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

Shooting Date/Time 2019-04-16 오후 5:07:50

 

 

 

 -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

 

 

 

 -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 그대여 우리 이제 손잡아요 ♬

 

 

 

 - 좋아요♬♬

 

 

 

 - 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 둘이 걸어요♬

Shooting Date/Time 2019-04-16 오후 6:07:48

 

 

 

 - 개나리도 좋아요 ♬ 벚꽃도 좋아요 ♬

 

 

 

- 따스한 봄 햇살도 좋아요 ♬

Shooting Date/Time 2019-04-16 오후 6:17:38

 

 

 -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무네요 ♬

Shooting Date/Time 2019-04-16 오후 6: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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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7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4-20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예술입니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셨네요.

oren 2019-04-21 12:26   좋아요 0 | URL
언제쯤 만개할까 궁금해 하던 차에, 마침 이 날이 절정이더군요.

평일인데도 어찌나 사람들이 많이 나왔던지,
그 사람들이 어찌 그리 귀신같이 ‘오늘이 절정‘인 줄 알았는지,
저도 때마침 운 좋게 이 날에 저 꽃들을 만날 수 있었는지,
그런 생각들을 하니 여러모로 기분좋은 날이었답니다.^^
 

 

그 훌륭한 왕친(王親)의 ㅡ 못돼먹은 임금이라니!

그럼에도, 경들, 이 끔찍한 태풍 다가오는 소리 듣기만 하고,

폭풍우 피할 은신처를 우리는 찾지도 않고 있구려.

 -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2막 1장> 중에서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흉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는 『명상록』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엄격하게 수양했는지는 『명상록』만 읽어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황제로서 마땅히 누려도 좋을 온갖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기 보다는 도리어 황제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춰야할 인격을 도야하는데 훨씬 더 노력했다.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이면서도 스토아 학파 철학자였다. 그는 『명상록』에서 보듯이, 숨이 막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약삭빠른 재능과 지식은 타고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진지함, 인간적 성실함, 근엄함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그가 재위했던 때는 이른바 '5현제의 치세'의 마지막 20년 동안이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맨 처음으로 다룬 시기도 바로 5현제가 다스렸던 '서기 98년∼180년'이었다. 기번의 대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기 2세기의 로마 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토와 가장 문명화된 인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광대한 군주국의 변경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명성과 엄격하게 훈련된 용맹으로 지켜졌다. 법과 관습의 온건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모든 속주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나갔다. 그곳의 평화로운 주민들은 부와 사치를 마음껏 향유하고 또 남용하기도 했다. (…) 80년이 넘게 지속된 행복한 시기 동안에는 미덕과 능력을 두루 갖춘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에 의한 선정이 베풀어졌다. …… (1쪽)

 

 - 『로마 제국 쇠망사』, 제1장,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범위와 군사력, 서기 98∼180년

 

* 에드워드 기번이 말한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란 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년) 황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재위 161∼180년) 황제를 말한다.(oren)

 

 

이들 다섯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만 하더라도 로마 제국 전역은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 흘렀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온갖 이민족들이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고, 온갖 다양한 종교들이 넘쳐났지만 그들 사이엔 '종교 갈등'조차 없었다. 대중들은 로마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형태의 숭배가 모두 똑같이 진실하다고 생각했고, 철학자들은 똑같이 거짓되다고 생각했으며, 행정관들은 똑같이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종교에 대한 관용과 화합은 그렇게 작동되었다.

 

고대인들은 대체로 온화하고 관대했기 때문에 종교 간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에 더 주목했다. 그리스인, 로마인, 야만족들이 서로 다른 제단에서 마주쳤을 때, 그들은 비록 신의 이름이나 예배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호메로스의 품위 있는 신화는 고대 세계의 다신교에 아름답고 전형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있다.(33쪽)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재위117∼138)가 발굴해냈다. 그는 가장 훌륭한 황제 둘을 한꺼번에 찾아냄으로써 길이 후세의 칭송을 받았다. 그는 일생 동안 그 어떤 오점도 남기지 않은 50세의 원로원 의원을 그의 양자로 입양하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양자로 하여금 '성인이 되면 모든 미덕을 갖출 것이 분명해 보이는' 17세의 소년을 양자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렇게 해서 한꺼번에 발굴된 두 명의 황제는 42년간 변함없는 지혜와 미덕으로 로마 제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영광보다는 제국의 번영을 생각해서' 자신의 딸 파우스티나를 양자로 입양한 마르쿠스와 결혼시켰다. 그에게 호민관과 집정관의 권력을 주었으며 나중에는 황제의 자리까지 넘겨주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말한다. 이 두 황제가 다스리는 시기야말로 '정부의 목표가 오로지 전국민의 행복이었던 역사상 유일한 시대일 것'이라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 전체에 질서와 평화를 전파했다. 그의 시대는 역사에 거의 자료를 남기지 않은 시대로 손꼽히는데, 사실 역사란 인간의 범죄와 우행과 불행의 기록에 다름 아닌 것이고 보면, 이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영예라 하겠다. 사생활에서의 그는 선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천성이 소박해서 허영이나 위선을 몰랐다. 그는 지위에서 비롯되는 편의나 악의 없는 쾌락들은 적당히 누릴 줄도 알았고, 자비로운 마음과 유쾌하면서도 차분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미덕은 보다 엄격하고 근면한 수련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미덕은 수많은 학자들을 만나고 수많은 강의들을 인내심 있게 듣고 밤 늦게까지 공부해서 얻은 결실이었다. (…) 소란한 병영에서 기록한 그의 『명상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는 현자의 겸손이나 황제의 권위와는 다소 동떨어진 방식으로 공개 철학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의 삶 자체가 제논의 교훈에 대한 고귀한 해설이었다.(86∼87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온화한 성품'이었다.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의심할 줄 모르는 순진한 마음 때문에 종종 기만당했다. 특히 황제는 양부(養父)의 딸인 파우스티나와 아들 콤모두스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았는데, 그들의 악덕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 커서 공적인 피해로 연결되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딸이자 마르쿠스의 아내였던 파우스티나는 미모뿐만 아니라 화려한 연애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엄숙하고 고지식한 성격을 지녔던 마르쿠스 황제로서는 아내의 자유분방한 기질이나 무모한 열정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로마 제국 안에서 파우스티나의 부정을 모르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황제는 아내의 부정을 새까맣게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아내의 연인을 위해서도 고위 공직을 맡겼고, 30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중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녀가 죽은 후까지도 그녀를 존경했다.

 

마르쿠스는 『명상록』에서 그토록 정숙하고 온화하며 검소한 부인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리고 있다. 아첨 잘 하는 원로원은 황제의 진지한 요청을 받아들여 그녀를 여신으로 선포했고, 그녀는 유노, 베누스, 케레스의 특성을 지닌 여신으로 신전에 모셔졌다. 모든 청춘남녀는 결혼식 날에 이 정숙한 수호 여신 앞에서 서약해야 한다는 법령까지 선포되었다.(94쪽)

 

 

파우스티나, 프랑스 국립박물관

 

마르쿠스 황제를 뒤이은 아들의 극악무도한 악덕은 아내의 부정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젊은 콤모두스의 편협한 정신을 열어주고 악독한 마음을 순화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신하들은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허사였다. '교육의 힘이란 교육이 필요 없는 타고난 우수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행해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기번)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겨우 14∼15세가 되었을 때 '황제의 권력'을 함께 누리게 만든 것도 치명적이었다. 이 때문에 어린 콤모두스는 어떤 제약에도 굴하지 않는 오만불손한 젊은이로 변해버렸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누릴 것만 있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를 두고 기번은 다음과 같이 통찰하고 통탄한다.

 

사회의 내부적 평화를 위협하는 범죄의 대부분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불공평한 소유의 법칙이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대상을 소수의 소유로 국한시킴으로써 인간의 욕구를 제약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모든 열정과 욕구 중에서도 권력욕이 가장 중대하면서도 반사회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권력과 자부심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복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내란의 소용돌이에서는 사회의 법률은 효력을 잃고 그 빈자리를 인간성의 법칙이 대신하지도 못한다. 경쟁심, 승리에 대한 갈망, 좌절된 희망, 과거의 상처에 대한 기억, 미래의 위험에 대한 불안 등이 정신을 극도로 자극시켜 인간적인 동정심을 잠재운다. 위에 열거한 동기들로 인해 역사의 모든 페이지는 내전의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이런 동기들로도 콤모두스의 이유 모를 잔인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95쪽)

 

 

카피톨리니 미술관의 헤라클레스 모습의 콤모두스 석상

 

 

콤모두스는 유아기부터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은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사악하기보다는 유약했고, 단순하고 소심했기 때문에 측근들의 말만 믿었고, 그들 때문에 저지른 잔인행 행동들이 점점 습관화된 끝에 마침내 잔인성이 그의 영혼을 지배했던 케이스였다.

