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를 둘러싸고 백가쟁명 식의 온갖 계책들과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이 뜬금없이 소환되는가 하면, 동학혁명을 배경 삼은 '죽창가'가 새삼 화제가 되고, 그걸 SNS에 올린 행위가 과연 '의도에 맞는 올바른 인용'이냐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집권당 특별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에선 조선시대를 떠올리는 '의병 운동'이 업급되고, 국가 안보실 고위관계자는 국채보상운동까지 들먹일 정도로 온갖 고색창연한 어휘들이 시도때도 없이 불려나오고 있다.

 

이런 논쟁들을 보노라면 '이 참에 뜻밖에도 역사 공부를 많이 하는구나' 싶은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본질과 해결 방안을 두고서는 각자의 입장이 너무나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바로 이 점이 문제 해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함을 반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손자병법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조차 제대로 선행되지 않은 상태로, 상대방의 정확한 의도조차 몰라 서로 허둥대는 모습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갑작스레 기습적인 '무역 보복' 혹은 '경제 침략'을 당한 우리나라로서는 부당하고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왜 느닷없이 정치 외교적인 문제에 불쑥 끼어드느냐고 반발하는 중이고, 애매모호하게 둘러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근거'가 도리어 근거 없음을 날카롭게 추궁하고 있다. 불시에 기습을 당한 처지인 우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고, 일본은 앵무새처럼 비슷한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번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된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는 진작에 소멸됐다는 입장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근거다. 한국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민간인의 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과는 별개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행정부와는 별개인 '사법부의 판단'이며, 엄연히 삼권이 분립된 한국의 행정부는 이번 배상 판결에 그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한일협정'에서 규정한 문제 해결 방식인 단계별 조정 절차 요청에도 일체 응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대응이었다. 그런데도 일본을 향해서는 여전히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자고 촉구한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이처럼 서로 정반대의 입장만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사태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일본은 이미 1965년에 완전히 정리가 끝난 배상 문제를 지금에 와서 새삼 문제삼는 것부터 문제로 삼는다. 한국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정권에서 졸속으로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가 '파기'로 되돌려지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일본의 '한국 불신'은 날로 커졌고 아베 정권은 그걸 더욱 부추겼다. 갈수록 악화된 한일 관계는 무슨 레이다를 쏘았니 안 쏘았니, 무슨 관함식에 욱일기를 다느니 마느니 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결국 '반도체 핵심 소재 3가지'로 만든 무역 폭탄으로 뻥 터지고 말았다.

 

어쨌든 일본은 이참에 한국을 단단히 벼르는 듯한 분위기다. 상대방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고도 태연자약하게 앞으로 더 찌를 데가 수백 곳이 더 남아 있다고 위협하는 듯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생수 한 병 없이 마주한 과장급 설명회가 양국 사이의 냉랭함을 극적으로 보여준 데다가 한국와 일본 사이의 당국자들이 주고 받은 날카로운 말들에서 '타협의 여지'는 아직까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저렇게까지 쎄게 나오는 걸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의 분위기'가 훨씬 나쁜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과 일본은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 공생 관계'로 함께 성장해 온 처지이고, 경제 규모로 보나 기술력으로 보나 우리가 일본에 의존해 온 측면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비록 일본이 훨씬 더 남는 장사를 했더라도 그렇다.) 더군다나 우리는 일본보다 수출 의존도가 월등히 높은 데다가 당장은 일본을 대체할 만한 '가술, 부품, 소재 공급자'를 찾기도 어렵다는 게 큰 문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 전에 깜짝 놀랄 만한 언급을 내놓았다. 일본의 이번 무역 보복 조치를 두고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나 일반적인 상식과는 정반대되는 예상을 저토록 강하게 언급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도리어 궁금할 정도였다. 수출 규제에 따른 피해가 아직까지는 구체화되지 않았으니 섣불리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은 떨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톨령의 강도 높은 발언 가운데 유난히 이목을 끄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표현도 있었다. 흔히 '낭중지추'라고 일컬어지는 '주머니 속의 송곳'을 한일 관계에 빗댄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찌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양국은 과거사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그로 인해 경제, 문화, 외교, 안보 분야의 협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왔습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면서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원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뜻밖의 인재 발굴'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그 고사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훓어보더라도 '남을 찌르기 위한 뾰족한 무기'로서의 송곳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연설을 미리 준비한 비서관이 '낭중지추'의 뜻을 몰라 '주머니 속의 송곳'을 한일관계에 비유했을 리는 없다. 이틀 전에 언급된 '주머니 속의 송곳'은 순수한 의미 그대로 쓰인 것 같기 떄문이다. 가령, 한일관계에서는 오랫동안 구원(舊怨)이 많은 관계로 서로 편안하게 마주할 정도로 한가롭지 못하며, 주머니에 송곳 하나라도 감춘 채 만나야 안심될 만큼 불편한 관계이며, 그 송곳은 때때로 우리를(!)  찌른다고 표현한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이왕 '역사 얘기'가 나온 김에 '낭중지추'에 관한 일화를 조금 더 살펴 보자. 이 고사성어의 출전은 물론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평원군 · 우경 열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가 더 눈에 띈다. 이 고사가 생겨난 이유 또한 작금의 한일관계처럼 '국가 사이의 갈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이 에피소드가 있었던 시대 배경은 소위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였다. 특히 전국 시대에는 7웅이라고 일컬어지던 일곱 나라가 숱하게 합종연횡을 맺었던 때였다. 초강대국 진나라에 맞서 다른 여섯 나라를 연합시킨 합종책을 창안한 인물은 귀곡 선생의 제자 소진이었다.(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소진 열전>에 소진과 그의 두 동생 소대와소려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린 건 진나라의 장의였다. 그는 각 나라와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어 합종을 깨뜨리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인물이다.(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장의 열전>이 그의 연횡책을 소개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천하의 유능한 인물을 발굴하기 위해 식객을 무려 3000명씩이나 거느린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 사공자(戰國 四公子)'였다. 제나라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나라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위나라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 초나라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이 그들이다. 사마천은 사공자 각자의 열전을 만들어 전국시대에 각 나라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재를 초빙하던 모습을 자세히 담아냈다. '낭중지추'는 사공자 가운데 조나라의 평원군에 얽힌 이야기이다.

 

낭중지추에 얽힌 이야기의 요지는 간단하다. 조나라의 수도가 진나라의 침입으로 포위를 당하자 조정에서는 평원군을 초나라로 파견하여 '합종'을 맺기를 도모한다. 그때 평원군은 '특사단 20'명을 발굴하는데, 19명까지는 일사천리로 선발했는데 나머지 한 명을 뽑지 못했다. 그때 자신을 뽑아 달라고 덜컥 나선 사람이 모수였다.('모수자천'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평원군은 3년 동안이나 식객으로 있었으면서도 '모수'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재능이 없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때 모수가 기가 막힌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지만,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었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모수를 발탁한 건 대성공이었다. 그는 초나라 왕을 멋지게 설득하여 조나라와 합종을 맺는데 성공한다. 그가 초나라 왕을 설득한 핵심 요지는 이랬다. "이것이 어찌 병사가 많았기 때문이겠습니까?" 모수는 초나라 왕에게 '세 치 혀가 군사 백만 명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몸소 웅변했던 것이다. 한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무역 전쟁에서도 '모수' 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무역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당정청 회의에서 너나 할것없이 '국민들만 믿고 간다'는 식으로 애꿎은 국민들을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등 괜한 '숫자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능수능란한 화술과 기지로 상대를 설득해서 '그들의 기술과 소재와 부품'을 우리가 필요한 동안 만큼은 자유롭게 수입해서 쓸 수 있는 묘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니 말이다.

 

초나라 왕으로부터 만족스러운 협상을 이끌어낸 모수가 평원군의 빈객으로 오랫동안 밥을 축냈던 특사단 19명에게 던진 꾸짖음은 다음과 같았다. 혹여나 이참에 사마천의 『사기』를 다시 꺼내 읽다가 이 구절을 읽고 '송곳에 찔린 것처럼' 속이 뜨끔한 빈객도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 * *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趙나라는 평원군平原君을 보내 초楚나라에 도움을 청하고 합종合從하도록 하였다. 평원군은 빈객과 문하 중에서 용기와 힘이 있고 문학적 소양과 무예를 두루 갖춘 사람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가기로 하였다. 평원군이 말했다.

 

"평화롭게 담판을 지어 맹약을 맺을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담판을 지어 맹약을 맺을 수 없다면 초나라 궁전 밑에서 [희생의] 피를 마시며 합종을 맺고 돌아오겠습니다. 같이 갈 선비들은 다른 데서 구하지 않고 제 빈객과 문하에서 뽑아도 충분합니다."

 

평원군은 열아홉 명을 뽑고 나머지 한 명은 뽑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을 채우지 못했다.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이가 있었는데,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며 평원군에게 말했다.

 

"당신은 초나라와 합종 맹약을 맺기 위하여 빈객 및 문하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사람을 밖에서 찾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자라니 저를 그 일행에 끼워 주십시오."

 

평원군이 말했다.

 

"선생은 내 빈객으로 있은 지 몇 해나 되었소?"

 

모수가 말했다.

 

"삼 년 됐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삼 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결국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열아홉 명은 모수를 업신여겨 서로 눈짓하며 비웃었으나 입 밖으로 그러한 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모수는 초나라에 가는 동안 열아홉 명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모두 탄복했다.

 

평원군이 초나라와 합종하기 위하여 그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이야기하는데, 해가 뜰 무렵부터 시작하여 중천에 이르도록 결정을 짓지 못했다. 열아홉 명은 모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이 당堂 위로 올라가시오."

 

모수는 칼자루를 잡은 채 계단을 뛰어올라 평원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합종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은 두 마디면 결정되는데, 해 뜰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한낮이 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초나라 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저 손님은 누구입니까?"

 

평원군이 대답했다.

 

"저 사람은 제 사인입니다."

 

초나라 왕은 큰 소리로 모수를 꾸짖으며 말했다.

 

"썩 내려가시오. 나는 그대 주인과 이야기하는 중인데 이게 무슨 짓이오?"

 

모수는 칼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 병사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왕께서는 열 걸음 안에서 초나라 병사가 많은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왕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또 은나라 탕왕은 땅 70리를 가지고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주나라 문왕은 땅 백 리를 가지고 제후를 신하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병사가 많았기 때문이겠습니까? 정녕 세력에 의지하여 그 위엄을 떨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초나라 땅은 사방 5000리이고 창을 가진 병사가 백만이나 됩니다. 이것은 천하의 우두머리로서 왕이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천하에 초나라의 강대함에 맞설 만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진나라 장군 백기처럼 형편없는 자가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와 한 번 싸워 鄢과 영郢을 빼앗고, 두 번 싸워서 이릉夷陵(초나라 선왕의 능묘)을 불사르고, 세 번 싸워서 왕의 조상을 욕보였습니다.이것은 초나라에게 백 대가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원통한 일이며, 조나라도 초나라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이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계십니다.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맞소. 삼가 나라를 받들어 합종하겠소."

 

모수가 물었다.

 

"합종이 결정된 것입니까?"

 

초왕이 대답했다.

 

"결정됐소."

 

모수는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초나라 왕에게 올리면서 말했다.

 

"왕께서 먼저 피를 마셔 합종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제 주인이고, 그 다음 차례는 접니다."

 

이렇게 하여 어전 위에서 합종 약속을 맺었다. 그러자 모수는 왼손으로는 구리 쟁반의 피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열아홉 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서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평원군은 합종을 결정짓고 조나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천 명이 되겠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九鼎이나 대려大呂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그러고는 마침내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405∼409쪽)

 

 - 사마천, 『사기열전』, <평원군 · 우경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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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8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일 문제에서 역사 문제는 여러 면에서 ‘낭중지추‘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 문제가 양국 관계에 중요한 문제임에도 계속 피하기만 하다가 이번에 본격화되니, 그 끝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이 얄밉기도 하고, 이러한 경제 제재가 나중에는 한국경제에 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장기에는 모두가 죽는다‘는 케인즈의 말처럼 단기에 좋은 해결책이 있으면 바라봅니다... 물론, 장기 전략도 동시에 고려해야겠지만요...

oren 2019-07-18 12:03   좋아요 1 | URL
한일관계의 역사적 배경 지식과 미래에 대한 혜안을 지닌 사람들이 이 어려운 문제를 슬기롭게 풀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어설프게 감정적으로 접근하거나, 냉정하고도 신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도조차도 적을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내모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멀쩡한 국민들을 극구 싸움판으로 끌여들여 전의를 다지고 확전을 도모하려는 듯한 정치인들의 언행들은 그 의도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분쟁만 하더라도 여러모로 한국 경제에 벅찬 과제인데, 여기에다 난데없이 일본으로부터 무역 보복을 당하니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하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렸지만 유구한 세월 동안 남의 나라를 먼저 침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조공을 바치고 인질을 붙잡힐 정도로 굽신거렸지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적은 거의 없었다. 일본으로부터는 무려 36차례나 침략을 받았지만 풍전등화의 위기에서도 끝끝내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 20세기 초 한일합방의 굴욕적인 조약을 맺기 전까지는.

