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얽힌 에피소드와 프란츠 베르펠에 대하여...

 

 

어떤 여성이 탁월한 미모와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당대의 저명한 여러 인물들과 폭넓은 교제를 갖는다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그녀가 뛰어난 미술가들의 영혼을 뒤흔든 끝에 세기적인 명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녀가 단지 몇몇 유명한 그림에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당대를 주름잡았던 세계적인 음악가와 건축가와 문학가와도 두루 함께 살아 보기도 했다면? 그것도 세 번에 걸친 정식 결혼을 통해서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알마 말러였다. 그녀가 미술 작품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였다. 우선, <바람의 신부>라는 유명한 그림부터 간단히 살펴 보자. 그녀의 '바람 같은 삶'이야말로 '바람'과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바람의 신부> 혹은 <폭풍우>, 1914년. (출처 : 위키백과)

 

 

폭풍처럼 강렬한 사랑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코코슈카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화가로 특유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표현주의 미술을 선보였다. 《바람의 신부》 혹은 《폭풍우》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 코코슈카는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감정을 거친 붓 터치와 차고 어두운 색채에 실어 화폭에 담았다.

이 작품이 유독 격정적으로 읽히는 것은 그림 속의 연인이 바로 화가 자신과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알마 쉰들러를 모델로 하였기 때문이다. 알마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 에밀 야곱 쉰들러의 딸로 미술과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타고난 미모와 지성으로 뭇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스물두 살 꽃 다운 나이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 결혼하였고, 말러가 사망한 이후에는 바우하우스를 창설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재혼하였으며, 다시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아내가 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역시 한 때 이 여인과 연인관계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바람의 신부> 

 

 

알마 말러(Alma Mahler: 1879-1964)

 

 

그렇다. 알마 말러는 화가의 딸이자 작곡가의 아내였다. 자신의 직업 또한 '작곡가'였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음악도시 빈을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천재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가 그의 첫 남편이었다.

그녀의 이름 뒤에 말러라는 성이 따라붙지 않았을 때, 그녀의 이름은 알마 쉰들러였다. 그녀는 1879년 당대의 저명한 화가였던 에밀 야콥 쉰들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말러와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공연 감독 막스 부어카르트, 작곡가 알렉산더 쳄린스키, 그리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 가운데 클림트는 알마 쉰들러의 첫 키스를 차지한 남자로 알려졌고, 그 덕분에 그녀는 (뜻밖이면서도 영광스럽게)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에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예를 차지할 수 있었다.

 

 The Kiss (Lovers), 1907–1908.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출처 : 위키백과)

알마 쉰들러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한 여러 남성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1902년 3월 9일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한다. 무려 20살의 나이차를 극복한 결혼이었다. 결혼 후 그녀는 작곡가의 꿈을 접고 두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지만, 첫 딸이 죽자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깊은 관계에 빠진다. 말러도 이 사실을 알고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쓴다. '천인 교양곡'으로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은 바로 그 무렵에 그녀를 위해 쓰여진 곡이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구스타프 말러가 죽자, 알마 말러는 발터 그로피우스와 두 번째로 결혼하지만 첫 남편과 사별한지 한참이나 뜸을 들인 후였다. 그로피우스와 재혼하기 전까지 연인 관계로 지낸 또다른 남자가 오스카 코코슈카였다. 이 화가는 알마 말러가 건축가와 재혼한 이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알마와 헤어지자 코코슈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자진해서 입대했고, 이내 전쟁터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되돌아 온다. 사랑의 아픔을 잊기 위해 군대에 갔다가 몸까지 다친 셈이었다. 그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해 '알마를 닮은 인형'을 제작해서 함께 생활할 정도로 알마 말러에게 집착을 보였다. 심지어 오페라 공연을 갈 때에도 그 인형의 자리를 예약할 정도였다니 그의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만하다. 그는 그녀에게 아주 많은 편지를 썼는데, 70번째 생일날에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랑하는 나의 알마! 당신은 아직도 나의 길들지 않은 야생동물이오.

당신의 생일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덧없는 달력의 시간에 나를 묶어놓지 말라'고 하오. 대신 시인을 찾아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했으며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후세에 우리들의 살아있는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 줘요. 우리가 서로에게 불어넣은 그 뜨거운 열정과 비교되는 사랑은 없었으니까.

당신의 오스카.

ps : 코코슈카의 가슴은 당신을 용서하기에."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

 

그토록 끈질겼던 코코슈카의 구애를 뿌리치고 1915년에 시작된 두 번째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로피우스의 잦은 해외 출장과 새로 태어난 아들의 '친부 논란'등이 문제였다. 그때 친부 논란을 일으킨 남자가 바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프란츠 베르펠이었다. 그는 이미 공공연히 알마의 애인으로 소문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두 번째 결혼 생활을 청산한 알마는 무려 10년 동안 베르펠과 동거하다가, 1929년에 이르러 그와 정식으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뒤에는 그가 죽을 때까지 내내 함께 한다. 유태인이었던 부부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다녔고, 알마는 남편과 함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다.

 

프란츠 베르펠(1890∼1945년)

 

 

여담이지만, 몇 년 전에 나는 그림을 통해서나마 알마 말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에 갔을 때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녀와 입을 맞추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빈을 떠날 때 마침 클림트의 <키스>가 그려진 날렵한 커피잔이 눈에 띄었고, 지금까지도 매번 그때 집어 든 그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시기 때문이다.

 

 

벨베데레 궁전(출처 : 위키 백과)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 <유디트> 말고도 에곤 실레의 걸작 <죽음과 소녀>, <포옹>등이 소장되어 있다.

