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후보자가 지명될 때부터 떠올린 우화가 하나 있었다. 전갈과 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다. 강을 건너려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등 좀 태워 달라'고 한다. 독침이 무서운 개구리가 마다하자 '둘 다 죽는데 찌를 리 있겠느냐'고 달래 올라탄다는 얘기다. 강을 다 건너기도 전에 전갈은 결국 자신의 성질을 참지 못하고 개구리를 찌르고 만다. 원망하는 개구리에게 전갈이 한 말은 이랬다.

 

"미안해. 급하면 나오는 본능이야"

 

이 이야기는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중간에서 철회하든 끝끝내 임명을 강행하든 둘 모두에 적용이 가능하다. 전갈이 독침을 찌른다는 점에서는 임명 철회의 경우에 들어맞을 듯하지만, 다시 한번 음미해 보면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가 훨씬 더 들어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공생관계이던 전갈과 개구리가 둘 다 물에 빠져 죽는다는 점에서.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던 신임 법무장관과 그를 끝끝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문대통령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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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국민은 압도적인 지지로 전갈 새끼를 대통령으로 뽑은 거네요. 국민이 개눈깔이네요. 전갈을 사람으로 보았다니 말입니다.
허허허허...

oren 2019-09-09 15:13   좋아요 1 | URL
그렇게까지 비약해서 해석할 수도 있는 거로군요. 허허허허.

아무튼 제가 이 우화를 떠올린 건 단순합니다.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듯이) 그 어떤 난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결국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리라 예상해 왔었고, 그런 무리수가 결국은 나중에 ‘재주복주(載舟覆舟)‘의 교훈처럼 실현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지지가 현 정부를 떠받쳐 왔듯이, 이제부터는 국민들의 분노의 강물이 결국 현 정부를 뒤집어 엎을 것 같은 불행을 예감한다는 것이지요.

돌궐 2019-09-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쉽기는 한데, 이 일로 정부가 뒤집히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지켜봐야겠죠.

oren 2019-09-09 16:04   좋아요 1 | URL
박근혜 정부처럼 배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배에 탄 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는 아니겠지요.

그러나, 저 까마득한 군부통치 시절인 1987년의 4.13 호헌조치를 비롯해서, MB정부 때의 광우병 파동처럼 정권 자체가 휘청거릴 만큼의 ‘거센 파도‘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은 듭니다. 다만, 지금의 야당이 너무나 허약해서 국민들의 힘을 얼마만큼 결집시킬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은 신문기사 내용읍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교육학박사 학위 위조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사문서 위조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8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경력에서 교육학박사가 삭제됐다. 가짜학위 가능성이 제기된지 얼마 안 돼서 사실상 박사학위가 허위임을 인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교육학박사가 기재된 채 발부됐던 동양대 총장 명의 상장, 표창장은 모두 허위이고 최성해 총장이야말로 사문서 위조로 처벌받아야 한다. 검찰 뭐하나˝라고 반문했다.

최근 최성해 동양대 총장은 포털사이트 프로필에서 ‘교육학박사‘ 학위가 돌연 수정되면서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고일석 전 중앙일보 기자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 유령 학위 의혹‘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 총장이 학위를 취득한 미국 소재 신학대학교가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학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학교였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네이버 인물정보에서는 박사학위 부분이 삭제됐지만 한국대학신문에 게재된 그의 프로필에는 신학사(1991년), 교육학석사(1993년), 교육학박사(1995년)를 워싱턴침례신학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취득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며 관련 사진을 첨부했다.

이어 ˝워싱턴침례신학대학교는 알 수 없는 시기에 버지니아 워싱턴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최성해 총장의 프로필에 소개되어 있는 교육학석사, 교육학박사학위가 이 학교가 수여할 수 있었던 학위 목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내 학술진흥재단은 미국 소재 신학교에서 수여하는 ‘가짜 박사학위‘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미국 신학교 단체인 신학교협의회(ATS)에 가입된 신학교만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최 총장이 이 학교의 학위를 취득한 1991년부터 1995년까지의 시기는 ATS 가입 이전이라는 것이 고 전 기자의 설명이다. 또 이 학교가 ATS에 가입한 뒤에도 교육학은 여전히 승인 학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같은 의혹은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누리꾼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 최 총장의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 인물정보 학력사항에서는 현재 ‘교육학박사‘가 사라진 상태다. 8일 최 총장의 포털 프로필 학력사항에는 1978년 단국대학교 무역학과 학사, 1985년 템플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수료 외에 워싱턴침례대학교 대학원 석사, 단국대학교 교육학 명예박사 등 학위가 수여 연도 없이 적힌 상태다.

동양대는 그동안 총장이 수여하는 졸업증, 장학증서, 표창장 등 상장에서 하단에 ‘동양대학교 총장 교육학박사 최성해‘라고 기재해왔다.

oren 2019-09-09 20:58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몰랐는데, 방금 뉴스로 검색해 보니 최성해 총장은 자신의 박사 학위가 ‘명예 박사학위‘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더군요. 그런데 조국 후보자의 딸이 받은 표창장은 ‘위조 의혹‘으로 법원에 기소까지 된 사안이고, 의심을 받는 쪽에서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 문제로 보입니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칼럼에 실린 글을 일부분만 덧붙여 놓겠습니다.

* * *

거짓말에도 예의가 있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하는 것이어서 거짓말하는 사람도 사실의 엄중함을 존중한다. 그래서 사실을 감추려고 기를 쓰고, 사실이 드러나면 당황하거나, 변명하거나, 사과를 하는 식으로 뒤늦게라도 사실을 인정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실을 밝힌 쪽에다 대고 거꾸로 거짓말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사기꾼이 아니면.

조국 법무부 장관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을 했다. 가장 간단한 조국 딸의 표창장 위조 건을 보자.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조국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전화해 (딸의 총장 표창장 발급을) 본인이 위임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한 뒤 조국을 바꿔줬다”고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다.

다음날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은 ‘위임’이라는 핵심단어만 뽑아내 총장이 잘못 들은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 자기 아내는 총장에게 “위임해주신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거다. 전에 표창장 발행 권한을 위임해주고도 왜 딴소리를 하느냐는 뜻이다.

