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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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Pantaleon Y Las Visitadoras>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의 번역에 관해서 먼저 말을 꺼내자면, 이번 번역은 국내에선 두 번째다. 초역은 1982년 중앙일보사에서 간행한 '오늘의 세계문학' 시리즈였다. 당시 번역은 민용태 교수가 했는데, 제목은 <빤딸레온과 위안부들>이었다. 'visitador'를 의역하니, 제목이 서로 다른데, 단어의 본래 뜻은 방문객이나 손님을 뜻한다. '위안부'가 갖는 우리 역사의 슬픈 현실을 되새기자면, 민용태 교수의 제목보다는 송병선 교수의 새 번역 제목이 더 낫다. '특별봉사대'라는 말이 두리뭉실하지만 말이다. 

  소설은 페루 군대의 기이한 사건을 다룬다. 아마존 밀림에서 복무하는 육군 부대 병사들이 성욕을 자제 못해 인근 마을의 부녀자를 겁탈하는 사건이 잦아지자 군지휘부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한다. 창부들을 고용해 병사들의 성욕을 함법적으로 충족시켜주자는 계획을 세우고 이 일의 실무자로 육군 대위 판탈레온을 임명한다. 판탈레온은 가족마저 속이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와 함께 하는 특별봉사대는 병사들의 성원에 힘입어 나날이 세력을 확장한다. 그 와중 판탈레온의 외도로 가정은 깨지고, 특별봉사대원이 살해된다.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느낀 판탈레온은 스스로 군대의 비밀을 폭로하고, 결국 특별봉사대는 해체된다.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니 심각한 톤이지만, 소설은 시종 해학적이며 풍자적이다. 페루의 사회와 군 현실을 헤집고, 젠 체 하는 인간들을 까댄다. 군복과 사제복 사이에 숨은 인간의 정염을 작가는 섹스와 가학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그래봤자 너희들도 인간일 뿐이다!"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 하다. 작가가 힘주어 풍자하는 집단은 군대와 종교단체이다. 군대는 함법적(?)으로 성욕문제를 해결했다. 창부를 고용해 겁탈을 방지한 것이다. 작가는 종교단체도 풍자한다. 신흥 종교단체의 교주 프란시스코 형제는 기이한 행동을 통해 민중을 선동하고 세를 키워간다. 실제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하는 기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긴다. 정부와 종교 단체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사람들은 미망에 빠지고, 민간인들마저 군인들처럼 합법적인 특별봉사대를 원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군대와 종교단체의 기행이 끊임없이 독자들 앞에 오버랩되는 것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출간된 민용태 교수의 번역본에는 페루와 한국의 현실을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역자의 해설이 붙어 있다. "종교적인 열정이 강해서 십자가에 사람을 몇 명이고 못박아 죽이게 했던 교주나, 군대에 충실하기 위해 가장 비군대적인 제도를 성공에까지 이끈 빤딸레온의 사명감은 모두가 어처구니 없는 우리 사회의 모순, 그것이다." 오랜 군부 독재를 겪고 있는 당시 현실이 이런 해설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이 주는 또 한 재미는 페루 사회를 들여다봄이다. 소설엔 동양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별봉사대를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짱꼴라 포르피리오'와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신치'가 그들이다. 짱꼴라는 중국계이고, 신치는 일본계이다. 일본계인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을 보며 의아해 한 적이 있는데, 페루는 다인종 국가이다. 소수이지만 아시아계가 오랜 시간 페루에서 살아왔고, 최고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후지모리는 10년간의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지른 범죄로 올 초에 25년형을 대법원으로부터 확정 받았다. 재미난 게 후지모리가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까지 가 다툰 이가 바로 이 소설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이다. 대통령 선거 후 20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은 2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또 한 사람은 노벨상을 탔다.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의미심장한 시간의 흐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보는 시선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또 한 작가인 칠레의 아리엘 도르프만 역시 <체 게바라의 빙산(The Nanny and the Iceberg)>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말하는데, 그가 현재 사는 앵글로 아메리카 미국은 성욕을 잘 절제하는지 묻고 싶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도 같은 맥락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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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재미있는 작가에요. <새엄마 찬양>을 들여다보다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제게는 훨씬 더 잘 다가와서 접어두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왜 남미쪽 작가들은 제게는 늘 소설보다 수필이나 이론서가 더 먼저다가오는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0 18:03   좋아요 0 | URL
작가를 읽어오고 계셨군요?
남미 작가는 소설이 강세인데, 다른 갈래의 글을 더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새로운 갈래의 작품에 도전해봐야겠네요^^