비록 <바람의 신부>는 없지만 오스카 코코슈카의 다른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키스> 속의 그 여자가 '말러의 부인'이었다는 얘기는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것 같지만, 그녀가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의 주인공일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어떤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내게는 몹시 낯선 이름의 소설가에 불과했던 프란츠 베르펠이라는 사람이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인 줄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평생 동안 무려 30번씩이나 읽었다는 바로 그 소설가 말이다. 이 모든 일들이 '빈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이해해야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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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11-29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란츠 베르펠 같은 작가를 알게되는 경우가 바로 책을 읽는 묘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되면 무슨 큰 비밀을 알아낸 것 처럼 마음이 막 설레이기도 합니다.
공연히 무릎을 탁 치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말이죠 ㅎㅎ

oren 2018-11-29 13:00   좋아요 1 | URL
프란츠 베르펠이 알마 말러의 세 번째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사람이 갑자기 전혀 낯설지 않은 인물처럼 느껴지더군요. 그가 평생 동안 그토록 자주 읽었다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소설에 대해서도, 알마 말러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그 작품의 주인공의 아내가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니 더더욱 그랬겠다 싶더군요.^^

카알벨루치 2018-11-29 13:02   좋아요 0 | URL
이런 귀한 작가를 또 알게되면 또 다른 세계가 저에게 열려지는 것이니 얼마나 환상적인지요! 오렌님 덕분입니다 ㅎ

oren 2018-11-29 13:05   좋아요 1 | URL
일종의 ‘간통 같은 독서‘라고나 할까요? ㅎㅎ
http://blog.aladin.co.kr/oren/7172342

카알벨루치 2018-11-29 13:06   좋아요 1 | URL
오렌님 표현이 급진적입니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8-11-29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란츠 베르펠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해요~ㅎ

oren 2018-11-29 13:01   좋아요 1 | URL
네.. 이번에 알고 보니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작가더라고요.^^
 

 

사람들이 아주 우연한 기회에 스치듯 마주친 '책에 관한 에피소드' 때문에 기어이 그 책을 읽는 경우는 얼마나 자주 있을까? 나로서는 그런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하지만 그런 인연 덕분에 읽은 책들은 보통스러운(?) 다른 책들보다 훨씬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그런 인연이 그만큼 각별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단테의 『신곡』이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도무지 언제쯤이나 그런 책을 읽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우연히 영화관에서 마주친 '자막' 한 줄이 나를 어디엔가 단단히 옭아매는 듯한 느낌을 받고 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나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솟구쳤던 것이다.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볼 때였다.

 

주인공인 카터(모건 프리먼)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 때문에 입원한 어느 날,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철학 교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라고 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함께 병원을 뛰쳐나간 두 사람은 그 '리스트'를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카터는 비록 자동차 정비공 신분이었지만 독서광이었던 덕분에 아주 박식했다. TV 퀴즈 프로그램에 나오는 별의별 문제들을 식은 죽 먹기로 척척 알아맞힌다. 정확히 어떤 장면에서였는지는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가 어느 순간 불쑥 친구인 에드워드에게 농담삼아 던지는 말 하나가 내 가슴에 콕 박힐 때가 있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단테의 『신곡』은 읽어봐야 할 거 아냐?"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결국 단테의 『신곡』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기 전에 난생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을 땐 피렌체에 있는 '단테의 생가'를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럴 때조차 단테의 책을 읽어보리라는 다짐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배우의 대사 하나가 그토록 놀라운 힘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영화와 책이 강하게 결부된 두 번째 경우는 2004년에 개봉했던 <투모로우>라는 영화를 볼 때였다. 그 영화에서는 두 청춘남녀가 도서관에 갖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갑자기 뉴욕항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기상이변이 닥쳐 온 도시가 통째로 마비되기 때문이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두 사람은 도서관에 꽃힌 무수한 책들을 불태우면서 추위를 견딘다. 그때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에미 로섬이 남자친구한테 건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다음 대사는 물론 정확한 게 아니다.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을 대충 되살려본 것뿐이다.)

 

"아무리 춥다 해도, 니체의 책까지 불태울 순 없어."

 

나는 그 영화를 볼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니체의 책들은 제대로 읽어본 게 거의 없었다. 물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니체의 책들은 읽지 못했다. 아니, 읽고 싶어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내겐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니체의 책들을 단단히 붙잡고 읽게 된 계기는 물론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된 때문이었다. 그러나 니체의 책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에미 로섬이 뉴욕의 어느 도서관 서가에서 땔감으로 쓰기 위해 빼들었다가 '인류의 양심상' 도저히 그 책들을 불태울 수 없어 도로 제자리에 꽂는 장면을 늘상 함께 떠올리곤 한다.

 

세 번째로 생각나는 책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이다. 내가 이런 희귀한 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맨처음으로 알게 된 건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을 때였다. 그 책 속에는 온갖 시인과 철학자와 역사가들이 남긴 인용문이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독 관심을 끄는 인물은 단연 루크레티우스였다. 그 시인만큼 '사물의 본성'을 제대로 간파하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몽테뉴를 만날 때만 하더라도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국내에서는 언감생심 번역될 생각조차 없을 무렵이었다. 내가 몽테뉴를 처음 만난 건 1980년대 초반이었고,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그로부터 물경 30년이나 지난 2012년에야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몽테뉴의 소개 덕분에 그 책을 정말 각별한 심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몽테뉴 수상록』에 인용된 루크레티우스의 문장들까지도 다시 찾아볼 정도였다. (다시 만나고 거듭 만나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고대의 시인 이야기)

 

