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톤아, 너는 큰 것을, 네 그 힘과 그토록 어린 나이에

맞지 않은 선물을 요구하는구나.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중에서

 

 * * *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장관 후보자 한 명을 두고 이번처럼 추악한 뉴스들로 도배된 걸 일찌기 본 적이 있었던가.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온갖 위선과 오만과 결함 투성이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뻔뻔스런 인물을 정권의 핵심 요직에 재배치하려는 통치자의 오만이 빚어낸 요란한 소동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온갖 추악한 민낯이 만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후보자는 자신의 욕심을 꺾을 줄 모른다. 통치자와 집권세력들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으로 더욱 절박하게 후보자 옹위에 나선다. 거역할 수 없는 민심의 흐름을 그런 보잘 것 없는 니약한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심산인지 모르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소용없는 일에 헛심을 쓰면서 온갖 궤변들을 늘어놓는 군상들의 안쓰러운 몸부림이 그저 딱할 뿐이다.

 

여기서 잠시 흘러간 옛 정권들의 화려하거나 소박했던 온갖 '캐치프레이즈'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자. 어느 정권이든 그들이 새로 출범할 때마다 잠시나마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거창한 구호 하나씩은 내걸었으니 말이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할 때는 '정의 사회 구현'을 내걸었었다. 서슬 퍼런 군부가 내세운 '정의'라는 구호가 한낱 군부 정권의 '통치의 도구'로 쓰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0년대의 엄혹한 시절에는 정권 안보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그 무슨 일이든 정권에 도움이 되면 그게 '정의'였고, 정권에 해가 되면 그게 '불의'였다. 정권에 항의하는 숱한 대학생들과 민주 투사들이 이 때 가장 많이 희생되었음은 새삼 되돌아볼 필요도 없다.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다는 정부가 '정의'를 부르짖는 국민들을 '불의'로 탄압하는 일에 그토록 몰두한 시대도 없었다.

 

6.29 선언 덕분에 직선제로 뽑힌 대톨령은 노태우 씨였다. 그는 전임자의 군부 통치를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보통 사람의 시대'를 구호로 내걸었다. 대통령 스스로 "이 사람 보통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주문 외우듯 읊었다. 정권이 심각하게 흔들릴 때마다 늘상 입밖에 내놓는 말인 즉슨 "이 사람, 믿어 주세요~" 였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국민들을 속여 가며 엄청난 액수의 돈을 빼돌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 믿을 사람이 바로 대통령 자신이었다.

 

YS 정부는 문민 정부로서는 뜻밖에도 '지방화와 세계화'를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나라를 절단내고 말았다. 대한민국이 하루 아침에 국제 거지로 전락한 끝에 IMF에 손을 내미는 처지로 뒤바뀌고 말았으니 말이다.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DJ 정권에서는 남북 화해와 포용을 위해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DJ 정부때 북한을 위해 쏟아부은 거액의 대북 지원금이 도리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 표방한 건 뜻밖에도 '참여 정부'였다. 그러나 지도자의 순수하고도 열의에 찬 의지와는 관계없이 국민들의 참여도는 역대 최악을 기록했고, 국민들로부터 한참이나 동떨어져 내내 겉돌던 '참여 정부'는 끝내 아군들한테까지 버림을 받은 끝에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수모까지 겪었다.

 

MB 정부는 어땠는가, '경제 살리기'와 '세계 일류 국가'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정작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의 호주머니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스가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여러분, 이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라고 호언장담했던 그 뻔뻔스런 얼굴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쳐다봤던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놀랍게도 '문화 융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자신의 치세 동안에 국운이 욱일승천할 줄로만 알았던 탓이다. 십상시가 온통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말이 떠도는가 싶더니 마침내 미르 재단과 K 스포츠 재단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정유라와 최순실이 온 국민들의 눈을 사로잡기 시작하더니, 통치자 자신은 구중궁궐에 유폐되는 처지로 내몰렸다가 끝내 탄핵되고 말았다. "저는 사리사욕을 위해 '한 푼의 돈'도 받은 적이 없어요."라며 눈물로 국민 앞에 거듭 호소해 봤지만 통치자의 과오를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국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국정 농단이 너무나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전임 대톨령의 갑작스런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의 슬로건은 무엇이었던가. '국민의 정부'가 아니었던가. 지난 정권의 모든 적폐가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을 철저히 무시한 때문이라고 판단한 건 지극히 당연하고도 옳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지나기도 전에 '국민'들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가 어느새 철벽의 '내로남불 정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거의 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적폐' 아니면 '청산 대상'으로 변했고, 현 정부가 추진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정의' 또는 '선함'으로 포장되었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삼아 숱한 과거사가 들춰지고 심판대에 다시 올려졌다. 5.18 민주화 운동과 세월호의 아픈 역사도 다시 불려나왔다. 가슴 아픈 과거사들 말고도 흥미 만점의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온갖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폭넓게 재조명되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명분 하나면 충분했다. 별장 성접대 사건과 여배우의 자살 사건들이 재조명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충남 지사의 미투 사건과 경남 지사의 드루킹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차츰 '내로남불'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급작스럽게 확산된 '내로남불' 사상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인물은 단연 조국 수석이다. 청와대에 걸려 있다는 '春風秋霜'의 이념을 그처럼 정반대로 극대화시킨 인물도 없을 듯하니 말이다. 무릇 어느 정권에서나 정권의 존립을 위태롭게 흔드는 위기는 닥치게 마련이고, 그런 위기는 대체로 정권 실세들이나 측근들의 비리로부터 시작되는게 통례였다. 전두환 정권 때의 친동생 전경환 비리, 노태우 정권 때의 황태자 박철언 비리가 그랬고, YS 정권의 김현철, DJ 정권 시절의 삼형제(홍일, 홍업, 홍걸)가 그랬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는 친형인 노건평 씨가 전면에 나섰고, MB 정권 때까지도 나쁜 전통을 이어 받아 '만사형통'이라는 신조어를 창조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삶의 오랜 동반자였던 최순실이 막후의 실권자로 등장한 끝에 비선 실세의 위력을 유감없이 뽐내다 딸과 함께 몰락했다.