다이조부 2010-11-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약도 잘 받았습니다.고맙습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00:11   좋아요 0 | URL
긴히 쓰였으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 수기나 회고록을 보면 장군이 주둔하는 동네에서는 부하들이 장군님의 성욕을 채워주는 여자를 구하러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일화를 볼 수 있어요.중국내전 때 국민당군대 병사들도 성병 걸린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 걸 보면...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15:44   좋아요 0 | URL
그 말씀 하시니까 리영희 선생의 말이 생각나네요.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리영희 선생이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소식을 듣고 웃었답니다. 그들이 내건 게 우리 군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깨끗한 집단이기에 사회를 바로잡는다고 했는데,군에 몸에 담은 선생은 그 말이 정말 웃겼겠죠. 부패하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집단이 바로 군인데 말이죠. 강만길 선생도 회고록 <역사가의 시간>에서 군생활을 돌이켜보며 당시 군대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만길 선생도 리영희 선생처럼 쿠데타의 명분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군대의 부패는 어딜가나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의 댓글을 보니까 사내들의 성욕이 자연스러운 건데

가끔씩 사람을 참 비참하게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휴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2 15:42   좋아요 0 | URL
언젠가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었죠?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희화화했지만, 현실 속에선 말씀대로 비참할 따름이죠.
 
북조선 연구 - 서동만 저작집
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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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만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언젤까? 아무래도 그가 참여정부의 국정원 기조실장을 할 때였을 게다. 그는 임용 때부터 그의 학문적 이력을 문제삼은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데, 자리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된다. 기조실장은 군기반장 역할의 자리이다. 도쿄대 유학 시절 와다 하루키의 사사를 받은 서동만이다. 와다 하루키를 극좌파 북한 연구자로 아는 보수계 인사들이 그의 제자인 서동만을 곱게 볼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원에 입성하지만 개혁의 칼을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내부 반발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다시 학자의 자리로 돌아온지 5년째 되던 작년 6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자신의 53번째 생일을 지낸 지 며칠이 안되어서였다.  

  서동만은 북조선 연구자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정립사 1945-1961>이다. 저서로 접하는 것은 <북조선 연구>가 처음이지만, 칼럼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접하곤 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있던 2006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성동격서' 전략'(<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는데, 매우 예리한 지적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는 미국의 강경책을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란 개념으로 비유했다. 2007년 남한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한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전략으로 강경책을 쓴다는 게 논평의 요지였다. 실제 남한의 보수정권 수립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정책 전환을 보면 그의 생각이 탁견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손에 잡은 건 김정은의 등장 때문이다. <북조선 연구>는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북한정치이다. 그의 박사 논문 일부와 북한 관련 논설들이 실려 있다. 2부는 남북관계이다. 주로 칼럼을 모은 것인데,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남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말들이 많은데 오랜 시간 북한을 연구한 서동만이 지닌 생각의 길을 한 번 따라가 보고 싶었다. 1998년 9월 북한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김정일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한다. 같은 해에 서동만은 '북한 정치체제 변화에 관한 시론'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김정일 당총비서는 국가주석이 되기보다는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국방위원장으로서 최고통치권을 행사하는 길을 택했다. 아마도 죽은 인물을 영원한 주석으로, 즉 최고통치자로 추대한 것은 세계 공화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가 형성됨으로써 일어난 정치적 변화를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김일성 사망시까지 '당=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당=군=국가체제'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이 전사회의 조직자, 동원자로서 국가의 우위에 서 있던 체제에서 군도 종래보다 질적으로 강화된 역할을 하게 된 체제다. ...... 북한체제의 변화는 '전반적 군사화를 통한 체제단속 속에서 실용주의의 강화'라는, 어찌보면 모순된지만 나름대로 고심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내건 '강성대국' 건설을 서동만은 '모순되지만 나름대로 고심의 선택'이라 표현하고 있다. 국방위원장으로서 군을 틀어쥐었지만, 강성대국을 건설해 북한 인민의 먹고 사는 일도 책임져야 하는 북한 체제의 앞날을 서동만은 짚어내고 있다. 김정은 체제도 달리 보이진 않는다. '김정은 대장'이라 세뇌하고, 군장성들을 옆에 거느리는 모습을 자꾸 카메라에 비추는 건 김정은 역시 군을 틀어쥐어야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테다. '영원한 주석'인 할아버지를 빼닮은 외모와 풍채 역시 '장군감'이다. 3대가 세습을 하는 '세계 공화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을 또 하려는 북한을 두고 서동만은 무어라 말할까? 와다 하루키는 책 말미의 해제에서 그의 제자를 이리 평가한다.  

