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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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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수록, 그 빛이 더 환하게 밝을수록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소설. 과학은 끝없이 변하며 발전의 한계를 모르는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아서 인류는 점점 더 위력적이고 양날의 검인 지식들을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모순, 역설, 간극 속에서도 희망은 여전히 유효한가 생각해볼 지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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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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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에 순위 매기는 걸 가장 곤란해 하는 내가 올해의 원픽, 원탑으로 주저없이 손에 꼽은 책. 독서가 내게 줄 수 있는 것들 이상을 받아서 가슴 벅찼다. 여생동안 두고두고 머릿속에 떠오를, 표류 중인 내 인생에 부표를 선사한 책. [침묵] 과 [깊은 강]을 연달아 읽어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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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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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르고 읽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어... 어? 어!!!라는 감탄사의 삼단 변화를 오롯이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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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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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읽으려는 이들에게 먼저 솔직히 밝혀둬야 할 점이 있다. 내가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09년에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으면서였다. 거기서 인용된 대단한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앨리스 먼로의 단편 <덜스>의 첫 단락을 만났을때 나는 고작 몇 줄 만에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그 후로 앨리스 먼로를 좇는 열성 팬이 되었고, 가장 최근에 번역된 [거지 소녀]의 출간에 또 한 번 환호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 리뷰는 전적으로 편애와 편견이 가득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인생을 한편의 소설 같다, 라고 말할 때 여기서 소설이란 매끄럽게 이어지는 장편보다는 단편들의 연작이 더 어울린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인생을 돌이켜볼 때 기억이란 불완전하고 불연속적이며 분절되기 때문이다. 제임스 설터도 말하지 않았던가.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 있을 뿐이라고. 앨리스 먼로는 섬세한 필치로 그 조각들을 열편의 단편 소설로 복원하여 로즈라는 여성의 삶을 연작의 형태로 그려낸다. 내가 기대하던 형식의 소설로, 감탄에 마지않게.  

 

 

작가는 책의 제목이자 단편 소설 중 하나인 '거지 소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어린 시절부터 중년의 여인이 되기까지 로즈가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겪었던 경험과 자의든 타의든 선택과 결단이 필요했던 삶의 중요한 시기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어떤 플롯도 없고 기대와 호기심도 유발하지 않는다. 때때로 읽기 불편한 내용도 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재미라는 요소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앨리스 먼로의 글은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나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재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소설을 읽고 난 감상을 즉각적으로 재미있다라는 가장 흔하고 단순한 말로 뭉뚱그려 표현한다. 재미의 층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소설들은 대체로 사건과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는 다른 종류의 소설도 우리는 재미있다라는 말로 평가할 때가 있다. 특정할 만한 사건도 없고 인상적인 장면도 없이 시종일관 밋밋한 소설인데도 그렇다. 이유는 소설에 보이지 않는 요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으로 만져질 뿐이다. 우리는 눈먼 사람처럼 점자를 읽듯 마음으로 문장을 찬찬히 더듬어 가야만 그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런 문장들은 형상이 없는 마음의 결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자신에게 그런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해준다. 삶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감동하고 전율하고 각성하게 만들면서. 이 책이,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내겐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염두에 둔 단어는 단편의 제목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거지 소녀이다. 패트릭과 로즈의 대화에서도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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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이 말했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누구?”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알잖아. 그림 말이야. 그 그림 몰라?”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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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는 아프리카의 민요에서 전래하고 시인 테니슨에 의해 시로 쓰였으며, 화가 번 존스의 회화로 유명하다거리를 지나가던 코페투아왕이 가련하고 헐벗은 거지 소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순간을 표현한 그림이다. 신분의 격차를 초월한 사랑을 그린 낭만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내게는 이 그림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문장을 빌어 이 그림을 다시 보면 그러하다. 존 버거는 그림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역시 이상적인 관객이 남성으로 가정되어 있어서 거지 소녀는 남성의 이상적인 여성향으로 묘파 되어 있다. 이는 패트릭과 로즈의 권력 관계로 상징되고, 가부장제 아래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확장된다. 이 그림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거지 소녀가 들고 있는 아네모네 꽃이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속절없는 사랑, 비극적인 사랑이다. 번 존스가 아네모네 꽃말을 염두에 두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앨리스 먼로는 충분히 그것을 인지하고 소설을 썼다. 패트릭과 로즈의 사랑은 낭만적이지 않으며 아네모네의 꽃말과 같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로즈가 그렇게 깨닫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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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세상을 지워버린다고, 사랑이 잘되어갈 때만이 아니라 망가지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놀라울 것도 없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중략)  둘 중 어떤 경우라도 결국엔 뭔가를, 자신만의 균형추이건 진실성의 작고 메마른 알맹이이건, 빼앗기게 된다.(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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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로즈의 삶은 아네모네의 꽃말처럼 불행하기만 하고, 이 소설은 비극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 로즈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담담한 문체가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힘이 있으므로. 그 힘이 불행 이외의 것들을 로즈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주므로.

