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의 브르노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1968년에 일어난 '프라하의 봄' 사건 이후 반체제 인사로 내몰려 출판금지 등의 탄압을 받은 끝에 1975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작가이지요.


그는 아버지가 저명한 음악학자였던 덕분에 보헤미아 전통 음악과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에서는 문학과 미학뿐 아니라 영화학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연극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감독 수업을 받은 뒤 이 학교의 강사와 교수로 지냈는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아마데우스》를 만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 그의 제자였다고 하지요. 그는 나찌 독일에 대한 반발심으로 젊어서 일찌감치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체제 활동' 죄목을 뒤집어쓰고 공산당에서 추방당했고(1950년), 1956년에 재입당했지만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이후 1970년 또다시 공산당으로부터 추방당하고 말지요.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체험은 그의 첫 번째 소설 『농담』(1967)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는데, 사소한 농담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채 뒤바뀌고 마는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경멸에 가까운 조소가 담겨있지요. 작가가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1984년에 출간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또한 『농담』에서처럼 전체주의 공산체제가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억압하고 뒤틀리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만 봐도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1988년에 필립 카우프만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덕분에 더욱 유명해집니다. 1989년 여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놀랍게도 《프라하의 봄》이었습니다. 뛰어난 제작진과 인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이 영화를 본 뒤에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걸 몹시 후회했다고 하지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지닌 고유의 색깔이나 의미가 왜곡되는 걸 싫어하기 마련인데, 밀란 쿤데라야말로 그런 점에 관해 유난히 예민한 작가이지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번역 출간될 때 작가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물론 「작품 해설」조차 싣지 못하도록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는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대략적인 설명은 이쯤으로 그치고 이제부터는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지요. 이 작품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원제목이 있는데도 굳이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다소 별난 제목을 달았는데, 아무래도 원제목이 지나치게 철학적이어서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된 듯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을《프라하의 봄》으로 바꾼 탓에 정치적인 색깔이 너무 도드라져 자칫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반체제 민주화 운동을 그려낸 정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오해도 생겼습니다. 물론 영화가 원작보다 '프라하의 봄'을 좀 더 부각시킨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몹시 철학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꽤나 정치적인 소설이 맞습니다. 어쨌든 작가는 1968년에 일어났던 체코의 민주화 운동과 그 반작용으로 초래된 소련군의 무참한 무력침공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어떤 식으로 억눌리고 파괴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소설은 네 명의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유별난 애정행각 때문에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듯이' 에로틱한 장면들이 가득한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둔 각본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요. 더구나 등장인물들이 정사를 벌이는 장소들 또한 체코의 프라하뿐 아니라 스위스의 제네바나 취리히 등지였으니 그런 분위기가 더해졌지요.


이 영상을 보시는 시청자분들은 아마도(!) 이 작품을 다들 한 번쯤은 읽어보셨겠지요? 혹은 줄리엣 비노쉬가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소년 관람불가의 「프라하의 봄」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혹시 이 둘을 모두 놓치셨더라도 체코의 프라하를 가 보신 적은 있으시겠지요? 이마저도 아니라구요? 아무튼 좋습니다. 우연히 클릭한 이 영상 덕분에 저와 함께 이 세 가지를 한 방에 모두 체험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 또한 이 책을 두 번째로 읽기 전까지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못 봤습니다. 또한 프라하를 직접 찾아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이 작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조차 없었더랬습니다. 물론 프라하가 배출한 천재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서도 새까맣게 몰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늦봄에 덜컥 프라하로 날라갔습니다. 무슨 특별한 문학기행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흔해빠진 '동유럽 여행'의 첫 번째 기착지로 프라하에 닿았던 셈이지요.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지루한 비행 끝에 말입니다.


사실 갑작스레 결정된 동유럽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나름대로의 여행 준비작업으로 마음이 몹시나 분주했더랬습니다. 동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인 프라하 방문을 목전에 두고도 그때까지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의 책 한 권조차 읽은 게 없었으니 그 가운데 한 두 권쯤은 반드시 읽어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렀고, 프라하에 도착할 때까지 뒤적거린 책이라고는 고작 몇 권의 여행 안내서와 음악 및 미술에 관한 안내서 몇 권이 전부였고, 프라하 올로케로 찍었다는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를 밀린 숙제하듯 간신히 다운받아 감상한 게 전부였습니다. 아, 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구경을 놓칠세라 빈에 머무는 날짜에 맞춰 음악 공연 티켓을 예매하느라 낑낑댔던 기억도 있긴 있었군요.


아무튼, 체코의 역사와 쿤데라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상태로 저녁 무렵에 도착한 프라하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우리 일행들이 묵을 숙소가 카를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덕분에, 우리 일행은 도착한 첫날부터 밤늦게까지 블타바 강가에 자리잡은 야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프라하의 고성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리 밑에' 숙소를 잡았던 게 정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이처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기 훨씬 전부터 우연한(!) 기회에 미리 샅샅이 다녀본 프라하 관광 체험은 훗날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더랬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이며, 시계탑이며 , 얀 후스의 동상이며, 바츨라프 광장 등등을 직접 걸어다니며 카메라에 쏙쏙 담아냈던 기억들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 속에서 그 장소들을 다시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멋진 도시를 전혀 가 보지 못한 독자들조차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지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기 쉬운데, 그의 문학의 고향과도 같은 그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사흘씩이나 보낸 제가 이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외면하기란 어려웠지요.


그런데도 이 작품은 생각보다는 읽기가 조금 까다로운 책이었습니다. 적잖은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지요. 그건 바로 밀란 쿤데라가 이 작품 속에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소설의 도입부에 덜컥 내밀면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처럼 밀란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소설의 도입부에 배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지요. 작가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는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고, 그 반대로 우리의 삶이 단 한 번만 주어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고대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반대되는 한 쌍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주장했지요. 작가는 그의 말이 맞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고 규정합니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말이지요.


이렇게 시작된 소설 속 이야기는 '존재의 무게'를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쪽으로, 혹은 그 반대쪽으로 끊임없이 옮기려는 등장 인물들의 삶의 궤적들을 잔잔하게 그려나가고 있지요. 


남자 주인공인 토마시는 프라하에서 유능한 외과의사로 일하는 바람둥이이자 이혼남입니다. 그는 여러 여성들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는 에로틱한 우정을 모토로 삼아,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말자고 단단히 못을 박지요. 그는 얼마 전에 우연히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테레자를 만납니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열흘이 지난 뒤 그녀는 대뜸 프라하에 있는 토마시를 찾아가지요.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일주일을 지냈으면서도 그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그녀는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게 나을까를 고민하던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이지요.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시는 테레자의 목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그녀가 역에서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토마시는 선약이 있어서 다음날 저녁에나 찾아오라고 하지요.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번보다 훨씬 우아해 보였고,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있었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용건 때문에 프라하에 왔다가 우연히 들렀음을 애써 강조했지만, 사실은 이미 무거운 트렁크를 수화물 보관소에 맡겨둔 참이었지요.


그녀는 토마시가 전날까지도 염려했던 그대로, 인생 전체를 이 남자에게 헌납하기 위해 프라하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녀와 그녀의 트렁크를 그의 아파트에 들여놓습니다. 그는 스스로 놀랍니다. 10년 전 첫 번째 부인과 헤어질 때 거의 환호성을 지를 뻔했던 그는 오로지 독신일 경우에만 자신답다는 걸 깨달은 터였고, 비록 여자와 동침하더라도 자정 이후에는 모든 여자를 내쫓았는데 테레자 때문에 그런 원칙을 어긴 때문이었지요. 다음날 아침까지도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테레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다시 한번 테레자가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 있다니!


수많은 고대 신화의 도입부에는 버려진 아기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 폴리보스가 아기 오이디푸스를 줍지 않았다면, 소포클레스는 그의 가장 아름다운 비극도 쓰지 않았을 것을! (21쪽)


이렇게 해서 토마시와 테레자와의 운명은 차츰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이른바 '운명적 비극'과 셰익스피어 비극의 '성격적 비극'이 기묘하게 뒤섞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토마시와 테레자와의 사랑은 결국 따지고 보면 거듭된 여러 우연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엮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왕」처럼 '운명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이고, 남자의 타고난 바람기 때문에 아내와 끊없는 갈등을 지속한 끝에 결국 유능한 외과 의사에서 시골의 트럭 운전사로 점점 추락한 끝에 끝내 부부가 함께 시골 언덕의 커브길에서 동반 추락사하고 말기 때문이지요.


여주인공인 시골 처녀 테레사는 토마시와 동거하게 되면서 토마시의 애인인 사비나의 도움을 받아 프라하에서 잡지사 사진기자 일자리를 얻어 차츰 정착하게 되지만, 토마시의 끝없는 애정행각 때문에 매일밤 악몽을 꾸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토마시의 잠재적 애인이었고, 그녀의 악몽은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반복되지요. 토마시는 테레자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결국 그녀와 결혼하고, 작은 강아지까지 사 줍니다. 강아지의 이름은 『안나 카레니나』의 남편이었던 카레닌으로 짓습니댜.


테레자는 충직한 카레닌이 늘 곁에 있어도 행복하진 못합니다. 소련 탱크가 전국을 점령하고 난 뒤로 차츰 토마시의 일자리가 불안해졌기 때문이지요. 테레자도 소련군이 진주한 후 일주일 동안은 거의 행복과 유사한 일종의 전율 상태에 빠져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섰지만, 너무 대담해져 시위 군중에게 권총을 겨누는 한 장교의 사진을 찍다가 체포된 적도 있었지요. 그녀가 찍은 사진이 빌미가 되어 많은 시민들이 구금되고 체포되는 일도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국민들의 행복한 도취는 점령 후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체코 정치인들은 잡범처럼 소련군에게 끌려갔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소련군에 대한 증오는 술기운처럼 치밀어 올랐다. 증오감에 도취된 축제였다. …… (47∼48쪽)


토마시와 테레자와 카레닌은 결국 체코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건너가지요. "사비나도 스위스로 망명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라는 토마시의 걱정어린 물음에도 테레자는 개의치 않지요. 이제 사비나는 토마시를 만나기 위해 제네바를 떠나 취리히의 호텔에 더욱 자주 머물게 되고, 토마시는 그녀와 헤어져 취리히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메고 다니듯 자기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휴대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하지요. 테레자와 사비나는 그의 삶에 있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아름다운 두 극점 같았습니다.


테레자는 취리히에서도 밤마다 악몽을 꾸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프라하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그녀는 토마시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고,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텅 빈 집에서 테레자의 이별 편지를 발견한 토마시는 모든 상황을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테레자를 되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닿고 좌절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차츰 생각이 바뀌지요.


그는 그녀와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고 그들의 관계가 이보다 더 잘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달리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테레자는 예고도 없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떠났다.그녀는 묵직한 트렁크를 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 묵직한 트렁크를 들고 떠났다.(53∼54쪽)


테레자가 떠난 뒤 우울에 빠져 홀로 거리를 산책하는 동안에 토마시는 뜻밖의 자유를 느낍니다. 거리 모퉁이마다 연애 가능성이 널려 있었고, 오로지 독신으로만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테레자에게 얽매여 칠 년을 살았는데, 마침내 그의 발목에 채워 놓은 방울을 벗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합니다.


