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온통 『폭풍의 언덕』과 함께 보냈다.

 

줄이고 또 줄여서 28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드는 데도,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대본 쓰고, 녹화(주로 녹음이지만) 하고, 알맞는 이미지 찾아 해당 장면에 넣고, 책 속 문장들을 타이핑 하는 과정까지는 나름대로 '영상 창작의 재미'가 느껴지는데, 맨 마지막 마무리 작업으로 자막을 집어 넣는 작업은 진짜 고역이다.

 

30분에 가까운 동영상을 만들다 보면, 내 입으로 쏟아낸 '말들'이 정말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 많은 말들을 알맞은 타이밍에 딱딱 맞게, 길이도 영상의 흐름에 적당하게 맞춰 가면서 제자리에 딱딱 집어넣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다.

 

30분짜리 동영상을 하나 만들자면 자막을 타이밍에 맞게 짜넣는데도 최소 30분 ×5회 = 150분은 그냥 잡아 먹는 것 같다. 먼저 순차적으로 영상을 틀어 보고, 알맞는 자막 길이를 집어 넣고, 다시 그 화면의 시작부분으로 되돌아 가서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고, 끝나는 부분에 맞춰 자막을 자르고, 다시 그 다음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에 맞춰 다음 자막을 짜 넣고, 다시 제대로 정확하게 타이밍에 맞는지 또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다시 처음부터 쫘악 재점검하고.. 등등)

 

내 목소리를 갑자기(!) 이토록 자주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과잉 친절'만 생략하더라도, 동영상 만들기는 얼마나 수월할 텐가.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면 방송 프로그램조차 '자막'을 일일이 뿌려 주고 있다. 빤히 들리는 명확한 대사나 말인 경우에도 그렇다. 그것도 매번 자막 폰트까지 바꿔 주고, 크기와 색깔과 모양까지도 변화를 주고 있다. 그런데 초보 유튜버가 무슨 배짱으로 감히 '자막'을 생략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발음'도 부정확한 주제에...

 

어쨌든 동영상 제작 작업은 '상상 이상으로'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며칠 만에 뚝딱 30분짜리 동영상 하나 만들어 '업로드'하는 보람이 적지는 않다. 이렇게 올린 영상은 '이론적으로는' 전세계 20억 명에 가까운 유저들에게 완전히 공개되는 셈이니까. 그리고 내가 억지로 그 영상을 비공개로 돌리거나, 삭제하지 않는 한 그 영상은 오래도록 살아서 계속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즐겁게(?!) 할 테니까.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apGaXXvz-r0)

 

『폭풍의 언덕』에 대한 폭풍(!) 같은 작품 소개를 다 끝낸 뒤에 <에필로그> 삼아 차분하게 두 주인공의 가슴 아픈 사랑을 반추할 겸 『소란한 무덤(The Unguiet Grave)』이라는 애잔한 시를 하나 덧붙였는데, 이 가사에 붙은 음악인 <The Unguiet Grave>라는 음악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음악은 무려 600년 전부터 전승되어 온 '유서 깊은' 노래라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끝내 사별하고 난 뒤에 '무덤가'에서 나누는 대화가 가슴을 후비도록 애절하고 통절한데, 그 시에 딱 맞는 이 유명하고도 가슴 저린 노래를 '저작권'이 무서워 BGM(일명, 브금)으로 깔아드리지 못한 게 내내 아쉽기만 하다.

 

 * * *

 

내 사랑이여, 오늘 바람이 불고,

  몇 방울의 비도 내리는구려;

진정한 사랑 외에 내 가진 것이 무엇이겠소,

  차디찬 무덤 속에 그녀가 누워 있으니,

 

내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서는 무엇이든 하겠소.

  그 어떤 젊은 연인보다도;

그녀의 무덤 앞에 앉아 언제까지나 서러워하리오.

  열두 달 하루라도.

 

열두 달 하루가 끝나자

  죽은 자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 내 무덤 앞에 흐느끼며

  그리하여 날 잠들지 못하게 하는 분은 누군가요?"

 

"내 사랑, 그대 무덤 앞에 앉은 자는 나요.

  그대 잠들지 못하게 하는 자는:

진흙처럼 차가운 그대의 입술로 한 번의 키스를 해 주길 갈망하오.

  그것이 내가 구하는 전부일 테니."

 

"그대 진흙처럼 차가운 내 입술로 한 번의 키스를 받고 싶어하는군요.

  하지만 내 숨결에는 진한 흙 냄새;

내 진흙처럼 차가운 한 번의 키스를 받는다면

  그대의 삶도 오래지 않아 끝나고 말 거예요."

 

"저 건너 아래 초록의 정원,

  사랑, 우리가 걷던 그곳에,

이전에 보았던 그 멋진 꽃도

  시들어 줄기만 남으리니."

 

"줄기가 시들어 마르듯, 내 사랑,

  그렇듯 우리의 심장도 썩어갈 거예요;

그러니 내 사랑, 이제는 단념하세요.

  신이 그대를 부를 때까지."

 

 - 「소란한 무덤」중에서.

     (『교양인의 책 읽기』에서 인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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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1-06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 님!
계속 유투브 작업하시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oren 2020-01-06 12:11   좋아요 2 | URL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벌써(!) 다섯 편을 만들었네요.
<월든>, <몽테뉴 수상록>, <설국>, <죄와 벌>, <폭풍의 언덕>...
폭풍처럼 시간은 휙휙 지나갔지만, 나름 보람도 있는 듯해요.^^

이제 ‘영상 편집 기술‘은 대충 익숙해지는 단계가 되었고, 알맞는 이미지를 찾는 작업도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니, 영상의 분량을 어떻게든 줄여보도록 하는 게 최대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컨텐츠가 좋아도 10분 내지는 15분이 넘어가면 그냥 패쓰(!) 하는 분위기라, 좀 더 많은 구독자를 모으고, 시청시간을 늘리자면 ‘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다 더 간략하게‘ 분량을 줄이는 노력을 해봐야지 싶어서요. 한가지 편법으로다가, 대본을 ‘매우 빨리 읽는 방법‘을 취하고는 있는데, 그게 은근히 지루함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암튼 여태껏 써왔던 리뷰들을 중심으로 동영상 제작은 계속 해 보고 싶습니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이리저리 연결시키고, 다양한 방식으로 책 속의 내용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영상물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런 특장점을 제대로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가령, <폭풍의 언덕>을 설명할 때, 그 영화의 일부분을 직접 배경화면으로 흐르게 하면서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 봐야지 싶습니다.^^)

다른 유튜버나 북튜버들에 비해 상당히 긴 동영상들이지만, <몽테뉴 수상록>이나 <월든>과 같은 동영상을 내리 두 번씩이나 연거푸 시청했다는 분들도 있는 걸 보면, 나름 성과는 있는 듯합니다.^^

페넬로페 님꼐서도 늘 성원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20-01-06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비가 와서 음악이 더 잘 들려요 셀틱계통의 음악 인가봐요^^

oren 2020-01-06 20:52   좋아요 1 | URL
오늘처럼 을씨년스럽고 비가 흩뿌리는 날씨에는 더욱 어울리는(?) 음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위키백과에는 이 곡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더군요. 참조하시길 바랄께요.^^
* * *
˝The Unquiet Grave˝ is an English folk song in which a young man mourns his dead love too hard and prevents her from obtaining peace. It is thought to date from 1400[citation needed] and was collected in 1868 by Francis James Child, as Child Ballad number 78.[1] One of the more common tunes used for the ballad is the same as that used for the English ballad ˝Dives and Lazarus˝ and the Irish pub favorite ˝Star of the County Down˝.

