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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을 이겨낸 건지 섬 사람들의 매혹적인 이야기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채널 제도의 건지 섬에서 벌어진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채널 제도는 영국 자치령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동부 해안에 더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백 년 전부터 독자적인 의회와 화폐를 가지고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2차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이기도 하다.
해안선과 구릉들이 빚어내는 독특한 풍광의 건지 섬은 예부터 유서 깊은 관광지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톨 위고가 한동안 머물며 작품을 썼던 집은, 환상적인 자연 경관과 더불어 건지 섬의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이 아름다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과 용기, 우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아직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당장 만나고 싶다.”
책이라고는 성경과 사료 설명서 외에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그 사정은 이렇다. 엘리자베스와 이웃들은 독일군 몰래 잡은 돼지를 구워 파티를 벌이고 통행금지 시간을 훌쩍 지나 집으로 돌아가다가 순찰대에게 발각되었다.강제수용소로 끌려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독일식 정원’에 관한 독서 토론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는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독서 애호가인 독일군 사령관이 다음 독서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통보를 했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독서클럽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사랑한 독일군 장교의 아이를 낳은 엘리자베스, 독일군 점령 직전에 손자를 본토로 피신시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에벤, 닭과 염소를 키우며 남성용 강장제를 만들어 파는 이솔라, 연정을 품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워즈워스의 시를 암송하는 크로스비, 먹을 게 없으면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 티스비(‘감자껍질파이’를 만들게 한 장본인). 순박하고 매혹적인 건지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읽고 있노라면, 그들이 소설 속 인물들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건지 섬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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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
언제 수용소로 끌려갈지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
그 모든 고난의 시기를 잊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문학의 힘이었다.
편지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의 건지아일랜드는
읽고 있을 때보다,
다 읽고 났을 때,
아니 그 책을 읽은지 한참 지났을 때야 비로소
가슴이 더 저릿하고 입가에 미소가 떠올려지는 따뜻한 책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온기와 체온이 그대로 느껴지는 편짓글이 가슴을 데우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우리 주변에는 빨간 우체통도,
침을 발라가며 붙이던 우표도 멀어져 있다.
내게 날아오는 것은 각종 고지서와 안내장 뿐
편지라는 것은 어쩌면 추억의 한 이름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 즈음에 온통 편짓글로 가득한 건지아일랜드를 만난 것은 행운이고 기쁨이다.
줄리엣이 도시에게 편지를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도시의 답장을 기다리듯 책장을 넘겼다.
도시가 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내면 내가 받은 듯이 가슴이 뛰었고,
시드니와 소피에게 보낸 편짓글에서 줄리엣이 자기의 감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전쟁으로 인해 급조된 감자껍질파이클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편지와 문학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게 되는 이 소설은 정말 사랑스럽다.
편지의 내용속에 온통 문학얘기 뿐인 것은 아니다.
독일군 점령시에 일어났던 전쟁의 폐해도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배에 태워 멀리 보내야 했던 이야기,
누군가는 수용소로 끌려 갔다는 이야기,
먹을 것이 없어 독일군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굶주린 이야기,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한 이야기.....
그런 가슴아픈 이야기조차 모두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소설이라까..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클럽의 회원에게 편지를 부탁해보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