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 너무나 엉망진창이다. 고작 이런 꼴을 볼려고 촛불을 들었나 싶은 자괴감이 들던 때도 잠시였다. 내우외환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싶다. 거의 모든 경제 지표는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가 경제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주식시장이 '금융위기 수준'의 한국 경제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코스피 :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최고치 대비 0.92% 하락, 2018년 1월 최고치 대비 20.74% 하락

코스닥 :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최고치 대비 23.36% 하락, 2018년 1월 최고치 대비 30.84% 하락

다우 :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최고치 대비 91.52% 상승, 2009년 저점 대비 320.29% 상승

나스닥 :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최고치 대비 191.11% 상승, 2009년 저점 대비 558.24% 상승 

 

국가의 지도자는 거듭된 실책과 외교적인 무능으로 일관한 채 거의 모든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점점 더 악화일로로 내몰고 있다. 중국으로부터는 안보 목적의 사드 배치를 계기로 치욕스러운 '삼불 정책'까지 약속하고도 여전히 보복으로 억눌린 채 도리어 중국으로부터 '사드 문제 해결'을 공식적으로 요구받고 있는 상태다. 러시아로부터는 명백히 영공을 침범당하고도 도리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쩔쩔 매다가 국가적인 망신만 초래했다.

 

오래도록 혈맹 관계였던 미국과는 '대북 제재 해제 문제' 하나만 두고도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다가 차츰 더 멀어지는 형국이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부당한 경제 보복을 당하는 데도 '적극적인 중재'에는 명백하게 거리를 두는 모습이 단적인 사례이다. 지난주에 또다시 쏘아 올린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아예 '미국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라며 태연자약하게 무시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미국과는 도대체 얼마나 소원해진 것인가.

 

한국과 일본 사이는 어떤가. 수십 년 동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고, 지금도 G2 다음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세계 3위의 기술 초강대국을 상대로 우리는 뾰족한 대책도 없이 소모적이고 무분별한 갈등을 확산시키고 있다. 정말로 일본이 우리에게 적대국인가? 세계적인 경제 대국과 무역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후발 경제 강국이 서로를 이웃나라로 둔 잇점을 오랫동안 향유해 온 공생 관계가 아니었던가? 이런 이웃나라를 두고 양국의 통치자들이 벌이는 얄팍한 정치 싸움에 경제와 민생이 희생되어서 결코 좋을 리 없다. 국민들은 나날이 시름만 깊어가는데 이 싸움을 주도하는 양국의 집권 세력들은 국민들을 싸움판에 내모는 데 정신이 온통 팔려 있다. 그들의 강공 논리는 너무나 저열하고 매국적이다. 이번 싸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규정하는 게 대표적이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북한과의 관계는 어떤가. 전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세습 통치자가 대한민국의 통치자와 국민들을 능멸하는 수준의 망발을 연일 쏟아내는 데도 통치자는 며칠째 오불관언 입을 꾹 닫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무반응'이야말로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 지도자의 신성한 책무를 함부로 내팽개치고 무시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도대체 어쩌다가 나라가 이런 우스운 꼴로 추락하고 말았는가. 경제 상황은 나날이 나빠지고 국민들의 삶은 점점 더 바닥으로 내몰리는 데도 집권자들의 '뻔한 선수 교체' 행사에서는 함박웃음과 격려와 칭찬 일색이다. 국민들의 비판과 야유에는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닫겠다는 심산인지, 그런 '비판과 야유'마저도 '애국심의 발로'로 받아들일 만큼 '포용 국가'의 진면모를 발휘하겠다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는 '토붕'이 '와해'보다 무섭다는 말이 나온다. 흔히 토붕와해(解)로 함께 묶여서 쓰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경중은 무시될 때가 많다. 말 그대로 '흙이 붕괴되고 기와가 깨진다'라는 뜻으로, 사물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궤멸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그런데 왜 사마천의 책에서는 와해보다 토붕이 더 무섭다고 했을까. 와해는 수습할 수 있지만 토붕은 수습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 * * 

 

 

이때 조나라 사람 서악徐樂과 제나라 사람 엄안嚴安도 글을 올려 각각 당면한 정사를 한 가지씩 말했다. 서악은 이렇게 말했다. 

 

신이 듣건데 천하의 근심은 토붕土崩에 있지 와해瓦解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토붕이라고 합니까? 진나라의 말세가 이것입니다. 진섭陳涉은 천승의 높은 지위에 있지도 않았고 땅도 한 자 없었습니다. 신분도 왕공이나 대인이나 명족의 후손이 아니고, 향리에서도 명예가 없었으며, 공자나 묵자나 증자 같은 현인도 아니고, 도주陶朱나 의돈猗頓 같은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난한 골목에서 일어나 갈래 진 창을 휘두르며 한쪽 팔을 걷어붙이고 큰소리로 부르자, 천하 사람들이 바람에 휩쓸리듯이 그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백성이 괴로워해도 군주가 그들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아랫사람이 원망해도 위에서는 알지 못하고, 풍속이 이미 어지러워져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가 진섭의 밑천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토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하의 근심은 토붕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와해라고 합니까? 오, 초, 제, 조나라의 반란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곱 나라가 대역을 도모하고 저마다 만승의 천자라 일컬으며, 무장한 병사가 수십만 명이고, 위세는 그들의 영내를 압도할 만하며, 재력은 사민士民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쪽으로 한 자 한 치의 땅도 빼앗지 못하고 중원에서 사로잡히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의 권위가 보통 남자보다 가볍고 병력이 진섭보다도 약했던 탓이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선제(한나라 고조)의 은택이 아직 쇠하지 않았으며, 그 땅에서 안주하여 풍속을 즐기는 백성이 많았기 때문에 제후들에게는 밖에서 도움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와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근심은 와해에 있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이로부터 보면 천하가 진실로 토붕의 형세로 기울면 지위나 벼슬도 없이 궁핍하게 지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악한 짓을 하여 천하를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진섭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하물며 삼진의 군주와 같은 [천자의 자리를 탈취하려는] 자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천하가 아직 잘 다스려지지 않았더라도 진실로 토붕의 형세가 없다면 강한 나라와 강한 병사가 있을지라도 발뒤꿈치를 돌릴 겨를도 없이 사로잡힐 것입니다. 오, 초, 제, 조나라가 바로 이러했습니다. 하물며 신하나 백성이 어떻게 난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이 중요한 두 가지는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명백하고도 긴요한 일이니, 현명한 군주라면 여기에 뜻을 두고 깊이 살핍니다.

 

요즈음 관동에서는 오곡이 잘 여물지 않아서 연간 수확이 예전처럼 회복되지 못해 백성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변방에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리에 따라 살펴보면 백성 중에 그곳을 편안하게 여기지 못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편안하게 여길 수 없으면 동요하기 쉽습니다. 동요하기 쉬운 것은 토붕의 형세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만물 변화의 근원을 살펴서 국가 안위의 기틀을 분명히 하고 조정에서 이것을 해결하여 우환이 드러나기 전에 없애 버립니다. 중요한 것은 천하에 토붕의 형세가 없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434∼435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평진후 · 주보 열전> 중에서


 

 * * *

 

 

엄안은 글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신이 듣건대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잘 다스린 것이 300여 년인데 성왕과 강왕 때에 가장 융성하였으며 ……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큰 무리가 작은 무리를 학대하며 …… 이로부터 백성의 괴로움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강한 나라는 침략을 일삼고 약한 나라는 지키기에 급급하여 혹은 합종을 하고 혹은 연횡을 하며 바퀴를 부딪치며 수레를 달리니, 투구와 갑옷에는 이가 들끓건만 백성은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진나라 왕은 천하를 서서히 집어삼켜 전국戰國을 아우르고 황제라 일컬으면서 천하의 정권을 잡고, 제후의 성을 파괴하고, 그들의 무기를 녹여서 종과 종틀을 만들어 다시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선량한 백성은 이제는 전국의 불안에서 벗어나 현명한 천자를 얻었다고 하며 저마나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진나라가 형벌을 느슨하게 하고 부세를 줄이고 부역을 덜어 주고, 인의를 존중하고 권세와 이익을 가볍게 여기며, 독실하고 돈후한 것을 숭상하고 교활한 지혜를 나쁘게 여기고, 좋지 못한 풍속을 바꿔서 천하를 교화시켰더라면 대대로 편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교風敎를 실천하지 않고 옛날 습관대로 교활한 지혜와 권세와 이익을 좇는 자는 끌어다 쓰고, 독실하고 돈후하며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자는 물리치며, 법은 엄중하고 정치는 준엄했습니다. 아첨하는 자가 많아 황제는 날마나 자신을 찬미하는 말만 듣다 보니 야심이 커지고 마음이 교만해져서 천하에 위세를 마음껏 떨쳐 보고 싶어졌습니다. … 이때 진나라의 화는 북쪽으로는 흉노 땅에 걸치고, 남쪽으로는 월나라에 뻗쳐 군대를 쓸모없는 곳에 주둔시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데 있었습니다. 십여 년간의 싸움에 장정들은 갑옷을 입고 여자들은 물자를 실어 나르느라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삶을 마다하고 스스로 길가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는 자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에 큰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진陳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무신과 장이는 조나라에서 군사를 일으켰으며, 항량은 오나라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  심산유곡에서까지 호걸들이 아울러 일어났으므로 다 적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공작이나 후작의 후손도 아니고 장관의 아전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 한 자 한 치의 조그마한 세력도 없이 거리에서 일어나 갈래 진 창을 잡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모의하지 않았지만 함께 일어났고, 약속하지 않았지만 함께 모였으며, 점거한 지역이 점점 커지고 넓어져서 패왕覇王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당시 진나라의 포악한 정치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

