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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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떼를 쓰다 멈춘 아이에게 하는 말

 

'잘했어!' 라는 그의 말에는 뭔가 모욕적인 것이 있었다. 마치 떼를 쓰다 멈춘 아이에게 하는 말 같았다. 더욱더 모욕적인 것은 죄를 지은 듯한 그녀의 태도와 자신에 찬 그의 태도 사이의 대조였다. 그래서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기 안에서 투쟁의 욕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그것을 억누르고 똑같이 밝은 태도로 브론스키를 맞이했다.(40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녀는 첫 번째 객차의 중간 지점과 자신이 나란해진 순간 그 아래로 몸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팔에서 끌어내리던 빨간 손가방이 그녀를 붙드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다. 기차의 중간 지점은 그녀를 지나쳐 버렸다. 수영을 하러 물 속에 들어갈 준비를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십자가를 긋는 친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속에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던 암흑이 찢어지고, 일순간 과거의 모든 눈부신 기쁨과 함께 삶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객차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중간 지점이 그녀와 나란히 온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빨간 손가방을 내던지고는 어깨 사이에 머르를 푹 숙인 채 객차 밑으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는 마치 곧 일어날 자세를 취하려는 듯 경쾌한 동작으로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한 짓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덪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소한 농부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 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455∼456쪽)

 

(나의 생각)

소설이 창조한 인물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인정받는 안나 카레니나가 이토록 안타까운 모습으로 투신 자살하는 모습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혼란스런 감정을 일으킨다.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다 싶기도 하고, 오죽 힘들었으면 기차에 몸을 던졌을까 싶기도 하고, 자살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안나의 모습을 보고 말렸더라면 그 후로는 또 어떤 드라마틱한 삶을 이어나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독자들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안나의 마음 속에는 (그 짧은 순간까지도)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갔을까, 작가 또한 이 대목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들을 고치고 또 고쳤을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거듭 음미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기차역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래서 그는 그녀를 자신의 뇌리에 떠오르던 마지막 순간의 그녀같이 잔혹하고 복수심에 찬 모습이 아니라, 기차역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신비롭고 매혹적이고 사랑 가득하고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남에게 행복을 주던 그 모습으로 기억하려 애썼다. 그는 그녀와 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그러한 순간은 독에 오염되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그러나 씻을 수 없는 회한을 남긴 채 실현되어 버린 그녀의 의기양양한 협박만을 기억했다.(486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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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의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곳

 

"그 애는 모든 걸 자네의 관대함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어. 그 애가 자네에게 구하고 간청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 애가 처한 그 참기 힘든 처지에서 그 애를 끌어내 달라는 거야. 그 애는 이미 아들도 바라지 않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잠시만이라도 그 애의 입장이 되어 봐. 그런 처지에 있는 그 애에게 이혼의 문제는 삶과 죽음이 달린 문제야. 만약 자네가 예전에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그 애도 자신의 처지와 타협하고 시골에서 살았을 거야. 하지만 자네는 이미 약속을 했고, 그래서 그 애도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거야. 그리고 벌써 여섯 달 동안 그 애는 매일같이 자네의 결정을 기다리며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의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곳에서 말이야. 그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죽음을, 혹은 자비를 약속하면서 그 목에 몇 달 동안 계속 올가미를 씌워 두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 애를 불쌍히 여겨 줘.(365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화합과 불화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396쪽)

 

(나의 생각)

이 대목은 이 소설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문장과 서로 묘하게 호응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래서 안나는 질투하면서 그에게 분개했고 모든 것 속에서 분개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놓인 모든 괴로움에 대해 그를 비난했다. 그녀가 모스크바의 하늘과 땅 사이에서 기다림으로 보낸 그 고통스러운 처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꾸물거리고 주저하는 것, 자신의 고독,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처지에 놓인 모든 괴로움을 이해하고 나를 그 속에서 구해 줄 텐데……. 그녀가 시골이 아닌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 것도 그의 잘못이었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시골에 파묻혀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교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그런 끔찍한 상황에 몰아넣고도 그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39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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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이건 사는 게 아냐.