CREBBP 2020-01-08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랬동안 블로그를 해왔지만 이거 묻혀 없어지고 사라질 글들이란 생각에 점점 소홀히 하다가도 오렌님의 작업에 자극을 받아 언젠가는 유튜브같은 다른 매체의 소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비전을 보기도 해요. 사진 모으고 씽크 맞추고. 작업 소모 시간 엄청 소모되셨겠지만 아주 생산적인 취미 활동이고요.

제 의견은.. 길이고 뭐고 일반적인 유튜버의 시장 논리와 법칙은 무시하시고 그냥 오렌님 방식대로 밀고 나가시는 것도 차별화 전략상 장기적으로 그리고 충실한 구독자 확보 면에서는 이득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얄팍하고 가벼운 동영상에 더 많은 구독자가 따르기도 하겠지만 진지하게 깊이있는 컨텐츠를 원하는 진중한 구독자도 있을 거거든요. 특히 고전들을 찾는 독자라면 말이에요. 그래도..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더라구요. 응원합니다

oren 2020-01-08 12:37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읽은 책들에 대해 글을 남겼던 게 나중에 또다른 매체의 소스가 되리라는 생각은 저도 예전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곰곰 생각해 보니 ‘알라딘 서재‘마저 없었더라면 내가 그동안 책을 읽고 난 뒤에 그 책에 대한 글을 쓰고, 때로는 책 사진이나 여행 사진을 곁들여 페이퍼를 쓰고 했던 작업들이 과연 가능했겠느냐, 혹은 온전히 남아 있었겠느냐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런 점에서는 알라딘 서재가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더라구요. 여러 알라디너 분들과 알고 지내게 된 것도 크나큰 보람이자 소득이었구요.

유튜브에 책 소개 동영상을 올리는 작업들은 아직까지는 워낙에 초창기여서,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가장 알맞는 컨텐츠가 어떤 것일까, 동영상의 길이는 이대로 좋은지, 절반 가까이로 줄이면서도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는지, 깊이만 추구하다가 외연 확장에 너무 소홀하는 것은 아닌지, 유튜브 동영상에 어울릴 만한 요소(가령 짧으면서도, 몹시 재미있고, 유익하고 등등)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데, 그 부분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등등 고민거리가 정말 한둘이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아직 얼마 안 되는 동영상들이나마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서 몹시 고무적이긴 합니다. 조회수가 낮은 동영상들도 시청시간 측면에서는 도리어 조회수가 많은 다른 영상들을 압도하는 걸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요.(<몽테뉴 수상록>과 <월든> 소개 동영상이 대표적입니다.^^)

마침 어젯밤에는 저도 드디어 유튜브로부터 ‘구독자 100명‘을 돌파했다는 축하 이메일을 받았는데, ‘구독자 100명 돌파‘ 유튜브 동영상들을 검색해 봤더니, 그 영상을 올린지 몇 달 지나지 않은 분들이(기껏 2개월 혹은 3개월 정도) 벌써 구독자가 1천명, 혹은 3천명, 5천명씩이나 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더랬습니다. 구독자 100명 모으는데 석달 걸린 사람이 100명에서 1,000명 도달하는데 2주밖에 안 걸렸다는 분들도 보이고 말이죠.(그런데 유튜브 입장에서는 구독자가 하루에 100명 혹은 1000명쯤 늘어난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는 20억에 가까운 인구가 매일이다시피 접속하는 어마어마한 네트워크에 그 정도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니까요.)

결국 컨텐츠가 경쟁력이 있고, 양질의 컨텐츠를 꾸준히 업로드할 수 있으면, 그걸 구독해 줄 독자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어찌되었건 유튜브 이용자들은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고, 날이 갈수록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요. 결국 핵심은 컨텐츠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CREBBP 님께서도 정말 부지런하신 분이니, 유튜브 채널 만드는 걸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성원해 드리겠습니다.^^

프레이야 2020-01-08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 드디어 폭풍의 언덕.어느새 다섯번째네요. 대단하십니다 좋아요는 스무개 누릅니다 ^^ 지금 밖이라 귀가 후 조용히 저 슬픈 노래까지 모두다 들으러 다시 올게요. 두근두근 설렘 ^^

oren 2020-01-08 22:13   좋아요 0 | URL
좋아요를 듬뿍 주시고 가셨군요, 프레이야 님~
아무래도 저토록 슬픈 노래는 홀로 조용히 감상하시는 게 감동적이리라 저도 믿습니다.^^
또한, 영문학을 전공하셔서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친숙하시겠지요?

카스피 2020-01-09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oren 2020-01-09 17:58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께서 모처럼 방문해 주셔서 새해 인사까지 남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카스피 님도 해새 복 많이 받으시고, 늘 즐거운 나날 만드셔요!

페크(pek0501) 2020-01-12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다섯 편이나 만드셨군요. 여기저기 홍보해 드리겠습니다.

oren 2020-01-13 18:26   좋아요 1 | URL
작품 소개 영상은 다섯 편이고, 이것 저것 다 하면 15편이나 된답니다!
페크 님께서 ‘여기 저기‘ 홍보해 주시겠다니, 이보다 더한 희소식이 없습니다.
늘 힘을 보태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인 『죄와 벌』을 만들었다. 29분짜리 동영상으로.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설마(!) 내가 이런 대작에까지 손을 뻗쳐 '동영상'까지 만들 줄은.

