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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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윤리학 비판

 

나의 정원을, 황금의 격자 울타리가 있는 정원을 잊지 말라! 정원 같은 사람, ㅡ 또는 하루가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저녁 무렵 물 위를 흐르는 음악 같은 사람이 ㅡ 그대들의 주위에 있도록 하라 : 멋진 고독을,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여전히 잘 사는 권리를 부여하는 자유롭고 변덕스러우며 경쾌한 고독을 선택하라! 명백한 실력으로 싸울 수 없는 모든 긴 싸움이 얼마나 사람들을 악의에 차게 만들고, 얼마나 교활하게 만들며, 얼마나 못되게 만드는가! 적에 대한, 있을 수 있는 적에 대한 오랜 경계와 공포는 얼마나 사람을 사적인 존재로 만드는가! 이러한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 오랫동안 박해받은 자, 심하게 쫓겨다니는 사람,ㅡ스피노자와 지오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처럼 은둔을 강요당한 사람들도ㅡ이러한 사람들이 가장 정신적인 가면을 쓰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아마 그들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항상 복수심에 불타는 교활한 자와 독살자가 되어버린다. (스피노자 윤리학과 신학의 토대를 파헤쳐보라!) ㅡ 도덕적 분노의 치졸함은 전혀 말할 필요가 없으며, 이는 한 사람의 철학자에게는 이에 대한 철학적 유머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확실한 징조인 것이다. 철학자의 순교와 그의 '진리를 위한 희생'은 그 자신 안에 있는 선동자와 배우가 숨겨왔던 것을 드러내도록 강제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철학자를 오직 예술가적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많은 철학자들과 관련해 그 철학자를 다시 한번 그 퇴락한 모습 속에서 ('순교자'로, 무대와 강단에서 외치는 자로 퇴락한 모습으로) 바라보려는 위험한 소망이 있다는 것은 물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쨌든 그때 무엇을 보게 될지 확실하게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 : ㅡ 즉 단지 익살극, 에필로그의 하찮은 소극(笑劇)만을, 모든 철학이 발생 과정에서는 오래된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 오랜 본래의 비극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증거만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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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원인과 의지의 자유

 

자기 원인causa sui은 지금까지 사유된 것 중 가장 심한 자기 모순이며, 일종의 논리적인 강요이며 부자연스러움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한 자부심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에 무서울 정도로 깊이 빠져버렸다. 유감스럽게도 설익은 교양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저 형이상학적 최고 지성이 가진 '의지의 자유'를 향한 열망,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궁극적으로 완전히 책임지고, 신, 세계, 조상, 우연, 사회를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열망은, 말하자면 저 자기 원인이고자 하는 것일 뿐이며 뮌히하우젠Münchhausen을 능가하는 무모함으로 자기 스스로 머리채를 위어잡고 허무의 수렁에서 끌어내어 생존으로 이끌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와 같이 '자유의지'라는 이 유명한 개념의 조야한 단순함을 간파하고, 이 개념을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면, 이제 나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계몽적 태도'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 저 '자유의지'라는 기이한 개념을 역전시킨 것 또한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리도록 간청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오용에서 생기게 된 '부자유 의지'이다. 자연과학자들이 원인이 '작동'할 때까지는 원인을 막아내고 밀어내는 현재 주도하고 있는 기계주의적인 어리석음에 따라 행하고 있듯이(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유에 있어서 누구나 자연주의화되었다ㅡ),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그릇되게 사물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원인'이나 '결과'를 단지 순수한 개념으로만, 다시 말해 기술(記述)하고 이해하기 위한 관습적인 허구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며, 설명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될 것이다. '{원인과 결과} 그 자체'에는 '인과의 합'도 '필연성'도 '심리적 부자유'도 없다. 그것에는 '결과는 원인에 뒤따른다'는 것이 없으며, 이는 어떤 '법칙'이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원인, 계기, 상호성, 상관성, 강제, 수, 법칙, 자유, 근거, 목적을 꾸며냈던 것은 바로 우리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호 세계를 '그 자체'로 사물에 투사하고 혼합시킨다면, 우리가 항시 그렇게 해왔듯이, 다시 한번 그것을, 다시 말해 신화적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그것은 '부자유 의지'라는 신화이다 : 실제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의 문제뿐이다. ㅡ 한 사상가가 이미 그 모든 '인과적 결합'과 '심리적 필연성' 속에서 강제, 곤궁, 복종해야 하는 상태, 압박감, 부자유 등과 같은 것을 감지하게 된다면, 이것은 이미 거의 그 자신에게 결함이 있음을 나타내는 징후이다. 바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비밀을 노출하는 것이며, 그 인간이 노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올바르게 고찰했다면, 일반적으로 '의지의 부자유'는 두 가지의 완전히 상반된 측면에서, 그러나 항상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에 의해서 문제로 파악된다. : 어떤 이들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자신의 공적에 대한 개인적인 권리를 단념하려 하지 않는다(허영심 있는 부류들이 이에 속한다ㅡ). 다른 이들은 반대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어떤 죄도 지려고 하지 않으며, 내면적인 자기 경멸로부터 자기 자신을 그 어떤 무엇으로 전가시킬 수 있다고 요구한다. 이러한 후자의 사람들은 책을 저술하게 되면 오늘날 범죄자의 편을 들곤 한다. 일종의 사회주의적인 동정은 그들의 가장 기분 좋은 가면이다. 그리고 사실상 의지가 나약한 자들의 숙명론이 '인간 고통의 종교la religion de la souffrance humaine'로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장식된다 : 이것이 그의 '좋은 취미'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제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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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한다는 것은 일종의 최고 수준의 격세 유전