   
  서동만은 걸출한 북조선 연구자였다. 그의 연구는 한국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일본의 학문적 전통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적인 학문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 연구들의 세계 최첨단의 성과를 공유한 후에 독자적인 방법과 학풍을 만들어내면서, 초기 북조선체제 연구로써 앞으로의 연구 토대를 만드는 기념비적인 실적을 낳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너무도 짧은 생을 살다간 서동만은 이 훌륭한 책을 한국과 세계 학계에 남겨놓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탄생에 공헌할 수 있었음을 긍지로 생각한다.  
   

  김정은의 등장을 보며 '걸출한 북조선 연구자' 서동만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젠 글만 뒤적일 수 밖에 없음에 안타깝다.  

 

            서동만(195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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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8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과 북조선의 관계와 미래에 관하여 저의 생각이 나이브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봅니다.

빈자리가 아쉬운 사람인건 그 사람의 삶이 보람있었다는걸 반증하겠지요.

논쟁과 상처 는 드문드문 관심 있는 챕터만 골라서 읽어봤어요. 성실하고 꼼꼼한

비평가라고 생각해요. 강준만 과 권성우가 공저 인 책도 출간 당시에 흥미로웠던게

기억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19:32   좋아요 0 | URL
<논쟁과 상처> 읽고 계셨군요? 오랜만에 비평집을 보려고 합니다. 민완의 비평가라는 생각은 늘 했습니다.
서동만 교수 추모문집도 있더군요. <죽은 건 네가 아니다>인데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빈자리가 아쉬운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나이브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다이조부 2010-11-0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령도 최근에 읽은 책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말하더군요. 대학 재학중에도 선생님

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도 지금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얼마전에 이택광 블로그에서 그것에 관한 댓글로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20대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통일이 꼭 필요한가 회의적이고, 통일 보다도 상호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또래세대가 통일에 이렇게 거부감을 나타내는것은 의외였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20:51   좋아요 0 | URL
저는 상호 평화에 기반한 통일 준비를 했으면 해요. 오늘 신문을 보니 백낙청 교수가 6.15선언에서 연방제와 연합제에 동의를 했으니 초유의 국가체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더군요. 현실은 어둡지만 희망을 갖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통일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지만 평화를 원한다면 생각의 틈을 좀 더 좁힐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이조부 2010-11-0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 민완 아니고 미완 아닌가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20:43   좋아요 0 | URL
민완이란 단어가 있어요. 기지와 재치 있다는 뜻인데, 민완 기자, 민완 가드 이럴때 쓰이죠.
권성우 교수가 어울릴듯 해 써 봤습니다.

다이조부 2010-11-0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완 이라는 단어가 있군요. ㅋ 또 무식이 두드러지게 티가 났네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21:54   좋아요 0 | URL
잘 안 쓰는 단어라서요.....,

2010-11-09 0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1-0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어머니 가 눈이 침침해서 귀로 듣는 성경 테이프 나 시디 혹은 엠피쓰리 같은거

구입할 수 있는데 혹시 아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16:48   좋아요 0 | URL
다행히 제가 녹음된 성경전권을 MP3 파일로 갖고 있어서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얻은 건데요.
전에 일러주신 이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어머님께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동만 씨가 그때 국정원장인 고영구씨와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그런 갈등도 국정원을 그만 둔 원인이 되었지요.

알라딘에서 북한관련서적을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런 글을 올려주시니 기쁩니다.

아무래도 김정은 체제는 경제문제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전문가들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하느냐 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안 다음 그 전문가의 예전 예측을 담은 글을 읽고 비교해보면 되지요.

