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람들은 인생의 밭고랑에서

비밀스런 신의 섭리에 따라

순간적인 추곡처럼

싹트고 여물고 시들어 가고

그 뒤를 또 다른 이들이 좇아간다…….

그렇게 우리 덧없는 종족들은

자라나고 요동치고 들끓다가

조상들의 무덤으로 모여든다.

우리의 때도 곧 닥쳐오리라.

하여 손자들의 작별의 인사를 하며

세상에서 우리 또한 몰아내리라!

 

그러니 친구여, 아직 젊을 때

이 덧없는 인생을 마음껏 즐기라!

나로 말하면 인생의 무상을 너무 잘 알아

미련도 애착도 없고

환영을 향해 눈을 감은 지 오래건만.

그래도 어쩌다 머나먼 미래의 희망이

내 가슴 뒤흔든다.

티끌만한 흔적도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한다면 서러우리라.

칭송을 위해 살고 시를 쓰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원하는지 모른다

내 슬픈 운명이 찬양받기를,

단 한 줄의 시구라도

막역한 친구처럼 날 추억해 주기를.

 

누가 알랴, 누군가는 그걸 읽고 감동할지,

내가 지은 한 편의 시

운명의 비호를 받아

어쩌면 레테의 강물 속에 침잠하지 않을지.

어쩌면(달콤한 희망이겠지만!)

후세의 어느 무식쟁이가

내 유명한 초상화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시인이었대 하고 말할지!

 

 -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제2장>

 

 

* * *

 

 

 

 

 

 

 

 

 

 

 

 

 

 

 

 

 * * *

 

 

엊그제 친구가 죽었다.

고3때 한 반이었지만 졸업 후 자주 보지는 못했다.

그 녀석은 경찰대에 떨어지고 부산대 법대로 진학했다.

다시 만난 건 그 녀석이 서른 중반쯤 뒤늦게 사시에 합격하고 나서였다.

어디서 처박혀 내내 공부만 했던지 영 소식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졸업후 십수년 만에 만나서 니집, 네집 서로 찾아가기도 했었다.

 

서울 살이가 힘들다며 그 녀석이 안동으로 내려간 뒤로도 그럭저럭 보고 지냈다.

그러다가 차츰 뜸해 지더니, 나중엔 밴드로, 카톡으로 서로의 소식을 아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뜻밖에도 연초에 고교 친구 넷이 만나 저녁을 먹다가 그 녀석의 소식을 들었다.

 

"병두가 쓰러졌는데, 의식이 없다더구먼. 벌써 달포는 지난 모양이야."

 

그걸로 끝이었다.

그동안 참 열심히 살던 친구였는데 이렇게 황망히 가다니.

빈소도 찾아가 보지 못하고 이렇게 영영 자네와는 작별이라니.

너무 애통하구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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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3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3-15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오렌 님의 나이에 이런 소식을 접하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죽음은 나이 순으로 찾아오지 않으니... 무엇보다 건강이 먼저예요.
스트레스 덜 받으려고 노력하고 운동하고 골고루 먹고 과로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야 해요.
저는 그래서 책을 예전보다 적게 읽고 글도 적게 씁니다. 오래 살려고요...

oren 2019-03-15 23: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런데도 우린 천년 만년 살 것 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니 그게 문제죠.
그 친구도 너무 열심히 살려고 애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던가 봐요.
운동도 참 열심히 하며 지내길래 건강하게 사는구나 했는데 말이지요.
이토록 갑작스레 세상을 하직하니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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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1932∼2016)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였다. 이만큼 특이한 이력을 지난 그가 최초로 쓴 소설이 1980년에 출판된 『장미의 이름』이었고, 이 책은 이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여기에 크게 고무된 에코는 『바우돌리노』, 『전날의 섬』,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 등을 연이어 쏟아냈고, 소설 말고도 『미의 역사』, 『추의 역사』, 『궁극의 리스트』 등 많은 책들을 써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여러 언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최고의 석학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엄청난 지식을 쌓은 인물이었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를 일약 세계적인 소설가의 반열에 불쑥 올려 놓은 작품이다. 도대체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겼길래 전세계의 독자들이 그토록 이 작품에 환호했을까. 장미의 이름들로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뜻밖에도 『장미의 이름』에는 장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짧게 비유적으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쉽게 말해서 장미의 이름 속엔 그 어떤 장미의 이름조차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말 뜻밖에도 이 책 속엔 장미가 아닌 기묘한 책 한 권이 등장한다. '장미의 이름' 속에 아침에 피었다가 이내 시들고 마는 장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결코 시들지 않는 희귀한 책이 한 권 등장한다는 사실로부터 실로 수많은 상상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게다가 그 한 권의 책이 참으로 절묘하다. 가령, 그 책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책이라면? 또한 발견된 적도 없는 그 책이 이미 금서로 지정할 정도로 위험한 책이라면? 더군다나 그 책이 중세의 어느 철옹성처럼 당당한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깊숙히 숨겨져 있다면? 더군다나 그 책을 둘러싼 수도원 내부의 갈등 때문에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더군다나 그 연쇄 살인 사건이 《요한의 묵시록》에 따라 7일 동안 단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된다면?

 

어쨌든 이 책은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과는 사뭇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은 책일 수밖에 없다. 지난 날의 장미는 얼마나 빨리 시들고 마는가.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그러나 한 권의 책은 얼마나 끈질기게 오래 살아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비록 그 책이 그토록 연약하고 가냘픈 종위 위에 쓰여졌음에도 말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책에 얽힌 이야기임을 새삼 강조한다. 그것도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던 14세기에 실존했던 어느 인물의 입을 빌어서.

 

누항(陋巷)의 일상 잡사가 아닌, 책에 얽힌 이야기여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저 모방의 도사 아켐피스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 한숨에 섞여 나올지도 모르겠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이쯤되면 이 작품에 담긴 책이 얼마나 흥미로울지는 거의 보장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 책이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임에랴.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는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중세의 요새 같은 수도원에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채, 장서관의 희귀한 금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빚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당대의 수도원이 품고 있음직한 온갖 음험한 분위기와 상징들과 함께 절묘하게 버무려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의 그 낯선 시공간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맨다.

 

중세 유럽 수도원이 지니고 있는 음험한 상징들은 무엇일까. 그곳은 단지 탈속한 수도사들이 죽어서조차 거기서 뼈를 묻어야만 하는 영구히 속박된 기도원으로만 기능하지는 않았다. 그곳은 대학을 대신해서 인류의 지혜가 보존되고 전승되는 지식의 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권 옹호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정신적 · 물질적 토대였고, 수도사들의 온갖 인간적 번민과 고뇌가 교차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또한 당시의 수도원은 '감히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성채의 표징'으로 성별(聖別)될 만한 어마어마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허리로 감겨드는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는 수도원을 보았다. 그러고는 놀라고 말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흔히 보아 왔던, 수도원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벽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벽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엄청나게 큰 건물에 놀란 것이었다. 뒤에 알았지만 그 건물은 바로 수도원의 본관이었다. 이 본관은 8각 기둥 건물이었지만, 멀리서는 4각 기둥 건물(성도의 위엄과 금성철벽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였다. 남쪽은 수도원이 앉은 고원과 닿아 있었고, 북쪽은 산의 가파른 사면에서 솟은 듯이 불겨져 있었다. 아래쪽에서 본 광경도 소개해야겠다. 아래쪽에서 보면 가파른 석벽이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데, 색깔이나 재질이 한결같은 이 석벽의 정점은 그대로 탑과 관망대(하늘과 땅을 두루 아는 대가의 작품임에 분명한)였다. …… 크기나 형태로 보아 본관은 뒷날 내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보았던 카스텔 우르시노, 카스텔 데 몬테와 흡사했다. 그러나 그 범접하기 어렵게 하는 위용이나, 거기 다가가는 행자에게 불러일으키는 위구심(危懼心)으로 말하면, 후일에 내가 보게 되는 어떤 수도원이나 성채도 이와 같지 못했다.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이 때마침 1327년 11월이라는 사실은 교권과 속권의 권력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저 유명한 <아비뇽의 유수>와 직접 연결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황인 요한 22세는 당연히(!) 프랑스 남부지방 소도시인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에 머물고 있었으며, 당시의 황제인 루트비히와는 그리스도의 청빈 논쟁 등을 빌미로 격렬하게 대립했다. 급기야 교황 요한은 루트비히 황제를 파문하기에 이르렀고, 황제는 교황을 배교자(背敎者)로 비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벌어졌던 극렬한 권력 다툼은 소위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으로 번졌고, 수많은 카톨릭의 신학자와 사제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싸움에 휘말려들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시대 배경을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골라잡은 것이다.