 

문재인 정권도 어느새 절반쯤 흘렀다. 현 정권의 실권자는 누가 뭐래도 조국 수석이다. 그에게는 문재인 정권의 가장 추악한 상징으로 굳어버린 '내로남불'의 화신이라는 측면에서도 정권의 최측근으로서의 면모에 한 점 손색이 없다. 오래도록 청와대를 지키며 정권의 최전선을 도맡아온 그는 지금도 청와대의 벽면을 보란 듯이 장식하고 있는 <춘풍추상>의 기묘한 역설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춘풍추상의 정반대가 이제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조로남불'로 불려야 마땅할 지경이다. 조국 수석만큼 가장 고약한 방식으로 '정권의 표어'를 정면으로 뒤집어 엎은 인물이 우리나라 역사에 언제 또 있었던가.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어쩌면 정권의 2인자는 그 정권이 내건 기치의 지독한 패러독스를 숙명적으로 떠맡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춘풍추상>의 역설을 가장 고약하게 실현한 인물이 이번 정권의 핵심 실세요, <내로남불>의 상징이 되어 버린 조국 수석이라는 사실은 지난 정권들의 사례에 비춰보면 그다지 크게 놀랄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지나고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일이지만, 대개 치명적인 적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게 마련이다.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그걸 반증한다. 그가 내뱉은 숱한 말들과 그가 저지른 숱한 언행불일치의 행적들을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성공할 때는 칼날 바로 끝에서 성공하며, 우리가 죽을 때는 손에 든 그 무기로 죽는다'고 말했던 볼테르와 쇼펜하우어는 '조국의 경우'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예리하게 정곡을 찌른 셈인가.

 

온갖 협잡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이 세계에서 사람은 강철같은 의지를, 운명의 일격을 막아낼 갑옷을, 사람들을 밀치며 나아가기 위한 무기를 지녀야 한다. 인생은 하나의 기나긴 전투다. 인생의 매 단계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테르가 정확히 말했듯이, 우리가 성공할 때는 칼날 바로 끝에서 성공하며, 우리가 죽을 때는 손에 든 그 무기로 죽는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세상을 보는 지혜』 중에서

 

 

 

 

 

며칠 전 신문에 실린 만평 두 컷 때문에 쓰기 시작한 글이 너무 두서없이 길어졌다. 이 글에 등장하는 온갖 불행했던 과거 정권의 실세들을 '그 때 그 시절의 만평'으로 다시 살펴보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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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고요가 말했다.

 

"아! 그 자신이 수양하는 데 신중하고 길게 생각하며 구족의 질서를 돈독히 하면 많은 현명한 인재들이 보좌할 것이니 가까운 데에서 먼 곳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우가 그 훌륭한 말에 절하며 말했다.

 

"옳소."

 

고요가 말했다.

 

"아! 인재를 알아볼 수 있으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가 말했다.

 

"아! 완전히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요제도 어려워하셨소.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은 지혜로운 일이므로 [지혜가 있으면] 인재를 관리로 임명할 수 있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므로, [은혜가 있으면]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오. 지혜로울 수 있고 은혜로울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환두를 근심하겠으며, 무엇 때문에 유묘를 내쫓았겠으며, 무엇 때문에 교묘한 말과 꾸미는 얼굴빛으로 아첨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겠소?"

 

고요가 말했다.

 

"옳습니다. 아! 또한 일을 행할 때에는 아홉 가지 덕이 있어야 하며 말을 할 때에도 덕이 있어야 합니다."

 

이어 말했다.

 

"일에 종사하기 시작하면 관대하면서도 근엄하고, 온유하면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선량하면서도 공손하고, 일을 잘 처리하면서도 경건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굳세고, 곧으면서도 따스하고, 간략하면서도 분명하고, 과단성 있으면서도 성실하고, 고집스러우면서도 의리에 맞아야 합니다. 이 아홉 가지 떳떳한 덕행을 밝히면 길할 것입니다. 날마다 이들 중 세 가지 덕을 실천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공경한 자세로 분발하면 가문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날마다 이들 중 여섯 가지 덕을 공손히 실행하면 분명히 나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덕과 여섯 가지 덕을 합하여 널리 베풀어 아홉 가지 덕을 모두 실천한다면, 뛰어난 인재가 관직에 있게 되어 모든 관리가 엄숙하고 신중할 것이니, 사람들을 간사하고 음란하며 기묘한 꾀를 부리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위의 적임자가 아닌데도 관직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일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것입니다."(83∼85쪽)

 

 - 사마천, 『사기 본기』, <하 본기> 중에서

 

(나의 생각)

 

참으로 명쾌하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 * *

 

당시에 하나라의 걸왕이 포악한 정치를 하고 방탕함에 빠져서 제후 곤오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탕이 즉시 군대를 일으키고 제후들을 통솔하니 이윤도 탕을 따라 나갔다. 탕은 직접 도끼를 들고 곤오를 정벌하고 나서 마침내 걸왕까지 정벌하고자 했다. 탕이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와서 내 말 좀 들으시오. 나처럼 형편없는 사람이 함부로 난을 일으키려는 것은 아니오. 하 왕조는 죄가 많고 내가 그대들의 원망을 들었기에 나는 하늘이 두려워 감히 정벌하지 않을 수 없소. 지금 하나라가 죄가 많아 하늘이 그를 처단하라고 명하셨소. 지금 여러분 가운데에는 '우리 군주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 내 농사를 버려두고 전쟁에 참여하였으니 무슨 정사를 한단 말인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오. 또 여러분 중에는 '하나라 걸왕이 죄가 있다는데 무슨 죄인가?'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오. 하나라 왕은 백성들이 농사짓는 데 쓸 힘을 모조리 못 쓰게 하고, 하나라의 재물을 모조리 빼앗아 백성들은 거의가 게을러지고 화목하지 않게 되었소. 그래서 '이 태양은 언제쯤 사라질까? 나와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리라!'라고 말하게 되었소. 하나라 왕의 덕이 이와 같으니, 지금 내가 반드시 가야만 하오. "(100∼101쪽)

 

 - 사마천, 『사기 본기』, <은 본기>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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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사이에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갈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아베 총리는 주한 일본 대사를 새로운 인물로 교체할 모양인데, 조만간 부임할 신임 대사의 프로필이 새삼 화제다. 그의 장인이 『금각사』를 쓴 미시마 유키오이기 때문이다. 외교관으로서의 신임 대사의 경력 보다는 그의 장인에 얽힌 이야기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가면의 고백』, 『금각사』, 『우국(憂國)』 등을 쓴 미시마 유키오야말로 세계 대전에서 참패한 이후 극도로 억눌려 있던 '극우 일본'을 갑자기 깨어나게(?) 만든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한국에서 커다란 주목을 끌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가 쓴 『우국(憂國)』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신경숙 작가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작품 속에 담긴 문장들이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면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 작가마저 '자신도 모르게' 그의 글을 고스란히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냈겠는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는 솜씨로 말이다. 명백한 표절조차 순순히 인정하지 못했던 낯부끄러운 여류 작가의 '이중의 과실'을 여기서 새삼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듯하다.

