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기에

 

안나는 자신이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관점에서 보아도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슬픔은 그것이 혼자만의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브론스키와 나눌 수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불행은 주로 브론스키 때문이었는데도 그 자신은 그녀와 아들이 만나는 문제를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여기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심연을 그가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 문제가 언급될 경우 그의 차가운 태도 때문에 자신이 그를 증오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기에 아들에 관한 모든 것을 그에게 숨겼다.(619∼620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처음에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그러한 것들이 그를 매혹했지만

 

브론스키가 객실에 돌아왔을 때, 안나는 그때까지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그가 나가자마자 곧 어떤 부인이 찾아와 그녀와 함께 나갔다는 것이다. 그녀가 어디 가는지 말도 없이 나가 버린 것,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 아침에도 자기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다녀온 것, 이 모든 것들이 오늘 아침 이상할 만큼 흥분해 있던 그녀의 얼굴 표정이며, 야쉬빈 앞에서 그의 손에 든 아들의 사진을 거의 잡아채다시피 할 때의 그 적대적인 태도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그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응접실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안나는 혼자 돌아오지 않고, 친척 아주머니인 노처녀 오블론스카야 공작 영애를 데리고 왔다. 그녀가 바로 아침에 와서 안나와 함께 쇼핑을 하러 나간 그 부인이었다. 안나는 마치 브론스키의 근심스러운, 뭔가 캐묻는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오늘 아침 그녀가 무엇을 샀는지 그에게 명랑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는 그녀 안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시선이 얼핏 그에게 머무를 때면, 그 빛나는 눈동자 속에 팽팽히 긴장된 주의가 엿보였고, 말과 동작 속에는 신경질적인 민첩함과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에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그러한 것들이 그를 매혹했지만, 이제는 그를 불안하게 하고 놀라게 만들었다.(640∼64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브론스키는 자신의 처지를 일부러 이해하지 않으려는 안나의 태도 때문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느꼈다. 그 감정은 그녀에게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를 표현할 수 없어 더욱 커졌다. 만약 자신의 생각을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이랬을 것이다. '그런 차림으로 누구나 아는 공작 영애와 함께 극장에 간다는 것, 그것은 곧 타락한 여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교계에 도전하는 것, 즉 사교계와 영원히 인연을 끊겠다는 것을 의미하오.'

 

그는 그녀에게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가 그것을 모를 수 있지? 도대체 그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에 대한 존경이 줄어드는 동시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645쪽)

 

(나의 생각)

브론스키와 안나 사이에 일어난 온갖 다양하고도 미세한 감정과 태도의 변화들을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내는 톨스토이의 능력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그가 작중 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온갖 사건들에 대해서 얼마나 빈틈없고 주도면밀하게 그려내고자 애썼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놀랍기만 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카푸아적인 무언가가

 

지금 그의 생활에는 뭔가 부끄럽고 연약하고 그가 일컫는 대로 카푸아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좋지 않아. 이제 곧 석 달이 돼. 하지만 난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난 오늘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일을 붙잡았지. 하지만 이게 뭐야? 겨우 시작만 하다 집어던지고 말았잖아. 평소에 하던 일마저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어.(523∼524쪽)

 

주석) 카푸아적인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가 쓴 라마사에 따르면, 한니발의 군대는 2차 포에니 전쟁 중에 나폴리 부근의 카푸아에서 겨울을 보낸 후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유약해져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1870년대의 신문과 잡지는 나폴레옹 3세의 파리에 대해 '카푸아'라는 용어를 자주 인용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여기서 '카푸아'라는 용어를 특별한 의미로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자신의 무기력한 시기를 '카푸아적'이라고 언급했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아내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떠난 것과 거의 동시에, 관리로서 가장 쓰라린 사건이 발생했다. 즉 승진이 멈춘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실이었고,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자신은 아직도 그의 출세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스트레모프와의 충돌 때문이든, 아내와의 불행 때문이든, 아니면 단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그에게 예정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든, 그의 관리 경력이 끝났다는 사실은 올해 들어 모든 사람들의 눈에 분명해졌다. 그는 아직 요직을 맡고 있었고 수많은 위원회와 회의의 위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모해 버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가 무엇을 제안하든, 사람들은 마치 그가 제안하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듯한 태도로 들었다.(586∼587쪽)

 