네 번째로 꺼내 들고 싶은 책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다. 내가 이 책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처음으로 발견한 건 『평생 독서 계획』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작품이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 소섫을 무려 30번씩이나 읽는 소설가가 있단 말인가 싶었던 것이다. 나는 만의 소설을 그토록 많이 읽은 소설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소설가가 읽었다는 그 '횟수' 만큼은 또렷이 기억해 두었다. 그만큼 내게는 '횟수가 주는 인상'에 꽉 붙들렸던 셈이다. 물론 그 뒤로 내가 토마스 만의 소설 가운데 가장 먼저 찾아 읽은 소설은 결국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었다. 토마스 만이 쓴 뛰어난 단편들이 많았음에도 나는 기어코 다른 책에서 읽은 '에피소드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_뤼벡과 그 밖의 도시들)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것을 보여주는 좋은 에피소드가 있다.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장편소설을 너무 좋아하여 평생 30번 가량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그 소설을 읽은 것은 죽기 한 달 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번이라는 횟수가 아니라 죽기 한 달 전의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베르펠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만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이었으리라.(476쪽)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 독서 계획』, <역자 후기> 중에서

 

 

내가 『평생 독서 계획』에 대해 리뷰를 썼던 게 벌써 8년 전의 일이다.(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30번씩이나 읽은 소설가의 이름을 여태껏 한 번도 자세히 뒤져볼 생각을 갖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 우연히, 혹시나 싶어, 검색창에 그 소설가의 이름을 넣어 봤더니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쓴 소설 몇 권이 우리말로도 버젓이 번역되어 나와 있을 정도로 그는 아주 유명한 소설가였다!(더군다나 그가 생전에 거쳐갔던 여러 도시들 가운데 내게도 무척이나 인상적인 도시들도 적지 않았다. 프라하,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빈 등등.)

 

그런데 독일에서도 유난히 큰 도시였던 뤼벡을 (몇년 전 자동차를 빌려 타고 마음 내키는 대로 쏘다녔던 '독일 일주 여행'에서) 깜빡 빼놓고 지나친 일은 지금 생각해도 몹시 후회스럽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주무대가 바로 뤼벡이고, 토마스 만의 고향도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결코 그런 멍청한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끝으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즐겨 읽었던 바로 그 소설가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프란츠 베르펠

 

1890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베르펠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함부르크의 운송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베르펠은 얼마 뒤 라이프치히의 한 출판사에 들어간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틈틈이 시 창작에 매진하여 1912년부터 1915년까지 3년 사이에 『세상 친구』, 『우리는』, 『서로』 등 세 권의 시집을 펴내는데, 탁월한 표현주의 시인의 출현이라는 평을 얻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베르펠을 ‘다음 세대’를 이끌 위대한 시인으로 일컫기도 했다. 베르펠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첫 소설은 『베르디. 오페라 소설』(1924)이다. 음악가 베르디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오페라 역사상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오델로」가 작곡된 과정을 담고 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 빈에서 거주하고 있던 베르펠은 1938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도피했고, 1940년 도보로 피레네 산맥을 넘은 뒤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전까지 장편소설 『고등학교 동창회』(1928), 『바바라 혹은 깊은 신앙』(1929), 『나폴리의 형제자매』(1931), 『무사 닥에서의 사십 일간』(1933), 『예레미아.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라』(1937), 『횡령된 천국』(1939) 등을 펴냈다. 희곡 작가로도 명성이 높아 1944년에 발표한 『야코봅스키와 대령』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옅푸른색 잉크로 쓴 여자 글씨』(1941)는 남프랑스에서 쓰기 시작해 망명지인 미국에서 완성, 발표한 작품이다. 또 다른 대표작 『베르나데트의 노래』(1941)는 배우 제니퍼 존스의 출연으로 영화화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1945년 세상을 떠났다.(알라딘 작가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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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처럼 살았던 <바람의 신부>, 알마 말러
    from Value Investing 2018-11-29 01:28 
    어떤 여성이 탁월한 미모와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당대의 저명한 여러 인물들과 폭넓은 교제를 갖는다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그녀가 뛰어난 미술가들의 영혼을 뒤흔든 끝에 세기적인 명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녀가 단지 몇몇 유명한 그림에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당대를 주름잡았던 세계적인 음악가와 건축가와 문학가와도 두루 함께 살아 보기도 했다면? 그것도 세 번에 걸친 정식 결혼을 통해서라면?
 
 
붉은돼지 2018-11-2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곡도 니체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도 부덴브로크가도 읽지 못했습니다..ㅜㅜ
다만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두 번 읽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듯합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쩌다 보니 마의 산을 두 이나 읽었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ㅜㅡㅜ
다른 것은 몰라도 나중에 시간이 나면, 지금도 뭐 바쁜 것은 아닙니다만.... 신곡은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습니다.

oren 2018-11-29 12:38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책과 맺는 묘한 인연을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이 읽은 책들과 내가 읽은 책들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경우는 별로 없을 듯해요. 그래도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두 번씩이나 읽으셨다니,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단테의 <신곡>도 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래요.^^ 너무 서두를 건 없을 것 같고요. 죽기 전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엄청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밤을 줍다가 덜컥 겁이 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왜 겁이 났냐고?

밤을 줍다가 뱀을 만나서?

적어도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사실, 밤을 줍다가 뱀을 만난 건 지난 주 일요일 오후였다.

그날은 새벽 일찍 서울을 떠나 당일치기로 성묘차 고향을 찾았었다.

조상님들의 산소를 오르내리며 더러 길가에 널브러진 알밤을 줍기도 하고,

밤나무에 잔뜩 매달린 밤송이들이 탐나 더러 나뭇가지를 던져 가며 밤을 쬐끔 털기도 했다.

논두렁을 오가며 부드럽게 피어 오른 억새를 쓰다듬으며 고향의 가을 정취를 듬뿍 맛보기도 했고.

 

그렇게 새벽잠을 설치며 시작된 성묘 나들이도 거의 다 끝날 무렵이었다.

아버님의 산소에서 스무남은 걸음쯤 떨어진 곳에 제법 큰 밤나무 한 그루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올커니, 저 밤나무 아래에 가면 알밤들이 제법 많겠군, 싶었다.