 

 지금 중국은 개 짖는 소리에 놀랄 일이 없을 만큼 태평스러운데, 나라 밖 먼 곳의 수비에 얽매여 국가를 황폐시키는 것은 백성을 자식처럼 여겨야 하는 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끝없는 욕망을 실천하기 위해서 마음껏 행동하여 흉노와 원한을 맺는 것은 변경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닙니다. 화가 맺혀 풀어지지 않고 전쟁이 그쳤는가 하면 다시 일어나, 가까이 있는 자는 걱정하고 괴로움을 겪을 것이며 멀리 있는 자는 놀랄 테니 이것은 천하를 오래도록 지탱하는 길이 아닙니다.

 

지금 천하는 갑옷을 단단히 입고 칼을 갈며 화살을 바로잡고 활줄을 매며 군량을 나름에 쉴 새가 없으니, 이것은 천하 사람이 모두 우려하는 바입니다. 대체로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변란이 일어나고 일이 복잡해지면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 또 최근에 진나라가 멸망한 까닭을 살펴보면 그 법령이 지나치게 엄하고 욕심이 커 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 태수의 권세는 육경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땅이 사방 천 리쯤 되는 것은 [진승 등이] 마을을 근거로 삼은 것에 비할 바가 못 되고, 갑옷과 무기도 정교하여 갈래 진 창의 쓰임에 비할 바가 안 됩니다. 만일 만세의 큰 변란이라도 일어난다면 나라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상서가 천자에게 올려지자 천자는 세 사람을 불러 보고 말했다.

 

"그대들은 모두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소? 어째서 이토록 늦게 만나게 되었단 말이오!"(437∼441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평진후 · 주보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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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축국서(諫逐國書)
    from Value Investing 2019-08-25 17:00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빗대어 '간축국서'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수석을 이제는 과감하게 물리치고 보다 널리 새로운 인재를 구하라는 철없이 순진한(?) 바램으로 써 본 글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 활약했던 승상 이사가 쓴 명문장이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를 담은 서간문 형식의 상서上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역사는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융 현황이 나라 현황의 척도가 아니라 보입니다. ^^

oren 2019-07-28 20:42   좋아요 1 | URL
한 사람의 체온만 가지고 그 사람이 건강한지 쇠약한지를 판단하기 어렵듯이, 한 국가의 종합적인 건강 상태를 단지 주가지수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국가 재정 상태, 무역 수지, 외환보유고, 국방력, 실업률, 환율은 물론 국민들의 통합 정도까지도 두루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마땅할 테니까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도 ‘증시 상황이야말로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이 좋고 나쁨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바로미터(‘척도‘가 아니라 ‘온도계‘) 가운데 하나‘라는 뜻입니다. 증시 지표가 한 국가의 모든 걸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측정하는 ‘만물의 척도‘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 사마천, 『사기』 중에서

 

 * * *

 

까마득한 과거의 역사를 읽는 동안에 우리가 처한 눈 앞의 현실을 겹쳐 떠올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사의 거울'에 비춰 보면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뜻밖에도 몹시 선명하게 그 본질을 드러내 밝혀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때에도 그랬다. 그때 읽었던 역사책들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잘못이 얼마만큼 더 뚜렷하게 드러났는지를 이제 와서 새삼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가 온갖 실정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고 말았을 때, 국민들이 한겨울 추위를 마다 않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외친 단 하나의 구호는 '이게 나라냐'는 거였다. 그만큼 국민들은 대통령의 '제멋대로식 권력 행사'에 대해 거센 분노를 쏟아냈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은 통치자에게 그런 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라고 나라를 맡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가 그때만큼 절절하게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 든 적도 일찌기 없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줄 몰랐다. 수차례에 걸친 대국민 담화와 변호인의 기자 회견과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거짓과 변명' 뿐이었다.

 

요즘 푹 빠져 읽고 있는 역사책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인데, 이 유명한 역사책을 읽는 동안에도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 속의 사건들이 너무 자주 오버랩된다. 사마천의 책은 기원전 91년에 완성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110년 전에 나온 셈이다. 이토록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며, 21세기에 우리들의 목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까지도 명쾌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은 느낌을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과 인간의 변치 않는 본성들이 그 책 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책은 온갖 권모술수가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난무하던' 저 유명한 춘추전국시대를 주된 시대 배경으로 다루는 데다가, 그 당시 전국 7웅(戰國 七雄)이라고 일컬어지던 일곱 나라가 국가의 존망을 둘러싸고 온갖 비상한 책략과 술책을 총동원했던 까닭에, 오늘날 총성 없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국가 간의 무역 전쟁'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특히나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절박한 과제로 불쑥 떠오른 '한일 무역 전쟁'을 둘러싼 양국 사이의 치열한 다툼을 보노라면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이야기들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더군다나 이번 무역 전쟁이 어느새 '통상적인 무역 분쟁'이 아니라 '어느 한쪽은 옳고 다른 한쪽은 그르다'는 식의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중차대한 전쟁'으로 차츰 확대되고 변질되는 모습은 자못 이채롭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이같은 사건 전개 양상이 양쪽 집권 세력의 교모하고도 주도면밀한 전략 또는 다소 고의적인 상대방 무시 전략 때문에 빚어졌다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키는 형국에 이르렀고, 이번 분쟁을 둘러싼 온갖 해법과 논쟁과 해석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는 것도 모자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무역 전쟁의 원인과 대응 방식'을 놓고 서로 치열한 세력 다툼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고 보니, 이래저래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 국민들로서는 그저 황망할 뿐이다.

 

이 문제가 양국 사이의 '불행한 과거사' 때문에 빚어진 일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양국 사이의 정치외교적인 갈등 때문에 빚어진 문제를 치졸한 '경제 보복'으로 옮겨 간 아베 정권의 잘못을 부인할 사람도 우리나라 국민들한테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정부의 대응은 근본적인 사태 해결 방식인 '외교적인 접근'은 등한시한 채 '무역보복의 부당성'에만 촛점을 맞추는 것인가.

 

물론 처음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기습적으로, 그것도 몹시 치졸한 방식으로 '급소'를 아주 세게 얻어맞았으므로 거기에 마땅한 거센 분노를 터뜨리고, 일본을 부리나케 찾아가서라도 따지고 항의하고, 국제 여론에도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구구절절 호소하고, 세계 만방에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도 마땅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일본의 기습적인 '무역 보복' 조치가 발표되고도 무려 일주일 가까이 침묵했더랬다. 몹시 기이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기나긴 침묵' 자체가 이번 사태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의 무언극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몹시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는데, 정작 그 일을 당하고 나니 너무나 당혹스러운데다가 막상 뚜렷한 대응방법조차 없어서 몹시 당황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과연 그랬다. 대통령도 일본의 보복 조치 이후 최초의 공식적인 대응에서 분명하게 밝혔듯이, 이번 문제는 결국 외교적으로 푸는 게 최선인데도, 도무지 그 해법이 마땅치 않아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가 치졸한 무역 보복으로까지 비화한 데는 우리에게도 몇 가지 귀책 사유가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마땅한 어휘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귀책 사유'라고 표현했지만 우리에게 무슨 크나큰 잘못이 있다기보다는 상대방이 강력하게 항의할 만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미로 쓴 단어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귀책 사유란 폭넓게는 1965년의 한일협정까지도 포함될 수 있으며, 좁게 보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 2018년 10월에 내려진 대법원의 배상 판결, 대법원의 판결이 필연적으로 몰고 올 '일본과의 외교 마찰'에 대한 대처 부족,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등까지도 두루 포함시킬 수 있을 듯하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귀책 사유가 없었더라면 일본이 어떻게 저토록 무모하게 '반도체 핵심 소재'를 무기 삼아 우리의 목줄을 비틀듯이 대담하게 공격할 수 있었겠으며, 우리 정부 또한 기습 공격을 당하고도 무려 일주일 가까이 침묵한 끝에 '외교적인 해법이 최선'이라는 말부터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겠는가.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번 사태가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비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아무리 비난하고 욕을 해도 시원찮을 족속인) 일본이 감히 우리에게 부당한 '경제 침략'을 벌일 수 있느냐는 격앙된 반응이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다짜고짜로 일본을 향해 거세게 덤벼드는 '총반격 모드'로 돌변했다는 게 오히려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의병 운동이 일어나야 마땅하다'는 격한 반응이 뒤따랐고(도대체 '관군'은 어디서 무슨 전투를 벌이고 있었길래!), 청와대 핵심 참모의 SNS에서는 '죽창가'가 올라오더니, 국가 안보실 고위관계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언급할 정도로 사태가 급박하게 '항일 운동'으로 비화되었다. 때마침 지방행사에 참석했던 대통령은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까지 불러냈다. 그러나 이토록 가열차게 전쟁을 독려하는데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점점 더 요원해 보이고, 날이 갈수록 이번 무역전쟁이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가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땅히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 마땅할 문제임은 누구라도 빤히 아는 상식일진데, 정부 당국자들의 입에서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공허한 얘기만 쏟아져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랜 원한 관계가 쌓인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통치자들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부침을 겪게 마련이다. 때로는 누그러지고 때로는 격화된다. 이건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가 그랬고,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제후국들이 그랬다. 섶에 누워 자거나 쓸개를 씹으면서 복수심을 키우다가도(와신상담) 같은 배를 타고(오월동주) 다른 나라를 치기 위해 동맹을 맺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에서야 한일 사이의 갈등이 언필칭 해방 이후 최고조로 나빠졌을까.

