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적인 우주의 검은색


  우주론에서의 검은색은 하늘의 푸른색에 대한 시적 대립항인 밤의 어둠이라기보다는, 사라진 무언가의 이름(블랙홀)이며, 모든 가능적 인식의 이름이자 그 무엇도 개념을 결여하지 않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것의 이름(검은 물질)이다. 결국 우주론의 검은색은 부재나 죽음보다는 사유에 대립되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영국의 경험주의자는 검은 물질이라고 말하지 않고 암흑 물질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가 아니며, 순수한 개념도 아님을 알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미약하게 밝혀진 물질일 뿐이니, 언젠가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영국인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 알랭 바디우, <검은색>, 97-98쪽




요약하자면, 우리는 아직 그 별을 모른다. 


1. 검은 구멍 : 언제나 그렇듯 검은색은 식별되지 않는 것들을 상징한다.

은하의 중심 부근에 위치한 어느 별의 죽음은 이렇게 찾아오는데, 

화려한 몇 주를 보낸 이후에 중력 붕괴에 의해 확고한 핵으로 축소된다.  

그것은 결코 실재에 있어서의 구멍이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구체, 즉 어떤 마술과 같은 공이다. 

그러니까 거기 접근하는 모든 것은 즉각적으로 그 일부가 된다. 

사라진 무언가의 이름.


2. 검은 물질 : 늘 그렇듯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검게 칠하는 경향이 있다. 

거대한 별의 나선과 그 불안정한 연결이 관찰되는 그대로 회전하게 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질량이 필요하다.

모종의 천문학적 질량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은 사유에서 아무 것도 결여되지 않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것의 이름이다. 

모든 가능적 인식의 이름.


3. 암흑 물질 : 그것은 무도, 순수한 개념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 그 별을 다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거기 하늘에 뭐가 희미하게 찍혔는데 엄마가 유에프오라고 했어요. 그거 낮달 맞죠?"

  "모르지 그건."

  "어쨌든 유에프오는 아닐 거잖아요?"

  "아니야,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다." 


  "이럴 땐 엄마가 이해가 돼."

  "그게 무슨 말이냐?"

  "그냥 이해가 된다고. 왜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났는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거냐."

  "모르죠.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죠. 그건. 유에프오보다 더." 23-24쪽


  "아빠 만나서 그거 하나는 좋았어요."

  "뭐? 고기?"

  다영은 들은 척도 않고 식당 쪽 마당을 가리켰다.

  "어제 저기서 아빠가 잘 못한다고 말한 거, 그거 좋았다고."

  그는 단박에 알아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 답답해. 그게 아니라, 아빠가, 무엇무엇을, 잘 못한다, 그렇게 인정하는 말, 태도 말이에요."

  "아, 그거......" 43-44쪽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일별하듯 아침, 오후, 저녁의 낮달을 모두 보았다. 왜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차를 몰아 농가 펜션의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45-46쪽


  - 권여선, <모르는 영역>, <<아직 멀었다는 말>>



  모르는 영역이라는 말. 잘 못한다, 그렇게 인정하는 말. 아직 멀었다는 말. 


  그리고, 오늘 아침에 잘잘라님네 서재에서 본 아름다운 말. "우리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주 많아."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우리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은 아직 너무 많아서, "그건 모르는 영역이"라도(모르는 영역), "뭔가로 가득차서 터질 것 같았"던 날이 있었더라도(손톱), "그때 자신이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완전무결하게 무력해지더라도(희박한 마음), "가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전갱이의 맛),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너머)


  그러니까 아직 멀었는데, "사뭇 폭력적일 만큼 간명한 요약" 금지. "어느 날 애가 말이야 해충이 돼버린 기야." 금지. "그기 다 결국은 상상 아이가?" 금지. 일단 적어도 오늘은 아직 살아 있으니까, 연탄집 주인에게 공손하게 묻기. "제게 담배 한 대만 주실 수 있습니까?"(재)


  나는 담배 안 피우니까 권여선 작가님한테 공손하게 묻기. 그 번듯한 오피스텔 밑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을씨년스럽다는 식당 어딥니까. 제게 그 전갱이의 맛 한 번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작게. 점점 작게. 주먹 쥔 손의 작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 권여선, <전갱이의 맛>, <<아직 모른다는 말>>, 250쪽



  *


  "우리는 아직 그 별을 다 알지 못한다."

  "우리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주 많아."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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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9 23: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검은 구멍-블랙홀 수명을 다한 거대한 별 하나가 중력만 남아 빨아들여서 만듬 *검은 물질-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별 *암흑 물질- 처녀자리 은하단의 M87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질량/ 오랜 시간에 걸쳐 묵묵히 한 점으로 압축되고 나면, 원래 크기는 사라지고 어마어마한 질량만 남아서 빠른속도로 소멸해감, 지구인이 알지 못하는 우주라는 공간 ^0^

하나 2021-01-19 23:23   좋아요 1 | URL
scott님 댓글 보니까,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을 우주라고 부른다는 말이 다시 생각나네요. 알랭 바디우 <검은색> 되게 평이한 어조로 쓰여있는데 이상하게 어려워서 요약해봤읍니다. ㅋㅋㅋ 책이 작고 예뻐서 만만하게 봤다가 며칠 고생했어여... ˝오랜 시간에 걸쳐 묵묵히 한 점으로 압축된˝ 별을 쉽게 이해하려면 욕심이겠죠!

