 못해 고민하던 마스미는 히쇼에 대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춤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본선에 진출한다.

전 3막 8장. 1961년 키로프 극장 초연. 여왕 메프메네 바누는 자신의 미모를 희생하여,

목숨을 구해준 여동생 실링과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싸우게 된다. 화가 페르하드는

여동생 실링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왕의 분노를 사, 수로를 막고 있는 산을 깎아내리는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여왕의 분노도 사라지고 두 사람은

행복해지지만 페르하드는 실링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위해 혼자 개척에 평생을

바치려고 결심한다.

 

8. 레 실피드 (아래 아래 페이퍼의 사진 참조)

도쿄콩쿨대회 마지막 결선무대에서 마스미는 예전 볼쇼이 주역후보로 같이 겨루었던 리리아나와 춤을 추게 된다. 그 때 리리아나의 환상적이고 완벽한 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마스미는 다시 한번 리리아나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도망치고 싶어하지만 알렉세이의 뼈아픈 충고로 무대위에서 그토록 두려워하는 리리아나와 춤을 추게 된다.

극도의 공포와 긴장으로 무아지경에 이른 마스미의 춤은 마스미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춤의 세계로 들여놓는 계기가 되며 또한 같이 춤을 추었던 리리아나 역시 마스미를 인식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춤이다.

또한 마스미의 파트너가 될 '레온하르트 폰 클라이스트'를 만나, 그의 마음을 되돌리는 전기가 된다.

쇼팽의 음악에 M.포킨이 안무한 1막 발레. 일명 《바람의 정(精)》이라고도 한다.

1909년 6월 디아길레프 러시아발레단에 의해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레 실피드라는

타이틀은 유명한 로맨틱 발레의 《라 실피드》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이 발레의 무용수들이

마리아 타글리니오가 《라 실피드》에서 사용하여 유명해진 흰 롱스커트를 입었기 때문이다.

여성 무용수들은 작은 날개도 붙이고 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는 쇼팽의 짧은 피아노곡 몇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곡에 맞추어 앙상블·솔로·듀엣 등

여러 개로 나누어진 앙상블로 이루어진다. 무대는 대부분 달빛이 비치는 숲 속으로,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꿈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이 발레는 4명의 주역(남성 1·여성 3)이 무대 중앙 뒤에서 포즈를 잡고 이 4명을 기점으로

 앙상블이 아름답고 우아한 모양을 그린 구도로 시작되어 같은 구도로 끝맺는다.

디아길레프 러시아발레단의 파리 초연에서는 A.파블로바·T.칼사비나·M.바르지나·V. 니진스키가

주역을 맡았다.

[참고] 라 실피드

로맨틱 발레의 대표적 작품. 2막. 1832년 이탈리아의 무용가 F.타리오니의 안무

(음악 슈나이츠회퍼)로 그의 딸 마리 타리오니가 춘 것과 36년 A.부르논발 안무(음악 뢰벤스횰트)로

 L.그란이 춘 것이 있는데, 현재는 부르논빌판(版)의 상연 기회가 더 많다. 실

피드란 공기의 요정(妖精)을 말하는데, 샘이 많은 요정은 농부 제임스와 시골처녀 에피의 약혼을

원망하고 제임스를 유혹하여 약혼을 파기시켜 버린다. 제1막은 활기 넘친 농촌장면이며

제2막은 흰 의상으로 몸을 감싼 요정이 활동하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이와 같은 2막 구성은

《지젤》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마리우스 프티파 등이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많은 로맨틱 발레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1907년에는 미하엘 포킨이 《라 실피드》 제2막의 환상적인 발레 브랑 부분을

재구성하여서 《쇼피니아나(Shopiniana)》로 발표하였다. 1909년 《레 실피드(Les Sylphides)》

로 개제하여 S.P.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이 파리에서 초연하였다.

이 작품은 F.F.쇼팽 작곡의 프렐류드(prel-ude;전주곡)·왈츠·마주르카 등을 추는 것이다.