 

기약없는 독립 운동이 급작스레 성공으로 귀결된 건 미국 덕분이었다. 미 연합군의 원폭을 두 방이나 얻어맞고 나서 일본 천황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외쳤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일제의 식민 지배는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과거사는 본질적으로 깨끗이 치유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친일파 청산이나 강제 징용공 및 위안부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후세에 부담을 남겼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위안부 문제는 불가역적 합의를 이루었다가도 곧장 다시 파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은 우리나라의 국가 기간 산업이나 마찬가지인 반도체 분야의 핵심 소재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치졸한 무역 보복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부당하기 짝이 없는 수출 규제 조치를 보노라니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휩쓸고 지나간다. 정작 일제 식민지배의 피해자인 우리가 응당 받아냈어야 마땅한 '합당한 사죄와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도리어 가해자인 일본한테 억울하게 보복을 당하는 데 따른 분노부터 앞선다. 여기에 더해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도 억누르기 어렵다. 도대체 그들은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했기에 1965년에 맺은 한일협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아직까지도 여파를 미치는 것이며, 일본의 정치인들은 왜 한사코 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작년 10월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 이후의 후속 협의는 왜 8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가 느닷없는 '무역 보복'까지 이어진 것인가.

 

일본이 이번에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무역 보복 조치를 감행한 건 해방 이후 처음이라서 더욱 놀랍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오랫동안 잠재해 있던 역사적 갈등들(위안부와 징용공 등 과거사 문제, 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이 정치·외교적으로는 숱한 파열음을 냈지만 경제 보복으로까지 비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데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나 아베 총리는 가문의 내력으로나 언행으로나 극우적 성향이 특히 강한 인물인 데다가, 이번 조치를 위해 오랫동안 매우 치밀하게 준비한 듯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더욱 당혹스럽다.

 

더욱 문제인 건 당장으로서는 우리에게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삼성그룹의 총수가 일본으로 허겁지겁 달려간 것만 보더라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반증한다. 우리나라는 아이러니칼하게도 1965년에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을 통해 얻어낸 막대한 보상금을 밑천 삼아 본격적으로 경제 개발을 시작했다. 7,80년대의 압축 고도 성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전세계인들에게 찬탄의 대상이 되었고, 일순 IMF 경제 위기를 겪었음에도 이내 극복하고 일어나 여러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정도로 경제는 급성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여러 산업들조차 핵심적인 기술이나 부품·소재에 대해서는 선진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게 오랫동안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선진 기술을 갖춘 열강들이 풍부한 자본과 인재는 물론이고 온갖 역량을 총동원해 발전시킨 첨단 기술들을 한국의 기업들이 차근차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세계 3위의 막강한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많은 면에서 너무 앞선 나라다. 특히나 기초 소재, 정밀화학, 정밀기계, 전자공학 등등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하기 힘든 막강한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다. 그들은 이미 78년 전인 1941년에 세계 최강국이었던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초강대국 가운데 하나다. 전쟁을 치루면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맹렬하게 자신들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원폭 투하로 온통 잿더미에 휩싸인 패전국으로 굴러떨어졌다가도 불과 몇십 년 만에 또다시 우뚝 일어나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할 정도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뤄낸 저력이 그런 기술력에 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종교, 문화 등 일본이라는 나라에 존재하는 정신성의 모든 측면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그 동원의 정도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패전은 이 체제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일본인의 마음 속에 들어 있던 모든 것이 무가치해졌고 모든 것이 밖으로 떨려 나가는 체험이었다."

 

그런 공황 상태에서 서구와 관련된 모든 것, 특히 전승국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은 좋고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중국이 소련을 모방하려고 애썼듯이 일본은 기를 쓰고 미국을 모방하였다.(137쪽)

 

 -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중에서

 

또한 일본은 전국토가 섬으로 이뤄진 독특한 국가이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은 '고립 문명'으로서의 일본 문명에 대해 깊이있게 분석했다. 일본이야말로 전세계에서 국가=문명인 유일한 나라다. 그들은 7세기에 중국 문화를 수입했지만 경제적, 군사적 압력을 받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변형시켜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시켰다. 심지어 그들은 징기스칸이 전세계를 휩쓸 때도 카미카제(神風) 덕분에 무사할 정도로 외세 무풍 지대였다.(이 당시의 '일본의 행운'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에도 자세히 언급될 정도였다.) 아무튼 그들은 우리나라와 무역 분쟁을 겪기 이전에도 많은 나라와 무역 갈등을 빚었는데, 특히 미국과의 무역 전쟁은 일본으로 하여금 '국제 정치학'과 '국제 무역 협상'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분쟁, 특히 일본의 무역 흑자와 미국의 상품과 투자에 대한 일본의 규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양국 외교관들은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일 무역 협상은 냉전 시대의 미소 군축 협상과 여러모로 흡사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1995년 현재 미일 무역 협상에서 나온 가시적 결과는 오히려 미소 군축 협상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갈등이 두 나라 경제의 근본 차이점, 특히 주요 선진 공업국 중에서도 일본 경제가 갖는 독특한 성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의 공산품 수입액은 GNP의 3.1퍼센트로, 다른 주요 선진 공업국들의 평균치인 7.4퍼센트를 크게 밑돈다. 일본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GDP의 겨우 0.7퍼센트로 미국의 28.6퍼센트, 유럽의 38.5퍼센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302쪽)

 

 -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중에서

 

새뮤얼 헌팅턴의 분석만 보더라도 일본이 얼마나 '고립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인지를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륙에서 툭 튀어나온 반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해양과 대륙을 잇는 반도 특유의 임기응변에 능한 기질(나쁘게 표현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기질')이 그들에겐 없다. 일본인들은 고립된 섬에서 오래도록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특히 '신뢰'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척하고 조직 내에서 아예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만큼 신뢰의 가치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아무튼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나라다. 비록 아주 가까운 동양의 이웃 나라이고, 일본인들이 겉으로는 한국인들을 몹시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여러 면에서 아직까지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나라다. 흔히 언급되는 기초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제쳐두더라도, 국토 면적, 인구, 기술력, 국민 총생산 등만 비교해 보더라도 일본은 우리가 우습게 여기기에는 너무 강한 상대임이 틀림없다.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뜻밖의 강펀치를 얻어 맞은 최근 며칠 동안 한국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온갖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분노의 감정이 들끓지만 냉철하게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이참에 강력하고도 단호하게 맞대응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너무 다양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서조차 찬반이 엇갈리는 형국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방치한 게 현 정권의 외교적 무능 때문이라는 지적도 비등했고, 이런 반응을 두고 가해자인 아베 정권을 비난해야지 왜 현 정부를 탓하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향해 토착 왜구로 싸잡아 비난하는 반응까지도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런 다양한 반응들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회음후 한신'을 잠깐 떠올렸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치졸하기 짝이 없는 아베 정권으로부터 부당하기 짝이 없는 '무역 보복 조치'를 당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한신처럼' 우선은 일본에 수그리는 자세를 취해서라도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고 수습하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 대신 우리가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와신상담, 절치부심 노력해서 나중에 언젠가는 기필코 지금의 모욕을 깨끗이 갚을 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속이 뒤틀리고 자존심이 몹시 상하더라도 지금은 난국부터 수습하고 실리부터 취하자는 것이다. 당장은 '정치적으로 타결하는 방법' 말고는 달리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우리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과 최강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마냥 수세적으로 접근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자세히 판명되겠지만) 무턱대로 힘으로 맞대응했다가는 그 여파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분야로 크게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지적 대로, 일본은 공산품 수입 비중이 고작 3.1%에 불과할 정도로 '외세 의존도'가 극히 낮은 독특한 산업 구조를 가진 기술 강국이다. 그래서 사실 일본에 맞대응할 만한 급소를 찾기조차 어렵다. 극히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하기 바빴던 우리나라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이웃 일본의 선진 기술과 부품과 소재에 크게 의존해 왔던 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하고도 불가피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국내 산업의 취약점은 그것대로 면밀히 보완하되, 지금 당장은 다소 수세적으로 비춰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명분'보다 '실리'를 취하자는 얘기다.

 

여기서 부터 다시 한신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한신은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처음엔 '칼 한 자루에 의지하여' 항우 밑으로 들어갔으나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자 초나라에서 도망쳐 한나라로 귀순했다. 한신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오連敖(곡식 창고를 관리하는 직책)라는 보잘 것 없는 벼슬이 주어졌다. 어느 날 법을 어겨 참수형을 받게 되었는데, 같이 처형되는 열세 명의 목이 잘리고 한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하후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한신이 그에게 한 말은 이랬다.

 

"주상께서는 천하를 차지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 말이 기특하다고 생각한 하후영은 그를 풀어주고 목을 베지 않았으며, 한고조 유방에게도 그를 천거하게 된다.

 

그에 얽힌 가장 흥미로운 얘기는 이런 일이 있기 훨씬 전에 있었던 다음의 일화 때문이다. 그는 평민일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하였으므로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 먹으며 지냈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네가 건네주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수십 일 동안 빨래터를 서성거린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음의 백성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기는 한 젊은이가 한신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며 말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이 일로 해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776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한신은 치속도위治粟都尉(식량과 말먹이를 관리하는 군관)라는 벼슬을 얻었지만 중책에 기용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나라의 군대가 이동하는 도중에 여러 장군들이 도망치는 틈을 타서 자신도 달아났다. 그 소식을 듣고 소하라는 사람이 그를 뒤쫓았다. 한나라 왕에게는 소하도 달아난 것으로 보고되었다. 며칠 뒤에 소하가 돌아오자 한나라 왕은 노여움과 기쁨이 뒤섞여 소하를 꾸짖었다.

 

"그대는 어째서 도망쳤소?"

 

소하가 대답했다.

 

"신은 도망친 게 아니라 도망친 자를 뒤쫓아 갔던 것입니다."

 

왕이 물었다.

 

"그대가 뒤쫓은 자가 누군가?"

 

소하가 대답했다.

 

"한신입니다."

 

한나라 왕은 다시 꾸짖었다.

 

"장수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수십 명이나 되는데도 그대는 쫓아간 적이 없소. 한신을 뒤쫓았다는 것은 거짓말이오."

 

소하가 말했다.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신에 견줄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나라 왕이 말했다.

 

"나도 동쪽으로 나아가 천하를 다투고자 하오. 어찌 답답하게 이런 곳에 오래 있겠소?"(777∼778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렇게 해서 한신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임명식을 마치자 한나라 왕은 한신은 어떠한 계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신은 왕에게 되물었다.

 

"왕께서는 용감하고 사납고 어질고 굳센 점에서 항왕과 비교할 때 누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나라 왕이 깔끔하게 인정했다. "내가 항왕만 못하오." 그 대답을 듣고 한신은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이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으므로 항왕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지르면 1000명이 모두 엎드리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니 그저 보통 남자의 용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선뜻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아녀자의 인仁일 뿐입니다. …… (7801∼781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렇게 해서 한신은 한나라 왕에게 신임을 얻게 되었고, 총사령관에 오른 한신은 유방의 군사를 지휘하여 이웃의 여러 나라를 격파하고, <해하의 결전>에서 2만의 군사로 배수진을 친 끝에 20만의 대군을 물리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한신은 그 여세를 몰아 제나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한나라 4년, 한신은 드디어 제나라를 모두 평정하고 한나라 왕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제나라는 거짓과 속임수가 많고 변절을 잘하며 자주 번복하는 나라인 데다가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가왕假王(임시로 왕 노릇을 하는 것)을 세워서 진정시키지 않으면 정세가 안정되기 어렵습니다. 신을 가왕으로 삼아 주시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입니다."(795쪽)

 

그 무렵 초나라가 갑자기 습격하여 한나라 왕을 형양에서 에워쌌는데, 마침 한신의 사자가 오자 한나라 왕은 그 편지를 펴 보고 매우 화를 내며 꾸짖었다.