 

인류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쓴 작품들은 사실 '읽기'도 몹시 벅차지만, 그걸 제대로 소화하고 '독후감'으로 정리하는 일은 더욱 벅차다. 그래서 이름난 고전일수록 '진짜로 읽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드문 것도 사실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또한 나에게는 오래 전부터 '위시 리스트'에만 올라와 있을 뿐, 이 책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청년 대학생 라스꼴리니코프가 전당포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묻지마 식으로' 살해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뇌한다는 스토리가 너무 빤해 보였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고, 그 책을 읽으면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우울하고 괴로울 것 같은' 선입견도 독서를 뒤로 미루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처음 만난 건 대학입시가 끝난 직후였더랬다. 그 때 처음으로 읽은 책이 『까라마조프 형제들』이었는데, 그 소설을 읽는 동안에 내가 느꼈던 작가 특유의 음울하고 어둡고 섬뜩한 느낌들이 오래도록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읽기를 계속 미루고 미루다 겨우 1년 전쯤에야 가까스로 이 책을 읽었더랬다.

 

뒤늦게 읽은 작가의 대표작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범죄 심리 소설 특유의 긴박감이 넘치는 데다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까지 무섭도록 파고 내려가는 작가 특유의 치열하고도 내밀한 묘사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작품 속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들을 직접 맞닥뜨리는 듯한 철학적인 문장들도 많았는데, 뒤늦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톨스토이 만큼은 아니지만)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고, 니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특히 좋아했다는 사실까지도 저절로 수긍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아무튼 『죄와 벌』에 대한 감상평을 쓰느라 만드느라 외부와는 오롯이 차단된 듯한 시간들을 한참이나 보내고 나니 어느새 해가 바뀌어 있었다.

 

유튜브 동영상들은 대체로 10분 내외의 짧은 게 특징이고, 그것이 주류이자 대세를 이룬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빼앗기더라도, 어느 특정한 하나의 동영상에 20분이나 30분 이상씩은 시간을 허투루(?) 소비할 수 없다는 묘한 심리가 깔려 있어서 그렇단다. 그 말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의 천재들이 남긴 걸작들에 대해서는 조금 달리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9년 동안에 무려 일곱 번이나 고쳐 쓴 『월든』과 같은 작품을 어떻게 10분 내외의 짧은 영상으로 다 소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같은 작품들은 수많은 문학평론가와 교수들이 평생 동안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품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런 작품들을 '글'이 아닌 '동영상'으로 소개한답시고, 10분 내외라는 통상적인 형식틀에 억지로 꿰어 맞춘다면, 그건 도리어 그런 작품을 쓴 작가와 작품들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처사가 아닐까. 물론 10분 내외의 동영상으로도 얼마든지 탁월하고도 깊이 있게 그 작품들을 집약해서 소개하고 보여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재치있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몽테뉴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모두 어리석은 축소판이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끊임없이 '축소판'을 요구한다. 그 반대쪽으로 접근하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몽테뉴의 말대로, '축소판'으로 접근할수록 그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나는 '일반적인 경향에 반하더라도' 작품을 너무 짧게 축소하는 글이나 동영상은 피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내 목소리를 담은 '책 소개 동영상'을 네 개쯤 올렸는데, 그 영상들은 저마다 25분에서 30분을 넘나들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심오한 생각들이 담긴 『월든』을 도대체 무슨 재주로 10분 내외로 뭉뚱그려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3년 동안이나 고쳐 쓰고, 작품의 배경이 된 온천장에서 직접 한 달씩이나 머무르며 집필한 『설국』은 또 어떻고, 몽테뉴가 평생 동안 자신의 독서를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을 담아 놓은 『수상록』은 또 어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작품 또한 10분 내외로 짧게 요약하기에는 여러모로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작품이다.

 

나는 어쨌든 내가 작품을 읽고 난 뒤에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동영상의 물리적인 한계가 10분이나 15분을 뛰어넘어 20분이나 30분씩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독자들이 그렇게 긴 영상을 싫어한다면 나로서도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다. 몽테뉴가 자신의 생각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자신의 책에 대한 짤막한 축소판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월든의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 책의 부피를 얼마나 줄이려고 애를 썼던지, 어떤 문장들은 그 문장 하나에 책이 몇 권씩이나 담겨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런 책이 재미가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과 월든의 작가는 결국 서로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월든』에 담긴 표현대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유튜브의 일반적인 경향인 '짧고 가벼운 영상'에 억지로 작품 소개를 꿰어 맞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에 알맞는 '이미지'들을 최대한 발굴해서 작품에 또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지는 순전히 내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비록 영상 제작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품이 들어서 애를 먹고 있지만, 작품 소개 동영상을 만들 때마다 그 작품을 쓴 작가의 피땀어린 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라도, 영상의 전체 길이에 너무 연연해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뭐, 좀 길면 어떤가. 영상이 짧을수록 내가 만든 동영상의 품질이 좋아지기만 한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내 영상을 절반 이하로 확 줄이고 싶다. 일부러 자기 자신의 작품을 억지로 길게 늘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2URH19RUq3A)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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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1-01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훌륭하네요. 그렇지 않아도 동영상 기다렸습니다.
관련 영상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기왕이면 오렌님 직접 출현하셨으면 좋을 것 같은데...ㅎ
암튼 이달의 리뷰로 손색이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알라딘이
동영상도 포함시켜 줄런지 모르겠습니다.ㅠ
잘 보고 잘 듣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20-01-01 19:48   좋아요 2 | URL
제 동영상을 기다려 주셨다니, 너무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사실 『죄와 벌』을 소개하는 동영상들은 작품 설명에 꼭 필요한 ‘이미지들‘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저도 동영상을 만들기 전부터 그걸 엄청 걱정했었는데, 작업을 하는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싸이트들을 뒤적거려 보니까, 옛날에 만든 영화나 드라마의 스틸컷들을 하나둘씩 발굴(?)할 수 있었고, 뜻밖에도 책 속에 실린 기가 막힌 일러스트도 몇 개 건질 수 있었답니다.

사실 30분 가까운 동영상을 하나 만들자면, 작품 내용를 소개하는 데 적당한 이미지 컷이 최소 100개 내지는 150개 정도는 필요한데, 그걸 동영상 제작 과정에서 끊임없이 발굴해 내고, 영상의 흐름에 맞게‘ 이러저리 바꿔 보기도 하는 과정이 정말로 힘들더군요. 그런데 그런 작업들을 자주 할수록 영상의 퀄리티가 조금씩은 높아지니, 그걸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긴 합니다. 암튼, 30분짜리 동영상에 알맞는 사진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시간만 10시간, 혹은 20시간은 훌쩍 잡아먹더군요. 설명에 꼭 알맞는 이미지 하나 찾아내는 데도 몇 십분씩 흘러갈 때도 많고요.

그래도, 이런 작품을 가지고 내가 언제 다시 동영상을 만들까 싶은 생각에, 끈질기게 영상의 첫부분으로 다시 되돌아가, 편집을 이리저리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 때도 찾아오는 것 같더군요. (이런 과정에 비하면 ‘대본 쓰기‘는 얼마나 쉬운 작업인지요!)

