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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 대광서림 / 2003년 11월
절판


그러나 정점에 있는 일이 오래 계속되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지위가 가져다주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흥망, 가문의 성쇠 등, 어느 쪽에서도 역사는 이것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자기 자신들을 원래가 우수 민족이라고 생각한 바, 유구한 옛날부터 바로 그러했던 것처럼, 현재의 지위를 당연한 일로 믿는 나머지, 주변의 민족들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대저 멸시는 방심을 낳고, 방심은 정보의 결핍성을 가져옵니다. 그 결과로 새로운 사태에의 대응을 치졸한 것으로 만듭니다. 동시에 방심은 훈련을 태만케 하여, 자신의 힘을 상대적으로 저하시킵니다. 만족이 가진 잠재력을 얕보고, 그에 적합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도, 근본을 말하면, 그런 로마인의 오만성에 기인되는 것입니다.-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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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5-08-2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시대의 종언을 꼭 오만이나 타락 등으로 결론짓는 글은 언제나 좀 거북한 느낌이... ^^; 그냥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성자필쇄' 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마는 그래서는 학문적 연구가 될 수 없겠죠!? ㅎㅎㅎ
 
갈리아 전기 (양장)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고대 로마 군단의 후예들이 중국 대륙 서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2000년 만에 밝혀졌다. 홍콩 문회보는 중국 간쑤(甘肅)성 융창(永昌)현의 한 마을에 사는 400여 명의 유럽인을 닮은 농민들이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오늘날의 이란·이라크)과의 전투 이후 행방이 끊어진 로마 집정관 크라수스의 아들을 비롯한 로마인의 후예임이 유전자 감식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이하 생략)