 

나는 그 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양국 통치자의 상반된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극우 성향의 아베 정권은 헌법을 고쳐서라도 전쟁 가능 국가가 되려고 혈안이다. 문재인 정권은 진보 정권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좌파 정권에 가깝다. 일본에 대해서는 엄연한 안보 우방국임에도 불구하고 '반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 비해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한없이 나약하거나 지나치게 너그럽다. 우리의 정당한 안보 주권에 관한 문제엿던 '사드 배치' 때만 보더라도 그렇다.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자 주권 포기에 가까운 '삼불 정책'을 선뜻 약속했기 때문이다.

 

양국의 지도자 사이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대법원 판결' 이후로 얼마든지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을 테고, 아베 정권이 저토록 치졸한 '무역 보복'을 감행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문재인 정권에서도 이토록 가열차게 앞뒤 가리지 않고 '반일 투쟁'을 독려하지도 않았을 테고, 심지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식의 '자해 소동'에 가까운 무리수를 꺼내들지도 않았을 테고, 이번 무역 보복의 궁극적인 목적이 '문재인 정권 끌어내리기'라는 섬뜩한 주장이 우리의 귀에까지 들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상관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 문제가 풀릴 테고, 그때 아무쪼록 우리가 보란듯이 일본을 확실하게 눌러 이겼으면 좋겠다. 어쨌든 일본은 우리로서는 용서하기 힘든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역사의 죄인'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임이 명백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꺼림칙한 의문은 남는다. 이번 사태가 악화되면 될수록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국민들에게로 귀착될 게 너무나 빤한 데도 도대체 왜 집권 여당에서는 '궁극적인 해법'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면서 오로지 '반일 운동'으로 똘똘 뭉치는 것만이 최선책인 것처럼 이번 사태를 호도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조항이 그토록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는 데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확산될 게 뻔한 데도, 이번 사태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서둘러 해결하려는 노력은 갈수록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사태가 자꾸만 이상하게 꼬이다 보니 기어이 엉뚱한 데서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현 정권의 2인자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핵심 참모가 이번 대법원 배상 판결에 비판적인 국민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어느 국민이 자기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부당한 보복을 당하는 처지를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현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민들을 하루 아침에 '친일파'로 몰아 세우고, '애국자' 아니면 '매국노'일 수밖에 없다고 규정해 버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당장이라도 죽창가를 부르며 일본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어 싸워야만 '애국자'인가.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양국의 갈등을 해소할 묘책은 없을까 고민하고 모색하는 사람들까지도 한사코 '친일파'로 규정하고 낙인찍어야 옳을 일인가. 국민들은 다만 양국 사이의 싸움이 커질수록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일본이 저토록 길길이 날뛰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 연유를 살펴 보고, 혹여 우리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라도 찾아낼 수 없을까 하고 살필 따름이다. 그래서 사법부의 판단이나 정부의 후속 대응에 대해서도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살피면서 이런 저런 견해를 밝힐 뿐이다. 그런데 정권의 2인자가 '죽창가'를 내세우면서까지 전투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도 부족해서, 현정부의 대처 방식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규정하겠다니 이런 억지와 오만이 어디 있는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고달프고 힘겨워 하루라도 빨리 궁극적인 해법을 모색해 달라거나, 일본과 정치적으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여지는 없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봐 달라는 요구가 그렇게도 못마땅한가. 현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는 국민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낙인찍고 한켠으로 따돌린다고 해서 도대체 사태 해결에 무슨 보탬이 되는가.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고 그저 매국노일 뿐인가. 느닷없는 무역 보복 때문에 날로 시름이 깊어가는 데도 그저 가만히 앉아서 피해만 당하는 국민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비록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훗날의 역사가들은 청와대 민정 수석의 이번 '친일파' 발언을 '문재인 정권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망언'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왠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토록 황당한 주장이 뉴스를 장식할 무렵에 내가 펼쳐든 역사책의 대목이 하필이면 <이사 열전>이었다. 이 열전은 사기에 담긴 70편의 열전 가운데서도 특히나 명문으로 꼽힌다. 이 열전의 핵심은 둘이다. 그 중 하나는 육경(六經)에 통달할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었던 승상(권력의 2인자) 이사가 황제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선비들을 탄압하는 계책을 올린 데서 비롯된 '분서갱유' 이야기다. 두 번째는 경쟁자이던 이사를 모함하고 제거한 끝에 2인자로 등극한 '환관 조고'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지경에 이른 '지록위마'에 얽힌 이야기다. 진시황때 일어난 이 유명한 일화가 오늘날의 사태에 비춰봐서도 그리 동떨어진 얘기는 아니라는 느낌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혹시나 싶어 '지록위마'의 뜻을 다시 찾아봤다. 이 말은 윗사람을 농락하여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도 있고, 억지를 부림으로써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도 있단다. 청와대 핵심 참모가 이번 사태에 비판적인 국민들을 '친일파'로 불러야 마땅하다는 주장이야말로 '억지'를 부림으로써 국민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 *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그 유명한 진시황이었다. 진나라가 나머지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널리 인재를 구한 덕분이었다. 그런 인재들 가운데에는 진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음모를 꾸미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나중에 승상에 올라 진시황의 핵심 참모로 일했던 이사도 한때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그때 이사는 진시황에게 장문의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대변했다.(이것이 저 유명한 「간축객서()」다. 「간축객서」는 간절한 구직서일 뿐 아니라 이사의 재능과 모략과 지혜가 담긴 명문이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666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진시황은 빈객을 내쫓으라는 명령을 거둬 들이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켜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고,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시황제 34년에 함양궁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순우월이 황제에게 간언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랜 시일 이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옛날의 좋은 제도는 다시 되살려 복원하자는 말이었다. 시황제는 이 건의를 승상 이사에게 검토하도록 했다. 이사는 순우월의 견해가 황당하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옛날에는 천하가 흩어지고 어지러워도 아무도 이를 통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후들이 나란히 일어났고, 말하는 것마다 옛것을 끌어내어 지금의 것을 해롭게 하고, 헛된 말을 꾸며서 실제를 어지럽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배운 것을 옳다고 여기고 조정에서 세운 제도를 비난하였습니다. …… 그들은 군주를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겨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어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이루어질 테니 금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사 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 쌓는 일을 하는 죄수)으로 삼으십시오.(668∼669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제자백가의 책들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여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분서갱유의 시작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듬해(BC 212년) 시황제는 함양에 있는 유생을 체포하여 결국 460여 명이 구덩이에 매장되는 형을 받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시황제는 세상을 두루 돌아보러 궁궐을 떠났다가 그만 객사하고 만다. 시황제가 병이 위독할 때 환관 조고에게 부탁한 일은 '맏아들 부소에게 후사를 맡기노라'는 편지를 맏아들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황제의 곁에는 막내 아들 호해와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가 있었다. 이들은 갑작스런 황제의 죽음을 한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일을 꾸몄다. 환관 조고의 주도 하에 맏아들 호해가 태자로 오르게 만든 것이다. 시황제가 맏아들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조작됐다.

 

"지금 너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군사 수십만 명을 이끌고 국경 지방에 두준한 지 십여 년이 지났으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병졸을 많이 잃었을 뿐 한 치의 공로도 세운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글을 올려 직언하고 비방하고, 지금의 직분을 그만두고 돌아와 태자의 지위에 되돌아갈 수 없음을 원망하고 있다. 너는 아들로서 불효하여 칼을 내리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든 부소는 사람됨이 어질었기 때문에 부하 장수인 몽염이 말리는데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자는 2세 황제로 즉위하였고, 조고는 2세 황제를 모시고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어린 황제는 한가한 틈에 조고를 불러 물어보았다.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이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이제 황제로서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귀로 듣고 싶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즐기고, 종묘를 편안히 하고 많은 백성을 즐겁게 하고 천하를 길이 소유하고, 타고난 내 수명을 누리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

 

조고가 대답했다.