 

"나는 여기서 곤경에 빠져 하루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라는데 자기는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장량과 진평은 일부러 한나라 왕의 발을 밟고는 사과하는 척하며 왕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한나라는 지금 불리한 입장에 노혀 있습니다. 한신이 왕 노릇을 하는 걸 어찌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한신을 세워서 왕으로 삼고 잘 대우하여 제나라를 지키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795∼796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렇게 해서 제나라의 왕이 된 한신은 어느덧 초나라 항우는 물론 한나라 유방에게도 경계대상 1호가 될 만큼 우뚝한 존재로 변신해 있었다. 이런 형세를 보고 항우는 한신을 설득하는 작전에 나섰다. 한나라를 너무 믿지 말고 자신과 손을 잡자고 한신을 꾀었다. 초나라 왕인 자신이 죽으면 당신(한신)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게 설득의 논리였다. 이른바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그 유명한 '토사구팽의 논리'가 여기서 등장한다. 그러나 한신은 자신을 알아주고 발탁해준 한나라 유방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항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제나라 사람 괴통이 '천하 대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있음을 알고 기발한 계책으로 한신을 움직이려고 하였다. 괴통이 내놓은 계책의 일부를 들어 보자.

 

"제 생각으로는 이러한 형세로 보아 천하의 성현이 아니고는 천하의 환란을 도저히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 왕과 항왕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당신께서 한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나라 편을 들면 초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속마음을 터놓고 간과 쓸개를 드러낸 채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려 하는데 당신께서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진실로 제 계책을 써 주신다면 한나라와 초나라 양쪽을 모두 이롭게 하고, 두 분을 존속시켜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의 발처럼 서 있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형세로 보아 어느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당신만큼 현명한 분이 수많은 무장 병사를 거느리고 강대한 제나라에 의지하여 연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키고, 주인 없는 땅으로 나아가 그 후방을 누르며, 백성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가서 두 나라(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을 끝내게 하여 백성의 생명을 구해 준다면 천하는 바람처럼 달려오고 메아리처럼 호응할 텐데 누가 감히 당신의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까? ……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800∼801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그러나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바라고 한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릴 순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괴통의 답변에도 그 유명한 '토사구팽' 이론이 다시 등장한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나라 왕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업적을 세우려고 하십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것입니다. …… 옛날 대부 종種과 범려范蠡는 멸망해 가는 월나라를 존속시키고 월나라 왕 구천을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만 자신은 죽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 (801∼802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괴통의 책략의 요점은 '지금 당신께서는 군주를 떨게 할 만한 위세를 지녔고 상을 받을 수 없을 만큼 큰 공로를 가지고 계시니 초나라로 돌아가더라도 초나라 사람(항왕)이 믿지 않을 테고, 한나라로 돌아가도 한나라 사람(유방)이 떨며 두려워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는 한신의 대답을 듣고 물러난 괴통은 며칠 뒤에 다시 한신을 찾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체로 나무를 하고 말을 먹이는 이는 만승의 천자가 될 만한 권위도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봉록을 지키는 데 급급한 이는 경상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秦나라 용사 맹분孟賁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치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병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803∼804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그러나 한신은 망설이기만 거듭할 뿐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 자신이 공이 많으니 한나라가 끝내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괴통은 한신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얼마 안 가서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고 만다. 항우가 패하고 천하를 휘어잡은 고조 유방은 이윽고 제나라 왕의 군사를 습격해서 빼았았다. 한나라 5년 1월에 제나라 왕이었던 한신을 옮겨서 초나라 왕으로 삼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한신은 고향인 초나라의 왕이 되어 금의환향했지만 병권조차 빼앗긴 허울 좋은 왕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겪었던 일을 다시금 되돌아 보았다.

 

한신은 초나라에 이르자 일찍이 밥을 먹여 주었던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을 불러 1000금을 내렸다. 또 하향의 남창 정장에게 백 전錢을 내리면서 말했다.

 

"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다가 중도에서 그만뒀기 때문이다."

 

또 자기를 욕보인 젋은이들 가운데 자기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게 하여 모욕을 주었던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中尉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한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804∼805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이런 일들로 인해 한신은 초나라에서 덕망이 높고 고매한 인품을 가진 왕으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권력이 확립되자 한신의 입지는 갈수록 견제를 받았다. 유방이 황제로서 제후국을 순회하며 초나라를 방문하자 한신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을 직감하고, 유방을 안심시키고자 자신에게 의탁해온 종리매의 목을 유방에게 바쳤다. 종리매는 항우 휘하에 활약했던 유명한 장수였는데 유방을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에 유방과 원한이 컸던 인물이었다. 그는 항우가 죽자 친구 한신에게 몸을 의탁해온 처지였다. 종리매를 배신한 일로 한신은 민심을 잃었고 유방은 진영으로 찾아온 한신을 모반죄로 체포하여 장안()으로 압송했다. 그때 한신이 말했다.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806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힌신은 낙양에 이른 후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로 삼았다. 한신은 한나라 왕이 자기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을 알았으므로 칭병을 핑계로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그러다가 진희陳豨가 거록군鋸鹿郡 태수로 임명되어 회음후 한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제안 받은 '모반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모반은 유방의 부인 여후后와 승상 소하에 의해 진압되었다. 한신은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녀자에게 속은 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랴!"

 

여후는 한신의 삼족을 멸하였다.

 

고조는 진희를 토벌하고 돌아와 한신이 죽은 것을 알고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가엽게 여기면서 물었다.

 

"한신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했는가?"

 

여후가 말했다.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 괴통이 잡혀오자 고조가 물었다.

 

"네가 회음후에게 모반하도록 가르쳤는가?"

 

"그렇습니다. 신이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못난이가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멸해 버렸습니다. 만약 그가 신의 계책을 썼다면 폐하께서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고조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놈을 삶아 죽여라."

 

괴통이 말했다.

 

"삶겨 죽는 것은 억울합니다."

 

고조가 말했다.

 

"네가 한신에게 모반을 가르쳤기 때문에 죽는 것인데 무엇이 억울하다는 말이냐?"

 

괴통이 말했다.

 

"진나라의 기강이 느슨해지자 산동 땅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진나라와 성이 다른 사람들이 아울러 일어나 영웅호걸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진나라가 그 사슴(황제의 권한)을 잃자, 천하는 다 같이 이것(사슴)을 좇았습니다. 이리하여 키가 크고 발이 빠른 자(고조)가 먼저 이것을 얻었습니다.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입니다. 당시 신은 한신만 알았을 뿐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 천하에는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서 폐하가 하신 일과 똑같이 하려는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능력이 모자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겠습니까?"

 

고제가 말했다.

 

"풀어 주어라."

 

그리고 괴통의 죄를 용서했다.(810∼811쪽)

 

 - 사마천,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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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3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젊었을 때 한신을 생각한다면, 이 어려움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고 초왕이 되는 모습이 인상에 남겠지만, 천하가 통일한 후의 한신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단하지 못해 죽음을 당한 회음후의 모습이 인상에 남을 듯 합니다. oren님의 글은 oren님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것이 고전이 주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oren 2019-07-14 00:02   좋아요 1 | URL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에 대한 후속 뉴스들을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가 부당한 보복 조치를 당하는 데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은 차츰 뒷전으로 밀리고, 일본의 치졸한 행위에 대한 ‘대응 방식‘을 두고 서로 내가 맞네, 니가 틀리네, 하면서 자중지란만 일으키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습니다. 지금 한가롭게 적전 분열을 일으킬 만큼 상황이 녹록치도 않고, 격렬한 분노로 대응한다고 해서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요. 미국이 냉정하게 ‘당사국끼리 해결하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만 보더라도, 양국이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할 사안임이 분명한데, 왜 자꾸 정치권에서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애꿎은 국민들만 싸움판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 * *
자로가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성이 해야 할 도리를 앞장서서 하고, 백성의 일을 위해 몸소 애쓰는 것이다.˝
자로가 그 밖에 더 해야 될 것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하고 게으르지 않으면 된다.˝
자로가 물었다.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의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니 제자 열전>
 
문명의 충돌 -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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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제들이 한번에 하나씩 처리될 것이고, 다른 문제들은 지속되어서 국제 정치 및 경제 관계에 머무르며 조금씩 독을 퍼뜨리는 갈등들을 만들 것이다. 어떤 협정들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 …… 지역주의, 열강 사이의 협력, 지속적인 낮은 수준의 갈등들이 모두 약간씩 존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혼란이 예고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혼란 속에서 한 나라가 나타나서 세계 선두의 경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다시 미국이? 일본? 독일? 유럽 공동체 전체? 오스트레일리아나 브라질이나 중국 같은 다크호스가? 누가 알겠는가? 나는 모른다.

 - 찰스 P.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1996) 중에서

 

 * * *

 

세계는 날이 갈수록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격동한다. 최근 1년 동안만 하더라도 기억할 만한 변화들이 많았다. 북미회담이 대표적이다. 한국전쟁이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미봉된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한반도의 대치 국면에서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회담장에서 마주한 건 지난 65년 만에 처음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실권자와 함께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1979년 국교 수교 이래 처음으로 '강 대 강'으로 첨예한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또한 1965년 한일 협정 이래 5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과 심각한 무역 전쟁을 개시했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히면 홍콩의 격렬한 반중 시위가 현재 진행형이고, 조금 더 남쪽으로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여타 이해 당사국 간의 갈등이 활화산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시야를 더욱더 넓혀 전지구적으로 돌리면 어떤가.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언제 마무리 될 지 기약이 없고, 남수단 내전은 국제 사회(미국, 중국, 아프리카 연합)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체결했음에도 여전히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 중이며 한빛부대는 바로 엊그제 그곳으로 파병됐다. 멕시코의 불법 이민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은 여전히 안타까운 희생자만 추가할 뿐 해결의 기미는 요원하다. 여기서 시간을 좀 더 거꾸로 돌려 구소련 연방이 해체될 무렵인 1989년까지로 돌려 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그토록 강고하게 유지된 냉전 체제가 급작스럽게 붕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내세우며 서구식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체제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했음에도 국가적, 종교적, 인종적 분쟁과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1990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 중심의 다국적 연합군이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를 상대로 대규모 지상전을 벌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철수 이후에도 오랫동안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슬람 무장 세력인 탈레반의 지도자 빈 라덴은 세계무역센터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침공함으로써 일순간 전세계 유일 강국인 미국 사람들을 경악에 빠트렸다.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네 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로도 끊임없는 분쟁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인종 청소를 낳았던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도 오랜 기간 동안 국제 뉴스를 장식하였다. 이밖에도 체첸 분쟁,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등이 잊을 만하면 또다시 분쟁으로 얼룩졌다.

 

도대체 이토록 빈번한 지역간 분쟁과 갈등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발생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새로운 시각틀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게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이 유명한 책은 1996년에 출간되자 마자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탈냉전 이후로 발생하는 전세계적인 분쟁과 갈등은 '문명 사이의 충돌'로 바라볼 때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분쟁의 해결책 또한 그러한 시각틀로 바라볼 때 올바르게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실로 방대한 시공간적 범위에 걸쳐 '문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전세계 여러 문명들의 부침들을 살핀다.

 

그가 분류하는 문명의 구분은 종교가 핵심적인 바탕을 이룬다. 종교 말고도 문명을 구분짓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다. 마을, 지역, 전통, 인종, 언어, 문화 등등이 문명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문명은 뚜렷한 경계선이 없으며 딱 부러지게 시발점과 종착점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문명은 진화하고 적응하며, 인간들의 결속체 중에서도 유독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새뮤얼 헌팅턴의 말대로 그것은 극단적인 '장기 지속'의 양상을 지닌다.  

 

문명의 독특하고 특별한 본질은 바로 그 장구한 역사적 지속성이며 사실상 가장 오래 된 이야기는 문명이다. 제국은 일어섰다 무너지고 정권도 왔다가 사라지지만 문명은 유지되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 격변의 와중에서도 살아남는다.(50쪽)

 

 과거의 주요 문명과 지금 현재의 주요 문명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되고 있다. 다만 역사적으로 존재한 바 있는 문명의 총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분분하다. 역사상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명은 대략 일곱 개(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크레타, 그리스-로마, 비잔틴, 중미, 안데스)로 요약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가장 뚜렷하게 현존하는 주요 문명은 다섯 개(중국, 일본, 인도, 이슬람, 서구)다. 여기에 새뮤얼 헌팅턴은 세 개의 문명을 추가해서 자신의 분석틀로 삼는다. 비잔틴 문명이나 서구 크리스트교 문명과는 별개로 진화한 러시아 정교 문명, 라틴 아메리카, 아프라카 문명이 그들이다.