아무튼 품은 많이 들지만, 만드는 사람의 노고는 쉽게 묻히기 마련인데, 이런 영상을 기다려 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stella 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0-01-0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글자로 알라딘을 정복하신 oren님께서 영상의 세계로 영토확장의 길을 나서신 것이로군요 ㅎㅎㅎㅎ

oren 2020-01-01 20:29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 그렇게나 과장되고 과분하게 하시는지요? 저는 알라딘에서도 별로 새롭고 좋은 글을 쓰지도 못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는 뭔가 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여태껏 갖춘 장비라고는 친구녀석 한테서 빌린 2만원짜리 ‘핀 마이크‘ 하나 밖에 없고요. 저는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싸디싼 웹캠 하나 구비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ㅠㅠ

초란공 2020-01-01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저도 처음 영상을 보게 되었네요. 30여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재미있게 뵜습니다.^^

oren 2020-01-01 20:31   좋아요 0 | URL
초란공 님께서도 30분을 순식간에 쫘악~~ 봐주셨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식구들 몰래 동영상을 만드느라,
이 동영상 대본 하나 녹음하는 데도 ‘한꺼번에 쫘악‘ 해치웠답니다.
몇 군데 발음이 제대로 안 되고, 꼬인 부분이 있어도 ‘재녹음‘을 생략한 데는 그런 아픔이 있답니다.^^

초란공 2020-01-01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 궁금한 점은 23분 정도에서 감옥 이미지에 나치수용소 이미지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철도가 입구로 이어지는 건물 정면 사진이에요.

oren 2020-01-01 20:38   좋아요 1 | URL
초란공 님께서 정확히 봐주셨군요. ‘시베리아 형무소‘ 이미지를 아무리 찾아도 자꾸만 아우슈비츠 관련 영상만 나오길래 그걸 (마음 속으로는 염려하면서도) 적당히 이용했는데, 눈밝은 초란공 님께서 아주 쉽게 그걸 찾아내 주셨군요. 무료 이미지를 제공하는 싸이트에서 ‘시베리아 형무소‘를 찾느라 아무래 헤매도 도무지 알맞은 이미지가 눈에 띄지 않고, 앞에서 이용한 똑같은 이미지를 계속 반복해서 쓸 수도 없어 궁여지책으로 적당히 끌어다 쓴 건데, 초란공 님의 말씀대로 ‘아우슈비츠‘는 너무 고유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서, 그걸 단박에 알아보시는 분들께서는 너무 황당해 하고, 의아해 하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초란공 2020-01-01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죄와벌>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처음 읽어보고 싶었는데 oren님의 신탁을 받았네요^^

oren 2020-01-01 20:56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저도 이 작품은 1년 전쯤에야 비로소 읽었는데, 이처럼 빨리 유튜브 동영상으로까지 만들 줄은 생각도 못했답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작품입니다!

프레이야 2020-01-04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 좋아요를 한 번만 누를 수 있어 안타깝네요.너무 좋습니다. 월든과 수상록이 앞서 있었군요. 네번째는 어떤 책을 준비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정신의 감옥 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들어갈 수밖에 없겠어요. 구독합니다^^

oren 2020-01-04 22:04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 님께서 귀한 댓글 남겨주셨군요. 아주 오랜만이고, 참 반갑습니다.^^

『월든』은 언제라도 다른 분들께 추천해 드릴 만한 책이라 ‘맨 처음으로‘ 소개해 올렸고요.
(물론 이 영상 만드느라 열흘 이상 엄청난 고생을 했고요.)

몽테뉴의 <수상록>도 소개하는 데는 자신(?)이 있어서 선택했는데, 책 설명에 알맞는 이미지를 찾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연구 주제로 삼은 철학책인 데다가, 온갖 형이상학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그에 딱 맞는 이미지 찾기가 쉽지는 않더라구요.

두 권을 소개하고 나니까, 너무 진이 빠지고, 또 너무 무거운 책들만 소개하는 것 같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소개했는데, 그 책을 소개할 때 잠시 겨울나라에서 ‘힐링‘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따뜻한 온천장에 몸을 담근 기분까지도 느껴졌으니까요. 그만큼 영상 제작이 쉬웠다는 말씀이고요.

<죄와 벌>역시 알맞은 이미지가 없을까봐 무지 걱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자꾸 뒤지니까 자꾸 알맞은 이미지가 나와서 예상보다는 빨리(대략 4일쯤?) 만들었답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워더링 하이츠에 부는 세찬 바람을 닮은 소설‘ <폭풍의 언덕>입니다. 이 책이 세계 10대 소설인데다가, 영화로도 여러 차례 나와서 해당 이미지 찾는데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았으나, 역시 이야기가 길어져서 30분 이내로 줄이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아마 내일쯤은 업로드가 가능하지 싶어요.^^

프레이야 2020-01-04 22:28   좋아요 1 | URL
앗 설국이 있었군요. 그리고 폭풍의 언덕이라니!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북트래블러라는 이름도 작업과 딱 어울리네요. 이미지는 저작권 때문에 쉽지 않으시겠어요. 직접 찍어 보시는 것도 어떨지요. 죄와벌 보다가 폴리스차에 그만 빵 터져서 오렌님의 유머를 발견했어요. 무겁고 진지함 속에 깃든. ^^

oren 2020-01-04 22:57   좋아요 0 | URL
여태까지 Book travel 이라는 채널 이름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깜놀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름 작명하는데 며칠 고민하다가 우연히 떠올린 이름인데 말이지요.^^
경찰차가 큼지막하니 클로즈업 된 이미지가 있어서 ‘이거 딱인 걸‘ 하고 썼는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초딩 2020-01-04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넘 좋네요
구독했습니다~ !

oren 2020-01-04 22:04   좋아요 1 | URL
초딩 님 반갑습니다.^^
초딩 님께서 구독해 주신 덕분에 조만간(오늘? 아니면 내일?)
구독자 100명은 거뜬히 돌파할 듯싶습니다.
늘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카알벨루치 2020-01-05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반칙입니다!!! 우아 오랜님 정말~👏👏👏

oren 2020-01-05 23:07   좋아요 1 | URL
반칙에도 죄와 벌이 따르나요? ㅎㅎ

조재연 2020-01-11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리뷰 간간히 보는데, 유튜브도 하시는군요!! 색인을 정리한 모습이 오렌님 고유의 마스코트가 될거 같아요.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오렌님의 서재는 탐이나네요

oren 2020-01-11 08:4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조재연 님.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건 겨우 두 달쯤입니다. 아직도 장비라고는 친구한테서 빌린 2만원짜리 핀마이크 하나가 전부에요... 그런데도 벌써 구독자가 114명에 이르고, 누적 조회수 8,000회, 업로드 동영상 15개를 기록중입니다.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해 보시지 않은 분들은 ‘에게.... 겨우...‘ 하시겠지만, 저로서는 무척이나 고무적인 수치입니다. 구독자도 최근 13일 연속 늘어났고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제 캐릭터가 색인에서 느껴진다는 말씀은 난생 처음으로 듣는 말이라 귀중한 참고가 될 듯합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재연 2020-01-11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튜브를 했었는데 구독자수가 5명이었습니다. 운영하기전까지는 몰랐는데 댓글 하나하나가 소중하더라구요 ㅎㅎ 지금은 접었습니다만.. 북튜브라는게 사람들에게 그리 관심소재가 아닌지라... 오렌님이 힘든길을 걸으시는건 아닐지. 잘 되기를 응원합니다!!

