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글쓰기에 대한 글을 읽었어요. 아주 솔직하지만, 아주 담백한 글이었고요. 저라면 이런 말은 못 쓸 거 같은데, 싶은 내용을 쓸 때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싫어하겠지' 이런 자의식조차 없었어요. 저는 그런 내용을 써야 할 때 괜히 농담을 하거나 일부러 더 나쁘게 쓰게 됩니다. '거봐, 니가 싫어할 줄 알았지. 근데 뭐 나도 그렇게 진지한 건 아니야.' 이렇게 바로 취소라도 하는 것처럼요. 스물아홉 살이 된 이슬아 보다 서른일곱.999 살을 지나고 있는 김하나는 어떤 부분이 끝내 자라지 못하고 있구나, 들여다 보게 되는 글이었고요. 이건 단순한 글쓰기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에 가까워서, 글쓰기가 잔인한게 삶에 대한 태도가 가장 여실하게 드러나는 장르여서, 다시 태어나야 하나...싶어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을 그냥 쓰기로 했어요.


  이슬아의 글쓰기 선생 어딘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저의 글쓰기 선생 김 선생님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열일곱 살일 때였고요. 저는 막 전학을 갔었고, 제가 전학을 간 그 동네는 아주 작은 동네여서 저를 뺀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였고, 운이 조금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혼자 책을 읽으면서 쉬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어요.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라길래, 저는 제가 당시 유희열이 진행하던 새벽의 라디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썼고요. 다음 날 선생님이 교실에 와서 "니가 김하나니?" 라고 물었고, 그날부터 우리는 이상한 2인조가 되었어요.


  그날부터 선생님은 글쓰기 대회에 관한 공문이란 공문은 모조리 저한테 가져왔어요. "이거 써." 그게 끝이었어요. 공문에는 주제와 분량에만 형광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고요. 저는 그냥 썼고요. 하루에 원고지 열 장인 날도 있었고, 스무 장인 날도 있었고, 심한 날은 대회가 세 개인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그냥 수업시간에도 썼어요. 어느 날 와서는 "너 시는 쓰지 마." 이러길래 그 다음부터 시는 안 썼어요. ㅋㅋㅋ 좀 뜬금 없긴 했지만, 그때는 아직 친구가 없을 때였기 때문에 시간을 견딜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떤 주말에는 선생님 차를 타고 멀리 백일장에 가기도 했어요. 거기서 선생님 학교 후배를 만났는데요. "얜 될 건데, (나이 드신) 심사위원이 보는 눈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이런 식이었어요. 얜 될 건데, 이렇게 대책 없이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신경숙과 하루키를 읽으며 견디던 시간에 간디도 박지원도 공자도 맹자도 장자도 통일도 세계평화도 수질보호도 다 들여보내줬고요. 저는 그것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열일곱 살을 통과했습니다.


  그 해에 상을 스물여덟개인가를 탔는데, 그동안 썼던 분량에 비하면 썩 좋은 성적은 아니었어요. 덕분에 상 같은 거 보다는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런 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결과는 아주 뒤늦게 도착했기 때문이고요. 선생님이 던져주는 다음 차례의 글을 쓰고 있으면 내가 언제 그런 걸 썼었나, 싶은 데서 소식이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했던 거죠. 재능에 무심한 채로 계속 쓰기. 저는 그걸 그 선생님이랑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 같아요.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장 몇 장 보다는,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열여섯 살의 저와 열여덟 살의 제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게 훨씬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요즘은 그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잘 될 건데,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슬아가 빌린 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다시 빌려서 "내가 읽고 싶은 글은 ㅇㅇㅇ가 다음에 쓰는 글이다." 혹은 "내가 듣고 싶은 노래는 ㅇㅇㅇ이 다음에 부를 노래다." 이렇게 말해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배운 사랑은, 제가 배운 응원은 이런 무조건적인 믿음이 전부라서요.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26쪽

  

  플님이 밑줄 그어두신 걸 보고 저도 이 책을 따라 샀어요. 플님, 혹시 ㅇㅇㅇ은 아니시죠? 라고 제가 실례가 되는 질문을 했는데도, 플님은 제가 써온 글들을 잘 읽고 있다고 말씀해주셨고, 뒤늦게 팬클럽되신 거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ㅋㅋㅋ 다 읽고 계셨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하지만, 저 혼자 집에서 쓰고 있는 이런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더 생각해야겠어요.