  

미시마 유키오(1925∼1970)는 일본이 점차 팽창하는 제국으로 변모하던 쇼와(재위 1926∼1989)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0대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20대와 30대에 일찌감치 일본 문단의 최정상에 올랐다. 40대에 이미 두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불과 45세의 한창 나이에 느닷없이(!)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일본 사람들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을 충격 속에 몰아 넣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래 탐미주의의 극치로 평가받는 『금각사』와 같은 걸작을 남긴 천재 작가가 하루 아침에 (아베보다도 더 아베스러운) 꼴사나운 모습으로 '일본 자위대'를 향하여 '깨어나라'고 외치며 장렬하게(!) 할복 자살로 삶을 마감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그의 느닷없는 행동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미시마 유키오의 극단적인 할복 자살에 얽힌 전후 사정들을 들여다 보기 전에, 그의 문학적인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그의 갑작스런 우경화와 충격적인 자살이 그만큼 더 충격적으로 느껴질 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불세출의 걸작인 『금각사』를 발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문학 청년이었다. 그 무렵까지도 그는 31세의 노총각이었다. 금각사를 발표하고 2년이 지난 1958년에 결혼할 때 주례를 맡은 인물은 일본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였다. 그런데 '일본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설국』의 작가로 귀착되기까지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세설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가 그보다 앞서 세 차례나 노벨상 후보로 올랐다가 아깝게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다니자키는 1958년에는 펄 벅의 추천으로 노벨상 후보에 처음 올랐고, 1963년과 1964년에는 최종 후보까지 올라 수상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수상에 실패했다.(1964년에는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에게 밀려났다.) 결국 1965년에 그가 사망하고 나서 1968년에 가와바타에게 노벨상이 돌아가자 "다니자키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노벨문학상은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미시마 유키오는 다니자키가 죽은 지 5년 후인 1970년에 비극적인 자살로 마감했는데,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불과 2년 뒤인 1972년에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하고 만다. 미시마 유키오는 다니자키가 죽은 해인 1965년과 2년 후인 1967년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었다. 결국 이들 세 사람의 문학 천재들은 모두 노벨상 후보에 올랐으나 그 가운데 한 사람만 노벨상을 수상했고, 결혼식때 주례와 신랑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마감했던 것이다.

 

다시 미시마의 죽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인 자살은 당시에도 세간에 널리 알려졌지만, 차제에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그의 죽음이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부활과도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어렴풋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1966년 민병대 "방패의 모임(楯の會)'를 결성, 우익 정치 활동에 본격 참여했다. 방패회는 무장 투쟁 훈련을 했다. 이는 이후 일본의 신우익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시마는 1968년에 <문화방위론>을 간행했다. 이는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롭게 전개되어 왔던 일본 문화의 정신과 '미의 총람자(總攬者)'로서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물질 문명의 더러움으로부터 구해내고, 또한 공산주의의 손으로부터 지키려면 무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  1969년 우익 운동가 에토 고사부로의 자결에 큰 영향을 받아 1970년 11월 25일 방패의 모임 대원 4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 '우수 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들어가 자위대 동부 방면 총감과 면담하던 중에 가지고 간 일본도로 위협해 인질로 잡은 뒤 부하 8명을 부상하게 했다.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헌법 개정을 요구, 자위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이치가야 연설'을 한 뒤 약 5분 후 모리타 마사카쓰와 함께 할복 자살했다. 이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출처 :위키백과)

 

미시마의 자살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에게 '시대착오적인 행위'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내면에 끈끈히 흐르는 '침략 본성'이 어떻게 일순간에 모두 사라질 수 있겠는가.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극우 본성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음은 누구라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이윽고 그의 자살 이후에 새로운 우익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그 흐름이 오늘날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자민당 정권에까지 깊숙히 스며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니 미시마의 자살이 어찌 한낱 '극우 사상에 심취된 어느 문학 천재의 기이한 자살'로 간단히 치부될 수 있겠으며, 그의 맏사위가 차제에 신임 주한 일본 대사로 부임하는 일이 어찌 우연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이미 49년 전에 죽은 어느 문학 천재의 기이한 자살을 둘러싸고 오늘날의 우리가 그의 죽음을 너무 과장해서 새삼 돌이켜 보고 예민하게 재해석할 필요는 없다. 또한 그의 죽음보다 14년이나 앞서서 발표된 『금각사』라는 걸작 소설 속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극우 사상의 씨앗들'을 새삼 꼬치꼬치 찾아내 억지로 연결시킬 필요는 더더욱 없을 지도 모른다. 굳이 맹자나 순자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인간에게는 누구한테나 타인을 지배하려는 나쁜 욕망이 내재되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와 결합하게 되면 더욱 맹렬하게 불타 올라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까지 발전할 개연성은 어느 시대에나 능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금각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한 건축물이 되었고, 그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한해 수백 만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이 건축물이 지어진 해가 공교롭게도 1397년이었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해보다도 딱 1년이 앞섰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또한 이 소설 속에 미국과 맞서 싸우던 '군국주의 일본'이 자주 등장하고, 금각사가 실제로 '방화범'에 의해 완전히 전소된 때가 6.25 전쟁이 터지고 나서 정확히 7일이 지난 때였고, 작품 속의 주인공이 한국전쟁 때문에 금각사를 불태우려는 결심을 더욱 앞당겼다는 사실마저도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 금각사(출처 : 위키백과)

 

 

6월 25일, 한국에 동란이 발발했다. 세계가 확실히 몰락하고 파멸하리라는 내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 서둘러야 한다.(342쪽)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제9장>

 

 

소설 『금각사』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와 극우주의 아베 정권을 강력하게 이어주는 뚜렷한 연결고리들은 그런 사소한 우연 속에 숨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웃 국가에 대한 악랄한 식민 지배뿐 아니라, 가장 추악한 범죄인 2차 대전 당시의 끔찍한 만행들까지도 뉘우치지 못하고, 도리어 멀쩡한 평화 헌법을 개정하지 못해 저토록 안달하는 아베 정권의 추악함은 어쩌면 '악의 평범성'으로부터 훨씬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내가 욕망하지만 차지하지 못하고, 행위하지 못하고, 지배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해코지 본성' 또는 '파괴 본성'이 아닐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를 완성한 이후로 죽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 급속도로 '우경화'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숙아로 태어난 미시마는 어려서부터 육체적인 열등감에 몹시 시달렸던 탓에 12세까지도 할머니 밑에서 양육되었으며, 또래 소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거나, 혹은 조모가 지정해 준 이웃집 여자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그런 열등감이 얼마나 지독했겠는가. 그가 마침내 그런 열등감을 극복한 계기가 『금각사』를 연재하는 동안에 병행했던 '육체미 운동'이었다.

 

 

"이러한 열등감을 30년이나 짊어지고 온 것이 무슨 이익이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로 어리석게 여겨진다."