그래서 밤을 더 줍기도 귀찮다는 동생들은 제쳐 두고 형과 함께 둘이서 밤나무 아래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낫으로 마른 풀과 잔가지를 괜시리 이리저리 헤쳐 가면서.

혹시나 뱀이라도 도사리고 있다면 서로 곤란하니까.

두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부산을 떨면서 뱀들에게 일종의 경고음을 울린 셈이었다.

 

생각보다 그 밤나무 아래에는 알밤들이 별로 없었다. 누가 미리 다녀갔는지도 몰랐다.

안 되겠다 싶어서 수풀과 잔가지들이 무성한 좀 더 안 쪽으로 헤쳐 들어가 볼 작정을 했다.

혹시라도 모르니 낫을 휘들러 이리저리 잔가지와 수풀들을 자꾸만 쳐댔다.

혹시라도 뱀이 있으면 서로 곤란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내 제법 큰 뱀 한 마리가 몸뚱이를 흐느적거리며 나와는 반대편으로 내빼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머리 쪽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뚱이의 절반 이상은 넉넉히 내 눈에 보였다. 서너 걸음쯤 떨어진 곳이었다.

대체로 거무스름한 색을 띈 녀석이었는데 몸통 중간쯤에 흰 줄이 하나 뚜렷이 나 있는 게 특이했다.

 

"어이쿠! 뱀이네!"

 

놀라 소리치면서 나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뒤로 빼기 시작했고, 깨끗이 벌초가 된 아버님 산소 쪽으로 물러났다.

열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던 형도 그 소리를 듣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밤나무 밑에서 서둘러 빠져 나왔다.

 

'밤은 왜 뱀과 한 획 차이밖에 나지 않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 *

 

오늘도 아무런 예고 없이 아내와 함께 밤을 주으러 모처(?)를 다녀왔다.

 

아내가 하는 말인 즉슨, 어제 오후에 호수공원에 나갔더니 도토리가 엄청 많이 떨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밤을 줍던 그곳에도 틀림없이 오늘쯤엔 알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예측이 과히 틀리지는 않았다.

오늘은 기껏 한 시간 남짓 밤을 주웠는데도 무려 15Kg이나 주웠던 것이다.

 

 

 - 오늘 주운 밤들_01

 

 

 - 오늘 주운 밤들_02

밤을 주워 오면 가장 먼저 거실 마룻바닥에 쫙 펼쳐 놓고 '뉘 골라내듯' 선별작업을 해야 한다.

밤벌레가 침투한 흔적이 약간이라도 있는 밤이 탈락 1순위다. 씨알이 너무 작은 밤도 탈락이다.

그런 밤들을 골라내기만 해도 대략 두세 되쯤 나오는 것 같다.

그렇게 골라낸 밤들은 집근처 정발산을 오르내릴 때 청설모와 다람쥐들 먹이로 던져 준다.

 

맨 처음으로 그 밤나무 산을 알게 된 건 아내의 고교 친구 덕분이었다.

그녀는 이번 추석 연휴에 홀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2박 3일 일정으로 템플 스테이를 왔는데,

위치를 자세히 알고 보니 우리가 사는 동네와 그리 멀지 않으니 바람이나 쐬러 오라는 것이었다.

마침 그날 공양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서둘러 집을 나서서 찾아갔더니 밥도 공짜였고, 커피도 공짜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람을 쐬며 이리저리 절간 주위를 산책하며 거니는 동안,

템플 스테이를 와 있던 아줌마들이 밤을 잔뜩 주웠다면서 자랑을 하며 지나갔다.

절 주변을 여기 저기 잘 살피면 토실토실한 알밤들을 제법 많이 주울 수 있다면서.

 

그래서 시작된 알밤 줍기가 오늘로서 벌써 세 번째였다.

맨 처음엔 절간 담벼락 바로 아래 비탈에서 자란 밤나무 주변을 공략했었다.

그런데 그 밤나무 아래는 너무 비탈이 심해서 접근조차 그리 쉽지 않았다.

또한 밤나무 주위에는 예상치 못한 물건들도 더러 버려져 있었다.

꽃을 담았던 플라스틱 바구니 정도는 제법 양호한 편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좀 더 접근이 쉬운 다른 '밤나무 밭'을 수소문했다.

 

절에서 내려오다가 왼편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밤 밭'이 나온단다.

대략 20분쯤 걸어가면 무슨 옹달샘이 나오고, 거기서 몇 십 미터만 더 가면 된단다.

아내 친구와 셋이서 그 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옹달샘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밤송이가 잔뜩 널브러진 지역이 그 오솔길 주위로 여기 저기 있긴 있었다.

비록 아쉬운 대로 아무데서나 알밤을 줍기 시작했다.

밤이라는 게 그저 줍는 재미지 수확량이 무에 그리 중요하랴 싶었다.

그래도 셋이서 줍기 시작하니 한 시간 남짓에 각자 이삼 킬로쯤은 너끈히 주워모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공략일은 지난 주 토요일 오후였다.

가을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어디로든 나들이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듯한 날씨가 좋은 핑계였다.

시장에서 사 온 먹다 남은 찐 옥수수랑 쥬스랑 커피를 새참으로 먹기 위해 조그만 배낭에 챙겨 넣었다.

삼겹살을 구울 때 자주 쓰는 집게도 두 개나 챙겼고, 비닐 봉다리도 서너 개 챙겨 넣었다.

맨 처음 셋이서 주울 때보다 밤이 훨씬 더 많았다. 연휴가 지난 탓인지도 몰랐다.

한 시간 남짓 주웠는데도 집으로 돌아와서 재어 보니 무려 8키로나 되었다.