oren 2020-01-11 22:14   좋아요 0 | URL
조재연 님도 북튜브를 하셨군요!!
저는 아직 초창기라 유튜브 세계가 어떤 곳인지 잘은 모릅니나만, 굉장히 역동적인 곳이라는 느낌은 받습니다.. 블로그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될 때의 느낌도 드는데, 자기 고유의 컨텐츠만 있으면 누구나 빠르게 구독자를 모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큰 매력 같습니다. 또한 유튜브는 크게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도 매력 있구요.. 컨텐츠든, 구독자든 조회수든 감소할 일은 거의 없는데, 관건은 구독자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확보될 때까지 얼마만큼 인내심을 유지하며, 컨텐츠의 질과 양을 업그레이드하느냐일 듯합니다.^^

페크(pek0501) 2020-01-1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새로운 좋은 취미가 생겼음엔 축하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유익하게 들으실 것 같네요. 저만 해도 오래전 읽은 <죄와 벌>이지만 복습이 되었어요. 몰랐던 정보도 얻고.
오렌 님의 목소리가 맑다고 느꼈어요. 얼굴은 계속 안 나오나요?ㅋ

새해에도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하겠습니다. 종종 들르겠습니다.

oren 2020-01-13 18:33   좋아요 1 | URL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은 취미이고, 또 생산적인 취미라고 느끼고도 있고요.

다른 SNS 활동들, 가령 인스타나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대부분 ‘자기자랑‘이 주목적인데, 유튜브 동영상들은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즐겁게 하기 위해‘ 영상을 제작하기 때문에, 저는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장비‘라고는 친구한테서 빌린(!) 2만 원짜리 ‘핀 마이크‘ 하나밖에 없답니다. 웹캠이라도 사야 제 얼굴이라도 비춰드릴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책 소개 동영상‘을 만들자면, 나름대로 미리 작성한 스크립트(대본)을 보고 읽어야 하기 때문에, 얼굴까지 내밀고 대본을 읽자면 ‘프롬프터‘라는 새로운 장비까지 사야 되는 문제도 생긴답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은 계속 현재의 방식대로 영상을 제작하기 쉬울 듯합니다. 물론 웹캠을 통해 나레이터의 모습까지도 담을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단계로까지 나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해서 말이지요. 성능도 좋지 못한 마이크에다가, 발성 연습도 제대로 안 된 제 목소리를 좋게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내가 네 번이나 읽은 셈 치는 애독서 가운데 하나다.

 

맨 처음으로 읽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기간이었다. 그때가 1980년 겨울이었으니 몽테뉴와 알고 지낸지 어언 39년이 흘렀다. 몽테뉴의 책은 어느새 '평생을 함께 하는 길동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읽은 건 군대에 있을 때였고, 세 번째로 읽은 건 6년 전쯤이다. 네 번째로는 '필사'를 하느라 꼼꼼히 다시 읽었다. 필사한 내용을 교정 보느라 또다시 '필사한 부분'을 두어 번 더 읽었고, 가끔씩 시간이 날 때는 '필사한 부분'만 따로 읽은 적도 있으니, 이래저래 따지자면 나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적어도 예닐곱 번쯤은 읽은 셈이다. 그러니 몽테뉴와 수상록에 대한 애착이 유별날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을 '동영상'으로 소개하고 싶은 열망은 굴뚝같았으나,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어쨌든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 그가 쓴 재치있는 문장들을 여럿 소개하고픈 욕심이 컸는데, 컴퓨터 화면을 켜 놓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가 필사한 부분들을 꺼내 펼쳐서 '몽테뉴 수상록'을 설명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원고'없이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임기응변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도를 여러 차례 '녹화'에 담아 봤는데, 녹화 시간만 엄청 잡아먹고, 결과물은 매번 신통찮아서, 결국 그 영상은 편집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몽테뉴의 엑기스는 필사한 부분 속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는데, 이걸 재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① (1∼116쪽)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② (114∼349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① (351∼593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② (595∼728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③ (733∼865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① (870∼994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② (995∼1112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③ (1116∼1248쪽) 

 

 

그런데, 고되게 필사한 부분들을 영상에 담는 걸 포기하고 나니, 몽테뉴의 책을 소개하는 일이 갑자기 몹시 수월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이미지들을 발굴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5 분짜리 동영상에 일일이 자막을 다는 '친절'까지도 베풀 수 있었다.

 

그런데 유튜브 동영상들은 왜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자막을 달아주는 것일까. '자막'을 붙이는 작업만 하더라도 꼬박 너댓 시간쯤은 더 걸렸을 듯하다. 타이핑이 문제가 아니라, 내레이션에 정확하게 맞춰서 '자막'을 딱딱 타이밍에 맞게 집어 넣는 게 '진짜 일'이다. 이렇게 목소리와 자막까지 일일이 제공하느라 '영상 제작'이 힘이 드는 것이다.

 

몽테뉴가 말한 대로 동영상 제작자는 유튜브 이용자들을 위해 '그들 대신 씹어주는' 셈이다. 시청자들은 그저 영상 제작자가 애써 여기저기서 재료를 끌어와 자근자근 씹어 놓은 것을 그저 삼키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영상 제작자와 소비자들은 '수고'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비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어쩌랴. 유튜브라는 엄청난(?) 시장을 생각하면 아무리 고된 작업이라도 참고 '공급'할 수밖에. 오늘 저녁 퇴근 후 자막을 1/10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딱딱 맞춰서 다는 동안 몽테뉴의 책 속에 등장하는 '대신 씹어주는' 그 구절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원한다면 그들 대신 내가 대신 씹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한 가지 위안이라면 '영상 녹음'과 '영상 편집'이 첫 번째 작업보다 한결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25분짜리 몽테뉴 수상록을 일주일 이내로 뚝딱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는 온 듯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주엔 송년 모임을 두 번씩이나 쎄게 치렀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한 번은 토요일 하루를 몽땅 빼았겼고...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pCX01dJQytA)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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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2-3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부터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셨군요. oren님의 새로운 도전 응원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좋은 리뷰와 좋은 동영상으로 뵙기를 기원합니다.^^:)

oren 2019-12-30 16:26   좋아요 2 | URL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 건 11월 초순부터였습니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바람에, 아무런 준비가 없어서 우왕좌왕, 온갖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정신없이 연말까지 흘러온 듯하네요.