 

미시마가 육체미 운동에 열중하여 하루하루 근육이 붙어나가는 동안 『금각사』의 주인공인 미조구치 또한 '말더듬이'이자 '행위 불능자'(그는 대학교에 다니는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동정'을 떼는 데 여러 번 실패한다.)에서 차츰 벗어나 마침내 '미의 화신'인 금각사를 불태우는 대담한 행위를 열망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육체적인 열등감으로부터 탈피한 작가 미시마와 금각에 방화하여 행위의 세계로 뛰어든 미조구치는,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는 마지막 문구에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시마는 『금각사』에 '개인의 소설'이라는 별칭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면의 테마'에 중점을 두고 『금각사』를 평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고백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다. 젊은 시절 특유의 어두운 고뇌와, 그 고뇌를 극복하며 성장하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이 작품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401쪽)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작품 해설> 불후의 명작 《금각사》의 테마는 무엇인가 

 

 

 소설 『금각사』는 명백히 '고백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며,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개인의 소설'이라는 사실이 새삼 우리에게 크게 부각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금각사』를 읽는 독자가 오늘날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파들의 추악한 본성을 소설 속에서 다시 찾을 수 있고, 그러한 재발견이야말로 미시마 유키오가 그토록 치열하게 그려내고자 애썼던 『금각사』 방화범의 행위와 극우파 아베 정권의 폭주를 연결시켜주는 '비밀 통로의 발견'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 방화범에 얽힌 실화'를 자신의 '고백 소설'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자료 조사에 매달린 기간만 무려 5년이었다. 그는 방화범의 이야기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기 위해 일부러 '수기 소설' 내지 '고백 소설'의 형식을 취했으며, 바로 그 점이 독자들을 강력하게 몰입하도록 만든다.(특정한 대상에 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끝끝내 그 대상을 파괴하고야 만다는 이야기가 '수기' 형태로 쓰였다는 점에서 소설 『금각사』는 언뜻 『롤리타』를 연상시키키도 한다. 롤리타에 집착한 주인공 험버트의 수기 속에 작가 나보코프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겹쳐져 있다는 점도 서로 닮았다. 『롤리타』는 『금각사』보다 1년 앞선 1955년에 출간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미조구치가 '말더듬이'라는 육체적 결함 때문에 겪는 극심한 열등감은 차츰 '아름다움을 향한 구애의 좌절'로 이어진다. 자신의 이상형이나 마찬가지였던 우이코를 만나러 새벽녘에 골목길에서 숨어 기다렸다가 막상 마주치고 나자 입도 뻥긋 못하고 망신만 당한 게 대표적이다. 그런 좌절들은 나중에 성인이 된 뒤로도 줄곧 이어진다. 대학 동창생인 가시와기가 거듭 여친들을 소개해 주지만 미조구치는 거듭 '행위의 문턱'에서 좌절을 겪는다.

 

가시와기는 나를 인생으로 재촉해주는 친절 또는 악의를 내가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말한 바와 같다. 중학교 시절에 선배의 단검 칼집에 흠을 냈던 나는, 인생의 밝은 표면에 대한 무자격을 이미 내 자신 위에 명확히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시와기는 뒷면에서 인생에 도달하는 어두운 샛길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친구였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파멸로 돌진하는 듯 보이면서도, 의외의 술수에 능하기에 비열함을 그대로 용기로 바꿔 우리들이 악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금 순수한 에너지로 환원시키는 일종의 연금술이라 해도 좋았다.(180∼181쪽)

 

 

인식이나 욕구가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는 극단적인 좌절감은 마침내 '금각사'로 전이된다. 금각사야말로 어려서부터 그에게 줄곧 '완벽한 미의 화신'이자 '우이코의 물질화된 대상'이었음에도 그는 금각사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채 줄곧 바라만 본다. 오매불망 '금각사와의 합일(合一)'을 꿈꾸던 그는 금각사 주지로부터 '후계자' 자격을 박탈당한 일을 계기로 학업마저 포기한 끝에 출분((出奔)하고, 금각사를 불태우기로 마음 먹는다.

 

문득 나는 가시와기가 처음 만났던 날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났다. 우리들이 갑자기 잔학해지는 것은 화창한 봄날의 오후, 잘 깎인 잔디밭 위에서 나무 사이로 새어 나온 햇빛이 여기저기 비치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을 때 같은 그러한 순간이라고 했던 그 말이.

……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276∼277쪽)

 

 

"내가 인생에서 최초로 부닥친 난관은 아름다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고 회상한 〈나〉는 2차 대전 중의 종말관 속에서 '금각사와 함께 불에 타 죽는 생의 결정적 순간'을 바랬지만 전쟁은 허망한 패망으로 끝나고, 전후의 절망과 고독 속에 살아가야만 한다. 주인공 미조구치의 이런 정신 편력이야말로 '먼 훗날 극우의 상징'이 된 미시마의 정신 편력에 다름 아니다. '극우'란 무엇일까. 결국 '화창한 봄날' 같은 따사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상태도 포함하는 개념이 아닐까. 그렇다면, 전쟁의 참화와 함께 불타오르는 금각을 보지 못하고 절망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좌절감이야말로 오늘날 '극우 일본'의 상징이 된 아베의 어두운 내면의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극우가 극단에 이르러 결국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까지 발전한 게 결국 '금각사에 대한 방화'이고, 자위대에 무단 침입하여 '자위대여, 무장하라'고 외쳤던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 자살'이고, 미우나 고우나 이웃으로 서로 공생하며 살아온 이웃나라를 다시금 힘으로 짓밟으려는 '아베의 폭주'가 아닐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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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8-18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란 일본 작가는 70년대에 나온 부도덕 교육강좌란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시니컬한 그의 독설에 맘에 들어 그에 대해 알아보니 지위대에 무력 봉기를 선동하다 할복 자살을 한 극우 인사란 것을 알게되고 그에 대해 관심을 끈 기억이 나네요ㅡ.ㅡ

oren 2019-08-18 23:40   좋아요 0 | URL
<부도덕 교육강좌>라는 책도 있었군요!
그런데 목차를 찾아 보니 참 꺼림칙한 내용들이 많네요...
아베스러운 치졸한 것들도 많고요...
* * *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28
친구를 배신하라··76
약자를 괴롭혀라··82
자만심을 가져라··89
약속을 지키지 마라··106
“죽여버려!”라고 소리쳐라··112
죄는 남에게 덮어씌워라··129
은혜는 잊어라··159
남의 불행을 기뻐하라··165
악덕을 많이 쌓아라··171
죽은 뒤에 험담하라··215
끝이 나쁘면 모든 게 나쁘다··405
 

 

불면과 되새김질, 역사적 의미에도 어떤 한도가 있는데, 이 한도에 이르면 인간이든 민족이든 문화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해를 입고 마침내 파멸한다.