 

이들 문명들은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서로 조우하고, 접촉하고, 정복하고, 복속시키고, 사상과 기술을 전파하고, 교역하였다. 유럽의 크리스트교권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한 이후인 8세기와 9세기 무렵에 독자적 문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당 · 송 · 명 시대에, 이슬람은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비잔틴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경제력, 영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술적, 학술적, 과학적 성취도 면에서도 유럽을 훨씬 앞서 있었다. 다른 문명에 비해 뒤쳐져 있던 서유럽 문명이 부상한 때는 15세기부터였다.

 

문명과 문명 사이의 제한적, 간헐적 접촉은 다른 모든 문명들에 대한 서구의 지속적, 일방적, 압도적 영향력 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15세기 말이 되자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침내 축출당하고 포르투갈의 아시아 정복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250년 동안 서반구 전역과 아시아 주요 지역은 유럽의 지배를 받거나 그 주도권 아래 들어간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의 직접적 통치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 다음에는 아이티에서 축소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이 유럽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에는 재부상한 서구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의 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아시아에서도 인도를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권 아래 끌어들였다. 20세기 초반으로 접어들면 터키를 제외한 중동의 거의 모든 지역이 서구의 직간접벅인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 유럽인 또는 과거 유럽 식민지 이주민은 1800년에 이르러 세계 육지의 35퍼센트를 점유하였다. 1878년에는 그 비율이 67퍼센트로 높아졌고 1914년에는 다시 84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1920년에 가서도 오스만 제국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의하여 분할되면서 그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60∼61쪽)

 

1500년 이후 400년 동안 문명과 문명의 관계는 '서구 문명에 대한 다른 문명들의 종속'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독특하고 극적인 사태를 낳은 원인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것은 바로 기술이었다. 대양 항해술의 발명과 화약과 대포로 무장한 첨단 군사력 앞에 다른 문명들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 서구의 팽창은 산업 혁명으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서구는 사상, 가치관 , 종교의 우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화된 폭력의 우위'로 세계를 정복하였다.

 

서구 문명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유럽 민족들은 자기네들끼리도 싸웠다. 유럽의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는 일상이 아니라 예외였다. 서구 문명 내부의 정치 역학을 지배한 것은 왕조 전쟁 아니면 종교 전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서구인은 국민 국가를 만들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로 분쟁의 주역은 군주가 아니라 국가로 바뀌었다.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왕들의 전쟁은 끝났고 민족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1차 대전까지 지속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국민 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처음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대결로, 그 뒤에는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이념 대결로 바뀌었다. 냉전 시대에 이 이념들은 두 초강대국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정체성를 이념에서 찾았고 둘 다 유럽적 의미의 전통적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마르크시즘이 처음에 러시아에, 곧 이어 중국과 베트남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유럽식 국제 체제는 탈유럽적 다극 문명 체제로 이행하였다. 마르크시즘은 유럽 문명의산물이었음에도 유럽에서는 뿌리를 내리지도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63쪽)

 

20세기에 들어와 모든 문명들 사이에서 다각적인 교섭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역사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서구의 팽창'이 끝나고 '서구에 대한 반항'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서구 사회들은 서구가 만든 역사에서 단순한 대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의 역사는 물론 서구의 역사도 이들이 조금씩 움직일 정도에 이르렀다. 서구가 주도하던 단계를 벗어나면서 문명의 쇠락을 좌우하던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종교 또는 문화에 바탕을 둔 정체성이 물려받게 되었다. 서구가 잉태한 정치 이념이 빚어낸 문명 내적 충돌은 문화와 종교가 주축이 된 문명간 충돌로 대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하는 시각틀의 요지다.

 

이 책의 특장점 가운데 하나는 현존하는 여러 문명들의 장기간 동안의 변화를 구체적인 지도나 도표를 통해 명확하게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런 대목들을 보노라면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라는 책을 통해 장기간 동안의 인류 문명의 거대한 변화를 어느 누구보다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20세기의 100년 동안에 서구의 쇠퇴를 보여주는 극적인 통계들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문명들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면적'의 백분율이다. 서구문명은 1920년에 48.5%로 정점을 보인 이후 1993년 현재 24.2%까지 감소했다. 극적으로 부상한 문명은 이슬람이다. 1920년에 3.5%에서 1993년에 21.1%로 치솟았다. 1993년 기준으로 세 번째 문명은 라틴 아메리카(14.9%)였고, 동방 정교 문명이 네 번째(13.2%)를 차지했다.

 

문명들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세계 인구의 상대적 비중 또한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서구는 1920년에 48.1%를 차지하다가 2025년에는 10.1%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중화 문명은 1920년에 17.3%였다가 2025년에는 21.0%로 선두를 차지한다. 이슬람은 더욱 극적이다. 1920년에는 불과 2.4%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19.2%까지 치솟아 중화문명을 턱밑까지 추격한다. 네번째 문명은 힌두 문명으로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16.9%까지 차지할 전망이다.

 

주요 언어의 사용 인구(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일반인들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1992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압도적인 1위는 15.2%를 치지한 북경어다. 2위는 이 수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6%의 영어다. 세 번째는 6.4%를 차지하는 힌두어, 네 번째가 6.1%의 스페인어, 다섯 번째가 4.9%의 러시아어다.

 

문명별 세계 총생산 비중으로는 서구 문명의 비중이 아직까지 탄탄하다고 볼 수 있으나 통계치가 1992년까지에 머무른 탓에 21세기의 빠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커 보인다. 책에 실린 도표에 따르면, 서구문명의 세계 총생산 비중은 1928년 84.2%에 이르렀다가 1992년에는 48.9%로 줄어들었다. 1992년 기준으로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문명은 이슬람(11.0%)이다. 세 번째는 중화 문명(10.0%)이고, 네 번째는 라틴 아메리카 문명(8.3%), 다섯 번째는 일본 문명(8.0%)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020년의 세계 총생산 전망이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1996년)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던 탓일까, 전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제법 커 보인다.

 

1992년 현재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고 10개 상위국 가운데 서구 국가가 5개국, 나머지 5개국은 다른 문명들의 주도 국가인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브라질이다. 신빙성 높은 전망에 따르면 2020년에 가서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다. 5개 상위국은 5개 문명의 몫으로 골고루 돌아가고, 10개 상위국은 중화 문명권 3개국(중국, 한국, 대만), 서구 면명권 3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이 차지한다. 10대 경제 강국 중에 아시아권이 7개국 포함되고 그 중에서 6개국이 동아시아권이다. 1960년 동아시아는 세계 총생산의 4퍼센트를 차지하였고 북미는 37퍼센트를 차지하였다. 그러던 것이 1995년에는 똑같이 24퍼센트가 되었다. 한 보고서는 2013년경에 가서는 서구는 세계 총생산의 30퍼센트를, 아시아는 4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111쪽)

 

(2019. 7.7 연합뉴스 보도)

 

지난해 경제 규모 1위는 미국으로 명목 GDP가 20조4천941억달러에 달했다. 이어 중국(13조6천82억달러), 일본(4조9천709억달러), 독일(3조9천968억달러), 영국(2조8천252억달러) 순이었다. 프랑스(2조7천775억달러), 인도(2조7천263억달러), 이탈리아(2조739억달러), 브라질(1조8천686억달러), 캐나다(1조7천93억달러)가 6∼10위에 올랐다. 러시아(1조6천576억달러)가 11위로 한국보다 한 계단 앞섰다.  

 

새뮤얼 헌팅턴의 연구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변화하는 문명의 균형'을 인구 변화와 경제력의 변화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서구 문명에 도전하거나 뛰어넘을려는 문명의 뚜렷한 두 주자는 아시아와 이슬람이다. 이 책이 쓰여질 무렵에는 이들 두 문명의 발전이 지금보다 더욱 눈부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슬람과 아시아 문명의 극적인 발전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서구적 가치와 제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학자인 저자 입장에서는 이들 두 문명의 거센 도전이 부담스러웠을 게 틀림없다. 다음의 문장 속에는 서구인의 이슬람과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아시아의 자기 주장은 경제 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의 자기 주장은 상당 부분 사회적 동원력과 인구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21세기에 가서도 세계 정치에 심각한 불안 요소로서 파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파장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중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의 경제 발전은 이들의 정부가 대외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자원을 제공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인구 증가, 특히 15세에서 25세 사이 연령층의 폭발적 증가는 원리주의, 테러리즘, 폭동, 노동력 수출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한다. 경제적 발전은 아시아 정부를 강화시키고 있지만 인구 증가는 이슬람 정부와 비이슬람 사회에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133∼134쪽)

 

20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진행 중인 수많은 지역적 분쟁들은 구소련 연방의 해체에 따른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념과 강대국을 중심으로 맺어진 제휴 관계가 극적으로 사라지고 문화와 문명을 축으로 제휴 관계가 재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계선이 문화적 경계선 곧 민족적, 종교적, 문명적 경계선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NATO와 EU 가입 문제를 결정했다. 구 유고 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는 이념에서 탈피하여 민족과 종교에 따라 각각 분리되었다. 냉전 시대에 소련에 맞서 부자연스런 동맹을 맺었던 그리스와 터키는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자 말자 NATO와 EU에서의 역할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점차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본토 의존도가 커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냉전 질서가 무너지면서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립과 제휴를 진전시키거나 해묵은 대립과 제휴를 소생시키는 쪽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냉전의 종식은 분쟁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체성, 가장 광범위한 수준에서는 문명을 형성하게 될 상이한 문화에서 유래한 집단들 사이의 새로운 갈등 양상을 낳았다. 아울러 공통의 문화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협조를 낳는다. 이것은 특히 경제 부문에서 국가들 사이의 지역 연합이 출현하는 현상에서 확인된다.(171쪽)

 

탈냉전 이후의 문명과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특히 중국의 역할이 급속도로 바뀌는 점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중국 본토를 중국 문명의 핵심국으로 이해하고 다른 모든 중국인 공동체가 이 핵심국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인의 정체성은 인종적 용어로 정의된다. 한 중국 학자의 말대로 중국인은 같은 '인종, 피,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대중국'은 그러므로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급속히 성장하는 문화적, 경제적 현실이며 이제는 정치적 현실의 성격마저 띠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아 1990년대에 극적으로 전개된 동아시아 경제 발전을 주도한 것은 본토, 호랑이들(네 마리 중에서 한국을 제외한 세 마리가 중국계), 동남아시아의 중국인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는 점차 중국 중심, 중국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중국인은 1990년대 본토에서 이루어진 눈부신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자본을 실질적으로 제공하였던 층이다. 그 밖에도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이 지역 경제를 틀어쥐고 있다. ……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동아시아 경제는 기본적으로 중국 경제이다. 227∼228쪽)

 

이념 중심에서 문명 중심으로 세계 정치 구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문명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충돌의 원인은 무역 갈등, 강한 라이벌 의식, 경쟁적 공존, 군비 경쟁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세계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핵심국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주요국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들 사이에 분쟁을 낳는 핵심적 쟁점들은 국제 정치의 고전적 주제들이다. UN, IMF 등 국제 기구의 운영을 둘러싼 문제, 핵 확산 금지, 무기 규제, 무역과 투자 문제, 인권 문제, 가치관과 문화의 갈등 등이 그런 주제들이다.

 

문명의 핵심국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적 군사 충돌은 상호 자제한다. 그러나 문명들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올 때, 핵심국들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른바 그 유명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 일로를 걸어 온 최근 1년 사이에 수많은 언론에서 숱하게 화두로 삼은 용어가 오래 전에 쓰인 헌팅턴의 책에 등장하는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 인용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가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기 때문이다.('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대중들에게 널리 확산된 건 미국의 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이 쓴 『예정된 전쟁』, 원제 :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2017년) 출간되면서 부터인 듯싶다.)