거짓말도 이쯤 되면 사람 잡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최 총장은 조국과의 두 번째 통화를 하며 위임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라는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은 딱 한번 통화했다고 했다. 조국의 배우자가 표창장을 위조하는 데 그쳤다면, 조국은 권력형 압력을 가하고 사실 은폐까지 했다는 얘기다.

그런 조국을 문재인 대통령은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유다. 청문회 전까진 조국이 직접 위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회 직전 조국이 최 총장에게 권력형 위협을 가하고 은폐 조작을 종용한 것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김순덕의 도발]문 정권은 조국 식으로 국민을 속여왔나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21:08   좋아요 2 | URL
아, 그 유명한 동아일보의 김순덕 칼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 즐겨 읽으시는군요. 반박을 하시려면 제대로 된 자료나 글을 가져오셔야죠. 알라딘 리뷰 쓰실 땐 책 인용 제대로 하시더니....


김순덕 사설에서는 최총장은 조국과 두 번째 통화를 한 것으로 말하는데 사실이 전혀 아닙니다. 찾아보세요. 최총장 스스로 2번 통화했다는 말을 바꿔 1번 통화했다고 정정했습니다. 뭐, 그리 변명을 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력 허위 기재로 사문서 위조한 총장, 본인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학 박사가 아니라 단순한 명예박사라고 시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확정이죠 ? 그리고 조국 후보 딸의 의혹은 사실 검증이 안된 수사 중입니다. 오렌 님은 조국 딸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총장의 사문서 위조에 대해 비판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교육학 박사와 교육학 명예 박사의 차이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명예박사도 박사 학위라면 연예인 명예경찰도 결찰이 될 수 있죠. 참고로 박근혜도 서강대 명예 철학박사입니다.

에곤 실례 2019-09-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께 댓글이 따로 달리지는 않는군요. 곰발님은 스스로 문빠라고 당당히 말씀하셨으니까 질문 한마디 합니다.
지금 문정부가 하는 방식이 좋은 정치입니까?
아니, 누구 때보다 낫다 그런 말은 아니고요.
정말 제대로 되어 가는 정부인것 같으냐구요.
예를 든다면 조국이 없어서 법무부 장관에 다른사람이 임명된다면 이 정부 무너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8:28   좋아요 2 | URL
조국이 없다고 해서 문 정부가 무너지지는 않겠죠. 이 말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조국이 있다고 해서 문 정부가 무너질까요 ?


에곤 실례 님은 같은 질문을 이 블로그 주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예를 든다면 조국이 있어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이 정부 무너질까요 ? ˝

oren 2019-09-09 21:08   좋아요 0 | URL
조국 법무장관 한 사람 때문에 이 정부가 무너지느냐 마느냐를 단정적으로 결론내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새로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이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너무나 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어서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비판과 분노를 사고 있어서, 자칫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험스러운 지경으로 치닫지나 않을까, 그게 큰 걱정이라는 말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컷 뉴스 보니 최성해 총장은 최종 학력이 고졸이랍니다. 그 많은 학력이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던데 오랜 님의 견해는 무엇인지요... 고졸인 최성해가 대학 총장으로 20년 넘게 좌지우지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험한 범죄아닙니까 ?

oren 2019-09-10 22:26   좋아요 0 | URL
대학총장의 최종학력이 고졸이라면 해외토픽 감이겠지요.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 *

 

조국의 아내가 기소됐다.

 

범죄 혐의는 사문서 위조였다.

 

자녀 입시에 사용된 대학총장 표창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 끝에 마침내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도 '조국 대전'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 진행중이다.

 

왜 이토록 어리석은 싸움을 누가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조국이 아니면 사법개혁은 좌초되고 만다는 식의 무서운 집착이 빚은 결과임은 분명하다.

 

사태가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대통령의 지명 철회 기회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후보 지명자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모펀드 의혹과 사학재단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장학금 특혜 수령 의혹이 불거질 때만 하더라도 사태 전개 양상이 지금처럼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고교생이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가 아마도 맨 처음으로 찾아온 'STOP' 기회였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사모펀드 투자금과 사학재단의 사회환원 카드를 내밀어 여론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분노한 민심은 수그러들 줄 몰랐고, 대학생들의 촛불시위로 번졌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청문회 개최를 둘러싸고 야당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난데없이 '국민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한다.

 

간난신고 끝에 이틀간의 청문회 개최가 가까스로 합의되지만 후보자 가족 등을 포함한 증인 채택 문제로 또다시 교착에 빠진다. 그러는 와중에 급기야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한다. 이미 사모펀드 관련 핵심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해외로 도주하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수사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 때부터 사태는 급류를 타기 시작하고 일파만파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검찰의 범죄 혐의 수사를 두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는 등 집권세력의 무모하고도 거센 비판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권여당의 첫 번째 패착으로 보인다.

 

두 번째 패착은 청문회를 둘러싼 증인 협상 결렬을 빌미로 결국 '기자 간담회'를 강행한 것이다. 원래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핑계로 버텨오던 후보자 입장에서는 무수한 의혹을 일거에 해소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라도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장관 후보자가 법에 정해진 절차까지 무시하고 기자들만 불러 '해명 간담회'를 열어봤자 악화된 여론을 되돌릴 수 없는 건 자명한 이치였다. 탄핵 직전까지 내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론이 최고조로 악화되었을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불러놓고 갖은 몸짓을 다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거짓으로 해명하는 모습의 데자뷰일 뿐이었다.

 

특수부 수사 인력을 더욱 보강한 검찰은 내친 김에 동양대와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고, 이튿날 아침에 갑작스레 터져 나온 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은 숱한 관전자들을 경악 속으로 빠트렸다. 이번 사태가 전체 몇 막의 구성으로 그 장대한 결말을 마무리할 지는 몰라도 <조국 대전> 제1막 제1장의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바야흐로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후보자 부인의 다급한 전화 통화 내용과 문자 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후보자와 집권세력의 유력 인사들의 의심스런 통화가 잇따라 폭로되었다. 여론이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어쨌거나 데드라인을 하루 앞두고 가까스로 합의된 맹탕 청문회만 건너뛰고 나면 무사히 '임명 절차'를 밟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청와대는 스모킹 건이나 다름없는 '표창장 조작 의혹'을 덮기 위해 총력을 동원했고, 그런 무리수들이 결국 검찰과의 정면 충돌로 이어졌다. 급기야 청와대의 모 행정관은 검찰을 향해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집권 세력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검찰의 행보에 대해 이토록 흥분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여권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검찰을 향해 온갖 험악한 비난을 퍼부은 것이 이번 사태의 세 번째 패착이었다.