  자, 그럼 다시 <부지런한 사랑> 입니다. 이슬아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이 썼던 글 중에서 좋았던 부분을 좀 옮겨 볼게요.


  "내 글쓰기 선생님 성함은 이슬아야. 책이 빨리 완성되면 좋겠어.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 아홉 살 김세윤, 44쪽


  "고모는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처음에 살던 집은 컸고 지금 집은 작다. 뛰어다닐 수 있는 큰 집으로 고모가 다시 이사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 열한 살 김채윤, 42쪽


  "가끔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른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내 자신을 위로한다." 

  - 열세 살 양휘모, 66쪽


  "나는 집에 오는 길에도 일기장을 양손에 펼쳐들고 보면서 걸었다. 어른의 글씨로 적힌 그 문장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누가 내 일기를 그렇게 열심히 봐준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음성이 아닌 텍스트로 말을 걸어준 선생님도 처음이었다." 

  - 스물아홉 살 이슬아가 열 살을 회상하며, 194쪽


  그리고 어떤 학생의 일기를 읽다가 저는 너무 웃어버리고 말았는데요. 학생들의 글에 뭔가가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저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봤으니까), 웃길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난 우아할 순 없나보다. 무수리도 나쁘진 않은 듯? 이러고 걍 시끄럽게 살았다." 


  (반면, 친한 친구 세아는 머리도 길고 엄청엄청엄청 우아하고 지켜주고 싶을 만큼 가녀리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머리를 문희준처럼 자르더니) 


  "한달 살기를 하며 세아가 음흉하고 알건다알고 뵨태고 안씻고 토시오 같고 윗옷을 자면서, 올리면 안될곳까지 올리는 무의식 노출증이 있고, 시끄럽다는 걸 알게되자 우아함은 떠올리기 힘들게 되었다. ㅋㅋㅋ 지금은 세아나 나나 무수리같은 면모를 가진 것 같다. 만약에 세아가 머리를 기르고 다닌다면 다시 우아해질지도 모르겠지만.". 

  - 열세 살 양휘모, 88쪽 


  앞에 인용한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에서도 이 친구 범상치 않구나 생각했는데, 웃기기까지 하네요. ㅋㅋㅋ 거기다가 마지막 한 문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거의 무라카미 하루키네요. 이슬아가 얼마나 좋은 글쓰기 선생님이냐면요. 저처럼 너 무라카미 하루키네? 이러지 않고요. 글쓰기에는 재능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재능이 넘친다는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요. "넌 최대한의 네가 될 거야."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 글들도 좋은데요. "접속사 없는 사랑"에서는 어떤 노래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이라는 가사 뒤에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라는 가사가 역접하는 접속사 하나 없이 바로 이어지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은 천국과 지옥을 예기치 못하게 넘나드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아가게도 하고 헷갈리게도 하며, 날 가지고 노는 동시에 내가 이겨내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는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충돌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복합성이라고 느낀다. 이 동시다발적인 복잡함에 대해 말하는 게 문학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술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그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278쪽


  쓸데없는 접속사가 붙어있지는 않은지, 저도 한 번 더 훑어 읽어봐야겠어요. 이슬아 선생님의 글쓰기에 대한 <부지런한 사랑>, 플님 덕분에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여러 편의 글을 쓰는 사이 우리에게는 체력이 붙었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7쪽

"독창적인 것은 없다. 어디서든 훔쳐올 수 있어. 영감을 주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라면 뭐든지 얼마든지 집어삼켜." 그런 뒤에 교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장뤼크 고다르가 한 말은 꼭 기억해야 해. "문제는 어디서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느냐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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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3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4 0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4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0-12-03 2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을 수거하고 다니면서 학창시절을 보내셨군요. 저는 노트 5권 주는 교내 백일장에서 상 타고서는 내가 글쓰기 천재로구만 이러면서 나이 먹었는데..... 스케일 격차가 어마어마하네요 ㅎㅎㅎ

하나 2020-12-03 22:07   좋아요 1 | URL
승률이 낮은 편,이 포인트입니다. ㅋㅋㅋ 한 방에 써서 한 방에 노트 5권 받았으면 저도 쇼 어린이처럼 내가 천재인가 보다, 하고 재기발랄한 독서일기 쓰는 어른으로 잘 컸을텐데.. 스케일 격차가 어마어마하고요. 소싯적의 동네 치킨 맛 감별사로서 쇼님의 치킨사랑 잘 지켜보고 있고요. 저도 오늘 에어프라이어 생겨서 남부럽지 않다는 진짜 자랑 해봅니당 ㅋㅋㅋ

han22598 2020-12-04 0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도 그 선생님도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셨네요 ㅎㅎ 음하하 부럽다!