 

오늘도 밤을 줍기엔 제법 좋은 타이밍이고 날씨인 듯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걸쳐서 가을 태풍이 지나간 탓에 밤들이 우수수 털리기도 했을 테고,

이번 주말을 넘기고 나면 밤들이 차츰 변색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갈 채비에 바쁠 듯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갖은 핑계를 찾은 끝에 또다시 밤줍기에 나섰다. 벌써 세 번째였다.

먹다 남은 케익과 과일 쥬스, 집게, 비닐 봉다리에 더해 오늘은 장갑까지 챙겼다.

예상했던 것보다 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려진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수확이 알찼다.

산비탈을 이리저리 누비며 40분쯤 주웠더니 두 번째 방문때 수확량을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흐르는 땀도 식힐 겸 새참을 먹고 나서 조금만 더 줍고 가자고 했다.

그렇게 다시 10분쯤 밤을 줍고 있는데, 아내가 조용히 외쳤다.

 

"여보! 이리로 와 봐"

"응, 알았어, 여기도 밤은 많은데, 뭘."

"그게 아니라니까, 암튼 얼른 이리로 와 봐."

"알았어, 금방 갈께."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연신 밤을 주워 담으며 허리를 굽힌 채로 아내 쪽으로 다가갔다.

 

오, 과연 거긴 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전인미답의 신천지가 확실했다!

떨어진 밤 송이가 가득했고, 밤송이 안팎으로 밤들이 쏱아져 널브러져 있었다.

서둘러 밤을 줍다 말고 덜컥 겁이 났다.

이거 혹시 남의 재산을 훔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밤 줍기를 멈추고 하산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내려오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로 밤을 줍는 게 범죄 행위까지는 아닐 꺼야.

왜냐하면, 템플 스테이 하러 온 사람들도 이미 숱하게 그 주변에서 밤을 주웠고,

절간 스님들도 으레 그쪽에 가면 밤을 많이 주울 수 있다고 귀뜸해 주기도 했고,

그 야산에서 밤을 줍는 사람들은 우리 말고도 그동안 적잖이 우리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도 그 야산과 그곳에서 자란 밤나무의 주인이 명백히(?) 따로 있었더라면,

진작부터 이곳 저곳에 '경고 간판'을 내걸었을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밤을 줍다가 밤이 너무 많아서 덜컥 겁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밤이 많았다.

 

 

 * * *

 

 밤 관련 책을 찾았더니 이런 책들이 나온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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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8-10-08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 고향에서 포도밭 하는 친구네 갔다가 밤을 엄청 주웠답니다. 포도밭 주인의 딸인 친구 왈,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밤이 떨어진 걸 본 건 처음이라네요. 해마다 사람들의 손을 타고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7년의 밤>이 빠졌네요.ㅎㅎㅎ

oren 2018-10-08 18:29   좋아요 0 | URL
올해는 밤이 한꺼번에 익었다가 빠르게 우수수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아직도 지천에 널려 있는 그 많은 밤들이 이제는 죄다 썩어 없어지겠구나 생각하니, 저 밤나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많은 밤들을 봄부터 가을까지 열매로 영글도록 그토록 애썼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단단한 가시로 무장시켜서 말이지요.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아니면 읽고 읽고 또 읽든가요."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 *

 

어떤 소설들은 단번에 사람을 매료시킨다. 처음부터 주인공들의 얼굴이 뚜렷하게 그려지고, 목소리나 말투마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그린 1984년의 세계가 너무나 숨이 막힐 듯하고 암울하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의 생김새나 목소리를 상상할 여유조차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이 소설은 몹시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충격적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소설로부터 받은 둔중한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오웰은 어떻게 해서 이토록 암울한 미래를 그토록 잘 그려낼 수 있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자 말자 다시금 소설의 맨 처음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이 소설은 단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그저 '소설의 껍데기'만 읽은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으니까.

 

이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사실 그런 느낌 말고도 여럿 더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오브라이언에 대해 찬찬히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작품의 초반부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윈스턴에게 다가왔는지, 그가 왜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진짜 주인공처럼 부각되는지, 그가 왜 반체제 영웅이었던 골드스타인이 쓴 이념 서적인 《과두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의 실질적인 저자였음을 윈스턴에게 고백하는지 등등이 단번에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나서야 '윈스턴과 오브라이언의 관계'가 뚜렷하게 그려졌다. 또한 오브라이언이 어떤 존재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쨌든 소설 『1984』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오브라이언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소설의 말미에서 윈스턴으로 하여금 결국 무의식 중에라도 '2 + 2 = 5' 라는 황당한 산식을 테이블 위에 쓰게 만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윈스턴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을 때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고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사상범으로 체포된 윈스턴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이 본질적이고도 궁극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개인이 그가 속한 체제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의 정당성에 반항하는 개인이 궁극적으로 처한 운명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 것인지, 더 나아가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오브라이언만큼 명쾌한 이론을 갖춘 인물도 드물다. 그런 까닭에 윈스턴은 그토록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오브라이언에게 도리어 존경심마저 품게 된다.

 

 

(조지 오웰, 출처 : 위키피디아)

 

 

(조지 오웰이 상상한 1984년의 세계, 3대 초국가가 세계를 분할 지배하는 형국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책의 말미에 적은 메모. 이상하게도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로 읽을 때 메모한 내용들이 훨씬 많았다.)

 

체포된 윈스턴을 심문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오브라이언과 윈스턴이 주고 받는 '고문실의 대화'는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일부 비평가들이 이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두고 심지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화처럼 감동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리뷰에 담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몇몇 인상적인 대목들을 뒤늦게나마 여기에 덧붙여 본다.

