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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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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 전공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을 6년 전에 호기있게 펼쳤다가 다방면으로 부족한 배경지식 때문에 다시 봉인해둔 기억이 난다. 언제고 다시 읽으리라 절치부심은 했지만 내 깜냥의 가능성만 타진하면서 계속 미루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테리 이글턴의 신간 소식을 접했고 이 책이 초보자도 문학 작품의 분석 기술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수준의 입문서로, 혹은 이미 문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여가 시간에 문학을 즐겨 있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술한 책이라는 소개를 읽었다. 나의 목적에 딱 맞는, 내가 원하던 그런 내용이었다. 이제 [문학이론입문]에 다시 도전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일단 준비운동으로 이 책부터 읽고!


이 책은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라는 키워드로 구성되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진다. 각 챕터의 첫 부분에서 키워드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한 후, 해당 키워드에서 뽑은 몇 가지의 소주제를 가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문학 작품의 분석을 시도한다. 여기서 다루는 문학 작품은 대부분 많이 알려지고 우리가 읽어보거나 들어봄직한 책들이라 접근하기 용이했다. 물론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안 된 책들도 몇 권 있었으나 작품 전체를 읽어보지 않아도 작품 소개와 발췌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자는 진지한 어조로 문학 전반에 걸쳐서 강의하듯 독자를 가르치지만, 센스있는 비유와 시의적절한 농담을 섞어서 자칫 딱딱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설명들을 부드럽고 유쾌하게, 심지어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준다. 문학 비평의 기본적인 방법 뿐만 아니라 문학 비평가가 되는 법을 배우는 자세부터 왜 문학 비평이 필요한지, 문학의 가치는 어디에 있으며, 위대하고 훌륭한 문학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언급한다. 여기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답이 없다는 것은 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모더니즘과 사실주의 같은 문학 사조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이는 작품이라는 나무만 보아왔던 독자에게 나무가 속한 숲에 대해 더 크고 넓은 시야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까지....


점차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자신이 아무리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상상하더라도 실은 스스로를 창조하지는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거의 통제할 수 없고 또한 거의 알지 못하는 역사가 우리를 어떤 특정한 위치에 처하게 합니다. 이 유산은 우리의 사회적 상황뿐 아니라 우리의 살과 피, 뼈와 기관에도 섞여 들어가지요. 우리의 생존 및 자유와 자율성 그 자체도 같은 종족의 다른 개인들과 사건들에 달려 있고, 그것은 완전히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뒤엉켜 있습니다. 모종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끼어들 수 있을지 알기 어렵습니다. 자아의 근원에는 우리가 아닌 것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난제와 더불어 사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p289)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이러한 난제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더 나아가 문학 비평까지 관심을 기울인다면 비평의 기법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문학 비평이 그렇듯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 책은 문학을, 나와 타인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다양하게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런저런 비평의 방법과 이론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었던 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과 해석의 발견만으로도 충분한 기쁨과 만족을 준다. 테리 이글턴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서서 문학을 읽어보시라. 더 멀리 있는 행간의 의미까지 내다 보게 될 뿐만 아니라 문학 비평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도 비평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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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30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신비평’에 관한 내용이 책 속에 나옵니까? 최근에 신비평을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관련 책을 찾고 있는 중이거든요. ^^

원더북 2016-03-30 14:30   좋아요 2 | URL
부분적으로 신비평을 통해 다루는 텍스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신비평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신비평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이론의 모든 것`에서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cyrus 2016-03-30 15:03   좋아요 2 | URL
추천도서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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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력과 기술 등의 조건 불일치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서 실업률은 더욱 올라갔고, 이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도 2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은 역대 최대 인원인 22만2650명이 지원해 5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 나라에서 공무원이 아니고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반증이며 공무원을 하지 않고는 먹고 살기 어려운 정책을 펼치는 정부라는 뜻이다. 


이 책은 심각한 실업 사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무업’의 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직을 하면서 입사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거나 구직에 성공해도 ‘열정페이’라는 명분으로 착취만 당하고, 간신히 정규직이 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리 해고되는 경험을 거듭하다보면 자신감을 상실하고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지면서 무업의 단계에 빠지게 된다. 일본 사회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를바 없다. 있다면 일본보다 더 열악한 최저임금제와 더 부실한 사회안전망이라는 더 나쁜 조건? 


저자는 우선 ‘청년 무업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서부터 글을 시작한다. 