 

…… 그는 자기에게 다른 의무가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 줄 기회를 얻어 기쁜 거야. 난 그것을 알아. 나도 그것에 동의한단 말이야. 하지만 왜 내게 그것을 증명해야 하지? 그는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내게 증명하고 싶어 해. 하지만 내게 증명 따윈 필요 없어. 내게 필요한 건 사랑이야. 그는 이곳 모스크바에서의 나의 생활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이해했어야 해. 과연 내가 살아 있기나 한 걸까? 이건 사는 게 아냐. 그저 결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계속 지연되고 또 지연되는 결말을……. (324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일상 속의 틈새

 

그는 그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1년 전 현청 소재지의 어느 호텔에서 니콜라이 형의 임종 때 일어난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이었고, 이것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슬픔이든, 이 기쁨이든 다 똑같이 삶의 일상적인 조건을 벗어나 있었고, 그것들은 마치 숭고한 무언가가 엿보이는, 일상 속의 틈새와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똑같이 괴롭고 고통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영혼은 그 숭고한 것을 직관할 때와 똑같이 불가해한 방식으로 예전에는 결코 파악할 수 없었던 경지까지, 이미 이성이 쫓아갈 수 없는 곳까지 솟아올랐다.(34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하지만 아기는?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아기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348쪽)

 

(나의 생각)

자신의 분신이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났고, 새로운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레빈이 겪는 '심리적인 혼란'을 묘사한 이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기도 하고, 짐짓 그런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이 전혀 문외한이라는 듯이 능청대는 것 같기도 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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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브론스키는 그녀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린 그 갈망, 즉 그에게 사랑받고자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녀가 그를 사랑의 올가미로 얽매려 애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올가미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그는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다기보다 그것이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지 아닌지 더욱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만약 점점 더 강해져가는 이런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모임이나 경주를 위해 도시로 가야 할 때마다 법석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브론스키는 자신의 생활에 충분한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택한 역할, 러시아 귀족의 핵을 이루는 부유한 지주의 역할은 그의 취향에 아주 잘 맞았을 뿐 아니라, 그렇게 반년을 보낸 지금은 그에게 점점 더 커져 가는 만족을 주었다.(19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당신은 날 위협하는 것 같군. 좋아, 나도 당신과 떨어지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브론스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 부드러운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에는 차가운 눈빛뿐 아니라 쫓기느라 잔혹해져 버린 인간의 사악한 눈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그 눈빛을 보았고, 그 의미를 올바로 짐작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재앙이야!'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인상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았다.(24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귀머거리의 감정

 

연주 내내 레빈은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귀머거리의 감정을 맛보았다. 곡이 끝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팽팽하게 긴장된,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한 집중으로 지독한 피로를 느꼈다.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놀랍군요!" 페스초프의 굵은 베이스 목소리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굉장히 생생하지요. 조형적이랄까요, 색채감도 풍부하더군요. 코델리아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 있잖습니까, 여성이, das ewig Weibliche가 운명과 싸우는 부분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코델리아가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레빈은 그 환상곡이 광야의 리어왕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을 까맣게 잊고 머뭇머뭇 물었다.

 

"코델리아가 나오잖습니까……. 여기 보십시오!" 페스초프는 손에 들고 있던, 새틴처럼 매끄러운 프로그램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고 그것을 레빈에게 건넸다.

 

그제야 레빈은 환상곡의 제목을 기억해 내고 프로그램의 뒤쪽에 실린, 러시아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시를 서둘러 읽었다.

 

"이것이 없으면 좇아갈 수가 없습니다." 페스초프는 레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말상대가 자리를 뜨는 바람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283쪽)

 

주석) das ewig Weibliche : '영원한 여성, 혹은 영원한 여성성.'(독일어)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연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비유로 언급된다. 한편 괴테와 동시대인인 베토벤이 죽고 난 뒤, 그가 das ewig Weibliche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 세 통이 발견되었다. 베토벤의 편지 대상이 된 이 'das ewig Weibliche'은 우리나라에서 '불멸의 연인'이라는 호칭으로 번역되었다.