 

* * *

 

 

이곳에서는 순교가 없다는 점이네

"자네가 첫 번째로 알아두어야 할 건 이곳에서는 순교가 없다는 점이네. 자네는 과거의 종교 박해 사건에 관해 읽어봤을 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중세에는 종교재판이 있었네. 그런데 그건 실패작이지. 이단자를 뿌리 뽑기 위해 시작된 그 종교재판은 오히려 이단을 영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네. 모든 이단자들에 대한 본보기로 이단자 한 사람을 화형에 처할 때마다 다른 수천 명이 들고 일어났는데, 왜 그랬겠는가? 그것은 종교재판이 그들의 적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회개를 받아내지 못한 채 죽였기 때문일세. 사실은 회개하지 않는다고 죽였던 거지.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걸세. 따라서 모든 영광은 그 희생자들에게 돌아갔고, 그들에게 화형을 선고한 재판관에게는 비난만 퍼부어졌지. 그 후 20세기에 이르러 소위 전체주의자라는 게 나타났네.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이지. 소련은 종교재판 때보다 더 참혹하게 이단자들을 처형했네. 그들은 과거의 실책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순교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네. 그들은 그 희생자들을 인민재판에 회부하기 전에 용의주도하게 그들의 위엄을 완전히 제거해 놨지. 그 희생자들은 고문과 감금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야비하게 굽실거리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했네. 그들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무엇이든 다 털어놓고, 자기들끼리 서로 욕하고 고자질하며 자기만 살기 위해 살려달라고 애원했지. 그런데 이번에도 몇 년이 지나자 그와 똑같은 결과가 나타난 걸세. 죽은 자들은 순교자가 됐고, 그들에 대한 경멸도 잊혀져 버렸네.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첫째로 그들의 자백이 강제에 의한 것이었고,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일세. 우리는 그런 식의 실수는 저지르지 않네. 여기서 얻은 자백은 모두 진실이네. 우리가 진실로 만드는 거지. 무엇보다 우리는 죽은 자들이 다시 우리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네. 윈스턴, 자네는 후손들이 자네를 옹호해 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후손들은 자네에 대한 얘기를 전혀 들을 수 없을 걸세. 자네는 역사의 흐름에서 깨끗이 지워져 버린다네. 공기로 변해 먼 하늘로 사라져버리는 거지. 자네에 대해서 남는 건 아무것도 없네. 기록된 자네의 이름도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도 자네는 없네. 자네는 미래에서처럼 과거 속에서도 완전히 소멸될 걸세. 결국 자네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네."(353∼355쪽)

 

 

 

 * * *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되어 있다.'는 식이네.

 

"윈스턴, 자네는 견본에 난 흠과 같군. 한마디로 씻어버려야 할 오점이지. 우리는 과거의 처형자들과 다르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소극적인 복종이나 비굴한 굴복으로는 만족 못하네. 자네가 우리한테 항복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여야만 하네. 이단자들이 우리한테 반항한다고 해서 그들을 처형하는 게 아닐세. 우리는 그들을 전향시켜 속마음을 장악함으로써 새사람으로 만든다네. 그들이 지닌 모든 악과 환상을 불태워버리고, 외양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영혼까지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지. 그들을 죽이기 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만든단 말일세. 비록 알려지지도 않고 그 영향력 또한 없다 하더라도 그릇된 사상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 어떤 탈선도 용납하지 않네. 옛날에는 이단자들이 여전히 이단자인 채 스스로 이단자임을 자처하며 화형장으로 끌려감으로써 모종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 소련에서 숙청당한 희생자들도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머릿속에 반항 의식을 갖고 있었네. 그런데 우리는 처치하기 전에 두뇌를 완전히 개조시키지. 옛날 전제군주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었고, 전체주의자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었지만,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되어 있다.'는 식이네. 우리가 여기에 끌고 온 사람치고 우리에게 끝까지 맞선 자는 없었네. 모두 완전히 세뇌되었지. ……"(355∼356쪽)

 

 

 * * *

 

 

인간의 얼굴을 짓밟고 있는 구둣발을 상상해 보게.

 

"윈스턴,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자기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겠나?"

 

윈스턴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맞았네. 권력은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가 있지.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네. 괴롭히지 않고, 어떻게 권력자의 의사에 복종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가운데 존재하는 걸세. 그리고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권력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뜯어 맞추는 거라네. 자네는 우리가 어떤 세계를 창조하려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나? 이건 옛날의 개혁자들이 상상했던 어리석은 쾌락주의적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의 것이네. 공포와 반역과 고뇌의 세계이지. 짓밟고 짓밟히는 세계이며, 세련될수록 더욱더 무자비해지는 세계이네. 우리가 만드는 세계에서의 진전이란 고통을 향한 진전일 뿐이네. 옛날의 문명들은 사랑과 정의 위에 세워졌다고들 주장했었지. 우리의 문명은 증오 위에 세워져 있네. 우리의 세계에서는 공포, 분노, 승리감, 자기 비하 등의 감정을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네. 그 나머지는 우리가 몽땅 때려 부술 걸세. 우리는 이미 혁명 전부터 내려오던 사고의 습관을 부수고 있지. 우리는 부모와 자식, 인간과 인간, 남자와 여자간의 유대를 끊어버렸네. …… 충성심도 당에 대한 것 이외에는 모두 없애버릴 걸세. 사랑도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네. 웃음도 적을 패배시키고 승리감에 취해 웃는 웃음만 있게 될 것이고, 미술, 문학, 과학도 없어질 걸세.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도 없어지고, 호기심이라든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 따위도 없어질 것이네. 한마디로 말해 이 세상의 모든 쾌락은 파괴되어 버리는 거지. 그런데 이걸 잊지 말게, 윈스턴. 언제나 끊임없이 커가고 끊임없이 미묘해지는 권력에 대한 도취감만 맛보게 되리라는 점을 말일세.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승리감이 주는 전율과 무력한 적을 짓밟는 쾌감을 얻게 될 것이네. 만약 미래의 모습이 보고 싶으면, 인간의 얼굴을 짓밟고 있는 구둣발을 상상해 보게."(373∼375쪽)