 

아버지인 마르쿠스 황제가 도나우 강변의 전장터에서 죽고 나서 19세에 황제에 오른 그는 치세 첫 3년 동안은 그럭저럭 사정이 괜찮은 편이었다. 마르쿠스 황제 시대의 형식과 정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아버지가 남겨 놓은 훌륭한 고문관들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빚어진 치명적인 사건이 그를 망쳐놓고 말았다. 어느날 밤 어둠에 잠긴 콜로세움의 좁은 주랑을 지나는 길에 한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암살은 실패했고 음모를 꾸민 일당들은 체포되었지만 이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은 그는 원로원 전체를 마음속 깊이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황제가 원로원 의원들의 불만과 음모를 찾아내려 하자 약삭빠른 밀고자들이 갑자기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마르쿠스 황제가 언제나 '국가최고회의'로 생각하며 존중했던 원로원은 가장 고결하고 훌륭한 로마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모두 범죄자가 되어 버렸다. 부자들은 밀고자들의 주요 목표가 되었고, 엄격한 미덕을 갖춘 자는 콤모두스의 방탕에 무언의 비난을 노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주요 공직에 오른 자는 너무 뛰어나서 오히려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었으며, 아버지 마르쿠스 황제의 친구들은 항상 아들의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의심은 곧 증거가 되었고 재판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명도가 높은 원로원 의원을 처형할 때는 그 죽음을 슬퍼하며 복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처형했다. 이렇게 한번 피의 맛을 알게 되자 톰모두스는 연민을 느낄 줄도 후회를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98쪽)

 

 

이 대목을 읽으면 갑자기 불쾌한 기억이 솟아오른다. 39년 전 어느 봄날 국가 방위를 위해 만든 군대를 동원하면서까지 잔인하게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던 흉포한 독재자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번 피의 맛을 알게 되자 그 독재자는 집권기간 내내 철권통치로 일관했으며,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지도자를 뽑게 해달라는 '직선제 개헌 요구'마저 거부하다가 온국민이 들고 일어난 6.10 항쟁 앞에서 겨우 폭주를 멈췄다.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뻔뻔스런 얼굴로 궤변을 늘어놓도록 놔둔 건 한국 정치의 오랜 수치이자 오욕으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다시 콤모두스로 돌아오자. 능력보다는 우행이나 만행을 과시하기 바빴던 콤모두스 황제 덕분에 벼락 출세한 인물들이 잇따라 등장했고, 그들은 황제와 더불어 덩달아 춤을 추었다. 고위직에 있으면서 국민들을 착취하고 부정축재를 일삼는 무리들이 점점 늘어났다. 도적떼들이나 다름없던 인물들 중엔 콤모두스의 제위를 넘볼 만큼 뻔뻔스러운 인물들도 더러 있었지만 음모가 조기에 발각된 덕분에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일들을 겪는 동안에 갈수록 의심이 늘어난 군주는 측근들만 총애하고 중용하기 시작했다. 교활한 신하들이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자 콤모두스는 '자신의 발밑에 갖다 바치는 어머어마한 선물'에만 점점 눈이 멀기 시작했다. 이때 목욕탕, 주랑, 경기장들이 황제의 이름으로 많이 건설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충언을 마다하지 않는 충신들도 더러 나타났으나 폭군은 그들이 건넨 충언의 보답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았았다.

 

혹사병과 기근까지 겹쳐 로마의 재앙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첫 번째 기근은 신들의 정당한 분노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기근은 클리안데르가 부와 권력을 이용해 곡식을 전매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생각되었다. 대중의 불만은 오랫동안 은밀히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사람들이 운집해 있던 대경기장에서 폭발했다. 그들은 복수라는 더 즐거운 오락을 위해 그들이 무척 좋아하던 여흥을 포기하고 교외에 있는 황제의 별장으로 몰려가서 공공의 적, 클리안데르의 머리를 내놓으라고 사납게 요구했다. 근위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었던 클리안데르는 기병대를 보내서 폭도들을 해산시키도록 했다. 사람들은 로마 시내로 재빨리 도망쳤다. 이 과정에서 몇몇은 기병대의 칼을 맞아 죽었고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밟혀 죽었다. 그러나 기병대가 로마 거리로 들어서자 주택의 창문이나 지붕에서 돌과 화살이 날아와 그들을 저지했다 (…) 기병대가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자 대중의 분노는 더욱 불타올라 그들은 성난 파도와 같이 거침없이 황제의 궁전까지 나아갔다.(102∼103쪽)

 

 

이 대목에서 우리가 겪었던 지난날의 여러 '유혈 시위 사태'를 떠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머나먼 다른 나라의 케케묵은 역사를 다시금 살피는 목적도 바로 그런 데 있을 터이다. 다시금 로마로 눈을 돌리자. 콤모두스가 시시각각으로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황제의 애첩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클리안데르의 죄상과 대중의 분노를 설명하고 성난 군중이 곧 황제의 궁전으로 들어닥칠 것이라고 황제에게 알렸다. 황제는 급히 묘책을 떠올렸다. 성난 군중들에게 클리안데르의 머리를 던져 줄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폭동은 곧 가라앉았다.

 

이를 계기로 콤모두스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럴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무능한 총신들에게 제국의 통치를 맡겨두고는 관능적인 욕구에 빠져들었다. 모든 계급, 모든 속주에서 모아들인 300명의 아름다운 여인들과 후궁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고대 역사가들은 이 방탕한 매음굴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기번은 자신의 점잖은 언어로 그 기록들을 다시 옮겨놓기를 거부한다.

 

품위 있는 시대의 영향력 아래서 세심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거칠고 야수 같은 마음에는 학문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콤모두스는 학문의 즐거움을 전혀 몰랐던 최초의 로마 황제였다. 네로 황제조차도 음악과 시에 뛰어났거나, 적어도 뛰어난 척은 했다. (…) 그러나 콤모두스는 어린 시절부터 이성적이거나 학문적인 것은 혐오했고, 대경기장과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들, 즉 검투사들의 시합과 맹수 사냥 같은 대중적인 오락만을 즐겼다. 마르쿠스가 아들을 위해 불러 모은 학문의 대가들은 산만하고 쉽게 싫증 내는 학생을 가르쳐야 했지만, 투창이나 활 쏘는 법을 가르쳤던 무어인이나 파르티아인들은 즐겁게 배우면서 눈썰미나 기교에서 곧 스승을 따라잡는 기특한 학생을 가르쳤던 것이다.(104∼105쪽)

 

 

황제의 악덕을 부추기고 함께 놀아났던 측근들은 황제의 저열한 취미에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들은 네메아의 사자와 에리만투스의 야생 멧돼지를 죽임으로써 신의 반열에 오른 헤라클레스를 상기시켰다. 맹수들의 조용한 은거지를 애써 찾아다니며 포획해서 로마로 끌고 온 다음, 황제가 직접 죽이는 장관을 연출하는 오락이 잦아졌다. 콤모두스는 어느새 자신을 '로마의 헤라클레스'로 여겼다. 황제의 옥좌 옆에는 황제의 기장은 물론 사자 가죽과 곤봉까지 함께 놓여 있었다. 콤모두스의 동상은 이내 헤라클레스를 본따 만들어졌다. 콤모두스는 아첨꾼들의 칭찬에 한껏 고무되어 궁전 안에서의 이벤트를 대규모 장외 행사로까지 격상시켰다. 로마 시민들을 원형경기장으로 끌어모은 것이다.

 

콤모두스는 초승달 모양의 화살촉이 달린 화살로 재빨리 질주하는 타조의 길고 여윈 목을 정확히 맞추었다. 풀어 놓은 표범이 떨고 있는 죄수에게 달려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확히 화살을 쏘아서 표범은 죽이고 죄수는 전혀 다치지 않게 만들기도 했다. 경기장에 백 마리의 사자를 풀어 놓고 그것들이 경기장 안을 으르렁거리며 달리는 동안 정학하게 백 개의 화살을 쏘아 모두 죽이기도 했다. 코끼리의 거대한 몸집도 코뿔소의 단단한 가죽도 그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에티오피아와 인도로부터 희귀한 동물들이 보내져 왔고, 예술 작품이나 공상 속에서나 나왔던 진귀한 동물들도 원형경기장에서 죽임을 당했다.(106쪽)

 

 

급기야 황제는 몸소 검투사가 되어 경기장에 '선수'로 등장했다. 그는 세쿠토르(Secutor)의 의복과 무기를 갖추고 나타났는데, 그와 싸우는 상대인 레티아리우스(Retiarius)의 대결은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시합들 중에서도 가장 생생하면서도 잔인한 시합이었다. 황제는 세쿠토르의 역할을 맡아 735번이나 시합을 벌였다.