 

(나의 생각)

톨스토이는『광야의 리어왕』이라는 가공의 환상곡을 듣는 장면을 이용해서 인류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작품을 한꺼번에 여럿 등장시키고 있다. 『파우스트』에도 등장했고, 베토벤이 남긴 편지에도 등장했던 '불멸의 연인'을 셰익스피어와 코델리아(리어왕의 막내딸)에게까지 연결시킨 점도 몹시 흥미롭다. 기회가 닿는다면 톨스토이가 남긴 『예술이란 무엇인가?』도 꼭 한번 읽어 보고 싶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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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쉰 살과 마흔 살

 

그도 그녀를 사랑했다. 한 가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나이였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장수하는 가문이었고, 그에게는 흰 머리가 한 올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를 마흔 살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바렌카가 오직 러시아에서만 쉰 살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인으로 여길 뿐, 프랑스에서는 쉰 살의 사람들이 자신을 dans la force de l'âge('한창때'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생각하고 마흔 살의 사람들은 자신을 un jeune homme('청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여긴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20년 전과 다름없이 젊다고 느낀다면,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36∼37쪽)

 

(나의 생각)

'마흔 살'도 어떤 경계를 의미하는 나이지만, '쉰 살'이 지닌 '경계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뚜렷하면서도 무게감이 달라지는 듯하다. 요즘에야 물론 옛날보다 그 무게가 훨씬 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문득 몽테뉴가 '오십 고개'를 두고 재미있게 늘어놓았던 특유의 익살이 생각난다.

 

오십 고개를 넘은 자

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호라티우스)


자연은 이 나이를 꼴사납게 만들 것 없이, 가련하게 만든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일주일에 세 번쯤 허약한 힘으로 일어나며, 뱃속에 당연히 해낼 어떤 위대한 힘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칠게 부스럭거리는 꼴이 보기도 싫다.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그리고 지금 둔중하게 얼어붙어서 볼이 꺼진 이 나이에 이렇게도 생기 있게 팔딱거리는 자극이 놀랍다. 이런 욕망은 청춘의 꽃다운 시절에나 가질 일이다. 이런 충동을 믿고, 그대에게 있는, 이 피로할 줄 모르게 꾸준하고 충만하고 장엄한 열기를 한번 거들어 보라. 좋은 꼴을 보게 될 것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는 청혼의 뜻을 밝히기 위해 하려고 했던 말을 자신에게 되풀이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 대신, 난데없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에 이끌려, 그는 불쑥 이렇게 물었다.

 

"하얀 버섯은 자작나무 버섯과 어떻게 다릅니까?"

 

바렌카가 대답할 때, 그녀의 입술이 흥분으로 바르르 떨렸다.

 

"갓 모양에는 차이가 없고 뿌리 모양이 다르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그도 그녀도 그 문제가 종결됐다는 것, 입 밖으로 나왔어야 할 그 말이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바로 그 직전까지 절정에 달했던 그들의 흥분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버섯은 그 뿌리가 이틀째 면도를 하지 않은 다갈색 수염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네. 정말 그래요." 바렌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무심결에 두 사람의 산책 방향이 바뀌었다. 그들은 아이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바렌카는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이유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자신이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마리에 대한 추억을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

오래도록 마음 속으로 연습했던 말 대신 난데없이 ㅡ 미처 자신이 쏟아내는 말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ㅡ 전혀 엉뚱한 말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도 이렇게 중차대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자신의 삶에 대해 실눈을 뜨는 것 같았어

 

"그녀에게 당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십시오. 그녀가 편지를 쓰게 만들어 주십시오. 난 이 문제에 대해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좋아요, 내가 말해 볼게요. 하지만 안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 순간 문득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어쩐 일인지 눈을 가늘게 뜨는 안나의 이상한 새로운 버릇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안나가 눈을 가늘게 든 것이 생활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미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자신의 삶에 대해 실눈을 뜨는 것 같았어.' 돌리는 생각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꼭 그녀와 이야기를 해 볼게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이렇게 대답했다.(16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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