제자의 장례식에 참가한 와다 하루키 씨의 슬픈 모습을 찍은 사진이 기억에 남습니다.와다의 김일성 전기를 번역한 사람이 이종석 씨, 와다의 제자 서동만...여하튼 한국보수진영에서 싫어하는 사람들이지요.거기에 정세현 씨까지...정세현 씨는 원래는 모택동의 외교를 연구했습니다만...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19:32   좋아요 0 | URL
고영구 변호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군요? 몰랐습니다.
와다 교수는 투병하는 제자를 찾아 한국을 여러 차례 드나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후배 학자로서 격찬하는 글을 대하니 제자에 대한 애정이 애틋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동만, 이종석, 정세현 모두 참여정부의 통일안보 라인이군요?
이야기가 조금 샙니다만, 강만길 교수의 회고록 <역사가의 시간>을 보면 참여정부 시절 그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아마도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인 듯 한데요. 말다툼이 있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개인간의 일일수도 있겠지만, 강만길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장관급의 위원장을 했는데, 두 정부간 이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번역본에서도 그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좀 오래된 추리물 번역본을 보면 민완형사니 민완검사니 하는 단어가 꽤 나왔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19:23   좋아요 0 | URL
잘 안쓰는 단어인듯 해요.
신문에서 후배가 선배기자를 두고 '민완기자'라 일컫는 걸 종종 봤구요. 연배 있는 해설위원이 농구선수를 두고 '민완가드'라 말하는 걸 들어봤네요.
제겐 예쁜 발음의 단어인 듯 한데 말이죠. 뜻도 그렇구요.

다이조부 2010-11-0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듭 신세를 지네요. 보내준 자료는 잘 받았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네요. 서구세계를 지탱하는 축 중에 무진장 중요한 자료가 300메가 안에

커버되는게 신기합니다. 김연수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죽을 힘을 다해서 장편소설 한 권

을 써도 1메가 안에 커버된다고요. 기독교경전은 음성자료이기 때문에 아마도 조금 더

무거운것이겠죠~ ^^ 우리 대통령각하의 별명도 어쩌면 과분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료 고맙습니다 ~ 이제 다가오는 결혼기념일때 엠피쓰리 하나 선물해야겠네요 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20:26   좋아요 0 | URL
<신약성경>은 내일이라도 보내 드릴게요. 저희 어머니는 교회 안 다니시는데 성경 읽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챙겨드리는 아들의 마음이 아름답고, 부럽네요.

반딧불이 2010-11-0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그렇지만 댓글들도 제게는 공부네요. 부끄러운 얘기기만 저는 저런분이 계셨던것도 또 세상을 떠난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22:04   좋아요 0 | URL
학자임은 물론이고 노무현과 함께 변혁을 꿈꿨던 사람으로 서동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너무 짧은 삶을 산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요동하는 한반도 정세를 보자면 더욱 그렇구요. 남겨진 글들을 안타까이 뒤적일 따름입니다.

루쉰P 2010-11-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에 대해서도 항상 마음은 두고 있지만 쉽사리 공부를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님의 리뷰를 보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경기 북부 지역에 살며 북한에 인접해 있지만 사실 항상 그 존재를 잃어 버리고 살 곤 합니다. 북한에 대해 알고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 삶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잊어 버린 채 말이죠. 리뷰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알게 되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11:36   좋아요 0 | URL
포천에서 직장 생활하시는 걸로 아는데 맞나요? 저는 가평에서 군생활했는데, 훈련 때 포천을 가곤 했어요. 물론 군생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쪽은 북한을 알게모르게 의식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런 책이 아니면 평소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없어요. 의식적으로라도 읽고 생각을 해야지 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루쉰P 2010-11-15 17:0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포천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하지만 이곳 사람들도 북한과 근접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의식은 전혀 못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더 접근을 하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만 눈에 잡히지 않는 북한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관념의 문제일 뿐이죠. 과연 정말 통일이 준비될 때 포천은 어떻게 해 나갈지 참 걱정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5 22:33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 어디라고 크게 다르겠습니까? 함석헌 선생은 해방이 도적같이 왔다고 하셨잖아요? 통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영미 옮김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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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 광부 33인의 구조 동영상을 보다 꺼내 든 소설이다.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Blake's Therapy)>은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장편소설이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칠레 작가이다. '칠레 작가'라 일컬음은 작가 자신이 원하는 바다. 도르프만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칠레에 정착해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옌데의 좌파정권 성립에 일조하던 중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미국에 망명한다. 이후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도르프만은 디아스포라의 전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유대인이다. 디아스포라가 본래 유대인 난민만을 일컫는 말임을 기억해두자. 그의 조부는 사업을 이유로 가족을 데리고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그의 아버지는 정권의 탄압으로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미국으로 도망한다. 열여덟살이 될 때까지 자신을 미국인이라 영어로 대답하던 도르프만은 칠레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고민을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적 현실이 자신이 자라온 미국 때문임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국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한 아옌데의 사회주의 연합정부의 탄생을 도왔던 그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건 미국이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피노체트 군부세력은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17년 간 칠레를 '막장'으로 끌고간다. 디아스포라 도르프만의 회고록 제목이 의미깊다.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Heading South, Looking North)>. 남과 북이다. 직접적으론 남미와 북미겠다. 이 뿐일까? 빈곤과 부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자연과 인공도 대립 요소항이 되겠다. 남과 북에 흩어진 작가의 정체성이다.  