 

콤모두스의 악행과 오욕이 남긴 희생자들의 긴 목록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신변에 닥칠 위험을 두려워했으며, 만성화된 살육의 습관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에드워드 기번은 이 당시 로마의 총독이나 군 지휘관들이 거의 매일 매시간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의 극단적인 잔인성이 결국에는 자신의 죽음까지 초래하였다. 그는 가장 고귀한 로마인들을 죽이고도 무사했지만, 가신들까지 그의 잔인성을 두려워하게 되자 그의 죽음이 찾아왔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죽음에 놀란 애첩 마르키아와 시종장 엘렉투스, 근위대장 라에투스는 황제의 미친 듯한 변덕이나 국민의 분노의 폭발로 언제 자기들 머리에 떨어질지 모르는 죽음을 미연에 방지하기로 결심했다. 마르키아는 맹수 사냥 후 지친 콤모두스에게 포도주를 가져다줄 때를 노려 독약을 탔다. 잠자리에 든 콤모두스가 독과 술기운 때문에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레슬링 선수였던 한 건장한 젊은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를 목 졸라 죽였다. 황제의 죽음을 궁정 사람들이나 국민들이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유해는 은밀히 궁전 밖으로 운반되었다. 이것이 마르쿠스의 아들의 최후였다. 13년의 치세 동안 가상적인 권력을 이용해 힘이나 능력에서 자신보다 못할 것이 없던 수백만의 국민들을 억압해 온 폭군의 종말은 이렇게 쉽게 찾아왔다.(108∼109쪽)

 

 

음모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지지해 줄 새로운 황제를 재빨리 찾아냈다. 집정관급 원로원 의원이자 그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페르티낙스는 밤늦은 시간에 시종장과 근위대장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의 명령대로 어서 자신을 처형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로마의 황제 자리를 받아주라고 읍소했다. 그는 황제의 자리가 진심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는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기나긴 그날 밤이 지나자 서기 193년 새해의 첫날이 밝았다. 페르티낙스는 원로원 회의를 소집하고 자신보다 더 고귀한 원로원 의원 몇 명을 새로운 황제로 선출해줄 것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콤모두스에게는 죄과에 합당한 수치가 주어졌다. 폭군, 검투사, 공공의 적이라는 칭호들이 부여되었고, 모든 동상들을 파괴할 것, 대중의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해 시체를 갈고리에 찍어 검투사들의 탈의실로 끌고 갈 것 등이 법률로 선포됐다.

 

원로원이 황제가 살아 있을 때에는 아첨하면서 비굴하게 굽실거리다가 죽은 다음에야 이렇게 무기력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납득이 가기는 하지만 다소 비열한 복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령들은 로마 제정의 원칙 내에서는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었다. 공화국의 최고 행정관이 자신에게 위임된 임무를 남용했을 때 원로원이 그를 탄핵하고 폐위하거나 처형할 권리는 오랫동안 확고하게 유지되어 왔다.(111쪽)

 

 

역사를 살펴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토록 닮았을까' 싶은 대목이 너무 많아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라고 해서 사정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가 쓴 역사 기록을 살펴 보더라도 우리가 이미 겪었던 숱한 불행한 과거사들이 너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로마사'를 깊이 연구했던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숱한 사람 사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정계에만 들어가면 재야 때의 뜻은 어디로 가 버리는지." 

 

 -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제1권> 제47장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중대하면서도 반사회적인 '권력욕'이 늘 문제다. 에드워드 기번의 말대로, 한 사람의 권력과 자부심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복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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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 명성에 비해 시시하군, 하고 느꼈어요. 지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문제는 권력욕이군요. 그리고 올바르게 보지 않는 시각. 신하들을 범죄자로 보고 의심하는 본인도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복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까지 죽였다니... 유능한 사람들은 전부 없어지고 무능하고 아첨 떨기 좋아하는 사람들만
옆에 남았겠군요.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누구도 조금만 의심 들면 처형하고 그랬잖아요.

인용하신 글과 오렌 님의 글, 이 두 가지가 잘 구분되지 않은 채로 읽었습니다. 오렌 님의 글로 읽고 나면 인용문이었고,
인용문이구나 하고 읽으면 오렌 님의 글이고... 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예요. ㅋ 잘 읽었습니다.

oren 2019-04-14 14:30   좋아요 2 | URL
로마 제국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공화정에서 다시 제정으로 바뀌었는데,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제국이 5현제의 시대때 다시 ‘공화정‘으로 되돌리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하더군요. 그 정도로 훌륭한 사람들이었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었다고 보더군요. 그때 다시 공화정으로 되돌아갔다면 서양 역사가 통째로 뒤바뀌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고대 그리스로부터 ‘민주주의‘를 비롯한 온갖 탁월한 문명들을 거의 다 모방하고 받아들였으면서도, 통치자 한 사람에게로 모든 힘이 집중되는 비민주적인 권력구조만큼은 끝내 바로잡지 못했던 로마 제국은 필연적으로 ‘황제가 바뀔 때마다‘ 나라의 운명도 그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듯합니다. 카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에게 맞서서 목숨을 걸고 로마의 공화정을 끝까지 지키려고 애썼던 인물들이 그래서 더욱 빛나 보이고요. 브루투스, 카토, 키케로 같은 인물들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9-04-14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의 시작을 5현제로 잡은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라 여겨집니다. 제국의 절정에서 쇠망의 요인을 끌어내는 것도 이 책을 고전으로 끌어올린 요인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oren 2019-04-14 20:28   좋아요 1 | URL
로마 제국의 기나긴 쇠퇴 과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이 훌륭하게 작동되었던 전성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합니다. 제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로마 제국의 광대한 영토, 막강한 군사력, 내부적 번영, 예술, 사람들, 정치 체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끝나자 말자, 어리석고 잔인한 황제들의 잔인성, 우행, 살육, 학정, 찬탈, 내전, 폭동 등등이 줄줄이 이어져 ‘찬란했던 한 때‘가 과연 있긴 있었나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하더군요.^^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각자 나름대로 얼마쯤의 '독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목표들은 처음엔 대체로 소박하게 시작하는 게 보통인 듯하다. 왜냐하면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만큼 많은지를 처음부터 자세히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무턱대고 '1만 권의 독서'를 목표로 하겠으며, 어느 누가 처음부터 '플라톤 전집'과 '셰익스피어 전집' 완독을 목표로 하겠는가.

 

그런데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읽을거리를 자꾸만 더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마치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공복감을 느끼는 고대 서양 신화의 에뤼식톤을 닮았다.

 

 

그자는 더 많이 뱃속으로 내려보낼수록 더 많이 요구했소.

마치 바다가 전 대지로부터 강물을 받아들여도

그 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멀리서 흘러 온 강물들까지 들이키듯이,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영양분을 거절하는 일 없이

무수한 통나무들을 불태우고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요구하고

많을수록 그로 인하여 더욱더 탐욕스러워지듯이,

꼭 그처럼 불경한 에뤼식톤의 입은 그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소. 그에게는 음식이 곧 음식을

먹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먹을수록 늘 공복감을 느낄 뿐이었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834∼878행

 

 

뒤늦게 셰익스피어에 입문했을 때, 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만이라도 천천히 한번 읽어 봐야지 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셰익스피어 전집'을 모조리 다 읽는 쪽으로 '독서 목표'가 바뀐 걸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토록 거창한(?) 욕심을 겁도 없이 품게 되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내가 셰익스피어를 만나자 말자 내처 읽었던 작품들이 결코 적지는 않았다. 비록 한꺼번에 전집을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걸 세어보니 정확히 21편이었다. 읽은 차례대로 그걸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줄리어스 시저』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좋으실 대로』

『십이야』

『잣대엔 잣대로』

『겨울 이야기』

『태풍』

『헨리 4세 1부』

『헨리 4세 2부』

『헨리 5세』

『헨리 8세』

『리처드 2세』

『리처드 3세』

『말괄량이 길들이기』

 

보시다시피 여기서 딱 맘췄다.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머지 작품을 다 읽기까지는 아직도 16 작품이 더 남았다. 그의 희곡 작품이 무려 37개나 되니 말이다. 미처 6할도 못 읽은 셈이다. 셰익스피어 전집 읽기가 여기서 멈춘 데는 출판사의 사정도 얼마간 영향을 미쳤다. 나는 민음사에서 '전 10권'을 목표로 새롭게 내놓은 <셰익스피어 전집>으로 셰익스피어 읽기를 시작했는데, 그 전집이 아직까지도 후속작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철 교수가 '전10권'을 목표로 출간한 『셰익스피어 전집』시리즈. 전집 1권, 4권, 5권 , 7권에 담긴 작품들(모두 16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걸작들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공 교수의 '운율을 살린 운문 번역'이면서 '가장 최신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작품마다에 딸린 '풍부한 작품 해설'과 '충실한 주석' 등도 돋보인다. 간혹 지나친 '운문 번역'이 드라마틱한 극중 대사의 묘미를 반감시키는 면도 없지는 않다.)