미미 2021-01-19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하나 2021-01-19 23:27   좋아요 2 | URL
미미님 수용소군도 6권 막 인덱스 붙이시면서 열공하신 거 봤어요. 제가 그래서 <검은색> 걍 두어번 읽고 리뷰는 쓰지 말고(못 쓰고) 넘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번 더 읽고 막 타자를 쳐가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요약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좋은 자극 종종 부탁드립니다...(^.^)/

scott 2021-01-19 23:43   좋아요 2 | URL
미미님 수용소 군도 완독
정말 대단,대단
ღゝ◡╹

인덱스 붙여놓는 즉시 손가락이 인덱스 쪽으로 안가는 1人

scott 2021-01-19 2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랑바디우가 철학자인데 프랑스 입시 논술 주제가 변증법적 철학으로 입증하는게 많아요 ㅋㅋ자신이 겪은거 살아온것을 주욱 회고하듯쓰는게 아니라 변증법적 사고로 하나님은 완독 하셨네요 저는 어려워서 읽다가 과학책 뒤적 뒤적 ^0^

하나 2021-01-19 23:31   좋아요 3 | URL
저는 알랭 바디우 이름만 들어봤는데, 제목이 맘에 들고 책이 예뻐서 샀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하게 스스로에게 어른스러움 증명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산 책에 대해 책임을 졌을 뿐입니다... 아마 과학책이랑 같이 보시는 scott님 반도 이해 못했을 거예요. 그래도 다른 검은색에 대한 사유도 좋았어요! ^^ 마지막에 흑인에 대한 사유 말하려고 빌드 업한 거 같긴 하지만..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

scott 2021-01-19 23:41   좋아요 3 | URL
우와 역시 알랑 바디우

‘인류는 그자체로 색깔이 없다‘
이말을 과학적 이론으로 해석하면 ㅋㅋ
원래 블랙홀은 검은 구멍이 아니라 색이 없어요.
주변에 먼지와 죽어버린 별가루들이 자석처럼 빨아들여서(엄청난속도로 무시무시하게 회오리치면서) 검은색깔로 관측될뿐이거든요.
불교에 반야심경에 핵심이 색즉시공 공즉시색‘글자 그대로 물질이 곧 비었고 빈 것이 곧 물질‘“색이란 눈에 보이는 것 즉 형태와 모양을 갖고 있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공이란 ‘없음이 있다’ 라는 의미이면서 텅빈 것 같아도 꽉 차있는 우주 즉, 본질은 비어있는 것 같아도 어디에나 있는 것

하나님 이런책에 인텍스 색색으로 붙여놔야해요 ㅋㅋㅋ

하나 2021-01-19 23:57   좋아요 2 | URL
아, 알랭 바디우가 블랙홀 운운한 담에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로 이어버린 거를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받아버리시는 scott님 덕분에 한 번 더 읽겠읍니다... 인덱스 붙이겠읍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19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검정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ㅎㅎㅎ어떻게 소설 한 권으로 한 문단 만드시는지 그것도 참 대단해요ㅎㅎㅎ

하나 2021-01-19 23:52   좋아요 2 | URL
저도 검정색을 가장 좋아하는 열반인님을 좋아합니다 까악까악~ 권여선 작가님 소설도 몰라가지구 아는 만큼만 말하느라고 짧아졌읍니다... 다만, 다만, 다만, 저 가운데 열반인님 글 턱 앉혀놔도 티 안나... 심지어 목소리 안 나오는 건 우리 열반인님이 더 잘 쓴다! (권여선 작가님 팬들 때리러 오는 거 미리 금지~)

반유행열반인 2021-01-19 23:56   좋아요 2 | URL
가장 위치 나름 조절한 거죠?(최애가 되려는 욕망 발동 및 자제 ㅋㅋ) 다만 세 개 뒤에 문장은 접수 못 했습니다...뭘 어디 비벼댈 게 없어서 감히 뭘 더 인지 가늠도 안 되서요 ㅋㅋㅋ저는 어제 권여선 작가님 작년 김승옥 수상집 실린 소설 잘 읽고 꿈 슬프게 꿔서(막 꿈에서 엄마가 며칠 후에 돌아가실 예정이라(?)막 슬퍼하고 자꾸 어디 가다가도 엄마! 부르고 돌아가고 이런 개꿈 꿨어요... ㅋㅋㅋㅋ꿈을 꿔도 패륜임 ㅋㅋㅋ