 

"법을 준업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며, 죄 있는 자는 연좌제를 실시하여 죄를 지으면 그 일족을 모조리 죽이고, 선제 때의 대신들을 물러나게 하고 폐하의 형제들을 멀리하며,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천한 자를 높여 주십시오. 선제의 옛 신하를 모두 제거하고 폐하께서 믿을 수 있는 자를 새로 두어 가까이 하십시오. 이렇게 하신다면 숨어 있던 덕이 폐하에게로 모이고 해로운 것이 없어지며, 간사한 음모는 막히고 신하들은 폐하의 은택을 입고 두터운 덕을 입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며,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679∼680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2세 황제는 조고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죄를 짓는 자가 있으면 조고에게 맡겨 조사하도록 했고, 왕자 열두 명을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죽이고, 공주 열 명을 두에서 기둥에 묶어 놓고 창으로 찔러 죽였으며, 그들의 재산은 모두 거둬들였다.

 

법령에 따라 죽이고 벌하는 일이 날로 더욱더 가혹해지자 여러 신하가 스스로 위험을 느껴 모반하려는 자가 많아졌다. 또 황제를 위하여 아방궁을 짓고 곧게 뻗은 큰길과 넓은 길을 만드느라 세금이 더 무거워지고 변방 부역에 징발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초나라 수비병 진승과 오광 등이 반란을 일으켜 산동에서 일어나니 호걸과 날랜 사람들이 다 일어나 스스로 제후가 되고 왕이 되어 배반했다. 그 반란군은 홍문까지 진격했다가 물러날 정도로 거셌다.(681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승상 이사는 여러 번 황제에게 시국 수습책을 간언하려 했지만 황제는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이사를 문책했다. 이사는 벼슬과 봉록을 소중히 여겨 황제의 비위만 맞출 뿐이었다. 이리하여 처벌을 더욱더 엄격히 하고, 백성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는 자를 현명한 관리라고 했다. 2세 황제가 말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처벌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길에 다니는 사람 중 절반은 형벌을 받은 자이고, 형벌을 받아 죽은 자가 날마다 시장 바닥에 쌓여 갔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죽인 관리를 충신이라고 했다. 2세 황제는 말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처벌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87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승상은 나중에 조고를 견제하기 위한 계책을 꾸미다가 도리어 환관 조고로부터 역습을 당해 황제로부터 신임을 잃고 만다. "조고가 아니었다면 승상에게 속을 뻔했소." 조고는 이사와 그의 아들 이유의 모반에 관한 진술서를 마음대로 꾸몄고, 황제는 이사에게 오형을 갖추어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하였다. 이사가 죽고 나자 조고는 중승상으로 승진했고, 크든 작든 모든 일은 조고가 결정했다. 이 당시 조고의 위세를 상징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지록위마' 사건이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2세 황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좌우에 있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2세 황제는 놀라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태복(점을 치는 관리)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그러자 태복은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봄가을로 교사(제왕이 교외에서 천지에 올리는 제사)를 지낼 때 종묘 귀신을 모시면서 재계가 석연치 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을 많이 쌓아 재계를 충분히 하셔야 합니다."(696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2세 황제는 나중에 환관 조고가 꾸민 일에 속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고는 황제의 옥새를 꺼내어 찼지만 곁에 있던 신하 가운데 아무도 따르는 자가 없어 시황제의 손자 자영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자영은 즉위한 지 세달 만에 유방의 군대가 쳐들어 오자 옥새가 달린 끈을 목에 걸고 항복했다. 유방은 자영을 관리에게 넘겼으나 초나라 항우가 와서 목을 베었다.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이사는 삼공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 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아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698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 * *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읽는 동안에 자주 떠올린 말은 '무엇이 중헌디?'라는 말이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지 불과 15년 만에 멸망하고 난 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의 일화 하나가 그걸 깨우친다.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초나라 항우를 무찌른 데에는 역이기(역생)의 공도 컸다. 그는 초나라 왕이 오창(오산에 세워진 식량 창고)을 소홀히 다루는 걸 보고 항우가 천자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고조 유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왕의 일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왕의 일을 이룰 수 없다. 왕 노릇 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라고 합니다. 오창에는 천하의 곡식을 날라다 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신은 그곳에 쌓아 놓은 식량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형양을 함락시키고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오히려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가면서 죄를 지어 변방으로 쫓겨나 병사가 된 자들에게 성고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있으니, 이는 하늘이 한나라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초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쉽게 취할 수 있을 때인데, 한나라가 도리어 물러나는 것은 스스로 좋은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64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역생 · 육고 열전> 중에서

 

또한 사마천의 책에는 정치와 외교와 군사뿐만 아니라 '경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화식 열전>이다. 화식 열전의 핵심 사상 또한 '입고 먹는 것이 다스림의 근원이다'라는 것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잘 다르려지는 시대는 이웃 나라끼리 바라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은 제각기 자신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자기 나라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기 나라의 습속을 편히 여기고, 자신들의 일을 즐기며,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837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화식 열전> 중에서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신농씨 이전의 일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시경』과 『서경』에서 말하는 우나 하나라 이래의 것을 보면 귀와 눈은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 하고, 입은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을 다 보려 하며,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풍속은 백성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 이미 오래여서 미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마다 깨우치려 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고,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837∼838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화식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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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축국서(諫逐國書)
    from Value Investing 2019-08-25 16:58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빗대어 '간축국서'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수석을 이제는 과감하게 물리치고 보다 널리 새로운 인재를 구하라는 철없이 순진한(?) 바램으로 써 본 글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 활약했던 승상 이사가 쓴 명문장이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를 담은 서간문 형식의 상서上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역사는
 
 
 
사기열전 1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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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사람들의 군주된 자 가운데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어질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충신을 구하여 자신을 위하도록 하고, 현명한 자를 등용하여 자기를 돕도록 하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충신이라는 이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왕은 충신과 그렇지 않은 신하를 구분할 줄 몰라서 안으로는 정수에게 미혹되고 밖으로는 장의에게 속았으며, 굴원을 멀리하고 상관 대부와 영윤 자란을 믿었다. 그래서 군대가 꺾이고 군 여섯 개를 잃어 땅이 줄어들었으며,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생긴 재앙이다. 『역경』에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 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 라고 하였다. 왕이 현명하지 않은데 어찌 복이 있겠는가!

 

……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그러고 나서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었다. 그 문장은 이러하다.

 

……

흰 것 검다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하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나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내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짐은 무겁고 실은 것 많건만

수렁에 빠져 건널 수 없구나.

아름다운 옥 있지만

곤궁하여 보여 줄 수 없네.

마을의 개들 떼지어 짖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지.

준걸 비방하고 호걸 의심하는 것은

본래 못난 사람들의 태도지.

재능과 덕성 가슴속에 흐르건만

내 남다른 재능 아무도 몰라주네.

재능과 덕망 쌓였어도

내 가진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인의를 더 닦고

삼가고 돈후하여 넉넉해졌건만

순 임금 같은 분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내 참모습 알아주랴!

예로부터 [어진 신하와 현명한 군주는 때를] 같이하지 못하니

어찌 그 까닭을 알리?

탕 임금과 우 임금 아득히 먼 분이라

막막하여 사모할 수도 없네.

한을 참고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 스스로 힘써 본다.

슬픔 만났으나 절개 꺾지 않으리니

내 뜻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

 

그러고는 돌을 안은 채 마침내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이 이미 죽은 뒤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 같은 무리가 모두 글짓기를 좋아하였으며 부를 잘 지어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굴원의 모습을 본뜰 뿐 끝내 감히 직접 간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뒤 초나라는 날로 쇠약해지더니 수십 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굴원이 멱라강에 몸을 던진 지 백여 년이 지나 한나라에 가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 상수를 지나다가 글을 지어 강물에 던져 굴원을 애도하였다.

 

가생賈生의 이름은 의誼이며 낙양 사람이다. 그는 열여덟 살 때 시를 외고 글을 잘 지어 군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 그래서 문제는 가생을 불러 박사博士로 삼았다. 그때 가생은 겨우 스무 살 남짓하여 (박사들 가운데) 가장 젊었다. …… 천자는 가생을 공경公卿의 자리에 앉히려는 문제를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그러나 강후絳侯, 관영灌嬰, 동양후東陽侯, 풍경馮敬 등의 무리는 모두 가생을 싫어하여 이렇게 헐뜯었다.

 

"낙양 출신의 선비는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미숙한데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모든 일을 어지럽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황제도 나중에는 그를 멀리하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가생을 장사왕의 태부로 삼았다.

 

가생은 인사하고 길을 나섰는데, 장사라는 곳은 지형이 낮고 습기가 많다는 말을 듣고 자기 수명이 길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더구나 좌천되어 떠나가는 중이므로 마음이 우울하였다. 가생은 상수를 건널 때 부를 지어 굴원을 조문하였는데 그 문장은 이러하다.

 

 

공손히 왕명을 받들어

장사의 관리가 되었네.