(나의 생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언젠가는 닥치기 마련이다. 아무도 그런 느낌을 톨스토이처럼 리얼하게 표현할 수 없을 뿐.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고양이와 쥐 놀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자세를 바꾸는 것을 방해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리를 꼰 채 똑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고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다리를 꼰 채 그렇게 앉아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리는 경련을 일으키고 그가 뻗고 싶어 하는 쪽으로 뒤틀릴 것이다. 바로 그것이 브론스키가 사교계에 대해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사교계가 그들에게 빗장을 걸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사교계가 변하지 않았는지 어떤지, 그들을 받아들일지 어떤지를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사교계가 그에게는 문을 열어 줄지라도 그녀에게는 굳게 닫아걸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고양이와 쥐 놀이처럼, 그를 위해서는 들린 손이 안나 앞에서는 곧바로 내려온 것이다.(612∼61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그는 그들처럼 무심한 타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서 훌륭한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경에서 빌라도의 성난 얼굴과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얼굴을, 배경에서 빌라도의 종들의 모습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시하는 요한의 얼굴을 보았다. 그토록 무수한 탐구, 그토록 무수한 실패와 수정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간직한 채로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인물들, 그에게 그토록 많은 고통과 기쁨을 준 각각의 인물들,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재배치한 그 인물들, 그가 그토록 힘들게 성취한 색채와 명암의 음영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수천 번이나 되풀이된 진부한 것으로 보였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얼굴이, 그 그림의 중심이자 그가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토록 환희를 불러일으켰던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들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눈에는 티치아노, 라파엘, 루벤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병사들과 빌라도의 휼륭한 모사가 보였다. 모든 것이 진부하고 허술하고 구태의연하게, 그들이 화가 앞에서 거짓으로 정중한 말들을 늘어놓다가 자기들끼리 남았을 때 그를 불쌍히 여기고 조롱한다 해도, 그는 그들을 탓할 수 없을 것 같았다.(496∼4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직한

 

레빈이 결혼한 지도 석 달이 지났다. 그는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걸음걸음마다 예전의 공상에 대한 환멸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레빈은 행복했다. 그러나 일단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행복이 그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걸음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행복하게 떠다니는 보트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직한 것을 경험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시도 잊지 말고, 발 아래에 물이 있다는 점, 노를 저어야 한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하면 아프다는 점, 보고만 있을 때는 쉬울 것 같지만 그것을 직접 해 보면 무척 즐겁기는 해도 굉장히 힘들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51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독신일 땐 남들의 결혼 생활, 그들의 자질구레한 걱정과 다툼과 질투를 보며 그저 속으로 그들을 업신여기듯 비웃기만 했다. 그의 확신에 따르면, 장차 그의 결혼 생활에는 그와 비슷한 문제가 결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적인 형식까지도 모든 면에서 남들의 생활과 완전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와 아내의 생활은 별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예전에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하지만 이제는 그의 의지에 반하여 대단히 확고한 중요성을 띠게 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레빈도 그 사소한 것들을 정돈하는 일이 결코 예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빈은 자신이 가정생활에 대해 가장 정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모르게 가정생활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고 사소한 걱정거리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될 사랑의 쾌락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일을 해야 했고 사랑의 행복 속에서 휴식을 얻어야 했다. 그녀는 사랑받아야만 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그 시적이고 아름다운 키티가 어떻게 가정생활의 첫 주가 아니라 첫날부터 테이블보에 대해, 가구에 대해, 손님용 매트리스에 대해, 요리사와 식사 등등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살필 수 있는지 놀라웠다. …… (51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앙갚음을 하려고 때린 사람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결혼식 후 그녀를 교회에서 데리고 나올 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던 것을 그제야 비로소 분명히 이해했다. 그는 그녀가 그에게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제는 어디까지가 그녀이고 어디서부터가 자기인지 모르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 순간 경험한 둘로 나뉘는 괴로움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화를 냈지만, 바로 그 순간 그는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곧 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그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후 화가 나서 앙갚음을 하려고 때린 사람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자신이 무심코 자신을 친 것일 뿐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고 그저 아픔을 참으며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516∼51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영광과 위험이 따르는 타슈켄트로의 부임을 거절한다는 것, 그것은 브론스키의 예전 사고방식에 따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를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상급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전역해 버렸다.

 

한 달 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아들과 함께 집에 남았고, 안나는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브론스키와 함께 외국으로 떠나 버렸다.(418∼41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너무나 기묘해

 

그녀는 자신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지인들을 비롯해 그녀가 알고 지낸 모든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에게 단 한 번뿐인 그 엄숙한 순간에 그들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렸다. 그때 그들은 키티와 똑같이 마음속에 사랑과 희망과 두려움을 품은 채 관을 쓰고서 과거를 버리고 신비한 미래로 들어섰다. 그녀는 기억 속에 떠오른 그 신부들 가운데 사랑하는 안나도 떠올렸다. 그녀는 얼마 전 안나가 이혼할 것 같다는 소식을 세세히 전해 들었다. 그녀도 똑같이 오렌지 꽃과 베일에 싸인 순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너무나 기묘해." 그녀는 중얼거렸다.(46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에게 들러붙는 사람을 떨쳐 버렸을 때 느꼈음직한

 