나흘 때 되던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테레자가 이별의 편지를 쓰며 겪었던 쓰라린 감정을 느낀 것이지요. 한 손에는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카레닌을 묶은 줄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고, 홀로 된 그녀의 슬픔이 그의 가슴에 사무치게 와닿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는 미래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그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월요일, 그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중압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수천 톤이나 나가는 소련 탱크의 무게도 이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정심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


그는 동정심에 굴복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테레자가 떠난 지 닷새 후 그는 취리히의 병원 원장에게 당장 프라하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언하지요. 원장은 정말 화를 냈지만, 토마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Es muss sein. Es muss sein."


이 말은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가운데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말이었지요. 베토벤은 필연성과 무거움과 가치가 내면적으로 서로 연결된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토마시는 스위스 국경을 향해 차를 몰았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표정은 침울한 베토벤은 이민 생활에 작별을 고하는 그를 위해 'Es muss sein!'을 기꺼이 연주해준 셈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록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63∼64쪽)


그러나 프라하로 되돌아온 토마시는 잠든 테레자 곁에서 뒤척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테레자가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칠 년 전 테레자가 살던 도시의 병원에 우연히 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시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과장은 좌골 신경통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시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호텔이 다섯 개 있었는데, 토마시는 우연히 테레자가 일하던 호텔에 들었다. 우연히 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자가 우연히 당번이었고 우연히 토마시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64쪽)


토마시는 테레자 때문에 보헤미아로 되돌아왔지만 지금 그의 곁에 누워 깊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우연의 화신인 그 여자'에게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지요. 그가 느낀 유일한 감각은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소설 속에서 '우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땅바닥으로부터 높이 들어올립니다. 만약에,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87쪽)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93쪽)


프라하를 떠나 제네바에서 살게 된 사비나에게 어느 날 멋진 남자친구가 나타납니다. 프란츠는 그녀의 아뜰리에에 자주 들렀지만 결코 그곳에서 정사를 나누지는 않지요. 불과 몇 시간 만에 한 여자의 침대에서 다른 여자의 침대로 가는 것은 애인과 부인을 모욕하는 짓이며 결국 자신도 모욕하는 짓으로 보였기 때문이지요. 몇 달 전에 프란츠가 반한 이 여인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소중해서 그는 자신의 삶 속에 그녀만을 위한 독자적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고심합니다. 외국 대학으로부터의 강연 초청은 100% 받아들였고 여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없는 세미나까지 만들어내지요. 


그는 미남이며 학계에서도 출세가도의 정상에 서 있는 인물이었지만 늘상 사비나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여 지냅니다. 그런데 사비나는 이 진지한 남자와 만날 때에도 (토마시와 만날 때처럼) 중산모자를 쓰지요. 그것은 사비나 아버지의 기념품이자 토마시와의 에로틱한 게임에 사용하는 엑세서리였지만, 프란츠는 그 모자를 보는 순간 마치 누군가가 '미지의 언어'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고 몹시 당혹해 하지요. 사비나와 프란츠 사이엔 '이해할 수 없는 어휘들'의 목록이 너무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시와 사비나가 중산모자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 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152쪽)


언제나 삶에 진지했던 프란츠는 결국 아내에게 사비나의 존재를 당당히 밝히고 아내와의 결별을 선언하지요. 하루 아침에 멀쩡한 아내와 결별하고 자신과의 공개적인 사랑을 선언하는 이 남자는 어느덧 사비나에게 점점 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날 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흥분한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동시에 이미 그곳에서 먼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또다시 멀리에서 배반의 황금 나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이부름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 앞에 아직도 광활한 자유의 공간이 열려 있으며 그 공간의 넒이가 그녀를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프란츠를 미친 듯 거칠게 사랑했다.(194쪽)


프란츠는 그녀의 몸 위에서 흐느꼈고, 그녀의 몸짓을 통해 모든 걸 깨달았다고 확신하지요. 식사 시간 내내 침묵을 지키던 사비나가 마침내 그와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가 사비나와 함께 살리라 결심한 바로 그 순간, 사비나는 제네바에서 떠날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201쪽)


이렇듯 소설은 작품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하는 두 인물 토마시와 사비나,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대척점에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 받는 테레자와 프란츠를 중심으로 차분하면서도 길게 이어지지요.  


사비나가 제네바를 떠나 파리로 온 지 삼 년이 지난 뒤 그녀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지요. 편지에 따르면 그들은 죽기 전 몇 해 동안 시골 마을에서 살았으며,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자주 인근 마을로 가서 항상 조그만 호텔에서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언덕을 타고 넘는 도로에는 꼬불꼬불한 구간이 많았는데, 트럭이 그만 계곡 아래로 떨어져 즉사하고 만 것이었지요. 이처럼 두 주인공의 죽음은 소설의 앞부분에서 너무 빨리 노출되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지요.


스위스를 떠나 프라하로 되돌아온 토마시와 테레자는 차츰 밑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유능한 외과의사였던 그가 점점 더 변방의 끄트머리로 밀려난 까닭은 범죄적이고 야만스런 정치체제에 대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소련 점령군 체제에 협력한 비양심적인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잡지에 발표하는데, 당국은 반공주의를 조장하는 그의 글을 철회하도록 끈질기게 회유하고 압박하지요. 그는 결국 외과과장으로 승진하는 대신 현직에서 물러나 시골 병원으로, 다시 무료 진료원으로, 거기서 다시 유리창 닦는 노동자로 전락한 끝에 맨 나중엔 시골마을에서 트럭운전사로 살아갑니다.


이 소설은 희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우연으로 시작된 주인공들의 삶이 '프라하의 봄'이라는 정치적인 격랑에 휘말리면서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때로는 우수에 찬 선율로, 때로는 감성 넘치는 철학 에세이의 필치로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의미심장한 문장들의 행간을 자꾸만 반복해서 읽게 되는 아주 독특한 작품이지요.


인생의 고비마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필연성은 우연성과 어떻게 교차하면서 삶에 희비쌍곡선을 그려나가는지, 소련군 탱크의 무게만큼이나 강한 압력으로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치적 격변의 와중에 개인의 자유와 소신은 얼마만큼 부당하고 또 나약하게 침해당하는지, 참으로 생각할 게 많은 작품입니다.


망명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이 작품 속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프라하의 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당시의 정치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작가는 '범죄적 정치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유일하게 옳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이런 비난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우린 몰랐어! 우리도 속았어! 우리도 그렇게 믿었어! 따지고 보면 우리도 결백한 거야!'라고 외칠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주인공 토마시는 바로 이 논쟁에서 핵심을 포착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지 않다고 말이지요.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토마시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라이코스를 죽였고, 자신의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했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고 나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었지요.


토마시는 영혼의 순수함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악쓰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자,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289쪽)


토마시는 이 비유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체코 작가 동맹이 발간하는 주간지에 글을 투고하지요. 토마시의 글이 발표되고 불과 두세 달 후 '프라하의 봄'은 끝장이 납니다.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감히 우리 눈을 뽑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써 대다니! 소련은 그들의 변방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될 수 없다고 결정했고, 그들 군대는 하룻밤 사이에 토마시의 나라인 체코를 점령하고 맙니다. 토마시는 결국 '프라하의 오이디푸스'였던 셈이었습니다. 자신이 우연히 투고했던 글 때문에 그는 결국 외과의사의 옷을 벗어야 했고 프라하를 떠나야 했으니까요.


끔찍한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날, 토마시 부부는 우연한 일로 기분이 좋아진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인근 호텔로 춤을 추러 가지요.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밞는 동안 테레자는 토마시의 어깨에 기대면서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 슬픔은 종착역에 다다랐다는 암시였지요. 작가는 말합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라고 말이지요.


이것으로 작품 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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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1 2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르메니데스‘가 모든 것이 쌍으로 존재한다는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을 증명했고, 저는 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논리로 영혼과 불멸을 수긍할 수 있게 증명할까라고 탄식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쿤데라는 그 쌍이라는 것이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결국에는 모순을 가진다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보면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 증명을 무너뜨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키치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
제 인생의 책을 반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21-06-02 00:17   좋아요 2 | URL
한 권의 소설 속에 이렇게 다양한 철학이 녹아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에요. 가벼움과 무거움, 영원과 순간, 우연과 필연, 단 한 번과 영원한 반복 등등 말이죠. 거기다가 키치를 뿌리고, 오이디푸스의 눈알까지 빼는 이야기가 더해지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읽기 힘든 책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오랜만에 두 번째로 읽으니, 훨씬 더 깊은 맛이 느껴지고, 영화를 앞뒤로 돌려가면서 동영상을 만들다보니 참으로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책이구나 싶었습니다. 초딩 님의 인생책으로서도 안성맞춤인 듯하고요.^^

모나리자 2021-06-02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oren님~ 너무나 잘 보았습니다~ 이 책 오래전에 읽었고 19년 9월에 프라하도 다녀왔지만 이 작품에 카를교의 풍경이 나오는 줄 몰랐네요.ㅎ 니체의 사상 등 여러 철학사상이 들어 있어서 그렇게 어려웠군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다시 읽으면 작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튜브 영상 해설도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마치 빨려들듯이..ㅎㅎ 안나카레니나도 2권까지 읽다 말고 오래되었는데 새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다시 보고 싶네요. 여행하는 기분으로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멋진 글과 영상 올려주세요.^^!

oren 2021-06-02 22:01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 님, 반갑습니다.^^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으시고, 프라하에도 2년 전에(!) 다녀오셨군요! 그 멋진 ‘카를교의 풍경‘은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에도 나오고, 영화 <프라하의 봄>에도 나오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에도 나오지요. 저는 지금까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4권(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불멸, 배신당한 유언들) 읽었는데, 그 작품들 모두에서(?) 프라하의 인상적인 장소들이 매번 등장했던 것 같아요. 단 한 번이라도 프라하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 인상적인 장소들이 오래도록 머리속에 남아 영영 떠나지 않을 듯한데, 밀란 쿤데라의 작품 속에서 그 장소들을 다시 마주치는 기쁨이 상상 이상으로 크더군요. 카프카의 작품에서는 아무리 뒤져봐도 프라하의 ‘프‘자도 등장하지 않는데 말이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2권까지만 읽으셨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멋진 작품을 다시 한번 완독하시는 건 어떨까요? 카레닌도 만나보고, 브론스키도 만나보고, 카레니나, 레빈, 키티 등등도 두루 ‘다시‘ 만나보시길 바래요.^^

초딩 2021-07-07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oren 2021-07-08 21:55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에 오랜만에 접속했다가 초딩 님의 댓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이 당선작으로 뽑혀 있었군요!
하마터면 여러 날 지나서 이 댓글을 확인할 뻔했네요.
늘 챙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꾸벅~

모나리자 2021-07-08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 축하드립니다~^^
역시 정성과 배경지식이 듬뿍 담긴 리뷰 잘 읽었는데 선정되셨네요!
7월도 화이팅 하세요~^_^

oren 2021-07-08 21:57   좋아요 1 | URL
오늘에야 이 댓글을 발견했네요.^^
요즘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붙들고 한 달째 헤매고 있어서,
알라딘에 접속하는 일조차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에요.
모나리자 님께서 남겨주신 축하 댓글, 너무 고맙습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 T.S. 엘리어트, 『황무지』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봄이 시작되는 사월을 일년 중 가장 잔인한 달로 영원히 각인시켜버린『황무지』는 현대시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지요. 사월은 비단 영국의 시인에게만 잔인한 달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4.19 학생 운동과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바로 라일락 꽃향기가 아른거리는 사월에 일어났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이 유명한 작품이 발표된 1922년은 문학사에서도 참으로 유별난 한 해였습니다.