9. 발란신(바란신)의 '교향곡'

도쿄 콩쿨 대회에서 2위를 한 마스미는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지만 마음에 맞는 춤을 추었던 레온하르트를 따라 조지 발란신이 있는 미국 '스쿨 오브 아메리칸 발레'단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접한 마스미는 혼란을 겪게 되지만 레온하르트(이하 레온)와 같이 아름다운 교향곡을 추게 된다. 하지만 발란신은 마스미의 교향곡에 감탄은 하지만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며 마가렛과 레온에게 춤을 출 것을 요구하고, 레온은 마스미 외에는 춤을 출 생각이 없다며 거절한다.

결국 마스미는 교향곡을 추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발레 세계를 접하게 되며, 운명적인 사람 '루시'(남자입니다...--;;;)를 만나게 된다.

[발란쉰 George Balanchine 1904~1983]

금세기 최대의 안무가로 지목되는 조지 발란쉰은 생전에 '안무의 모차르트'란 소리를 들었다.

열여섯 살에 최초의 발레를 안무한 이래 79세의 고령으로 타계할 때까지 거의 60년 이상이나

끊임없이 생산한 그의 작품은 엄청난 양에 달하고 있지만, 에트루리아적 스타일로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타일을 발레에 차용한 그의 변화무쌍한 재능 속에 한결같이 내재해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그가 사용하는 음악의 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헌신이었다.

그는 1904년 1월 22일, 제정 러시사의 성 페테르스부르그에서 상당히 알려진 작곡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코카서스의 민요 수집 때문에 '그루지아의 글린카'라는 소리를

들은 인물이었다. 발란쉰의 이같은 음악적 배경은 후에 안무가로서의 그에게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1923년에 발란쉰은 탁월한 무대화가인 친구 디미트리예프와 함께 '젊은 발레의 밤'을 개최했다.

같은 나이 또래의 학생들로 구성된 15명의 댄서들이 구의회의 목조로 된 계단식 원형 홀에서

춤을 출 때 관객들은 의회 의원들 자리에 앉았고, 단원들은 반원형의 아래 쪽에서 움직였다.

거리의 포스터들은 이날 밤의 행사를 '시대의 정신에 따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예고했다 .

프로그램에는 ' 발레의 발전-쁘띠빠로부터 포킨느를 거쳐 발란쉰 바쯔까지'라고 되어 있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부제가 암시하듯이 발레의 역사는 쁘띠빠의 고전주의와 포킨느의

신낭만주의를 거쳐 발란쉰의 신고전주의로 이어졌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발란쉰의

'두 번째 젊은 발레의 저녁'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의 나이 20세때 디아길레프를 만나게 된다. 그는 러시아에서 발레의 역사, 전통 및 기본 윤리를

 배우는 한편 발레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고, 엄격한 훈련과 기율에 의해 발레 테크닉의 전반에

숙달하게 되었으며, 디아길레프와 함께 일한 4년 반이란 기간엔 그의 심미학적 윤곽이 구축됐고

가치판단의 기준이 섰으며, 경험과 취미가 완숙하게 되었다. 1929년 디아길레프가 죽고 발레

뒷스가 해체되었을 때 발란쉰은 안무가로서도, 발레 마스터로서도 굳건한 기반을 구축한 뒤였다.

그러나 확실한 기반없이 망명자처럼 떠도는 상태로 지냈다. 그러던 중 미국의 발레사가인

링컨 커스타인의 초청으로 미국을 향했다. 1924년에 친구 드리트리예프와 더불어 조국 러시아를

떠난 것과 같이 1933년, 이번에도 친구와 함께 미국을 향해 유럽을 떠난 것이다.

1934년에 커스타인과 함께 '스쿨 오브 아메리칸 발레'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러시아의

황실 발레와 다른 국립학교들의 아카데미와 유사한 수준에 육박하는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발란쉰은 디미트리예프 및 다른 동료들과 미국의 국민적 발레의 토착화를 위하여,

또한 그와 유사하고 철저한 훈련을 시작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었다.

발란쉰은 진정 네오클래식 발레의 창조자였으며, 거기에다 미국식 액센트를 창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뉴욕은 세계 발레의 중심지가 되었다. 발란쉰을 통해 미국의 발레는

유럽의 발레 전통과 직접적이고 창조적인 연결을 갖게 된 동시에 발란쉰의 수많은 작품들이

유럽의 컴퍼니에서 공연됨으로써 대륙간의 발레 유대가 공고히 되었던 것이다.