 - 2005. 3.25일자 조선일보 기사 中에서

******

크라수스(기원전 115~53년)는 제1차 삼두(三頭)정치 당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로마의 정치인이다. 그는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 원정에 나섰다가 ‘카래의 전투’에서 본인은 전사하고 병사들은 대부분 몰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제1군단장으로 참전했던 크라수스의 아들 푸블리우스 크라수스는 당시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포위망을 탈출했으나 로마로 귀환하지 않고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크라수스와 그의 아들들은 카이사르가 쓴《갈리아 전기》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쟁의 기록은 B.C. 58년 부터 B.C. 51년까지 8년 동안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크라수스는 이 책의 제1권(B.C. 58년)과 제4권(B.C. 54년)에 등장하며, 그의 두 아들 가운데 M.크라수스는 제5권(B.C. 54년)과 제6권(B.C. 53년)에 등장한다. 정작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던 푸블리우스 크라수스(크라수스의 작은 아들)는 갈리아 전기에서 이들 3父子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제1권, 제2권 및 제3권에 걸쳐서 여러번 등장하며, 카이사르 휘하에서 제7군단장으로서 맹활약을 펼친 몹시 젊고 뛰어난 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카이사르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장군, 역사가, 웅변가, 법률가, 정치가, 시인, 건축가, 수학자 등 실로 여러 방면에서 두루 탁월한 천재성과 예지를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얘기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카이사르의 저작이 매우 방대하고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갈리아 전기》와《내란기》단 둘 뿐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몽테뉴로 하여금 카이사르에 대해 "가장 명석한, 가장 웅변적인, 가장 진지한 역사가"로 찬양케 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또 순수한 라틴어로 씌여진 데다가 문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가치를 지닌 덕분에 유럽 각국의 학생들의 교재로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그들의 용맹과 지략들을 떠올려보면 일견 동양의 스테디셀러인 '삼국지'와 닮은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매우 꾸밈없고 평이한 문체'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서 가운데 그 문체가 힘차고 표현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모범을 보여주는 한 전형이 되고 있지만, 전쟁을 다룬 책 치고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책이어서 활용도 면에서 보더라도 '교과서'라는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모름지기 모방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고 보았다. 고대로부터의 전쟁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알렉산더 대왕은 아킬레스를 닮고자 했으며, 카이사르는 알렉산더 대왕을, 또한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닮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주무대가 프랑스이기도 하지만 2천년 전에 벌어졌던 로마군 전쟁의 흔적들이 1,800년대에 더욱 활발하게 발굴되었던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 생전에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이 책을 늘 가까이 두고 읽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한 해 동안의 여러 전쟁과 그 전개과정 및 마무리까지가 무척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역사적 무대가 기원전이라는 점 및 당시까지 미개척의 상태였던 갈리아 지방에 대한 원정의 기록이라는 점 때문에 두 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무수히 많은 고대의 지명과 인명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매우 많은 부족명의 등장이다. 이 책 주석의 상당부분이 옛 지명에 대응하는 오늘날의 지명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으며, 책 뒷부분에도 부족 색인과 지명 색인이 여러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또한 본질적으로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들에게 자신을 비롯한 로마 군대의 '전시 활약상'에 대한 '보도 자료'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책이다. 따라서 책 내용 또한 수많은 전쟁에서의 군대의 이동 경로, 군수물자의 보급 상황, 진지와 보루의 구축, 적들의 움직임과 적들과의 각종 협상, 전투 상황, 그리고 전쟁의 결과들에 대한 기록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압권은 갈리아 지방의 여러 민족이 수많은 패전과 복속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베르킹게토릭스라는 최후의 지휘관 아래 총결집하여 카이사르와 로마군에 대해 최후의 대반격을 벌이는 대목이다. 이 전쟁은 B.C. 52년에 일어난 '알레시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데, 각 진영 모두 수십만의 정예군을 총동원하였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전쟁 상황의 긴박함과 최후의 건곤일척을 다툰다는 점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치 고대의 전쟁 영화 가운데『트로이』나『알렉산더』에서의 웅장한 대전투 장면이 떠오를만큼 멋진 전쟁의 기록을 보여준다. 이 당시의 일이 카이사르의 편지로 로마에 알려지자 당시로서는 사상 최장 기록을 세운 '20일간의 감사제'가 벌어졌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는 동안에 그는 무수히 많은 전쟁에서 거의 대부분을 완승으로 이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로마인 최초로 라인강을 두 번이나 넘어가서 게르만을 비롯한 숲 속의 야만족들을 복속시켰으며, 오늘날의 영국땅인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기 위해서 도버 해협을 두 번씩이나 건너갔다. 또한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을 비롯한 온갖 오지와 험지를 마다않고 '로마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누비고 다녔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몇 해 전 유럽 여행길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도중에 한국인 여행 가이드가 알려주던 놀랄만한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도로는 2000년 전 로마군들이 닦아놓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이사르는 유럽의 역사를 포함한 로마의 역사 자체를 뒤바꾼 인물이다. 그는 문명화되지 못한 갈리아 지방을 복속시킴으로써 로마의 기준과 정복자의 논리에 맞는 '문명화'를 이뤘다. 그는 로마의 국경을 갈리아지방에까지 확대한 결과로서 사실상 로마의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 원로원이 기원전 49년에 그의 소환을 결의하자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제국의 수도로 진격한다. 마침내 내전을 승리로 이끈 그는 실질적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카이사르의 유명한 연설문은 기원전 47년의 또다른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결과보고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딕타토르에 오름으로써 사실상의 1인 지배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2년 뒤 민중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왕관을 증정한다. 그의 나이가 57세였던 기원전 44년에 그는 갈리아 원정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부하장군 브루투스가 주동이 된 음모단체에 의해 원로원에서 피살되고 만다.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그의 마지막 외침마저 당대의 명연설가답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죽음도 극적이었다.