1920년대에 나온 사상과 중요한 문학 작품은 거의 다 1차 대전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즉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통해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반응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 1922년이 되자 새 지평을 여는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 S. 엘리엇의 『황무지』, 싱클레어 루이스의 『배빗』,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아홉 번째 권 『소돔과 고모라』, 버지니아 울프의 첫 실험소설 『제이콥의 방』,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엔리코 4세』 등등 20세기 문학의 주춧돌이 모두 놓였다.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이 무렵에 등장한 '문학의 새로운 형식'이 소위 모더니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쏟아져 나온 새로운 형식의 문학작품들이 비판하는 것은 특히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황폐한 사회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란 곧 소유에 모든 가치를 두는 '탐욕으로 점철된 사회'였습니다. 바야흐로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해 마지 않는 LH 투기 사태 또한 그 근원을 따져보자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기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악취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일 테지요.


엘리엇은 1888년 신심이 돈독한 미국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14년에는 철학 연구를 계속할 요량으로 영국의 옥스퍼드로 건너갔습니다. 바로 그 무렵 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엘리엇은 유럽 대륙에서 평생을 함께 할 두 사람을 만납니다.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첫 번째 아내인 비비엔 헤이우드였지요.


엘리엇은 미국에서 건너온 선배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덕분에 실로 엄청난 도움을 받게 됩니다. 『황무지』라는 시는 에즈라 파운드에 의해 거듭 났으며, 엘리엇은 이 특별한 시의 제사에 기꺼이 파운드의 이름을 올려 놓았습니다. '보다 훌륭한 예술가'라는 존경의 표현을 덧붙여서 말이지요. 


이 어렵고도 난해한 현대시의 주요 관심사는 전후 세계에 있어서 삶의 핵심으로 간주된 불모성이었습니다.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엘리엇은 우리가 얼마나 밑바닥으로 떨어졌는지, 진보라는 것이 얼마나 가차 없는 추락일 수 있는지를 『황무지』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이 시는 <제사(題辭)>, <죽은 자의 매장>, <체스 놀이>, <불의 설교>, <수사>, <천둥이 한 말>의 여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소제목들은 한결같이 그저 어렴풋하기만 합니다. 시에 담긴 다양한 목소리는 여러 사람이 어우러진 합창으로 들리다가도 어떤 때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또 어떤 때는 다양한 문화권의 고전에서 따온 구절로 말을 걸어옵니다. 어느 대목에서는 타로 카드 점쟁이한테 갔다가, 어느 순간 문 닫을 시간이 된 런던의 선술집에 들어와 있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 신화 속으로 곧장 무대가 옮겨지는 등 장소와 시간의 급작스럽고도 예고없는 변화를 특징으로 삼아 방대한 문화의 문학작품들을 건너뛰어 다닙니다.


이렇듯 황무지는 여러 시공간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면서 인간의 정신적 메마름, 생산이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을 노래합니다.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하는 계절의 순환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도 이어지는데, 고대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와 철학을 깊이 연구했던 엘리엇의 여러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중요한 모티프가 바로 '죽음을 통한 재생'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시는 덜렁 한 번 읽는다고 해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은 아니지요. 또한 이 시에는 시인이 직접 달아놓은 각주가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달려 있어서 마치 학술 논문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흔히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상징이나 구체적인 대상 같은 것들만 알아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비로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되는 대가의 그림 같다고 말이지요.


비록 우리가 434행이나 되는 이 유명한 장시의 전체 그림을 두루 살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일부분은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영상의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싯구절의 바로 앞에 놓인 제사부터 잠깐 살펴볼까요?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

 


이토록 갈피를 잡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황무지』라는 난해한 시에 대해 제가 비로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 덕분이었습니다. 그 책 속에는 어렵기로 소문난 『황무지』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우선 『황무지』와 에즈라 파운드에 얽힌 이야기부터 조금 살펴보지요.

『황무지』의 재발견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Berg) 콜렉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초고가 발견되었다. 대개는 타자로 친 54페이지 분량의 초고 뭉치였는데, 군데군데 육필 원고도 끼어 있었다. …… 타자로 친 부분은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구어체 영어로 쓰인 대목도 많았고, 우아하고 심원한 문체로 쓰인 대목도 많았다. 각종 유럽어에서 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시행이 페이지 곳곳에 널려 있었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이라 할 만한 『황무지』의 중간 초고였다.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영국에 정착한 시인이었던 T.S.(Tomas Stearns)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그는 아내 비비언(Vivien)과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정착했던 시인으로서 가까운 친구 에즈라 파운드에게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 '우호적인 비평가들'은 엘리엇과 함께 작품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특히 에즈라 파운드는 원래 길이를 반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가차없이 수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엘리엇 연구자인 헬렌 가드너의 말을 빌면, "파운드는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이 함부로 뒤섞인 초고 뭉치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

엘리엇은 파운드의 도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는 『황무지』가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리라 확신하고 미국에서 엘리엇의 출판권을 대리하고 있던 유능한 에이전트 존 퀸(John Quinn)에게 초고를 선물로 보냈다. 퀸은 원고를 받은 이듬해에 사망했고,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초고가 분실되었다.엘리엇은 아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즉, 우호적이면서도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02-403쪽

 

엘리엇은 책을 좋아하고 문예에 밝고 기지가 풍부한 사람으로서 모든 면에서 '하버드 맨'으로 합당했던 인물이었지만, 결국 하버드의 무미건조한 분위기와 인문학을 경시하는 대학 풍토에 고통을 느꼈더랬습니다.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 점차 소외감이 커지는 것을 느낀 엘리엇은 차츰 보스턴과 세인트루이스와 미국을 벗어날 궁리를 시작했습니다.


엘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훨씬 오랜 역사와 더 위대한 문학 유산을 가진 나라, 종교와 영혼의 문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아이러니의 깊은 의미를 아는 땅인 프랑스와 영국에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철학 공부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10쪽


졸업 후에 결국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프랑스에서 앙리 베르그송과 에밀 뒤르켐과 같은 석학들의 강의를 들었고, 점점 더 유럽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는 외국에 계속 남아 시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1911년에 하버드로 되돌아가 철학 박사 과정을 밟게 되지요.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주제라고 하지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한 듯합니다. 에즈라 파운드가 이 시를 가차없이 편집함으로써 원작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품으로 뒤바꿔놓았다는 사실 말이지요. 엘리엇 연구자들은 이제 엘리엇이 수정한 흔적뿐만 아니라 파운드의 제안대로 개고한 흔적까지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가 담긴 시

오랫동안, 특히 1921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엘리엇은 온갖 다양한 상황을 묘사한 장면과 에피소드를 탈고했다. 현대 런던에서 하층계급이 영위하는 삶, 신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장면, 겨울과 뼈, 사막 등 환기력 강한 이미지가 특징인 자연 현상 묘사,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대화, 고급 문학(셰익스피어, 단테, 보들레르)에서 따 온 구절, 평판 높은 작가(포프)의 패러디, 찬미의 송가, 뜨거운 설법, 페니키아 수부(水夫) 이야기, 산스크리트 구절 등이 그것이다. 독자는 이제 곤혹스러운 중년 남자의 언어만이 아니라,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27쪽

 

『황무지』라는 작품에 대한 문학계의 반응과 평가는 실로 막대했습니다. 비록 만년의 엘리엇이 "삶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무의미한 불평에 불과한 ······. 리드미컬한 볼멘소리"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걸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문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이자 한 세대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시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는 건 분명하지요.


엘리엇은 한때는 통합된 전체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점차 조각나고 해체되어 무력화된 유럽 문명의 묵시록적 종말, 유럽 문명에 만연되어 있는 병적인 불안감을 시라는 언어 예술에 담아냈다. 그는 몇 년 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t Spengler, 1880∼1936)의『서구의 몰락』에서 직설적으로 표명된 메시지를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황무지』의 어느 대목에서도 서양 문명이나 인간의 분열 혹은 가치의 몰락이나 부재를 명백하게 언급하는 구절은 없다. 이러한 감수성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다. ······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 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엘리엇은 개별 시행의 의미가 애매하고 상호 연결이 어색한 5부로 시를 나누어 구성했음에도 시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다른 현대의 문학작품처럼 재독, 삼독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작품이다). 하나하나의 부분을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엘리엇의 비감한 정서를 더욱 뚜렷하고 힘차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혹은 『봄의 제전』과 『결혼』에 유사한 점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1∼432쪽


대략 이 정도로 살펴봤으면 그토록 난해하다는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어림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걸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천재 연구의 전문가>인 하워드 가드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지요.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황무지』는 당대의 다른 어느 시작품보다 동시대 교양층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기분과 주제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500행에서 다소 모자라는 시행에서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시행 하나하나 연(聯) 하나하나가 의미로 가득했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룬 독립적인 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굉장한 특성으로 인해, 독자는 하나의 거대한 시세계를 음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관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부분마다 장면마다 구어체 언어와 생생한 희화(戱畵), 한결같은 자연 묘사, 신화적인 이미지, 재기 넘치는 대화, 애상적인 도시 장면, 이야기체의 소품(小品), 음가(音價)를 이용한 언어 유희, 붉은 빛이 강렬한 스냅사진과 같은 이미지 등 수많은 특징이 두드러졌다. 현대의 또 다른 걸작, 가령『율리시스』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처음에는 한 쪽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다른 방법으로 변주된 다양한 주제들 역시 작품의 효과를 높이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 『황무지』는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 즉 현대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생각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비록 정연한 서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독자는 마치 고대의 모험담을 읽을 때처럼 하나의 완결된 체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4∼435쪽


하워드 가드너의 설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쯤에서 다시 그 유명한 시의 '잘 알려진' 첫부분으로 되돌아가 보지요.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현대시에 얼마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엘리엇의『황무지』를 여기까지는 다들 읽었지 싶습니다. 저 또한 이 유명한 시를 까마득한 옛날 그 언젠가 한번쯤 읽어봤지만, 그때 제가 이 어려운 시를 도대체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시가 너무나 어려워서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봤던 그 시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대목 하나는 바로 페트로니우스의 작품 《사티리콘》(Satyricon)에서 인용했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묘비명이었습니다. 특히 '쿠마에 무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더랬습니다.


도대체 그 무녀는 왜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며, 그녀는 왜 그토록 '죽고 싶어' 안달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쿠마에는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도시이며, 그 무녀는 도대체 어떤 깊은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화'를 조금씩 찾아 읽게 되면서 그 무녀의 정체가 저에게도 차츰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몹시 힘겹게 읽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이윤기의『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비디우스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저는 마침내 그녀가 그토록 멀게만 떨어져 있지는 않은 듯한 착각마저 느꼈습니다.
 

어느날 문득 쿠마에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로 확인해 보니, 아뿔싸! 그곳은 놀랍게도 나폴리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곳이라면 제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어쩌면 슬쩍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곳이 아닌가. 우리 일행이 파리와 런던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되는 날이었지 싶습니다. 그 전날만 하더라도 난생 처음 찾아간 로마의 유적지들을 하나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온종일 바쁜 걸음을 재촉했던 터여서 녹초가 되다시피 했던 우리 일행은 정작 그 다음날 훨씬 더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만 했더랬습니다.