 

어젯밤의 맹탕 청문회가 무미건조하게 막을 내리면서 제1막이 싱겁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1막 이상으로 드라마틱한 제2막이 활짝 열리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후보자 아내의 소환조사 마저 건너뛴 불구속 기소가 7년이라는 기나긴 공소시효 마감을 딱 한 시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조국 대전>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물론 이번 대전의 깊숙한 정치적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쏟아낸 수많은 명대사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TV나 뉴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식상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궁금한 건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이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가장 싱겁게 끝나는 해피엔딩(?)은 갑작스레 드라마가 끝나는 것이다. 조기 종영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주인공이 일신 상의 사유로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오는 경우다. 물론 감독의 교체 사인이 중도 하차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가장 불행한 네버엔딩 스토리는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감독과 주인공뿐 아니라 관객들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뿐 아니라 감독까지 끌어내리겠다고 덤벼드는 국면이다. 그때는 말 그대로 파국으로 끝난다. 설마 그토록 흉악한 드라마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진 않다.

 

아무쪼록 사태가 여기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이라도 대통령이 법무장관 임명을 포기하면 그것으로 기나긴 싸움은 간단히 끝난다. 물론 그 싸움은 '집권세력의 완패'로 규정되면서 수많은 후폭풍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 되면 결국 '해피엔딩'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번 사태는 결국 비극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임명 강행이 '파국' 없이 어떻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나 또한 임명 강행=불행한 결말을 예상한다. 단지 불행의 크기만이 문제될 뿐.

 

임명 강행 이후에 전개되는 소식들은 대략 어떤 것들일까. 외신에는 아마도 이런 뉴스들로 장식되지 않을까.

 

한국 대통령, 자녀 입시 비리로 검찰에 기소된 배우자를 아내로 둔 핵심 측근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임명 강행을 둘러싸고 여야 극한 대치, 대학생 및 시민들 대규모 항의 집회

한국 검찰, 최근에 임명된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 강제 소환(혹은 구속영장 청구)

한국 검찰, 최근에 자녀 입시부정 스캔들에 연루된 법무장관 피의자로 소환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퇴진 요구 및 반정부 시위 갈수록 확산

한국 검찰, 조국 사태 관련 수사 결과 발표, 법무장관 불구속 기소

한국 정부, 법무장관 사임 발표

한국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

 

과연 <조국 대전>은 언제까지 전개될까. 지켜보는 관객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파국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기 종영을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껏 시달려온 내우외환만으로도 충분히 지쳤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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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9-08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서재에는 정말 논리적으로나 지성으로 봐서 타 사이트들 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그래서 내가 자주 와서 여러분들의 글을 흥미롭게 읽고 있답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글로써 다른사람들을 설득하는 재주들도 훌륭합디다.
그런데, 서울대 환경 대학원 2학기 다 장학금을 받은 문제나 부산 의전원 등록금 수여 문제만으로도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도 확실히 잘못된것 같은데,
이곳의 똑똑하고 젊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조국을 염려하고 계속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보면
도대체 이성이란 무엇인가 싶고 또 지성이란 무엇인가 싶더군요.
물론 그사안은 조국의 범법이 아니고 조국 자체로는 하자가 없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라는게 있지않겠습니까.
과연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는 말을 정의를 전매특허라도 받은 냥 떠버리던 사람들이 할소리입니까?
내편이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싶을까요?
쓸데없이 댓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oren 2019-09-08 22:44   좋아요 1 | URL
이번에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조국 사태> 때문에 깨닫게 되는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이자 충격은 이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정부 최대의 과제이자 구호가
그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대국민 홍보용 선전 문구‘에 불과하였는지를
<조국 사태>만큼 상징적이고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태는 일찍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두 번째 충격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만 갇힌 채,
조국 후보자의 명백한 거짓이나 불의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아 버리고,
온갖 억지와 궤변을 총동원해서 무작정 그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입니다.
거의 ‘인간 실격‘에 가까운 온갖 거짓 행태를 눈앞에서 셀 수도 없이 확인하고 나서도,
오로지 맹목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두둔하려는 눈물겨운 모습들 속에는
그 어떤 정당한 논리나 합리성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오로지 ‘내 편이니까 무조건 지지한다‘는 식의 ‘내로남불 사상‘밖에 찾을 수 없더군요.
출범 이후 줄곧 <국민의 정부>를 표방해온 문재인 정권이 결국 <그들만의 정부>임을
이번 사태만큼 역설적이면서도 도드라지게 드러낸 경우도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좁은 범위‘의 충격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입니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평등, 공정, 정의‘를 위해 SNS에 남겼던 그 무수한 글들이,
도리어 ‘불평등, 불공정, 불의‘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그를 공격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번에 한 달 내내 전국민 앞에 표정 연기까지 곁들여 쏟아낸 저 무수한 거짓말들이
앞으로 과연 얼마 동안이나 그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삶 속에서,
불평등하고 부도덕하고 특혜 받은 일들은 참으로 많았지만,
최소한 ‘위법 행위나 범법 행위는 없었다‘는 조국 후보의 최후의 방어막이
앞으로 얼마만큼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그걸 지켜볼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LAYLA 2019-09-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기 부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역사에 남을 모먼트입니다.
 

 

자애심과 인간적 자아(自我)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 대상이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는 위대하기를 원하지만 못난 자신을 본다. 그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불행한 자신을 본다. 그는 완전하기를 원하지만 불완전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본다. 그는 뭇 사람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결함이 그들의 혐오와 경멸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안다.

 - 파스칼, 『팡세』중에서

 

 * * *

 

득국오난(得國五難)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제후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기 세가』에 실린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득국오난을 검색해 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주 쓰이지 않는 고사성어다. 그런데 이 말이 새삼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이 있다. 바로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법무장관 후보자 때문이다.