(교향곡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발란신에 대한 정보를 ...--;;;)

 

10. 목신의 오후

발란신의 교향곡을 추지 못하게 된 마스미와 레온에게 로빈슨(이 사람도 유명한 안무가)이 제안한 '목신의 오후'를 추게 된다. 하지만 도중에 루시의 몸이 심각한 상태임을 알게 된 마스미는 목신의 오후를 포기하고 루시와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발레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레온과의 춤을 포기할 수 없어 결국 마스미는 다시 레온 곁으로 돌아와 목신의 오후를 추게 된다. 평단의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게 된 마스미와는 달리 루시는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마스미는 루시를 대신해 현대 무용에 매달리게 된다.



1912년에 드뷔시의 음악시를 배경음악으로 한 이 발레는 레옹 박스트가 의상을 맡아 이교도의

전원문학을 인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해냈다. 무대는 님프의 의상들과 니진스키의 검은 얼룩반점

 타이즈가 배경막과 어우러져서 회색과 황갈색과 초록색으로 얼룩덜룩한 거대한 캔버스같이

보였다.

이 발레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목신이 한 무리의 님프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보다가 그 중 하나에게 반한다. 목신은 그녀를 사로잡으려 하고 그녀는 도망가다가

스카프를 떨어뜨린다. 몸이 달아오른 목신은 그 위에 드러누워 승리감에 그러나 고독한

황홀경에 빠져든다.

니진스키가 최근의 이 역할만큼 뛰어났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더 이상의 점프, 반무의식 상태의

짐승같은 제스쳐와 포즈 이상의 것은 없다. 그는 드러 눕고, 팔꿈치로 기대고, 무릎을 구부려

걷고 그러다 몸을 쭉 펴고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한 각도의 동작으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한다. 그의 눈은 명멸하며, 팔을 쭉 뻗고 손가락을 함께 모아 손 바닥을 쫙 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릴 때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신중하고 어색한 태로로 계속해서 욕망을 나타낸다. 내재돼 있는

마음의 총체적인 표현인 그 몸속에 형태와 의미가 분리 시킬 수 없이 결합돼 있다.

동작은 무용수의 성별을 거의 부정할 정도로 형식화됐지만 니진스키 시나리오의 관능성은

그 당시로써는 극단적이었다. 여기에는 그 의도를 흩트러뜨리기 위해서 세헤라자드처럼

그 의미를 부드럽게 해주는 아무런 사랑 관계도, 허세의 모험도 없다.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의

비평은 '동작은 그 관능성으로 인해 추잡하고 야만스러우며, 제스쳐는 외설한 만큼 서투른

음란한 목신을 우리는 보았다.'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대중은 인정했다.

1953년 미국인 안무가 제롬 로빈스는 목신의 오후를 드뷔시 곡에 맞춰 해석해 냈는데,

이것은 무대를 가상의 거울로 하고 발레 바 옆에서 두 무용수의 만남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서사구조는 우리 나라 전래동화인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지만,

신화가 가지고 있는 인간 본질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의미가 가미되어 있는

심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시문학의 대표작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를 원작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제작 당시 일정한 줄거리가 없어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말라르메에 의해 거절당했었다.그러나 이후 드뷔시에 의해 ‘목신의 오후의 전주곡’이 작곡된 후,

말라르메는 “내 시의 주제와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섬세함과 불안감,그리고 성숙함을 지닌 채

향수 어린 빛 속을 걷고 있는 듯하다”는 찬사를 보내면서 허락했다.그리하여 ‘목신의 오후’는

1912년 5월19일 드뷔시 음악에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안무로 파리의 샤트레 극장에서

디아길레프 러시아 발레단에 의해 무대에 올랐다.