그가 1년을 365일로 바꿔서 만든 율리우스력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가 태어난 7월을 그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어 줄라이(July)로 개명하고, 8월을 오거스트(August)로 부르는 이유도 그의 양아들이자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던 인물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는 말이 실감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도 카이사르처럼 '난중일기'라는 훌륭한 전기를 우리들에게 남겨놓았다.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수군의 지휘관에 오르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한 순간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필생즉사(必生則死)의 각오로 병사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으며, 전쟁터의 갑판 위에서 최후를 맞은 일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충무공! 여태껏 난중일기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며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도 어쩌다 가끔씩 봐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라마라도 꼬박 꼬박 챙겨보는 것이 충무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침 드라마의 전개가 왜적들과의 해상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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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4-02-12 11:12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 *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잉태할 때는 물론이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온갖 믿기 어려운 전설들을 쏟아낸다. 전쟁터에서의 기적같은 활약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그들이 최후에 이르러 자신들의 찬란했던 생을 마감하는 절정의
 
 
Chopin 2005-04-1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서 카이사르를 알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를 두고 역사가 몸젠은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 라고 했다지요.~~
위의 책에서는 카이사르가 사실상의 로마 제정의 창안자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 카이사르는 천재라고 부를만 하다고 생각해요. 갈리아 전기에서의 카이사르의 문체는 그 독특함으로 명성이 높더군요. 하지만 저는 읽을 엄두가 안 나네요.~~
생각건데 카이사르는 우리나라의 영양왕이나 이순신에 비할 만 한 것 같네요.^^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 대광서림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 괴테,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中에서

******

1786년 10월 29일, 괴테는 그렇게도 동경하던 로마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마침내 이 '세계의 수도'에 도착한 괴테의 로마를 향한 그 동안의 갈망이 얼마나 컸으면 이 날에 대한 감격을 제사(題詞)와 같이 표현하였을까?

기번의『로마제국쇠망사』는 괴테가 로마에 도착한 날보다 10년 앞선 1776년 2월에 첫째권이 발매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명문 가문에서 출생한 기번이 갑자기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한 사건 때문에 재학중이던 옥스퍼드 대학에서 추방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유럽의 여러 도시를 순방하는 여행을 떠난 일은 이 책이 탄생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기번이 로마의 여러 유적지를 찾아 소요하던 어느날 해질 무렵에 불현듯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에 관한 것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쳐갔으며, 사적(史跡)에 감도는 고대 로마의 장엄성에 감동된 바, 그 때에 받은 강렬한 인상에 대하여 잊을 수 없는 날짜를 기번은 자기의 회상록에 극명하게 써놓았다고 한다. 그것은 괴테가 로마를 밟기 정확히 22년 하고도 14일 전이었던 1764년 10월 15일이었다.

불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의 원저서는 1776년∼1788년에 전6권으로 간행된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간행된 책은 여태껏 영문 원저서에 기초한 제대로 된 완역판이 없다고 한다. 위의 책도 일본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대광서림의《로마제국쇠망사》(전11권) 가운데 전체를 모두 읽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대강의 흐름만을 발췌 요약한 1권 분량의 다이제스트판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 책은 세계의 역사를 움직였던 많은 인물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저명한 독자로서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인도 수상 자와하르랄 네루,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등이 손꼽힌다고 한다.

기번의 이 책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왔던 이유가 그의 방대한 역사적 지식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애초부터 자기의 저서에 철학성을 부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며, 그래서 그는 철학적 고찰을 듬뿍 담는다 해도 역시 지루하고 따분해지기 쉬운 연대기를 독자들로 하여금 참말로 매력을 느끼게 하려고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몇 번이나 다시 쓴 끝에 사람들을 단숨에 매료시킬만큼 유려하고도 장엄한 문체를 찾아냈으며, 이 책은 첫째권이 발매된 즉시 희세의 명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출간 당시부터 이 책은 교양을 쌓는 증거로서 또는 교양에 대한 동경심으로부터 '각 가정의 식탁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주부들의) 화장대에까지도 놓여졌다'고 한다.