 

1322년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황제는 정적(政敵)이었던 프리드리히를 거세했다. 황제가 둘일 때보다는 하나 있을 때를 더욱 두려워한 교황 요한은 승리자인 루트비히 황제를 파문했다. 우리 황제는 자신을 파문한 교황을 배교자(背敎者)로 비방했다. 바로 이 해에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에서 소집되었고 총회장이었던 체세나의 미켈레(1270∼1342)는 엄격주의파의 절충안을 받아들이고, 신앙과 교리에 관련된 문제로서의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해, 그리스도가 사도들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usus facti(사용권, 이용권)에 의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교단의 가치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이 귀중한 헌장은, 교황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다. 이는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주교를 임명하는 황제의 권리를 부인하고, 교황이 황제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했던 교황 자신의 주장에 위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한 22세는 1323년 회칙(回勅) <쿰 인테르 논눌로스>를 통하여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선언을 묵살해 버렸다.(33∼34쪽)

 

마침 이럴 때 소설의 주무대인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교황과 황제의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 참석하는 주요 인물들인 카잘레 사람 우베르티노, 체세나의 미켈레, 베르나르 기 등은 모두 당시 카톨릭 세계를 대표하던 실존인물들이다. 이들이 황제와 교황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청빈'과 '이단 논쟁'을 둘러싸고 벌이는 불꽃 튀는 논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흥미롭다. 그런데 이들이 격렬하게 맞붙어 자신들의 논리를 치열하게 전개하는 와중에도 연쇄 살인 사건은 계속 진행되고, 이단 조사관을 지낸 양 진영의 고위급 핵심 멤버들은 이 살인 사건조차도 자신들의 영역 확대를 위한 싸움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파고들수록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공간은 뜻밖에도 본관에 있는 장서관으로 모아진다.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들이 한결같이 장서관의 사서나 보조 사서 혹은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특명을 받고 수도원에서 열리는 실무 회담에 파견된 윌리엄 수도사는 그 수도원에 도착하던 당일부터 비범한 추리력을 발휘하면서 단숨에 수도원장의 신임을 받고 살인 사건의 조사를 떠맡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유난히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4세기 초반의 교황파와 황제파의 권력 다툼을 조정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에 어찌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불려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위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을 둘러싼 치열한 논리 싸움에서 황제파에 가담한 인물들은 체세나의 미켈레(1270∼1342), 오컴의 윌리엄(1280∼1349), 카잘레의 우베르티노(1259년~1329년) 등이 대표적이었고, 교황파를 대표한 인물들은 중세의 악명 높은 이단 심문관이었던 베르나르 기가 주축이었다.

 

이들이 주고 받는 날선 논쟁들은 중세의 이단 논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양 진영은 '그리스도의 청빈'을 본받아 교회의 재산권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황제파와 그에 반대하는 교황파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했고, 교황파 인물들은 마침내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이단으로 몰고 간다. 그들이 논리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상대방에 의해 순식간에 이단으로 내몰리고 결국은 화형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 사이의 타협점은 좀체로 찾기 어려웠고, 소설 속에서도 그 회담은 결렬된다. 먹을 게 부족해서 밤마다 수도원을 들락거리며 몸을 팔며 주방의 식재료를 얻어가던 애꿎은 사하촌 처녀 하나만을 희생물로 삼은 채.

 

이 작품이 책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실존하는 많은 책들이 수많은 등장인물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가운데 주인공 격인 책은 단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시학』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서사시에 대해서는 자세하고 충분한 설명이 담겨 있지만 희극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만 나올 뿐인데, 이를 바탕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대해 쓴 『시학 2편』이 망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장미의 이름』속에 '희극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을 '책 속의 책'이자 수도원 연쇄 살인 사건의 핵심적인 사물로 재등장시키고 있다. 망실된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책이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깊숙히 숨겨져 있었고, 이 책을 둘러싼 모종의 암투가 수도원 연쇄 살인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밝혀진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학』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망실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증거로 『시학』1449b 21을 보면 희극에 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그 후로는 희극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정치학』 1341b 38을 보면 '카타르시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에 관해서는 『시학』을 참조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학』에는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 천병희 옮김, 『시학』,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다.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장장 9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추리 소설이 이렇게 단촐한 문장으로 시작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독자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 수기(手記)인 이유 자체가 미궁을 헤메는 것처럼 몹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이야기가 결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교묘한 장치'를 통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1968년 8월 16일, 작가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는데, 그 책의 저자는 당연히(!) 실존인물이었던 발레(1754∼1824)라는 프랑스의 수도원장이 펴낸 책이었다. 출판사는 1842년 파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였다. 책의 제목은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이 책 이름에 등장하는 마비용 수도사 역시 실존 인물이고 멜크 수도원 역시 지금까지도 현존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원이다. 더군다나 이 수도원은 9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실제로' 로마 가톨릭의 본거지였으며, 때로는 종교개혁에 대항하는 요새이기도 했다.

 

멜크 수도원(출처:위키백과)

(멜크 수도원은 1089년 최초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건축되어 1297년 대화재로 완전히 불타버렸다고 한다. 에코가 이 수도원을 소설의 배경 가운데 일부로 삼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셈이다.)

 

그 책에는 18세기의 석학 마비용(1632∼1707)이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한 14세기의 수기를 충실하게 복원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작가는 멜크의 수도사 아드소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독파한 뒤 단숨에 대학 노트에다가 이 책을 번역한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이 탄 배는 다뉴브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멜크에 닿는다. 작가는 멜크 수도원의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아드소 수기의 사본을 찾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다가 그만 그 중요한 책을 잃고 만다. 연인과 함께 이동중이던 작가가 몬트제 호반에서 짧게 1박할 때 그들의 관계가 끝장 났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 비극적인 밤에 연인과 헤어질 때 그 소중한 책마저 상대방의 짐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 것이다.

 

작가는 그 책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파리의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을 뒤지는가 하면 유명한 중세학자와도 상의해 보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라 수르스 수도원으로 달려가도 그런 책을 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생각마저 품는다. 어쩌면 그 책이 위조된 유령 도서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던 중에 작가는 197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리엔테스 거리에서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작은 고서점의 서가를 뒤지다가 우연히 밀로 테메스바르라는 사람이 쓴 카스틸리아어판 소책자 『장기 놀이에서의 거울 이용법』을 찾아낸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책에 아드소의 수기로부터 인용된 대목이 상당수 있는데다가, 그 내용 또한 발레 수도사가 불역한 수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까마득한 옛날 '프랑스 접경에 있는 아페니노 산맥 중앙부 기슭쯤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수도원에서 일어난 '7일 동안의 기록'인 아드소의 수기가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움베르토 에코가 책에 대한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뒤섞어 '아드소의 수기'에 대한 실재성을 강조하는 수법은 곧바로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처럼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 전달 방식은 일찌감치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속에서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내보인 솜씨이기도 하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이야기는 결코 자신이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아랍 사람인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책이며, 자신은 어느 날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에 나갔다가 어느 소년이 팔겠다고 하는 잡기장 한 권 속에서 그 이야기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식이다.(☞ 다시 읽는 돈키호테)

 

움베르토 에코는 '아드소의 수기'를 소개하는 방식에서만 보르헤스에게 빚진 게 아니었다. 그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보르헤스의 이미지를 그대로 본 딴 늙은 수도사를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킨 것이다. 『장미의 이름』을 단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결코 그 이름을 잊을 수 없는 '책에 미친' 늙은 수도사의 이름은 부르고스의 호르헤였다! 그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수도사인데, 젊어서 한 때 수도원 장서관의 사서를 맡았지만 너무 일찍 '암흑의 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그는 눈이 멀었어도 머리 속에 담긴 기억만으로 장서관에 보관된 수많은 책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눈 먼 수도사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멈추는 게 마땅하다. 『장미의 이름』은 지적 호기심을 만낄할 수 있는 드물게 뛰어난 추리 소설인데, 호르헤의 비밀을 이런 글에서 너무 자세히 드러내는 것은 미지의 독자들에게 결코 유익할 리 없기 때문이다.

 

비록 7일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뜻밖에도 이 소설은 엄청나게 길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작가가 미리 세심하게 마련해 놓은 여러 장치들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롤로그이다. 거기엔 '늙고 병든 몸으로 멜크 수도원의 독방에 갇힌' 아드소가 젊어서 수련사로 지낼 때 경험했던 '7일간의 기록'을 어떤 심정을 담아 썼는가가 절절히 베어 있다.

 

가련한 죄인의 삶이 이윽고 막바지에 이르고 보니 이제 내 머리는 백발…… . 바야흐로 바닥 모를 심연, 고요와 적막의 신성(神性)이 가득한 그 심연을 헤맬 날을 기다리는 한편 천사의 은혜인 지성의 광명에 의지하고 세상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늙고 병든 육신을 여기 안온한 멜크 수도원의 욕망에 가둔 나는 지금 소싯적에 우연히 체험하게 된 저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의 기록을 이 양피지에다 남겨 놓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나는 보고 들은 바를 한 순간 산 순간,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옮기되 굳이 어떤 구상의 형식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 뒤에 오는 이들(가짜 그리스도가 먼저 오지 않는다면)에게 표적을 표적으로만 남기는 뜻은 글을 아는 교우로하여금 이를 음미하게 하기 위함이다.