 

 

민음사판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전10권>(예정)  가운데 5권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출간된 듯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딱 거기까지 진행되고 감감무소식이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틈날 때마다 후속작들이 나온 게 없나 하고 살펴보지만 맨날 그 모양이다. <셰익스피어 전집 10 : 소네트.시>가 마지막으로 출간된 이후로 꼬박 3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후속작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완전히 도외시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출판사마다 번역의 품질(?)이 꽤나 들쭉날쭉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왕지사 민음사의 최종철 번역본으로 읽기 시작했으니 후속편들이 출간되면 그 때 다시 '이어서' 읽어야지 싶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딱히 '이어서' 읽는 느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사극들이라면 인물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라도 있겠지만 다른 작품들이야 그런 연관성조차도 전혀 없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의 깔끔한 완독을 내심 더 바랐는지도 모른다.

 

(민음사 판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로는 미출간된 작품들 가운데 다른 번역자의 판본으로 읽은 책들. 신정옥 교수가 '전작품'을 완역한 '전예원' 판은 번역된지 너무 오래된 상태여서 '외국어 표기'가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고, 산문체 번역이어서 '시적인 대사'를 감상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성일 교수가 번역한 '나남'의 『리처드 2세』는 '감정을 격동시키는 대사'에 관한 번역이 특히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서문화사의 번역들도 대체로 무난했다.)

 

 

오늘도 심심하던 차에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혹시나 하고 살펴 봤다. <민음사판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가 새로 나온게 없나 하고. 그랬더니 뜻밖에도 전혀 새로운 <셰익스피어 전집>이 한꺼번에 완간된 게 있어서 깜짝 놀랐다. <동서문화사판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가 무려 <전8권>으로 떡 하니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이걸 보는 순간 갑자기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동서문화사판 셰익스피어 전집>을 한꺼번에 몽땅 사들이자니 <민음사판 셰익스피어 전집>으로 이미 읽은 작품들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이미 읽은 작품들까지 새로 사들일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살펴 봤더니, 내가 읽은 작품들이 여기저기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게 문제였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동서문화사판'과 '민음사판'으로 각각 한 번씩 완독하겠다는 거창한 야심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동서문화사판 셰익스피어 전집>을 한꺼번에 몽땅 사들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번 정리해 봤다. <민음사판 시리즈>로 일부를 읽은 나 같은 사람은 <동서문화사판 시리즈>에서는 어떤 책을 골라 사야 좋은지를 한번쯤 따져봐야 했기 때문이다.

 

 

* 세 종류의 판본에 실린 작품들의 제목은 대체로 큰 차이가 없는데, 유독 한 작품에서는 크나큰 편차가 엿보인다. <잣대엔 잣대로>, <말은 말로 되는 되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로 번역된 작품이다. 원제는 ‘Measure for measure’이다. 이 작품의 제목을 <이척보척(以尺報尺)>으로 번역해 놓은 경우도 있었다.

 

원래 measure for measure란 성경에 나오는 표현으로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7장 1절-5절)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한다. ‘함부로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이 극은 이른바 문제극이다.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맺지만 분위기는 사뭇 어둡기 때문이다. 권력자를 대신해서 임시로 권한대행을 맡은 인물이 감옥에 갇힌 죄수를 풀어주는 댓가로 성 상납을 강요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법과 정의, 용서와 화해, 권력과 자비, 법과 도덕의 판단 문제 등이 다각도로 날카롭게 조명되는 작품이다.

 

 

이렇게 표를 만들어 놓고 비교해 봐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였다. <동서문화사 전집> 가운데 구입할 필요가 없는 책은 <전집 3>과 <전집 5>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 여섯 권에는 내가 못 읽은 작품들이 최소 1작품에서 최대 5작품까지 골고루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문화사 셰익스피어 전집> 가운데 대충 서너 권만 더 사들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모조리 구비할 줄 알았는데 실제 사정은 영 딴판이었다.

 

게다가 <동서문화사 전집 시리즈>의 책값도 책의 분량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다. <전8권>은 반양장본 4,572쪽에 152*223mm (A5신), 무게는 6,401g, 가격은 108,000원이었다. 전집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낱권의 표지는 다음과 같다. 표지 그림도 독특하고 책의 제목도 몹시 복잡하다.

 

 

 

 

 

 

 

 

 

 

 

 

 

 

 

 

 

 

 

 

 

 

 

 

 

 

 

이만한 분량과 이만한 책값을 보니 문득 예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이 생각났다. 단 한 권에 셰익스피어를 몽땅 다 담아낸 그 엄청난 책은 1,808쪽에 240*308mm, 무게는 4,516g, 가격은 108,000원이다. 그 책이 아무리 번역이 좋다 해도 무려 4.5Kg이나 되는 책을 사서 읽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예전에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율리시스>에서 이미 한번 곤욕을 치러봤기 때문이다. 그 책의 사양은 지금 다시 봐도 겁부터 난다.

 

 

 

 

 

 

 

 

 

 

 

 

 

 

 

이렇게 다시금 셰익스피어 전집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 보노라니 문득 마크 트웨인이 했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설마 이 모든 것을 윌리엄이 썼다고 믿습니까?”

 

아무튼 셰익스피어는 20여 년간 무려 37편의 극작품과 154편의 소네트를 썼다. 그는 무려 1,100여 명의 캐릭터를 창조하였고, 등장 인물들이 느꼈던 수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2만여 개의 단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우리가 그에게 압도되는 건 비단 작품의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은 '천재가 빚은 예술작품'에 여전히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작품들이 골고루 걸작이기 때문이다.

 

대 그리스 시인들조차도 각자 서사시, 비극시, 희극시 등으로 그 분야를 나눠 작품을 썼지만 이 인물에게만은 그런 '영역 구분'조차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는 희극 · 비극 · 사극 · 로맨스 · 소네트 · 시 등에 전방위적으로 두루 걸출했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고유의 색깔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10편의 사극에서조차 인물의 성격 뿐만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구성 등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소년 시절 문법학교에 다닌 게 교육의 전부로 알려져 있다. 소년 셰익스피어는 이 단계에서 로마의 희극 작가 테렌티우스나 웅변가 키케로뿐 아니라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로마 시인들의 작품을 두루 접했다. 나중에 런던으로 진출하여 극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몽테뉴의 『수상록』등으로부터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학의 천재답게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놀라운 재능 덕분에 그는 '원전'과는 또다른 온갖 독창적인 작품을 쏟아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느닷없이 나타나 걸작들을 한꺼번에 마구 쏟아내자 어떤 작가는 시샘이 나서 셰익스피어를 두고 "벼락출세한 까마귀"로 비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작자의 판단이 얼마나 못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 제사(題詞)에서 그런 인물들을 노골적으로 비꼬았다.

 

속물들은 잡것에 혹하게 놔두고

금빛 머리 아폴로여, 저에게는
영감이 가득한 샘물 잔 내리소서.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점은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배경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을 썼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살아 있으면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기뻐하는 인간 그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그의 비극이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들의 '운명적 비극'과 달리 '성격적 비극'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지극히 현대적이다. 『햄릿』을 비롯한 그의 수많은 희곡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도 활발하게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는 자체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탁월한 예술성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의 희곡이 빛나는 또다른 이유는 문장이 너무나 절묘하고도 아름답다는 점이다. 그는 음악처럼 그 다음이 듣고 싶어지는 대사를 쓰기 위해 '운문' 형식을 특히 많이 사용했다. 또한 리듬이 넘치는 말을 사용해서 극적 효과를 높였다. 가령 '적의 아들인 로미오를 사랑하다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말할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아, 로미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의 이름은 로미오인가." 