기번의『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 역사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5현제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트라야누스(재위 98∼117) 황제 시대에서 시작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 유스트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의 동로마제국 건국, 샤를마뉴(재위 768∼814)에 의한 신성로마제국 건국, 투르크의 침입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까지 약 1,300년에 이르는 긴 세월의 역사를 단정하고도 고전적인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확립,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이슬람의 침략, 십자군 원정 등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동안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난 온갖 흥미진진한 사건을 다루므로서 고대와 근세를 이어주는 교량 구실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황제들과 정치가들과 군인들의 탐욕과 악덕, 그들을 둘러싼 세력들이 부추기는 온갖 다양한 음모들과 얄팍한 꾀들을 기번의 붓끝을 통해 접하다 보면, 마치 광활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삼국지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생각도 여러번 스쳐간다. 기번의 책은 말하자면 서양판 삼국지와도 비슷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축약본이라는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삼국지에서 느낄 수 있는 만화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전쟁 장면들과 동양적인 친근감이 느껴지는 싸움터에서의 재미난 구경거리들을 기대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의의는 무엇보다도 서양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로마사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대개의 경우,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서 배웠던 틀에 박힌 교과서적 문체로서 접한 세계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한 위대한 역사가의 숨결과 필체를 통해 새롭고도 풍성하게 로마의 역사, 곧 한 때의 세계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계몽주의적 서양 역사가의 세계사 서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로마사를 일독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관을 얻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본다. 특히 이 책이 로마 제국 내의 기독교에 대해 편향되지 않은 역사가의 시각을 굳건히 유지한 채 엄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은 로마인들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다신교적 전통, 그리고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에 대한 경계 자체가 얼마만큼 많은 굴곡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로마제국쇠망사》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역시 제도(帝都)인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다. 1,000년의 세월에 걸쳐 수많은 만족들의 침공으로부터 동방의 황성을 지켜온 이 철옹성도 술탄 메흐멧의 필사적인 열원(熱願)과 작전 앞에 마침내 무너지고 만다. 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면에서의 기번의 현장감 넘치는 서술은 '영화의 덧없음'에 대한 깊은 신음소리가 들려올만큼 생생하다. 그러나 기번의 미덕은 이 가슴 아픈 애절한 감상으로부터 곧장 거침없이 높다란 비상으로 우리를 이끄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비록 로마의 입장에서보면 정복자에 대한 칭송이라는 아이러니를 포함하는 것이긴 하지만, 굳은 인내를 통해 온갖 곤란함에 대한 자포자기적 경거망동을 억누르는 용기, 그리고 마침내 다다르는 불굴의 인간 정신에 대한 찬미와 감탄은 감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뜻을 세우라. 그러면 전 우주가 협력한다」
신이여, 이 성시(城市)를 저에게 주옵소서-


로마제국의 긴 역사를 통해 등장했다가 사라진 온갖 인간 존재의 어리석음과 탐욕과 광기들도 기번의 책을 덮고 나면 한낮 일장춘몽처럼 어느새 역사 속으로 되묻히고 만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영광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기번의 심오한 이해를 살펴보는 일은 이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의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사실,
《로마제국쇠망사》에 대한 이 서평글을 쓰기 전만 하더라도 '로마'에 관한 나의 전반적인 머릿속의 이미지는 오래된 명화인「벤허」와「로마의 휴일」을 비롯해서 비교적 근년에 만들어진「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 등에 힘입은 바가 매우 컸었기 때문에, '로마'를 떠올리면서도 그 역사적 무대위에 실존했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깊은 감정적 교류들은 거의 배제되어 있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로마를 동경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그 곳을 밟아봤던 수많은 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4년 전에 오래도록 희망했던 로마의 땅을 직접 찾아가 밟고 섰던 감회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느낌으로 남아있다. 내가 가족들과 함께 로마에 갔을 때 우리 일행의 여행 안내를 맡았던 한국인 유학생의 말에 따르면, 로마의 한 해 관광객 수는 약 2,000만명에 이르며, 한 여름 바캉스 시즌에는 로마 시내에 로마시민 보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관광객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도 했다. 로마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 국가의 수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말이었다.