 

원컨데 주님께서, 이름이야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편이 온당하고 크신 뜻에 합당할 터인 저 대수도원 일을 투명하게 그려 낼 권능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때는 주후(主後) 1327년 말, 루트비히 황제가 전능하신 분의 뜻에 따라, 아비뇽에 진치고 앉아 사악한 왕위 찬탈과 성직 매매를 일삼으며 사도를 욕되게 한 저 사교(邪敎)의 우두머리를 척결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해이다(죄 많은 사교의 우두머리가 누구던가? 믿음이 없는 자들이 교황 요한 22세라고 부른 카오르의 자크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 수많은 다른 책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책들이 거의 대부분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너무 희귀한 책들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독서욕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 배경이 14세기 초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에, 정말 뜻밖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이미 읽은 책들 가운데 '다시 한번' 펼쳐 읽고 싶은 책들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책들은 주로 희극과 웃음과 책과 도서관과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만한 책은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들』이다. 도대체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눈 먼 수도사인 호르헤는 왜 그토록 '웃음'을 죄악시했던가를 그 책을 통해서나마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플라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의 임종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플라톤의 책도 아닌, ㅡ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다. 플라톤 또한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ㅡ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웃음을 사랑한 니체의 보다 결정적인 말은 이랬다. "신들도 위버멘쉬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 그들은 신성한 행위를 할 때조차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쓴 『웃음』이라는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어느 누구도 그 본질을 제대로 건드려보지 못했다던 '웃음의 비밀'을 그 철학자가 무려 2,000여 년 만에 다시금 들춰봤으니 말이다. 그 책에서 베르그송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 연구'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다시금 찾아 읽어보고 싶다.(베르그송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한 철학자다.) 그 다음으로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다. 미궁처럼 끝없이 펼쳐진 바벨의 도서관 이미지야말로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수도원의 장서관 모습을 가장 닮았을 테니.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책은 뜻밖에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이 책을 꼽은 이유가 그저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인물과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 조르바도 젊어서 한 때 그리스의 아토스 산자락에 위치한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었고, 케이블 고가 선로 계약서에 서명을 받으러 찾아간 수도원에서는 마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기묘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려낸 수도원 살인사건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속 '살인 사건'과 얼마나 닮았을지 괜스레 궁금해진다.(☞ 아토스에 대하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 책의 두께 때문에라도 끝까지 읽지 못한 독자들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괴롭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이 책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전해진 놀라운 소식 하나도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덴마크의 어느 대학 지하실에 보관된 수백년 전 고서 가운데 희귀서적 3권에 맹독이 묻어 있었다는 뉴스였다. 중세시대 양피지에 적힌 라틴어 글자 판독을 위해 분석한 결과 고농도의 비소 성분이 거기서 검출됐다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아니다, 어쩌면 움베르토 에코는 이 정도의 뉴스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로서는 아무래도 궁극의 빅뉴스를 기다릴 테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고 약속했던 시학 제2권이 정말로 유럽의 어느 수도원의 장서관에서 발견되는 대사건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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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3-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전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중에서는 가장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읽었던 것이 <장미의 이름>이 아닐까 해요. 물론 앞부분은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사실 기록이고 어느 것이 소설로서의 내용인지 혼동되어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읽어야했지만 그러면서까지 읽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게 한 매력이 있던 작품이었어요.
덴마크 고서의 맹독 소식은 오싹하네요. 그리고 곧 드는 생각은 그 희귀서적 세권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요! ^^

oren 2019-03-12 16: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오래 전에 사 놓고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답니다. 언젠가 읽을 기회가 오겠지, 하고 때를 기다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다른 분의 서재에서 <소설의 도입부, 최고의 첫 문장 Best 10>이라는 글을 봤어요(☞ http://blog.aladin.co.kr/caspi/10693048) 그 열 권의 책 가운데 제가 여태껏 안 읽은 책이 딱 두 권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었지요. 그래서, 올커니, 이제야 마침내 읽을 때가 찾아왔군, 하고 마음 먹은 후로 틈을 엿보기 시작했더랬지요. 사실, 이 책이 너무 유명한 데다가,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탓인지 엄청 재미있지는 않더라구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자주 떠올렸는데, 똑같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그 소설이 저는 훨씬 재미있더라구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으니까요.(그 책도 몹시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가, 소설의 초반과 중반과 후반에 나오는 인물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안개가 걷히듯이 마침내 하나 하나 촘촘히 연결되어 드러날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더군요.) 그에 비하면 <장미의 이름>은 ‘결말 부분이 너무 많이 노출된 탓인지‘ 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추리소설의 결말을 미리 안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인지를 그 때 절절히 느끼겠더군요.

그리고, 이 소설의 도입 부분에 사용된 트릭은 보르헤스의 소설들, 가령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등에서 이미 봐왔던 터라 ‘작가가 일부러 이러는구나‘ 하고 재빨리 눈치를 챘었지요. 미처 보르헤스의 소설들을 읽지 않은 상태로 이 책을 먼저 붙잡았더라면 저도 엄청 헤맬 뻔 했지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이 의외로 이런 데서 많이 당하면서(?) 중도에 너무 일찍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하더군요. 그게 다 작가가 일부러 독자들과 함께 잠시 장난을 즐기자고 하는 수법인데 말이죠. 실컷 뺑뺑이를 돌리고 나서, 나 잡아 봐라~, 어디 있게? 하는 거죠. ^^
 

 

그저께 밤에는 이상한 뉴스를 하나 읽었다. 일본 지진에 관한 최신 뉴스였다.

 

“30년 이내 80%의 확률로 일어난다”고 알려진 일본 난카이 트로프(남해 해저협곡) 대지진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닛칸겐다이가 최근 보도했다.

 

난카이 트로프는 시즈오카현 쓰루가만에서 규슈 동쪽 태평양 연안 사이 깊이 4000m 해저 봉우리와 협곡지대다. ‘수도직하지진’(首都直下地震·진원이 도쿄 바로 밑에 있는 지진)과 함께 현재 일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진 위험 지역이다. 수도직하지진이 도쿄를 강타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있다면 난카이 트로프 지진은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로 태평양 연안 일본 주요 도시가 물에 잠기는 대재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다. 나는 고작 세 반밖에 가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1995년에 맨 처음 그 나라를 갔을 때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도 가까운 나라가 이렇게도 잘 살고 있다니!

 

눈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박물관을 가 봐도 놀라웠고, 도요타 전시장을 가 봐도 놀라웠고, SECOM이라는 유명한 보안회사를 가 봐도 놀랄 일 천지였다. 말로만 들었던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도 어마어마했다. 들른 김에 SONY 캠코더와 큼지막한 올림푸스 자동카메라를 샀고, 빌 게이츠가 즐긴다는 최신 유행 게임인 MYST라는 CD 게임까지 샀다. 그때 내가 산 게임 CD 1장 가격이 무려 7만원쯤 했었다. 지금 되돌아 보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 같다. 아, 참, 지금 이렇게 한가롭게 여담을 할 때가 아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그저 단순히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 뉴스를 보고 나니 지진 위험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구나 싶다. 용어조차 생경한 '수도직하지진'이니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니 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 충격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켰던 8년 전 대지진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듯하다.

 

전문가도 경종울렸다…日 난카이 대지진 ‘전조’ 잇달아

 

그런데 일본은 생각할수록 장래가 참 아리송한 나라다. 미래에는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도 수도 없이 나왔었다. 지진만 문제가 아니라 일본 열도가 통째로 가라앉는다는 얘기도 자주 등장했다. 마침 그저께는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 할아버지까지 한마디 보탰다. 일본은 경제학적으로도 아예 사라질 나라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로저스의 日비관론 "사라질 나라… 주식 다 팔았다

 

이 두 가지 뉴스를 하루 사이에 접하고 보니 문득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탄허록』이라는 책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그 책은 탄허스님이 입적하신 후에 스님의 말씀들을 모아 펴낸 책인데, 그 책 속에 담긴 스님의 예언 중에서도 마침 일본이 해수면 아래로 잠길 운명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탄허록』에 담긴 스님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단순히 일본 열도만 가라앉는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변화가 도래한다. 그 내용들을 일부만 소개하면 이렇다. 무려 46억 년에 달하는 지구의 기나긴 역사가 우리 세대에 와서 다시 한번 중대한 변화를 맞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23.7도로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 선다는 점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가. 그런데 지구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보면 이 정도의 변화는 도리어 사소한 변화로 치부될 정도다. 지구상에서 가장 험준한 지형을 자랑하는 히말라야 산맥들도 한 때는 해저였으니 말이다.