 

투키디데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 문명 내부에서 아테네의 힘이 강성해졌을 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구 문명의 역사는 부상하는 강대국과 쇠락하는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헤게모니 전쟁의 역사다. 상이한 문명에 속해 있으면서 부상하는 핵심국과 쇠락하는 핵심국 사이의 분쟁 촉발 정도는 이들 문명에 속한 국가들이 새로운 강대국의 부상 앞에서 견제를 추구하느냐 편승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시아 문명에서는 편승 현상이 더 지배적으로 나타나지만, 중국의 부상은 미국, 인도, 러시아 같은 다른 문명권의 국가들로 하여금 세력 균형을 도모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서구의 역사를 볼 때 영국과 미국 사이에서는 헤게모니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이행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두 사회의 문화적 유대감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서구와 중국 사이에는 그러한 종류의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서구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사 충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 이슬람의 역동성은 비교적 소규모로 벌어지는 단층선 분쟁의 지속되는 원천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부상은 핵심국 사이에 벌어지는 대규모 문명 전쟁의 잠재적 원천이 되고 있다.(279쪽)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소규모의 관세 전쟁에서부터 시작하여 대규모 관세 폭탄을 주고받는 단계를 지나 '화웨이 사태'로까지 확산일로를 걷다가 잠시 멈춰서 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갈등, 홍콩과 대만의 지위를 둘러싼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미국의 애매한 태도, 티베트와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 문제 등도 미중간에 잠재된 폭발력 있는 갈등 요소들이다. 미중간의 갈등은 아직까지는 전쟁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직까지는 미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또다시 '투키디데스의 함정' 앞에서 두 나라가 건곤일척의 대전쟁을 벌이느냐 마느냐로 심각한 고민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쨌든 이 책이 1996년에 출판된 사정을 고려해 보더라도 23년 후의 미중 갈등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명 충돌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들'은 오늘날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사안들이 너무나 많아서 뒤늦게 이 책을 붙잡고 읽는 독자에게도 놀라움을 안겨 준다. 핵무기 개발을 위해 온갖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 온 이란과 북한의 사례는 23년 전에 이 책을 쓴 저자가  2019년에 최신 개정판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술한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손댈 만한 곳이 거의 없을 만큼 정확하고 날카롭다. 다만 '북한의 핵 시설물에 대한 선제 공격의 필요성'은 이 책에도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그 사안의 중요성이 지금보다는 훨씬 가볍게 다뤄졌음이 분명하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 문제가 된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바뀔 때마다 ('전략적 인내' 등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 오면서) 문제를 점점 더 키워오다가 어느새 '핵동결 내지는 핵군축의 단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더욱 복잡하고 중차대한 문제로 변화하고 있다.

 

수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미해결인 채 남아 있고, 어떤 문제들은 처음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심각한 위기로 대두되다가(쿠바 위기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내 사그라지기도 한다. 또한 과거부터 오랫동안 잠재된 갈등들이 기나긴 잠복 기간을 거쳐 일순간 거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도 더러 나타난다.(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홍콩의 격렬힌 반중 시위는 100년 동안의 서구화를 겪은 사회가 아무런 갈등도 없이 중국 본토 문명으로 재흡수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한 '문명끼리의 충돌 관점'은 고작(?) 수십 년 동안만 존재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얼마만큼 허약한 기반 위에 존재했던가를 새삼 일깨우는 한편, 1,000년 혹은 2,0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 동안에 걸쳐 단단하게 형성된 문명이라는 범주가 얼마만큼 강렬한 힘을 비축한 채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가를 새삼 일깨운다. 또한 수많은 역사가들이 예견했듯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문명들은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축적되는 인구 증가 및 인구 구성의 변화, 경제력의 차이, 군사력의 변화 등에 따라 갈등과 충돌을 겪으면서 차츰 쇠락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간혹 눈에 띄는 저자의 '서구 문명 우월 주의적 편견'은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게 아니다. 저자 스스로 앞장서서 서구 문명의 보편성을 적극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슐레진저는 "유럽은 개인적 자유, 정치적 민주주의 , 법치주의, 인권, 문화적 자유라는 관념의 원천, 그것도 아주 독특한 원천이다. …… 이것들은 유럽의 사상이지, 차용된 것이라면 모를까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사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것들이 서구 문명을 독특하게 만들어 준다. 서구 문명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이어서가 아니라 남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지도자들의 책무는 다른 문명들을 서구의 이상에 맞추어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다. 쇠락하는 서구로서는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서구 지도자들은 서구 문명의 고유한 특성을 견지하고 수호하고 쇄신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러한 책무를 앞장서서 떠맡아야 한다.(427∼428쪽)

 

오늘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 우선 주의'야말로 전세계가 오랫동안 '서구 제국주의'로 일컬었던 '서구 문명 우월주의'보다 훨씬 더 해로운 이념일지 모른다. 결국 모든 문명은 출현, 상승, 쇠락의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문명도 차츰 쇠락하고 나면 멀지 않아서 아시아 문명, 그 가운데서도 중국 문명이 지구 최강의 경제력과 인구와 여러 친족국들(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을 대동한 채 새로운 질서 재편 과정을 밟아나갈 가능성이 크다. 수천 년 동안 유교 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 중국과 접촉했던 우리나라는 과연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여전히 남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 문명으로 재차 복귀할 것인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그런 어려운 선택지 앞에서 의사결정을 강요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오랫동안 서구식 합리주의와 민주주의에 적응해 온 다른 문명들은 아직까지도 민주적인 선거 절차와 지도자 선출 과정조차 경험하지 못한 권위주의적인 중국 문명과 어떤 갈등과 충돌을 빚을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의 책을 읽노라면 이런 새로운 걱정들이 떠오른다.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이런 문제들까지 고민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온갖 첨예한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정책 입안자나 학자나 정치가들이 공부삼아 읽기에 딱 좋은 그런 책이다. 지금도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이나 한일 무역 갈등과 같은 분쟁의 근원적인 이유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과연 서구 문명은 언제쯤 다른 문명에게 주도권을 내 줄 것인가? 30년 후? 100년 후?

 

모든 문명의 역사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리고 대개는 여러 번 역사의 막을 내린다. 문명의 보편 국가가 등장하면 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토인비가 말한 대로 '영속성의 망상'에 눈이 멀어 자기네 문명이 인류 사회의 최종 형태라는 명제를 신봉하게 된다. 로마 제국이 그러했고 아바스 왕조가 그러했으며,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도 다를 바 없었다. 보편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그 보편 국가를 황야의 하룻밤 거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인간의 궁극적 목표점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절정기의 대영 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897년의 영국 중산층은 역사는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역사의 종말이 자신듫에게 베풀어 준 영구 불면한 열락의 상태를 자축해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가 궁극점에 이르렀다고 전제하는 사회는 대체로 몰락기로 접어든 사회이다.(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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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 몽테뉴

 

 * * *

4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찾아봤다. 그때와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당신과 알라딘에 관한 16가지 기록>

https://www.aladin.co.kr/events/eventbook.aspx?pn=150701_16th_records&custno=642151

 

 

알라딘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독서 활동에 대한 칼 같은 통계'를 자주 보여준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요술램프에서 기어 나와 '결코 잊지는 말라'고 애써 우리에게 알려준다. 램프를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게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그 '순위표'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거나 혹은 실망한다. 설마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들까지야 없으리라 믿고 하는 얘기다.

'책읽기'를 둘러싼 제반 활동에 대한 '종합 명세서'는 아무래도 연말이 가장 알찬(?) 듯하다. 엠블럼도 따라 붙고. 그렇다고 알라딘의 생일날에 슬며시 내미는 한여름 중간 명세서가 그리 허접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기도 전에 뜬금없이 펼쳐보게 된 '중간 정산 내역'이 무려 13개 항목에 이른다. 그 가운데 내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항목 몇 가지만 '나'를 기준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싶다.


 

 

①  891권, 초등학교 교실 250개?

 

 

891권의 책으로 어떻게 초등학교 교실 250개를 채울 수 있다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좀 안 된다. 책의 낱장을 모두 펼쳐서 교실 바닥을 빈틈없이 이어 붙여서 채운다는 가정일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책을 낱장으로 분해한다는 가정부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다. 아무튼, 4년 전에는 책의 권수와 함께 합산 페이지 숫자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엔 그런 중요한 정보가 빠져서 조금 아쉽다.

 

 

대략 2003년에 알라딘에 둥지를 튼 셈 치고는 그리 많은 책을 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사들인 책을 모조리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대로는 책을 사는 데 꽤나 신중한 편이어서 '읽지도 않을 책'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4년 전에는 구매한 책들의 평균 쪽수가 412쪽라는 점이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② 12,325,340원, 15,393째

 

 

 

4년 전에는 이랬다. 4년 동안 400만 원 가까이 추가로 지출했는데, 전체 순위는 대폭 하락했다.

 

 


책을 사들인 금액이 '많다'는 생각은 여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늘 적으면 적었지 많다는 쪽으로는 좀처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 책에 대해 지출하는 비용이라 여긴다. 그러니 저 금액이 내게 무슨 특별한 느낌을 줄 리도 없다. 그런데 15,393번째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1번째(전국 수석?)일 테고, 또 분명 어느 누군가는 50,000번째 혹은 100,000번째일 텐데, 각자 자신의 '순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궁금하다. 나는? 글쎄? 이제는 순위에 무덤덤해진 나이가 된 걸까? 아무런 감흥이 없다.


③ 북플 마니아 

 

 

4년 전에는 이랬다. 4년 전에 비해 서양고전문학에서 조금 더 올라섰고, 서양철학에서 여러 단계 올라선 점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고전사상, 교양 인문학, 영미소설에서 마니아 지수가 많이 향상된 점도 나에겐 이채롭다.

 

 

 

 


④ 80세까지 540권

 

 

4년 전에는 이랬다. 80세까지 1,59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던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가 인심이 매우 박해졌나 보다. 아니면 나의 독서 활동이 4년 동안에 현저하게 둔화되었거나. 어쩄든 감소폭이 매우 크다!

 


나는 대략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500권의 책도 읽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굳이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보다도 '독서 의욕'이 차츰 떨어질 테고, 언젠가는 눈도 침침해 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계속 책을 읽는다면 아직도(!) 54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니! 여전히 희망적이다. 아직도 너무 늦지는 않았구나, 앞으로 죽기 전까지 '이름만 들었던' 숱한 명저들을 좀 더 섭렵해 보자, 이런 생각부터 앞선다. 알라딘이 아니라면 쉽게 내밀 수 없는 '잔존 독서량 예측'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매번 뻔한 데도 이렇게 불쑥 내미는 명세서가 매번 궁금하니 나 원 참...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고백록』의 어느 중요한 단락에서 두 가지 방식의 독서법-소리를 내는 방법과 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난 나머지, 또 자신의 과거 죄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그때까지 자신의 여름 정원에서 (큰 소리로)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친구 알리피우스 곁을 빠져 나와 무화과 나무 밑으로 몸을 던져 흐느껴 울었다. 바로 그때 근처의 어느 집에서 어린이(소년인지 소녀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노래의 후렴이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였다. 그 노랫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리피우스가 아직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곳으로 다시 달려가 미처 다 읽지 못했던 바울의 『사도행전』한 권을 집어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그 책을 집어 펼친 뒤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은 첫 부분을 소리내지 않고 읽었다"고 말한다. 그가 소리내지 않고 읽은 단락은 로마서 13장으로, "육신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지 말고 그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갑옷처럼' 걸쳐라"라는 훈계였다. 혼비백산한 그는 문장의 끝에 이른다. '믿음의 빛'이 그의 가슴에 충만하고 '회의의 어둠'은 말끔히 걷힌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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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7-02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집중해서 꽤 두꺼운 책을 읽었는데, 며칠 전 숙제 하나를 끝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활자들이 좀 더 잘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마음˝ 아닐까 싶네요. 저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다르겠지만 그 행위가 각자의 의미로 남았으면 그걸로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

oren 2019-07-02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초창기에는 서재지수라든가, 즐겨찾기 등록 숫자, 심지어 일일 방문자수 등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던 듯한데, 이제는 알라딘에서 보여주는 각종 통계에 대해서도 갈수록 무덤덤해졌음을 확실히 느끼게 되네요. 어느덧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쑥스러울 지경인데, 마침 4년 전에 써 놓은 글이 있어서, 이번에 새롭게 바뀐 그림 몇 개만 더 얹어보았답니다.^^

이제는 알라딘에 적립금도 꽤나 쌓여 있는데(145,170원) 무슨 책을 사야 좋을지 계속 망설이기만 하고 선뜻 사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반드시 읽을 책들‘만 골라서 사야겠다는 마음만 앞서네요.^^

겨울호랑이 2019-07-03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알라딘의 독서 통계 데이터를 보면서 ‘과연 독서를 잘 했나?‘라는 물음을 가졌습니다. 숫자 이면에 나타나지 않는 독서의 깊이를 얼마만큼 가져갔나 생각하면 부족함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한 걸음씩 깊이 있게 책을 읽으시는 oren님께 많이 배웁니다^^:)

oren 2019-07-03 01:03   좋아요 1 | URL
사람들마다 독서의 목적도 제각각이고 취향이나 성격 또한 제각각이니만큼 ‘독서 활동에 대한 각자의 알라딘 독서 통계‘ 또한 천차만별로 나타나리라 능히 짐작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미리 ‘몽테뉴의 글‘을 인용하면서 강조했듯이(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그저 제 힘에 맞게 책을 읽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독서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두고 가치판단을 내리기는 꽤나 까다로운 문제로도 여겨지고요.