 

애시당초에 그가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후보자가 법무장관으로 지명되는 과정에서 이만큼 수많은 문제를 드러내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듯하다. 그가 비록 남들을 공격하기 위해 과거에 내뱉은 숱한 매서운 말들 때문에 도리어 자신이 화를 입는 곤욕을 치르기는 하겠지만, 자신과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뿌려놓은 부도덕한 씨앗들이 자라나서 이만큼 거대한 산사태가 되어 자신과 가족들을 덮치고, 끝끝내 만신창이가 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리라고 그 누가 감히 예상이나 했겠는가?

 

뭐? 아직도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지 모른다고? 글쎄, 사태가 이만큼에서라도 마무리되어 더 큰 비극으로 전개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후보자나 집권당이나 대통령이나 버티면 버틸수록 더 큰 화를 자초할 뿐일 테니 말이다. 민심의 거대한 쓰나미를 어떻게 한 줌밖에 안되는 권력이 맞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이쯤에서 다시 득국오난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 과거의 역사만큼 오늘을 훤히 드러내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마천의 이야기임에랴. 때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쯤이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공왕(BC 600년~BC 560년)에게는 아들이 다섯이었다. 맏이부터 차례대로 강왕, 위(영왕), 자비, 자석, 기질(평왕)이라고 불렸다. 그들의 운명을 둘러싼 이야기는 치국(治國)의 어려움과 권력의 무서운 본질에 대해 새삼 숙고하게 만든다.

 

처음에 공왕은 총애하는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적자를 임금의 자리에 세우지 않고,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기탁하여 신령이 그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면 그에게 사직을 주관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 강왕은 연장자로서 자리에 올랐으나 그의 아들에 이르러 자리를 잃었고, 위圍는 영왕이 되었다가 자신에 이르러 시해되었으며, 자비는 왕이 된 것이 여남은 일 남짓하였으며, 자석은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또한 모두 주살되었다. 이 네 아들은 후손이 끊어졌다. 오직 기질만이 후에 자리에 올라 평왕이 되어 결국 초나라의 제사를 이어 갔으니 ……(368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오형제 가운데 맏이인 강왕에 이르기까지는 제위가 순조롭게 이양된다, 강왕이 죽고 나서부터 격변이 일어난다. 강왕이 임금이 된 지 15년 만에 죽자, 아들이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숙부인 강왕의 동생 위에게 왕위를 찬탈당한다. 숙부인 위는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중도에 왕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로 되돌아와 군왕의 병을 살핀다면서 갓끈으로 조카를 시해하고, 조카의 어린 아들까지 모조리 주살했다.

 

5형제 중 둘째인 위가 영왕으로 즉위하자 셋째인 자비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진晉나라로 달아난다. 영왕은 성격이 교만하고 포악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민심을 잃어 백성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자비가 진나라로부터 돌아오자, 한선자가 숙향에게 물었다.

 

"자비는 아마도 성공하겠지요?"

 

숙향의 대답은 No였다.

 

한선자가 말했다.

 

"초나라 백성들이 한결같이 초나라 왕을 싫어하여, 새 임금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마치 시장의 장사치처럼 하니 어찌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이때 내놓은 숙향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른바 득국오난(得國五難)이라는 말이 여기서 태어났다.

 

"더불어 잘 지내는 사람도 없으니, 누가 함께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를 취하는 데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총애하는 사람은 있지만 어진 사람이 없는 것이 첫째요, 현인은 있지만 주도하는 자가 없는 것이 둘째요, 주도하는 자는 있지만 계책이 없는 것이 세 번째요, 계책은 있지만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 네 번째요, 백성들은 있지만 덕이 없는 것이 다섯 번째입니다. 자비는 진나라에서 13년간 있었는데, 진나라와 초나라에 그를 따르는 사람 가운데 두루 통달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 보지 못하였으니 어진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고, 가족이 없어지고 친족도 배반하였으니 주도하는 자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정변을 일으키고자 하니 계책이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평생을 나라 밖에서 살았으니 백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고, 나라 밖에 망명하였는데도 어느 누구도 그의 자취를 안타까워하지 않으니 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포학하여 거리낄 바가 없긴 하지만, 자비가 다섯 가지 어려움을 뛰어넘어 군주를 시해하려는데 누가 그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369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나의 생각)

숙향이 날카롭게 짚어 낸 득국오난 이야기야말로 오늘날 조국 후보자가 처한 다섯 가지 어려움을 그대로 빼닮은 게 아닐까. 총애하는 사람은 있지만 어진 사람이 없는 것, 현인은 있지만 주도하는 자가 없는 것, 주도하는 자는 있지만 계책이 없는 것, 계책은 있지만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 백성들은 있지만 덕이 없는 것, 이 다섯 가지 어려움이야말로 조국 후보자나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날 떠안고 있는 핵심 난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공왕의 다섯 아들 가운데 조카를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위(영왕)의 비극적인 말년은 또다른 여운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영왕의 비참한 말로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보자.

 

초나라 영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동안에 제나라 대부였던 관기觀起는 영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그의 아들 관종觀從이 오나라로 달아나서 초나라를 정벌하기를 권하였다. 관종은 오나라와 월나라 군대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했고, 공자 비로 하여금 공자 기질을 만나게 하고, 영왕의 태자 녹을 죽이고, 비를 받들어 세워 왕으로 삼고, 공자 자석을 영윤으로 삼았으며, 기질을 사마로 삼았다. 관종은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 군사들에게 말했다.

 

"나라에 왕이 새로 생겼으니 먼저 돌아가는 사람은 원래 가지고 있던 관직과 봉읍, 전답, 집을 회복해 줄 것이며, 늦게 돌아가는 사람은 멀리 쫓아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초나라 군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영왕을 떠나갔다. 영왕은 태자 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스스로 마차 아래로 몸을 던지며 말했다.

 

"사람들이 아들을 아끼는 것이 이와 같은가?"

 

시종이 말했다.

 

"이것보다 심합니다."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관종의 '부친 살해범에 대한 복수극' 때문에 비롯된 영왕의 급작스러운 몰락과 비참한 최후는 뜻밖에도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이나 고대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페르세우스를 보는 듯한 비애감을 자아 낸다. 사마천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영왕이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많이 죽였으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윤이 말했다.