내년에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뿐만 아니라, 알라딘에 양질(?)의 글을 올리는 일도 병행했으면 싶은데, 잘 될런지 걱정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더욱 활기 넘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보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 * *

 

최근 열흘 남짓 동안에 『월든』과 뜻하지 않게 사투(?)를 벌였다. 유튜브에 올릴 『월든』동영상을 제작하는 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처녀작(?)은 완성되어 오늘 저녁에 업로드 됐다.

 

여러모로 아쉽고도 후련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에 대한 소개를 흡족하리만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쉽고, 나의 처녀작 동영상임에도 욕심을 꺾지 않고 밀어부친 끝에 무려 33분짜리 동영상을 기어코 만들어 올렸다는 점에서 후련하다.

 

유튜브 동영상은 누구나 만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영상 녹화 프로그램은 어떤 걸 써야 하는지, 그 프로그램을 쓸 때 영상과 오디오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카메라와 마이크는 또 어떤 게 좋은지, 녹화 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또 어떤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로 '독학'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행착오 끝에 33분짜리 동영상을 '혼자 힘으로' 만들어 올렸다는 점에서는 뿌듯하다. 그런데, 30분짜리 동영상 하나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엄청나다. 알라딘에서 페이퍼나 리뷰를 한 편 쓰듯이 만드는 '대본 작성 작업'은 그야말로 전체 공정에서 고작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책 소개 동영상을 하나 만들자면 알라딘에서 리뷰나 페이퍼를 쓰는 작업의 10배에 가까운 품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숙달되고 나면 그보다야 훨씬 나아지겠지만 말이다.

 

맨 처음엔 이 작업을 아주 우습게 생각했더랬다. 내가 알라딘에 올렸던 '월든 관련글'만 무려 147개나 됐고, 그 글들 속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글과 사진들을 적당히 재활용하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동영상을 제작하려다 보니, 불과 몇 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이미지'로 영상이 고정되기만 하면 그 영상 자체가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30분짜리 동영상에 들어가는 이미지들이 도대체 얼마나 필요하다는 말인가. 평균 3초에 하나씩만 바꾸더라도 무려 600개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걸 도대체 무슨 수로 충당하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들을 여러 차례 재활용하는 게 불가피했다. 가령 월든 호수의 이미지라든가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이미지가 그랬다.

 

그런데 나머지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알맞는 이미지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령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할 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 데도 골탕을 먹었다. '졸업장 제작에 드는 비용 1달러 납부'를 거부했다는 그 일화 때문에, 나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정과 졸업식 장면과 대학 졸업장은 물론 '양'에 대한 이미지까지 찾아내야 했다! 왜냐하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졸업장'이 양피지로 만들어지는 사실을 알고 '자연보호의 선구자' 답게 그걸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양가죽은 양들이 갖고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면서 '양'을 등장시키지 않는다면 그 영상이 도대체 얼마나 썰렁하겠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직업'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서 겪었던 고통도 적지는 않았다.

 

소로우는 어느 날 하버드 대학교의 관리자가 '자신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교사-개인 가정교사, 측량사-정원사, 농부-페인트공, 목수, 벽돌공, 일용 노동자, 연필 제조공, 사포 제조공, 작가, 때로는 삼류시인입니다"

 

소로우의 이 짧은 대답 하나에 알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 나는 무료 이미지를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을 여러 번 들락거려야 했다. 이 짤막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데 필요한 이미지를 구하는 데만 족히 30분은 넘게 걸렸던 듯하다.

 

가끔씩은 생각 밖으로 좋은 이미지들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소로우가 형과 함께 보트 여행을 떠났던 일화, 동물들과 어울리는 소로우의 모습, '독서'에 관한 장을 소개할 때 찾아낸 이미지 등이 그랬다.

 

(보트 여행에 대한 이미지)

 

(동물들에 대한 이미지)

 

(독서에 대한 이미지)

 

(독서에 대한 이미지)

 

몇몇 대목에서는 내가 한때 '소로우'를 떠올리면서 찍은 사진들을 쏠쏠하게 재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수공원의 저녁노을)

 

(영덕 칠보산에서 만난 '소나무의 죽음')

 

(호수공원의 저녁 노을)

 

내가 두 번째로 만들고 싶은 책 소개 동영상은 몽테뉴 『수상록』인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그나마도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가 많아서 얼마든지 해당 이미지를 끌어들이는 게 가능했는데, 몽테뉴의 수상록을 소개할 때는 도대체 어떤 이미지를 골라 써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로우만큼이나 좋아하는 몽테뉴를 제쳐두고 다른 작가를 미리 소개할 수도 없고 말이다. 어쨌든 일에 맞닥뜨려 보면 적당한 타협책이 있으리라 믿는다.

 

글을 쓰는 건 이렇게도 쉬운데 영동상 만들기는 도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

대본 읽는 작업이 쉽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 동영상은 아예 제외하고 목소리만 담았는데도 말이다!

(한밤중에 식구들 몰래 녹취하느라 목소리 톤이 너무 조용스러운 것도 조금 불만이다.)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VY9sw4nPX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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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2-16 0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들었습니다.
목소리 더빙까지 ^^ 신경 많이 쓰셨네요. 열흘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만한 작업으로 보이는데요.
현대에도 여전히 월든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건 아직도 우리 마음 속 고향은 자연이기 때문인가봅니다.
저는 사실 월든 끝까지 다 못읽었는데 페이지 마다 줄 안긋도 넘어갈 수 없던 책이라고 하시니 다시 읽어볼 동기부여가 충분히 됩니다.

oren 2019-12-16 12:21   좋아요 2 | URL
열흘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작업으로 보셨다면, 그래도 제가 만든 동영상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이시네요. 그것만으로도 애쓴 보람을 느낍니다.^^

『월든』은 참 독특한 책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의 책‘이라고 손꼽는 책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많은 독자들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거나, 읽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등 반응이 정말로 제각각이니까 말이지요.