"어제 처음 로마에 도착한 사람도 하루만 지나면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로마에 살고 있었던 듯한 얼굴로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들을 맞는 로마 사람들도 그들을 이방인으로 보지 않는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에도 고대가 그림자를 떨구고는 있지만, 고대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다릅니다."
 - 시오노 나나미,
황금빛 로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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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역사가는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겸비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뿐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것 같은가'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으므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났던 일은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 행동에 역사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문헌은 없다.
 - 모티머 J. 애들러

이 책을 지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가가 아니다.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면서도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해 왔다. 그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룔에 대한 연구에 못지않게 과학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 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면서, 인류사를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가 1972년 7월에 열대의 섬 뉴기니의 해변을 거닐고 있었을 때 우연히 만난 얄리라는 정치가로부터 받은 질문은 이렇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문명)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그 질문을 받은 이후 저자는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 등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하여 바로 이 책을 통해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실로 '인류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기원'을 찾아나서는 방대하고도 거대한 스케일의 탐구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25년 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를 담은 이 책은 1만 3,000년에 걸친 모든 대륙의 인류의 고고학적 발자취와 문자와 언어등에 남아있는 그 흔적들을 쫓아서 우리들을 기나긴 시간과 넓디 넓은 공간들로 흥미진진하고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이 책은 인류 문명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일 뿐만 아니라 모티머 J. 애들러의 말대로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적 재능이 겸비된 훌륭한 역사가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역사가 얼마나 과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누가 봐도 뚜렷이 알 수 있는 '문명의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명의 불평등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기존의 인습적인 지식들은 상당부분 인종적 민족적인 차이에서 그 해답을 찾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현상적인 이유일 뿐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각 대륙의 인류가 지닌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경험했던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한 그러한 '지리적 환경적 차이'가 수만년 혹은 수천년간 지속되면서 각 대륙마다 식물과 동물의 작물화 가축화를 통한 식량 생산 체제가 여러모로 달라졌고, 이 중대한 차이가 결국 총, 균, 쇠로 대표되는 문명의 차이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각 대륙마다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크게 달라진 기술 문명의 차이가 인류 역사를 극단적으로 바꿔버린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그 가운데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항해인 콜럼버스의 1492년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1519년에 코르테스가 아스텍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멕시코 해안에 상륙한 기록에 뒤이어 1532년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황제 아우타알파를 생포한 사건에서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된다.