 

"청하건대 [왕께서는] 교외로 나가셔서 백성들의 처분을 들으십시오."

 

영왕이 말했다.

 

"백성들이 노여워해도 나를 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윤이] 말했다.

 

"잠시 큰 현에 들어가 제후에게 군대를 빌리십시오."

 

"모두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우윤이] 다시 말했다.

 

"잠시 제후들에게 달아나 큰 나라의 생각을 들으십시오."

 

왕이 말했다.

 

"큰 복은 다시 오지 않으니 단지 치욕을 당해야 할 뿐이다."

 

이에 영왕은 배를 타고 언성에 들어가려고 했다. 우윤은 영왕이 그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듯하자, 함께 죽으까 두려워 영왕을 떠나 달아났다.

 

영왕은 홀로 산속을 방황했지만, 산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영왕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영왕은 길을 가다가 옛날 견인(궁정을 청소하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말했다.

 

"내게 요기할 것 좀 주시오. 사흘이나 굶었소."

 

견인이 말했다.

 

"새 왕이 법령을 공표하여, 감히 왕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왕을 따르는 사람은 죄가 삼족에게 미칠 것이라고 한 데다 지금은 음식을 찾을 만한 곳도 없습니다."

 

영왕은 그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견인은 흙더미를 가져다가 자신의 다리를 대신하고 달아났다. 영왕이 깨어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배가 고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

 

여름 5월 계축일에 영왕이 신해의 집에서 죽자 신해는 두 딸을 따라 죽게 하였으며 그들을 모두 매장했다.(364∼366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초나라 영왕의 비참한 말로나 자비의 여남은 일 남짓한 짧은 제위 기간이 어찌 까마득한 옛날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로만 여겨질 수 있겠는가.

 

사마천은 『사기』 곳곳에서 못난 정치와 그것이 초래하는 수많은 폐단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정치 중에서 가장 못난 정치를 '백성과 다투는 정치’라고 보았다. 사마천이 <초 세가>를 마무리하면서 후세에 전하는 말은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롭기만 하다.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초나라 영왕이 바야흐로 신읍에서 제후들과 회맹하고 제나라 경봉을 주살하고, 장화대를 만들고, 주나라의 구정을 얻고자 했을 때 마음은 천하를 하찮게 보았다. 그러나 나중에 신해의 집에서 굶어 죽으려 할 때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영왕은] 지조와 품행을 닦지 못하였으니 정말로 슬프도다! 사람에게 권세가 있다면 정녕 신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기질이 변란을 이용하여 왕의 자리에 오르고, 진秦나라를 총애하고 음란한 것이 너무도 심하여 거의 다시 나라를 잃을 뻔하게 되었구나!"(409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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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다 보면 '권력의 기묘한 속성'을 자주 엿보게 된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행이나 천인공노할 음모나 온갖 감언이설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어디에 내다버렸는지, 그때부터는 단지 권력자의 타고난 본성에 따라 권력이 행사되고 유지될 뿐이다. 권력이 피지배자들을 위해 올바르게 견제되면서 행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 당장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시진핑, 아베, 김정은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백성들의 삶과 얼마나 유리되어 행사되는가.

 

권력자들은 대개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데만 몰두한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모른 채 임기(?)를 마감한다. 마약과도 같은 권력에 끝없이 탐닉하고 집착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 가지 깨닫는 게 있다. 권력자들로부터 언제나 개무시를 당하게 마련인 '개돼지'들이 '뜬 구름 위의 권력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기 본기』에 등장하는 여태후와 효문황제는 서로 성씨도 다르고, 권력을 물려주고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제위를 이어받은 경우인데, 두 사람의 권력 사용 방식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놀랍다.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이 죽고 나자 효혜제가 황제 자리를 이어받았다. 효혜제는 여덟 명이나 되는 유방의 아들 가운데 둘째였다. 그런데 효혜제가 태자로 있는 동안에 고조의 셋째 아들인 여의에게 태자 자리를 빼앗길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고조가 여의를 낳아준 척 부인을 몹시 총애했기 때문이다. 고조가 죽고 효혜제가 제위에 오르자 황제의 어머니인 여후는 기어이 척 부인의 아들 여의를 불러들여 독살한다. 그리고 늘상 눈엣가시로만 여겨왔던 척부인을 '사람 돼지'로 만들어 역사에 길이 자신의 이름을 빛낸다.

 

태후는 끝내 척 부인의 손과 발을 절단 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게 하며 '사람 돼지'라고 이름 불렀다. 며칠이 지나 혜제를 불러서 '사람 돼지'를 구경하게 했다. 효혜제는 보고 물어보고 나서야 그녀가 척 부인임을 알고 큰 소리로 울었고, 이 일 때문에 병이 나 1년이 지나도록 일어날 수 없었다. [혜제는] 다른 사람을 보내 태후에게 간청해 말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태후의 아들로서 결국 천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혜제는 이날부터 술을 마시고 음란한 즐거움에 빠져 정사를 듣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병까지 생겼다.(385∼386쪽)

 

 - 사마천, 『사기 본기』, <여태후 본기> 중에서

 

 

효혜제가 젊은 나이인 스물셋에 죽고 나자 드디어 '여씨 천하'가 되었다. 황제의 어머니인 여태후가 권력을 틀어쥐고 여씨 집안 사람들 중심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태후는 실권을 장악한 후 8년 동안 '고황후'로 불리며 나라를 다스렸다. 그녀가 죽자 유씨들이 다시 '여씨 일족'을 몰아냈다. 그리하여 다시 유씨 가문이 황제를 잇게 되었으니, 고조 유방의 아들들 가운데 어진 마음과 덕망을 갖춘 넷째 아들 유항이 효문제로 등극했다.

 

효문제가 황제가 되어 다스린 23년 동안은 그의 아들인 효경제 시대와 함께 '문경지치'라고 불릴 정도로 태평성대였다. 두 황제가 오로지 백성들만 바라보며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다. 효문제가 취임 첫 해에 펼친 개혁 과제는 '적폐 청산'이 아니라 악명 높은 '연좌제'부터 폐지한 일이었다.