 - 니체

 

 * * *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핫이슈로 떠오른 한일 간의 갈등을 통해 새롭고도 뚜렷하게 목도하는 현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의 과잉'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와 미래의 삶까지도 송두리째 삼키는 게 과연 얼마만큼 가치있는 일인지를 우리는 너무 쉽게 불문에 부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 책임은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간악무도한 '아베 일당'에게 따지고 묻는 게 맞다. 그는 태생적으로 우리나라를 업신여기는 고약한 피를 지닌 극우 이데올로기로 찌든 인물이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 크게 확산된 혐한 분위기마저도 아베 정권 출범 이후에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있는 걸 보면 그가 우리나라에 끼친 해악이 얼마만큼 작위적인 것인지를 새삼 돌아볼 필요도 있다. 또한 그가 자신의 태생적인 성향과 정치적인 야심 때문에 한국 때리기에 유난히 골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이토록 치졸하고도 무모한 도발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일본의 경제 보복을 둘러싼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이 '이러다간 우발적인 무력 충돌까지도 우려된다'는 식으로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된 건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방심과 과잉 대응이 단단히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는 반복하기도 지겨운 레토릭이 되어 버린 죽창가와 의병 운동과 국채 보상 운동 언급부터 과잉이었다. 그런 말들을 재빨리 꺼내 든 사람들이야말로 이번 사태에 대해 최일선을 떠맡은 고위급 핵심 당사자들이었다. 그 정도의 수사로도 부족했는지 곧바로 성웅 이순신의 12척의 배가 소환되었고 신흥무관학교와 헤이그 밀사 파견까지도 뉴스에 오르내렸다. 기야 한미일 군사동맹의 중요한 고리 가운데 하나인 지소미아 파기가 검토 단계를 넘어 실행 압박에까지 이르렀고, 올림픽 보이콧 문제와 도쿄 여행 금지 구역 선포가 언급되는가 싶더니, 마침내 'No Japan' 깃발이 서울 한복판을 삽시간에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이토록 무분별한 '과잉 대응'이 어디에 있는가.

 

이토록 무책임하고도 자극적인 대응이야말로 우리의 지혜 부족과 경박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소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죽창가가 지배계층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맨몸으로 저항하다가 끝내 맥없이 쓰러지고 만 민초들의 최후의 저항을 상징하고, 의병 운동조차 국가적인 대재앙을 미리 대비하지 못한 무능한 조정과 관군 부족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초들의 항일 구국 운동이었음을 왜 모르는가. 신흥무관학교나 헤이그 밀사 파견 또한 억울하게 나라를 빼앗긴 처지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나 간절한 노력을 상징하는 아픈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이토록 아픈 과거의 역사가 왜 하필 이런 시점에 빠짐없이 다시 불려나와야 하는가. 국민들의 삶이 정부의 거듭된 외교적 무능과 경제 실정 등으로 하루하루 나락에 빠져드는 데도 정부에서는 스스로 수습할 능력이나 대책이 없어 애꿎은 국민들을 '한일 경제 전쟁의 최일선'으로 가열차게 내모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왜인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단 이틀 만에 75조원이나 사라지고, 원화의 가치가 수년래 최저치로 급격하게 추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를 '일본의 경제 침공'에 놀라 허둥대며 다급하게 죽창가와 의병과 이순신의 12척부터 호출한 무능한 지배층의 언급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정말로 능력 있고 지혜로운 정부라면 '일본의 경제 침략'을 맞아 황급하게 '의병'부터 찾을 게 아니라 튼튼한 관군부터 내세워 수비를 단단히 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헤이그 밀사 파견을 도모할 게 아니라 일본의 불의와 우리나라의 정당성을 세계 만방에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공식 외교 특사들을 내세워야 마땅한 게 아닌가. 지금의 우리나라가 나라마저 빼앗겼던 100년 전의 그토록 나약하고 가련한 나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지소미아 파기도 그렇다. 두 나라 사이의 과거사 갈등 때문에 일본이 치졸한 경제 보복으로 나온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우리가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격렬하게 항의하고 상대를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토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과거사 갈등의 경제 보복 무기화에 맞대응해 우리가 경제 문제를 안보 문제로까지 확대시킨다면 국제적인 '아베 비난 여론'이 순식간에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한미일 안보동맹이 크게 흔들리는 마당에, 한일 사이의 과거사 갈등과 경제 보복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안보 협정까지 끌여들여 우리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인 미국까지 자극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일본에 보복하기 위해서라면 미국과의 관계는 이럴 때 적당히 훼손시켜도 좋단 말인가. 이런 일이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서울 한복판에 내걸린 '일본 보이콧 깃발'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민다.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켜켜이 쌓인 과거의 앙금들 때문에 이 사단이 났는데, 정부와 여당이든 지자체든 국민이든 어느 누구라도 하루 빨리 이 갈등을 슬기롭게 치유하고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모두에게 '최선'이 아닌가. 모든 정책 목표는 마땅히 거기에 맞춰져야 올바른 일 아닌가. 도대체 중구청장은 '무엇을 위해' 그런 깃발을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 우득부득 내걸어야 했는가. 집권당의 '반일 캠페인'에 더욱 큰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반일 무드가 나부끼는 깃발 덕분에 더욱 드높아지면 문제 해결이 더욱 앞당겨지는가.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생업에 몰두하는 서울 시민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인가. 일본의 지자체 공무원들은 급감한 방일 관광객 때문에 항공 노선 감축에 나선 국내 항공사까지 직접 찾아와서 '노선 유지'를 간곡히 당부하는 마당에, 어떻게 중구청장의 머리 속에는 그런 상식적인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반일 무드 고취'에만 그토록 정신이 팔려 있는가. 이런 마인드라면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의 입국부터 미리 막아야 옳은 일 아닌가.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일본과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도쿄를 여행 금지 구역으로 검토해야 된다는 주장이나 올림픽 보이콧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옳다는 주장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어떻게 꾀를 내도 죽을 꾀만 낸다는 말인가. '일본 경제 침략 특별 대책 위원회'라는 곳에서는 마치 한일 사이의 온갖 잠재된 갈등 요소를 이번 기회에 최대한으로 부각시키고 극대화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활동하는 듯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여행객만이 아님은 새삼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정말로 도쿄의 방사능 오염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가 미리 나설 필요조차도 없다. 다른 선진국들이 어련히 알아서 그런 문제점을 제기하고 조치를 취할까. 때는 이때다, 마침 잘 됐다 하고 우리나라가 떡 하니 도쿄를 여행금지구역으로 정말로(!) 설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세상 사람들이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멀쩡한 이웃나라의 수도까지도 자국 국민들의 여행을 통째로 금지시키는 나라가 등장했다고 얼마나 비웃겠는가. 설마, 이번 참에 정부에서 '도쿄 여행 금지 조치'를 내리게 된다면 눈치 빠르고 똑똑한 우리 국민들은 미리 알아서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여행금지 국가로 찰떡같이 알아 듣고 거국적으로 일본 여행을 기피할 줄 기대했는가. 