 

 5억 년 전에는 공기중에 지금보다 20배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있었다. 2억 년 뒤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었을 때 역전된 '온실효과'가 일어났다. ...... 심지어 지구의 하루에 해당하는 시간도 변해왔다. 달은 그 이웃의 자전에너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다. 산호는 매일 변동하는 활동과 연간 변동하는 활동을 하는데, 4억 년 전부터 만들어진 성장 고리는 당시에는 1년이 400일이었음을 말해준다.(402쪽)

 

 - 스티브 존스, 『진화하는 진화론』 중에서

 

 

다시, 탄허 스님의 예언으로 돌아 오자. 스님은 일본이 미래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지른 죄악이 틀림없이 인과응보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내 눈으로 봐도 그렇다. 아직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까지도 저런 식으로 다루는데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일본은 지난 5백 년 동안 무려 49차례나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만약 임진왜란 때 천운이 우리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 세력으로만 보자면 일본에게 우리 땅을 열 번도 더 빼앗겼을 것이다. 수차례 왜군의 침략으로 삼남三南은 쑥대밭이 되었고, 결국 함경도까지 함락되면서도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국운 덕분이었다. 즉 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며 남을 해칠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법칙이자 인과응보이며 우주의 법칙이다. 이것을 역학의 원리로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주역》의 팔괘에서 우리나라는 ‘간방艮方’에 위치해 있다. 《주역》에서 ‘간艮’은 사람에 비유하면 ‘소남小男’이다. 이것을 나무에 비유하면 열매다. 열매는 시종始終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소남을 풀이하면 ‘소년少年’이라 할 수 있는데, 소년은 시종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소년은 청산靑山이면서, 아버지 입장에서는 결실이기 때문이다. 소년이 다시 시작되면 성장하여 언젠가는 아버지가 된다. 열매는 결실 전 뿌리에 거름을 주어야 효과가 있고, 일단 맺게 되면 자기를 낳아 준, 다시 말해 열매를 만들어 준 뿌리와 가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열매는 뿌리를 향하여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간艮’의 원리이자 소남의 해석이며 시종의 논리다.

 

《주역》을 지리학상으로 전개해 보면 우리나라는 간방에 해당되는데 지금 역의 진행 원리로 보면 이 간방의 위치에 간도수(艮度數; 《주역》에서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추수 정신을 말함)가 비치고 있다. 이 간도수는 이미 1900년 초부터 시작되었다.(42∼44쪽)

 

 

일본 열도가 물에 잠기면 우리나라라고 안전할까. 그럴 리는 없다. 우리나라 또한 동남 해안 쪽 1백 리의 땅이 피해를 입는다고 본다. 그러나 서부 해안 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 도리어 국토는 늘어나리라 본다. 지구 대변화의 시기에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으리라 본다.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 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는 간방에 간도수가 접합됨으로써 새로운 역사 또한 우리 땅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남북 문제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1년 동안 북핵을 둘러싸고 숨가쁘게 진행된 움직임까지도 소상히 내다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결국 시종을 함께 포함한 간방의 소남인 우리나라에 이미 간도수가 와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문제가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남북 분단과 통일 문제를 살펴보자. 전체 인류사적 관점에서 보면 작고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 문제야말로 오늘날 국제 정치의 가장 큰 쟁점이며, 한반도 문제 해결이 곧 세계 문제 해결로 직결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상은 곧 지구의 남극과 북극의 상대적인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하겠다. 지구에 남극과 북극은 있지만 서극과 동극은 없지 않은가. 이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동서의 문제가 바로 역사의 결실기를 맞아 남북의 문제, 즉 지구의 표상인 남극과 북극의 상대적인 현상과 닮아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략) 

 

역시 역학의 원리로 본다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도 일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강점할 당시 그들은 일본 황궁皇宮을 한반도로 옮기려고 궁터까지 마련한 적이 있었다. 또한 영구히 일본 본토로 만들기 위해 우리 민족의 대부분을 만주 등으로 이전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36년이라는 일시적 강점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끝이 났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났듯이 우리나라의 남북 분단 문제 또한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위정자나 학자들이 남북 분단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멈추지 말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천륜天倫의 법칙에는 당할 수가 없다. 인간이 자연에 아무리 강력하게 도전한다 해도 결코 자연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듯이 말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결국 머지않아 통일을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에 하늘의 섭리가 필연적으로 작용할 것이다.(44∼47쪽)

 

 

여기서 꼭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미국의 역할'이다. 좋든 싫든 미국은 우리의 군사동맹국이다. 일찌기 마키아벨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자국의 군대로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없을 때는 강력한 군사동맹만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나라에 주한 미군이 주둔하게 된 것도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군대만으로는 우리 자신을 지켜낼 힘이 없다는 게 근본 원인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 강대국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탄허 스님은 우리나라와 주변국의 관계에도 음양의 이치가 작용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8·15 광복은 미국의 힘이 크게 작용했는데, 이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등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알다시피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키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왔다는 것은 역학으로 풀이하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자 우주의 필연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역학에서 ‘소남小男’과 ‘소녀小女’, ‘장남長男’과 ‘장녀長女’, ‘중남中男’과 ‘중녀中女’는 서로 음양陰陽으로 천생연분의 찰떡궁합의 배합配合이다. 미국은 역학에서 ‘태방兌方’이며 ‘소녀’다. 이 소녀는 소남인 우리나라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까닭에 해방 이후 정통적인 합법 정부를 수립한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일의 우방으로 삼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건국을 도왔고,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함께 전선戰線에서 피를 흘린 맹방盟邦이 되었으며, 전후에는 수많은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 원조 속에는 미국의 국가적 이익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정치적 이익관계를 떠나서 우주의 원리에서 본다면 미국은 소녀이자 부인婦人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도움을 준 것은 마치 아내가 남편을 내조하는 것과 같아 결과적으로 남편의 성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중략)

 

여기에서 미국과 월남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을 확대해 나가자, 미국은 월남에서 망신만 당하고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함께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행원 스님(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 불교 포교에 힘씀)은 당시 내 견해에 의구심을 가지고 반문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 하나면 월남은 꼼짝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러다 3년 후 일본에 갔을 때 그곳에서 행원 스님을 다시 만났는데, 그때 내 예언이 어쩌면 그렇게 적중할 수 있느냐고 놀라워했다.

 

역학의 원리로 보았을 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역학의 오행으로 보더라도 월맹은 ‘이방离方’인 남쪽으로, 이것은 ‘화火’로 풀이된다. 반면 미국은 태방兌方으로 ‘금金’인데, ‘금’이 불[火]에 들어가면 녹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화극금火克金’의 원리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금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다 녹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손해를 본 것은 사실이다. 역학적으로 미국은 소녀少女, 월남은 중녀中女다. 두 나라가 음陰이어서 서로 조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로 나는 미국의 국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월남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간방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은 결실의 시대로 진입해 있다. 결실을 맺으려면 꽃잎이 져야 하고, 꽃잎이 지려면 금풍(金風; 여름의 꽃이 피어서 열매를 맺게 하려면 가을의 차가운 기운이 있어야 한다. 가을은 ‘금’ 기운의 상징이고 방위는 서쪽임)이 불어야 한다.

 

이때 금풍이란 서방西方 바람을 말하는데, 이 바람은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이른바 미국 바람이다. 금풍인 미국 바람이 불어야만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는 가을철인 결실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인류사의 열매를 맺고 세계사의 새로운 시작을 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47∼50쪽)

 

 

이 대목은 지금 다시 읽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1983년에 입적하신 스님은 마치 오늘 밤 베트남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까지도 훤히 내다보는 듯하니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일본이 정말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소상히 예견했다. 스님이 살아 계실 당시만 하더라도 화석 연료의 과다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이 결국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고 북극의 빙하를 녹여 해수면 상승을 초래한다는 정도로까지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을 터인데, 1983년에 입적하신 분이 어떻게 이토록 멀리, 정확하게 내다봤는지 그저 스님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서양 종교의 예언은 인류 종말을 말해 주고 예수의 재림으로 이어지지만, 정역의 원리는 후천 세계의 자연계가 어떻게 운행될 것인가, 인류는 어떻게 심판받고 부조리 없는 세계에서 얼마만한 땅에 어느 정도의 인구가 살 것인가를 알려 주고 있다.

 

미국의 어느 과학자는 25년 내에 북빙하北氷河가 완전히 녹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1980년 〈경향신문〉과의 대담 중). 북빙하의 해빙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역 시대는 ‘이천·칠지二天·七地’의 이치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말세末世의 세계는 불로써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고, 그때는 아기 가진 여자가 위험하니 집밖에 나가 있으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곧 지진에 의하여 집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여기에 열거한 사례들은 지구의 종말에 대하여 어느 지점에서 일치하는 점이 있다.

 

그렇다면 북빙하의 빙산이 완전히 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음과 같은 일이 예상된다.

 

첫째, 대양大洋의 물이 불어서 하루에 440리의 속도로 흘러내려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을 휩쓸고 해안 지방이 수면에 잠기게 될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이 점차 가라앉고 있으며,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데, 이것은 북빙하의 빙산이 녹아서 물이 불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이제까지 지구의 주축主軸은 23도 7분이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지구가 아직도 미성숙 단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4년마다 윤달과 윤날이 있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1890년 이래로 지구의 기온은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역학의 이천 칠지에 의하면 지축地軸 속의 불기운[火氣]이 지구의 북극으로 들어가서 북극에 있는 빙산을 녹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소규모 전쟁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때는 핵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사는 법이다. 수소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민중의 맨주먹뿐이다. 왜냐하면 오행五行의 원리에서 ‘토극수土克水’를 함으로써 민중의 시대가 핵의 시대를 대치해서 이를 제압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비극적인 인류의 운명인데, 이는 세계 인구의 60퍼센트 내지 70퍼센트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이중 수많은 사람이 놀라서 죽게 되는데, 정역 이론에 따르면 이때 놀라지 말라는 교훈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때는 일본 영토의 3분의 2가 침몰할 것이고, 중국 본토와 극동의 몇몇 나라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러한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넷째, 파멸의 시기에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主軸 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정역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구 중심 부분에 있고 ‘간태艮兌’가 축軸이 된다고 한다. 일제시대 일본의 유키사와行澤 박사는 계룡산이 지구의 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과거에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국의 침략과 압제 속에서 살아왔으며, 역사적으로 빈곤과 역경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후천시대에는 한반도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하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이 정역 시대正易時代에 태어났음에 감사해야 한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와서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또한 모든 국내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문화는 다른 여러 나라의 귀감이 될 것이며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이다.