남편에게 불행을 준 사악함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마음속에 혐오와 비슷한 감정,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에게 들러붙는 사람을 떨쳐 버렸을 때 느꼈음직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다. 물론 그것은 나쁜 짓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었고, 그런 무서운 일들은 세세히 기억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때 불화의 첫 순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위안이 될 만한 한 가지 생각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과거의 모든 일들을 떠올릴 때면 그 생각을 기억해 냈다. '내가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하지만 난 그 불행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 나 역시 괴로워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난 내가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던 것을 잃었어. 난 명예와 아들을 잃었단 말이야. 난 나쁜 짓을 했어. 그들과의 이별로 괴로워할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는 아무리 진심으로 괴로워하려 해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수치심도 전혀 없었다.(478∼47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것


사교계의 눈에 그의 태도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 그에 대한 아내의 증오, 그의 마음과는 반대로 그의 삶을 지배하며 자신의 의지를 수행할 것과 그와 아내의 관계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그 광폭하고 신비로운 힘의 위력이 그의 앞에 지금처럼 명백히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는 사교계 전체와 아내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평온과 헌신적 행위의 모든 공로를 파괴하는 적대감이 마음속에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안나를 위해서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기꺼이 그들의 관계를 다시 허락할 생각이었다. 단 아이들을 부끄럽게 하거나 아이들을 잃거나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일이 없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녀를 절망적이고 치욕스러운 처지에 몰아넣고 그 자신에게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앗아 가는 이혼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선하게 보이는 것들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나쁜 일인데도 그들의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을 강요하리라는 것을.(398쪽)

 

(나의 생각)

이것이야말로 '오쟁이진 남편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처지'를 몽테뉴만큼 재치있게 묘사한 사람도 찾기 어렵다. 『마담 보바리』를 읽을 때 찾아봤던 대목을 다시 또 읽게 된다.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

사실을 밝혀 주는 자가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방법과 도움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알려 주는 일이 큰 해독이며, 사실을 밝힌 공로보다도 더 마땅히 칼을 맞을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자와 마찬가지로 애써 가며 사실에 대비하는 자를 비웃는다.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수치는 지워질 수 없다. 한번 걸리면 영원히 걸린 것이다. 그것에 징벌을 주면 잘못한 일 자체보다도 더 사실을 드러내 놓게 되는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의문을 풀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불행을 드러내고 비극의 무대 위에 나발을 불어 대면 보기 좋은 꼴이다. 그것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착한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롭고도 쓸모없는 지식은 피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는 먼저 집에 사람을 보내서 아내에게 자기의 도착을 알려 주며 엉겁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나는 점잖게 그리 꼴 흉할 것 없이 아내에게 속고 있는 사람 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활달한 대장부는 그 때문에 동정을 받아도 경멸은 받지 않는다. 그대의 인격이 불행을 틀어막게 하라. 점잖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정을 저주하게 하라. 그대를 모독한 자는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게 하라. 그리고 천한 자, 귀한 자 할 것 없이 이런 의미에서 소문나지 않은 자인가?

수많은 군대를 지휘한 장군까지도 ······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나은 자들도 그렇다, 이 못난아.    (루크레티우스)

그대 앞에 하고많은 점잖은 인물들이 이런 책망에 걸려 드는 것을 보는가? 다른 데서는 그대 일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마 부인들까지도 그대 일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여자들은 금실 좋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 말고, 다른 무엇을 조롱하기를 더 즐기는가? 그대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마누라를 건드렸다. 그런데 본성은 모두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로 변화무상하다. 이런 사건이 잦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고민거리가 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다. 못난 격정이지만, 그것은 또 남에게 상의할 수 없는 일이니 딱하다.

운명은 우리에게 불평을 들어 줄
귀마저 내주기를 거절한다.    (카툴루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의 관대함 때문에 그를 증오해요

 

"여자들이 사람을 그 사람의 악덕 때문에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안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난 그를 그의 미덕 때문에 증오해요. 난 그와 살 수 없어요. 알겠어요? 그의 생김새가 내게 육체적인 영향을 미쳐요. 난 냉정을 잃고 말죠. 난 도저히, 도저히 그와 살 수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난 불행했고,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에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상상도 못했어요. 믿을 수 있겠어요? 그 사람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의 손톱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그를 증오하죠. 그의 관대함 때문에 그를 증오해요.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그녀는 죽음을 입에 담으려 했다. 그러나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그녀가 끝까지 말하지 못하도록 말을 가로막았다.(40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안나는 이미 이런 만남을 각오하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열정이 그녀를 삼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는 그를 진정시키고 자신도 진정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그의 감정이 그녀에게 옮겨 갔다. 그녀는 입술이 너무나 떨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요. 당신이 날 차지했어요. 그러니 난 당신의 것이에요." 마침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대혀 이렇게 말했다.

 

"진작 이렇게 됐어야 해!" 그가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렇게 돼야만 해. 이제야 그걸 알겠어."

 

"당신 말이 맞아요." 그녀는 점차 창백해져 가는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뒤이어 이 속에도 뭔가 끔찍한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지나갈 거야. 모든 게 끝나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해질 거야.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속에 무언가 끔찍한 것이 있기 때문이지." 그는 고개를 들고 튼튼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41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