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예약해놓고 잊고 있었던 터라, 이게 무슨 책이지 했다. 공간과 미식가의 조합이라니. 어색하고 뜬금없어서 내용이 연상되지 않아서였다. 다 읽고 나니, 너무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서 다 따라할 수는 없지만,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도시에 가보고 싶은 공간 10개는 있어야 살고 싶은 도시라고 했나. 주변부터 살펴 봐야지. 소소하고 멋진 공간은 보는 사람의 안목이다.
매일 도로에서 접해서 무감각하지만 신호등의 디자인이 독특하면 힐긋 쳐다보는 짧은 시간이라도 즐겁다. 그로 인해 도시도 특별하게 기억된다. 일상의 사물에서 흥미를 찾는 경험을 주는 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다. - P39
시간과 시간 사이의 짧은 시간을 설계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간(間)의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작은액정을 통하여 주요 뉴스와 날씨,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초 되지않는 이동 시간을 위한 디자인이다. - P42
가끔 일상의 익숙한 스케일을 벗어나 생각을 하고 일을도모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의 스케일이 달라지면 그 안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다. 우리는 마음의 스케일 만큼만 인생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91
"우리에게는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북유럽 사람들은 첫 월급을 타면 의자를 산다. 자신을 위해서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 아끼는 담요를 걸쳐 놓는다. 추운 지방이므로 앉을 때는 종종 그 담요를무릎에 얹는다. 이들에게 의자는 신체 일부이자 친구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홈인테리어나 가전제품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늘고 있다. 일상에서 늘 나의 몸과 함께하는 인생 의자 하나쯤 생각해 볼 만하다.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의자와의 교감은 특별하다. 의자는 주인에게 가구 이상의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 P329
광장은 그 앞에 기념비적으로 지어진 건축물도 있지만, 핵심은사람들 간의 교류, 피플 워칭(People Watching)이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나 장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집회 이외에는쓸모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도시는 공간과 사람이다. - P373
도시나 시골 군데군데 놓인 벤치는 늘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보행자들을 위해 집 앞 정원에 벤치를 마련해 주는 배려도 흔한 일이다. 벤치의 매력은 땅에 붙어 있다는 점이다.땅과 호흡하며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은 값지다.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내 몸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든다. 자신이 원할 때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삶은 행복하다. 사람들이 벤치에 이름을 새겨 기부하는 것은 그곳에 앉는 사람들의 좋은 삶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벤치라는 의미는 스포츠에서도 자주 은유된다. 명감독일수록 ‘벤치 스코어‘를 곧잘 생각하는 것 같다. 경기를 그저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지만, 이미 머릿속에 수많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벤치의 휴식이 좋은 것은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한 작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그리고 기나긴인생에서도 그렇다. 벤치와 함께하는 최고의 순간은 앉는 동안이 아닌, 벤치에서 일어나는 때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코트로 뛰어 들어갈 때,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했을 때 벤치와이별한다.이탈리아 친퀘테레(Cinque Terme)의 기차역 벤치는 나누는 공간이다.내일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긍정하기 위한 순간이다. 이것이 벤치의 매직이다. 서양에서는 벤치가 나오는꿈을 꾸면 좋은 징조라고 한다.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 모두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P284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예스러운 동화이다. 하지만전혀 낡은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성장에 대해, 죽음과 악에 대해,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악에 맞서는 방식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라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것 같다.마치 매년 봄꽃이 피어나도 그 꽃들은 결코 똑같지않고 언제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것처럼.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크라바트>를 다시 읽으며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부활 의식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반드시 기독교의 부활절이나 전통적 의미에서의 명절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인생이라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나아가다 잠시 멈춰 옛것을 털어내고 사람들을 용서하고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시간이 한해에 한 번은 있어야 다시 힘을 내서 더 많은 일을 할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런 부활의 시간에는 뭔가 맛있는음식이 필요하다는 것도.나만의 ‘부활절 케이크‘는 무엇일까? - P339
"난 아무것도 증명하고 싶지 않아. 다만 살고 싶을뿐이야. 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악한 짓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 내겐 그럴 권리가 있잖아. 그렇지않아?"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안나를 찾아주는 충직한 친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굴과 샴페인을 즐기는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오블론스키의 인생철학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 P179
떠나겠지만, 신은 죽음과 대척점에 있기에 나는 그곳으로 절대 건너갈 수가 없었다. 어둑어둑한 언덕과 칙칙한 벌판, 그 사이를 천천히 움직이는 하얀 그림자를 상상해보았다. 어떤 이는 생전에 사랑했던사람들과 손을 잡고 걸어갔다. 또 어떤 이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언젠가 찾아올 거라 확신하며 기다렸다. 사랑한 적 없었던 사람들, 삶이고통과 공포로 얼룩졌던 사람들을 위해서는 레테라는 시커먼 강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강물을 마시면 기억을 지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위안인가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수천 년을 관통하는동안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와 닮은 이들만 남을 것이다. 올림포스의 신과 티탄 신족, 내 여동생과 남동생, 나의 아버지.그때 내 안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길 하나가 내 발치에서 갑작스럽고 선명하게 열렸던 그 옛날, 내가 마법을 처음 배우던 시절 같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몸부림치고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이 얘기했던 것처럼 내 안에는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창백한생명체가 시커먼 심연 속에서 내는 속삭임이 들린 듯했다.그럼 아가, 다른 걸 만들려무나.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지금 준비가 안 되었다 한들 언제는 준비될 수 있을까? 심지어 산꼭대기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그가 내 섬의 이 노란 모래사장으로 내려와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마주하면 그만이었다. - P466
하늘에서 별자리가 어둑어둑해지고 자리를 바꾼다. 바닷속으로추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햇살처럼 신의 광휘가 내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 P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