 

뒷날 『리어 왕』을 썼을 때, 그는 짧은 한 문장을 주인공에게 말하게 했다. "부탁하네, 이 단추를 풀어주지 않겠는가?" 이 글은 겨우 5단어로 되어 있으면서 적어도 3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옷의 단추를 풀라는 의미와 현세의 허영의 상징인 의복을 벗어버린다는 의미, 그리고 이 삶의 고뇌를 벗고 떠나고 싶다, 즉 죽고 싶다는 주인공의 비통한 소망을 포함한 의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대응한, 유연한 살아있는 말을 쓰는 능력을 셰익스피어는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통해 습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뛰어난 시란 어떤 것일까? 간결한 말에 여러 의미를 포함시킨다. 말에서 각각의 이미지가 넓어진다. 읽는 이가 분명 그러하다고 납득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나름대로 해석하는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시가 있다면 그것은 뛰어난 시라고 평가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러한 작품을 썼다. 그의 희곡작품은 극이면서 동시에 시인 극시인 것이다. 결국 셰익스피어는 시인이었고, 그가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이유와 작품의 끝없는 깊이도 거기에서 나온다.(571쪽)

 - 동서문화사,『햄릿/오델로/리어 왕/맥베드/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이토록 온갖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는 과연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설파하고자 했을까. 놀랍게도 셰익스피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항상 열린 자세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뿐 자기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법이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제시된 세계는 '모색(摸索)으로 가득 찬 세계'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어떤 사상을 배우려고 하는 건 헛된 노력일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에게는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그는 'Philosophy(철학=논리적인 것)'이라는 말을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14번 사용했는데,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자. 줄리엣의 사촌을 죽여 베로나에서 추방당한 로미오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논리로 설득하는 로렌스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추방' 얘깁니까? 철학 따윈 개나 줘버려요! 철학으로 줄리엣을 만들 수 있나요, 마을 전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나요, 아니면 영주님의 판결이 뒤바뀔 수 있게 하나요. 철학 따윈 아무 필요 없어요, 그러니 더 말씀 말아 주세요."

그리고 햄릿은 아버지의 망령에게서 친동생이 자신의 목숨과 왕관과 부인까지도 빼앗아갔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까지 갖고 있던 인간관이 모두 무너진 그는 친구 호레이쇼에게 이렇게 말한다.

 

"호레이쇼, 이 세상에는 우리들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네." (58∼59쪽)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셰익스피어의 인간관·역사관의 형성>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연구할수록 더욱 심해질 뿐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 있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활동한 수많은 작가들은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작품들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괴테가 이런 말을 남겼을까.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작가들이 모두 펜을 접을 리는 없다. 이미 셰익스피어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여럿 참고해서 자신의 작품을 썼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쓴 『햄릿』이라고 평가받는다. 체호프의 <갈매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햄릿』을 다시 쓸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한 건 아닌 셈이다.

 

글이 자꾸만 옆으로 새고 있다. 여기서 그만 멈추고 다시 나만의 문제로 되돌아 오자.

 

기다릴 것이냐, 지를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민음사판 전집이냐, 동서문화사판 전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전부 다 살 것이냐, 일부만 살 것이냐, 그것도 문제로다!

 

뜻대로 하세요?

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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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 위에, 읽은 차례대로 그걸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에서 리스트를 보니 거기에서 제가 읽은 게 반 이상이네요.
셰익스피어를 저는 세로 줄 전집으로 읽었어요. 나중에 가로 줄로 나온 책을 사 놨지만 사 놓기만 하고 이미 읽었다고
안 봤어요. 물론 살 때는 다시 읽으려고 샀는데 말이죠. 희곡은 읽기가 좀 불편해요.

저도 서머싯 몸의 유명한 작품을 거의 읽었고 딱 하나 <과자와 맥주>만 못 읽었어요. 이건 동서문화사 것만 있는데
제가 읽은 <달과 6펜스>와 함께 있더군요. <달과 6펜스>는 이미 두 번이나 읽었고 각기 다른 출판사로 두 권이나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또 사기가 망설여지더군요. 과자와 맥주가 단독으로 출간되는 출판사가 있다면 앞으로 사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자와 맥주는 고 마광수 교수가 극찬한 작품인데 좋은 작품은 단독으로 나온 책으로 갖고 싶거든요.

oren 2019-04-14 12:10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세로로 쓰인 책들로 읽으셨다면 까마득한 옛날에 나온 책들로 읽으셨다는 말씀이군요. 옛날엔 그런 책들이 조금도 아상할 게 없었는데, 요즘 그런 책들을 보면 너무 낯설어서 ‘이런 책들을 어떻게 읽었지‘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서머싯 몸의 작품 가운데 <과자와 맥주>라는 작품도 있었군요. 저는 금시초문이어서요.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다 보면 ‘주요 작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한글 번역본‘이 나온 게 아예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더라구요. 그럴 때 가끔씩 동서문화사에서 ‘국내 유일의 번역본‘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어찌나 반가운지 번역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찾아 읽게 되더라구요.

Angela 2019-05-30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동서와 민음을 섞어서 구입했는데 일목요연한 설명 감사합니다~

oren 2019-05-30 12:05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까지도 민음사 전집 시리즈의 나머지 출간 예정작들을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전집 시리즈도 일부는 사서 읽어볼 계획입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gasina 2019-07-24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저도 민음사 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 답답하던 차에, 이렇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서문화사 책도 고려해봐야겠어요~~

oren 2019-07-24 18:39   좋아요 0 | URL
민음사 책이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네요.
저도 기다리다 지치면 동서문화사 책을 슬슬 사볼까 합니다.^^
 

 

양피지 쪽들에 호메로스가 다 담기다니!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그 많은 모험이

프리아모스 왕국의 적이었던 오뒷세우스 말야!

그 모든 것이 양피 한 조각에 갇혀 버리다니

겨우 자그마한 몇 장으로 접은 양피 조각에!

 - 마르티알리스

 

 * * *

 

어떤 작가나 작품이 품을 수 있는 어떤 한계가 있다면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찬찬히 다시 읽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 하나를 쓰면서 등장시켰던 그토록 많은 인물들과 대규모의 전투씬들과 작가가 전달하려고 애썼던 사상에 비하면 호메로스의 작품은 그보다 얼마나 더 드넓고 방대했던가. 우선, 이 작품 속엔 고대의 숱한 전설적인 영웅들뿐 아니라 그 당시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온갖 신들이 총망라하다시피 등장한다. 트로이아 전쟁은 따지고 보면 신들의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유명한 헬레네 납치 사건만 하더라도 신들의 사소한 불화 때문에 빚어졌던 일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신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그녀를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펠레우스는 『일리아스』의 주인공인인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다.) 바로 이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초대를 받지 못했다. 거기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결혼 잔치에 참석한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를 새긴 황금 사과를 던지는 묘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사과 한 알이 어머어마한 사건으로 발전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하다. 여자들의 질투심이야말로 한번 타오르게 되면 끝장을 보기 전까지는 결코 꺼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여신들임에랴. 이 사과를 본 여신들은 그 사과를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트로이아의 왕자였던 파리스에게 심판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를 찾아간 여신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어울릴 만한 달콤한 반대급부로 파리스를 유혹한다. 헤라는 '아시아에 대한 통치권'을,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아내로 주겠다면서 자신을 찍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파리스는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파리스는 여신의 도움을 받아 다른 남자의 부인이었던 헬레네를 데려가고, 트로이아와 그리스 연합군은 파멸적인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이토록 사소한 사건 하나가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째로 뒤바꿀 정도의 대사건으로 비화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를 두고 고대의 여러 작품들에 특별히 탐닉했던 몽테뉴는 특유의 입심으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파리스의 심판(우테웰 작)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새긴 황금 사과를 잔칫상에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간 중에 제일 미남자인 파리스에게 심판받자며 그를 찾아간다. 파리스는 절세미인 헬레네를 품에 안겨주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준다. (천병희 옮김,『에우리피테스 비극전집1』에서 인용)

 

 

인류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전쟁이 있다면 그건 바로 트로이아 전쟁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전쟁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결국 '신들의 집안 싸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싸움의 원인 제공자인 헬레네는 족보로 따지자면 엄연히 제우스의 딸이다. 스파르테 왕 튄다레오스와 그의 아내 레다 사이에는 2남 2녀가 태어났는데, 클뤼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와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그들이다. 그런데 제우스가 백조의 모습을 하고 레다에게 접근한 까닭에 흔히 헬레네와 쌍동이 남자 형제들은 '제우스의 자식들'로 인정받는다. 헬레네의 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는 트로이아 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아내였고, 헬레네는 아가멤논의 아우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그러니 제우스의 입장에서 살펴보자면 자신의 딸이 자신의 사위를 배신하고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멀리 트로이아까지 도망친 사건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빠진 셈이었다. 또한 자신이 사랑했던 여신인 테티스의 간절한 호소 때문에라도 자신이 그 전쟁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티스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낳았다. 그러니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한 이후 혁혁한 무공을 세웠음에도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으로부터 부당한 처사를 당한 끝에 분노로 들끓고 있던 아킬레우스를 어머니인 테티스가 그냥 못 본 체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테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무릎을 붙잡고 간청한다. 전쟁터에서 죽을 운명을 타고난 명 짧은 자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겨서라도 어떡하든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드높여 달라고. 그렇게 일이 되도록 우선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 트로이아 군대가 분발해서 그리스 군대를 단단히 혼쭐내 달라고. 그렇게 해서 트로이아 전쟁은 내내 수세에 몰려 있던 트로이아 군대를 한껏 분발시켰고, 그리스 군대는 자신들이 타고 온 함선들이 모조리 불타기 직전에 내몰릴 정도로 궁지에 빠진다.