 

중·러 전쟁과 중국 본토의 균열로 인해 만주와 요동 일부가 우리 영토에 편입되고,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기에도 너무 작은 영토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영향권 내에 들어오게 되며, 한·미 관계는 더욱 더 밀접해질 것이다.

 

이러한 대변화의 시기를 세계의 멸망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역의 시대는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성숙기라 할 수 있다. 결국 복희팔괘는 천도天道를 밝혔고, 또 문왕팔괘는 인도人道를 밝혔으며, 정역팔괘正易八卦는 지도地道를 밝힌 셈이다. 특히 정역팔괘는 후천팔괘後天八卦로서 미래역未來易이므로 이에 따르면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지구는 새로운 성숙기를 맞이하게 되며, 이는 곧 사춘기 처녀가 초조初潮를 맞이하는 것과 같다.

 

20년 전후에 북극 빙하가 녹고, 23도 7분가량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 서고, 땅속의 불에 의해 북극의 얼음물이 녹는 현상은 지구가 마치 초조 이후의 처녀처럼 성숙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지구 표면에는 큰 변화가 온다. 현재는 지구 표면에 물이 4분의 3이고, 육지가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이와 같은 변화를 거치고 나면 바다가 4분의 1이 되고, 육지가 4분의 3으로 바뀌게 된다. 또 인구의 60∼70퍼센트가 소멸되고, 육지의 면적이 3배로 늘어나는데 어찌 세계의 평화가 오지 않겠는가.

 

후천의 세계는 마치 처녀가 초조 이후에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극단적인 자기감정의 대립이 완화되듯이, 지구에는 극한과 극서가 없어질 것이다.

 

불이 물속에서 나오니

천하에 상극相克의 이치가 없다.

 

이 구절은 《주역》에 나오는 문장으로 미래 세계는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가 온다는 뜻이다.(50∼55쪽)

 

 

그러고 보니 마침 내일 모레가 3.1절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굳이 시시때때로 전해지는 이웃 나라 일본의 '대지진 조짐'이 아니더라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에 도대체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기는 하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저 모양 저 꼴이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마저 빼앗겼던 1913년에 태어나 일제의 식민 지배와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까지 겪는 등 평생 동안 나라의 위태로운 모습만 보고 겪었던 스님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토록 밝게 내다본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한 스님이 입적할 당시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가 눈부시게 발전해 왔음에도, 다가올 미래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가 위치로까지 올라서게 된다니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부푼다. 알고 보니 스님의 부친도 건국훈장을 받은 이름난 독립운동가였다. 때마침 들려온 이웃나라의 지진 소식과 베트남에서 열리는 북미회담 때문에 탄허록에 대한 인용글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다. 그러나,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또 탄허 스님의 혜안을 이토록 길게 인용할 기회가 있을까 싶긴 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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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의 임무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헨릭 입센

 

 

헨릭 입센(1828∼1906)

 

 

입센은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끼진 극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노르웨이의 부유한 선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극작가로 입지를 굳힐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약국 수습원 생활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20대에는 운문극과 시와 역사소설에도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나마 23세 때부터 12년 동안 노르웨이 극장의 전속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일한 경험이 훗날의 성공 기반이 되었다. 34세 때 노르웨이 극장이 파산한 뒤 약간의 보조금을 받아 설화 수집을 위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페르 귄트》의 소재를 얻은 것도 훗날의 창작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36세때 국왕의 외유 연구비를 받은 덕분에 고국을 떠난 그는 그로부터 무려 27년 동안이나 외국에서 생활한다. 덴마크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오래도록 체류했던 그는 '남국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고 창작에 몰두한다. 이 무렵부터 노르웨이 국회가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의하면서 생활도 차츰 안정되었다.

 

39세에 발표한 《페르 귄트》는 오늘날까지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대 노르웨이에서는 악의적으로 국민성을 과대 묘사했다는 심한 악평을 들어야 했다. 이 작품은 발표된지 9년 만에 그리그의 음악을 배경으로 음악극 형식으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뒀다. 페르귄트 모음곡 가운데 <솔베이그의 노래>와 <아침의 기분> 은 지금도 클래식의 명곡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어서 입센의 희곡을 뛰어넘은 느낌이 든다.

 

입센을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극작가로 변모시킨 작품은 로마에 살면서 51세에 완성한 《인형의 집》(1879)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으로 떠받들지만, 당대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신성한 결혼과 가정생활을 파괴하고 부추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다. 이런 반응에 자극받은 입센은 더욱 대담하고 충격적인 후속작인 『유령』(1881)을 발표했고, 거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의 적》(1882)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들 세 작품으로 크게 고무된 입센은 1884년에 걸작 《들오리》까지 완성함으로써 가장 숨가쁜 창작 시즌을 보낸다.

 

60세에 쓴 《바다에서 온 여인》(1888)은 《인형의 집》, 《유령》과 함께 '여성해방 문제를 다룬 3부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과는 분위기와 색채가 많이 다른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62세에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헤다 가블레르》(1890)를 완성한 작가는 이듬해인 1891년 마침내 기나긴 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국에 안착한다. 1899년, 작가의 나이 71세때 지어진 노르웨이 국립극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입센은 1905년 조국이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도 생존했고, 이듬해 국장(國葬)으로 예우를 받으며 삶을 마감했다.

 

《인형의 집》은 1879년에 출판되자 말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혼이나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지위는 결코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당대의 도덕관념으로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을 담은 이 작품은 여러 나라에서 상연 자체가 금지되거나, 결말 부분이 수정되어 공연될 정도였다. 세 아이를 버려두고 집을 나간 노라의 행위를 둘러싼 격론은 두 갈래로 나타났다. 여성해방론자들과 일부 문학 관계자들은 적극 환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가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을 파괴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쪽에 섰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이 작품을 쓸 때만 하더라도 입센이 스스로 여성해방론자를 자처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발표 이후로도 그런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입센의 작품을 극찬했던 제임스 조이스는 심지어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다. "만일 입센이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카톨릭 주교다." 작가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자신이 의식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명예로운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입센을 두고 여성해방론자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도 없다. 《인형의 집》을 쓰던 해인 1879년 10월 19일 작가의 노트에 남긴 기록만 읽어봐도 작가의 입장이 어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비극을 위한 비망록>

 

'두 종류의 도덕규범이 있다. 두 종류의 양심이 있다. 하나는 남성의 것이고, 하나는 전혀 다른 여성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융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여성은 여성의 기준이 아닌, 남성의 기준으로 재판받는다.

 

여성은 현대사회에서 독립된 인격체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완전히 남성적이어서, 남성이 만든 규범으로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행동을 판단한다.

 

작품 속 여인은 문서를 위조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상식에 기대어 그녀를 비판하고, 법률의 잣대와 남성의 눈으로 정황을 판단한다.

 

도덕적 갈등, 권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그녀는 아내이자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 및 자녀양육의 의무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 모든 것을 혼자서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파국은 무자비하고 돌이킬 수 없다. 절망, 저항, 그리고 파멸.'(462쪽)

 

 - 동서문화사, 『인형의 집 / 유령 / 민중의 적 / 들오리』중에서

 

작가가 《인형의 집》에서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는 보다 심오했다.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타자성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입센은 철저하게 인생의 허위를 파헤쳐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고,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형의 집》은 등장 인물과 줄거리가 간단한 편이다. 변호사인 토르발 헬메르와 아내 노라는 '남편의 은행장 취임'을 앞두고 몹시 들떠 있다.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오랜 친구인 랑크 박사와 노라의 학교 친구였던 린데 부인이 찾아온다. 린데 부인은 최근에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변변한 수입조차 없어서 '취직 부탁'을 위해 들른 참이었다. 노라는 남편에게 부탁하면 그 정도는 쉽게 해결되리라고 장담한다. 그런 틈에 일종의 대출 브로커나 마찬가지인 크로그스타가 불쑥 집을 찾아온다. 노라는 오래 전에 남편이 과로로 건강이 몹시 나빠졌을때 남편 몰래 그 남자에게 찾아가 돈을 융통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실업과 요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자로서는 대출 자격조차 없었던 터라 노라는 궁리 끝에 친정 아버지의 명의로 대출을 받았고, 아버지의 서명은 그녀가 대신 써넣었다.

