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1) 교회, 절, 도서관, 숲 등의 신성한 공간으로 가서 침묵과 고독을 음미하고 그것에 귀 기울여보자. 


  새벽기도를 일년 동안 다닌 적이 있어요. 모두가 의아해 했던 일이고요. 제가 일곱 살일 때는 부활절 미사에서 신부님이 예수님이 부활하는 장면을 강독하고 계셨는데 "아빤 저걸 믿어?" 맨 앞자리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물어봐서 당황한 아빠가 제 입을 막고 성당을 뛰쳐나온 적이 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부터는 저희 집에서 누구도 저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저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당에서 안정감 같은 걸 느끼는 인간이었던 거죠. 그래서 힘들 때마다 성당에 가곤 했는데, (예수님 미안) 어느 날 우연히 잠도 안 오고 해서 밤을 꼴딱 새고 성당에 갔더니 너무 경건해서 미친 것 같은 신부님이 미사를 올리고 있었던 거죠. 스물네 살 때였고, 춘천이었고, 대학원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였고, 우주야 너는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까지 못 되게 구니, 싶을 때였고요. 제가 아무리 가라신자여도 모태신앙이니까 그때까지 미사를 오조오억 번은 봤을 거 아니에요? 근데 무슨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으.라." 이렇게 한 구절 한 구절 정성스럽게 기도문을 읊는 갓 부임한 젊은 신부를 제가 보고 만 거죠. 


  성체를 들어올렸다 내리는 손짓 하나하나에도 어찌나 정성이 가득하던지, 미사 마지막 즈음에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라는 구절을 말할 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매번 똑같은 미사를 봐왔기 때문에 여느 신부님들과 똑같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거죠. 솔직히 다 아는 내용이니까 신부님들도 되게 빨리 대충 스윽 말해버리거든요. 물론 신자들도 다 이해하고요. 얼른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하고 집에 갔으면 싶은 거죠. 근데 그 순간을 제일 좋아해요. 평화를 빕니다. 이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 순간에는 마음이 잠깐 되게 선해지는 거 같아서요. 그 맛에 가끔 성당 가요. 


  진짜 기도를 하는 신부가 나타났기 때문에 저는 매일 새벽 기도를 갔고요. 제가 맨날 자랑해가지고 제 친구들도 다 한 번씩 구경하러 왔었고요. 그때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힘들어하던 제 친구 문슝은 신자 수업까지 받았었어요. (파다파다 신부님을 파) 왜인지 밤을 새서 과제를 하고, 새벽 미사를 간 다음에 피씨방에 들러서 문슝이 좋아하던 (내 장르 같이 파줬으니까) 크레이지 아케이드 게임을 열 판쯤 하고 라면을 먹고 헤어지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문슝 유명해져서 이런 거 회고하지 마라. 크레이지 아케이드 게임 약간 그때도 좀 창피했어. ㅋㅋㅋㅋ 물론 재미는 있었어. 


  고백 성사를 할 때마다 물어봤어요.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믿을 수가 없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까지 믿는 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신부님 미안) 그런 고백 성사를 한 다섯 번쯤 했을 때 신부님이 강론 시간에 자기의 "나는 나뻐~" 스토리를 풀어주더라고요. 자기도 모태신앙이고, 열 살 때부터 신부님이 되고 싶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신학교에 간 순간...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도 다 똑같은 놈들이었던 거죠. 


  누구보다도 사랑에 대해 말하고 행동해야 할 사람들인데, 선배들이 맨날 패고 기합주고 그랬대요... (그 신부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본 지면과는 상관이 없읍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실망해서 나는 이런 신부는 될 수 없다, 막 이러면서 짐을 다 싸가지고 학교 밖을 나왔는데, 너무 억울하더래요. 여태까지 내가 꿈꾸던 거는 다 뭐였나 싶고. 그래서 커다란 짐가방을 툭 떨어뜨린 채로 신학교 교정 안뜰에서 주저 앉아가지고 엉엉 울었는데, 주님, 저를 왜 버리시냐고 막 울었는데, 그 순간 누가 뒤에서 확 안아주는 느낌이 났대요. 


  어떤 커다란 힘이 자기를 안아주는 느낌이 났고, 그게 자기 신앙이 응답 받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대요. 그래서 다시 계단을 올라와서 다시 짐 풀고 ㅋㅋㅋㅋㅋ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모든 과정을 견디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자기는 미사 올릴 때, 한 구절 한 구절 온전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했어요. 그 느낌을 여러분도 알게 하고 싶어서. 자기는 어떤 통로 같은게 되고 싶다고요. 


  물론 신부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끝내 하느님의 응답은 받지 못했지만, 그렇게 진지한 자세로 신앙을 대하는 신부가 어딘가에 있다는 게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그 진짜 기도를 들으러 일 년 정도 할머니들이랑 새벽기도를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그 신부님께서 아직 지치지 않으셨기를, 멀리서 기도해보는 밤입니다.