  내가 읽어내는 도르프만의 작품 경향은 두 가지 정도겠다. 우선 그는 칠레 군부 독재 정권의 야만성을 비판한다. 단편집 <우리 집에 불났어(My House is On Fire)>와 희곡집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는 칠레의 고통스런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군부 독재를 그들만이 겪은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기도 하다. 희곡 <죽음과 소녀>에는 독재 정권 치하에서 여대생을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들으며 성적으로 고문하는 의사가 나온다. 난 이 희곡을 소극장에서 연극으로도 보았는데, 베토벤을 들으며 유대인을 태웠던 아우슈비츠의 나치 병사를 떠올렸다. 아우슈비츠가 산티아고로, 산티아고가 독재 치하의 한국으로 오버랩되었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와 미국에 대한 딴죽걸기이다. 일종의 문화비평서인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How to Read Donald Duck)>가 대표적이다. 미국 문화의 대표격인 디즈니 만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미국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작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도 이 경향에 속하는 소설이라 하겠다.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블레이크는 인생의 난관을 맞는데,  자신의 기업에 닥친 경제적 위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사생활과 기업의 실상이 모두 드러난다. 문제는 이 드러냄의 방식이다. 도르프만은 전통적 소설 양식을 거부하고,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함축적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실상을 보여준다. 이 같은 기법은 <체 게바라의 빙산(The Nanny and the Iceberg)> 이후로 작가가 실험을 거듭하는 모습인데, 전달의 수단으로는 썩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텍스트에 가히 뭇매질을 가해 다시 헤쳐모음은 장관이지만, 전달의 효과엔 의문을 갖는다.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도 그런 면에선 아쉬움을 남긴다.  

  최고경영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블레이크가 갖는 고뇌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지시 하나, 하나에 해외 공장 노동자와 미국의 이민 노동자의 삶이 격변을 겪음을 그는 알아간다. 독립적인 인간이라지만, 그 역시 자본주의를 돌리는 힘없는 나사 하나일 뿐이다. 블레이크에 대한 비판적 성찰 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Ariel Dorfman(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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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틀어놓고 여대생을 고문하는 이야기는 시고니 위버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이기도 한데요. 제목이 영 생각이 안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3 18:0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엔 <진실>로 소개된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죠. 그 영화의 원작이 위에서 말한 희곡이에요. 영화의 원제목도 <죽음과 소녀>이구요. 영화는 안 봤는데, 저 희곡집을 읽다 영화 관련 자료도 찾아보았어요. 연극은 연극대로 좋더군요^^

다이조부 2010-11-0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의 댓글을 보니까 나찌의 만행과, 우리의 지난 암흑같은 시절도 연상되네요.

영화 박하사탕도 생각나고요. 가정에서는 따뜻한 아버지가, 자신의 일터에서는 고문을

하는 것. 이런 기록을 볼때마다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4 15:16   좋아요 0 | URL
희곡 <죽음과 소녀>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요. 민주화가 되어 과거사를 정리하는 위치에 오른 여주인공의 남편에게 아내가 독재치하에서의 판사들을 비판해요. 여전히 요직에 올라 호위호식하는 그들을 비판하는데 우리도 다르지 않죠. 과거를 공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겠죠.
비극을 막는 게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별하는 골짜기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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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철우는 신간을 챙겨보는 몇 안되는 작가이다. 임철우를 왜 좋아하게 됐을까? 한 비평가가 그를 두고 '순한 마음'을 지닌 작가라 말했는데, 난 그 표현이 참 좋았다. 난 아직 순함과 착함을 사람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임철우를 아끼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내가 자란 곳을 집요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그려왔기 때문이다.  

  임철우가 1985년에 펴낸 소설집 <그리운 남쪽>에는 <사산(死産)하는 여름>이란 단편이 있다. 소설은 80년 광주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을 처음 대했을 때 낯이 간지러웠다. 소설의 공간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소설속엔 향민의원과 돌고개가 나온다. 실제 광주의 돌고개 근처엔 양민의원이 있었다. 내가 알기론 광주에서 돌고개란 고유명사-일반명사로서의 돌고개야 숱하겠지만-를 쓰는 곳은 내가 지냈던 곳이 유일하지 않은가 한다. 돌고개를 넘기 바로 전 양민의원이 있다. 