얼핏 굴원을 풍문에 들으니

스스로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하네.

상수 흐르는 물에 부쳐

선생께 삼가 조의를 표하네.

법도 없는 세상을 만나

그 몸을 던졌구나!

아, 슬프다.

좋지 못한 때를 만남이여!

봉황이 엎드려 숨고

올뺴미가 날개를 치누나!

어리석은 사람이 존귀케 되고

헐뜯고 아첨하는 자가 뜻을 얻었구나!

현인과 성인은 도리어 끌어내려지고

바른 사람은 거꾸로 세워졌네.

세상은 백이를 탐욕스럽다 하고

도척을 청렴하다 하며,

막야의 칼날을 무디다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날카롭다 하네.

아, 말문이 막히는도다.

선생이 억울하게 재앙을 입음이여!

주나라 솥을 버리고 큰 표주박을 보배로 간직하고

지친 소에게 수레를 끌게 하고 절름발이 나귀를 곁말로 쓰니,

준마는 두 귀를 늘어뜨린 채 소금 수레를 끄는구나!

장보章甫를 신발로 삼으니

오래갈 수 없도다.

아, 선생이여!

홀로 이런 재앙을 겪으셨도다!

 

다시 이어지는 노래는 이렇다.

 

 

그만두자꾸나!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홀로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말하랴!

봉황새는 훨훨 날아 높이 갔네

스스로 날갯짓하며 멀리 가 버렸네.

깊은 연못 속 신룡神龍은

깊숙이 잠겨 스스로 제 몸을 소중히 한다네.

밝은 빛 마다하고 숨어 지낼 뿐

어찌 개미, 거머리, 지렁이와 놀랴?

성인의 신덕神德을 소중히 여기고

탁한 세상 멀리하여 스스로 숨네.

준마도 고삐를 매어 지게 한다면

어찌 개나 양과 다르다 하랴!

어지러운 세상에서 머뭇거리다 재앙 받은 것.

또한 선생의 허물이로다!

천하를 두루 둘러보고 어진 임금 돕지 않고

어찌 이 나라만 고집했는가?

봉황새는 천 길 높이 하늘 위로 날다가

덕이 밝게 빛나는 것 보면 내려오지만,

작은 덕에서 험난한 징조를 보면

날개를 쳐 멀리 날아간다.

저 작은 못이나 도랑이

어찌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랴?

강과 호수를 가로지르는 큰 물고기도

정녕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제압당하는구나!

 

 - 사마천, 『사기열전』, <굴원 · 가생 열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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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축국서(諫逐國書)
    from Value Investing 2019-08-25 16:59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빗대어 '간축국서'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수석을 이제는 과감하게 물리치고 보다 널리 새로운 인재를 구하라는 철없이 순진한(?) 바램으로 써 본 글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 활약했던 승상 이사가 쓴 명문장이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를 담은 서간문 형식의 상서上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역사는
 
 
 

 

해방 이후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를 둘러싸고 백가쟁명 식의 온갖 계책들과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이 뜬금없이 소환되는가 하면, 동학혁명을 배경 삼은 '죽창가'가 새삼 화제가 되고, 그걸 SNS에 올린 행위가 과연 '의도에 맞는 올바른 인용'이냐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집권당 특별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에선 조선시대를 떠올리는 '의병 운동'이 업급되고, 국가 안보실 고위관계자는 국채보상운동까지 들먹일 정도로 온갖 고색창연한 어휘들이 시도때도 없이 불려나오고 있다.

 

이런 논쟁들을 보노라면 '이 참에 뜻밖에도 역사 공부를 많이 하는구나' 싶은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본질과 해결 방안을 두고서는 각자의 입장이 너무나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바로 이 점이 문제 해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함을 반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손자병법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조차 제대로 선행되지 않은 상태로, 상대방의 정확한 의도조차 몰라 서로 허둥대는 모습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갑작스레 기습적인 '무역 보복' 혹은 '경제 침략'을 당한 우리나라로서는 부당하고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왜 느닷없이 정치 외교적인 문제에 불쑥 끼어드느냐고 반발하는 중이고, 애매모호하게 둘러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근거'가 도리어 근거 없음을 날카롭게 추궁하고 있다. 불시에 기습을 당한 처지인 우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고, 일본은 앵무새처럼 비슷한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번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된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는 진작에 소멸됐다는 입장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근거다. 한국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민간인의 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과는 별개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행정부와는 별개인 '사법부의 판단'이며, 엄연히 삼권이 분립된 한국의 행정부는 이번 배상 판결에 그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한일협정'에서 규정한 문제 해결 방식인 단계별 조정 절차 요청에도 일체 응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대응이었다. 그런데도 일본을 향해서는 여전히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자고 촉구한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이처럼 서로 정반대의 입장만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사태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일본은 이미 1965년에 완전히 정리가 끝난 배상 문제를 지금에 와서 새삼 문제삼는 것부터 문제로 삼는다. 한국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정권에서 졸속으로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가 '파기'로 되돌려지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일본의 '한국 불신'은 날로 커졌고 아베 정권은 그걸 더욱 부추겼다. 갈수록 악화된 한일 관계는 무슨 레이다를 쏘았니 안 쏘았니, 무슨 관함식에 욱일기를 다느니 마느니 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결국 '반도체 핵심 소재 3가지'로 만든 무역 폭탄으로 뻥 터지고 말았다.

 

어쨌든 일본은 이참에 한국을 단단히 벼르는 듯한 분위기다. 상대방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고도 태연자약하게 앞으로 더 찌를 데가 수백 곳이 더 남아 있다고 위협하는 듯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생수 한 병 없이 마주한 과장급 설명회가 양국 사이의 냉랭함을 극적으로 보여준 데다가 한국와 일본 사이의 당국자들이 주고 받은 날카로운 말들에서 '타협의 여지'는 아직까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저렇게까지 쎄게 나오는 걸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의 분위기'가 훨씬 나쁜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과 일본은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 공생 관계'로 함께 성장해 온 처지이고, 경제 규모로 보나 기술력으로 보나 우리가 일본에 의존해 온 측면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비록 일본이 훨씬 더 남는 장사를 했더라도 그렇다.) 더군다나 우리는 일본보다 수출 의존도가 월등히 높은 데다가 당장은 일본을 대체할 만한 '가술, 부품, 소재 공급자'를 찾기도 어렵다는 게 큰 문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 전에 깜짝 놀랄 만한 언급을 내놓았다. 일본의 이번 무역 보복 조치를 두고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나 일반적인 상식과는 정반대되는 예상을 저토록 강하게 언급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도리어 궁금할 정도였다. 수출 규제에 따른 피해가 아직까지는 구체화되지 않았으니 섣불리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은 떨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톨령의 강도 높은 발언 가운데 유난히 이목을 끄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표현도 있었다. 흔히 '낭중지추'라고 일컬어지는 '주머니 속의 송곳'을 한일 관계에 빗댄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찌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양국은 과거사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그로 인해 경제, 문화, 외교, 안보 분야의 협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왔습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면서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원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뜻밖의 인재 발굴'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그 고사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훓어보더라도 '남을 찌르기 위한 뾰족한 무기'로서의 송곳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연설을 미리 준비한 비서관이 '낭중지추'의 뜻을 몰라 '주머니 속의 송곳'을 한일관계에 비유했을 리는 없다. 이틀 전에 언급된 '주머니 속의 송곳'은 순수한 의미 그대로 쓰인 것 같기 떄문이다. 가령, 한일관계에서는 오랫동안 구원(舊怨)이 많은 관계로 서로 편안하게 마주할 정도로 한가롭지 못하며, 주머니에 송곳 하나라도 감춘 채 만나야 안심될 만큼 불편한 관계이며, 그 송곳은 때때로 우리를(!)  찌른다고 표현한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이왕 '역사 얘기'가 나온 김에 '낭중지추'에 관한 일화를 조금 더 살펴 보자. 이 고사성어의 출전은 물론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평원군 · 우경 열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가 더 눈에 띈다. 이 고사가 생겨난 이유 또한 작금의 한일관계처럼 '국가 사이의 갈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이 에피소드가 있었던 시대 배경은 소위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였다. 특히 전국 시대에는 7웅이라고 일컬어지던 일곱 나라가 숱하게 합종연횡을 맺었던 때였다. 초강대국 진나라에 맞서 다른 여섯 나라를 연합시킨 합종책을 창안한 인물은 귀곡 선생의 제자 소진이었다.(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소진 열전>에 소진과 그의 두 동생 소대와소려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린 건 진나라의 장의였다. 그는 각 나라와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어 합종을 깨뜨리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인물이다.(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장의 열전>이 그의 연횡책을 소개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천하의 유능한 인물을 발굴하기 위해 식객을 무려 3000명씩이나 거느린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 사공자(戰國 四公子)'였다. 제나라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나라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위나라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 초나라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이 그들이다. 사마천은 사공자 각자의 열전을 만들어 전국시대에 각 나라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재를 초빙하던 모습을 자세히 담아냈다. '낭중지추'는 사공자 가운데 조나라의 평원군에 얽힌 이야기이다.