하나 2021-01-20 00:03   좋아요 2 | URL
당연히 ˝가장˝은 뒷 내용까지 포함입니당(최애에게 부담을 주려는 행동 자제 중 ㅋㅋㅋ) 아 근데 진짜 권여선 소설은 정통 소설이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뻥도 안 치고 어디로 도망도 안 치고 그 자리 그대로 버티는데 그렇다고 너무 절망만 하지도 않으면서도 생활을 턱턱 담아버리는데... 열반인님께서 가실 길입니다! 정통소설의 후예. 근데 진짜 핍진성이랑 재미는 더 심한 것도 있었어. 제 취향이 21세기를 대표할 수 있게 열심히 하겠읍니다... (패륜 아니고 슬픈 꿈은 반대로...)

han22598 2021-01-20 0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부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한 것 같아요. 빛이 없음, 암흑을 두고 우리는 ˝사물이 없다(부재)˝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보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닐까요? 모든색을 섞어버리면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검은색일 수도 있고, 빛의 부재로 보이지 않을 것일 수도 있고요. 음하하.... 오랜만에 서재에 왔더니 하나님 글 많이 쓰셨네요. 얼른 다 읽어야겠습니다 ㅎ

하나 2021-01-20 00:44   좋아요 2 | URL
빛이 없음을 ˝사물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는 말씀 좋아요. ^^

<검은색>에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같이 읽어주시고,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당!

[˝나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라고 외칠 때, 이 말은 분명 기본적인 의미를 갖는다. 빛이 없어졌고,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는 의미. 이와 함께 검은색의 순수하게 시각적인 의미는 정신적 맥락과 관련된 파생적 의미로 미끄러지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정말로 어둠 속에 있다.˝라는 표현은 예컨대 며칠 밤낮으로 공부한 수학적 증명을 계속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AgalmA 2021-01-23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뭇 폭력적일 만큼 간명한 요약˝ 금지라는 말에 뜨끔. 100장 평과 짧은 트윗 날리기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미 물들어 살아서 삶도 덩달아 그리 흐르는지도요. 긍정적인 흐름은 분명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배달의 민족에서 자영업 사장님들이 각종 리뷰 테러의 피해자 되는 사례를 자주 보니 이 문제는 어찌 될까 싶고.
아무리 그래도 초성체, 줄임말은 정말 싫어요ㅜㅜ... 이건 빠른 정보전달보다는 끼리끼리 밈 문화가 되는 거 같아서.

하나 2021-01-23 18:24   좋아요 2 | URL
어떻게든 붙잡아서 이해하려면 요약은 불가피하고, 그게 폭력적이지 않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100자 평과 짧은 트윗 날리기가 범람하는 세상에 물들어서 삶도 덩달아 그리 흐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에도 동의하고요. ^^ 제가 그래서 트위터 끊었자나여...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부연하고 부연하고 또 부연해야 겨우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요. 저도 재미로 가끔 쓰긴 하는데, 언젠가 우리는 밈 빼고는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보고 공감했는데, 아갈마님 말씀과도 통하는 거 같네요. 그리고 저.. 강추하신 작법서 샀읍니다! ㅋㅋㅋㅋ 이러다 아갈마님 책장 내 책장 되는 거 순식간.. ㅋㅋㅋㅋㅋㅋ

AgalmA 2021-01-23 18:50   좋아요 2 | URL
ㅎㅎ...
트위터 140자 너무 답답해서 예전에 끊어버렸어요ㅎ 요즘은 280자로 늘었다고도 하던데 그래도 부족해ㅎㅎ
저는 100자평도 만연체 주의자라ㅎㅎ;;
존 가드너 책을 살만 한 사람은...아무래도 하나 님🤔? 추론했는데 역시 님이셨네요😭 감사해요🙏🙏🙏 우리 같은 책이 많아서 독서 모임 해도 편하겠어요..와항항ㅋㅋ

하나 2021-01-23 18: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이미 제 마음의 독서모임... 은근히 따라 읽고 있는 걸요. 좋아하는(+존경) 이웃분들이랑 같은 책 읽으면 이런 부분 때문에 좋아하셨겠다,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요. 팀 오브라이언도 사놓고 엄청 기대 중이에요. 그리고 이거 아갈마님도 보셨을 거 같아, (예) 알랭 바디우 검은색)싶은 책에 흔적 있을 때마다 너무 재밌고 반가워요. ^^

scott 2021-02-10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에 껌정색 리뷰
이달의 당선작 푸른색으로 ~*
설연휴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하나 2021-02-10 15:20   좋아요 2 | URL
앗 껌정색에 많은 분들께서 얹어주신 멋진 사유들 덕분입니다. 😆 읽기 힘들다고 투덜거린 걸로 용돈 받으니까 쵸큼 반성이 되네여... 진짜 새해부터는 재밌는 읽기가 계속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스콧님도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