    오월 광주를 문학적 고향으로 삼은 임철우는 1998년 <봄날>을 완성하곤 갈 길을 못 찾는 듯 했다. 전에 냈던 자전적 소설(<등대 아래서 휘파람>, 1993, <등대>, 2002)을 손 보기도 하고, 현대사를 갈무리하는 소설(<백년여관>, 2004)을 내기도 했다. <묘약-황천읍 이야기3>(<문학동네>, 2008년 봄호)에선 형식적 실험도 감행하는데, 난 '잘 하고 있나?'하는 일종의 걱정을 했다.   

  <이별하는 골짜기>를 읽으며 그 동안의 걱정이 기우임을 알았다. 비평가 신형철의 말대로 '이 작가는 변하지 않는다.'('신형철의 문학사용법', <이별하는 골짜기> 서평) 임철우를 처음 알던 그 시절과 지금의 내가 같지 않아서일까? 난 아마 그에게 '이제 그만'이란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의 선한 마음자리가 어디 가겠는가? 그것이 오월이든, 한국전쟁이든,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따스하다.  

  KTX 같은 자본과 시선의 맹렬한 속도 앞에 이젠 자신의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말하기조차 겁이나고 미안해지는 시대에 임철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 아프게 듣고, 대신 말을 꺼낸다. <이별하는 골짜기> 속에 그려진 인물 누구 하나 미움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위안부 여인들로 돈을 벌던 악마 같은 조선인 출신 남정네들도 그들이 개처럼 처참히 죽어갔음을 목격할 땐 그들이 불쌍했다.  이별을 겪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삶과의 이별이 죽음일진대, 이별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을테다. 어떤 삶이든, 이별 앞에선 마음이 아파온다.

  임철우를 처음 알던 시절의 나를 만나고파 <사산하는 여름>을 다시 꺼내본다. 소설은 오월 이후 사람들이 역한 악취를 맡고 있다고 말한다. “그(김씨)는 손바닥으로 둥지를 틀어 물을 받는다. 그리고는 코를 들이대고 흠흠 물냄새를 맡아본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비릿하고 역겨운 악취. 김씨는 가벼운 구토증을 느낀다.” 김씨는 거짓 냄새를 맡고 있다. 김씨 뿐만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나지도 않은 냄새를 진짜인양 맡고 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무얼까?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가 폭력의 시대를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 폭력은 이념을 위해 기능한다. 상습화된 폭력에 병든 이들은 이성의 정점에 광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깨닫는다. 감각적이다. 감각이 아니고선 깨닫지 못한다. 광서형의 절규이다. “내 손, 내 뼈, 내 옆구리, 내 어깨, 내 손톱, 내 콧구멍, 내 입, 내 혀 ․․․․․․ 하느님이 주신 내 유일한 확신인 나의 육신 ․․․․․․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성이 육체를 지배했을 때 우리에게 돌아온 건 광기에 젖은 폭력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감각으로 부딪쳐야 한다.  이 도시의 시민들이 나지 않는 냄새, 들리지 않는 소리(광서형, “소리. 목소리.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어.”)를 듣고 있다는 것은 감각적 차원에서 진실을 향한 이들의 힘이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이별하는 골짜기>에서도 상처입은 이들의 이야기가 모아지고 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 자살한 탈영병의 아들, 인생의 저주 앞에 고통하는 외로운 여인, 이들 역시 외친다.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임철우(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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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버지의 땅>이후로 아주 하얗게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1 17:4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소설집은 김현의 호평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임철우를 알리기도 했죠. 개인적으론 80년대 임철우가 내놓았던 문제작들은 김현이 껴안긴 버거운 감도 있었을듯 해요. 소재만 놓고 보자면요. 스타일면에서야 김현이 임철우를 아꼈지만요.
<이별하는 골짜기> 좋은 소설입니다. 임철우의 존재에 다시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루쉰P 2010-11-02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에 대해서는 뭐랄까 선입관이 깊어서요. 뭐랄까 읽으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곤 해요. 그러다 보니 손도 안 가는 것이 사실이구요. 좀 이상한 취향이긴 한데. 조정래 작가 빼고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안 읽어요. 고전 작가의 작품들은 열심히 읽거든요. 현대 일본 소설이나 한국 소설이나 너무 가볍다는 생각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매국노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ㅋ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1:24   좋아요 0 | URL
'너무 가벼운' 소설도 있을테죠. 하지만 조정래만이 진중한 소설을 쓰는 건 아니니까요. 기회가 되면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읽어 보세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테지만 가치 있는 소설을 써내는 작가들이 꽤 있답니다. 임철우는 제게 그런 사람이구요.