엄청나게 많은, 그리고 엄청나게 좋은 책들을 엄청나게 깊게 읽었고, 또 그렇게 읽은 책들을 엄청나게 풍부하고도 재치있게 글로 써 낸 몽테뉴가 ‘자기 힘에 맞게‘를 유달리 강조하는 걸 보면, 각자에게 딸린 ‘자기 힘‘이라는 것도 엄청나게 다르구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님께서 읽으시는 책들의 독특한 넓이와 깊이를 보노라면 저는 늘 겨울호랑이 님께서 갖고 계신 ‘자기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고 놀라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9-07-03 08:53   좋아요 1 | URL
독서를 할 때마다 오히려 늘어나는 읽어야할 목록에 때로는 질식할 것 같지만, oren님 말씀을 듣고 보니 자신의 보폭에 맞게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9-07-03 12:35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동안에 더욱 더 많은 책들을 만나고 그런 책들을 탐하는 건 먹을수록 더욱 더 많은 식욕을 느끼는 에뤼식톤을 닮았다고도 보여집니다. 그래서 현자들이 말한 대로 ‘자기 힘에 맞게‘ 읽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도 보여지고요. 책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자칫 익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긴 있더라구요. ㅎㅎ
* * *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많은 진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내 앞에 일렁이고 있다.(아이작 뉴턴)
 

 

기번의 정신은 모든 저명한 서구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 기번은 역사를 탐구하고, 구성하고, 서술하면서 역사 분야뿐 아니라 그 어느 문학 장르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걸작을 만들어 냈다.

 - 아놀드 토인비

 

 * * *

 

꼬박 두 달이 넘도록 매달린 끝에『로마제국쇠망사』를 다 읽었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마침내 장대한 산맥 하나를, 중도에 힘에 부쳐 지레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닌 채 성큼 들어섰던, 온갖 험난한 지형과 울창한 삼림들과 사나운 야생의 짐승들로 둘러싸인 그런 산맥을 용케 넘어섰다는 후련함이 왜 없겠는가. 소문으로만 익히 들어왔던 에드워드 기번의 장려한 문장들과 벌써(!) 이별이라니 진한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때로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처럼 재기발랄하고 다정다감한 문장들을 툭툭 던지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맹렬한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문장들은 얼마나 박력이 넘치고 해박하고 놀라운가. 숱한 역사가들이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모른 체 일부러 덮어버리곤 했던 역사의 진실 앞에서 그의 탐구심은 얼마나 맹렬하게 타오르고, 그의 판단력은 얼마나 날카롭고, 그의 기개는 얼마나 당찼던가. 역사가에게 주어진 자유 혹은 의무를 위해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단호하게 써내려간 그의 붓끝은 얼마나 매섭고도 아름답게 빛나는가.

 

이 방대한 역사책을 읽고 난 감회를 쓰자니 문득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옛날엔 책 한 권을 뚝 떼면 책거리로 '떡'을 지어 먹었다.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책 덕분에 떡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형이 우리 마을에서 학식이 가장 높으신 어르신 한테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배웠는데, 그 중에 어떤 책을 다 배우고 났을 무렵에 어머님께서 떡을 만들어 어르신한테 갖다 드렸고, 형 덕분에 나에게도 떡을 먹을 기회가 돌아왔던 것이다. 시쳇말로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겠지만, 책 한 권을 뗐다고 떡이 생기더라는 말을 들어보긴 처음인 알라디너도 없지는 않을 듯하다. 사실, 알라디너에겐 책을 다 떼면 짐만 생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괜히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생겨나니 말이다.

 

아무튼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은 너무나 방대하기로 널리(!) 소문난 책인지라, 왠지 '책거리'로 떡이라도 누구한테서 받아먹고 싶어지는 그런 책임에는 틀림없다. 우선 외관 하나만 보더라도 이 책은 얼마나 우람한가.

 

(책소개에 나오는 사양은 이렇다. 양장본, 4,150쪽, 152*228mm, 6,225g. 실제로는 3,719쪽이다 )

 

 

이 방대한 저작을 읽고 난 느낌을 솔직히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야 옳을지 잘 모르겠다. 역사가나 문장가로서의 작가의 탁월함과 위대함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도 없고, 얄팍한 독서 이력을 지닌 머나먼 변방의 일개 독자가 느끼는 경외감과 곤혹스러움과 왜소함만을 강조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작품 속에 담긴 온갖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물들에 대해 새삼 개괄할 수도 없고, 온갖 사료들로부터 그지없이 꼼꼼하게 발굴한 끝에 페이지마다 거장다운 솜씨로 흩뿌려놓은 그 많은 지식들을 한낱 가냘픈 조막손으로 솜씨 좋게 다시 옮기고 펼칠 재주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한 감회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겨보고픈 욕망은 억누르기가 어렵다. 책을 읽는 동안에 수없이 자주 느꼈던 독특한 감회들을 이런 기회에 기록하지 않으면 영영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감회를 밝힐 때 첫 번째로 눈길을 돌려야 마땅할 방향은 당연히 작가의 서재 쪽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꼬박 20년 이상을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온전히 다 바쳤지 싶다. 그는 아마도 이 책을 쓰기 위해 결혼도 기꺼이 포기했던 듯하다. 불후의 작품을 쓰기 위한 그의 노고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평탄한 결혼 생활과 장기간의 방대한 연구 과정을 필요로 하는 걸작의 출산이 순조롭게 병행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생각부터 앞선다.

 

그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다루는 역사의 범위는 5현제의 치세가 시작되는 서기 98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까지 1,355년 동안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라도 이 기간 동안의 로마 역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서라면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서기 97년까지의 선행 역사를 도저히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가 건국된 B.C 753년부터 5현제의 치세가 시작되기 직전인 기원후 97년까지 850년의 역사가 자연스레 덧보태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로마 건국 초기의 역사가 상당 부분 자세하게 다뤄진다. 또한 건국 초기의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에 이를 때까지 로마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숱한 인물들도 수없이 자주 등장한다.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가문의 영웅들을 비롯하여,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브루투스, 카토, 키케로, 아우구스투스 등이 여러 차례 기번의 붓끝에서 되살아 난다.

 

로마의 건국으로부터 제국의 멸망까지 다루는 데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또다른 역사는 수많은 이민족들의 역사다. 여기에 포함되는 국가와 민족들은 쉽게 말하자면 아메리카 신대륙을 빼고는 거의 다 포함된다고 봐도 좋다. 로마 제국의 영토와 겹쳤던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이란, 이라크, 사우디 정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는 물론 저 멀리 볼가 강과 돈 강 너머에 살았던 러시아 대륙, 티무르가 지배했던 중앙아시아, 징기스칸의 몽골, 무굴제국의 인도, 중국은 물론 '고려(Corea)'까지도 두루 자세히 언급된다.

 

이 작품이 다루는 역사적인 무대의 시공간적인 방대함이야말로 외형적으로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라는 작품이 전 인류의 전 지구적인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훨씬 더 방대한 시공간을 자랑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마의 기나긴 역사에 대한 기번 특유의 깊이 있는 고찰, 로마 제국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았던 수많은 이민족 국가들과의 경쟁에 대한 상세한 연구(게르만족, 사라센족, 페르시아, 몽골족, 타타르족, 투르크족 등), 십자군 전쟁에 관한 자세한 연구,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과 종파 간의 갈등, 그리스도교 세력들과 이슬람 세력들과의 분쟁 등을 포함하는 기번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연구는 토인비의 작품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방대함과 깊이를 자랑한다.

 

기번의 역사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특별한 감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저자의 방대한 독서 경험과 놀라울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이다. 그는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기록해 나가는 동안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역사적 장소와 장면을 묘사할 때마다 거기에 딱 어울릴 만한 또다른 인물이나 장면들을 다른 책에서 끌어와 절묘하게 겹쳐 놓는다. 똑같은 무대에서 주인공만 바뀐 채 500년 혹은 1000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지는 '영웅들의 행위'를 비교하는 재주야말로 기번을 따를 역사가가 없을 듯하다. 그가 로마의 역사를 설명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불러 내는 인물들은 역사상으로 실재했던 영웅들도 많지만, 특별히 문학작품들로부터 인용하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이다. 단순히 로마 제국의 영토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와 겹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번의 호메로스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웅숭깊은 데가 많다. 훗날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를 설명하는 몇몇 대목들만 보더라도 그는 호메로스를 얼마나 자주 불러냈던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였던 율리아누스가 제위에 오르기 전, 사실상 볼모나 마찬가지 상태에서 로마 황제였던 사촌 형님 콘스탄티우스와 함께 전차를 타고 궁정으로 귀환하는(사실상 끌려가는) 동안 마음 속으로 암송했던 싯구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운데 어떤 대목이었다는 식의 설명은 얼마나 놀라운가. 율리아누스 황제는 특히 웅변 실력도 탁월했는데, '호메로스의 연구'를 통해 그런 실력을 갈고 닦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메넬라우스의 단순하고 간결한 화법, 겨울의 싸락눈처럼 쏟아져 나오는 네스토로의 달변, 오뒷세우스의 감상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웅변을 모방하는 방법이야말로 율리아누스가 호메로스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라는 식이다.

 

기번이 호메로스를 어떤 식으로 인용했는지 두 대목만 더 소개하고 넘어 가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기 대회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그리스에서는 저명한 이들이 직접 경기에 참가한 반면, 로마에서는 관람객들이 저명한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올림피아 경기장은 부와 공훈,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경기에 출전하는 자가 스스로의 기술과 민첩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 디오메데스와 메넬라오스의 발자취를 따라 전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봄직도 했다.(56쪽)

 

(기번의 주석)

『일리아스』 23권을 읽어 보면 전차 경주의 방법과 예절, 그 열정과 정신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에 관한 학술 논문을 보면 더욱 흥미진진하고 근거가 분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그는 거친 군대 생활을 통해 강인한 심신을 무쇠처럼 단련했다. 스뱌토슬라프는 곰 가죽으로 몸을 감싸고 말안장을 베개 삼아 땅 위에서 잠자곤 했다. 그는 먹는 음식도 거칠고 소박해서 호메로스의 영웅들처럼 고기를(주로 말고기) 석탄에 구워 먹었다. 실전을 거치면서 그의 군대는 안정되고 규율이 잡혀갔다. 대장이 누리는 것 이상의 사치를 감히 누릴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532쪽)

 

(기번의 주석)

『일리아스』 9권에 나오는 아킬레스의 식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서사 시인이 이런 묘사를 했다면 자기 작품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독자들의 비위를 거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서사시는 조화로우며 사어(死語)라서 실감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2700년의 세월을 둔 지금으로서는 고대의 원시적인 풍습에 재미를 느낄 따름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호메로스 다음으로 자주 인용되는 인물들은 고대의 시인, 철학자, 역사가들이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등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와 희극을 쓴 메난드로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 철학자 키케로, 역사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리비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가 대표적이다. 기번과 비교적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도 자주 인용되는데, 손에 꼽을 만한 인물들은 페트라르카, 마키아벨리,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밀턴, 몽테스키외, 볼테르, 데이비드 흄, 루소, 아담 스미스 등이다.(특히 볼테르,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는 기번과 직접적으로 교류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쓴 작품 속의 내용들이 얼마만큼 정교하게 '로마제국 쇠망사'에 녹아드는지는 기번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가령 셰익스피어가 쓴 『헨리 4세』의 주인공은 내란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기 때문에 무너져 가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더라도 도와줄 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런 '놀라운 주석'을 덧붙인다.