 

크로그스타는 은행장이 바뀐다는 소문을 듣고 일찌감치 헬메르의 집으로 미리 찾아온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은행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부도덕하고 부패한 인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헬메르에게 찾아봐 자신이 해고되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한 그는 노라에게 다시 부탁한다. 자신이 짤리지 않도록 남편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고. 노라 역시 그런 부당한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크로그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노라의 '불법 대출'을 문제삼는다. 친정 아버지가 서명한 대출 서류가 위조됐다는 것이다. 마침내 헬메르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평소에 노라를 끔찍하게 사랑하던 남편의 태도는 돌변한다.

 

헬메르 어리석기는…….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노라 떠나게 해주세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곤란해져선 안 돼요. 나 대신 죄를 뒤집어쓰면 안 돼요.

헬메르 비련의 여주인공 흉내는 그만둬! (복도로 나가는 문을 잠근다) 여기서 얌전히 설명해 봐.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어? 대답해 봐! 알고 있느냐고!

노라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굳은 표정으로) 그래요. 이제야 진실을 알겠군요.

헬메르 (방을 서성이며) 아!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람! 8년 동안 나의 기쁨이고 자랑이던 여자가 위선자에 거짓말쟁이…… 게다가 범죄자였다니! … 당신에게 이렇게 추악한 면이 있었다니……! 에잇!

노라 (말없이 계속 바라본다)

헬메르 (노라 앞에 멈춰 서서) 이런 일이 생길 줄 예상했어야 했어,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고. 이게 다 당신 아버지의 무책임한 성격…… 입 다물어! 당신 아버지의 무책임한 성격을 물려받아서 그래. 믿음도 없고, 도덕심도 없고, 책임 의식도 없지……. 아, 당신 아버지를 잘못 본 벌을 이렇게 받다니. 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한 거야. 그런데 그 보상을 이렇게 하는군.

 

 

이런 식의 험담을 계속 쏟아낸 헬메르는 앞으로는 아이들 양육까지도 아내에게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다가 상황이 급반전된다. 노라의 친구인 린데 부인이 크로그스타를 유혹했고, 자신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노라를 위해서라도 더이상 위조 서명을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온갖 오명과 불명예로부터 순식간에 해방되는 감격에 휩싸인 헬메르는 다시금 아내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되돌린다. 다음과 같은 낯뜨거운 말들을 쏟아내면서.

 

"남자란 아내를 진심으로 용서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만족함을 느끼는 법이지. 그럼으로써 아내는 두 가지 의미에서 남편의 소유가 되는 셈이야. 남편이 아내에게 새 생명을 준 거나 마찬가지지. 말하자면 아내는 남편의 아내인 동시에 자식인 거야. 당신도 오늘부터는 그래, 갈 곳 잃고 쩔쩔 매는 내 귀여운 아가,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 노라, 나한테 다 털어놓기만 해."

 

노라는 이토록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남편을 도저히 수긍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남편은 단지 자신을 인형을 다루듯 대해왔다고. 그 옛날 자신의 아빠가 그녀를 대했던 것처럼. 그러면서 이제 아이들조차 키울 자격을 상실한 자신은 집을 떠나겠노라고 선언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보다 먼저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 더 급선무라면서.

 

헬메르 (펄쩍 뛰듯 일어서며) 지금 뭐라고 했어?

노라 나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완전히 독립해야 해요. 그래서 더 이상 당신과 살 수 없어요.

헬메르 노라, 노라!

……

헬메르 이 무슨 미친 짓을!

노라 내일, 내가 살던 옛날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뭘 하든 그곳에서 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요서요.

헬메르 세상 물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주제에!

노라 그걸 알려고 이러는 거예요, 토르발.

헬메르 집도, 남편도, 애들도 버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댈지 생각해 봤어?

노라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내가 아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뿐이에요.

헬메르 최악이군! 가장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거야?

노라 뭐가 가장 신성한 의무죠?

헬메르 꼭 말해야 알겠어?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잖아!

노라 나에겐 그것만큼 신성한 의무가 또 있어요.

헬메르 그런 건 없어. 도대체 무슨 의무를 말하는 거야?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무요.

헬메르 당신은 무엇보다 아내이자 어머니야.

노라 이젠 그런 것도 믿지 않아요. 난 무엇보다 사람이에요, 당신하고 똑같은. 아니라면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처럼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토르발.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고요. 하지만 난 이제 사람들의 말이나 책에 쓰인 것에는 믿음이 안 가요.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서 이치를 깨달을 거예요.(89∼90쪽)

 

결국 그날밤 노라는 여행가방을 꾸린다. 그리고 손가락에 꼈던 결혼반지마저 남편에게 돌려준 뒤 끝내 집을 나간다. 그렇게 연극은 막을 내린다. 입센의 걸작  《인형의 집》은 이렇게 끝난다.

 

아래쪽에서 탕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토록 충격적이고 놀라운 결말이라니! 입센은 《인형의 집》을 발표한 이후 세상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에 자못 신명이 났던지 더욱 충격적인 작품을 집필한다. 후속작은 1881년에 발표한 《유령》이었다.

 

이 작품은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열정적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어느 미망인이 주인공이다. 마침 남편의 서거 10주년을 맞아 그녀는 고아원 개원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외아들까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 녀석이 어느 틈에 가정부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미망인은 '남편의 유령'을 보는 듯한 착각과 충격에 빠진다.

 

《유령》의 공연 모습

 

남편은 세간의 고상한 평가와는 달리 몹시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다가 일찍 병들어 죽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과오를 감추는 대신 세인들이 고인을 우러러 보도록 남편의 유산을 자선사업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아들이 지금 유혹하려는 가정부는 과거에 자신의 남편이 하녀를 범해서 얻은 자식이었다. 미망인은 가정부와는 가까이 말라고 아들을 간곡히 타이르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아들은 이미 심각한 병을 얻어 발작을 경험했고, 한번 더 발작이 일어나면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들은 터였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마지막 삶의 위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병은 아버지의 성병 때문에 유전된 불치병이었다. 아들은 벌써부터 품속에 독약을 지닌 채 살아온 터였다. 3막에서 아들은 끝내 발작을 일으키고, 미망인은 아들과 약속한 대로 아들에게 약을 주어 죽게 할지 아니면 아들을 살려 가망없는 불치병자로 계속 살게 할지 고심한다. 바로 그 순간 연극은 막은 내린다.

 

'유령'은 작품에서 단지 스치듯 두세 번 짧게 언급될 뿐이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한 대목은 이렇다.

 

만데르스 뭐가 나타나요?

알빙 부인 유령이요! 아까도 레지네와 오스왈드가 저기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꼭 유령을 만난 기분이었지 뭐예요. 이런 생각마저 들었어요. 우리 모두가 유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령이 우릴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죠. 모든 낡은 사상과 온갖 낡은 신앙도 우릴 따라다녀요. 진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속에 달라붙어 있을 뿐인데도 우린 그걸 밖으로 몰아내지 못하죠. 신문이라도 읽을라치면 유령이 활자들 사이에서 꾸물대는 것 같아요. 분명 온 나라에 유령들이 득실대는 거예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잔뜩. 그래서 우리가 빛을 무서워하는 거예요.(133쪽)

 

 

입센은 이 작품을 발표하기에 앞서서 미리 세간의 반응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유령》은 사회 일각에서 꽤 큰 소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쓸 필요도 없었던 셈이니까요.'

 

작가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령》은 출판되기가 무섭게 북유럽 전역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입센은 이 작품을 쓰기 전부터 《유령》이 《인형의 집》과는 관계가 없음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인형의 집》의 주제를 한층 더 심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작가는 사랑이 결여된 결혼과 남들의 이목을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낡은 인습이라는 유령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망치는지를 알빙 부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작가의 진정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 속의 사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거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무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관습을 공격한다고 비난하기 바빴다.

 

입센은 그런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자신을 지지했던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답장했다.

 

'저도 그런 난리가 벌어질 것은 이미 각오했습니다. 우리 스칸디나비아의 비평가들 몇몇은 다른 재능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들이 판단하려는 책의 저자를 완전히 오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재능만큼은 틀림없이 갖추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것이 진정 오해에만 그치는 문제일까요? …… 그들은 희곡의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말한 의견에 대해 제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렇지만 이 희곡에는 작가의 책임이 될 만한 의견이나 발언이 어디를 봐도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죠. …… 제 의도는 독자들이 제 작품을 통해 마치 현실의 경험처럼 생생한 인상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사 안에 작자 개인의 의견을 끼워 넣는 일만큼 그런 인상을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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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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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입센의 희곡 『들오리』는 제목만 들어서는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특이한 작품이다.

 

들오리? 집오리도 아니고?

 

그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들오리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해서 이미지를 검색해도 마땅한 게 도통 나오질 않는다. 그렇다! 들오리는 잠수의 명수다! 그러니 들오리를 구경하기가 그만큼 힘이 드는 게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입센의 『들오리』는 생각할 거리를 아주 많이 던지는 '비극적 희극'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대략이나마 요약하면 이렇다.(5막극인 이 작품은 3막극인 『인형의 집』이나 『유령』보다 훨씬 길다. 심지어 같은 5막극인 『민중의 적』보다도 두 배쯤 길다. 그러니 짧은 요약이 쉽지는 않다.)