바로 그날, 우리 일행들은 아마도 거의 새벽 4시쯤에 모닝콜을 들어야 했습니다. 미리 호텔에서 준비해 놓은 '빵 도시락' 비슷한 걸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난 뒤에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타고 로마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화산재로 뒤덮여 하루 아침에 '황무지'보다 더한 폐허로 뒤바뀐 폼페이를 빠트리지 않고 둘러본 우리는 쏘렌토 항에 도착하자말자 곧바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큰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건너 갔습니다. 거기에서도 우리에게 한가한 틈은 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또다시 작은 배에 옮겨 타고 '카프리의 푸른 동굴'로 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배를 타고 지중해의 잔잔한 바다를 건너 다니고, '푸른 동굴' 속에서 이탈리아 남자 뱃사공이 불러주는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생생한 이탈리아어로 듣는 순간들은 정말로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카프리 섬을 떠나 우리가 나폴리 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 때 나폴리에서 우리가 어딜 더 구경했는지는 이젠 기억조차도 희미합니다. 아마도 서둘러서 예약된 식당으로 찾아가 저녁을 때우고는 또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먼 길에 오르느라 버스에 서둘러 올라탄 기억밖에 남지 않은 듯합니다. 그 뒤에 우리들에게 무섭게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죽음보다 깊은 잠'이었습니다. 일행 모두가 무거운 잠에 빠져들던 바로 그때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무심코 지나쳤던 도시가 바로 쿠마에였습니다.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시뷜라라는 무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쿠마에 무녀는 도대체 얼마나 예뻤으면 아폴론이 그토록 큰 소원까지 들어주며 사랑을 애원했던 걸까요. 그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면서 "죽고 싶어"라고 애원하던 괴퍅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저는 비로소 그 무녀의 실물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그토록 죽기를 갈망했던 그 무녀가 과연 맞는지 제 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미지를 조금 더 찾아보니 쿠마에 무녀가 이토록 예쁜 모습으로만 그려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그림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여자답지 못한 모습인가요.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이 무녀는 자신을 사랑한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으면서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선물로 얻었지만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하는 바람에 끝없이 늙어가면서도 죽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겪지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린 쿠마에 무녀는 결국 늙었으나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남성처럼 우람한 근육과 힘을 갖춘 모습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이왕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지요. 그 천재화가가 교황의 명을 받들어 매우 고된 작업 끝에 1512년에 완성한 시스티나 천장 그림은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거대한 천장에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그림은 모두 아홉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고, 그 그림 주변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일곱 명과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다섯 명도 함께 그려졌습니다. 그 가운데 이방의 무녀는 《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라고 하지요. 천장의 다섯 번째 그림에 '쿠마에 무녀'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유독 시스티나 천장 그림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펼치면 '쿠마이의 시뷜레'가 마치 여럿 있었던 것처럼 다소 혼란스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대목은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함께 '쿠마에 무녀' 이야기를 매우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어서 저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자의 '혼동스러운 설명' 때문에 뭔가가 좀 아리송했습니다. 다음의 인용문부터 우선 살펴보지요.

 

시뷜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럿이지만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가 말하는 '쿠마이의 시뷜레(Cumaean Sibyl)'가 가장 유명하다. 오비디우스는 시뷜레가 천 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뷜레의 수가 많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일한 성격을 지닌 동일 인물이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태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다섯 명의 시뷜레를 그린 바 있다.

 - 이윤기,『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3』제4장〈소원 성취, 그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

 

 
이런 설명과 함께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렸던 그림 두 장을 함께 실어 놓았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림 하나는 '쿠마에 무녀'이고 또 다른 그림은 '델포이 무녀' 였습니다. 그런데 이윤기 작가는 그 그림 둘을 한 테두리에 묶어서 '미켈란젤로의 『쿠마이의 시뷜레』'라는 제목을 붙였고, 제목 바로 아래에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다섯 시뷜레의 일부'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그 설명과 그림을 함께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저와 비슷한 궁금증이나 오해를 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도대체 '쿠마이의 시뷜레'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으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무려 '다섯 가지 모습'으로 따로 따로 그려 넣었을까?" 혹은 "'쿠마이의 시뷜레'는 정말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무녀로구나..."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엘리엇의 시로 넘어가지요. 어쨌든 엘리엇의 작품『황무지』에 등장하는 쿠마에 무녀는 나이를 너무나 많이 먹은 탓에 몸이 쪼그라들어 항아리에 들어갈 정도로 변해 있습니다. 비록 목숨은 살아 있지만 몸은 이미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니 그녀의 간절한 염원은 진짜로 죽는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고대 신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늘상 그러하듯 모든 존재들은 꼭 한 번은 죽어야만 새로운 삶으로의 재탄생을 기약할 수 있었으니, 시뷜라 또한 그런 희망을 위해서라도 간절히 죽음을 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엇이『황무지』라는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 또한 쿠마에의 무녀처럼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 상태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무지』의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죽은 자들의 행렬을 꼭 빼닮은, 매일 아무런 생각없이 아침 9시에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출근하느라 바삐 런던 브릿지를 건너는 사람들의 행렬을 그렸습니다. 제2부 '체스 한 판'과 제3부 '불의 설교'에서는 공허한 일상과 육체적 욕구만을 채우기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권태롭고 공허한 욕정만 오갈 뿐 생명력이 넘치는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래서 불모(不毛)의 '황무지'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년 찾아오는 봄비와 꽃향기 가득한 사월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황무지처럼 '잔인'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던 쿠마에의 무녀 시뷜라가 결국 신의 사랑을 외면한 댓가로 얻은 건 '죽음같은 삶의 오랜 지속'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왜 하필이면 쿠마에의 무녀를 맨 앞에 등장시켰는지 그 이유도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쿠마에의 무녀가 그토록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이유는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엇이『황무지』에 담고자 했던 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음울하고, 아무런 가망도 없이, 노쇠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힌, 그런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내던져진 게 아니라는 느낌은 쿠마에 무녀의 '죽고 싶어'라는 말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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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모든 것을 윌리엄이 썼다고 믿습니까?”


이 말은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문인 집안 출신도 아니고,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적도 없는 시골 출신 청년이었는데, 그런 인물이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 있었는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지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진짜로 원작자가 맞느냐는 가짜 논쟁은 예로부터 자주 있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미국 여성 델리아 베이컨이었습니다. 그녀는 영리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열다섯에 소녀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채 교사로 일하던 즈음에 그녀는 셰익스피어에 빠져들었는데, 각종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 유명한 얘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도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선량한 베이컨: 곰팡이 냄새 어린 채.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이라는 황량한 논법.251)


251) Shakespeare Bacon's wild oats. 미국의 여류 소설가 델리아 베이컨(1811∼1859,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인척관계라 주장함)은 그녀의 저서인 『드러난 셰익스피어 연극의 철학(Philosophy of the Plays of Shakespeare Unfolded』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다고 주장함.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보다 학식이 많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씌어졌을 것이라는 부정적 설도 있음.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9장 국립도서관(스킬라와 카립디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조차 델리아 베이컨의 의견에 대해 동조 내지는 지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셰익스피어를 극찬한 대표적 인물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단정 짓지는 못해도 프랜시스 베이컨 등 주변 인물의 도움이 분명 있었을 거라며 델리아의 의견을 옹호했으며, 에머슨과 오랜 우정을 쌓았던 토머스 칼라일도 델리아의 작업을 지지했습니다. 에머슨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과 함께 콩코드에서 살았던 너대니얼 호손은 델리아의 책 출간을 은밀하게 지원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마크 트웨인이 저런 말을 했다고 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닌 셈이지요. '음모론적 시각'은 무슨 일에든 이처럼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법이지요.


셰익스피어는 20여 년간 무려 37편의 극작품과 154편의 소네트를 썼습니다. 그는 무려 1,100여 명의 캐릭터를 창조하였고, 등장 인물들이 느꼈던 수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2만여 개의 단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압도되는 건 작품의 분량 때문만은 아닙니다.


비록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은 '천재가 빚은 예술작품'에 여전히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작품들이 골고루 걸작이기 때문이지요. 고대 그리스 시인들조차도 각자 서사시, 비극시, 희극시 등으로 그 분야를 나뉘어 작품을 썼지만 이 인물에게만은 그런 '영역 구분'조차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희극 · 비극 · 사극 · 로맨스 · 소네트 · 시 등에 전방위적으로 두루 걸출했습니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고유의 색깔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10편의 사극에서조차 인물의 성격 뿐만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구성 등이 모두 다르지요.


셰익스피어는 소년 시절 문법학교에 다닌 게 교육의 전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년 셰익스피어는 이 단계에서 로마의 희극 작가 테렌티우스나 웅변가 키케로뿐 아니라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로마 시인들의 작품을 두루 접했습니다. 나중에 런던으로 진출하여 극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몽테뉴의 『수상록』등으로부터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학의 천재답게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놀라운 재능 덕분에 그는 '원전'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지닌 온갖 독창적인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초창기에 쓴 『비너스와 아도니스』란 작품이지요. 오비디우스가 약 70행으로 읊은 이 짧은 이야기를 셰익스피어는 무려 1200행가량의 장시로 늘렸습니다. 이 무렵 셰익스피어는 사극 『헨리 6세』3부작과 『리처드 3세』의 창작을 마친 신출내기 극작가였습니다. 이처럼 사극을 쓰다가 느닷없이 오비디우스풍의 서사시를 쓴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출판되자마자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과 셰익스피어가 시인으로서 일약 명성을 얻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에 로버트 그린이라는 작가가 셰익스피어의 극작가로서의 성공을 시기하여 그를 "벼락출세한 까마귀"로 비하한 일이 있었는데, 셰익스피어가『비너스와 아도니스』를 써서 보기 좋게 한 방 제대로 먹인 셈이었지요.

그 작품의 제사(題詞) 또한 흥미롭습니다. 그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노래>에서 인용했습니다.

속물들은 잡것에 혹하게 놔두고
금빛 머리 아폴로여, 저에게는
영감이 가득한 샘물 잔 내리소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1564∼1616)는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였습니다. 또한 유럽 사회 전체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의 거대한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고, 에스파냐에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소식이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도 시작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는 그 무렵 레판토 해전(1571년)에 참가했고, 몽테뉴(1533∼1592)는 『수상록』(1580년)을 간행했습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1565년)라는 시조를 지었고, 정철이 『관동별곡』(1580년)을 발표했으며,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을 완성했을 땐 임진왜란이 터져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과 노량대첩을 벌일 때였고, 『리어 왕』(1605년)과 『맥베스』(1606년)을 발표할 무렵에는 허균이 『홍길동전』(1607년)을, 허준이 『동의보감』(1613년)을 간행할 무렵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점은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배경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을 썼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살아 있으면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기뻐하는 인간 그 자체'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의 비극이 고대 그리시 비극시인들의 '운명적 비극'과 달리 '성격적 비극'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지극히 현대적입니다. 『햄릿』을 비롯한 그의 수많은 희곡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도 활발하게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는 자체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탁월한 예술성을 증명하는 셈이지요.


그의 희곡이 빛나는 또다른 이유는 문장이 너무나 절묘하고도 아름답다는 점입니다. 그는 음악처럼 그 다음이 듣고 싶어지는 대사를 쓰기 위해 '운문' 형식을 특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또한 리듬이 넘치는 말을 사용해서 극적 효과를 높였습니다. 가령 '적의 아들인 로미오를 사랑하다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말할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로미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의 이름은 로미오인가."