다이조부 2010-11-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을 챙겨보는 또 다른 작가가 궁금해지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3:26   좋아요 0 | URL
한국작가로는 최인석, 정찬, 전성태의 소설을 챙겨 봅니다.
최인석의 신작이 출간돼서 읽어보려 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을 책임질 작가' 설문에 응하셨어요? 누구라고 하셨을지 궁금하네요.

다이조부 2010-11-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코너에 글 쓴 사람중에 이름이 익숙한 사람은 주인장 밖에 없더군요.

무척 어려운 질문인데, 천명관 이라고 적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8:15   좋아요 0 | URL
천명관은 데뷔할 때 이름을 기억해 두었던 작가인데 여태 소설을 접해보지 못했네요.
얼마전에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해 서평 남기셨죠?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다이조부 2010-11-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명관은 데뷔할때 정말 핫하게 데뷔했죠~

근데 저도 읽어본 소설이 달랑 한 권인데.

차근차근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을 읽어볼 계획입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3 20:52   좋아요 0 | URL
<고령화 가족>을 읽어보셨죠? 이게 최근작인가 보군요.
관심작가로 염두에 두고 있겠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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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아니면 언제?(Se non ora quando?)>는 번역된 프리모 레비의 책 가운데 유일한 소설이다. 한 블로거와 얘기도 나눴지만 레비의 소설은 수기에 비할 때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것은 소설이란 갈래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레비가 지닌 소설을 다루는 힘이 약한 탓이기도 할테다. 허구라는 장치를 만들어 말을 건네기엔 작가 안에 담긴 슬픔과 괴롬이 너무나 많고, 그에게 남겨진 시간도 짧다. 그의 소설 두어 편이 번역중에 있다니 만나 보면 생각이 좀 더 정리될 듯 하다.  

  소설엔 파시즘과 싸웠던 유대인 빨치산 부대가 나온다. 실제 레비는 이탈리아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다. 소설의 내용은 레비의 경험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빨치산 부대의 이야기를 섞어 놓은 것이다. 레비는 소설의 내용과는 달리 빨치산 활동 중 나치에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다. 소설의 결말은 어찌됐든 무난히 맺어진다. 부대원들은 전쟁이 끝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빨치산 활동 중 아이를 가진 부대원 이시도르와 로켈레인데, 아내는 무사히 아이를 낳는다. 끝부분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소식이 전해지며 비극적 색채가 더해지긴 한다.  

  레비의 책들을 읽어가며 그가 지녔던 인간관이 궁금해진다. 전장과 수용소는 인간의 적나라함을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대머리는 수용소에 갇혔던 유대인 포로인데, 100여 명의 유대인을 창고에 몰아넣고 석유를 뿌려 불태워 죽였다.  

   
  "지포라이터를 다시 대머리에게 건넸다. 대머리가 혹시 자기 손에 석유가 묻어 불이 옮아붙을까봐 옷자락에 손을 몇 번씩이나 싹싹 문지르며 닦았다. '탕! 탕!' 이 때 갑자기 귀를 찢는 두 발의 총소리가 나더니 대머리가 라이터를 떨어뜨리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 그녀는 수많은 동료유대인들이 갇힌 창고에 불 지른 대머리가 자기 몸에 불이 옮을 걸 두려워해 기름 묻은 손을 자꾸 닦고 닦는 모습이 너무나 역겨워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319-320면)
 
   

 동료 포로들을 불태워 죽인 이가 자신의 몸에 불이 조금이라도 붙을까봐 안절부절하고 있다. 그 모습이 역겨운 빨치산 대원이 그를 사살한다. <휴전(La tregua)>에 등장하는 모르도 나훔의 말처럼 '인간을 잡아먹는 늑대는 바로 인간이다.' 이번엔 점잖은 늑대이다.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e' un Uomo)>의 한 장면이다.   

   
  그 때 나는 3층에 있는 내 침대에서 쿤 노인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상체를 거칠게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그 소리를 듣는다. 쿤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고 있다. 그 어떤 위로의 기도로도, 그 어떤 용서로도, 죄인들의 그 어떤 속죄로도,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 오늘 벌어졌다는 것을 쿤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 쳤을 것이다.('1944년 10월', 198-199면)  
   

   자신이 살아남았음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쿤 노인이다. 동료를 죽이는 데 가담한 앞의 대머리보다 쿤 노인은 도덕적인가? 레비가 쿤의 기도를 신이 내동댕이 칠 것이라고 말하는 건 그렇지 않다는 뜻일 게다. 내동댕이 쳐질 것은 쿤의 기도만이 아닐 것이다. 지옥을 경험한 레비는 칸트의 이 같은 말도 내동댕이 칠 것이다.    