지난 1만 3,000년 동안 일어났던 인구 교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구세계와 신세계 사회의 충돌에서 빚어진 최근 500년 동안의 인구교체였으며, 막상 그 교체에 걸린 시간이라는 것도 기나긴 인류 역사에 비춰보면 몇 장의 스냅 사진을 찍는 정도에 불과할 만큼 짧았던 것은 참으로 놀랍다. 일이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전개된 원인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도 시사하는 바와 같이 총, 균, 쇠로 상징되는 기술과 문명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임은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기술문명의 발달이 더욱 가속화된 오늘날에 와서는 소위 '와해 기술'이 등장할 경우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기존 기술을 채택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순식간에 도태되고 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코 그 변화의 속도를 더하면 더했지 늦추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도 있어서 우리에게는 훌륭한 역사적 교훈의 하나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의 차이가 인구 교체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는 했어도 병원균이 맡은 지대한 역할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식량 생산과 정주형 생활로의 변모에 따라 인구의 조밀화가 이뤄짐과 아울러 동물의 가축화가 초래한 병원균의 진화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내성을 갖춘 대륙의 인류에게는 그들의 숙주들을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웠지만 그러한 내성을 갖추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있던 신대륙 원주민들에게는 막강한 위력을 되찾을 게 뻔했다. 현대전에서 마치 탱크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위력을 뽐낸 스페인 기병대의 말(馬)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불가항력이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의 침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어서 신대륙의 인구 교체에 있어서 훨씬 더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역할을 떠맡았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한 두 세기에 걸쳐 인디언의 인구는 최대 95%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래 북아메리카에는 약 2,000만명 가량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코르테스와 함께 상륙한 구대륙의 유행병은 아스텍 제국 정복시 2,000만명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를 약 160만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으며, 수백만의 백성을 거느리고 있던 잉카제국의 황제인 아타우알파를 보란듯이 생포해버릴 때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거느린 오합지졸의 숫자는 불과 168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가 나타난 이후 오랜 세월 동안의 수렵 채집민에서 벗어나서 야생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저자는 많은 역사학적 고고학적 증거들과 아울러 생물학적 유전적 증거들을 동원한다. 이 대목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작물화 가축화하는 데 따른 어려움과 그 지난한 희생과 도전끝에 이룩한 성공 사례에 대해 높이 추켜세우기라도 하듯이 여러가지 흥미로운 얘기들을 매우 세세하게 밝혀놓기도 한다. 또한 쟁기를 사용하게 되고 농경사회의 시작과 더불어 정주형 생활이 시작되면서 산아간격이 단축되고 인구의 조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식량의 저장이 이뤄지고 왕과 관료를 비롯한 전업식 전문가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각종 '발견'과 '발명'에 대해서도 그 발생 시기의 차이와 확산 속도의 차이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인류 문명을 크게 바꿔놓은 바퀴의 발명과 문자의 발명 과정에서부터 기술 문명과 문화의 확산이 어떻게 '자가 촉매 작용'과  '퇴행 현상'을 보여주는가에 대한 유명한 역사적 사례들도 흥미롭다.

이 책은 전 인류의 역사를 한 자리에 뭉뚱그려 놓은 셈인데, 저자의 주된 주장이 '환경결정론적' 시각이라거나 '지리적 결정론'이라고만 한정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들이 너무 명쾌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중요성이나 문화적 차이를 결코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다만 어떤 환경은 다른 환경에 비해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발명품을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한결 유리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애써 부연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꾼으로서 다양한 가정과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져가면서 역사의 예측가능성들을 시험해보는 점들도 재미있다. 저자가 역사적 교훈으로서 들려주는 몇 가지 사례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히 다음의 두가지 사례가 흥미롭다. 하나는 비옥한 초승달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불운한 과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은 어쩌다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유럽에 추월당했을까?'에 대한 사례이다. 후자의 경우에 대한 대답의 단서는 엉뚱하게도 중국 조정의 두 파벌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찾고 있다. 많은 나라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뒷걸음질쳤던 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는 전 인류의 기나긴 역사의 시간들을 저자가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뛰어넘는 것 말고도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어느 곳이든 다루지 않는 장소가 없을 뿐더러 특히 흥미롭고도 신비롭게 여겨지는 지구상의 여러 오지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풍성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곳들은 아프리카 대륙과 같은 큰 땅덩어리 말고도 그 옆에 놓인 놀라운 문명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다마가스카르섬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바, 뉴기니를 거쳐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로 남아있던 이스터섬에까지 이른다. 이스터섬은 겨우 인구 7,000명에 더구나 인력 이외에는 다른 동력원이 전혀 없었던 섬이지만 3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이 널려 있다.