 

여러 날 런던에 머무는 동안 마누엘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은 성전에 참여할 준비를 하기에는 프랑스보다도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이 해에 세습 국왕이 왕위에서 쫓겨나 사형을 당한 데다가, 지금의 왕 헨리 4세는 왕위를 성공적으로 찬탈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야망에 대한 벌을 받기라도 하듯이 시기심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헨리 4세는 끊임없이 왕좌를 위협하는 음모와 반역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성전에 직접 참전하는 것은 고사하고 병력을 빌려 줄 여유조차 없었다. 헨리 4세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의 인품을 칭송하며 연일 연회를 베풀어 주기만 할 뿐이었다. 이때 만약 영국의 군주가 십자가를 메는 체 했다면, 그것은 경거한 대의명분을 따르는 시늉으로 신민들의 마음과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394∼395쪽)

 

(기번의 주석)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는 왕이 십자군 서약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에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극을 마친다.

 

(나의 생각)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라는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는 그 작품을 읽고 난 뒤로도 헨리 4세가 다 쓰러져 가는 동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간절한 파병 요청을 받았을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그 작품이 시작되는 부분이 '십자군 전쟁'과 연관된 줄도 전혀 몰랐다. 또한『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면서 헨리 4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될 줄도 몰랐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책의 표지를 뒤집어 펼치면 각 권마다에 해당하는 세계 지도가 펼쳐진다. 겉표지를 벗긴 책의 모습은 왠지 너무 고색창연한 색상이어서 조금은 아쉽다.)

 

이토록 많은 인물들의 작품을 『로마제국 쇠망사』에 절묘하게 버무려 녹여 낸 기번의 박학다식함과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될까. 기번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느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체력뿐만 아니라 책력(冊歷, '책을 읽은 이력'을 뜻하는 나만의 신조어)도 알맞게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기번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 내가 이미 읽었던 책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쁘고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걸 느꼈던가. 기번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 내가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무수한 책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얼마나 의기소침해지고 시무룩해졌던가.

 

이 책을 읽은 감회를 정리하기 위해 '기번의 서재 쪽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언급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기번의 문장력이다. 기번 특유의 지독한 만연체는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없다. 6권을 읽는 동안에 '만연체' 때문에 문장의 정확한 뜻을 해독하는데 애를 먹은 경우가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아마도 기번에게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났다고 믿고 싶다. 그런 문장들만 제외한다면 기번의 독특한 만연체가 독해를 특별히 방해한다거나 작품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리어 특유의 긴 호흡 한 번으로 유장하고도 장중하게 역사를 매조지하는 점에서는 기번의 만연체만큼 멋들어진 역사 서술도 찾기 어렵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기번의 역사책 속에서 가장 매혹적인 문장들은 아마도 '너무나 문학적이거나 철학적인 표현들'을 역사 서술에 서슴없이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점일 듯하다. 그런 문장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등장하는데, 빛나는 명문장들을 일일이 여기에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수도사들은 독방에서 보내는 낮 시간에는 개개인의 신앙이나 열정에 따라 묵도나 통성 기도를 했다. 저녁이 되면 모두 모여서 밤이 되어도 자지 않고 수도원의 공공 예배에 참석했다. 이집트의 맑은 하늘에는 거의 구름이 끼는 일이 없었으므로 정확한 시간은 별의 위치로 정해졌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신호는 투박한 모양의 뿔피리나 나팔을 두 번 울려 광활한 사막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불행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라 할 수 있는 수면마저도 엄격히 제한되었다. 노동도 쾌락도 없는 수도사들의 공허한 시간은 느릿느릿 무겁게 흘러갔으므로,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 그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태양의 지루한 발걸음을 탓했다.(448∼449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3권』

 

 

십자군 전쟁의 일단을 소개하는 대목은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된다.

 

왕실 역사가인 아불페다는 하마 부대에 종군하면서 성전을 직접 목격했다. 아무리 타락한 프랑크인이라 해도 열정과 절망으로 용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들은 열일곱 명이나 되는 대장들의 불화로 갈가리 찢겨 사방에서 술탄의 병력에 제압당했다. 33ㅇ리간의 공방전 끝에 이중 성벽이 이슬람군에게 돌파당하고, 중심 탑도 그들의 공성 무기 앞에 무너졌다. 마말루크인들의 일제 공격에 도시는 초토화되고, 6만 명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죽음 아니면 노예가 디는 운명을 맞았다. 요새에 가까운 템플 기사단의 수도원은 사흘을 더 버텼으나, 대장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며 500명의 기사 중 살아남은 자는 단 열 명이었다. 그러나 부당하고 잔인한 사형 명령에 따라 교수대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점에서 칼에 찔려 죽은 자보다 운이 나빴다. 예루살렘 국왕, 총대주교, 요하네스 기사단의 대장은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바다는 거칠었고 배도 부족했다. 대부분의 도망자들은 키프로스 섬에 닿지 못하고 익사했다. 술탄의 명령으로 라틴인들이 건섫나 도시의 교회와 요새들이 파괴되었다. 탐욕이나 공포심 때문에 여전히 일부 신앙심 깊은 비무장 순례자들에게 성묘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고 했으나, 세계적인 항쟁이 그토록 오랜 세월 메아리쳤던 해변에는 이제 슬픔에 잠긴 고독의 침묵만이 깔렸다.(113∼114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6권』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진두지휘한 끝에 완성된 성 소피아 성당을 묘사한 대목은 또 얼마나 철학적인가!

 

어느 시인은 성 소피아 성당의 초기 모습의 광휘를 보고, 10∼12종의 대리석과 벽옥, 반암의 색상과 음영 그리고 반점까지 하나하나 다 열거하면서, 특히 각 광석의 반점은 자연이 매우 열심을 다하여 다양하게 만들어 낸 것으로 마치 매우 뛰어난 화가가 배합하고 대조시킨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리스도의 승리로 이교도들에게서 빼앗아 온 마지막 노획품으로 이 성당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그 값비싼 돌의 대부분은 소아시아의 채석장, 그리스 본토와 여러 섬들, 이집트, 아프리카, 갈리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 둥근 천장의 빛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했다. 지성소에는 4만 파운드가 넘는 은이 사용되었고, 성스러운 물병들과 제단의 옷들은 순금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보석들로 장식되었다. 이 교회가 땅에서 위로 2큐빗의 높이가 되기 전에 이미 4만 5200파운드의 돈이 소비되었고, 결국 전체 비용은 총 32만 파운드에 이르게 되었다. …… 장엄한 성전은 그 나라의 취향과 종교를 반영하는 칭찬할 만한 기념비이다. 열렬한 신자는 성 소피아가 신의 거처이거나 심지어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물도 성전 바닥을 기는 가장 하찮은 벌레가 만들어 놓은 벌레집과 비교해 보면, 인간의 재주란 얼마나 둔하고 그 수고는 얼마나 하찮은지!(93∼94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펼쳐지는 무수한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두루 살펴보노라면 새삼 인간의 삶이 하찮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그 드넓은 공간이라고 해 봐야 기실 지구에서 충분히 멀리 벗어난 거리에서 바라보면(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그만큼 멀리 떨어진 우주탐사선에 딸린 특별한 눈으로 그런 광경을 생생하게 바라봤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나먼 우주 밖에서 보내온 한 장의 감동적인 사진에 마음을 온전히 다 빼앗긴 채 로마 제국의 드넓은 영토를 한낱 부처님의 손바닥 가운데 일부인 것처럼 하찮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 공간으로 돌아 오자.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도시들과 바다와 강과 산맥들은 우리의 귀에 익숙한 경우보다는 낯선 경우가 훨씬 많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옛 지명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그 이름이 변치 않은 도시들, 가령 로마, 밀라노, 라벤나, 나폴리, 베네치아, 파리,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메카, 메디나 등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쉽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보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터넷을 뒤져야 하는 번거로움도 뒤따랐다.

 

카르타고는 오늘날의 튀니스 북동쪽 도시, 틴기스는 오늘날의 탕헤르, 싱기두눔은 오늘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베로이아는 오늘날 시리아 북부 도시인 알레포, 니시비스는 지금의 터키 누이시빈, 아미마는 지금의 터키 디얄바클, 싱가라는 지금의 이라크 신자라, 안티오크는 지금의 터키 안타키아, 나이수스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니슈, 무르사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오시예크, 크테시폰은 지금의 이라크 테시폰, 트레브는 지금의 독일 트리어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는 작업은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 때도 많았다.

 

수많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이 보상이나 약속을 믿고, 혹은 전리품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혹은 그들이 정복하는 영토는 영원히 그들 소유로 해 주겠다는 보장을 믿고 라인 강을 건넜다. 그러나 임시 방편으로 이렇듯 경솔하게 야만족들의 탐욕을 부추긴 황제는 일단 로마의 비옥한 영토 맛을 본 이 막강한 야만족 동맹군들을 다시 쫓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후회해야만 했다. 이 제멋대로인 도적떼들은 충성과 반역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들이 원하는 재산을 소유한 로마인이라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했다. 통그르, 콜로뉴, 트레브, 보름스, 슈파이어, 스트라스부르크를 비롯한 마흔다섯 개 도시와 그보다 훨씬 많은 마을과 촌락들이 그들에게 약탈당해서 대부분 잿더미로 변했다. 여전히 조상들의 신조를 충실하게 지키던 게르마니아 야만족들은 벽을 쌓고 그 안에 틀어박히는 것을 혐오하면서 그런 곳을 감옥이나 무덤 등으로 불렀다. 그들은 라인 강, 모젤 강, 뫼즈 강변에서 독립 가옥들을 짓고 큰 나무를 쓰러뜨려서 길을 가로막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기습 공격의 위험에 대비했다.(134쪽)

 

(나의 생각)

통그르는 벨기에의 통게렌, 콜로뉴는 독일의 쾰른, 트레브는 독일의 트리어, 보름스와 슈파이어는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 주의 보름스와 슈파이어, 스트라스부르크는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도시로 프랑스어로는 스트라스부르, 독일어로는 스트라스부르크로 불린다. 유럽의 도시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변방의 독자들은 이들 도시가 옛 이름인지 현재 쓰이는 이름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나는 이들 도시 가운데 트리어만 가 봤고, 트리어를 떠난 뒤 스트라스부르크를 그냥 지나쳤던 일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도시들과 산과 강들을 살필 때는 '구글 어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수만 혹은 수십 만의 군대가 건곤일척의 대전투를 벌였던 유명한 장소들이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폐허로 변한 곳도 드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치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장소라고 하더라도 그토록 유명한 전쟁이 과연 로마 제국의 어드메쯤에서 일어났는지를 지구의를 돌려 보듯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현대인들에게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기번이 유럽의 온갖 도서관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채 낯선 고대의 언어들로 쓰여진 수많은 사료들을 뒤지거나, 혹은 고대 여행자들의 온갖 자질구레한 기록들과 지리지(志)들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비교 검토한 끝에 최대한으로 오류를 바로 잡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위치 정보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편리한 검색과 클릭만으로 찾아가기가 미안할 정도다.

 

아무튼 그렇게 드넓은 로마 제국의 영토들을 (기번의 문장과 구글 어스를 따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가끔씩 '나도 이미 가 봤던 장소들'을 마주치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이탈리아의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단 한 번밖에 찾지 못했지만 그런 도시들을 가 보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아찔한 생각마저 들었다.(특히 '제국의 수도'로서 너무나 특별했던 도시인 로마에 대한 기번의 언급은 너무나 상세하면서도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그 도시를 미처 가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엄청난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킬 게 틀림없다.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들, 성 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포로 로마노 등등에 대해서 기번은 얼마나 자주 감탄하며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던가.)