뒷날 『리어 왕』을 썼을 때, 그는 짧은 한 문장을 주인공에게 말하게 했다. "부탁하네, 이 단추를 풀어주지 않겠는가?" 이 글은 겨우 다섯 단어로 되어 있으면서 적어도 세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옷의 단추를 풀라는 의미와 현세의 허영의 상징인 의복을 벗어버린다는 의미, 그리고 이 삶의 고뇌를 벗고 떠나고 싶다, 즉 죽고 싶다는 주인공의 비통한 소망을 포함한 의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대응한, 유연한 살아있는 말을 쓰는 능력을 셰익스피어는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통해 습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뛰어난 시란 어떤 것일까? 간결한 말에 여러 의미를 포함시킨다. 말에서 각각의 이미지가 넓어진다. 읽는 이가 분명 그러하다고 납득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나름대로 해석하는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시가 있다면 그것은 뛰어난 시라고 평가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러한 작품을 썼다. 그의 희곡작품은 극이면서 동시에 시인 극시인 것이다. 결국 셰익스피어는 시인이었고, 그가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이유와 작품의 끝없는 깊이도 거기에서 나온다.


 - 동서문화사,『햄릿/오델로/리어 왕/맥베드/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을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파악할 수 있을까요? 문학,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이걸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그림을 그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심지어 정치학과 철학, 심리학과 정신분학석 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도 『자본론』과 『경제학·철학수고』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편지'에도 셰익스피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프로이트 또한 '오이디푸스 이론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소포클레스의 희곡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탐닉했다고 하지요. 프로이트 역시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작품들이 지나치게 높은 문화수준을 갖추었다는 점 때문에 '원작자'가 따로 있다고 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자주 읽었고, 이를 굉장히 좋아하여 매우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그리스의 아이스퀼로스와 함께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한명으로 존경했다. 또한,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단역까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도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볼테르는 셰익스피어를 술 취한 야만인이라고 했다. 이처럼 프랑스인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킨 영국 비극의 특성 중 하나는 숭고한 것과 저속한 것, 두려운 것과 익살스러운 것, 영웅과 광대가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영웅극의 서두를 이야기하는 역할을 광대역에게 맡기지는 않았다." <의회에서의 전쟁토론>(1854년)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괴테, 톨스토이, 마르크스가 읽은 셰익스피어>


이토록 온갖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는 과연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설파하고자 했을까요? 놀랍게도 셰익스피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항상 열린 자세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뿐 자기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제시된 세계는 '모색(摸索)으로 가득 찬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어떤 사상을 배우려고 하는 건 헛된 노력일지도 모릅니다.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도 이 점을 간파하고 명쾌하게 결론내렸습니다. "그는 위대한 독창적 사상가는 아니다. 시인들은 대개 독창적 사상가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주특기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사상을 찾는 사람은 셰익스피어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라고 말이지요.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는 당대의 인기 최고의 드라마 작가였습니다. 오늘날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우리가 '인기 최고의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서 무슨 고매한 철학이나 사상을 배우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이런 경향은 그가 '철학'을 두고 표현하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에게는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그는 'Philosophy(철학=논리적인 것)'이라는 말을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14번 사용했는데,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자. 줄리엣의 사촌을 죽여 베로나에서 추방당한 로미오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논리로 설득하는 로렌스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추방' 얘깁니까? 철학 따윈 개나 줘버려요! 철학으로 줄리엣을 만들 수 있나요, 마을 전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나요, 아니면 영주님의 판결이 뒤바뀔 수 있게 하나요. 철학 따윈 아무 필요 없어요, 그러니 더 말씀 말아 주세요."


그리고 햄릿은 아버지의 망령에게서 친동생이 자신의 목숨과 왕관과 부인까지도 빼앗아갔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까지 갖고 있던 인간관이 모두 무너진 그는 친구 호레이쇼에게 이렇게 말한다.


"호레이쇼, 이 세상에는 우리들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네." (58∼59쪽)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셰익스피어의 인간관·역사관의 형성>


시정이 이렇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 훼손될 일은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 있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활동한 수많은 작가들은 결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괴테가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극작가나, 소설가, 시인이 모두 펜을 접어야 하는 건 물론 아니지요. 이미 셰익스피어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여럿 참고해서 자신의 작품을 썼습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지요. 괴테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는데 그 작품은 괴테가 쓴 『햄릿』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체호프의 <갈매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햄릿』을 다시 쓸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한 건 아닌 셈이지요. 물론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그만 압도된 나머지 작가가 되는 길을 지레 포기한 사람도 있을 테지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토록 우뚝 솟은 '문학의 거인'이 자신의 품 안에서 먹여 살릴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이 또한 오래 전부터 반복된 '익숙한 전통'이자 당연한 귀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플루타르코스의 판단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 몽테뉴, 『수상록』,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삶이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까닭은 그가 '작품' 말고는 다른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친필 원고는 전무하고 그가 서명한 서류 몇 건과 출생 및 사망 증명서가 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그의 작품을 통해 거꾸로 '작가의 삶'을 연구하고 밝혀 보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듯합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만큼 마음놓고 계속 떠들 수 있는 주제도 드물기 때문이지요. '셰익스피어 전기'만 하더라도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도서관에서 대충 훑어 보기만 했던 책들 가운데서도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매력적인 책들은 꽤나 많았습니다. 가령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와 리처드 폴 로의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같은 책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책들은 잘만 읽으면 무척이나 유익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달려들다 보면 도리어 쓰디쓴 맛만 안겨주는 고약한 책으로 돌변하기도 쉽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감동을 두루 충분히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저자가 느낀 만큼의 깊은 감흥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마치 몸이 몹시 허약한 사람한테는 비싼 보약조차도 함부로 처방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닮았다고나 할까요.

셰익스피어 원작자를 둘러싼 논쟁이나 음모론들은 사실 일반 독자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밥줄이 달린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지요. 셰익스피어에 관한 일반 독자들의 문제는 언제나 셰익스피어의 숱한 명작들을 직접 읽느냐 마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그것이 『햄릿』이든 『로미오와 줄리엣』이든 『한여름 밤의 꿈』이든 『겨울 이야기』든 말이지요. 선택은 언제나 독자들의 '뜻'에 달렸습니다.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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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JYDyrTfqX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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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0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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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3-01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는 오래 활동 하셔서 변화를 감지하시고 계시나봅니다. 저는 알라딘 서재가, 이런 공간인 줄 모르고 줄창 독백하듯 리뷰만 올리다가 ˝북플˝기능 덕분에 작년부터 소통하게 되었거든요. 예전에는 더욱 화기애애하고 북적였나봐요 이 서재들이^^

oren 2021-03-01 15:07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좋은 글들이 올라오면 댓글이 순식간에 수십 개씩 붙었었죠. 인기 있는 알라디너의 글엔 수백 개씩 댓글이 붙은 적도 있었고요. 그런 글들을 보면 도저히 댓글을 안 달 수가 없어서(댓글을 안 달면 괜히 찔리는 기분까지도 들었을 정도니까요.) 반 강제로 댓글에 동참한 경우도 더러 있었던 듯하고요.^^

얄라알라북사랑 2021-03-0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참! 처음에 몇번 oren님 영상 보다가 최근에는 죄송하지만 안 찾아봤는데 조회수가 10000대, 정말 축하드립니다! 꾸준히 듣겠습니다용

oren 2021-03-01 15:09   좋아요 1 | URL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지 1년 남짓 지났고, 아직까지도 동영상 제작에 많이 서툴긴 하지만, 제 채널 방문횟수만큼은 꾸준히 늘고 있어서 무척이나 고무적입니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제 채널 방문횟수가 하루 몇십 회가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하루 1천회씩은 나오는 듯해요.^^ 갈수록 휑한 알라딘에 비하면 엄청난 조회수이긴 하죠.^^

2021-03-0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에게 전후를 살피도록 풍부한 판별력을 부여하신 분이,

그런 능력과 존엄한 이성을 주었을 땐,
사용도 못해본 채 곰팡이가 생기도록
하시려 함은 확실히 아니렷다.


<햄릿> 4막 4장, 36-39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한마디로 문학의 최고봉입니다. 그를 인도와도 맞바꾸지 않겠다는 어느 영국인의 호언장담이 빈 말이 아닐 정도로 말이지요. 그는 인도보다 훨씬 더 넓은 땅을 자신의 그림자로 가릴 만큼 우뚝 솟은 거인이었습니다. 그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도 장엄할까요? 그러나 그가 거대한 사람이니만큼 그에게 다가서려는 독자들은 그만큼 주춤거려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평생 독서 계획』의 저자이자 유명한 문학비평가였던 클리프턴 패디먼은 그런 '셰익스피어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요약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정의 결과가 달라진다."


참으로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젊어서 한 때는 암벽 등반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등산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네팔에서 사다 주신 '에베레스트 실물 사진'이 아직도 제 책상 머리맡에 걸려 있습니다. 한때나마 저는 꽤나 자주 그 사진을 올려다 보며 '언제쯤 저길 오를 수 있을까' 하고 꿈꾸었지만 이젠 좀처럼 그 사진을 올려다 보지 않습니다. 그런 도전을 하기엔 세월이 너무 흘러버린 탓이지요. 다만, 그런 사연들이 쌓인 덕분에 마침내 2013년에 히말라야로 떠날 수 있었고, 그때 비로소 '희박한 공기'를 온 몸으로 체감하며 눈덮힌 고봉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지요.


제가 경험했던 체르코리(해발 4,984m) 등정만 하더라도 되돌아보면 몹시 힘겨웠습니다. 평소 풍부한 등산 경험과 막강한 체력을 갖춘 등반 애호가들 12명이 함께 도전에 나섰으나 상당수는 4,500m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더랬습니다. 저를 포함해 겨우 셋만 정상을 넘봤는데 4,500m 이상에서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덮인 너덜지대를 통과할 땐 털썩 주저앉고 싶은 때가 정말 여러 번이었습니다. 불과 두세 걸음만 옮겨도 극심한 메스꺼움을 느끼면서 가쁜 숨을 연신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거기엔 산소가 평지의 1/3에 불과했으니까요. 그토록 희박한 공기 속에서 중력과 사투를 벌이는 일이 얼마만큼 고역인지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체험이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 때 들었던 웃픈 얘기 하나도 문득 떠오릅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미가 너무나 급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거꾸로' 다녀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해발 4,000m든 5,000m든 최종 목적지를 헬기로 먼저 이동한 다음 거기서부터 도보로 천천히 내려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주 가끔씩 시도되는 그런 방식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 진짜로 문제였습니다. 대략 해발 2,800m 이상에서는 으레 '고산병 증세'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고소 적응 과정'도 없이 갑자기 4,000∼5,000m 고지에 오르면 '고산병'이 아주 극심해지기 때문이지요. 한국 사람들 가운데 이런 식으로 트레킹에 나섰다가 하산 도중에 고산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셰익스피어로 돌아오지요.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은 욕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는 단번에 그 높은 봉우리를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듯이,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접근하는 것도 사정은 비슷해 보입니다. 그와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를 수만 있다면 그와 함께 절경을 내려다볼 수도 있겠지만 도리어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참패'를 맛볼 가능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거인이라고 하더라도 에베레스트에 비유한 건 과장이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 악물고 도전한다면 누구라도 셰익스피어를 읽어낼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정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어느 문학비평가의 말에는 고도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고소 적응 훈련'도 생략한 채 너무 무리해서 셰익스피어에 다가가다가는 자칫 '고산병 증세'를 견디지 못하고 너무 일찍 하산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이 셰익스피어에 다가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보여주는 멋진 절경들'을 즐겁게 보며 만끽하고 싶은 것이지 온갖 고통을 겪더라도 단지 오르는 데만 최종 목표를 둔 게 결코 아닐 테니까요.