‘무업자’라는 단어는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것만 같은 불순한 사회구성원을 떠올리게 한다. 일이 없어서 안 하는게 아니라 편한 일, 좋은 일만 찾아하려고 이것저것 가리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게(특히 나이드신 어른들) 일반적이다. 여기에 ‘청년’이라는 단어까지 결합해서 ‘청년 무업자’라는 어휘가 형성되면 오해는 몇배로 증폭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청년 무업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왜 생기는지 알고 싶게 하거나 사회 문제로 분석하게 만들기 보다는 오직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 개인을 탓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청년 무업자 백서]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일본 사회가 청년 무업자 문제에 대해 감정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모두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사회적 과제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청년 무업자 백서]에서 조사한 통계는 일하지 못하는 청년들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근거로써 이 책의 1부 3장에서 인용된다. 그러나 통계 수치와 분석만으로 청년 무업자들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어쩌다가 잘못된 선택’을 했거나, ‘좌절’과 ‘실패’가 인생의 분기점이 되어 무업 상태로 전락해 버린 ‘일을 할 수 없는 청년들’의 이력서들이 1부 2장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나온다. 통계 수치가 아닌 개인의 사례라는 점에서 청년 무업자들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4장의 ‘무업 사회’의 등장 배경과 5장의 ‘무업 사회’와 미래에 관한 내용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 아쉬웠다. 한국을 배경으로 이런 공론을 일으켜서 실태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이슈화 해줄 수 있는 저자가 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6장의 청년 무업자를 지원하는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과 7장의 NPO의 역할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무업 사회에 대한 1부의 내용이며 2부는 무업을 벗어난 청년들이 다시 일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2부의 내용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유용할 수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 들어간 내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부의 내용이 더 보강되거나 외부 전문가들을 섭외해서라도 무업 사회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이끌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책의 부제가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이긴 하지만, 청년부터 쭉 무업으로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버린 중년까지 감안한다면, 또 그 중년이 노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악순환의 고리까지도 예측한다면 청년 무업자의 문제는 청년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무업 사회’의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누구나 무업자가 될 수 있는 사회임을 인식하고 청년 무업 실태가 세대에 대한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문제로써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는데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현재의 정책이나 안전망이 만들어진 기원이 전후 또는 고도경제성장기, 즉 청년 세대가 풍요로웠던 시대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에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현재 발생되고 있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과거에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적합하지 않다. (p34)

청년 무업자가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일본의 기업 사회와 인사 전략 또는 사회보장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육도 그 안에 포함될 것이다. 이처럼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에 주목해 봄으로써, 각 분야의 기능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 무업자를 양산하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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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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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빅뉴스로 ‘중력파 발견’이라는 과학계의 소식을 접했다. 2014년에 개봉했던 ‘인터스텔라' 이후로 우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서 ‘중력파’의 개념을 처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의 고문을 담당했고 이번 발견으로 노벨상 1순위로 주목받고 있는 킵 손 교수는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인터스텔라 덕분에 고무된 과학적 호기심으로 킵 손 교수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의욕적으로 읽었으나 어려워서 중도 포기했다. 뼛속까지 문과 출신에다가 미술 쪽에 발을 살짝 담갔다 꺼낸 내가 과학을, 그것도 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할 때는 대단한 각오와 인내가 필요하다. [인터스텔라의 과학]은 나의 각오와 인내를 가혹하게 시험하는 책이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도 그런 부류의 책이라고 짐작했지만, 전작 [숨겨진 우주]에 대해 가졌던 호감의 기억 덕분에 선뜻 독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작년 겨울에 앞서 읽었던 [인터스텔라의 과학]이 너무 딱딱하고 건조했기에 그 다음으로 읽었던 [숨겨진 우주]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어조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분위기의 책이라 읽기가 더 나았다. 방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적재적소의 명료한 그림 자료와 함께 이해를 돕는 저자의 구성 솜씨와 문장력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쉬운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생소한 개념들은 어쩔 수 없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겨진 우주]를 [인터스텔라의 과학]과는 달리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준 능력이 더 극대화된 듯하다. 일단 다루는 내용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책의 컨셉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영화로 따지자면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작인 [숨겨진 우주]의 오리지날 스토리이며 전작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숨겨진 우주]를 먼저 읽고 나중에 나온 이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고 [숨겨진 우주]를 읽으면 한층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그중에서도 입자 물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다져주고 과학과 과학적 사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심지어 나 같은 과학 초짜의 이해도 도와준다. 리사 랜들의 글쓰기가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리사 랜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과학도가 되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라고 (문과 출신에 예술가적 기질이 미세하고 불량하게 있는) 내 뼛속을 갈아엎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이다.


책을 펼치면 목차가 나오기 전에 바로 ‘책을 시작하며’라는 글이 나온다. 책 전반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이 글만 잘 읽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종종 이 글로 돌아와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상기하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갔다. 나 같이 기억력 나쁜 독자가 있을까봐 저자는 본문에서도 내용을 요약해서 마무리해주거나 다음에 나올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기도 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길잡이를 해준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서 반복 등장하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 개념은 ‘스케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스케일의 개념이 주로 미술에서 쓰는 용도의 개념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나는 과학적 스케일과 더 나아가 삶의 전반에 대한 통찰적인 스케일까지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물리학자에게 있어서 특정한 연구에 관련된 크기나 에너지 영역을 가리키는 스케일이라는 개념은 우리 세계의 여러 측면뿐만 아니라, 과학적 진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잘 작동되던 물리 법칙들이라고 하더라도 우주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크기로 나누는 순간 잘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스케일에서 잘 적용되던 개념이 다른 스케일로 넘어가자마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개념을 쓸모 있게 만드려면 새로운 스케일에서 더 유용한 개념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 크기나 길이에 따라 세계를 기술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스케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를 스케일에 따라 구별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일관된 관점에 따라 합쳐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 수 있다. (p28)

