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이든 필포츠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소설에서 명민한 주인공은 이야기의 진행을 결정하고 범인을 밝혀내 독자에게 통쾌함을 준다. 뒤팽과 셜록홈즈, 포아로부터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까지 얼마나 많은 탐정들이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했던가? 그들의 회색 뇌세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범죄자의 꼬리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명민한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을 알기에 미스터리가 깊어져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둔한 탐정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정에 휘말려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 그런 사람 말이다.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의 주인공 마크 브렌던은 젊은 나이에 빠른 승진을 한 런던경시청 형사다. 그가 범죄수사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연역법'으로, 사건현장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후 첫 현장을 토대로 사건개요를 추적해나가는 방식이다. 스스로를 '일과 결혼한 남자'라고 말하며 일에만 몰두하던 그도 어느덧 35세가 되니 결혼을 통해 인생에 빛을 더하고 싶어진다. 그런 중에 떠난 여름휴가 장소에서 레드메인 사건을 맡게 되어 그의 삶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복잡해진다.

 

 

그가 맡은 사건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것이 특성인 레드메인가의 막내아들 로버트 레드메인이 자신의 조카사위인 마이클 펜딘을 살해하고 도주하여 발생한다. 소설에서 색과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붉은 머리는 시각적으로도 눈에 띄여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되는 한편, 등장인물들의 충동적이고 정력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형사 마크가 사랑에 빠지는 미스터리한 여인 '제니 펜딘'은 레드메인가의 마지막 후손이며 역시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엄청난 미인이다. 그녀는 막내 외삼촌인 '로버트 레드메인'이 남편인 '마이클 펜딘'을 죽였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마크의 도움을 청한다. 마크는 전쟁 후 정신적 외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로버트 레드메인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레드메인을 추적,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정작 그가 긴 시간동안 발견되지 않고 시체도 찾지 못해 사건은 흐지부지 되버린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로서 가지는 특색 중 다른 하나는 형사가 2명 등장하고 바통을 넘겨주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은 마크가 중심이 되어 수사를 진행하고, 후반에는 미국인 형사인 '피터 건스'가 등장하여 사건을 진행한다. 전반에선 마이클 펜딘의 죽음이 해결되지도 않은 채 제니의 둘째 외삼촌인 또다른 레드메인이 살해되고, 제니가 이탈리아인 주제페 도리아와 결혼을 하면서 마크의 짝사랑도 좌절된다. 

 

 

후반은 둘째 레드메인도 살해한 것으로 '피터 건스'가 등장하면서 점점 미스터리가 해결되고 마크가 수사를 하면서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밝혀진다. 피터 건스는 은퇴한 미국형사로 모든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는 '귀납법'에 가까운 추리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마크의 연역법이 대전제의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영원히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처음부터 제니에 대한 사랑이 그의 판단력을 얼마나 흐려놓았는지 비판한다. '피터 건스'는 명민한 두뇌를 사용해 사건을 해결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마크가 실수를 해 레드메인가의 비극은 완성되고 만다.

 

 

그래서 이 책은 한 형사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한 여자의 죽음까지 불사한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크와 제니- 도리아의 삼각관계는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이고, 특히 마크의 편향된 판단의 원인이 제니에 대한 사랑에 있는만큼, 로맨스가 위주가 되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이 겉보기와는 달리 얼마나 알 수 없는 존재인지, 우리의 판단은 얼마나 감정에 의존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은 단연 '제니'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일가를 모두 죽이고도 결국 남편을 대신해 죽는가? 은밀한 계획을 세워 타인을 죽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궁극의 희생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미인'이라는 그녀의 이미지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소진되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심리상태는 밝혀진바가 없다. 추리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아름다운 팜므파탈 또는 순수한 피해자 중 하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사건의 핵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여자'로서만 기능한 그녀의 역할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희망이 필요한 사람이 많지 싶다. 나 역시도 지금 당장 다가온 2013년엔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녹록치 않아 지금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 12월을 거칠게 내뱉은 말과 한숨으로 보내고 나니 신년은 더욱 추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암담하다.

 

그래도 어쩌리,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 밖에.

<거꾸로 희망이다>는 MB정권을 어떤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사인에서 이뤄진 강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연을 듣는 듯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편이긴 하지만, 각 꼭지별로 주제를 심오하게(?) 담아내기는 무리가 있다. 원래 여러 목소리를 묶어서 '이런 생각과 방식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서 두루두루 힐끗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재밌게 읽었다.

 

'생태적 상상력'은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 씨가 새로운 시대에는 '환경'이 아닌 '생태'로 주변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야 함을 얘기한다. 과연 귀농을 한다면 지금 현실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면서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지금처럼 모두가 하나의 삶을 이상형으로 삼아 살아가는 시대에 최소한은 맞춰갈 정도로 농촌에서 자본 창출이 가능한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서울시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대안경제' 부분도 좋았다. 사회적 기업을 상상하는 것, 이윤보다 더 중요한 내실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 지역 경제를 발전 시키는 방향. 창의력을 키울 것.