 

 * * *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과거는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과거는 절대로 바뀐 적이 없다. …… 윈스턴은 그들의 죄를 부인할 수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은 있지도 않은, 그 자신이 꾸며낸 것이다. 그는 상반되는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기억했지만 그런 것은 모두 틀린 기억이고 자기기만의 산물이었다.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쉬운가! 항복만 하라. 그러면 모든 일은 저절로 해결된다. 이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뒤로만 밀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물결을 따라서 헤엄치는 것과도 같다. 오직 자신의 자세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어떤 경우에든 예정된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는 왜 자신이 지금까지 반항해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쉽다. 다만…….(388∼389쪽)

 

 

 * * * 

 

(위키백과에 따르면, 1989년 집계 당시 《1984년》은 6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는 조사 당시 다른 어떤 영국 소설 보다 많은 숫자이다. 국내에서도 아주 다양한 판본들이 나와 있는 건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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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6-0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페이퍼에서˝ 이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뒤로만 밀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물결을 따라서 헤엄치는 것과도 같다.˝ 라는 구절을 읽으니, 화이트헤드가 물리적 현상은 끊임없이 확산되어 가지만, 생명력은 거슬러 올라간다는 내용이 생각납니다.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대강의 내용은 위와 같았던 것 같습니다만... <1984> 속의 문장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 2018-06-07 09:21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께서는 저 대목을 읽고 화이트헤드의 말들을 떠올리셨군요. 저는 엉뚱하게도 쇼펜하우어가 남긴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떠올렸는데 말이지요.^^

제임스 리 2020-01-18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습니다~

oren 2020-01-19 19: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밑줄긋기)

 

루이자가 지금보다 여섯 살 어렸을 때, 하루는 그녀가 "톰, 나는 궁금해"라는 서두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 말을 엿들은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밝은 곳으로 나서며 말했다. "루이자, 절대 궁금해하지 마라!"

 

감정이나 정서를 계발하는 데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이성만을 교육시키는 기계적인 기술과 불가사의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절대 궁금해하지 말라. 덧셈·뺄셈·곱셈·나눗셈으로 모든 일을 그럭저럭 해결한 다음에는 절대 궁금해하지 말라.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저기 저 아이를 나에게 데려와라, 그러면 그 아이가 절대 궁금해하지 않도록 내가 책임지겠다, 라고 맥초우컴차일드는 말한다.(85∼86쪽)

 

(중략)

 

코크타운에는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읽는지가 그래드그라인드 씨의 정신을 몹시 괴롭혔다. 그것에 대해서는 도표로 만든 보고서의 작은 강이 도표로 만든 보고서의 엄청난 대양으로 주기적으로 흘러들어갔는데, 그 대양의 밑바닥에 도달했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에 오는 이런 독자들마저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는 것은 낙담스러운 사정이면서 우울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정열, 인간의 희망과 공포, 그리고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투쟁과 승리와 패배, 걱정과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들은 때때로 열다섯 시간을 일한 뒤에도 자기네와 비슷한 남녀들, 그리고 자기 자식들과 비슷한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들을 앉아서 읽었다. 그들은 유클리드 대신에 디포우를 사랑했고, 대체로 코커(17세기 영국의 수학자)보다는 골드스미스(18세기 영국의 시인 겸 소설가)에게 더 위안을 받는 듯했다. 그래드그라인드 씨는 이 괴상한 합계를 인쇄된 형태로든 아니든 항상 따져보았으나, 어떻게 이런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87∼88쪽)

 

 -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제1권, 8장 · 궁금해하지 말라

 

 

(나의 생각_01)

 

찰스 디킨스의 작품 『어려운 시절』은 이른바 문제작 가운데 하나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대로 '19세기 산업사회의 이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계몽의 그늘에 감추어진 억압을 날카롭게 파헤친 문제작'이다.

 

찰스 디킨스의 후기 작품들은 이처럼 사회 개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투영된 작품이 많은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황폐한 집』, 『어려운 시절』, 『리틀 도릿』 등이다. 특히 『리틀 도릿』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번역본조차 나온 게 없지만) 흥미로운 평가도 많은데, 버나드 쇼는 "<자본론>보다도 더 폭동을 유발하는 책"이라고 말했고, 칼 마르크스는 <리틀 도릿>을 최초의 자본주의 공격 소설로 평가했다고 한다. 칼 마르크스는 심지어 "세계의 모든 정치인, 사회운동가들이 한 모든 것보다 디킨스가 세상의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한 일이 더 많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어려운 시절』을 읽으면서 마치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엄습할 정도로, 어딘가 사방이 꽉꽉 막히고 억눌리는 듯한 느낌을 떨치지 못한 채로 무작정 어디론가 끌려가는 심정까지 맛보곤 했는데,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찰스 디킨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어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저 짧은 절(節)에 달린 소제목인 <궁금해하지 말라>가 던져주는 '놀라운 연상 작용' 때문에 심지어 몹시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궁금해하지 말라>는 제목을 보자 말자 내 머리 속에 '유사한 장면 둘'이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최근에 아주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린 끝에 종영된 TV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었고(전체가 52부작이라는데 평소에 TV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편인데도 나는 유독 '문제의 장면'만큼은 자세히 봤다.), 다른 하나는 (어느새 약간 진부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아마도 연말쯤엔 틀림없이 '올해의 10대 뉴스'에 당당히 올라 우리의 기억을 다시금 환기시킬 게 분명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충남도지사 정무비서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하나는 디킨스의 소설처럼 여전히 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다른 하나는 가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점에서만 서로 다를 뿐, 두 사건 모두 본질적으로는 몹시 닮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 *

 

노명희 :(사직서를 보며) 이게 뭐야?