 

제우스와 테티스 말고도 그리스 군대를 편드는 신들은 여럿 더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제우스의 딸인 아테네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두 여신들은 이미 파리스의 심판에서 아프로디테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테네는 전쟁의 여신이니 전쟁에서의 고비때마다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제우스와 형제 사이인 포세이돈 역시 그리스 편이다. 대지를 흔드는 신인 포세이돈은 과거에 한때 트로이아의 성벽을 쌓아준 일이 있었다. 트로이아의 왕이었던 라오메돈의 부탁으로 성의껏 도와줬지만, 그때 라오메돈은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고 포세이돈을 몹시 박대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포세이돈의 하소연을 잠시 들어 보자.

 

이번에는 아폴론을 향해 대지를 흔드는 통치자가 말했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생각이 모자라구려. 그대는 여러 신들 중에

우리 둘만이 일리오스에서 고생하던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가!

그때 우리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오만한 라오메돈에게 가서

정해진 보수를 받기로 하고 만 일 년 동안 그자를 위해

봉사했고 그자는 우리에게 명령을 내렸었지.

나는 트로이이인들을 위해 그들의 도시가 함락되지 않도록

도시 주위에 넓고 더없이 아름다운 성벽을 쌓아주었고

포이보스여! 그대는 숲이 우거지고 주름이 많은 이데 산의

계곡에서 걸음이 느리고 뿔이 굽은 소 떼를 먹였지.

하지만 즐거운 계절들이 보수의 기한을 다 채웠을 때

무서운 라오메돈은 우리에게서 보수를 전부 빼앗고는

협박하며 우리를 내쫓았지.

그는 우리의 손과 발을 함께 묶어

멀리 떨어진 섬에 갖다 팔겠다고 위협했지.

그리고 그는 우리 둘의 귀를 청동으로 자르겠다고 공언했지."

 

 - 『일리아스』, 제21권 441행∼455행

 

 

라오메돈 왕은 요즘으로 치자면 악덕 임금체불업자나 다름없었다. 더군다가 그가 실컷 부려먹었던 사람들이 막강한 아폴론과  포세이돈이었으니 라오메돈은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친 셈이었다. 라오메돈의 아버지는 일로스(이 이름에서 '일리아스'가 생겨났다.)였고, 할아버지는 트로스(이 이름에서 '트로이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였다. 라오메돈 왕의 '약속 불이행'은 비단 이때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바다괴물에게 붙잡히자 딸을 구해주면 자기 명마들을 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때 사기를 당한 인물은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였다. 열이 잔뜩 받은 헤라클레스는 '약간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트로이아를 손쉽게 함락하고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모조리 죽인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트로이아 전쟁때의 왕이었던 프리아모스 대왕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때 바다괴물로부터 구한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부하 장수 텔라몬에게 주었고, 그녀는 그리스군의 명궁이자 '큰 아이아스'의 이복동생인 테우크로스를 낳았다. 트로이아 전쟁에는 텔라몬의 두 아들인 큰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는 물론이고, 헤라클레스의 아들까지도 전쟁 영웅으로 활약하는데,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이들 영웅들의 아버지가 팔팔하던 젊은 시절부터 이처럼 다양한 사건들로 이래저래 엮여 있었던 셈이다.

 

다시 '신들의 전쟁' 이야기로 되돌아 오자. 방금 『일리아스』에서 인용한 싯구에서 보듯이,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한때 트로이아의 튼튼한 성벽을 함께 쌓아준 인연이 있었다. 그런데도 왜 아폴론은 트로이아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도리어 트로이아를 편들고 있는 걸까? 그건 바로 아폴론의 사제였던 크뤼세스 때문이었다. 그가 전쟁통에 붙잡혀 간 자신의 딸을 구하려고 아가멤논을 찾아갔지만 거기서 난폭하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자신을 위해 신전을 짓고 제물을 바친 사제의 간청을 들어준다. 자신의 주특기인 날카로운 화살들로 그리스인들을 괴롭히고 그리스 군대에 역병이 돌게 만드는 역할도 아폴론이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아폴론은 '신들의 계보'에서는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 낳은 자식이다. 헤라와 아테네에게 한 방 먹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역시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잉태된 딸이었다.

 

여기에 더해, 전쟁이라면 아무런 계획도 절제도 없이 마구 뛰어드는 '전쟁의 신' 아레스까지 트로이아 전쟁에 뛰어든다. 그는 만용이 지나쳐 그리스군 장수 디오메데스의 창에 부상당하기도 하고,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에게 13개월 동안 포로로 붙잡히기도 한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체통이 말이 아니다. 아레스는 또한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밀애를 즐기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고안한 교묘한 그물에 갇혀 신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아레스가 아프로디테와 함께 트로이아 군대를 편들고, 오쟁이 진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그들에 맞서 그리스 군대를 편드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헤파이스토스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긴다. 무구(武具)마저 잃어버린 아킬레우스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창과 방패와 투구와 정강이받이 등 제구일급(諸襲)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전에 아킬레우스는 절친인 피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무구를 몽땅 빌려 줬는데, 그가 헥토르와 싸우다가 자신의 목숨과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한꺼번에 다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 트로이아 전쟁은 외견상으로는 '한 남자의 오입질' 때문에 빚어진 인간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지만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신들의 뜻이었노라고 노래한다. 한낱 필멸의 인간들이 어찌 감히 신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면서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넌지시 충고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비록 필멸의 존재라고는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언제나 최고의 미덕이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나 제우스의 아들로 인정(?) 받았던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 또한 자신들의 운명을 미리 알고도 불굴의 인내와 노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 임파서블' 저리 가라 싶은 지난한 과업들을 이룩해 냈다. 참혹한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을 더 방황한 끝에 고향 이타케에 당도한 오뒷세우스나 불구덩이 속에서도 아버지를 등에 업고 트로이아를 빠져나와 간난신고 끝에 로마를 건국한 아이네이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난이 없는 영웅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런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방대한 등장 인물들은 물론이고 온갖 상세한 지명과 사건들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 등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서 이 이야기가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아니면 눈 먼 음유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전승된 이야기에 자신의 창작 솜씨를 덧붙여 꾸며낸 이야기인지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경계가 모호하다. 그 유명한 <함선 목록>만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이토록 구체적인 연합군의 함선 목록이 실제적인 사실의 뒷받침 없이 어떻게 꾸며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그 목록이나 함선의 숫자들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어디서 누가 몇십 척씩 이끌고 왔다는 설명이 그리스 군대에서만 29차례에 걸쳐 낱낱이 소개되고, 함선들의 숫자는 3척, 7척, 9척까지도 일일이 따로 소개한 끝에 도합 1,186척에 이른다. 척당 80명씩만 잡아도 무려 10만에 가까운 군대가 트로이아 땅에 집결한 셈인데, 그토록 많은 군대와 말들을 먹일 식량이 10년 동안에 어떻게 조달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실제와 허구와 상상이 이처럼 한꺼번에 절묘하게 녹아 있는 고대의 문학 작품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그토록 훌륭하고 완벽한 고대의 영웅 서사시라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마저 뛰어넘을 수는 없다. 비록 호메로스가 아무리 교묘한 솜씨로 이들 영웅들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자주 엿보게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일리아스』를 아무리 거듭해서 읽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트로아이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일부분밖에는 알지 못한다. 가령, 파리스의 심판으로부터 비롯된 전쟁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불화 때문에 그리스 군대의 패전 위기로 내몰렸다가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의 참전으로 다시 재역전되고,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마저 죽이겠다고 덤벼들다가 전사하고, 절친을 잃고 비탄과 분노에 휩싸인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트로이아 군대의 핵심이자 가장 사랑했던 아들인 헥토르를 잃고 비탄과 절망에 빠진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홀홀단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고, 아킬레우스의 막사에서 극적으로 회동한 두 사람이 '동병상련'을 느끼며 함께 꺼이꺼이 울고 난 뒤에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잠정적인 휴전 상태에서 헥토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른다는 얘기 말이다. 딱 여기까지다.

 

그러니 독자들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아무리 열심히 읽더라도 궁극적으로 영웅 아킬레우스가 과연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고, 그때 그토록 훌륭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 테티스의 비탄과 고통이 얼마만큼 컸고, 10년 동안이나 함락하지 못한 트로이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트로이의 목마'가 누구의 아이디어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트로이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함락된 끝에 비참하게 무너졌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군대가 어떤 방식으로 전리품들을 나눠 가진 끝에 각자의 귀향길에 올랐으며, 또 각자 귀향길과 자신의 궁궐에서 어떤 비참한 운명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 모든 나머지 이야기들은 호메로스의 관심 영역 밖이었던가?