 

엊그제는 우리가 그토록 가슴 절절히 불러 왔던 애국가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고 한다.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이 친일인명사전에까지 오른 인물이니 전혀 근거없는 문제 제기는 아닌 셈이다. 그 문제는 과거에도 이미 충분히 다뤄졌고, 가슴 절절한 애국심을 고취시킨 애국가의 기나긴 역사에 비춰봐서도 그걸 새삼스럽게 부정할 까닭이 없다는 쪽으로 정리된 터였다. 그런데도 왜 하필 이럴 때 애국가가 또다시 문제인가. 아무리 일본과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쳐도 수천만 동포들에게 그토록 가슴 뜨거운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애국가마저 '친일'이라는 이름 앞에 간단히 내동댕이쳐져야 한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고 버려야 할 하찮은 가치란 무엇이란 말인가. 친일이 그토록 문제가 된다면 같은 우리 민족에게 탱크와 총칼로 무참히 짓밟고 수백 만의 생명까지 앗아간 북한에게는 왜 그토록 너그러운가. 일제의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온갖 최악의 만행을 저지르고 전국토를 잿더미로 바꾼 걸로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철책 너머로 무시무시한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연거푸 쏘아대는 북한을 무턱대고 감싸고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는 '친북파'들은 도대체 어떤 형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는 말인가.

 

애국가를 지은 작곡가의 친일 행위 정도는 너그럽게 용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는 거기에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고, 한번 친일 행위를 했으면 영원히 그에 상승하는 대접을 받아도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렇더라도 그 사람이 가슴 절절한 애국심으로 애써 지어 만들었고 지금까지 물경 수억 명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토록 눈물겹게 불러온 애국가마저 부정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무분별하게 과거에 매몰되고 집착하고 떠받드는 자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친일이 그토록 중차대한 흠결이라면 친일 행위에 조금이라도 가담했던 조상을 둔 후손들은 지금이라도 모든 공직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하고,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해야 옳은 일 아닌가. 또한 독립 유공자나 전쟁 유공자의 후손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이 부여되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전사들의 고귀한 희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발 정신들을 좀 차리자. 과거의 역사는 영광스러운 것도 있을 수 있고, 부끄럽거나 치욕스러운 역사도 있을 수 있다. 영광스러운 역사는 그에 마땅한 만큼 기리면 된다. 부끄럽거나 치욕스러운 역사는 그에 마땅한 만큼 반성하고 훗날을 도모하는 바탕으로 삼으면 족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과거사에 집착하고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그만큼 침식당하고 억눌리기 때문이다. '역사의 과잉'은 어쩌면 철학의 빈곤으로부터 느닷없이 끌려나온 부끄러운 사생아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와 미래의 삶이 중요하다면 '역사의 과잉'은 그만큼 절제될 필요가 있다.

 

반일 열기가 한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거운 이 때 이토록 고리타분한 글을 쓰는 일이야말로 '반시대적 고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가 지닌 무게를 그에 합당한 만큼 지혜롭게 다루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침식하지 않도록 슬기롭게 다루는 문제에서 니체만큼 깊게 천착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 * *

 

 

가장 작은 행복에서도, 또 가장 큰 행복에서도 행복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하나다. 잊을 수 있다는 것, 또는 학문적으로 표현한다면, 자신이 지속되는 동안 비역사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순간의 문턱에서 모든 과거를 잊으면서 정착할 수 없는 사람은, 또 승리의 여신처럼 현기증이나 두려움 없이 한 지점에 서 있을 수 없는 사름은 행복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그가 결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한번 생각해 보라. 망각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인간이 어디에서나 생성만을 봐야 할 형벌을 받았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밎지 못할 것이고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것이 움직이는 점으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을 볼 것이며 이 생성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진정한 제자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행위에는 망각이 내재한다. 모든 유기체의 생명에는 빛뿐만 아니라 어두움도 속하듯이.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느끼려는 사람은 잠을 자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이나 되새김질로만, 반복되는 되새김질로만 살아가야 하는 동물과 비슷할 것이다. 다시 말해, 동물이 보여주듯이 기억 없이 살아가는 것,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망각 없이 산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또는 좀더 단순하게 내 주제를 설명한다면, 불면과 되새김질, 역사적 의미에도 어떤 한도가 있는데, 이 한도에 이르면 인간이든 민족이든 문화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해를 입고 마침내 파멸한다.(292∼293쪽)

 

 - 니체, 『반역사적 고찰 』 중에서

 

 

 * * *

 

 

과거의 것이 현재의 것의 무덤을 파지 않으려면, 과거의 것이 잊혀야 할 한도와 한계를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인간, 한 민족과 한 문화의 조형력이 얼마나 큰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조형력이란 스스로 고유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과거의 것과 낯선 것을 변형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며,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한 것을 대체하고 부서진 형식을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이 힘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아 단 한 번의 체험으로도, 단 하나의 고통으로도, 종종 단 하나의 연약한 불의로도, 단 하나의 조그만 성처로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다. 다른 한편 가장 거칠고 끔찍한 삶의 재난이나 자신의 악한 행위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 그 와중이나 그 직후에도 평상시의 건강과 일종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한 인간의 가장 깊은 천성의 뿌리가 강할수록, 그가 과거로부터 습득하거나 갈취하는 것은 더 많아진다.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천성이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특성은 역사적 의미가 너무 무성해서 유해한 영향을 끼질 수 있는 한계가 그 천성에는 없다는 점이다. 이 천성은 자기 것이든 가장 낯선 것이든 과거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집어삼켜서 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런 천성은 정복하지 못하는 것을 망각할 줄 안다. 정복하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지평은 닫혀 완전하며, 동일한 인간의 저편에 열정, 학습과 목표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단지 지평 안에서만 건강하고 강하고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 법칙이다. 하나의 지평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능력이 없거나, 낯선 지평 안에 자신의 관점을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이기적이라면, 그것은 지치거나 급격한 몰락으로 시들어갈 것이다. 명랑함, 양심, 즐거운 행위, 다가올 것에 대한 신뢰 ㅡ 이 모든 것은, 개인이나 민족에게서, 한눈에 개괄할 수 있는 것과 밝은 것을 밝힐 수 없는 것과 어두운 것으로부터 구분하는 하나의 선이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가 제때에 기억하는 것처럼 제때에 잊을 줄 아느냐, 우리가 힘찬 본능을 가지고 언제 역사적으로 느껴야 하고 언제 비역사적으로 느껴야 할지 감지해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것이 독자들에게 한번 고찰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명제이다. 즉 비역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은 한 개인이나 한 민족 그리고 한 문화의 건강에 똑같이 필요하다.(293∼294쪽)

 

 - 니체, 『반역사적 고찰 』 중에서 

 

 

 * * *

 