민들레 :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거든요.

노명희 : 아,아니 그렇다고 우리 집안이 얼마나 뒤숭숭한지 알면서 그만두면 어떡해. 연봉 올려줄테니까.

민들레 : 필요없어! 나 그 돈 필요없어!

노명희 : 민부장! 지금 뭐하는 거야!

민들레 : 사표냈는데 반말하면 안 되나? 돈 주고 부리는 사람은 사람 취금 안 했잖아. 나 지금은 당신 돈 받는 사람 아니야. 나이도 한 살 더 많고. 돈 안 받는데 왜 존대해야 하니? 명희야.

노명희 : 어머.

민들레 : 그리고 나 돈 많아. 당신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돈만 받고 쓸 시간이 없게 살았잖아. 몇십 년 동안 이 집안 붙박이로.

노명희 : 야 민들레, 너 지금 누구 앞에서. 그만둔다고 뵈는 게 없어?

 

(중략)

 

노명희 : 은석이 데려가는 걸 봤다고? 봤는데 왜 말 안했어?

민들레 : 시키는 일만 하라며?

노명희 : 뭐?

민들레 : 정식으로 혜성어패럴 입사시험 합격했던 사원이었으나 노양호 사장 비서. 열심히 일을 했더니 2년 만에 집안 비서를 하라고 하데. …… 딱 2년만 하자, 열심히 했어. 그랬더니, 당신도 말끝마다 그러데. 시키는 일만 하라고. 노양호처럼. 넌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고. 쓸데없이 알아서 뭘 할려고 하지 말라, 시키는 것만 하는 게 니 일이다.

노명희 : 그거하고 우리 은석이 모른 척 한 거 하고 무슨 상관인데?

민들레 : 노양호가 시킨 건 당신 미행이었거든. 니 딸 납치당할 때 신고하라는 말은 안 하더라.

노명희 : 야! 야, 민들레 너!

 

 - TV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중에서

 

 

 * * *

 

…… 저한테 안희정 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희정 지사님이었습니다. 수행비서는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하는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지사를 지켜야 되는 사람이라고, 지사님도 저한테 얘기해 주신 것 중에 하나가, 늘 얘기하신 것 중에, 니 의견을 달지 말라, 니 생각을 얘기하지 말라, 너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투명하게 비춰라, 그림자처럼 살아라, 그렇게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사님이 얘기하시는 거에 반문할 수 없었고, 늘 따라야 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크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늘 수긍하고, 그의 기분을 맞추고, 항상 지사님의 표정 하나하나 일그러진 것까지 다 맞춰야 되는 게 수행비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

 

 - JTBC <저녁 8뉴스> 중에서 

 

(나의 생각_02)

 

마침 오늘 안희정 전 도지사에 대한 '불구속 기소' 소식이 나왔다. 검찰이 무려 두 번씩이나 거듭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한 끝에 마침내 '재판'에서 범죄 유무가 가려지게 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의 일관되고 상세한 진술, 피해자의 호소를 들었다는 주변 참고인들 진술, 피해자가 마지막 피해 전 10여일 동안 미투 관련 검색만 수십 회 했다는 컴퓨터 사용상 로그 기록, 피해자가 당시 병원 진료받은 내역, 피해자의 심리분석 결과 등을 종합하면 범죄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하는데, 법원의 최종 판단이 과연 어떤 귀결에 이를지 몹시 궁금하다.

 

 

(나의 생각_03)

 

디킨스의 작품『어려운 시절』은 흔히 '공장 파업 노동자를 그린 소설'이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그 부분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곁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작품의 근저에 흐르는 '근본 주제'는 사실 그보다는 훨씬 더 묵직하고 범위가 넓은 것처럼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단지 출신 신분이나 계급, 혹은 지식이나 재산 유무에 따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분하는 경직되고 낡은 사회 체제와 사고 체계' 자체를 문제 삼는 작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비뚤어지고 낡아빠진 잘못된 가치 체계나 사회 체제야말로 인간의 삶을 메마르고 척박하게 만들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 자체를 파괴하고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가 (웃음과 재치와 유머로 가득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몹시 답답하고도 우울한 필체로 그려낸 '어려운 시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이런 생각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녀(루이자, 자수성가한 고지식한 졸부 영감인 바운더비와 결혼했다가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친정으로 되돌아온 소설의 여주인공) 자신이 재혼을 해서ㅡ어머니가 되어서ㅡ자식들을 사랑스레 돌보고, 자식들이 아이답게 크는 것이 한층 아름다운 일이고 재산이며, 그런 재산을 조금이라도 갖는 것이 지극히 현명한 자에게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이들이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아이답게 크도록 항상 신경쓰는 모습은? 루이자가 이것을 내다보았는가? 이는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행복한 씨씨(순회곡마단의 늙은 광대였던 아버지가 딸을 놔두고 도주하는 바람에 고아처럼 자란 소녀)의 행복한 아이들은?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은? 그녀가 어른이 되어서 아이 같은 지식을 익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순진하고 아름다운 상상을 경멸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상상력의 은총과 기쁨을 통해 기계장치와 현실에 억눌린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그것이 없으면 아이의 마음은 시들 것이고 아무리 강건한 육체를 지닌 어른이라도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것이며 아무리 분명한 국가의 번영 수치라 하더라도 벽 위의 글자(다니엘서 5장에서 벨사살 왕의 잔치 때 하느님이 왕궁 벽에 글자를 써서 파멸을 예언한 것을 말함-역자주)를 보여주는 것이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ㅡ 이것을 환상적인 기원, 약속, 형재애, 자매애, 맹세, 서약, 멋있는 옷, 자선시(慈善市)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는 모습은? 루이자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내다보았는가? 이는 장차 일어날 일이었다.(479∼480쪽)

 

 -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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