막이 오르며 고대 그리스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무더운 여름날의 오후,반인반수(伴人伴獸)의

목신이 깊은 산 속 바위 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고 있다.때맞춰 일곱 명의 님프(Nymph:요정)

들이 호수에서 목욕하기 위해 등장한다. 목신은 님프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가가지만,

님프들은 목신의 모습에 놀라 황급히 달아난다. 잠시 후 주위를 살피던 님프들이 다시

되돌아온다.목신은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지만 님프들은 또다시 달아난다.

그런데 그 중 목신에게 흥미를 느낀 한 님프가 남아 있다.목신은 그 님프에게 구애를 하고 님프는

목신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듯하지만,목신이 자신을 끌어안으려 하자 님프는 결국 달아나고 만다.

깊은 고독과 슬픔에 잠긴 목신은,님프가 떨어뜨리고 간 스카프를 주워 바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그 스카프가 떠나버린 님프인 양 애무를 하고 마침내 스카프를 바위에 깔고서

그 위에 엎드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으로 자위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파격적인 목신의 행위는 여태껏 품위와 절제를

최고의 미덕이라 여겼던 파리의 관객들을 흥분시켰다.공연이 끝난 뒤 극장은

야유와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니진스키는 이 작품을 안무하면서 인간의 내면 깊숙이 감추고 있는 야수적인 욕망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무용수들에게 동작에 대한 설명 대신 그들이 동물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형상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또 그리스의 회화적 기법에서 영감을 얻어 입체적 동작보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평면적 기법을 사용해 동작을 안무했다.즉 2차원적인 무대를 만들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노력을 보였다.

이후 여러 안무가들에 의해 개작이 시도됐다.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53년에 만들어진

제롬 로빈스의 작품이다. 로빈스는 작품의 배경을 발레 연습실로 설정하고 반수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펼쳐지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목신과 님프 대신 두 남녀의 파드되로

표현하여 개작이라기보다 니진스키 안무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1. 미운 오리

리리아나와 더블 캐스팅으로 추게 된 이 발레는 실제 발레가 아닌 작가의 창작이 아닌가 한다. 이 발레를 준비하면서 마스미는 자신이 믿고 따르던 알렉세이와 자신이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혼란 속에서 춤을 추게 된 마스미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레온과 함께 그것을 찾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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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9-1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 만화를 봤던 느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panda78 2004-09-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 저는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흐흐
 

 

줄거리

시골 아가씨 지젤은 로이스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왕자이며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광란의 춤을 추던 중 지병인 심장병이 발작하여 죽고 만다(제1막).

결혼 전에 죽은 아가씨는 윌리라고 하는 숲속의 요정이 되는데, 지젤도 숲속을 지나가는 남자를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만드는 윌리가 된다. 지젤의 무덤을 찾아온 알브레히트는 요정들의 포로가 되고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지젤은 그를 지켜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가까스로 새벽의 종소리가 울려서 요정들은 물러가고 알브레히트는 구원을 받는다(제2막).

제1막 어느 날 독일 라인계곡에 위치한 한 마을에 귀족(공작)인 알브레히트가 평민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이 마을에 사는 지젤이라는 청순하고 순박한 시골처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던 우직한 시골청년 힐라리온에 의해 알브레히트가 귀족이며 이미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심장이 약했던 지젤은 그 충격으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두 남자가 지젤의 죽음을 서로 상대의 잘못으로 여기고 회피하면서 1막이 내려진다.

힐라리온과 알브레히트

  충격을 받은 지젤

 


제2막에서는 지젤의 죽음에 자책감을 느낀 두 사람이 후회를 하면서 지젤의 묘지를 찾는다. 황량한 숲속에서는 밤만 되면 윌리(남자들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들의 영혼)들이 나타나 밤새도록 춤을 추다가 새벽이 되면 자기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이 윌리들은 춤을 너무 좋아하다 죽은 처녀귀신들이다. 힐라리온이 나타나 자기 때문에 지젤이 죽었음을 사죄하며 지젤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때 윌리들이 나타나 그에게 계속 춤을 추게 하여 지쳐서 연못에 빠져 죽게 만든다.