저는 『월든』이 ‘대단히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 책으로 읽혀서, 행간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찾아내는 데에도 상당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들을 동영상에 최대한 담아보려 했으나, 능력부족을 절감할 수밖에 없어서 조금 아쉽긴 합니다.

hnine 님께서 『월든』을 다시 읽으신다면, 저로서는 그만한 보람도 없겠다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9-12-18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전문성까지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멋진 작업인 것 같아요.
한 해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달에 알차게 보내고 계신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oren 2019-12-18 12:41   좋아요 1 | URL
영상물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에 ‘책 이야기‘를 만들어 싣는 작업이 간단치가 않네요.

흔히들 하는 말로, 영상 기획, 촬영, 녹음, 음향 및 영상 편집 등등 모든 요소들을 오롯이 1인이 홀로 다 떠맡아 해야 하는 지경이니까요.

그러나 책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이미지와 음성과 배경음악과 텍스트(자막)을 한꺼번에 결합했을 때, 새로운 활력을 얻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어떤 이야기든 에세이나 소설처럼 단순히 산문으로만 표현될 수는 없고, 때로는 서사시로, 때로는 희곡과 연극으로, 때로는 오페라와 음악으로, 때로는 드라마로, 아주 다양하게 전달되듯이, 책 이야기도 영상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전달될 여지는 많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어떤 이야기든 그걸 어떻게 잘 꾸미고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을 테니까요.

처음이라 아직 여러모로 정신이 없지만, 하나둘 맞닥뜨리면서 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뒤늦게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내가 2013년에 히말라야 트레킹 때 하룻밤을 묵었던 '랑탕 빌리지'라는 곳이 2015년의 네팔 대지진 때 거대한 산사태로 인해 통째로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희생된 사람만 무려 197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가 트레킹에 나섰을 당시 원정대장 역할을 맡았던 분으로부터 우연히 그런 소식을 듣고 정말인가 싶어서 유튜브를 검색해 봤더니, 엄연한 사실이었다.

 

(2013년 당시의 모습. 랑탕 빌리지는 마을 한가운데로 냇물이 졸졸 흐르는 운치 있는 마을이었다.)

 

(보도 사진에 따르면 지진 당시의 산사태로 인해 마을이 흔적도 없이 파묻혀 버렸다.)

 

2015년 4월 하순에 발생한 그 끔찍한 대지진 소식을 접했을 무렵, 나는 일부러 네팔 지진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괜히 마음만 더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머나먼 다른 나라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8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데도, 나는 차마 그 광경에 마음을 다칠까봐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했던 말은 얼마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던가.

 

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저 불행한 사람들의 액운(厄運)에 대한 그의 비애를 매우 강하게 표명할 것이고,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많은 침통한 성찰을 할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 정리가 끝났을 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인도적 감정들이 충분히 표명된 후에는, 그는 그런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자기의 사업 또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고, 휴식과 기분전환을 취할 것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뒤늦게 유튜브에 들어가서 '랑탕 빌리지'를 검색해 보니, 믿기지 않는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Nepal Earthquake 2015'로 검색되는 다양한 영상들이 넘쳐났다. 그 가운데서도 Nepal's Langtang Valley - Beauty and Destruction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동영상을 보니, 끔찍하게 변해버린 현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아름답던 마을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저토록 허망하게 폭삭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https://youtu.be/AvAFb5Q_3zo?list=LLtbZg9t1yZ2THcPuf3SinHg

 

랑탕 계곡은 수만 년 동안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국의 오지 탐험가인 윌리엄 틸만(1898∼1978)에 의해 뒤늦게 발견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극찬을 받은 곳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나서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싶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 바로 랑탕 계곡이다.

 

(2013년 봄)

 

((2013년 봄)

 

그토록 아름답고 평화롭던 곳이 어떻게 한 순간에 황무지로 변했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소박한 삶을 꾸려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모조리 다 희생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랑탕 계곡을 따라 우거진 수목들조차 거대한 후폭풍에 휩쓸려 성냥개비처럼 모조리 쓰러져 버렸다고도 한다. 나무가 쓰러진 피해지역만 하더라도 길이가 10 km가 넘는다고 하니, 후폭풍의 규모와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트레킹을 다녀 왔던 랑탕 계곡의 피해가 네팔의 여느 피해 지역 못지 않게 극심했음에도, 나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체로 여태까지 지내왔다. 나는 그저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의 무슨 유명한 사원이나 오래된 왕궁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산간 지방에 허술하게 지어진 숱한 학교들과 돌담으로 쌓은 허술한 가옥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너졌을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히말라야의 기나긴 역사를 되돌아 보면 우리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지도 모르곘다. 2015년의 네팔 대지진은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대재앙으로 느껴지지만 '히말라야의 입장'에서는 그저 소소한 사건에 불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밝혀낸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억 4천만 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의 인도는 곤드와나 초대륙의 일부였으나 떨어져 나가 연간 18~20㎝라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해 5천만 년 전 유라시아 판과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무려 5천만 년 전에는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던 셈인가. 대륙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인도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기어들어가다가 저토록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 때 일어났던 거대한 굉음과 땅의 뒤흔들림을 느꼈던 동식물들은 과연 얼마만큼 놀라야만 했던 것인가.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숲 속에서 살다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지난 400만 년 동안만 하더라도 랑탕 계곡의 지형은 얼마나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온 셈인가. 또한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신들이 사는 영역'으로만 알고 감히 범접하기조차 두려워했던 시대를 뒤로 하고, 나같은 일반인조차 겁도 없이 수천 미터의 봉우리를 오를 수 있게 된 우리 세대는 얼마나 엄청난 행운아인가.

 

유튜브에서 영상들을 찾아 보니, 랑탕 계곡의 옛 마을들은 비록 한순간에 흙더미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느새 그 위에 뉴빌리지가 형성되고 있었고, 트레커들은 불과 수년 전에 우리가 지나갔던 길보다 훨씬 더 높다랗게 흙더미가 쌓인 새로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결국 저 울퉁불퉁한 길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 매끈한 길로 변할 것이다. 과거에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 2013년에 랑탕 계곡을 다녀온 <히말라야 트레킹> 기록이다. 언제쯤 또다시 그곳을 가볼까 하다가, 이번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지진 피해의 깊은 상흔이 어서 빨리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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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251

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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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251∼252

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저 불행한 사람들의 액운(厄運)에 대한 그의 비애를 매우 강하게 표명할 것이고,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많은 침통한 성찰을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투기업자라면, 그는 이 재난이 유럽의 상업에, 그리고 전 세계의 무역과 상업에 미칠지도 모를 효과들에 대한 많은 추측에 몰두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 정리가 끝났을 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인도적 감정들이 충분히 표명된 후에는, 그는 그런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자기의 사업 또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고, 휴식과 기분전환을 취할 것이다.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소소한 재난이 그에게는 오히려 더욱 실질적인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그가 내일 자기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면 오늘밤 그는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억이나 되는 이웃 형제들의 파멸이 있더라도, 만약 그가 직접 그것을 보지 않는다면, 그는 깊은 안도감을 가지고 코를 골며 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거대한 대중의 파멸은 분명히 그 자신의 하찮은 비운보다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도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자신에 대한 이 사소한 비운을 방지하기 위하여 1억이나 되는 이웃 형제의 생명을, 만약 그가 그것을 결코 보지 않아도 된다면, 기꺼이 희생시킬 것인가?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생각에 공포를 느끼며, 그리고 세상은,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했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악한 사람은 결코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의 소극적인 감정들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우리의 적극적인 천성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우리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관대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애(自愛: self-love)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인간애(humaity), 즉 인도주의의 온화한 힘이 아니며, 조물주가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자애(benevolence)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작용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 있는 동기이다.