 

그래서 우리는 『일리아스』가 훨씬 더 방대한 전체 이야기의 자그마한 일부라는 사실을 한번쯤 고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 서사시가 얼마만큼 많이 존재했는지, 고대의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가 얼마만큼 인류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를 '거대한 전체 속의 일부'로서 들여다볼 때 보다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서사시권(敍事詩卷)'이라는 큰 전체의 일부분이다.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서사시들은 모두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을 차례로 하나씩 살펴 보자.

 

그 첫 번째는 『퀴프리아』다. 여기서는 이른바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취급한다. 우리가 『일리아스』를 통해 희미하게나마 그 전말을 알고 있는 '황금의 사과' 이야기 또한 『퀴프리아』에 자세히 담겨 있으리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두 번째가 바로 『일리아스』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일리아스의 다음 이야기가 제일 궁금하다. 그 내용이 바로 세 번째인 『아이티오피스』에서 이어진다. 여기에는 아킬레우스가 여인족 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와 아이티오페스족의 왕 멤논을 죽이고 나서 자신도 아폴론 또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죽는 장면이 담겨 있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멤논이라는 인물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고, 고대 이집트의 도시인 테베(오이디푸스 왕이 다스렸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바이도 여기서 이름을 따왔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도 이 고대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로, 옛날부터 유명한 도시였다.)에도 그의 거대한 석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데, 『일리아스』에서는 이 인물의 이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 암포라의 그림 부분, BC 525년경, 런던 대영박물관

 

 

나는 10여 년 전에 이집트의 고대 도시 테베에 갔을 때 '멤논의 거상'을 직접 본 일이 있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무척 자주 등장한다는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더 이상은 자세히 몰랐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헥토르가 죽은 뒤에야 뒤늦게 그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했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었고, 나중에는 제우스의 배려로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일리아스』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포함하는 거대한 전체인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일부를 장식하는 핵심 인물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인물을 기리기 위한 거대한 석상이 이집트 고대 문명의 중심이었던 테베에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트로이아 서사시권'이 얼마나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인류 문명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새삼 반증하는 셈이다.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스』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에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巫具)들을 놓고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야기인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의 목마 작전'에 따라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두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두 영웅이 벌였을 엄청난 경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에서 너무나 상세히 묘사된 덕분에 후세에 널리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숱한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담긴 '아이아스의 자결'을 형상화한 모습을 담은 도자기

 

 

또한 『일리오스의 함락』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야말로 트로이아 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희귀한 창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트로이아의 목마에 얽힌 이야기가 온전히 전해지는 문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토록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낸 꾀많은 오뒷세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뒷세이아』에서도 그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옛 이야기 중에서 희미하게 잠깐씩 비칠 뿐이다. 숱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들도 트로이의 목마를 핵심 포인트로 삼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토록 대중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사물이 온전한 텍스트도 없이 3,000년이 넘도록 인류의 기억 속에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례도 찾기 어렵지 싶다. 어쩌면 트로이아의 목마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에서 드문드문 엿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로마 건국 신화를 담은 그 이야기 속엔 '트로이아가 얼마만큼 비참한 모습으로' 몰락했는지를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에 '트로이의 목마'가 결코 빠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때 라오코온이 수많은 무리가 뒤따르는 가운데

앞장서서 성채 위에서 쏜살같이 뛰어내려오며

멀리서 외쳤습니다. '오! 가련한 동포들이여,

그대들은 그토록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들은 적군이

배를 타고 떠난 줄 아시오? 일찍이 다나이족의 선물에

음모가 없었던 적이 있나 생각해보시오.

그대들은 울릭세스(=오뒷세우스)를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었소?

이 목조물 안에 아키비족(=아카이오이족)이 숨어 있거나,

우리의 집들을 들여다보고 위에서 시내로 내려와

우리의 성벽들을 공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계략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소. 말(馬)을 믿지 마시오,

테우케르 백성들이여.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다나이족이 선물을 가져올 때에도 두렵소.'

이렇게 말하고 그는 짐승의 옆구리에, 널빤지들을 둥그스름하게

이어붙인 복부에 힘껏 큰 창을 던졌습니다. 창은 떨면서 그곳에 꽂혔고,

충격이 가해지자, 텅 빈 뱃속이 공허하게 울리며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뒤틀리지만 않았더라면,

신들께서 내리신 운명대로 우리는 아르골리스인들의 은신처를

칼로 열어젖혔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트로이야는

아직도 서 있을 것이고, 프리아무스의 높은 성채여, 너도 남아 있겠지.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2권 40∼56행

 

 

이제껏 살펴본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다섯 편이 전쟁을 노래하는 데 반해 나머지 세 권에서는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여섯 번째인 『귀향』은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다른 그리스군 장수들의 귀국을 노래하며, 일곱 번째가 바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여덟 번째는 『텔레고노스 이야기』인데, 고향 이타케 섬으로 돌아온 오뒷세우스가 또다시 여행에 나서는 이야기와 그의 아들 텔레고노스에 의해 오뒷세우스가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말고도 여섯 편에 더 담겨 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숨이 벅차고 충분히 놀라운데 그리스인들은 이것 말고도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테바이 서사시권' 이야기까지 남겼다. 그나마 '테바이 서사시권'은 규모가 훨씬 단촐하기는 하다. 이것은 오이디푸스 왕의 놀라운 운명을 노래한 『오이디푸스 이야기』(Oidipodeia)와 오이디푸스 왕의 추방된 아들 폴뤼네이케스를 중심으로 모두 일곱 장수들이 테바이를 공격한 이야기를 노래한 『테바이 이야기』, 그리고 이들이 테바이 공략에 실패한 뒤에 그의 아들들이 결국 테바이 공격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은 『후예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무리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결국 '트로이아 서사시권'과 '테바이 서사시권'을 아우르는 방대한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은 『일리아스』를 읽는 동안에도 실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하는 무수히 많은 영웅호걸들 가운데에는 '테바이 서사시권'에 속하는 이야기인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후손들까지도 자주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다. 그는 힙폴로코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와의 일전을 앞두고 서로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다면 그대는 먼 옛날 부조(父祖) 때부터 나의 빈객(賓客)이오'라는 말을 건네면서 전차에서 뛰어내려 서로의 손을 잡고 우정을 다짐한다. 그리고는 서로의 무구들을 교환한다. 이때 글라우코스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었는지는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인용될 정도였다. 그는 황소 백 마리의 값어치가 있는 자신의 황금 무구들을 황소 아홉 마리의 갑어치밖에 안 되는 디오메데스의 청동무구들과 맞바꾸고 말았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거대한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이다. 흔히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모두 305편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작품들을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작품들은 불과 33편에 불과하다. 그 33편 가운데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그 절반인 16편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시간으로 따져보면 『일리아스』와 겹치는 작품은 『레소스』 밖에 없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란 뜻으로,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신들』,『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비극 3부작이다.)만 하더라도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사건들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아가멤논은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된다. 아가멤논이 살해될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오레스테스는 훗날 청년이 되어 누이동생 엘렉트라와 함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벗어나면 이토록 비극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또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셈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 개요>


 (트로이아 전쟁과 헬레네의 행방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인용)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 『필록테테스』도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시기를 벗어난다. 그의 이름은 <함선 목록>에도 당당히 올라 있을 정도로 트로이아 전쟁에서는 꽤나 비중 있는 인물이었지만 『일리아스』에서는 딱 한 번만 언급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메로스가 이 희귀한 인물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들까지 몰랐던 건 결코 아니었다. 『일리아스』에서 잠깐이나마 그의 운명을 넌지시 암시하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 인물에 대한 회화와 조각작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을 정도인데, 『일리아스』에서만큼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인물일 뿐이다. 그가 서양예술의 온갖 분야에서 오랫동안 비중있는 인물로 기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로빈슨 크루소의 진정한 원조(元祖)여서? 아니면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신궁(神弓)을 물려받은 인물이어서? 아니면 그가 전쟁의 원흉인 파리스를 쏘아 죽여서? 아무튼 그는 『일리아스』를 벗어나면 꽤나 유명한 인물로 돌변하는 인물임엔 틀림없다. ☞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메토네와 타우마키에에 사는 자들과,

멜리보이아와 울퉁불퉁한 올리존을 차지한 자들,

이들의 함선 일곱 척은 궁술에 능한 필록테테스가 지휘했다.

배마다 선원들이 쉰 명씩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궁술에 능한 용감한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휘자는

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신성한 렘노스섬에 누워 있었다.

파멸을 꾀하는 물뱀에게 심하게 물려 괴로워하던 그를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이 그곳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 괴로워하며 누워 있지만, 아르고스인들은 머지않아

함선들 옆에서 바로 그 필록테테스 왕을 생각해야 할 운명이었다.