이쯤에서 패디먼의 말을 조금만 더 들어보지요. 그의 말엔 좀 더 효율적인 등반 안내 지침도 있으니 말이지요.


그는 인간이었지 반신半神이 아니었다. 그는 콜리지가 말한 것처럼 "일천 가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매슈 아놀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무오류의 인간도 아니었다. 인류가 낳은 많은 천재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극단에 소속된 장인이었고, 바쁜 배우였으며, 영리하여 점점 번영을 구가한 사업가였다. 천재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고, 셰익스피어가 그 좋은 사례이다.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읽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70세를 산다고 보고 그 중에서 반년 정도의 시간을 투입하여 전집을 읽는다면 충분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37편 중에서 다음 12편을 필독서로 권한다. 한꺼번에 다 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평생에 걸쳐 한 권씩 한 권씩 읽는 방법이 더 좋다.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 4세』1부와 2부, 『햄릿』,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되에는 되로』, 『리어왕』,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오셀로』, 『태풍』.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이쯤 되면 패디먼의 이야기는 '에베레스트 정복'보다 한결 수월해 보이고, 한껏 고무적인 이야기로 변합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제가 바로 저런 이야기를 가슴에 꼭꼭 담아 두고서 '세익스피어는 최대한 천천히 만나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더랬습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한『평생 독서 계획』속 문장들을 글로 옮겨 놓은 게 어언 11년 전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셰익스피어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으니 말이지요.


셰익스피어를 억지로 외면한다고 해서 그가 영영 우리들 눈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네팔이나 히말라야까지 가지 않더라도 평소에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에베레스트'를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아무런 예고조차 없이 불쑥 나타나는 셰익스피어를 가끔씩은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사실 이 영상의 시작 부분에 인용한『햄릿』의 대사 또한 제가 2004년에 읽은 어떤 책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문장인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어서 이번에 다시금 인용하게 된 것이니까요.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셰익스피어와 언제 어디서라도 아무런 예고 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 유명한 『햄릿』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한 독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작품 속의 대사 몇 가지는 충분히 외울 정도로, 우리는 이미 셰익스피어에게 익숙하기도 합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혹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같은 그 유명한 대사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여기저기서 거듭 셰익스피어를 마주치고 나서도 한사코 그를 계속 외면하는 일은 적잖은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를 다시 만나러 가자니 그런 거인 앞에 서면 너무나 작아질 것만 같은 내가 너무 두렵고, 그를 계속 피하자니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을 내가 너무나 몰라볼까 두렵다고나 할까요?


혹시라도 누가 어느 날 불쑥 내 앞에 나타나『오셀로』에 나오는 그 나쁜 이아고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다면? 『헨리 4세』의 1부와 2부에 계속 연이어 등장하는 폴스태프에 대해 물어본다면? 헨리 4세조차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폴스태프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이야기라면 또 모를까...


제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무지한 탓에 정말로 곤혹스러웠던 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라는 책을 읽을 때였습니다. 저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동안에 몇 번씩이나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어쩌자고 내가 셰익스피어를 건너뛰고 이 책부터 붙잡고 나서 이 고생이란 말인가,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몇 번씩이나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대로 아일랜드 더블린에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영국 런던으로 당장 건너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고 말이지요.


왜냐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속 공간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계속 남아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기엔 작품 속 인물들이 나누는 '셰익스피어 이야기'에 대해 제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좀 더 빨리 만나도록 제게 큰 자극을 준 또다른 인물은 미국의 사상가인 에머슨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라는 말로 '셰익스피어'를 극찬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에머슨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온통『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만 관심이 있었고, 셰익스피어에게는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더랬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두 번이나 거듭 읽고 난 뒤에 에머슨의 『위인이란 무엇인가』를 펼쳤습니다. 제가 그 책으로 건너간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에머슨의 평가'가 어떤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 책 속에 몽테뉴가 등장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몽테뉴가 가장 좋아한 작가가 플루타르코스였으니 에머슨이 들려주는 '몽테뉴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위인이란 무엇인가』 속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영웅'도 없었고, 몽테뉴도 없었습니다!


사정을 좀 더 살펴 보고 나서야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그 책은 원제목이 《대표적 인물 Representative Men》(1849)이라는 책이었고, 거기엔 원래 나폴레옹, 괴테, 셰익스피어, 스베덴보리, 몽테뉴, 플라톤이 담겨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번역할 때 하필이면 '몽테뉴'만 쏙 빼버렸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러나 뭐 어떠랴 싶었습니다. 그 책엔 뜻밖에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가득 들어 있었으니까요.


'여태껏 셰익스피어도 모르면서 잘도 지내 왔군.' 하고 제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 또다른 인물은 예일대에서 오랫동안 문학을 강의해온 헤럴드 블룸 교수였습니다. 그가 쓴 『교양인의 책읽기』는 여러 명의 소설가와 시인과 극작가를 다루고 있는데 셰익스피어는 특별히 <시인편>과 <극작가편>에 거듭 얼굴을 내민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를 다룬 부분에서는 『햄릿』을 매우 깊이있게 다루고 있어서, 그 작품을 미처 읽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 편도 제대로 읽지 못한 학생이 '셰익스피어의 <햄릿> 특강'을 다루는 예일대 강의실에 불쑥 끼어든 꼴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당혹감이야말로 더 이상 셰익스피어와 햄릿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더없이 강력한 자극제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저는 마침내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부터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저는 '햄릿'의 대사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거기엔 놀랍게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가 숨어 있었고, 심지어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까지도 숨어 있었습니다. 『햄릿』2막 2장에 나오는 '극중극'에서 햄릿은 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은연중에 그 자신이 '배우'이자 '시인'이 되어 '극중극'의 대사를 배우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햄릿

그 극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대목이 있는데 그건 아이네이아스가 디도에게 해 준 얘기로, 특히 그가 프리아모스의 도륙을 말하는 부근이야. 기억할 수 있거든 이 줄에서 시작해 보게 ㅡ 어디 보자, 어디 보자 ㅡ


'험상궂은 퓌로스가 히르카니아의 야수처럼' ㅡ

이게 아냐. 퓌로스로 시작하는데 ㅡ

'험상궂은 퓌로스가 불길한 목마 속에

쭈그리고 앉았을 땐 칠흑 같은 갑옷이

자신의 의도처럼 검은 밤을 닮았더니

지금은 그 무섭고 검은 모습 더욱더

불길한 색깔로 물들었소. 그는 지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시뻘겋게

아비, 어미, 딸들과 아들들의 핏물로

끔찍이 채색되어 그들 왕의 살해에

포악과 저주를 더하면서 불타는 거리에서

바짝 말라 구워졌소. 분노와 불길에

딱딱해진 피껍질을 온몸에 덮어쓰고

석류석 붉은 눈빛, 지옥 같은 퓌로스가

프리아모스 노친을 찾는다오.'

이어서 자네가 계속하게


    폴로니우스

          맹세코, 왕자님, 잘 읊으셨습니다. 억양도 좋으시고 분별력도 좋습니다.

                                                                                  

                                                                                 - 『햄릿』, <2막 2잘>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극중극'으로 '퓌로스'를 등장시킨 건 뚜렷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부 살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햄릿의 롤모델이 바로 퓌로스였기 때문이지요. 사실 『햄릿』에서 '햄릿'과 똑같은 처지, 즉 자신의 부친이 살해당한 데 대해 복수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아들의 위치에 있는 인물은 햄릿 말고도 포틴브래스와 레어티스까지 무려 셋이나 됩니다. 거기에 더해 셰익스피어는 '극중극'을 통해 '퓌로스'까지 끌어들인 것이지요. 퓌로스는 일명 네옵톨레모스라고도 불리는데,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입니다.


고전 중의 고전인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지요. 그의 분노가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멈추게도 하고 원정군을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게도 만들지만, 그의 분노가 가라앉을 땐 적국의 대왕인 프리아모스를 감동시킬 때조차 있으니까 말이지요. 어쨌든 아킬레우스는 전쟁 중에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아 죽고, 그의 아들 '퓌로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 전쟁에서 놀라운 맹활약을 펼칩니다. 


그는 10년 동안이나 함락되지 않는 트로이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헤라클레스의 활'을 구하기 위해 필록테테스를 만나러 갈 때에도 중요한 임무를 띠고 오뒷세우스와 함께 렘노스 섬으로 파견됩니다. 결국 꾀많은 오뒷세우스는 섬에 버려져 있던 가엾은 필록테테스와 그가 지닌 '헤라클레스의 활'을 동시에 얻게 되지만, 필록테테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꾀고 설득하는 임무를 띤 건 '착한 퓌로스'였지요. 그는 필록테테스가 잠든 사이에 활을 훔쳐내지만 '활도 없이 섬에 홀로 남아 지낼' 그를 너무나 가엾게 여겨 그에게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훔친 활을 도로 돌려주지요. 그토록 착한 퓌로스였지만 그가 아버지를 잃은 뒤에 트로이아를 함락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분노'는 트로이아의 왕과 왕비에겐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가혹했습니다.


저는 『햄릿』을 읽다가 갑자기 오래 전에 읽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다시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퓌로스가 정말 그토록 '분노와 불길에 딱딱해진 피껍질을 온몸에 덮어쓰고' 맹렬하게 날뛰었는지를 새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주욱 이어서 설명드린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가 곳곳에 가득 숨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미리부터 속속들이 알고 있던 당대의 관객들이나 후대의 독자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해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다 까닭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셰익스피어의 로맨스극 『겨울 이야기』를 번역했던 이윤기 선생님의 설명도 참고할 만합니다.


종교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종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신비 참여 체험' 때문이다. 이 '신비 참여 체험'은 오로지 종교에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떨까?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탐독하는 것이 '문맥에 참여하는 재미의 체험' 때문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면서 혹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오비디우스의 텍스트를 떠올리는 재미는 참으로 별난 경험이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서 자주 신화의 편린을 찾아내고는 한다.

 -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 이다희 옮김,『겨울 이야기』, <『겨울 이야기』재미나게 읽기> 중에서



저는 이제야 겨우 셰익스피어의 작품 여섯 편을 읽었지만 그 속에서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오비디우스, 플루타르코스의 영향들을 심심찮게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줄리어스 시저』등을 읽을 땐 플루타르코스를 통해 읽었던 '영웅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붓끝에 의해 얼마나 훌륭하게 '연극'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인 대사건을 두고도 천재 시인은 몇몇 제한된 배우들의 극적인 대사 만으로도 더없이 훌륭하게 되살리는 비상한 재주를 맘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복잡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도 셰익스피어는 단지 배우들의 아주 짧은 방백만 가지고도 더없이 날렵하게 다른 장면들로 사뿐히 건너뛰고 내달렸습니다. 그런 재미까지 두루 맛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선행 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윤기 선생님의 다음 말은 셰익스피어를 읽기 위한 예비 독자들에겐 더없이 훌륭한 조언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뒤늦게 셰익스피어를 만났지만 저는 그의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가가 아니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호메로스로부터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신화 작가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그리스 비극 작가들, 헤로도토스, 플루타르코스 같은 역사가들로부터 흘러온 길고 깊은 강이라고 생각한다. 도도하게 흐르는 서양 문학의 강이라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일은 그 강으로 풍덩 뛰어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 이다희 옮김,『겨울 이야기』, <셰익스피어, '압축 파일' 풀기> 중에서


셰익스피어를 극찬한 사람들은 예로부터 아주 많았습니다. 그만큼 높이 솟은 문학의 봉우리를 우리는 앞으로도 영영 다시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겨우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여섯 편을 읽은 독자 주제에 제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먼 발치에서라도 에베레스트를 한번 힐끗 올려다본 사람은 그 아득한 봉우리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늘상 떠들기 마련입니다.