 

"법이란 다스림의 바른 도이며 포악함을 금지해 선한 사람으로 이끄는 것이다. 지금 법을 어긴 후 이미 죄를 처벌받았는데도 죄 없는 부모나 아내, 자식이나 형제가 연좌되어 잡혀서 함께 벌을 받고 있다. 이를 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법을 의논해 보라."

 

담당 관원들이 모두 말했다.

 

"백성들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법을 만들어 금지한 것입니다. 친족까지 연좌해 벌을 받게 하는 것은 그 마음을 무겁게 해 그들이 법을 범하면 이를 엄중히 처벌하려는 것으로 시행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예전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짐이 듣건대 법이 바르면 백성들은 충성스럽고, 형벌이 합당하면 백성들이 순종한다고 하오. 게다가 백성을 다스려 선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이 관리이거늘, 인도하지도 못하고 또 바르지 않은 법으로 죄를 다스린다면, 도리어 백성들에게 해가 되고 난폭한 짓을 하는 것이오. 어떻게 하면 이를 막을 수 있는가? 또한 짐은 연좌제의 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깊이 생각해 보시오."(415쪽)

 

 - 사마천, 『사기 본기』, <효문 본기> 중에서

 

 

효문제의 눈부신 치적은 날이 갈수록 빛났다. 백성들이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과감하고도 훌륭한 덕치의 연속이었다. 집권 13년차에는 (오늘날까지 경극의 주제로도 널리 공연되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제나라의 태창령 순우공이 죄를 지어 처벌을 받게 되자 죄수를 관장하는 관원들이 그를 체포해 장안으로 이송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태창공은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이었다. 태창공이 막 체포되어 가려고 할 즈음에 딸들에게 욕을 하면서 말했다.

 

"자식을 낳아도 남자를 낳지 못했으니 급박한 일을 당해도 도움이 안 되는구나!"

 

그러나 막내딸 제영은 절로 마음이 상해 울면서 아버지를 따라 장안에 와서 황제에게 글을 올려 말했다.

 

"소첩의 아버지는 관리가 된 후 제나라 땅에서는 모두 아버지를 청렴하고 공정하다고 칭찬했으나 지금 법을 어겨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고 형을 받은 자는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어서, 비록 잘못된 행실을 고쳐 스스로 새사람이 되려 해도 할 수 있는 길이 없어 마음 아프옵니다. 소첩이 죄인의 몸으로 관아의 노비가 되어 아버지의 죄를 갚겠으니 아버지가 스스로 새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시길 원하옵니다."

 

글을 천자에게 올리니 천자는 그 마음을 슬프고 가련하게 여겨 조서를 내려 말했다.

 

대체로 듣건대 유우씨 때에는 죄를 지으면 의관에 그림을 그리고 특이한 복장을 입게 해 치욕으로 삼게 했을 뿐인데도 백성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들었다. 무슨 까닭에서 그랬겠는가? 지극하게 잘 다스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법은 육형肉形이 셋이나 있어도 간악함이 멈추지 않으니, 그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 짐의 덕이 각박하고 밝지 못해서가 아니겠는가? 짐은 참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교화의 방법이 순수하지 못해 어리석은 백성들이 죄로 빠져드는구나. 『시』에 말하기를 "다정하고 자상한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했다. 지금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교화를 베풀지도 않고 형벌을 먼저 가하니, 간혹 잘못을 고쳐 선을 실천하려 해도 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짐은 이 점을 참으로 가련하게 생각하노라. 무릇 형벌이란 사지를 잘라 버리고 피부와 근육을 도려내 죽을 때까지 고통이 그치지 않으니 얼마나 대단히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부덕한 것인가. 어찌 이것이 백성의 부모 된 자의 뜻에 걸맞은 것이겠는가. 육형을 없애도록 하라!

 

(425∼427쪽)

 

 - 사마천, 『사기 본기』, <효문 본기> 중에서

 

 

황제가 자리에 오른 지 23년째가 되었으나 궁실과 동산, 개, 말, 의복, 거마에 늘어난 것이 없었고, 생활에 불편함이 있으면 즉시 법령을 느슨하게 해 백성들을 이롭게 했다고 한다. 그의 성품이 어떠했는지는 다음의 인용문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황제는 항상 수수한 옷을 입었다. 또한 총애하던 신 부인에게 옷을 땅에 끌리지 않게 하고 휘장을 수놓지 못하게 해 마음이 돈후하고 소박한 것을 나타냄으로써 천하의 모범이 되게 했다. 또한 패릉覇陵(문제의 능묘)을 지을 때, 모두 와가瓦器를 사용하게 하고 금, 은, 구리, 주석으로 장식하지 못하게 하고 분묘를 높이 올리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비용을 줄이고 백성을 번잡하게 하지 않으려 함이다. …… 신하들 중 원앙 같은 이들은 진언할 때마다 칼로 써는 것 같았지만 황제는 한결같이 관대하게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또 신하들 중 장무 등은 뇌물을 받거나 금돈을 주다가 발각되었는데도 황제는 오히려 왕실 창고에서 금돈을 꺼내 그들에게 내려 그 마음을 부끄럽게 했을 뿐, 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넘기지 않았다. 오로지 덕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힘썼으니, 이 때문에 전국은 재물이 넉넉하고 번영했으며 예의가 일어났다.(432∼433쪽)

 

 - 사마천, 『사기 본기』, <효문 본기> 중에서 

 

 

23년 동안의 덕치 끝에 세상을 떠날 때 그토록 어진 황제가 남긴 조서는 과연 남달랐다.