 

낭중지추에 얽힌 이야기의 요지는 간단하다. 조나라의 수도가 진나라의 침입으로 포위를 당하자 조정에서는 평원군을 초나라로 파견하여 '합종'을 맺기를 도모한다. 그때 평원군은 '특사단 20'명을 발굴하는데, 19명까지는 일사천리로 선발했는데 나머지 한 명을 뽑지 못했다. 그때 자신을 뽑아 달라고 덜컥 나선 사람이 모수였다.('모수자천'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평원군은 3년 동안이나 식객으로 있었으면서도 '모수'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재능이 없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때 모수가 기가 막힌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지만,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었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모수를 발탁한 건 대성공이었다. 그는 초나라 왕을 멋지게 설득하여 조나라와 합종을 맺는데 성공한다. 그가 초나라 왕을 설득한 핵심 요지는 이랬다. "이것이 어찌 병사가 많았기 때문이겠습니까?" 모수는 초나라 왕에게 '세 치 혀가 군사 백만 명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몸소 웅변했던 것이다. 한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무역 전쟁에서도 '모수' 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무역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당정청 회의에서 너나 할것없이 '국민들만 믿고 간다'는 식으로 애꿎은 국민들을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등 괜한 '숫자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능수능란한 화술과 기지로 상대를 설득해서 '그들의 기술과 소재와 부품'을 우리가 필요한 동안 만큼은 자유롭게 수입해서 쓸 수 있는 묘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니 말이다.

 

초나라 왕으로부터 만족스러운 협상을 이끌어낸 모수가 평원군의 빈객으로 오랫동안 밥을 축냈던 특사단 19명에게 던진 꾸짖음은 다음과 같았다. 혹여나 이참에 사마천의 『사기』를 다시 꺼내 읽다가 이 구절을 읽고 '송곳에 찔린 것처럼' 속이 뜨끔한 빈객도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 * *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趙나라는 평원군平原君을 보내 초楚나라에 도움을 청하고 합종合從하도록 하였다. 평원군은 빈객과 문하 중에서 용기와 힘이 있고 문학적 소양과 무예를 두루 갖춘 사람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가기로 하였다. 평원군이 말했다.

 

"평화롭게 담판을 지어 맹약을 맺을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담판을 지어 맹약을 맺을 수 없다면 초나라 궁전 밑에서 [희생의] 피를 마시며 합종을 맺고 돌아오겠습니다. 같이 갈 선비들은 다른 데서 구하지 않고 제 빈객과 문하에서 뽑아도 충분합니다."

 

평원군은 열아홉 명을 뽑고 나머지 한 명은 뽑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을 채우지 못했다.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이가 있었는데,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며 평원군에게 말했다.

 

"당신은 초나라와 합종 맹약을 맺기 위하여 빈객 및 문하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사람을 밖에서 찾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자라니 저를 그 일행에 끼워 주십시오."

 

평원군이 말했다.

 

"선생은 내 빈객으로 있은 지 몇 해나 되었소?"

 

모수가 말했다.

 

"삼 년 됐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삼 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결국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열아홉 명은 모수를 업신여겨 서로 눈짓하며 비웃었으나 입 밖으로 그러한 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모수는 초나라에 가는 동안 열아홉 명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모두 탄복했다.

 

평원군이 초나라와 합종하기 위하여 그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이야기하는데, 해가 뜰 무렵부터 시작하여 중천에 이르도록 결정을 짓지 못했다. 열아홉 명은 모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이 당堂 위로 올라가시오."

 

모수는 칼자루를 잡은 채 계단을 뛰어올라 평원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합종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은 두 마디면 결정되는데, 해 뜰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한낮이 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초나라 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저 손님은 누구입니까?"

 

평원군이 대답했다.

 

"저 사람은 제 사인입니다."

 

초나라 왕은 큰 소리로 모수를 꾸짖으며 말했다.

 

"썩 내려가시오. 나는 그대 주인과 이야기하는 중인데 이게 무슨 짓이오?"

 

모수는 칼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 병사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왕께서는 열 걸음 안에서 초나라 병사가 많은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왕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또 은나라 탕왕은 땅 70리를 가지고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주나라 문왕은 땅 백 리를 가지고 제후를 신하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병사가 많았기 때문이겠습니까? 정녕 세력에 의지하여 그 위엄을 떨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초나라 땅은 사방 5000리이고 창을 가진 병사가 백만이나 됩니다. 이것은 천하의 우두머리로서 왕이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천하에 초나라의 강대함에 맞설 만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진나라 장군 백기처럼 형편없는 자가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와 한 번 싸워 鄢과 영郢을 빼앗고, 두 번 싸워서 이릉夷陵(초나라 선왕의 능묘)을 불사르고, 세 번 싸워서 왕의 조상을 욕보였습니다.이것은 초나라에게 백 대가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원통한 일이며, 조나라도 초나라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이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계십니다.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맞소. 삼가 나라를 받들어 합종하겠소."

 

모수가 물었다.

 

"합종이 결정된 것입니까?"

 

초왕이 대답했다.

 

"결정됐소."

 

모수는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초나라 왕에게 올리면서 말했다.

 

"왕께서 먼저 피를 마셔 합종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제 주인이고, 그 다음 차례는 접니다."

 

이렇게 하여 어전 위에서 합종 약속을 맺었다. 그러자 모수는 왼손으로는 구리 쟁반의 피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열아홉 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서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평원군은 합종을 결정짓고 조나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천 명이 되겠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九鼎이나 대려大呂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그러고는 마침내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405∼409쪽)

 

 - 사마천, 『사기열전』, <평원군 · 우경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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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8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일 문제에서 역사 문제는 여러 면에서 ‘낭중지추‘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 문제가 양국 관계에 중요한 문제임에도 계속 피하기만 하다가 이번에 본격화되니, 그 끝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이 얄밉기도 하고, 이러한 경제 제재가 나중에는 한국경제에 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장기에는 모두가 죽는다‘는 케인즈의 말처럼 단기에 좋은 해결책이 있으면 바라봅니다... 물론, 장기 전략도 동시에 고려해야겠지만요...

oren 2019-07-18 12:03   좋아요 1 | URL
한일관계의 역사적 배경 지식과 미래에 대한 혜안을 지닌 사람들이 이 어려운 문제를 슬기롭게 풀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어설프게 감정적으로 접근하거나, 냉정하고도 신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도조차도 적을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내모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멀쩡한 국민들을 극구 싸움판으로 끌여들여 전의를 다지고 확전을 도모하려는 듯한 정치인들의 언행들은 그 의도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분쟁만 하더라도 여러모로 한국 경제에 벅찬 과제인데, 여기에다 난데없이 일본으로부터 무역 보복을 당하니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하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렸지만 유구한 세월 동안 남의 나라를 먼저 침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조공을 바치고 인질을 붙잡힐 정도로 굽신거렸지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적은 거의 없었다. 일본으로부터는 무려 36차례나 침략을 받았지만 풍전등화의 위기에서도 끝끝내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 20세기 초 한일합방의 굴욕적인 조약을 맺기 전까지는.

 

기약없는 독립 운동이 급작스레 성공으로 귀결된 건 미국 덕분이었다. 미 연합군의 원폭을 두 방이나 얻어맞고 나서 일본 천황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외쳤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일제의 식민 지배는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과거사는 본질적으로 깨끗이 치유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친일파 청산이나 강제 징용공 및 위안부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후세에 부담을 남겼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위안부 문제는 불가역적 합의를 이루었다가도 곧장 다시 파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은 우리나라의 국가 기간 산업이나 마찬가지인 반도체 분야의 핵심 소재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치졸한 무역 보복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부당하기 짝이 없는 수출 규제 조치를 보노라니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휩쓸고 지나간다. 정작 일제 식민지배의 피해자인 우리가 응당 받아냈어야 마땅한 '합당한 사죄와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도리어 가해자인 일본한테 억울하게 보복을 당하는 데 따른 분노부터 앞선다. 여기에 더해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도 억누르기 어렵다. 도대체 그들은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했기에 1965년에 맺은 한일협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아직까지도 여파를 미치는 것이며, 일본의 정치인들은 왜 한사코 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작년 10월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 이후의 후속 협의는 왜 8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가 느닷없는 '무역 보복'까지 이어진 것인가.

 

일본이 이번에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무역 보복 조치를 감행한 건 해방 이후 처음이라서 더욱 놀랍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오랫동안 잠재해 있던 역사적 갈등들(위안부와 징용공 등 과거사 문제, 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이 정치·외교적으로는 숱한 파열음을 냈지만 경제 보복으로까지 비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데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나 아베 총리는 가문의 내력으로나 언행으로나 극우적 성향이 특히 강한 인물인 데다가, 이번 조치를 위해 오랫동안 매우 치밀하게 준비한 듯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더욱 당혹스럽다.