알브레히트도 하얀 백합꽃을 안고 묘지에 등장한다. 알브레히트 역시 힐라리온과 같이 윌리들에 휩싸여 죽음을 눈앞에 둔다. 그때 지젤이 나타나 윌리의 여왕인 미르타에게 살려줄 것을 간청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알브레히트와 지젤은 이 작품의 백미인 ‘그랑 파드되’를 춘다. 밤새도록 춤을 춰서 지쳐 죽기 직전에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윌리들은 숲속으로 사라진다. 지젤의 숭고한 사랑이 알브레히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그녀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자기 잘못을 뉘우친다. 숲속을 향하여 지젤을 찾는 소리를 계속 외칠 때 막이 내린다.

미르타에게 알브레히트를 살려 줄 것을 간청하는 지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는 지젤의 숭고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윌리의 의상인 백색의 ‘로맨틱 튜튜’다. 이 의상은 귀신,요정 등과 같이 환상적인 인물을 표현할 때 입는 것으로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에 토슈즈를 신음으로써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윌리들



 

 

 

 

 

 

알브레히트와 윌리가 된 지젤

 

 

 


 

 




 

 

1막의 사랑에 빠진 순수한 시골 처녀와 2막의 윌리가 되어 버린 영혼이라는 극과 극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 무용수들에게 아주 힘든 발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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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2004-09-16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서부터 네 번째까지의 그림이 안 보여요..ㅜ.ㅜ

플레져 2004-09-1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지젤...
저는 1막 부터 윌리들까지 안보여요. 퍼가고시포요...ㅠㅠ

panda78 2004-09-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수정할게요. <(_ _)>
 

 

 


 

 


 


위 석 장   -   Maria Kudyakova



 

 


 


와... 신기하다... ^^   
Maria Kudyakova, Mindaugas Bauzys

 

 

 

 


<스완> 에서 이 장면 보신 분들도 계실 거에요. ^^

Mindaugas Bauzys, Maria Kudyakova, Vilija Putriute

 

 


 

 

 



Vilija Putriute





 

Les Sylphides

러시아의 무용가 미하일 포킨이 안무한 단막 발레.

1909년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디아길레프가 창단한 발레뤼스(러시아 발레단)의 첫 공연물로 올려졌으며, 무대장치 및 의상은 알렉산드르 브누아가 맡았다. 또 초연 때는 안나 파블로바·타마라 칼사비나·알렉산드라 발디나·바슬라프 니진스키 등 4명이 주역을 맡았으며, 이 발레의 개막과 더불어 근대 발레의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다.

'공기의 요정'을 뜻하는《레 실피드》라는 타이틀은 유명한 2막 로맨틱 발레 《라 실피드》에서 딴 이름이다. 그것은 이 발레의 무용수들이《라 실피드》의 무용수들이 착용하여 유명해진 긴 백색의 스커트를 입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 발레는 '백색 발레' 부류에 속한다.  

이 발레에는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다.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쇼팽의 짧은 피아노곡들(7개 곡)로 구성되어 있으며, 곡에 맞추어 앙상블·솔로·듀오, 그리고 몇 가지로 나누어진 앙상블이 추어진다. 무대는 거의 달빛이 비추는 숲의 빈터이며, 분위기는 몽상적() 또는 환상적이다.

발레는 4명의 주역(1명의 남성과 3명의 여성) 무용수가 무대 중앙에서 자세를 취하여 그 4명을 기점으로 해서 앙상블이 아름답고 우아하게 펼쳐지는 타블로(구도)로 시작되어 같은 타블로로 끝난다. 그 두 타블로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액션이 삽입된다. ①발레리나 혼자서 추는, 흐르는 듯이 경쾌한 왈츠, ②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남성 솔로의 마주르카, ③두 번째 발레리나를 위한, 복잡한 무브먼트와 우아한 스텝, 그리고 경쾌한 도약의 프렐류드, ④발레리나와 남성 무용수를 위한 아라베스크 등의 2인무(파드되) 왈츠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앙상블의 액션과 솔리스트의 왈츠이다. 이 발레에 사용되는 쇼팽의 곡들은《야상곡 Ab 장조》《왈츠 Gb 장조》《마주르카 C 장조》《마주르카 D 장조》《프렐류드 A 장조》《왈츠 C# 단조》《왈츠 Eb 장조》등 7곡이다.

 

위 사진은 마리우스 프티파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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