 

 

[거지 소녀]의 많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소설만큼 긴 리뷰를 써야 할 것 같다. 그중에 고르고 골라서 나는 이야기 중에 로즈가 소중한 십 달러를 몸속에 꽁꽁 간직한 채, 처음으로 토론토에 혼자 기차를 타고 가는 날에 대해서 짧게 적어본다. 로즈는 기차의 옆좌석에 앉은 선량하게 생긴 목사에게 교묘하게 성추행을 당한다. 플로의 경고와 주의에도 불구하고 로즈는 변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친절하고 선한 사람과 친절을 가장한 악한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다. 겪어보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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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목사였을까, 아니면 말로만 그런 것일까? 플로는 목사가 아니면서 목사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었다.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닌 것처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혹은 더욱 이상하긴 하지만, 목사가 아닌데 목사인 척하면서 목사가 아닌 것처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쨌든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태에 그토록 가까이 갔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않았다로즈는 유니언 역을 통과해 걸어가며 십 달러가 든 조그만 주머니가 피부에 닿는 것을 느꼈고, 계속 피부에 스치며 교훈을 상기시키는 그 주머니를 하루종일 느끼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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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소중한 십 달러가 든 주머니를 깊숙이 간직한 채,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타고 가는 경험과 다름없다. 나는 로즈의 십 달러가 든 주머니가 피부에 닿는 것을 느끼듯 이 책이 마음 깊숙이 닿는 것을 느꼈고, 계속 마음에 스치며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상기시키는 이 책을 생의 순간마다 느끼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로즈의 삶을 읽는다는 것은 내 삶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사건'이고 '과정의 시작'이라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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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0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벨문학상 받고 알게 되었는데요^^

원더북 2021-08-05 12:34   좋아요 1 | URL
노벨상 수상 덕분에 절판된 책도 복간되고 새 번역도 많이 나와서 다행이었어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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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수상 기록과 화려한 타이틀을 내걸고 나오는 소설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때문에 읽어보기도 전에 독자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소감은…….


그전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흑인 노예제에 대한 미비한 배경지식부터 반성해야겠다. 미국사 책을 완독한 경험없이 조금씩 주워섬기기만 하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게다가 흑인 노예제에 관련해서 읽은 문학책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 밖에 없다. [노예 12년]은 영화로 나왔기에 보았고. 오래도록 집에 모셔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손도 대지 않은채 책장에서 박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뭐랄까, 흑인 노예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마음이 힘들어서 유난히도 손이 안 간다. 특별한 동기가 없다면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도 삐까번쩍한 후광이 없었다면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불허전이다. 일단 배경지식 다 필요없고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이 소설의 가장 바람직한 미덕은, 차마 눈뜨고, 아니 눈감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흑인 노예들과 그들을 돕는 자들의 비극적인 참상으로 인해 읽기 힘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꽉 짜여진 플롯을 좇아가느라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문학상 수상작 중에 이만큼 잘 읽히는 소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나다를까 영화 제작한단다. 이런 이야기라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지 싶다.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문체나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현학적이거나 묵직하거나 장엄하지 않고도, 이 소설은 충분히 커다란 울림과 여운을 준다. 내러티브의 명료함과 문장의 영리함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내가 노예제에, 미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책들을 당장 찾아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도 나에게서 올리지 못한 개가이다.


영화 [노예 12년]에서도 상영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노예 탈출 비밀 조직 ‘지하철도(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노예 해방 조직의 이동경로와 조직원들을 지하철도에 은유하고 구성한 명칭을 작가는 실제 지하철도로 상상해서 이야기를 자아냈다. 다른 사람들은 지하철도 픽션을 호평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글쎄, 노예제라는 지극히 사실적인 배경 안에서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핍진성이 떨어진다고 생각이 들긴 했다. 굳이 지하철도를 통한 탈출이 아니었다해도 이 책의 평가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필요한 이유와 의미는 뭘까. 책 속 문장에서 그 이유와 의미를 찾아본다. “때로는 쓸모 있는 착각이 쓸모 없는 진실보다 낫습니다.(p319)”라고 랜더가 연설한 말에서. 그 당시에 비밀 지하철도가 땅속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분명 영화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이고, 독자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 마음에도 이미 비밀스러운 역 하나가 생겼고 그 역에는 흑인 노예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하는 내가 역장으로 서 있다.

진실은 당신이 보지 않을 때 누군가에 의해 뒤바뀌는 상점 쇼윈도의 진열과 같았다. 그럴싸하고 결코 손에 닿지 않는. (p136)

"백인이 목화를 따는 건 본 적이 없는데요." 코라가 말했다.
"나도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군중이 사람의 사지를 찢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틴이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같은 것에는 입을 다물게 돼." (p186)

"주인님이 총을 든 검둥이보다 더 위험한 게 딱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지." 그가 말했다. "책을 든 검둥이. 그러다가 분명 커다란 검은 화약고가 된다고 했어!"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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