 

더욱 문제인 건 당장으로서는 우리에게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삼성그룹의 총수가 일본으로 허겁지겁 달려간 것만 보더라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반증한다. 우리나라는 아이러니칼하게도 1965년에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을 통해 얻어낸 막대한 보상금을 밑천 삼아 본격적으로 경제 개발을 시작했다. 7,80년대의 압축 고도 성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전세계인들에게 찬탄의 대상이 되었고, 일순 IMF 경제 위기를 겪었음에도 이내 극복하고 일어나 여러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정도로 경제는 급성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여러 산업들조차 핵심적인 기술이나 부품·소재에 대해서는 선진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게 오랫동안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선진 기술을 갖춘 열강들이 풍부한 자본과 인재는 물론이고 온갖 역량을 총동원해 발전시킨 첨단 기술들을 한국의 기업들이 차근차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세계 3위의 막강한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많은 면에서 너무 앞선 나라다. 특히나 기초 소재, 정밀화학, 정밀기계, 전자공학 등등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하기 힘든 막강한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다. 그들은 이미 78년 전인 1941년에 세계 최강국이었던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초강대국 가운데 하나다. 전쟁을 치루면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맹렬하게 자신들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원폭 투하로 온통 잿더미에 휩싸인 패전국으로 굴러떨어졌다가도 불과 몇십 년 만에 또다시 우뚝 일어나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할 정도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뤄낸 저력이 그런 기술력에 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종교, 문화 등 일본이라는 나라에 존재하는 정신성의 모든 측면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그 동원의 정도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패전은 이 체제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일본인의 마음 속에 들어 있던 모든 것이 무가치해졌고 모든 것이 밖으로 떨려 나가는 체험이었다."

 

그런 공황 상태에서 서구와 관련된 모든 것, 특히 전승국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은 좋고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중국이 소련을 모방하려고 애썼듯이 일본은 기를 쓰고 미국을 모방하였다.(137쪽)

 

 -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중에서

 

또한 일본은 전국토가 섬으로 이뤄진 독특한 국가이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은 '고립 문명'으로서의 일본 문명에 대해 깊이있게 분석했다. 일본이야말로 전세계에서 국가=문명인 유일한 나라다. 그들은 7세기에 중국 문화를 수입했지만 경제적, 군사적 압력을 받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변형시켜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시켰다. 심지어 그들은 징기스칸이 전세계를 휩쓸 때도 카미카제(神風) 덕분에 무사할 정도로 외세 무풍 지대였다.(이 당시의 '일본의 행운'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에도 자세히 언급될 정도였다.) 아무튼 그들은 우리나라와 무역 분쟁을 겪기 이전에도 많은 나라와 무역 갈등을 빚었는데, 특히 미국과의 무역 전쟁은 일본으로 하여금 '국제 정치학'과 '국제 무역 협상'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분쟁, 특히 일본의 무역 흑자와 미국의 상품과 투자에 대한 일본의 규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양국 외교관들은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일 무역 협상은 냉전 시대의 미소 군축 협상과 여러모로 흡사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1995년 현재 미일 무역 협상에서 나온 가시적 결과는 오히려 미소 군축 협상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갈등이 두 나라 경제의 근본 차이점, 특히 주요 선진 공업국 중에서도 일본 경제가 갖는 독특한 성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의 공산품 수입액은 GNP의 3.1퍼센트로, 다른 주요 선진 공업국들의 평균치인 7.4퍼센트를 크게 밑돈다. 일본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GDP의 겨우 0.7퍼센트로 미국의 28.6퍼센트, 유럽의 38.5퍼센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302쪽)

 

 -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중에서

 

새뮤얼 헌팅턴의 분석만 보더라도 일본이 얼마나 '고립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인지를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륙에서 툭 튀어나온 반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해양과 대륙을 잇는 반도 특유의 임기응변에 능한 기질(나쁘게 표현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기질')이 그들에겐 없다. 일본인들은 고립된 섬에서 오래도록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특히 '신뢰'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척하고 조직 내에서 아예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만큼 신뢰의 가치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아무튼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나라다. 비록 아주 가까운 동양의 이웃 나라이고, 일본인들이 겉으로는 한국인들을 몹시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여러 면에서 아직까지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나라다. 흔히 언급되는 기초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제쳐두더라도, 국토 면적, 인구, 기술력, 국민 총생산 등만 비교해 보더라도 일본은 우리가 우습게 여기기에는 너무 강한 상대임이 틀림없다.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뜻밖의 강펀치를 얻어 맞은 최근 며칠 동안 한국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온갖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분노의 감정이 들끓지만 냉철하게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이참에 강력하고도 단호하게 맞대응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너무 다양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서조차 찬반이 엇갈리는 형국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방치한 게 현 정권의 외교적 무능 때문이라는 지적도 비등했고, 이런 반응을 두고 가해자인 아베 정권을 비난해야지 왜 현 정부를 탓하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향해 토착 왜구로 싸잡아 비난하는 반응까지도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런 다양한 반응들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회음후 한신'을 잠깐 떠올렸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치졸하기 짝이 없는 아베 정권으로부터 부당하기 짝이 없는 '무역 보복 조치'를 당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한신처럼' 우선은 일본에 수그리는 자세를 취해서라도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고 수습하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 대신 우리가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와신상담, 절치부심 노력해서 나중에 언젠가는 기필코 지금의 모욕을 깨끗이 갚을 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속이 뒤틀리고 자존심이 몹시 상하더라도 지금은 난국부터 수습하고 실리부터 취하자는 것이다. 당장은 '정치적으로 타결하는 방법' 말고는 달리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우리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과 최강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마냥 수세적으로 접근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자세히 판명되겠지만) 무턱대로 힘으로 맞대응했다가는 그 여파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분야로 크게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지적 대로, 일본은 공산품 수입 비중이 고작 3.1%에 불과할 정도로 '외세 의존도'가 극히 낮은 독특한 산업 구조를 가진 기술 강국이다. 그래서 사실 일본에 맞대응할 만한 급소를 찾기조차 어렵다. 극히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하기 바빴던 우리나라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이웃 일본의 선진 기술과 부품과 소재에 크게 의존해 왔던 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하고도 불가피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국내 산업의 취약점은 그것대로 면밀히 보완하되, 지금 당장은 다소 수세적으로 비춰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명분'보다 '실리'를 취하자는 얘기다.

 

여기서 부터 다시 한신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한신은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처음엔 '칼 한 자루에 의지하여' 항우 밑으로 들어갔으나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자 초나라에서 도망쳐 한나라로 귀순했다. 한신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오連敖(곡식 창고를 관리하는 직책)라는 보잘 것 없는 벼슬이 주어졌다. 어느 날 법을 어겨 참수형을 받게 되었는데, 같이 처형되는 열세 명의 목이 잘리고 한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하후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한신이 그에게 한 말은 이랬다.

 

"주상께서는 천하를 차지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 말이 기특하다고 생각한 하후영은 그를 풀어주고 목을 베지 않았으며, 한고조 유방에게도 그를 천거하게 된다.

 

그에 얽힌 가장 흥미로운 얘기는 이런 일이 있기 훨씬 전에 있었던 다음의 일화 때문이다. 그는 평민일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하였으므로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 먹으며 지냈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네가 건네주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수십 일 동안 빨래터를 서성거린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음의 백성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기는 한 젊은이가 한신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며 말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이 일로 해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776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한신은 치속도위治粟都尉(식량과 말먹이를 관리하는 군관)라는 벼슬을 얻었지만 중책에 기용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나라의 군대가 이동하는 도중에 여러 장군들이 도망치는 틈을 타서 자신도 달아났다. 그 소식을 듣고 소하라는 사람이 그를 뒤쫓았다. 한나라 왕에게는 소하도 달아난 것으로 보고되었다. 며칠 뒤에 소하가 돌아오자 한나라 왕은 노여움과 기쁨이 뒤섞여 소하를 꾸짖었다.

 

"그대는 어째서 도망쳤소?"

 

소하가 대답했다.

 

"신은 도망친 게 아니라 도망친 자를 뒤쫓아 갔던 것입니다."

 

왕이 물었다.

 

"그대가 뒤쫓은 자가 누군가?"

 

소하가 대답했다.

 

"한신입니다."

 

한나라 왕은 다시 꾸짖었다.

 

"장수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수십 명이나 되는데도 그대는 쫓아간 적이 없소. 한신을 뒤쫓았다는 것은 거짓말이오."

 

소하가 말했다.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신에 견줄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나라 왕이 말했다.

 

"나도 동쪽으로 나아가 천하를 다투고자 하오. 어찌 답답하게 이런 곳에 오래 있겠소?"(777∼778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렇게 해서 한신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임명식을 마치자 한나라 왕은 한신은 어떠한 계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신은 왕에게 되물었다.