이미 이십여 년쯤 전에 히말라야를 훌쩍 다녀온 친구 녀석으로부터 제가 들었던 가장 강력한 말은 이랬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히말라야에 가 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음하하하." 수많은 작가들을 높은 산들에 비유한다면, 셰익스피어에게도 누군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엔 셰익스피어를 읽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셰익스피어를 읽는 행위를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데 비유한 클리프턴 패디먼의 설명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 산악인만이 도전할 수 있는 에베레스트처럼 그렇게 난공불락의 봉우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패디먼도 그걸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를 "고전"이라고 생각하며 접근하는 것보다, 새로운 드라마의 첫 공연에 참석하는 것 같은 기대감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처럼 '희박한 공기'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거나 메스꺼움을 느낄 리도 없습니다. 든든한 장비를 두루 갖추고 아주 유능한 셀파와 함께 목숨을 걸고 도전할 일은 더더욱 아닐 테고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발견했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가끔씩 전혀 예상밖의 엉뚱한 대답을 하곤 합니다. 거기서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이지요. 제가 보기엔 셰익스피어도 아마 그와 비슷한 작가인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다 오르기는 몹시 힘들어도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걸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거대한 산 같은 작가이니까 말이지요.


 * * *


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nfaX0qe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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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02-21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Hamlet 에서 님께서 인용하신 대사, 발췌해봅니다.
어쩐지 한국말이 더 어려운 것 같은....그런 느낌입니다.

36 Sure, He that made us with such large (discourse),>>>> (power of reasoning)
37 (Looking before and after), gave us not >>>>(seeing cause and effects)
38 That capability and god-like reason
39 To (fust) in us unused. Now, whether it be >>>>(mould-grow moldy)
Hamlet Act IV, Scene 4

Shakespeare 를 long-term project 으로 천천히 열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으로 댓글 달아봅니다.
Cyrus님 글에 댓글 처음으로 달아본 뒤, 님글이 두 번째입니다.

최근에 극상의 탐미주의자, Oscar Wilde 의 유일한 소설인,
˝The Picture of Dorian Gray˝ 를 다시 읽었는데 이 책에 언급된 Shakespeare 작품 인물들,
(많이 나옵니다.) 다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서 너무나 즐거웠답니다.

일단 ˝Art for art‘s sake˝ 로 유명한 서문부터
˝The nineteenth century dislike of Realism is the rage of Caliban seeing his own face in a glass.˝
(Caliban is a monstrous creature in ˝The Tempest˝.)
from The Preface, The Picture of Dorian Gray

Shakespeare 자체가 문학 자체에 드리운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Shakespeare 이후의 거의 모든 다른 책들의 미묘한 암시, allusion/reference 를
제대로 다 catch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꼭 (?) 넘어야만 할 산인데 그의 작품수가 너무나 많아서, 또 읽다보면
Shakespeare 가 Virgil 의 Aeneid, Homer 의 Odyssey 뿐만 아니라 다른 Greek Tragedians
작품까지 한, 두 줄로 요약해서 전달해버리는 기술 (?) 내지 마법을 부리며
진짜 고전중의 고전들을 읽어야만 하겠구나,
라는 숙제를 안겨주기 때문에 아마도 Mt. Everest 에 비유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자꾸 읽다보면 소위 Modernism, 혹은 Postmodernism 이라 불리는
다른 책들보다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Shakespeare 가 딱히 더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한텐 영어로 읽는 Vladimir Nabokov 나 어떤 면에선 William Faulkner 의 글이 더 숨이 차기때문에.

저는 님께서 언급하신 Shakespeare 에 대해 쓴 책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님의 독서량과 깊이에 감탄하며 님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려 합니다.
Shakespeare 안내서 비슷한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자꾸 읽다보면
저 같은 경우, 자꾸 집중력이 흩어져서
웬만하면 제 힘으로 책 그 자체를 먼저 읽으려 하는 편이거든요.

일단 4대 비극들을 다 읽고 난 후에 그냥 Public Domain 에서 유명한 A.C. Bradley 의
Shakespearean Tragedy: Lectures on Hamlet, Othello, King Lear & Macbeth 를 쭉 훑어보았는데
나름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제가 놓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책 자체를 제 힘으로 다 읽었기 때문에
놓친 것들에 대한 즐거움이 더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달에는 대학 이후 다시 한 번 ˝The Tempest˝ 를 정독해서 끝냈고
이번 달은 일단 종이책으로 가지고 있고 대학 English 1B 에서 공부한 적 있었던
‘A Midsummer Night‘s Dream‘ 를 다른 책들 읽는 사이사이,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이 희극에서도 시작하자마자 바로 The Queen of Cartage, Aeneid의 Dido 가 또 언급됩니다.

전 그냥 한 달에 한 편씩 Shakespeare 읽는 걸로 올 해 목표를 세웠고
Twelfth Night, Much Ado About Nothing, As you Like It, The Taming of the Shrew, 그리고
The Merchant of Venice 까지 읽은 후, Histories 의 시작으로 Julius Caesar 를 파 볼까 계획 중입니다.
위에 누군가 추천한 것과는 좀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책읽기에 왕도란 없는 것이니까요.

4대 비극과 ˝Romeo and Juliet ˝까지는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디서 어떤 대사가 나왔었는지 인식할 정도의 집중을 쏟은 읽기를 작년에 마쳤고
Hamlet 의 Metafiction으로 유명한 Tom Stoppard 의
˝Rosencrantz & Guildenstern Are Dead˝ 까지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과 읽은 책들에 대해서 님처럼 depth of knowledge 가 있는 글을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요.

발췌한 김에 제 Hamlet 책을 온갖 색깔의 깨알글씨로 빼곡 채우게 만든
Act II, Scene 2 , Lines 445-465 대사들도 적어봅니다.
댓글에 왜 사진 첨부의 기능이 없는건지....
왕 수다쟁이에 너무나 아는 것 많은 Hamlet 의 폭풍대사긴 하지만 나름 rhyme 이 있어서
소리내어 읽다보면 뭔 말 하려는지... 알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HAMLET

very much more handsome than fine. One speech (much more fitting than flashy. One speech)
in it I chiefly loved: ‘twas Aeneas‘ tale to Dido; (it was the story that Aeneas told to Dido.)
and thereabout of it especially, where he speaks of (and specially that part of it.)
Priam‘s slaughter: if it live in your memory, begin (the slaying of Priam, the elderly King of Troy.)
at this line—let me see, let me see:

˝The rugged Pyrrhus, like the Hyrcanian beast—˝ (Hyrcanian beast: a ferocious tiger-like)
‘Tis not so: it begins with Pyrrhus: ( Pyrrhus: cruel son of Achilles)
˝The rugged Pyrrhus, he whose sable arms, (sable: black>>>>meaning the Greeks hiding in the Trojan horse)
Black as his purpose, did the night resemble
When he lay couched in the ominous horse, (the Trojan horse)
Hath now this dread and black complexion smear‘d
With heraldry more dismal; head to foot
Now is he total gules; horridly trick‘d ( Heraldic terms: gules: blood-red/ trick‘d: drawn, adorned.)
With blood of fathers, mothers, daughters, sons,
Bak‘d and impasted with the parching streets,
That lend a tyrannous and damned light
To their lord‘s murder. Roasted in wrath and fire, (Priam‘s murder)
And thus o‘er-sized with coagulate gore,
With eyes like carbuncles, the hellish Pyrrhus (carbuncles: deep-red jewels which shine in the dark)
Old grandsire Priam seeks.˝
So, proceed you. (pick up where I left off)

POLONIUS
‘Fore God, my lord, well spoken, with good accent
and good discretion.

Hamlet 이 줄줄이 암송 읊으며 저리 잘난 척 한 다음에 계속 이어서 말해보라고
challenge 했을 때 Polonius 가 과연, 딱히 뭘 더 말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물개 박수 치면서 ˝OMG, 네, 왕자님 정말, 잘 나셨어요.˝
그저 왕자님 폭풍 칭찬하는 것 외엔.

oren 2021-02-21 01:23   좋아요 1 | URL
Shakespeare 를 장기적으로 천천히 열공하고 계시는 분을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또한, 제가 인용했던 <햄릿>의 대사를 원문으로 다시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어를 현대의 우리말로 번역하는데는
아무래도 많은 난관이 있을 듯합니다.
제가 <평생독서계획> 속에서 발견했던 <오셀로> 속의 어떤 대화 하나도,
영어 원문에서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로 쓰인 걸 알고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답니다.
https://blog.aladin.co.kr/oren/9446811

Oscar Wilde의 ˝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군요.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 셰익스피어가 자주 등장하는 건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닌데,
제가 읽었던 작품 가운데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말고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인물들이 그렇게나 많이 등장하는군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오스카 와일드의 그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속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인용된 정도는 아래 글을 참고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https://blog.aladin.co.kr/oren/10142866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들이 가득 숨어있는 건 맞으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나 윌리엄 포크너의 어려운 작품들보다 더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말씀,
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 역시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무슨 <해설서>를 일부러 찾아 읽은 적은 별로 없는데,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라는 책과 푸른숲에서 나온 대형 판형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는 데 특히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4년 전에 제가 cyrus 님께 달아드렸던 댓글이 생각나 재인용해 봅니다.)