 

짐이 듣건대 천하 만물 중 싹이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한다. 죽음이란 천지의 이치요, 만물의 자연스러운 규율이니, 어찌 유달리 슬퍼할 수 있으리오! 지금 처한 시대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 있음을 기리고 죽음을 미워해, 장례를 후하게 치러 가업을 무너뜨리고 상 치르는 일을 중시하여 산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 나는 정말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노라. 게다가 짐은 본래 부덕해 백성들을 돕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떠남에 더구나 복상을 중시해 오랜 기간 상기喪期를 지키게 하고, 추위와 더위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하고, 백성들의 아버지와 자식을 슬프게 하고, 어른과 아이의 뜻을 상하게 하고, 그들의 먹을거리에 손실을 입히고,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중단하게 한다면, 내 부덕함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이니 천하에 무슨 말을 하리오! 짐이 종묘를 손에 넣고 보전하며 미천한 몸으로 천하의 군왕 자리에 의탁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그사이 천지의 신령과 사직의 복에 힘입어 온 나라가 편안하고 전란이 없었노라. 짐은 본래 영민하지 못해 그릇된 행실로 선제가 남기신 덕을 욕되게 할까 봐 늘 두려워했으며, 세월이 지날수록 끝이 좋지 못할까 걱정했다. 지금 비로소 다행히 타고난 수명을 다하고 고묘高廟에서 공양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짐이 명철하지 않은데도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이 어찌 슬퍼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천하의 관리와 백성들은 이 조령을 받고 나서 사흘만 상례를 치르고 모두 상복을 벗으라.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제사와 음주와 고기 먹는 일을 금지하지 말라! 장사 지내는 일에 참가하거나 복을 하는 자들도 전부 맨발을 드러내지 말라! 질대絰帶는 세 치를 넘지 말고 수레와 무기를 늘어놓지 말며 백성들 가운데서 남녀를 뽑아 궁궐에서 곡하게 하지도 말라. 궁 안에서 상을 치르는 자들도 모두 아침저녁 각 열다섯 번씩만 곡소리를 내고 예가 끝나면 그만두라. 아침저녁으로 곡을 할 때가 아니면 제멋대로 곡하지 말라. …… 이 명령 가운데 있지 않은 다른 것들은 모두 이 명령에 의거해 처리하라! 천하에 널리 포고해 백성들에게 짐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하라! 그리고 패릉의 산천은 원래 모습을 따라야지 고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부인 이하에서 소사少使(황제의 후궁은 부인 밑에 미인美人, 양인良人, 팔자八字, 칠자七字, 장사長使, 소사가 있음)까지는 그 집으로 돌려보내라.

 

(433∼434쪽)

 

 - 『사기 본기』, <효문 본기> 중에서

 

(나의 생각)

 

『사기 본기』의 <효문 본기>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효경 본기>에는 효경제의 무덤에 관한 무척 흥미로운 주석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발굴 작업 도중에 토용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왜냐하면 그 숫자가 진시황의 병마용 숫자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황제가 죽으면 후궁들도 생매장되는 순장殉葬 습관까지 있었으니, 효문제가 죽으면서 내린 조서가 얼마나 절절히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쓰여진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효문제에 얽힌 미담들은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토록 마음씨가 어진 황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의 일대기를 다 읽고 나면 사마천이 그를 칭송하는 말이 도리어 부족해 보일 정도다.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한 세대가 지난 뒤에야 어진 정치가 이루어진다.' 또 '선한 사람이 1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야 난폭한 정치를 없애고 사형을 제거할 수 있다.'라고 했다. 진실로 옳은 말이구나! 한나라가 일어나 효문황제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이 되니 덕이 지극히 성대해졌다. 점차 역법을 고치고, 의복의 색깔을 바꾸고, 봉토를 쌓아 지내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나, 문제의 겸손하고 사양하는 정치는 오늘날까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아, 어찌 어질지 않다고 하겠는가!"(436∼437쪽)

 

 - 『사기 본기』, <효문 본기> 중에서

 

 

이런 글을 읽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 오면 우리나라의 갑갑한 정치 현실 때문에 너무 서글퍼진다. 새로운 법무장관 후보자는 자신과 가족들을 둘러싼 숱한 의혹들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분노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도, 거의 매일같이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만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버티고 있다. 이미 10여 건의 고소·고발까지 검찰에 접수되어 중앙지검 특수부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는데도 그는 오늘도 여전히 '포기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집념이 그토록 끈질긴가? 그게 정녕 '검찰 개혁'을 위한 진정어린 호소가 맞는가? 그게 혹시 권력을 향한 끈질긴 욕망의 다른 표현은 아닌가? 설사 그렇게 해서라도 기어코 법무장관에 잠시 동안 올라앉는다고 치자. 과연 그렇게 잡은 권력이 얼마만큼 떳떳하고 올바르게 행사될 수 있을까? 혹여나 그가 지난날에 저질러온 숱한 과오를 덮는데 그런 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될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그 숱한 '언행불일치' 만으로는 부족하여 아직도 새로운 업적을 기어코 더 쌓아 올려야만 만족하겠다면 그렇게 하라. 예로부터 권력을 붙잡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무모한 일도 서슴치 않고 저질러 왔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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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현명하지 않은데 어찌 복이 있겠는가!
분서갱유와 지록위마
천하의 근심은 토붕에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빗대어 '간축국서'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수석을 이제는 과감하게 물리치고 보다 널리 새로운 인재를 구하라는 철없이 순진한(?) 바램으로 써 본 글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 활약했던 승상 이사가 쓴 명문장이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를 담은 서간문 형식의 상서上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역사는 『사기 본기』에 나오는 「진시황 본기」와 『사기 열전』에 나오는 「이사 열전」을 꼽을 만하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스타(!) 황제였던 진시황 시대의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상세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 말고도 '진시황 시대'를 빛낸 인물은 여럿 있지만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를 빼놓을 수 없다. 저 유명한 <분서갱유>와 <지록위마>의 고사가 이들 두 사람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사는 무명 시절 한비자와 함께 순자荀子의 문하생으로 공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훗날 진시황을 도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나중에 진시황이 순행 도중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환관 조고'의 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어리석은 막내아들 호해(2세 황제)에게 황제 자리가 넘어가는 음모에 가담함으로써 진나라가 망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2세 황제의 짧은 치세 동안에 환관 조고와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끝내 자신의 집안사람들까지 몰살당하는 멸문지화를 입고 말았다.

 

이사는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동안에 '네 차례' 탄식한 일로도 유명하다. 처음엔 변소에서 사는 쥐와 창고 속에서 사는 쥐의 다른 환경을 보고 탄식했고, 두 번째로는 승상이라는 귀한 신분이 되었을 때 탄식했고, 세 번째로는 진시황이 남긴 조서를 고칠 때 탄식했고, 마지막에는 오형五刑을 받을 때 탄식했다.