이 책은 1997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과학 저술의 명저로 손꼽히게 되었지만, 특히 한글로 이 책을 읽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주는 점 한가지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인류의 문자를 비교 검토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설파한 논문을 1994년 미국의 과학 전문지《Discover》에 싣기도 했고, 이 책에서도 한글에 대해 '세계의 어떠한 문자 체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놀랍고도 새로운 원칙으로 만든 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 체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침 한글날이 엊그제여서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인가를 새삼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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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금'에 눈이 멀어 쓴 리뷰를 올리고 난 소감......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14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참으로 고상한 한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상금'을 받기 위해 쓰는 글은 추워서 쓰는 글도 아니고, 또 '향기'가 날 리도 없다. 그러니 상금을 받기 위해 내가 허접한 리뷰를 여럿 쓴다고 해서 굳이 '
 
 
oren 2004-10-2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변치 못한 제 서평글에 대해 '이주의 마이리뷰'로 선정해 주시고 적립금까지 듬뿍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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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마을 > 명예의전당 > 당선작 > 이주의 마이리뷰
2004년 10월 2주 마이리뷰 당선작 4편입니다. 주간 마이리뷰 당선작에 선정되시면 적립금 5만원을 축하금으로 지급합니다
 
트러스트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구승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후쿠야마가『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막스헤겔주의적 의미의 '역사의 종언'을 주장한 이후, 경제에 관한 책을 한 권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그 속편 격으로 썼다고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경제적 번영에는 문화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강한 공동체적 연대를 가진 고신뢰 사회와 공동체적 연대가 무너진 저신뢰 사회를 국가간의 비교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점이다.

즉, 공동체적 연대와 결속은 경제적 도약의 기초이고, 이것이 바로 제임스 콜먼이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며 사회적 자본은 경제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의 모든 국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한 사회의 연대와 결속은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고 개인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공동체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여기서 신뢰가 탄생하며 신뢰는 중요한 경제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이 특히 흥미를 끄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주된 분석의 틀로서 다루고 있는 국가간의 비교를 통해 일본, 독일 및 미국을 고신뢰사회로, 중국, 한국, 이탈리아 및 프랑스를 저신뢰사회로 분류한 점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 별도의 장을 통해 세세히 다루고 있어서 한국이 처한 여러가지 어려운 봉착점들에 비춰봐서도 이 책이 출간된지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분석과 주장들이 넘쳐난다.

두 번째로는 '학술 흥행사'라는 저자의 별명에 어울릴 정도로 '신뢰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 위해 저자가 파헤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범위가 실로 매우 넓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경제학자 혹은 사회학자들 가운데에서 중요한 인물들로는 존 로크, 토마스 홉즈, 칼 맑스, 막스 베버, 아담 스미스, 슘페터, 알렉시스 토크빌, 에밀 뒤르껭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무엘 헌팅턴, 케네스 애로우, 제임스 콜먼 등에 이르기도 하며, 정치, 경제, 종교, 철학, 인종등을 아우르는 '문화'의 문제를 다루다 보니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각 국가와 문화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어온 독특한 '가족 문화'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비교분석을 끊임없이 내어놓는다. 심지어는 한국에서의 김씨와 이씨의 인구비율에 관한 분석이라든지, 같은 혈통의 가문에서 위계서열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아직도 버리지 않고 사용중인 공통의 글자(소위 항렬)에 대한 문제까지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경제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방법이라든지, 미국이 어떻게 하면 일본이나 독일을 모방할 수 있을지를 가르쳐 주는 '경쟁력' 분야의 지침서가 아니다. 이 책은 경제적 삶이 어떻게 현대의 삶 자체를 반영하고 형성하며 지탱해 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경제적 성취와 관련해서 상이한 문화를 비교하고 대비하는 연구이다보니 수많은 독자들에게 저자와는 다른 여러 가지 일반화에 대한 반대의견과 모순된 증거들을 수없이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도 제공해주는 측면도 많다. 여기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무수히 있어왔던 반박과 비평들에 대해 몇 가지를 덧보태는 것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통해 얻은 수확들 가운데 일부분만이라도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번째는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 점이다.