   
  악덕은 오직 도덕적 악덕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소질은 선의 소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악덕의 최초 발생 근거로서 파악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마누엘 칸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악덕이란 생각조차 불가능한데, 그 악덕은 순수 의지가 자신이 지닌 자유를 아무런 동기 없이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의 자유를 포기한 자들과 숱하게 만난 레비에게 "당신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행복한 헛소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럼 왜 숱한 사람들이 의지의 자유를 포기한 것일까? 철학자 김영민은 <동무론>에서 하이데거를 들어 한 가지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야스퍼스가 히틀러를 교양 없는 인간으로 비난했을 때, 하이데거는 교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면서 히틀러의 그지없이 우아한 손을 그 변명으로 내세운다.('회의와 신뢰의 사이')  
   

   히틀러의 '우아한 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우아한 손은 부하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잡아가 절멸하라 명령한 손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위대한 철학자 하이데거에겐 그 손이 우아하게만 보였을까? 아니, 독일 국민 90%가 히틀러의 광기를 우아하고 위대하다 여겼을까?  

  프리모 레비가 빨치산과 수용소 생활 중 마주친 유대인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언제고 광기의 노예가 될 수 있는 자들이다. 소설에서 빨치산 대원 모텔이 유대인이 죽어간 수용소 담벼락에 'VNTNV'이란 단어를 적는다. 복수를 뜻하는 히브리어이다. 광기에 휩싸여 애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유대인을 보자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레비의 전언을 슬프게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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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0-10-2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라는 이해 할 수는 거대한 존재에 레비는 계속 물음표를 간직한 듯 보입니다. 이 소설에서 파고세운닥님의 서평에서 지적해 주신 대로 자신의 손에 불이 붙을까봐 움츠리는 독일 병사 모습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타인은 몇 백명이든 죽이면서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간이 자신이 죽을까봐 움추려 드는 모습. 레비는 그런 인간의 불균형에 계속적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님의 서평을 읽으며 그냥 스캔하듯 읽는 자신을 반성합니다. 써 주신 서평의 글들에서 제가 놓치고 읽은 부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레비가 왜 죽었을까?라는 의문은 참 많은 답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여튼 레비의 이번 소설은 읽기가 힘들었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9 19:16   좋아요 0 | URL
조금 정정할 게 불을 지르는 이가 독일 병사가 아니라 유대인이에요. 함께 수감된 동료 유대인을 태워 죽이는 거죠. 빨치산 대원들 역시 유대인이라 그 분노가 더했을 거구요.
레비를 좋아하려면 그의 소설에도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이조부 2010-10-3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모 레비와 관련된 글을 접하면 연동으로 서경식 선생이 생각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30 09:10   좋아요 0 | URL
두 사람의 인생과 글이 닮았다는 생각을 더러 합니다. 서경식 선생이 레비를 좋아하다 보니 닮아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의 마지막은 달라야 할텐데요......

다이조부 2010-11-01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10년후의 문학판을 책임질 작가에 전성태씨를 꼽았네요.

음 그 사람의 작품을 읽어본게 없는데 찾아봐야겠네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1 11:21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근데 소설을 많이 안 써서 애가 타요. 많이 읽고 싶은데 말이죠^^
비평가들 사이에선 꽤 좋은 평가를 받는 걸로 아는데, 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는 듯 해요.
읽어보시고 얘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1-0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성이 게으른데, 주인장 덕분에 읽을책이 산더미 처럼 쌓이기만 하네요.

십분의 일도 소화하지 못하지만 말이죠 ㅎㅎㅎ

천정배 블로그 모임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요. 모임 자체 보다도 비슷한 연배 사람끼리

나가서 따로 한 잔 했던게 더 즐거웠지만~ ^^

파고세운닥나무님은 술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할걸 같아요~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데

말이죠. 같이 녹색평론 독자모임에 나가보는건 어떨까요? ㅎㅎ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1 13:2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술을 안 하는 사람이라서요.
안 먹으려 마음 먹으니, 그거 지키는 게 또 그리 어렵진 않네요.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2010-11-01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