하나 2020-12-04 04:29   좋아요 1 | URL
책 읽다 보면 가끔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를 만나게 되는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도 막 발령 받은 곳이 아주 작은 동네라 심심했던게 아닐까 싶어요. ㅋㅋ 음하하 우리도 여기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 하필 팬더믹이어서... 강제 독서... ㅋㅋㅋ 오늘도 책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scott 2020-12-04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학생, 하나님을 알아보신 선생님 진정한스승이시네요 왠지 박서준,새로이 모습이 떠올^ㅎ^

하나 2020-12-04 14:01   좋아요 1 | URL
박서준이 잘생겼으니까 줄거리는 아는데요. 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야망이 없어요. ㅋㅋㅋ 누가 넌 돼, 이러면서 살살 꼬시거나, 갑자기 그 일이 너무 좋아졌거나 이러면 막 팍팍 몸을 움직일 수 있겠지만 경제적 성공, 저 위를 향하여... 이런 게 도무지 안 되네요. 지 좋은 거만 하는 인간이에요. 어쨌든 최소한 저는 행복할 확률이 높은 편 ㅋㅋㅋ ^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scott 2020-12-04 22:23   좋아요 1 | URL
이슬아도 썼는뎅ㅋ
하나님 써요 써요!!
자신에 글 구독하면 500원 천원에 가격매겨놓고 팔았다고 하는뎅

얼마전 어디 카페에서 카메라 조명 설치 해놓고 책 마구 쌓아놓고 부쩍거렸거든요
00사인회라도 하나~부다 생각했는데
인터뷰용 촬영이였어요.
요즘 가장 가장 핫!!하다는 00랑 작가

엄청달라졌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론 촬영 때문에 전문가 손길이 터치 되었겠지만
처음부터 야망 갖고(글쓰는 것) 쓰는 분들은 없는것 같아요
이길만이 쓰는것 만이 살아가는 이유,,,

유명한 작가들 제임스 설터, 폴오스터 등등 다른길을 가다가 결국엔 책상 앞 종이한장 연필 한자루를 쥐는것이 자신에 운명이라고 했으니,,,

하나 2020-12-04 22:29   좋아요 2 | URL
아 글쓰기의 새로이가 되라는 말씀이셨구나 ㅋㅋㅋㅋㅋㅋㅋ 하긴 갑자기 저한테 장사의 신이 되라고 하시지는 않겠죠? 응원 감사합니다. 이슬아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인 거 같아요. 없는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잖아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스물아홉 살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었어요.

저도 설터처럼 빵 굽다가 폴오스터처럼 마지막 남은 양파 파이 태워먹고 배고파서 울다가 쓰는 건가요? 헤헤 꾸준히 읽고 써볼게요. ^^ 저도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좋아합니다 ㅋㅋㅋ

2020-12-0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4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08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추카!
이달의 당선 페이퍼 ~*
ღ‘ᴗ‘ღ

하나 2021-01-08 20:04   좋아요 1 | URL
앗, 잠시 구경하고 와보니 scott님 2관왕!! 축하드려요. 연말에 좋은 소식 많이 올려주시더니, 알라딘이 영 바보는 아닌가봄. 알라딘이 12월에도 용돈 준 이 영광을 제 글을 예쁘게 봐주시고, 좋은 응원 잔뜩 해주신 이웃분들께 돌립니당~ ^^

서니데이 2021-01-08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축하드립니다.
좋은주말 보내세요.^^

하나 2021-01-08 23: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오늘 진짜 엄청 무지 춥네요. 주무시는 바닥 따숩게 해서 이불 폭 덮고 주무세요 ^^ 아, 이렇게 응원의 말씀을 전해주시니 저도 이제 새해의 리뷰를 다시 시작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