 

 - 『일리아스』, 제2권, 716∼725행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들은 트로이아가 함락된 이후에 '트로이아 여인들'이 겪는 끔찍한 참상들을 낱낱이 묘사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일리아스』 이후의 사정들을 파악하는데 더없이 요긴하다. 한때 가장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던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가 전쟁통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딸과 막내 아들을 어떻게 비통하게 잃었으며, 헥토르의 아내였다가 패전 후에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의 첩으로 전락한 안드로마케가 어떤 기구한 운명들은 두루 겪었는지는 『일리아스』에서 예고편으로 슬쩍 엿보여준 내용들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구를 번쩍이는 위대한 헥토르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난들 어찌 그런 모든 일들이 염려가 안 되겠소, 여보!

(…)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해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누군가 눈믈을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당신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당신이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

그때는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말하겠지요.

'저 여자가 헥토르의 아내야. 사람들이 일리오스를 둘러싸고 싸울 때

그는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 중에서 으뜸가는 전사였었지.'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굴종의 날에서

당신을 구해줄 그러한 남편이 없음을 새삼스레 슬퍼하게 될 것이오.

당신이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주었으면!"

 

 - 『일리아스』, 제6권 440∼465행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일리아스』의 밖에서 또다시 차고 넘치도록 쏟아져 나왔다고 하더라도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가 지니는 불후의 위상이 낮아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트로이아 서사시권' 가운데 유독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이 온전히 전해진 데에는 그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는 '플롯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뒷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뒷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8장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8  그리고 『소(小) 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주석
 

8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군의 집결』, 『스퀴로스의 아킬레우스』, 『텔레포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등 많은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만 하더라도 '너무나 방대해서' 좀처럼 완독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더해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나머지 6편까지도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졌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아마도 그 작품들을 모두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벅찬 독서과제였을 게 틀림없다. 물론 몽테뉴와 같은 인물들은 우리와는 정반대로 두 팔을 들고 환호작약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사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까지를 포함하면 더욱 심해진다. 소위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만 하더라도 무려 305편에 이르는데 그 작품들이 온전히 다 전해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나마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작품이 고작 33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도리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일리아스』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트로이아 서사시권'을 거쳐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들로 확장되다 보니 이 페이퍼가 다루는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진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제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되돌아 가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벗어난 고대의 작품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일리아스』라는 단 하나의 작품이 품고 있는 방대함과 탁월함은 그 어떤 다른 문학작품들과도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모두 24권으로 된 『일리아스』 하나만 하더라도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다른 4개의 전쟁 서시사를 모두 합친 것(22권)보다 길며,  24권으로 된 『오뒷세이아』 또한 다른 영웅들의 귀국을 노래한 것(5권)보다 훨씬 더 방대하니 말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함선 목록>처럼 단지 물질적인 요소들만 방대하게 수록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지닌 온갖 다양한 감정들이 등장인물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롭게 담겨 있다. 그토록 등장 인물들도 많고, 각각의 인물들마다 사연도 많고, 전투에서 적과 맞닥뜨려 싸우다가 다치고 죽는 모습들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일 터인데, 호메로스는 10년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던 그 유명한 전쟁 이야기를 과연 어떤 식으로 들려줬던가.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안에서 진행된 9년 동안의 일들을 단지 50일 동안의 사건을 통해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가운데서도 역병이 만연하던 9일, 올륌포스의 신들이 아이티오페스족의 잔치에 가 있던 12일,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모욕하던 12일, 헥토르의 화장을 위해 장작을 준비하던 9일을 빼고 나면 실제로 '실시간 생중계 화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된 날들은 불과 며칠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일리아스』를 읽고 나면 마치 온갖 무기들이 격렬하게 맞부딪쳐 굉음을 내고, 전차와 말들이 순식간에 주인을 잃고 이리저리 나뒹굴고, 두개골이 박살난 시신들이 처참하게 벌판을 가득 채운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겨우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갖는다. 호메로스의 묘사가 그만큼 탁월하고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를 이야기하자면 그를 흠모했던 숱한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그런 인물들 모두가 호메로스에게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플라톤만 하더라도 『국가』에서 호메로스의 문장들을 얼마나 심하게 타박했던가. 수많은 문장들을 일일이 적시하면서까지 말이다. 그의 비판 요지는 간단했다. 시인은 진실재인 '이데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상을 화가처럼 '모방'하기만 하는 모방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스스로 '시의 매력'에 한없이 이끌리면서도 결국 '이데아'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과 모순되기 때문에 '시인'을 비판해야만 했다. 플라톤의 '시인에 대한 비판적 철학 이론'은 나중에 결국 쇼펜하우어에 의해 '플라톤의 결함'으로 비판받게 되고, 니체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까지 부르기에 이르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록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시'에 대해 서로 확연히 다른 철학적 입장을 보인 점은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제자가 무작정 스승의 입장만을 옹호했더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결코 쓰여지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호메로스를 사랑했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으뜸으로 내세우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몽테뉴가 제격이 아닐까 싶다. 입심좋은 그가 호메로스를 두고,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왔다.'고까지 말한 것도 지나친 너스레가 아니라 진실로 아름다운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호메로스이다. ······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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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부끄럽지도 않소? 아르고스인들이여, 풋내기들이여! 그래도

나는 그대들이 분전하여 우리 함선들을 구해주리라 믿었소.

만약 그대들이 참혹한 전쟁을 그만두려 한다면 이제야말로

우리가 트로이아인들에게 쓰러질 날이 다가왔소이다.

아아, 나는 이 두 눈으로 큰 기적을 보고 있소이다!

트로이아인들이 우리 함선들을 향해 진격해오다니,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그들은 전에는 날랜 암사슴 떼와도 같았소. 숲 속에서

승냥이나 표범이나 이리 떼의 먹이가 될 뿐 아무런 전의도 없이

공연히 떠돌아다니는 허약한 암사슴 떼 말이오.

꼭 그처럼 트로이아인들은 전에는 감히 아카이오이족의

용기와 팔에 잠시도 맞서려 하지 않았소. 하나 지금

그들은 도시에서 멀리 나와 속이 빈 함선들 옆에서

싸우고 있소. 이는 모두 지도자의 무능과 백성들의 태만 탓인즉,

백성들은 지도자에게 불만을 품고 빨리 달리는 함선들을

지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옆에서 죽어가고 있소.

설사 넓은 땅을 통치하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영웅

아가멤논이 준족인 펠레우스의 아들을 모욕하여

이 모든 불행을 초래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전쟁을 그만두어서는 아니 되오. 자, 어서

바로잡읍시다! 고상한 자의 마음은 바로잡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대들은 모두 진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들이거늘 그대들이

열화 같은 투지를 늦춘다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오.

나는 약골이기에 전쟁을 포기하려는 그런 사람과는 다투고 싶지도

않소이다. 하나 그대들에게는 진심으로 화내지 않을 수 없소.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태만으로 머지않아 더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각자 마음속에 수치심과 의분을

느끼도록 하시오! 진실로 큰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오.

목청 좋은 강력한 헥토르는 함선들 옆에서 싸우고 있고,

그는 이미 문과 긴 가로장을 부숴버렸소."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13권 95행 - 124행

 

(나의 생각)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찬찬히 다시 읽는 동안에, 이 방대한 서사시에 담긴 온갖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만한 교훈들이 너무나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위에서 짧게 인용한 대목만 하더라도 그렇다.  여기서 아르고스인들(그리스인들)을 격려하는 인물은 '대지를 떠받치는 신'으로 불리는 포세이돈이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동안에) 트로이아 군대가 용기백배하여 그리스인들의 방벽을 무너뜨리고 함대 근처까지 쳐들어와 그리스 군대를 마구 도륙하는 상황을 보다 못해 기어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수세에 몰린 그리스 군대를 격려하기 위해. 이때 포세이돈이 물 흐르듯 거침없이 내뱉는 말들이 그저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한낱 신화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포세이돈의 연설 속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과 '제재 완화'를 둘러싸고 동맹국 사이에 불거진 심각한 입장 차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관 후보들의 자질 검증을 위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인물들이 저지른 온갖 편법들이나 청와대 대변인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뻔뻔스러운 '부동산 투기에 대한 변'을 떠올리는 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포세이돈의 입에서 흘러나온 저 말들이 어쩌면 이토록 오늘날의 상황에 적확하게 들어맞는지 그게 놀라울 뿐이다.

 

부끄럽지도 않소?

지도자의 무능

머지않아 더 큰 재앙

수치심과 의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을 때마다 이 작품에 바친 숱한 인물들의 놀라운 찬사를 다시금 음미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은 주로 몽테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이다. 호메로스에 대해 그가 남긴 다음 문장들은 인류 최고의 시인에게 바친 몽테뉴의 엄청난 헌사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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