『HOW TO READ 셰익스피어』의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7개‘를 ‘일곱 개의 단어‘로 기가 막히게 설명해 놓았더군요. 가령, 『햄릿』은 ‘벙어리들‘로, 『맥베스』는 ‘안전한‘으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끄덕임‘으로 설명하는 식이죠. ‘주석이 없는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밖에 없는 독자들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갖는 온갖 놀라운 비밀들을 ‘거의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지나치며 읽고 있다고 봐야 옳겠더군요.
* * *
……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드퀸시(Thomas De Quincey, 1785∼1859)가 1823년 셰익스피어를 읽는 경험에 대해 했던 말이 얼마나 예리했는지 입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드퀸시는 이렇게 말했다. ˝탐구를 계속할수록, 조심성 없는 눈은 우연성밖에 보지 못하던 곳에서 설계와 자립적 배치의 증거를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는 여태껏 (소네트와 설화시 작품을 제외하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작품을 21편 정도 읽었는데,
민음사에서 출간 중인 전10권 운문번역이 5권까지만 출간되고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어서,
아직도 못 읽은 16편의 희곡작품은 동서문화사 판본으로 읽어볼까 고민중이랍니다.^^
https://blog.aladin.co.kr/oren/10791621

너무나 친절하게도, <햄릿> 속에서 제가 인용했던 부분을 재인용해 주셔서,
제게도 아주 유익한 참고가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에 담긴 무궁무진한 깊이는,
아마도 니체의 다음 말에 요약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봤더랬습니다.
기나긴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 *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경우

예를 들어 우리는 다시 호메로스를 : 어떤 고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호메로스의 광막한 정신을 비난했던 생 테브르몽Saint-Evremond 같은 17세기 프랑스인들이나, 그 세기 마지막 인물인 볼테르조차도) 쉽게 소화할 수 없었으며 ㅡ 거의 즐길 수조차 없었던 호메로스를 우리가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우리의 가장 행복한 우월성일 것이다. 그들 미각의 매우 단호한 긍정과 부정, 쉽게 일으키는 그들의 구토, 온갖 이질적인 것에 대해 머뭇거리는 신중함, 활발한 호기심이 가지고 있는 몰취미 자체에 대한 그들의 경계심,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새로운 탐욕이나 자기 것에 대한 불만, 또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경탄을 스스로 인정하는 고상하고 자족적인 모든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저 나쁜 의지 : 이 모든 것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거나 노획물이 될 수 없는 것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 해도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ㅡ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들에게는 바로 역사적 감각이나 거기에 굴종하는 천민적 호기심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은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경우가 다르지 않다. 이 놀라운 스페인식과 무어식, 색슨적인 취미의 종합을 보았다면, 아이스킬로스와 친교가 있던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라면 반쯤 죽도록 웃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ㅡ 바로 이러한 거친 다채로움을, 가장 섬세한 것과 조야한 것, 예술적인 것의 혼합을 은밀히 신뢰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비축된 예술의 정수로 셰익스피어를 즐기며, 이때 그의 예술과 취미가 살아 있는 영국 천민의 불쾌한 수증기가 근처에 감돈다 해도 거의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나폴리의 키아야 천민 지역의 하수구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해도,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매혹된 채 즐거이 우리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7장> 우리의 덕, 제224절


Jeremy 2021-02-21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길게 이것저것 더 썼었는데 홀라당 날려버리고 의욕상실해서
그냥 제 댓글은 잊어버리고 oren 님 글을, 더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James Joyce 의 Ulysses 는 아직 저한텐 힘든 책이라서
작년에도 괜히 Annotation 이 많이 붙은 The Gabler Edition 까지 샀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군데군데 펼쳐 읽어보는 소소한 기쁨만 누리고 있습니다.
oren 님글, 읽어보면 확실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oren 2021-02-21 14:27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기나긴 댓글을 좌악 써내려가다가 한순간에 싹~ 날려버리고 나면,
좀처럼 다시 쓸 기분이 들지 않더군요.. ㅎㅎ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가끔씩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독서가 되는,
참 묘한 책인 건 분명한 듯합니다.
저도 그 책을 읽기 전까지 그냥 심심풀이로 몇 번 뒤적거려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자꾸만 축적되어야 그 험준한 산을 기어오를 동기가 부여되는 것 같더라구요.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
 

용기를 잃는다는 것은 철저한 패배를 의미한다. 철저한 패배를 원하는가?그렇지 않다면 용기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 플루타르코스

 

 * *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소개합니다.


이 유명한 책을 쓴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 사람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영어식으로 번역해서 『플루타크 영웅전』으로도 많이 소개되었었지요. 탁월한 문장가이자 철학자이자 역사가였던 플루타르코스에게 붙은 별명은 '최후의 그리스인'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죽은지 1,800년도 더 지나서 그리스의 소설가였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멋진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았더라면 플루타르코스는 여전히 '최후의 그리스인' 타이틀을 굳건히 움켜잡고 있었을 테지요. 이 탁월한 고대의 인물은 기원후 46년경 태어나 120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리스는 사실 로마의 속주가 된 지도 2백 년이나 지난 상태였습니다.


훗날『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대'라고 절찬한 '5현제의 시대'를 살았던 그가 '최후의 그리스인'이라는 영광스러운 별칭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는 고대 그리스의 주요 작가들에 아주 통달한 끝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생애의 마지막 30년을 '고대 그리스의 상징'인 델포이 신전에서 사제 노릇을 하며 헌신적으로 일한 점도 그런 별명을 얻는데 보탬이 됐을 듯합니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신관으로 일했던 건 아폴론의 신탁을 받던 유서깊은 델포이 신전이 더 이상 황폐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지요. 그런 그에게 '최후의 그리스인'이라는 별명 만큼 멋진 타이틀도 없었을 듯합니다.


그는 아폴론 신전으로 유명한 델포이에서 가까운 도시인 카이로네이아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부터는 아테네로 건너가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런 뒤에 이집트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로마에도 두세 차례 방문해 강의도 하고 집정관 등 고위층의 명사들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가 쓴 대표작은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인데, 원래 제목은 『비교 열전』(Bioi paralleloi)이었습니다. 스물세 쌍의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비판적으로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붙었습니다. 애초에 그 책엔 이들 마흔여섯 명의 영웅들만 담겼으나, 나중에 그가 따로 쓴 「로마 황제전」에서 두 사람을 더 보태고(갈바와 오토), 또 다른 제왕전 중에서 남아 전해지던 두 사람(아라토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후세 학자들이『영웅전』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책은 모두 50명의 영웅들의 전기를 담은 방대한 책이 되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펼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웅들인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브루투스, 폼페이우스, 안토니우스 등을 두루 만날 수 있지만, 그 영웅전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마땅할 인물들이 몇몇 제외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테바이의 영웅 에파메이논다스(키케로는 그를 '최초의 그리스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결정타를 가한 대(大)스키피오의 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방금 언급했던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으로 모두 227개의 제목이 발견되는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50편의『영웅전』과 78편의 『윤리론집』뿐이라고 하지요. 그가 쓴 작품 가운데 대략 절반 정도만 남은 셈입니다. 그런데 그가 쓴 그토록 많은 작품 가운데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전을 우리말로 직접 번역한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제가 알기로는 대략 다음의 네 권쯤 되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없는 셈이지요.


방금 소개했던 네 권도 모두 그리스어 원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책이긴 하지만 한결같이 '완역'이 아니라 '발췌 번역'으로 출간되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원전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발췌 번역으로나마 번역본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반갑긴 하지만, 원전의 명성이 워낙에 우뚝한 만큼이나 독자들로서는 완역본에 대한 갈증도 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요.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또한 『영웅전』못지않게 방대한 저작인데, 무려 78편의 작품이 담긴 원전의 완역본을 기대하기란 힘들 듯합니다. 국내엔 원전에서 딸랑 6편만 추려 뽑아 번역한『수다에 관하여』(천병희 번역, 279쪽)라는 책과 5편만 추려 뽑은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허승일 번역, 418쪽) 정도가 나와 있을 뿐인데, 두 권의 발췌번역본을 합치더라도 전체 작품의 겨우 14%(11/78) 정도만 번역된 셈이니까요.

 

이런 사정들만 대충 살펴보더라도 플루타루코스의 『영웅전』과 『윤리론집』이 얼마나 방대한 저작이며, 그 두 작품의 원전 번역이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풍부한 주석 작업이 뒤따라야 하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국내에 나와 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그리스어 원전의 완역본이 아니거나 혹은 원전의 발췌 번역본이라고 하더라도, 이 위대한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나쁘진 않은 듯합니다.


우선,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요? 누가 그런 걸 일일이 다 헤아리고 있겠습니까마는, 제가 읽은 어느 책에서 발견한 간략한 '참고문헌'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두 정치연설가의 생애』라는 책의 말미에 실린 목록입니다.)

 

김병철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8, 범우사, 1999.

박시인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6, 을유문화사, 1966.

이다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6, 휴먼앤북스, 2010∼2012.

이성규 옮김,『플루타르코스 영웅전』1∼2, 현대지성사, 2000.

외국어번역연구회 옮김,『플루타르코스 영웅전』1∼9, 한아름, 1994.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선집), 숲, 2010.

홍사중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2, 동서문화사, 2007.

 

제가 이 책들을 모조리 살펴볼 재간은 없습니다. 다만 이 가운데 휴먼앤북스에서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번역의 문제' 보다는 '주석'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크게 잃은 책인 둣합니다. 번역자가 고(故) 이윤기 선생님의 딸이어서 더욱 세간의 기대와 주목을 받았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대작 번역'에 매달린 끝에 마침내 내놓은 번역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기대밖의 푸대접을 받는 듯해서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한때 서유럽에서 거의 천 년 동안(5∼15세기)이나 실종된 상태였다고도 하는데, 프랑스의 성직자 아뮈요가 1559년에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1579년에는 아뮈요의 프랑스어 번역을 중역한 영문판이 나옴으로써 일약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었다고 하지요.


플루타르코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단연 몽테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수상록』에서도 자신이 얼마만큼 플루타르코스의 문장들을 좋아하는지를 여러 차례 거듭해서 밝힐 정도였지요.


나는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역사가들은 내게는 입에 맞는 떡이다. 그들은 재미나고 평이하다. 그들은 또 인간의 내적 조건들의 잡다성과 진실성의 전부와 세부적인 것, 그가 총체로 가진 여러 방법의 다양성과 그를 위협하는 사건들, 즉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인간 전체가 다른 어떤 데서보다도 여기서 더 생기 있게 나타난다. 그런데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 자들은 그 인물들이 겪는 사건보다도 그 목적에, 또 외부에서 닥쳐오는 것보다도 그들 내부에서 나오는 것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에 플루타르크는 특히 나의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사실 몽테뉴가 쓴 수상록은 플루타르코스가 쓴『윤리론집』을 본따서 만든 작품이지만, 그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들이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고 독특했기 때문에 플루타르코스의『윤리론집』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이 살던 세상이 대략 1,500년의 간극이 있을 만큼 서로 확연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루는 인물들과 작품들에는 겹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인물과 작품들'에 너무나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주 좋아한 인물들은 고대 그리스 시인과 철학자들이었으며,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전기를 남긴 일만으로 그토록 유명한 인물이 된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철학자였으며 문장가였습니다. 그의 책 속에는 숱한 인물들의 생애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격조높은 문장들과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유명한 일화들 말고도 아주 매혹적인 옛 시인들의 싯구들과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는 구수한 속담들과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안목과 비판이 가미된 역사 비평들이 차고 넘칩니다. 몽테뉴가 쓴 수상록이 그토록 흥미진진한 옛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 책의 저자가 플루타르코스를 그만큼 열심히 탐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속에는 우리가 이미 영화 등을 통해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들도 꽤나 등장합니다. 가령 테미스토클레스(영화『300』과 『제국의 부활』등에 나왔던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영화『알렉산더』에서 훌륭하게 묘사된 것처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등등이 대표적이지요. 이런 인물들을 플루타르코스의 '온전한 전기'를 통해 아주 디테일하게 만나는 반가움은 영화와는 또다른 묘미가 책 속에 가득 숨어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들의 전기 속에 등장하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들, 가령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 너마저..." 등을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전체'를 통해 '각색없이' 아주 디테일하고도 생생하게 마주치는 기쁨은 때로는 격한 감동마저 불러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또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고 그의 탁월한 문장력과 인간 심리 묘사 등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손길로『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라누스』등의 작품을 재창조했습니다. 베토벤의 작품「코리올란 서곡」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때문에 작곡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그 영웅적인 인물의 전기가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속에 담기지 않았더라면 셰익스피어나 베토벤의 작품은 결코 탄생하기 어려웠겠지요.


미국의 사상가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은 "전세계의 모든 도서관에 불이 날 경우 목숨을 걸고라도 꺼내고 싶은 책"으로『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꼽았던 적이 있었지요. 서양의 숱한 인물들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 지금까지도 출간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앞세워 이 유명한 고전을 독파하는 일을 계속 외면할 수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가치를 단번에 알려주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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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d6ZoU1IYl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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