 

프랑스의 경우 수도인 파리밖에 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아비뇽, 아를, 릴, 스트라스부르크 등등의 도시들에 대해 단 하나의 이미지조차 떠올리지 못한다는 건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독일의 여러 도시들(뮌헨, 베를린, 드레스덴, 하이델베르크, 트리어 등)을 여행했던 경험은 기번의 책을 읽는데 특히 도움이 되었다. 이집트의 카이로, 멤피스, 아스완, 리비아 사막 등을 여행했던 경험은 그리스도교의 발달과 이집트 수도원의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데 유익했다.(알렉산드리아를 빠트린 건 두고두고 아쉽다. 기번의 책에서도 이 도시는 특별 취급을 받는다.)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실크로드와 티무르의 무덤을 찾았던 여행 경험은 타타르족의 대활약을 다룬 대목들을 읽을 때 특히 유익했다. 유럽을 여행할 때 구경했던 여러 강들도 독서에 보탬이 됐다. 이집트의 나일 강, 독일의 라인 강, 모젤 강, 엘베 강, 네카 강, 동유럽을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을 여행지에서 만난 경험은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기번의 독서와 결합될 때 한층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지중해, 아드리아해, 북해, 대서양까지도 여행지에 포함시킨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동안에 맞닥뜨리는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이 여전히 내게 단 하나의 이미지도 불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건 로마 제국이 그만큼 드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유럽권의 독자들이 유럽을 이웃나라처럼 쉽사리 드나들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라벤나, 볼로냐, 피사, 파비아, 제노아, 팔레르모 등), 스페인(바르셀로나, 톨레도, 발렌시아, 코르도바, 세르비아, 그라나다 등)과 포르투갈(리스본),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들(알렉산드리아, 트리폴리, 카르타고, 탕헤르 등), 그리스(아테네, 크레테 등), 터키(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플, 니케아, 에페수스, 안티오크, 알레포 등),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메카, 메디나, 바그다드,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흑해, 홍해, 카스피해 등등 수많은 도시들과 강과 바다가 내겐 여전히 미답의 상태로 남아 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이제 다시 기번의 책으로 들어가 보자.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흔히 '기번의 잡담'이라고 불리는 저자의 각주가 엄청나게 붙어 있다. 기번이 원본에 달아놓은 깨알같은 각주는 무려 8,3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 완역본 기준으로 따져 보더라도 한 페이지에 평균 2개가 넘는 각주가 딸려 있는 셈이다. 영문판조차 이 방대한 주석이 부담스러워 4,700여 개로 대폭 줄인 '버리 판'이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완역본이라고 자부하는 민음사 판본 또한 이 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무튼 기번의 각주가 너무나 방대한 까닭에 번역자의 주석이 단 하나도 붙지 않는 건 아쉽다. 온갖 함축과 비유가 가득 담긴 기번 특유의 문장들에 대해 '번역자의 주석' 하나 없이 독자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책을 모조리 읽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적잖은 선행 독서를 요구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유럽의 지리뿐만 아니라 종교, 문화, 역사 등에 두루 생경할 수밖에 없는 비유럽권 독자들이 기번의 역사책을 능숙하게 독파하기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선행 과제로서 다음 두 가지를 권장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유럽과 동유럽을 적어도 두세 번쯤은 여행할 것. 많을수록 좋으니 서양 고대의 이름난 고전들을 최대한 많이 읽을 것. 물론 이 책부터 먼저 읽고 난 뒤에 강렬한 자극을 받고 나서 서둘러 유럽 여행길에 오르거나, 서양 고전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대한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말미마다 적어 두었던 메모를 보노라니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풍성했던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까마득한 옛날 <세계사 수업 시간>에 주마간산 격으로 배웠던 온갖 세계사적 사건들을 기번의 책을 통해 비로소 소상하게 알게 되는 건 '기본 소득'일 뿐이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오게 되었는지, 암살자(assassin)라는 단어가 페르시아의 전멸한 종교 분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산 마르코 대성당을 장식하는 네 마리의 청동 기마상은 언제 어떤 경로로 베네치아로 옮겨 오게 되었는지, 풍차의 기원, 화약의 발명과 사용, 인쇄술의 발명, 제지술의 전파, 나침반의 발견, 전서구의 도입, 체스 게임의 기원, 결투의 기원 등에 관해 박학다식한 역사가로부터 명쾌하고도 상세한 '역사적 설명'을 듣는 건 뜻밖의 소득이다. 또한 숱한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남긴 촌철살인의 명연설이나 위대한 인물들이 남긴 주옥 같은 대화나 기록들은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교훈적이고 훌륭하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1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2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3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6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로마제국 쇠망사』는 단지 우리가 교실에서 배웠던 역사의 큰 물줄기들에 관한 역사적 고증과 고찰만 다루는 책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로마제국 쇠망사』에 담긴 무수한 대사건들만 따로 떼놓고 보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을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가 웅장한 건축물들로 장식된 과정,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로마제국 재통일과 그리스도교 공인 과정,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에 나타난 다양한 분파들간의 분쟁,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 편찬과 정복 사업들, 이슬람교의 발생과 전파 과정, 십자군 전쟁의 발생 원인과 진행 경과, 징기스칸의 몽골족과 티무르의 타타르족 서정(西征), 동로마 제국의 쇠락과 오스만 제국의 부상,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제국의 소멸 등은 그 자체로 인류 역사의 대사건들임엔 틀림없지만, 하루 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머나먼 과거에 일어났던 온갖 거창한 사건들을 명명하는 타이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낸 건 결국 사람이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 자신의 시대를 영광스럽게 장식했는지 혹은 오욕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읽는 또다른 중요한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욕망 가운데 가장 강렬하다는 권력욕과 성욕과 재물욕을 위해 제위 찬탈은 물론 골육상쟁을 마다않는 온갖 인간 군상들의 우행과 만행, 황제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오로지 개인의 뒤틀린 욕망에만 허비해 버린 한심스런 제왕들의 언행들을 통해 기번은 끊임없이 인간 행위의 불완전성과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인류의 위대한 예술혼들이 빚어낸 온갖 찬란한 예술품들과 저작들과 건축물들이 한낱 종교적 편견과 무지 때문에 마구 짓밟히고 불태워지고 폐허로 변한 모습 앞에서 기번은 얼마나 탄식했던가. 인간의 무지와 맹목과 편견으로 빚어진 어리석은 행위들을 이만큼 장구한 세월에 걸쳐 빠짐없이 끌어모은 역사책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렵지 싶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에드워드 기번이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상상으로도 접근하기가 어려운 '칼리프의 삶'을 역사 연구에만 몰두했던 자신의 삶과 대비해 놓은 다음 이야기는 누구라도 한번쯤 곱씹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압달라만 3세 대왕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왕후 제흐라를 위해 코르도바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도시와 궁전, 정원을 조성하였다. 모든 것을 완성하는 데 25년이라는 세월과 300만 파운드 이상의 돈을 썼는데, 인색함 없이 자신의 취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왕은 당대 최고 기술의 조각가와 건축가인 콘스탄티노플의 예술가들을 초빙했다.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만든 1200개의 기둥은 장식적인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알현실의 벽면은 황금과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고, 중앙에 있던 거대한 연못 주위는 동물과 새의 진기하고 값비싼 조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 그런데 압달라만의 궁전에는 왕후와 후궁, 흑인 환관의 수가 무려 6300명에 달했다. 압달라만이 출정할 때면 1만 2000명의 기병이 그를 호위했는데 병사들의 언월도와 허리띠에는 금이 박혀 있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욕망은 가난과 종속으로 끊임없이 억압을 받지만 전제 군주에게는 무수히 많은 목숨과 노동력이 바쳐지는데, 전제 군주가 세운 법은 맹목적으로 집행되며 그가 바라는 것은 즉시 충족된다. 그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대로 압도된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냉정하게 판단한다 해도 당시 왕족들이 누리던 보살핌과 안락함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완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이가 지극히 드물 것이다. 그래서 압달라만의 경험을 빌려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가 선보인 호사스러움은 우리의 감탄과 선망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면 이 칼리프가 죽은 뒤 그의 개인 방에서 발견된 믿을 만한 문서를 여기에 옮겨 보겠다.

 

나는 지금까지 약 50년 동안 평화와 승리 속에서 제국을 통치해 왔다. 백성들은 나를 사랑하고 적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동맹국은 나를 존경한다. 부, 명예, 권력, 쾌락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어서 지극히 행복하니, 지상에는 내가 누리지 못할 그 어떤 축복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온전히 내 몫이라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을 꼽아 보았더니 겨우 14일이었다. 오, 사람들이여! 현세의 것에 대해서 그 어떤 확신도 갖지 말지어다!

 

(390∼391쪽)

 

(기번의 주석)

솔로몬이 이 세상의 덧없음에 대하여 한탄했던 이 고백과(수도원장의 장황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시를 읽어 보라.) 세그헤드 황제의 행복했던 열흘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대해 중상모략하려는 자들에 의해 자랑스레 인용될 것이다. 이들의 기대는 과도하고 이들이 어림하는 정도는 공정하지 않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했던 시간은 스페인의 칼리프가 계산한 얼마 안 되는 숫자보다는 훨썬 더 많다. 그리고 나는 주저함 없이 덧붙여 말할 수 있는데, 그 시간 중 상당 부분이 지금의 글을 쓰는 동안에 느꼈던 행복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오래 전부터 읽기를 열망했던 『로마제국 쇠망사』는 어느덧 다시 책장으로 되돌아갔고, 이 책을 읽은 감회를 쓰는 작업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아무리 고생스럽게 이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나에게 떡 하나 사 주지 않았다.'고 장난스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기번이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그토록 힘겹게 연구하고 노력하여 웅편거작을 완성하는 동안에 '칼리프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날들을 행복을 느꼈듯이, 쉽사리 읽기 힘든 기번의 대작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다른 책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남모르는 희열을 느끼며 그런 즐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할지도 모르겠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오래도록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꿋꿋이 버티던 『로마제국 쇠망사』가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에서 어느덧 '이미 읽은 책'으로 변신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흐뭇해지니 말이다.

 

 - 내가 처음으로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은 건 2005년 무렵 대광서림판 축약본을 통해서였다.

    ☞ https://blog.aladin.co.kr/oren/624784

 

에드워드 기번은 이 대작을 끝맺는 글에서조차 '자신의 불완전함'과 자료 부족'을 탓했다. 로마 제국과는 너무나 먼 데서 태어나고 자란 일개 변방의 독자로서는 '지리적 불리함'과 더불어 '이해력 부족'과 '기억력 부족'을 탓하고 싶은 생각부터 앞선다.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담은 역사서를 단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이해했으며 또 앞으로 얼마만큼이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 대작을 읽고 나면 다른 작품들이 일순간 얄팍해 보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렇게 힘이 불끈 치솟을 때 해치울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리비우스의 로마사? 몸젠의 로마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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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6-29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정말 oren님의 치열한 독서는 귀감이 됩니다..... 절로 고개가 다 숙여지네요. 진짜 숙였어요....

oren 2019-06-29 13:54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이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완성시킨 걸작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두고두고 변치 않는 듯합니다.^^ 기번이 기울였던 엄청난 노력들에 비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노고쯤이야 너무나 조촐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볼 때마다 기번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Angela 2019-06-29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쾌한 정리와 설명까지~대단하십니다. 몸젠의 로마사는 금방 해치우시겠어요~^^

oren 2019-06-29 14:06   좋아요 0 | URL
몸젠의 로마사는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아우구스투스 시대까지‘ 다룬 역사책이어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는 시대적으로 전혀 겹치지 않아서 언젠가는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도 조만간 읽어볼 작정인데, 오래 전부터 숱한 인물들이 리비우스를 두고두고 칭송한 걸 보더라도(플루타르코스, 몽테뉴, 기번, 마키아벨리 등등) 그를 오래도록 외면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Nussbaum 2019-06-29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 님 ! 일단 엄청난 인내의 시간에 박수를 드립니다. 길고 긴 텍스트와 함께한 시간과 마음의 공간은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조만간 저도 뭔가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약간의 두려움이 앞서네요 ^^

oren 2019-06-29 14:15   좋아요 1 | URL
Nussbaum 님 반갑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생각보다는 진도가 너무 잘 나가는 책이었답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을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느라 상당한 시간들이 소요되긴 했지만요. 아무래도 기번의 책에는 그 흔한 지도 한 장이나 그림 하나 곁들여진 게 없으니까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읽은 작품들을 제때 정리하지 않고 그냥 넘기고 나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가 되더라고요. 아무쪼록 Nussbaum 님께서도 뭔가 정리하시고자 계획중인 일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06-30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작을 치열하게 읽으시고 대작같은 페이퍼를 쓰셨네욧! 와우! 오렌님 근데 서재에 묵직한 두개의 그 무엇은 스피커인거죠???

oren 2019-06-30 09:53   좋아요 1 | URL
상상력도 놀라우셔라! 저 외관만 그럴싸한 수납장 문짝을 스피커로 둔갑시키다니요!

저 두 문짝은 책장 수납장과 문짝 꼭다리일 뿐입니다요.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저 문을 열어봤더니 온갖 잡동사니가 한가득이네요..

썬글라스, 벨트, 명함, 여행용 트렁크 자물쇠, 옛날 사진, 워크맨, 잡주머니, 경조사용 봉투, 연하장, 공학용 샤프 계산기, 필통, 수첩, 화투 2목, 알라딘 도서구입 영수증, 책 띠지 수백 개, 볼펜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잘한 것들이 들어앉아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