 

역사문제는 이제 다시한번 조명받고 있다. 서중석씨의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현대사의 역진 현상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책을 좀 읽어보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과거의 오류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못한다면 또 다시 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 순간의 분노나 절망에 휘말리지 말고 좀더 냉정하게 큰 시각으로 역사의 흐름을 읽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희망을 버리는 건 그 이후도 늦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급전쟁 - 금융회사에 털리고 정부에 속는 직장인들을 위한 생존 경제학
원재훈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경제상식이 부족한 나에겐 여러가지 깨달음을 준 책. 대안이 없는데 보면 뭐하냐고 하는데,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가 문제해결의 시작일테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나`가 차고 넘쳐서 부담스럽다. 이해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집착과 과대망상을 계속 보고 있자면 질린다. 대화가 아닌 한사람의 일방적인 연설을 듣고 있는 느낌. 문제는 연설 주제도 식상하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가흠 작가의 소설을 드디어 접했다. 우리 사이를 누가 가로 막고 있던 것도 아닌데(게으름을 제외하면) 많이도 늦었다. 초기작을 읽는 편이 좋았을까? 그래도 작고 - 얇은, 단편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힌트는 도련님>을 선택했다. 최근작 <나프탈렌>은 장편이라.

 

총 8개의 단편은 크게 '소설쓰기'에 대한 것과, 원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알려진 '가혹한 세계'에 대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소설가로서 자신을 반영한 듯한 '그래서', '힌트는 도련님', 'P'는 소설을 쓰는 일과 소설가에 대한 소설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뒤에 해설에는 '모더니스트'로서 소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다고 한다. 나머지 단편들은 '리얼리스트'로서 써내려간 소설들이고.

 

'힌트는 도련님'에서 작가 P는 직업란에 당당히 소설가라고 적고 싶은 작가지만, 어머니에게 선을 종용당하고 있는 노총각이다. 게다가 쓰고 있는 소설은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으니 스토리가 산으로만 간다. P가 쓰고 있는 소설 자체도 웃기지만 소심한 생활인인 P의 고뇌는 귀여울 정도라 '도련님'이라 부를만 하다. 소설쓰기에 대한 그의 고뇌는 백가흠 작가 자신의 고뇌일까?

 

형식의 시도는 항상 사실적인 서사 앞에 굴복했으며, 나는 그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결국 내 소설의 맨 처음 시도와 의도는 이미 내게서 빠져나가 사라져버린 것인데도, 나는 안타깝게 그것들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콤플렉스나 다름없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흔히 영화판에서 상업주의 감독들과 작가주의 감독들의 양면적인 콤플렉스 같은 것 말이다.

 

나는 행복한 작가를 본 적이 없다. 소설은 충족이나 낭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결핍이나 불합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에 대한 욕망을 다루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행한 일이다. 부조리함의 해결에 대해, 즉 욕망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스트'로서 작가가 그리는 세계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쁘이거나 쯔이거나'의 내용은 읽으며 경악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근원'은 깊은 밤 산중을 헤매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불빛과 폐가, 툇마루로 떨어지는 꽃잎의 이미지 등이 매우 아름다워 좋았지만, 근원씨의 인생이 너무나 고달파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낙타가 들어왔다', '통'의 주인공들 역시 행복할 수 없는데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나 그들에게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게 소설 속 인물들은 '성냥팔이 소녀'의 이미지다.(비록 대부분이 아저씨지만)

 

생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막상 그 상식을 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담담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니 나에게 이정도라도 주어진 것이 행운임을 깨달아 생의 제비뽑기에서 최악의 수를 뽑은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하고 비난하지 말 것. 새삼 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느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2-10-2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로하님, 백가흠을 만나셨군요. 저도 곧 만날 예정이에요. 소설가로서의 소설 쓰기, 그리고 가혹한 세상. 결코 반갑고 행복한 만남은 안 될 거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제 맘과 비슷한 선이 그어져 있을 것 같아 궁금하네요. 그런데 요즘은 그리 불행해보이는 작가도 없는 것 같아요.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처럼요. 확실히 세상이, 시대적으로, 문학적으로 뭔가가 바뀐 것 같기는 한데, 문외한으로서 그게 무슨 차이인지는 짚어내기가 어렵네요.

알로하 2012-10-24 14: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말없는 수다쟁이님^^ 처음 만난 백가흠은 상당히 느낌이 좋았어요. 천천히 전작해보려고요. 시대의 변화는 저도 느끼는데 역시 문외한이라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네요. '쿨함'이 전세계적 유행이기도 하고 포스트 모던이 어떻고- 뭐 이런 문제 같기도 하고요. 다만 말씀하신 작가들처럼 바닥 끝까지 내려가는 불행함을 느껴본 작가가 다시 나타난다면 우리에겐 축복이겠죠. 날씨가 바로 겨울 태세인데 감기 조심하세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