두번째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제시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행동의 기본 모델은 80% 정도 들어맞았고 나머지 20%의 인간 행동에 대한 해결은 기질, 습관, 도덕 등 물려받은 윤리적 습관의 결과인 '문화'에 달려있다고 주장한 점이다

세번째는 사회적 자본은 그것이 통상 종교나 전통, 역사적 관습 등 문화적 기제를 통해 창조되고 전수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과는 차이가 있으며, 한 국가의 부존자원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네번째는 '자발적 연대'라는 윤리적인 관습이 있는데, 이런 관습은 조직의 혁신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어서 부의 창출에 필수적인 요인이 된다고 주장한 점이다.

다섯번째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실천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가장 참담한 결과는 아마도 '시민사회의 철저한 파괴'일 것이라고 주장한 점이다. 저자는 이로 인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둘 다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보며, 레닌주의 국가는 경제의 '최상부'에서부터 무수한 농장, 소기업, 노동조합, 교회, 신문사, 시민단체 등을 거쳐 가족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있어 모든 잠재적 경쟁자를 용의주도하게 궤멸시켜 나갔다고 주장한다.

여섯번째는 모든 경제적인 시도는 가족기업, 즉 소유와 경영권이 가족 구성원에게 주여져 있는 사업으로 시작되며, 가족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자발적 결사체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네 개의 사회(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한국)를 저신뢰사회로 규정하고, 가족을 초월한 강력한 자율적 결사체로 구성된 일본, 독일과 미국을 고신뢰사회로 규정한 점이다.

일곱번째는 수천년 동안의 유교주의 전통이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교 문화권에서의 가족주의적 문화가 공동체적 연대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가족을 벗어난 신뢰관계가 미약한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발견되는 현상으로서 저자는 이를 '이탈리아식 유교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홍콩, 대만, 이탈리아 등의 국가는 소규모 기업들이 가족지향성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므로서 거대한 규모를 요구하지 않고 신속한 의사결정구조를 요구하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고도로 분절적인 소비자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많이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여덟번째는 현대의 각종 법, 경제제도는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번영과 사회복지를 탄탄하게 유지해 나가기에는 충분치 못한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제도들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려면 특정한 전통사회 그리고 윤리규범과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풍족하고 복잡한 시민사회는 산업화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며, 이와는 반대로 일본, 독일, 미국같은 나라는 산업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자발적 사회성이라는 건전한 사회적 유산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부문에서 주도적인 세계 산업 강대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홉번째는 고신뢰사회인 독일과 일본의 문화적 유사성이 대부분 고도로 발전된 공동체적 연대감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대체로 보아 일본인들의 신뢰의 범위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고정적이고, 오직 일본인들에 대해서만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서 독일은 2차대전 이후 근본적인 문화적 변동을 겪게 되면서 일본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로 변모하였으며 독일인들의 정체성을 유럽인에서 찾음으로써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고자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열번째로는 개인주의 사회의 전형인 것으로 간주되는 미국이 탈중심화된 자발적 사회성과 미국식 자유주의를 발전시키고 탄탄한 사회적 연대를 일구어내는 고신뢰사회가 된 데에는 유럽의 어떤 나라와도 다른 종교적 전통을 지닌데 힘입은 바가 크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 신교의 최후의 유산은 안정된 권위나 사회적 여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적 기질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현대세계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산권, 계약, 상법 등은 시장지향적인 현대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가 '사회적 자본'과 '신뢰'로 보완된다면 경제활동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신뢰는 공유되는 도덕규범이나 가치를 지닌, 그 전부터 있어 온 공동체의 산물이다. ...... 이런 공동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번 책『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동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합리적인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구체화임을 다소 장황하게 주장한 바 있다. ...... 경제생활이 가능한 한 최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승인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명백해진다. ...... 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쉬만은 근대 부르주아의 등장을 귀족사회의 특징인 명예에 대한 '열정'을 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인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대치시킨 '윤리적 혁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대체는 최초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론가 토마스 홉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홉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란 종교적인 열정에서든 귀족적인 허영심에서든 간에 합리적인 부의 축적에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종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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