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 역사 - 상 범우고전선 20
헤로도토스 지음 / 범우사 / 1996년 7월
장바구니담기


남아돌 정도로 돈이 많다 하더라도 불행한 자가 많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더라도 행운을 누리는 자 또한 많이 있습니다. 매우 부유하면서도 불행한 인간은 행운이 있는 자에 비해 단지 두 가지의 이점을 지닌 데 지나지 않지만, 행운이 있는 자는 불행한 부자보다 훨씬 더 많은 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자는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재난을 견뎌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유리합니다. 그러나 행운이 있는 자에게는 다른 쪽에 없는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습니다. 물론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재난을 견뎌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자만 못합니다. 게다가 곤경에 빠지지 않고 건전한 육체와 건강, 훌륭한 자식과 아름다운 용모를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바로 왕께서 찾고 계신 인물 즉 행복한 인간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일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그를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부르더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40∼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의 반역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야만국에 도착한 여행자는 그 영토에 호소할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야만적인 규칙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야만이란 규칙이나 호소할 수단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1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의 반역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고귀한 삶은 통속적이거나 소극적인 삶과 대조를 이룬다. 소극적인 삶은 외부의 힘이 탈출을 강제하지 않는 한 정지 상태로 자기 자신을 격리시킨 채 언제까지나 그 속에 안주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사람을 대중이라고 부른다. 무리가 많기 때문에 대중이 아니라 소극적이기 때문에 대중이다.-91쪽

천재는 자신과 바보의 차이가 언제나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는 것에 놀란다. 그래서 눈앞에 닥친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런 노력 속에서 지성이 존재한다. 반면에 바보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별력이 뛰어난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어리석음 속에 부러울 만큼 평온하게 안주한다. 마치 서식하는 구멍에서 곤충을 끌어낼 방법이 없는 것처럼, 바보를 어리석음에서 끌어내어 잠시나마 암흑세계를 벗어나게 하고 습관에 젖어 있는 멍청한 시각을 보다 날카로운 다른 시각과 견주어보게 할 방법은 없다. 바보는 평생 바보고 빠져나올 구멍도 없다. 그래서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어리석은 자가 사악한 자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말했다. 사악한 자는 이따금 쉴 때가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9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의 반역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우수한 인간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데 반해, 평범한 인간은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에게 만족한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우수한 인간이다. 우수한 인간은 어떤 탁월한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을 경우 그 삶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는 봉사의 필요성을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이런 필요성이 부족할 때 그는 불안감을 느끼며, 자기를 강제할 더욱 복잡하고 힘겨운 새 규범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규율에 따라 사는 삶, 곧 고귀한 삶이다. 고귀함은 권리가 아니라 요구와 의무를 통해 드러난다. 곧 고귀한 의무(Noblesse oblige)이다. "제멋대로 사는 것은 평민의 삶이고 귀족은 질서와 법을 동경한다."(괴테) 귀족의 특권은 본래 양도나 은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획득된 것이다.-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의 반역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예견할 수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역사가 예언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만일 미래가 예언에 열려있지 않다면, 그것이 실현되어 과거가 된다 해도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가 뒤돌아선 예언자라는 것은 모든 역사 철학을 요약해주는 관점이다. 역사가는 물론 미래의 일반적인 구조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구조 자체가 사실은 우리가 과거나 현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시대를 잘 보길 원한다면 멀리서 봐야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적당할까?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면 족하다.
-7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