 

"왕께서는 용감하고 사납고 어질고 굳센 점에서 항왕과 비교할 때 누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나라 왕이 깔끔하게 인정했다. "내가 항왕만 못하오." 그 대답을 듣고 한신은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이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으므로 항왕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지르면 1000명이 모두 엎드리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니 그저 보통 남자의 용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선뜻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아녀자의 인仁일 뿐입니다. …… (7801∼781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렇게 해서 한신은 한나라 왕에게 신임을 얻게 되었고, 총사령관에 오른 한신은 유방의 군사를 지휘하여 이웃의 여러 나라를 격파하고, <해하의 결전>에서 2만의 군사로 배수진을 친 끝에 20만의 대군을 물리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한신은 그 여세를 몰아 제나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한나라 4년, 한신은 드디어 제나라를 모두 평정하고 한나라 왕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제나라는 거짓과 속임수가 많고 변절을 잘하며 자주 번복하는 나라인 데다가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가왕假王(임시로 왕 노릇을 하는 것)을 세워서 진정시키지 않으면 정세가 안정되기 어렵습니다. 신을 가왕으로 삼아 주시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입니다."(795쪽)

 

그 무렵 초나라가 갑자기 습격하여 한나라 왕을 형양에서 에워쌌는데, 마침 한신의 사자가 오자 한나라 왕은 그 편지를 펴 보고 매우 화를 내며 꾸짖었다.

 

"나는 여기서 곤경에 빠져 하루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라는데 자기는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장량과 진평은 일부러 한나라 왕의 발을 밟고는 사과하는 척하며 왕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한나라는 지금 불리한 입장에 노혀 있습니다. 한신이 왕 노릇을 하는 걸 어찌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한신을 세워서 왕으로 삼고 잘 대우하여 제나라를 지키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795∼796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렇게 해서 제나라의 왕이 된 한신은 어느덧 초나라 항우는 물론 한나라 유방에게도 경계대상 1호가 될 만큼 우뚝한 존재로 변신해 있었다. 이런 형세를 보고 항우는 한신을 설득하는 작전에 나섰다. 한나라를 너무 믿지 말고 자신과 손을 잡자고 한신을 꾀었다. 초나라 왕인 자신이 죽으면 당신(한신)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게 설득의 논리였다. 이른바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그 유명한 '토사구팽의 논리'가 여기서 등장한다. 그러나 한신은 자신을 알아주고 발탁해준 한나라 유방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항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제나라 사람 괴통이 '천하 대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있음을 알고 기발한 계책으로 한신을 움직이려고 하였다. 괴통이 내놓은 계책의 일부를 들어 보자.

 

"제 생각으로는 이러한 형세로 보아 천하의 성현이 아니고는 천하의 환란을 도저히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 왕과 항왕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당신께서 한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나라 편을 들면 초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속마음을 터놓고 간과 쓸개를 드러낸 채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려 하는데 당신께서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진실로 제 계책을 써 주신다면 한나라와 초나라 양쪽을 모두 이롭게 하고, 두 분을 존속시켜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의 발처럼 서 있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형세로 보아 어느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당신만큼 현명한 분이 수많은 무장 병사를 거느리고 강대한 제나라에 의지하여 연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키고, 주인 없는 땅으로 나아가 그 후방을 누르며, 백성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가서 두 나라(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을 끝내게 하여 백성의 생명을 구해 준다면 천하는 바람처럼 달려오고 메아리처럼 호응할 텐데 누가 감히 당신의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까? ……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800∼801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그러나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바라고 한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릴 순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괴통의 답변에도 그 유명한 '토사구팽' 이론이 다시 등장한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나라 왕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업적을 세우려고 하십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것입니다. …… 옛날 대부 종種과 범려范蠡는 멸망해 가는 월나라를 존속시키고 월나라 왕 구천을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만 자신은 죽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 (801∼802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괴통의 책략의 요점은 '지금 당신께서는 군주를 떨게 할 만한 위세를 지녔고 상을 받을 수 없을 만큼 큰 공로를 가지고 계시니 초나라로 돌아가더라도 초나라 사람(항왕)이 믿지 않을 테고, 한나라로 돌아가도 한나라 사람(유방)이 떨며 두려워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는 한신의 대답을 듣고 물러난 괴통은 며칠 뒤에 다시 한신을 찾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체로 나무를 하고 말을 먹이는 이는 만승의 천자가 될 만한 권위도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봉록을 지키는 데 급급한 이는 경상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秦나라 용사 맹분孟賁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치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병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803∼804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그러나 한신은 망설이기만 거듭할 뿐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 자신이 공이 많으니 한나라가 끝내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괴통은 한신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얼마 안 가서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고 만다. 항우가 패하고 천하를 휘어잡은 고조 유방은 이윽고 제나라 왕의 군사를 습격해서 빼았았다. 한나라 5년 1월에 제나라 왕이었던 한신을 옮겨서 초나라 왕으로 삼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한신은 고향인 초나라의 왕이 되어 금의환향했지만 병권조차 빼앗긴 허울 좋은 왕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겪었던 일을 다시금 되돌아 보았다.

 

한신은 초나라에 이르자 일찍이 밥을 먹여 주었던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을 불러 1000금을 내렸다. 또 하향의 남창 정장에게 백 전錢을 내리면서 말했다.

 

"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다가 중도에서 그만뒀기 때문이다."

 

또 자기를 욕보인 젋은이들 가운데 자기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게 하여 모욕을 주었던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中尉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한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804∼805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런 일들로 인해 한신은 초나라에서 덕망이 높고 고매한 인품을 가진 왕으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권력이 확립되자 한신의 입지는 갈수록 견제를 받았다. 유방이 황제로서 제후국을 순회하며 초나라를 방문하자 한신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을 직감하고, 유방을 안심시키고자 자신에게 의탁해온 종리매의 목을 유방에게 바쳤다. 종리매는 항우 휘하에 활약했던 유명한 장수였는데 유방을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에 유방과 원한이 컸던 인물이었다. 그는 항우가 죽자 친구 한신에게 몸을 의탁해온 처지였다. 종리매를 배신한 일로 한신은 민심을 잃었고 유방은 진영으로 찾아온 한신을 모반죄로 체포하여 장안()으로 압송했다. 그때 한신이 말했다.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806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힌신은 낙양에 이른 후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로 삼았다. 한신은 한나라 왕이 자기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을 알았으므로 칭병을 핑계로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그러다가 진희陳豨가 거록군鋸鹿郡 태수로 임명되어 회음후 한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제안 받은 '모반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모반은 유방의 부인 여후后와 승상 소하에 의해 진압되었다. 한신은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녀자에게 속은 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랴!"

 

여후는 한신의 삼족을 멸하였다.

 

고조는 진희를 토벌하고 돌아와 한신이 죽은 것을 알고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가엽게 여기면서 물었다.

 

"한신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했는가?"

 

여후가 말했다.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 괴통이 잡혀오자 고조가 물었다.

 

"네가 회음후에게 모반하도록 가르쳤는가?"

 

"그렇습니다. 신이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못난이가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멸해 버렸습니다. 만약 그가 신의 계책을 썼다면 폐하께서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고조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놈을 삶아 죽여라."

 

괴통이 말했다.

 

"삶겨 죽는 것은 억울합니다."

 

고조가 말했다.

 

"네가 한신에게 모반을 가르쳤기 때문에 죽는 것인데 무엇이 억울하다는 말이냐?"

 

괴통이 말했다.

 

"진나라의 기강이 느슨해지자 산동 땅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진나라와 성이 다른 사람들이 아울러 일어나 영웅호걸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진나라가 그 사슴(황제의 권한)을 잃자, 천하는 다 같이 이것(사슴)을 좇았습니다. 이리하여 키가 크고 발이 빠른 자(고조)가 먼저 이것을 얻었습니다.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입니다. 당시 신은 한신만 알았을 뿐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 천하에는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서 폐하가 하신 일과 똑같이 하려는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능력이 모자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겠습니까?"

 

고제가 말했다.

 

"풀어 주어라."

 

그리고 괴통의 죄를 용서했다.(810∼811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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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3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젊었을 때 한신을 생각한다면, 이 어려움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고 초왕이 되는 모습이 인상에 남겠지만, 천하가 통일한 후의 한신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단하지 못해 죽음을 당한 회음후의 모습이 인상에 남을 듯 합니다. oren님의 글은 oren님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것이 고전이 주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oren 2019-07-14 00:02   좋아요 1 | URL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에 대한 후속 뉴스들을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가 부당한 보복 조치를 당하는 데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은 차츰 뒷전으로 밀리고, 일본의 치졸한 행위에 대한 ‘대응 방식‘을 두고 서로 내가 맞네, 니가 틀리네, 하면서 자중지란만 일으키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습니다. 지금 한가롭게 적전 분열을 일으킬 만큼 상황이 녹록치도 않고, 격렬한 분노로 대응한다고 해서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요. 미국이 냉정하게 ‘당사국끼리 해결하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만 보더라도, 양국이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할 사안임이 분명한데, 왜 자꾸 정치권에서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애꿎은 국민들만 싸움판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 * *
자로가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성이 해야 할 도리를 앞장서서 하고, 백성의 일을 위해 몸소 애쓰는 것이다.˝
자로가 그 밖에 더 해야 될 것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하고 게으르지 않으면 된다.˝
자로가 물었다.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의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니 제자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