이제 여기서 각자는 우선 다음과 같은 관찰을 제시할 것이다. 한 개인이 가진 역사적 지식과 감각은 아주 제한적이고 그의 지평은 알프스 골짜기의 주민처럼 매우 협소하며, 그는 얼마든지 부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자신이 모든 경험에서 최초의 경험자라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ㅡ 모든 부당함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고 있으며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반면 그의 바로 옆에는 그보다 훨씬 더 정의롭고 학식 있는 사람이 병약하고 쇠약한 상태로 있다. 그것은 그의 지평에 보이는 선들이 불안하게 항상 이동하기 때문이며, 그는 훨씬 더 부드러운 자신의 정의와 진리의 그물망에서 빠져나와 억센 의지와 욕망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반면 우리는 동물을 본다. 동물은 완전히 비역사적이며 거의 하나의 점과 같은 지평 속에 산다. 그러나 동물은 적어도 권태와 왜곡이 없는 생활 속에서 살아간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느 정도 비역사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요하고 더 원초적인 능력으로 간주해야만 할 것이다. 즉 올바르고 건강하고 위대한 것,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이 자라날 수 있는 토대가 그 안에 놓여 있는 한 그렇다. 비역사적인 것은 무언가를 감싸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 안에서 삶은 스스로 생성되고, 이 분위기의 파괴와 더불어 다시 사라진다. 인간이 사유하고 숙고하고 비교하고 분리하고 결합하면서 저 비역사적인 요소를 제한함으로써, 그리고 삶을 위해 과거를 사용하고 이미 일어난 것에서 다시 역사를 만드는 힘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 그러나 역사의 과잉 속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이기를 중지한다. 비역사적인 것의 껍질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며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다. 인간이 먼저 비역사적인 것의 안개층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제 비유는 제쳐두고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자. 여자나 위대한 사상에 대한 격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남자를 한번 상상해보라. 그의 세계는 그에게 얼마나 달라졌는가! 뒤를 돌아보면 그는 자신이 맹목적이라 느끼고, 옆의 낯선 사람의 말을 들어도 그는 그저 둔탁하고 무의미한 음향만을 지각할 뿐이다. 그가 지각할 수 있다 한다 해도, 마치 모든 감각으로 동시에 포착하듯이 가까이 만질 수 있는 것처럼 지각하지는 못하며, 화려한 색채를 느끼지도 못하고, 미세한 음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지각하지는 못한다. 모든 가치 평가는 변했고, 가치가 없어졌다. 그는 이제 느낄 수조차 없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것을 이제 소중히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문한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낯선 말과 낯선 의견을 지닌 바보였는가 하고. 그는 자신의 기억이 지치지 않고 하나의 원을 돌지만 너무 약하고 너무 피곤해 이 원 밖으로 한 걸음도 뛰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당한 상태이며, 과거에 대해서는 편협하고 배은망덕하며, 위험에 대해 맹목적이고 경고에 귀를 막는 것이며, 밤과 망각의 죽은 바다에서 생동하는 작은 소용돌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ㅡ 철저하게 비역사적이고 반역사적이지만 ㅡ 부당한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한 행위의 모태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 비역사적인 상태에서 먼저 갈망하고 추구하지 않고는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그림을, 어떤 장군도 승리를, 어떤 민족도 자유를 얻을 수 없다. 행위자는, 괴테의 표현에 따르면, 양심이 없는데, 마찬가지로 그는 아는 것도 없다. 그는 하나를 행하기 위해 대부분의 것을 망각하며, 그는 자신의 배후에 있는 것에 대해 불의를 행한다. 그가 아는 유일한 권리는 이제 생겨나야 할 것의 권리다. 그렇게 모든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를 사랑받아 마땅한 정도보다 훨씬 더 사랑한다. 최고의 행위는 그처럼 사랑의 충만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 행위의 가치가 다른 면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더라도 이 사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294∼296쪽)

 

 - 니체, 『반역사적 고찰 』 중에서  

 

 * * *

 

어떤 사람이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는 이런 비역사적 분위기를 수많은 사례들 속에서 건조시켜서 나중에 흡입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아마 인식하는 존재로서 초역사적인 관점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니부어가 언젠가 역사적 고찰의 가능한 결과로서 이런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 적이 있다. "명철하고 면밀하게 이해한다면 역사는 적어도 한 가지 일에 쓸모가 있다. 우리 인류가 배출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고귀한 인물의 경우에도, 우연히 그들이 눈이 형식을 받아들여 이 눈을 통해 보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볼 것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강제적인 것은 그들의 의식의 강도가 유난히 크기 때문이다. 이를 확실하게 그리고 많은 경우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주어진 형태에 최고의 열정을 불어넣는 하나의 강력한 정신에 굴복하고 만다." 그런 관점을 초역사적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것을 가진 사람은 역사와 함께 살아가고 역사와 협력하려는 유혹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았다면 그는 모든 사건의 유일한 조건, 즉 행위자의 영혼 속에 있는 저 맹목성과 부당성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은 초역사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모든 사건의 유일한 조건, 즉 행위자의 영혼 속에 있는 저 맹목성과 부당성을 인식함으로써 더 살고 싶은 유혹과 역사에 함께 참여하려는 유혹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병으로부터도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인간에게나 어떤 체험에서, 그리스인에게서든 터키인에게서든, 또는 1세기나 19세기의 어느 시간에서든,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자신의 친지들에게 그들이 지난 10년 또는 20년을 다시 한번 살고 싶기를 원하는지 묻는 사람은 그들 중 누가 저 초역사적 관점의 모법이 되는지를 쉽게 인식할 것이다. 그들이 모두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있지만, 왜 아닌지에 대한 이유를 각기 다르게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 20년은 더 좋아질 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으로 근거를 댈 것이다. 그들은 데이비드 흄이 이렇게 조롱했던 사람들이다.

 

최초의 힘찬 흐름이 줄 수 없었던 것을

인생의 찌꺼기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296∼298쪽)

 

 - 니체, 『반역사적 고찰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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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그 목표에 어떻게 도달하는가? 라고 너희는 물을 것이다. 델포이 신전의 신은 너희가 저 목표를 향한 유랑을 처음 시작할 때 너희에게 신탁을 전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그것은 어려운 신탁이다. 저 신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감추지도 선포하지도 않고, 단지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스인들도 몇 세기 동안 우리가 처해 있는 위험에, 다시 말해 낯선 것과 과거의 것, "역사"의 홍수에 몰락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남과 접촉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며 산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의 "교양"은 오히려 오랫동안 셈족과 바빌론, 리디아, 이집트의 형식과 개념들이 뒤섞인 카오스였으며, 그들의 종교는 전 오리엔트 신들의 투쟁이었다. 이는 지금 "독일의 교양"과 종교가 모든 외국들과 전체의 전(前) 시대들이 그 안에서 투쟁을 벌이는 카오스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문화는 저 아폴론의 신탁 덕분에 집합체는 아니었다. 그리스인은 차차 카오스를 조작하는 법을 배웠다. 즉 그들은 델포이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에게 되돌아가,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자각하고 거짓-욕구를 사멸시킴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자신을 소유했다. 그들은 전체 오리엔트의 유산을 잔뜩 짊어진 상속인이나 아류로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과의 힘든 투쟁 끝에 저 신탁을 실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상속받은 유산을 불리고 키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며 모든 미래의 문화 민족의 선구자며 모범이 되었다.(387∼388쪽)