과제 2) 음반 하나를 그냥 재미삼아 끝까지 듣는 여유를 갖는다. 음악을 들으며 솟아나는 감정이나 생각을 내키는 대로 쓰고 그린다. 그 시간이 당신을 얼마나 재충전시키는지 주목해보자.


  아, 이번 주는 우주가 저한테 잘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 한 주였어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말해버리면 지금의 좋은 마음이 다 날아가버릴 거 같아서, 망설이다가 글을 쓰고 있어요. 이거는 진짜 우주가 저한테 잘해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경험인데요. 


  저는 올 여름에 되게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말을 1주차 페이퍼에 쓴 적이 있는데요. 작업할 때 들으면 에너지가 쭉 올라온다는 동생의 말에 틀어본 쏜애플의 시퍼런 봄 영상을 잠도 제대로 안 자고 애기들이 뽀로로 영상 보는 것처럼 홀려서 이주 동안 봤고, 그러고 나서는 이틀 동안 밤을 새서 어떤 소설의 초고를 쭉 썼다고요. (어제부터 평전을 읽고 있는데, 데이비드 보위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트라우마적인 에피파니"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제가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이니까 그런 건 예술가들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정말 그렇게도 되는구나 싶었어요.


  제 동생이 시퍼런 봄 처돌이어서 제 옆에서 늘 그 노래를 들었고, 우리 집 인간들은 한 번 꽂히면 그 노래만 100번씩 듣거든요. 근데 그 때는 제가 '안전모드' 상태라서 락은 못 들었어요. 김창기 아저씨 노래 같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노래만 들었는데요.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와서 제 닫혀 있던 마음을 열어줬던 띵곡 "나와 함께 걷지 않으련"에도 정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늘 옆에 있었으나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노래가 제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저를 찾아와줬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원하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장면에 정말 어울리는 노래를 발견하고, 생각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색깔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맞아떨어지는 책을, 강좌를 발견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주가 당신이 하는 일을 돕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211쪽


  그런데, 그 밴드의 어쿠스틱 콘서트 티켓을 정말 기적처럼 구했고요. 저는 드디어 저의 뽀로로를 보고 왔습니다. ㅋㅋㅋ 근데 근데 아.. 저는 거기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정성스러운 손짓과 발성을 보게 됩니다. 보컬이 동작 하나하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되게 진심이니까 보는 사람도 숨도 못 쉬고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눈을 꼭 감고 노래하는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았는데요. 


  그러니까 이상하게 당신과 나라는 경계가 사라지고, 노래가 훨씬 더 잘 들리는 거 같았어요. 그 순간에는 그가 노래를 부르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가 되는 느낌이었고요. 관객들도 그와 노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숨죽여서 배려하는게 느껴졌어요. 저는 지금 클래식 공연 아니고, 이소라 콘서트 아니고, 락밴드 공연 다녀온 후기를 쓰는 중이고요.


  저는 완전한 내가 된다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는데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가 내 자신이 되었구나', 싶었을 때는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통해 저 자신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저는 가끔 책을 읽다가 그 이야기에 푹 빠지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도 모를 때가 있거든요. 저는 그날 제가 아닌 누군가가 온전히 자신을 잊음으로써 온전한 자신이 되는 걸 지켜보고 왔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 갔는지도 모르는 채로요. 어떤 순간에는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노래들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공간 전체를 감싸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우리의 표현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표현을 밖으로 드러내는 통로일 뿐이다." 209쪽


  그러니까, 쏜애플의 "넓은 밤", 딱 오십 명만 들어갈 수 있던 그 좁고도 넓은 우주에 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요. 물론 저는 음악도 잘 모르고, 한 밴드의 음악을 평가할 만한 역량은 당연히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굳이 말을 꺼내보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이제 누군가의 작업이 좋으면 좋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열렬하게 말하기로 했는데요. 그 이유는, 제가 얼마 전에 아주 늦게 도착한 편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는 유리병 편지니까, 수신인 중의 하나가 저라고 믿고 제 맘 대로 덥썩 받았고요. 근데 참, 그 편지가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미친듯이 책을 읽을 때, 그때 도착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욕심을 잠깐 부려봤어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그때 누구보다 열렬했지만, 그런데도 순간순간 되게 무서웠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내가 그냥 좋은 시절을 흘려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저도 저를 못 믿겠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때 그 편지가 도착했더라면 조금 더 노력해봤을지도 모르는데, 좀 더 무리해서 읽어 봐야겠다,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다 지난 얘기지만요. <후르츠 바스켓>이라는 만화에서 그러거든요. 사람의 좋은 점은 주먹밥 뒷면에 붙어 있는 매실 장아찌 같은 거라서, 자기 눈에는 안 보인다고요. 그러니까 자꾸 말해보려고요. 당신 지금 되게 멋지다고. 좋은 자극을 줘서 정말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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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8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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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14: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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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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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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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14: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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