 * * *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253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많은 경우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우리 자신의 성격의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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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paroxysms of distress)을 당하는 경우 272∼273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paroxysms of distress)을 당하는 경우 가장 현명하고 단호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에는, 상당한 정도의,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신의 불행에 대한 그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 그 자신의 처지에 대한 그 자신의 자연스런 시각이 그를 강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그가 엄청나게 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의력을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집중할 수가 없다. 두 가지 종류의 시각, 즉 자신의 견해와 공정한 방관자의 견해가 동시에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의 명예감각, 그 자신의 존엄에 대한 고려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주의력을 방관자의 그것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자연적인, 교육받지 않은, 훈련되지 않은 감정들은 계속 그의 주의력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이런 경우,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킬 수 없고, 스스로 자기 행위의 공정한 방관자가 될 수도 없다. 양자의 서로 다른 성격의 시각이 그의 마음속에 서로 분리되고 구분되어 존재하고, 각각은 그에게 서로 다른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다. 그가 명예심과 자존심이 그에게 지시하는 시각에 따를 때, 사실 조물주는 그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는 상태로 남겨두지는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의 완전한 자기시인(自己是認)과 동시에 정직하고 공정한 모든 방관자들의 갈채를 누리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물주의 만고불변의 법칙에 따라서, 그는 여전히 고통을 당한다. 조물주가 수여하는 보상이 매우 크기는 하지만, 이러한 법칙이 그가 당한 고통을 완전히 보상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조물주의 보상과 그의 고통의 크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조물주의 보상이 그가 받는 고통을 완전히 보상해 준다면, 자신의 이기적인 고려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효용을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우발적 사고를 회피하려는 동기를 전혀 갖지 않을 것이다(완전히 보상받는다면 사고를 피하는 것과 피하지 않는 것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물주는 양자에 대한 부모다운 배려에서 그가 가능한 한 모든 우발적 사고들을 피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리고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 중에서도, 자신의 사내다운 모습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의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는 최대의 가장 고된 노력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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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274

그러나 인성(人性)의 구조적 특성상, 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그는 곧 크게 어렵지 않게 일상의 평정을 즐기게 된다. 나무 의족(義足)을 한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 틀림없이 자신의 남은 전 생애 동안 매우 큰 불편을 계속 겪어야만 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의족을 한 자신의 모습을 모든 공정한 방관자가 그것을 보는 것과 정확히 동일하게 보게 된다. 즉, 그는 이 불편함을, 그런 중에서도 혼자서 혹은 여럿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모든 통상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는 곧 자신을 자기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키고,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공정한 방관자로 된다. 약한 사람들은 처음에 때때로 그렇게 하듯이, 그는 울거나 탄식하거나 그것에 대해 비관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는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더 이상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몸부림도 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다른 어떤 시각에서 관찰하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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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275∼276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 * *


시간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
278∼279

다음의 관찰은 특별한 상황에 대한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은 올바른 결론이라고 믿는다. 즉, 다소라도 구제(救濟)의 여지가 있는 불행 중에 처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제의 여지가 전혀 없는 불행 중에 처해 있는 사람들처럼 일반적으로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평정을 회복하지 못한다. 후자의 종류에 속하는 구제의 여지가 없는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경우, 총명한 사람의 감정 및 행위와 연약한 사람의 감정 및 행위 사이에 어떤 눈에 띄는 차이점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의 경우 또는 불행이 최초에 엄습한 때이다. 그러나 최후에 가서는 시간(時間)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慰安者)가 점차 저 연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총명한 사람이 최초에 자존심과 사내다운 기개의 교도(敎導)에 의해 도달하였던 그런 수준의 마음의 평정에 도달하게 된다.

나무 의족(義足)을 한 사람의 경우가 이런 사정에 대한 분명한 예이다. 자식의 죽음, 친구나 친척의 죽음 등처럼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한 경우에는 총명한 사람이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슬픔에 빠질 수 있다. 다정다감하고 연약한 여성은 그런 경우 흔히 거의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길든 짧든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이런 가장 연약한 여성까지도 가장 강인한 남성과 같이 어느 정도의 평정을 회복하게 된다. 그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회복 불가능한 재난 가운데서도, 총명한 사람은 몇 달 또는 몇 년 후에는 결국 회복될 것이 틀림없는 마음의 평정을 처음부터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즐기려고 노력한다.


 * * *


당신은 역경에 처해 있는가? 284

당신은 역경에 처해 있는가? 고독의 어둠 속에서 탄식하지 말고, 당신의 친한 친구들의 관대한 동감에 맞추어 당신의 슬픔을 조정하지 말 것이며, 가능한 한 빨리 세상과 사회의 일광(日光) 속으로 돌아가라. 그리고는 낯선 사람들, 당신의 불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적들과 사귀는 것조차 회피하지 말고, 당신의 적들로 하여금 당신이 당신의 재난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적게 받았는지, 얼마나 그것을 초월해 있는지를 느끼도록 하고, 당신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그들의 악의(惡意)에 굴욕감을 안겨줌으로써 당신 스스로 기뻐하라.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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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1-27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아름다운 곳인데 지진으로 저렇게 변했으니 갔다오신 입장에서 상당히 마음이 아프시겠네요ㅜ.ㅜ

oren 2019-11-27 20:5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아직까지 히말라야를 가 보지 못한 친구들한테도 ˝우리 언제 꼭 한번 히말라야 같이 가 보자. 랑탕계곡이라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라고 말할 정도로, 저로서는 정말 좋은 기억들이 많은 곳이었지요.

이번에 랑탕계곡이 저렇게 망가진 걸 알고 이런 저런 뉴스를 찾아보니, 저처럼 가슴아파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10년 혹은 20년째 랑탕 계곡을 찾곤 했던 사람들이 일부러 ‘추모‘를 위해 다시 그곳을 찾는 경우도 많고요.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아픔은 잊혀지고,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찾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