 

 - 니체, 『반역사적 고찰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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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의 대표가 일식집에서 낮술을 먹은 걸 두고 논란이 뜨겁다. 그 날이 하필이면 '일본의 제2차 경제 침략'이 자행된 날이었으니 국민들의 펄펄 끓는 분노 게이지가 한 순간에 불끈 솟구치지 않았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일 터이다. 폭염만큼이나 짜증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워낙에 시국이 엄중한 때인지라 자칫 사소한 일이 크나큰 빌미가 되어 '천하에 몹쓸 짓을 한 사람'으로 내몰려도 할 말을 찾기 어려운 형국인데, 그걸 둘러싼 공방이 더욱 한심스럽다.

 

물론 대범하게 보자면 사과 한 마디쯤 건네고 그칠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사안이다. 그런데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비난 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지 싶은 사람을 편드느라, 물불 안 가리고 마구 뛰어들어 온갖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들의 언행들이 분노를 더욱 솟구치게 만든다. 일식집에 가서 사케 한 잔 먹는 것도 못마땅하냐? 그러면 일식집은 다 망하라는 말이냐? 하고 안하무인 식으로 상대편을 무턱대고 나무라고 도리어 꾸짖는 태도를 어느 누가 곱게 봐줄 수 있겠는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아전인수와 견강부회가 따로 없다.

 

이번 무역 갈등 사태가 확전일로로 치달은 데에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현 정부와 집권당에게 일말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아무리 치졸하고 부당하게 도발했더라도 양국 사이의 갈등을 최대한으로 누그러뜨리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정부와 여당몫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를 두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사코 갈등을 부추기고 이만큼이나 일을 키워 온 데 대해 선봉장 역할을 떠맡아온 당사자들이 '일식당에서 사케 한 잔 먹은 게 무슨 잘못이냐'는 식으로 비판자들을 향해 도리어 도끼눈을 뜨고 달려드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어디에 있는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 가장 많이 언급된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도 사자성어로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내로남불은 우리말의 '단순한 축약형'이지만,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비슷한 뜻을 지닌 말들도 아주 많다. 대표적인 게 아전인수, 견강부회, 적반하장, 지록위마 등이다. 아전인수의 반대말이 역지사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니, 내 논에만 물을 끌어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견강부회나 지록위마에 담긴 뜻에도 '억지를 부린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야말로 초딩들에게나 어울리는 한심스런 생각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발 좀 억지와 변명은 이제 그만 부리고 대범하게 위기를 풀어내는 쪽으로 머리를 맞대 보라. 백성들의 삶은 하루 하루 나락으로 내몰리는 판국인데, '사케 한 잔' 먹고 나서도 반성할 줄은 모르고, 도리어 비판하는 국민들과 상대편들을 향해 거센 언사들을 총동원해 이토록 뻔뻔하게 우길 참인가.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는 정부의 고관대작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벼슬이 꾸며주는 위세에 도취된 채 꼴사납게 으시대는 오만방자함을 날카롭게 꾸짖는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우연히 함께 휴가를 얻어 궁궐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의 고관대작은 혹시라도 저잣거리에 '성인 같은 사람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함께 수레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때 만난 인물이 점 집 주인인 사마계주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한마디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다. 두 사람은 관의 끈을 고쳐 매고 옷깃을 여민 뒤 똑바로 앉아서 그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 * *

 

 

사마계주는 이렇게 말했다.

 

어진 이의 행동은 도를 바르게 실천하여 바르게 충고하고, 세 차례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벼슬에서] 물러납니다. 남을 칭찬할 때에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남을 미워할 때에는 원망을 돌아보지 않으며, 나라에 편리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을 임무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벼슬이 자기에게 알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며, 봉록이 자기 공로에 알맞지 않으면 받지 않습니다. 바르지 못한 사람을 보면 그가 비록 귀한 지위에 있더라도 존경하지 않으며, 오점이 있는 사람을 보면 비록 그 사람이 높은 신분이라도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벼슬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벼슬에서 물러나도 원통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몸이 묶이는 치욕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들께서 말하는 어진 사람이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자입니다. 몸을 낮추어 앞으로 나아가고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며, 권세로 서로 끌어들이고 이익으로 서로 이끕니다. 도당을 만들어 바른 사람을 배척함으로써 높은 영예를 구하고, 나라의 봉록을 받고 있으면서 사사로운 이익만을 꾀하며, 나라의 법을 어기고 농민들을 착취합니다. 관직을 위세 부리는 수단으로 삼고 법을 무기로 삼아 이익만을 찾아 포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행하니, 비유하자면 흰 칼날을 잡고 사람을 위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처음 벼슬에 나갔을 때에는 교묘한 수단으로 실력을 두 배로 보이게 하고, 있지도 않은 공적을 꾸며 말하며, 있지도 않은 일을 문서로 만들어 임금을 속입니다.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있는 것을 좋게 여겨 벼슬에 임명될 때 어진 사람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적을 말할 때에는 거짓을 보고하기도 하고, 사실을 과장하기도 하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기도 하고, 적은 것을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권세와 높은 지위를 구합니다. 그리고 주연과 놀이를 일삼으며 미녀와 노래하는 여자를 좇느라 부모를 돌보지 않고, 법을 어겨 가며 백성을 해치고 나라를 텅 비게 합니다. 이것은 창과 활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도둑질하는 것이고, 칼을 쓰지는 않지만 남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속였지만 아직 그 벌을 받지 않고, 임금을 죽였으나 아직 그 벌을 받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높고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무리는] 도적이 일어나도 막을 수 없고, 오랑캐가 복종하지 않아도 평정할 수 없으며, 간사한 일이 생겨도 막지 못하고, 관직의 기강이 어지러워져도 다스릴 수 없으며, 사계절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도 조절할 수 없고, 그해의 곡식이 흉년이 들어도 조절할 줄 모릅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가에 대한 불충입니다. 능력도 없이 관직에 앉아 위에서 주는 봉록만을 탐하고 어진 사람을 방해한다면 이는 벼슬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도당을 거느리고 있는 자가 등용되고, 재물이 있는 자를 예우하는 것은 거짓된 행위입니다. 공들께서만 유독 올빼미(소인)와 봉황(군자)이 함께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십니까? 난, 지, 궁, 궁藭 같은 향기로운 풀은 넓은 들판에 버려지고, 蒿와 蕭가 숲을 이룹니다. 군자가 물러나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는 자들은 바로 공들 같은 사람입니다. (773∼775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일자 열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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