 

개개의 철학적인 개념은 자의적이지도 않고 스스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며, 상호 간의 관계와 유사성 속에서 성장한다. 그것이 겉보기에는 사유의 역사에서도 갑자기 임의로 등장하는 것 같아도, 대지의 동물군이 전체의 계통에 속하는 것처럼 하나의 체계에 속한다. 이러한 사실은 마침내 서로 극히 다른 철학자들도 항상 철학함의 가능성이라는 어떤 근본 구도를 되풀이해서 확실하게 충족시켜 왔다는 사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혀 매번 또다시 새롭게 동일한 순환 궤도를 달린다 : 그들은 여전히 비판적이거나 체계적인 의지 때문에 서로 독립적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 그들 안에 있는 그 무엇이 그들을 이끌어가고, 그 무엇, 즉 바로 저 개념들의 생득적인 체계와 유사성이 그것을 일정한 질서 속으로 차례로 몰아간다. 사실 그들의 사유는 발견이 아니며, 오히려 재인식이고 재기억이며, 언젠가 저 개념들이 발생한 먼 태곳적 영혼의 총체적인 세대로 회귀하는 것이며 귀향하는 것이다 : ㅡ 이러한 점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일종의 최고 수준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이다.

 

니체, 『선악의 저편』,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제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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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그것이 바로 나이다

 

가장 놀라운 것을 고찰해보자. 여기에서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명령하는 자이자 동시에 복종하는 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복종하는 자로 의지의 행위에 따라 즉시 작용하기 시작하는 강제, 강요, 억압, 저항, 움직임 등의 감정을 알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자아'라는 종합 개념에 의해 이 이중성을 무시하고 속여 알지 못하게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의지작용에서 일련의 오류 추리와 그 결과로 나오는 의지 그 자체의 잘못된 가치 평가에 여전히 매달려 왔다. ㅡ 이렇게 해서 의지하는 자는, 행위하는 데는 의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굳게 믿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명령의 결과 역시, 즉 복종은 행위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의지되기 때문에, 그 외관(外觀)은 마치 그곳에 결과의 필연성이 있는 것 같은 감정으로 옮겨지게 된다. 의지하는 자는 의지와 행위가 어쨌든 하나라는 사실을 상당히 확신을 가지고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 ㅡ 그는 성공이나 의지작용이 수행되는 것을 여전히 의지 자체에 돌리고, 여기에서 모든 성공이 가져다주는 저 힘의 느낌이 커지는 것을 즐긴다. '의지의 자유' ㅡ 이것은 명령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명령을 수행하는 자와 일치시키는, 의지하는 자의 저 복잡다단한 쾌(快)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그는 수행하는 자로서는 저항을 극복하는 승리를 누리지만, 본래 저항을 극복한 것은 자신의 의지 자체라고 스스로 판단한다. 의지하는 자는 이와 같이 명령하는 자로서의 쾌의 감정에 명령을 수행하면서 성취시키는 도구, 즉 유용한 '하위에 있는 의지Unterwillen' 또는 '하위에 있는 영혼Unter-Seelen' ㅡ 우리의 몸은 많은 영혼의 집합체일 뿐이다 ㅡ 의 쾌의 감정을 덧붙인다. 그 결과, 그것이 바로 나이다 : 잘 형성되고 행복한 모든 사회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이 여기에서도 일어난다. 즉 지배 계급은 자신과 사회 공동체의 성취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모든 의지작용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오로지 많은 영혼의 집합체를 바탕으로 한 명령과 복종이다 :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의지 그 자체도 이미 도덕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 즉 도덕이란 '생명'의 현상이 발생하는 지배 관계에 관한 학설로 이해된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제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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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

 

논리학자의 미신에 관해서, 나는 이러한 미신론자들이 기꺼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소하고 간단한 사실을 지치지 않고 매번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한다. ㅡ 즉 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 '나'는 술어 '생각한다'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그 무엇이 생각한다(Es denkt). 그러나 이러한 '그 무엇'이 바로 저 오래되고 유명한 '나'라고 한다면,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이고, 주장일 뿐, 특히 '직접적인 확실성'은 아닌 것이다. 결국 이미 이러한 "그 무엇이 생각한다"는 것으로 너무나 충분하다 : 이미 이러한 '그 무엇'에는 사유 과정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함축되어 있으며, 과정 그 자체에 속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문법적인 습관에 따라 "사고라는 것은 하나의 활동이며, 모든 활동에는 활동하는 하나의 주체가 있다. 그러므로 ㅡ " 라고 추론한다. 대략 이와 같은 방식에 따라 옛 원자론은 작용하는 힘에 대해, 그 안에 힘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힘이 작용해 나오는 저 물질 덩어리, 즉 원자를 찾았다. 엄격한 두뇌의 소유자는 결국 이러한 '지상의 잔여물' 없이도 꾸려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아마 어느 날 사람들은 또한 논리학자들의 입장에서 저 작은 '그 무엇'(존경할 만한 오래된 나(자아)는 그 무엇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없이 꾸려나가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니체, 『선악의 저편』,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제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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