 

주인공은 얄마르 엑달이라는 남자다. 그는 아내 지나와 열네 살 된 딸 헤드비와 늙은 아버지 엑달 노인, 넷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사진사다. 가난한 탓에 아내까지도 사진 작업을 열심히 도와 준다. 아버지인 엑달 노인도 옛 친구네 집에서 따내 오는 필사 작업으로 용돈벌이는 하고 지낸다.

 

얄마르는 어느 날 제재소 등을 경영하는 거상(巨商) 베를레 씨네 집으로 만찬 초대를 받는다. 베를레 씨와는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그의 아들 그레거스와는 학교 동창이자 친구다. 그가 간청하는 바람에 가게 된 참이다.

 

얄마르와 베를레 씨와는 오래 전부터 상당한 인연이 있던 사이였다. 우선, 자신의 아버지인 엑달 노인이 베를레 씨와 젊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고, 사업상으로 동업자 관계였었다. 그런데 베를레 씨의 간교한 속임수에 걸려드는 바람에 엑달 노인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전과자로 전락했고, 그 후론 영영 회복불능이 되어 늙어서도 자식 한테 얹혀 사는 인생의 낙오자 신세다. 그런데도 엑달 노인과 얄마르는 베를레 씨가 꾸몄던 음모를 전혀 모른다.

 

베를레 씨의 아들인 그레거스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지만 내심 불만이 많다. 어려서부터 온갖 권모술수에 능란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온갖 나쁜 짓을 서슴치 않는 아버지를 오래도록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엑달 노인을 어떻게 나락으로 빠트렸는지 그 내막을 빤히 꿰고 있다. 더군다나 남편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다시피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로부터도 '아버지의 나쁜 행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였다. 그는 스스로 '진실의 사도'임을 내세우면서 아버지에게 대항한다.

 

연극의 시작은 이렇다.

 

거상 베를레의 집. …… 식당에서 떠들썩한 말소리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나이프로 유리잔을 두드린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건배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박수가 일고 다시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들린다.

 

페테르센(하인) (난로 위 등불을 켜고, 갓을 씌운다) 옌센, 지금 나리가 셀비 부인을 위해 저렇게 길게 건배하는 거지?

 

옌센(임시고용 급사) 그 소문, 진짜야? 두 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연극의 첫 대사만 봐도 거상 베를레는 이미 불미스런 소문에 휩싸인 부도덕한 인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일군 덕분에 떵떵거리고 살지만, 아내에게는 골치만 썩이는 못난 난봉꾼일 뿐이었고, 아들에게도 불한당처럼 비춰질 뿐 존경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차츰 시력도 나빠져 곧 실명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부랴부랴 집안의 가정부로 일하던 셀비 부인과 '재혼'을 도모하는 중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갈등 구조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외관상으로 가장 도드라지는 갈등은 거상 베를레와 아들 그레거스 사이에 존재한다. 아들은 늙은 아버지의 재혼 자체도 반가울 리 없지만 아버지의 과거 행적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에 도무지 아버지를 존중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저녁 만찬을 끝낸 뒤 그레거스와 얄마르는 오랜만에 만난 만큼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눈다. 그들 사이엔 '지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커다란 인식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얄마르 가족은 '알고 보면' 그레거스의 아버지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을 겪은 게 아니다. 그런데도 얄마르네 식구들은 그게 그저 '그 끔찍한 사건' 때문에 우연히 격게 된 불행인 줄로만 알고 지내왔다. 그게 다 베를레의 교묘한 흉계 때문인 줄도 모른 채.

 

그레거스 그건 그렇고 얄마르, 어때, 지금은 다 잘 되지?

 

얄마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응, 그럭저럭, 불평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처음에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지, 그 밖에도 모든 것이 변했으니까, 아버지에게 닥친 그 끔찍한 시련…… 수치와 오명, 그레거스…….

 

그레거스 (동정하며) 응, 알지, 알아.

 

얄마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은 꿈도 못 꿨어. 손안에는 한 푼은커녕, 있는 거라곤 빚더미뿐이었지. 그것도 대부분은 자네 아버지에게서 빌린 돈이었고.

 

 

더우기 얄마르는 자신이 사진술을 배워 사진사가 된 것도 베를레의 보살핌 덕분인 줄로만 안다. 산 속의 공장에서만 일하다가 16∼17년 만에 마을로 내려와 옛 친구 얄마르를 만난 그레거스는 이런 사정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겐 일부러 이런 사실들을 비밀로 숨겨왔기 때문이다. 얄마르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도 그레거스의 아버지 덕분이란다. 세상에! 자기 아버지가 그런 착한 일까지?

 

그런데 결혼한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과정에서 그녀가 지나임을 알게 된다. 그레거스의 집에서 한때 잠깐이나마 가정부로 일하던 바로 그 지나 한센이 얄마르의 아내였던 것이다! 세상에! 얄마르가 지나를 사귀게 된 것도 아버지의 주선 덕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부가 되었고, 결혼 이후 사진 기술을 배운 것도 베를레 씨 덕분이었단다.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차린 그레거스는 나중에 얄마르네 집으로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한 후 그와 작별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자면서. 그를 돌려보내자 말자 그는 대뜸 아버지에게 따지듯 대든다.

 

그레거스 엑달 일가는 어떡하고요?

 

베를레 그래,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해줘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엑달은 교도소에서 나올 때 이미 폐인이 되어 있었어. 구제할 길이 없다고, 세상에는 총알 한두 방에 맥없이 밑바닥까지 잠겨서 두 번 다시 떠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야. 거짓말이 아니다, 그레거스, 나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의혹이나 가십거리를 뿌리고 다니지도 않았고……

 

그레거스 의혹이요? 아, 그렇군요.

 

베를레 엑달에게는 사무소에서 필사하는 일만 시키고 실제보다 훨씬, 훨씬 높은 임금을 주고 있어…….

 

그레거스 (고개를 돌리며) 흥! 어련하시겠어요.

 

 

이렇게 해서 베를레의 '과거의 행적'은 서서히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 그레거스는 그날 저녁에 곧장 친구 얄마르네 집으로 찾아간다.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불편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런데 그 와중에 돌연 들오리가 등장한다. 오밤중에 웬 들오리가? 그레거스는 친구네 집에서 엑달 노인과 오랫만에 반갑게 재회한다. 그 두 사람은 이내 까마득한 옛날 엑달 노인이 아버지와 함께 산 속 공장에서 일할 때 자주 함께 사냥을 즐겼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던 와중에 엑달 노인은 자꾸만 그레거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엑달 노인은 '야생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옛 시절을 잊지 못해 집안 한 켠에 있는 창고 속에 온갖 새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엔 비둘기와 토끼도 있었고, 들오리도 있었다.

 

그레거스 상자 안에 새가 한 마리 있는 것 같은데요.

 

엑달 흠…… "새"라고……?

 

그레거스 오리 아닙니까?

 

엑달 (발끈하며) 오리인 줄 아는군.

 

얄마르 어떤 오리인 것 같나?

 

헤드비 그냥 오리가 아니에요……,

 

엑달 쉿!

 

그레거스 터키오리는 아닌 것 같고.

 

엑달 이봐, 베를레 군, 이건 그냥 오리가 아니라 들오리야.

 

그레거스 네, 정말입니까? 들오리요?

 

엑달 그렇다네, 자넨 새라고 하겠지만, 들오리지, 우리 집 들오리라고,

 

헤드비 내 들오리예요. 저건 내 거니까요.

 

 

저걸 어떻게 잡았냐는 물음에 노인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려준다. 베를레 씨가 사냥을 하던 중에 저 오리를 노렸는데, 시력이 나빠진 탓에 날개만 맞혔고, 들오리는 곧장 잠수했단다. "들오리란 그게 버릇이니까. 곧장 바닥으로 잠겼지.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끝까지. 그러고는 온갖 물풀에 닥치는 대로 매달려 두 번 다시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지."

 

그래서 엄청 영리한 개를 시켜 오리를 물 속에서 끄집어 냈고, 베를레 씨가 하인한테 처리를 맡겼고, 그 소식을 들은 엑달 노인이 마침내 그 들오리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 것이고, 이제는 손녀딸 헤드비에게 더할나위없이 소중한 친구가 된 거라고 했다. 창고에서 자란 그 들오리는 어느새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진짜 야생 생활이 어떤 건지 잊어버릴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고. 이쯤에서 2막이 끝난다.

 

3막에서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차츰 고조된다. 그레거스는 화가 치민 나머지 아버지의 집에서 가출한 끝에 당분간 얄마르네 셋방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 소문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뿌리 깊은 불화의 원인들'을 샅샅이 들춰내며 격렬한 말싸움을 주고받는다.

 

베를레 어젯밤 네가 이상한 말들을 했었다……. 그래 놓고 이렇게 엑달의 집으로 이사를 와 있으니, 네가 나한테 반항할 마음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구나.