 

이 가운데 그가 맨 처음으로 탄식했을 때의 일은 지금 들어봐도 귀가 쫑긋해 진다. 여러모로 오늘날 우리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새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 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661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이런 고사를 읽고 나서도 새로운 법무장관 후보자가 언급했다는 그 유명한 '붕어, 개구리, 가재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큰 집에서 살며 돈과 지위와 권세를 지닌 자들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라면 온갖 치졸하고 부끄러운 짓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버젓이 저지르는 행태를 떠올리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쥐 얘기는 이쯤 하자. 때려잡고 싶은 쥐들이 설쳐댄 게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사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마침내 진나라로 떠났다. 이때 그가 스승에게 남긴 작별 인사는 이러했다.

 

"저는 때를 얻으면 꾸물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만승의 제후들이 바야흐로 서로 세력을 다투고 있는 때여서 유세가들이 정치를 도맡고 있습니다. 또 진나라 왕은 천하를 집어삼키고 제帝라고 일컬으며 다스리려 합니다. 이는 지위나 관직이 없는 선비가 능력을 펼칠 때이며 유세가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로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661∼662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그가 순자에게 고한 이런 '출사표'야말로 현실 정치 참여를 오래 전부터 열망하고 역설했던 조국 전 수석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듯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서울대 교수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또다시 자리를 옮기려는 행태를 두고 세간에서 폴리페서라는 비판이 일자, 자신은 '앙가주망'일 뿐이라고 역설했지만 그게 어느새 '조가주망'으로 조롱받는 형국이니, 그가 하는 일이면 무슨 짓이든 비판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게 생겼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니 말이다.

 

이사가 진나라를 찾아가 승상 여불위를 만난 뒤 그는 진나라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장사長史라는 벼슬을 얻었다. 그가 떠맡은 역할은 이랬다. '제후국의 명망 있는 사람들 중 뇌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에게는 많은 선물을 보내 결탁하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예리한 칼로 찔러 죽였다.'

 

때마침 이웃나라의 유세객이 찾아와서 진나라를 교란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었다. 그 일 때문에 진나라 왕족과 대신들은 외부에서 영입된(?) 빈객들을 모두 내쫓으라고 아우성이었다. 이사도 '축출 대상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그 때 이사는 저 유명한 「간축객서()」를 써서 자신이 탄핵당할 위기를 도리어 승진의 발판으로 삼는다. 이사의 문장은 흔히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와 비교될 만큼 명문으로 인정받는다. 그의 재능과 모략과 지혜를 음미해 볼 수 있으므로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소 길게 인용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신이 듣건대 관리들이 빈객을 내쫓을 것을 논의하고 있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목공은 인재를 구하여 서쪽으로는 융에서 유여를 데려왔고, 동쪽으로는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송에서 건숙을 맞이하였고, 진나라에서 비표와 공손지를 오게 했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목공은 이들을 중용하여 스무 나라를 병합하고 드디어 서융에서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

 

이러한 사실을 보면 빈객이 어찌 진나라를 저버린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이 네 군주가 일찍이 빈객을 물리쳐 받아들이지 않고 선비를 멀리하여 등용하지 않았다면 진나라는 부유하고 이로운 실익이 없고 강대하다는 명성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이름난 옥을 손에 넣고, 수씨氏의 진주와 화씨氏의 구슬을 가졌으며, 명월주를 차고 명검 태아阿를 지니고, 섬리離의 준마를 타며, 취봉鳳의 기를 세우고 영타의 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보물은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데 폐하께서 그것들을 좋아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는 것이라야 한다면 야광주로 조정을 꾸밀 수 없고, 코뿔소 뿔이나 상아로 만든 물건을 가지고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정나라와 위衛나라의 미인은 후궁에 들어올 수 없고, 결제騠라는 준마가 바깥 마구간을 채울 수 없으며, 강남의 금과 주석은 쓸 수 없고, 서촉의 단청으로 채색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후궁을 장식하고 희첩을 꾸며너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난 것이라야 된다면 완주의 비녀, 부기의 귀걸이, 아호縞의 옷, 금수의 장식도 폐하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세상의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차린 조나라의 여인은 폐하 곁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물동이를 치고 부缶를 두드리며 箏을 퉁기고 넓적다리를 치면서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참다운 진나라의 음악입니다. 정鄭, 衛, 상간間, 昭, 虞, 武, 象은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물동이를 치며 부를 두들기는 것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악을 연주하며, 쟁을 퉁기는 것을 물리치고 소와 우의 음악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당장 마음을 즐겁게 하고 보기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을 뽑아 쓰는 데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인물의 사람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 않고 굽은지 곧은지를 말하지 않으며,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물리치고 빈객이면 내쫓으려 합니다. 그런즉 여색이나 음악이나 주옥은 소중히 여기되 사람은 가벼이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에 군림하며 제후들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는 백성을 버려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 제후를 도와 공적을 세우게 하고, 천하의 선비를 물러나 감히 서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며 발을 묶어 진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도적에게 군사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식량을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대체로 진나라에서 나지 않은 물건 가운데 보배로운 것이 많으며,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재 가운데 충성스러운 인물이 많습니다. 지금 빈객을 내쫓아 적국을 이롭게 하고 나라 밖으로 제후들에게 원한을 사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664∼667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진나라 왕은 이사의 계책을 받아들였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그러나 승상 이사는 지나치게 권력을 추종한 끝에 '분서갱유'라는 전대미문의 악랄한 언론 탄압 정책을 건의하고 실행하는데 앞장섰고, 2세 황제 때에는 환관 조고와 권력 다툼을 벌인 끝에 결국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사마천은 승상 이사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이사를 엄하게 꾸짖는 까닭은 간단하다. 당대 최고로 뛰어난 두뇌와 게책으로 무장한 그가 백성들의 삶에는 아랑곳 없이 오로지 진시황 곁에서 온갖 권모술수로 권력과 출세만을 추구한 끝에 결국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고 나라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이사는 여염집에서 태어나 제후들에게 유세하다가 진나라로 들어가서 진나라 왕을 섬겼다. 열국 사이에 틈이 생긴 기회를 타서 시황제를 도와 마침내 진나라의 제업을 이루게 했다. 이사는 삼공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 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룰 만하였을 것이다."(698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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