 

그레거스 제가 생각하는 건 얄마르 엑달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일입니다. 자기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하니까요. 그것뿐입니다.

 

베를레 그게 어제 네가 말한 네 사명이냐?

 

그레거스 네, 아버지가 제게 주신 건 그것뿐이니까요.

 

베를레 네 머리가 돌아버린 것도 내 탓이란 거냐, 그레거스?

 

그레거스 아버지가 제 인생을 망친 겁니다. 어머니에 관한 건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도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는 건 아버지 때문입니다.

 

베를레 내 참! 이상한 양심도 다 있구나!

 

그레거스 전 아버지에게 반항했어야 했습니다. 엑달 중위 앞에 함정을 놓았을 그때 말입니다. 그분에게 경고할 걸 그랬어요. 결과가 어떨지는 제게도 훤히 들여다보였으니까요.

 

 

제4막은 지나와 딸이 아빠의 귀가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식사시간도 지나서 겨우 모습을 나타낸 얄마르는 완전히 돌변한 태도로 가족들을 대하기 시작한다. 그레거스를 통해 얄마르가 기어코 '아내의 추악한 과거'를 알아내고 말았기 때문이다.(그녀가 베를레 씨네 집에서 가정부로 일할 때 그레거스의 아버지가 그녀를 범했고, 열네 살 난 딸 헤드비는 알고 보니 베를레의 자식이었다. 헤드비는 베를레를 닮아 시력이 몹시 나쁘다. 더군다나 베를레는 임신한 가정부가 집을 나가자 엑달 노인의 아들과 결혼하도록 일을 꾸미기까지 했다.) 얄마르는 아내와 딸에게 온갖 이상한 태도를 내보인 끝에, 마침내 자신의 딸(?)과 창고에서 생일파티를 열기로 약속한 일에서조차 짜증을 부린다.

 

헤드비 하지만 아빠, 약속했잖아요. 거기서 내일 축하하기로…….

 

얄마르 흠, 그렇군……. 그럼 모레부터. 재수 없는 들오리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싶다고.

 

헤드비 (비명을 지르며) 들오리를 왜요!

 

지나 그런 심한 말을!

 

헤드비 (아버지를 흔들며) 아빠, 저건 제 들오리잫아요!

 

얄마르 그래서 안 하잖아. 할 마음도 없어……. 네가 불쌍하니까, 헤드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꼭 그러고 싶다. 그런 자식한테 받은 건 이 집에서 한 마리도 기를 수 없으니까.

 

 

지나와 얄마르는 '아내의 과거'를 두고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두고 격렬한 말싸움을 벌인다. 헤드비는 지산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갑자기 차갑게 돌변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더군다나 아빠와 엄마의 말싸움으로부터 자신이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마저 눈치채고 만다. 이 와중에 그레거스는 친구의 딸을 도와준답시고 헤드비에게 이상한 권유를 한다. 들오리만 보면 아빠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형편이니, 아빠를 위해,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스스로 희생하면 어떻겠니?' 하고.

 

아빠를 위해, 아빠와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다시 평화롭고 따스하던 옛 가정의 회복을 위해, 아빠가 보관해 놓은 권총을 들고 몰래 창고로 들어간 헤드비는 끝내 들오리 대신 자기 자신을 죽이고 만다. 연극은 이처럼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독자나 관객들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여운만 남긴 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비극이?

 

《들오리》에는 아주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입센의 입지는 확고부동했다. 《인형의 집》과 《유령》과 《민중의 적》을 마치 3부작처럼 연이어 발표하면서 문제적 작가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들오리』는 출간되자 말자 초판 8천 부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재판을 찍었다. 그러나 그 재판이 다 팔리는 데까지는 무려 30년이 걸렸다. 독자들이 이런 작품을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심지어 전문 비평가들도 처음엔 이 작품의 진가를 잘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걸작으로 인정받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독일의 시인이었던 릴케는 1891년에 파리에서 이 연극을 감상한 뒤 시(詩)처럼 느껴진다고 술회했다.

 

이 작품 직전에 발표했던 《민중의 적》을 통해 '허위에 기초한 사회악'을 고발했던 작가는 후속작인 《들오리》를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평범한 인간이 과연 '과거의 진실'을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지를 그려보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 '추악한 과거'를 숨긴 핵심 인물은 베를레였다. 지나 역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며 살아왔지만, 진실을 덮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베를레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베를레의 아들인 그레거스는 두 사람의 추악한 과거를 드러내기 위해 몹시 안달하는 인물이었다. 그레거스의 눈에 비친 알마르의 결혼은 마치 베를레의 총에 맞아 창고에 갇힌 채 더이상 날지도 못하는 불쌍한 들오리 신세나 다름없었다.

 

그는 조급한 정의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날지도 못하는 들오리를 구제하기 위해 억지를 쓰는 인물처럼 보인다. 얄마르는 사진사 일은 부인에게 미뤄놓을 정도로, 늙은 아버지인 엑달 노인과 함께 '새로운 사진술 발명'에 몰두한다. 그는 아버지의 잃어버린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할 영광스런 그날만 기다린다. 또한 시력이 몹시 나빠 장래가 걱정되는 딸과 가난한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꿈을 소중히 간직한 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느닷없이 자신들의 삶에 불쑥 끼어든 옛 친구 때문에 결국 맥없이 주저앉는다. 그는 폭로된 진실 앞에 당황하면서 '들오리를 죽이고 싶다'는 뜬금없는 분풀이 욕망을 드러낸다. 순식간에 아빠의 사랑을 잃어버린 헤드비의 해결책 또한 아빠 대신 들오리를 쏘아 죽이는 일로 왜곡되어 표출된다. 도대체 들오리한테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들오리를 쏘려다가 도리어 자신의 가슴으로 총구를 돌린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갑작스레 아빠의 사랑을 잃은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같은 존재였던 들오리마저 죽이고 나서 도대체 무슨 힘으로 삶을 견딜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을 읽으면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이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조현아 동영상에 등장하는 '두 귀를 틀어막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상처입은 들오리가 겹쳐 떠오르는 건 이상할 게 조금도 없다. 과거의 상처 혹은 출생의 비밀 때문에 평화롭기만 하던 가정에 거센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가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가 하루 아침에 얼마나 쉽게 풍비박산이 나고 마는지는 최신의 드라마가 즐겨 다루는 핵심 주제들이다.( ☞ 궁금해하지 말라)

 

이 작품이 출간된 해인 1884년은 청나라가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고, 네덜란드인이 보르네오 섬을 정복하던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극작가 입센이 벌써 그 무렵에 이토록 현대적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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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참 이상하다. 나는 그저 '들오리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해서 인터넷을 조금 뒤졌을 뿐인데, 그런 궁금증이 결국 이런 엉뚱한 글로 이어졌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원래부터 쓰기로 마음 먹었던 글은 '들오리의 습성'과 관련된 다음 문장을 인용하고 내 생각을 아주 조금 덧붙이는 정도였다.(들오리의 모습을 찾게 되면 왠지 조금은 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지나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보니 엉뚱하게도 내가 진짜로 인용하고 싶었던 글은 아예 수면 아래로 깊숙히 잠기고 말았다. 그 대목을 이런 식으로라도 되살리고 싶다...

 

 

그레거스 그러면서 저 창고에는 저런 것들을 기르나? 일에 방해가 되거나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아?

 

얄마르 당치 않은 소리.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네. 나라고 일 년 내내 한 가지 문제만 생각하며 사는 줄 아나? 기분전환거리가 있어야지. 영감이나 계시 같은 건 다 때가 되야 오는 거야. 애간장 태운다고 오는 게 아니라니까.

 

그레거스 얄마르, 자네한테는 들오리 같은 구석이 있군.

 

얄마르 들오리? 무슨 의미지?

 

그레거스 자네는 물속에 들어가서, 바닥에 난 물풀에 매달려 있는 거야.

 

얄마르 그걸 말하는 거군. 그 일격. 하마터면 아버지도 쏴 죽여서 내 신세까지 망치려고 했던?

 

그레거스 그런 뜻이 아니야. 자네 신세가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고. 하지만 자네가 독이 든 진창 속에 빠져 있는 건 사실이네, 얄마르. 자넨 잠행성 질병에 걸려 있어. 그래서 자꾸만 물속으로 파고드는 거네. 어둠 속에서 죽으려고.

 

얄마르 내가? 어둠 속에서 죽는다고? 이봐, 그레거스,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게.

 

그레거스 그렇게 당황할 것 없어. 조만간 내가 재기시켜 줄 테니까. 나도 내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 그 정도는 똑똑히 안다고. 어제 그걸 깨달았지.

 

얄마르 그건 잘된 일이지만, 나는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군. 분명히 말해 두지만, 우울한 천성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불만이 없으니까.

 

그레거스 불만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독에 감염됐다는 증거야.

 

얄마르 그만하세, 그레거스. 질병이니 독이니 하는 이야기는 그만두자고. 그런 이야기는 익숙하지 않아. 식구들은 그런 듣기 싫은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니까.

 

 - 《들오리》, <제3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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