책의 전반에 걸쳐 LHC도 비중있게 다룬다. LHC란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의 약자로 대형 강입자 충돌기라고도 한다. 2008년 9월 10일에 역사적인 첫 시험 가동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주 엉뚱한 감정으로…. LHC의 가동으로 작은 크기의 인공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며, 이 블랙홀이 주변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연구소 전체와 유럽 대륙, 심지어 지구까지 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부 과학자들이 제시해서 언론이 떠들석했었고 그때문에 나도 당시에 쫄았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해명을 해주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이 책의 2부과 3부에 걸쳐서 LHC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중요한 실험과 작동 원리 및 실제 가동에 대해 깊이 살펴 보고, LHC에서 발견된 것들을 과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알려준다. 길이가 무려 26.6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LHC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라는 사실이 묘하게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수많은 분야를 차용해서 입자 물리학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과학 이론만 다루는 책보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나 같이 과학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독자에게는 장점이겠지만 반대로 과학적인 배경지식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양쪽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책이 과학적 지식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통해 삶과 문학과 예술과 사회에 대한 통찰까지 가능할 수 있었던 나의 독서 경험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이제 리사 랜들의 글쓰기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암흑 물질과 공룡들]이여, 어서 번역되길~



덧붙이는 기타 등등


/ 이 책은 번역보다는 교정이 상당히 아쉽다. 탈락된 글자나 오타로 여겨지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과학을 다루기 때문에 더더욱 정확성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책이다. 적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독자들과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를 아끼는 독자들을 위해서 출판사는 더욱 분발해주시길 바란다.  


/ 본문에 나오는 그림12의 작은 스케일로의 여행(p122)과 그림70의 커다란 스케일로의 여행(p486)을 연결하면 멋진 스케일 인포그래픽이 만들어진다. 이 그림들을 커다랗게 만들어서 벽면 하나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붙여두면 멋지리라.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제목이다. 과학 서적에 붙일 만한 제목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에. 왜 이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하면 103페이지부터 찾아보면 된다.


/ 작년 겨울에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구입하느라 정작 [숨겨진 우주]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이번에 [숨겨진 우주]도 구입했다. 다시 읽어보면 [숨겨진 우주]에 숨겨진 의미를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건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라 여기 적을 필요도 없는 글이지만 입이 근질근질…;;;;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 페이지에서 발견했는데 리사 랜들의 생일이 나와 같다! 게다가 띠동갑이다!! 입자 물리학 스케일의 인연이라도 이어져 있다고 믿고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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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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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사람은 ‘집필하는 동안 직면하는 기댈 곳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저기 쓴 글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책을 쓰려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는 내용을 아는 방식으로 쓴다면, 그것은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괄적인 계획은 있다. 오랫동안 작성해온 노트도 있다. 자료도 충분히 모아왔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연성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모르는 내용, 알 리가 없는 내용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해하는 일이다. 깊이 자실하는 일이다. 얕게 고동치며 하루하루를 혼탁하게 만드는 건망과 편집광적인 기억에 괴로워하는 일이다. 자신의 몸도 혼도 아니나 그 경계에 있는, 이 구분을 허용하는 그 어디인가에 조금씩 번지는 잉크로 문신을 새기고, 그 문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에게 또 경악하는 일이다. 아련하게 광기와 열기를 머금은 볼, 그리고 망설임에 차가워지고 시들어가는 손가락 끝 사이로 엉켜 있는 신음 소리를 울리게 하는 일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 신음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따라서 처음부터 책 전체의 구성을, 그 논지를, 그 논리를 명징한 도식으로 뇌리에 떠올릴 수 있다면 책을 쓸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안다면 왜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것을 안다면 음습한 환상 속에 계속 취해 있을 것이라면. 이는 지식의 복사에 불과하다. 오만한,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지식의 ‘교수’다. 그러나 이런 것이 과연 쓴다는 행위일까? (p15)


저자가 가장 마지막에 썼다는 이 두꺼운 책의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려운 책인줄 짐작하면서도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두근두근했다. 이런 멋진 서문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 다음에 펼쳐질 내용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를 잘 모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제1부의 제 1장을 읽었을 때 내 기분이란.... 준비운동도 안 하고 겁도 없이 선수용 풀에서 수영하겠다고 풍덩 뛰어들었다가 물의 깊이에 놀라서 뛰쳐나온 초보 수영 강습생의 기분이었다. 나는 준비운동 삼아 라캉과 푸코가 나오는 (르장드르의 저서는 번역서가 없으니까) 쉬운 구조주의 입문서를 찾아서 먼저 읽었다;;;


옮긴이의 말에 “이 책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아니다. 사사키 아타루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을 논하는 도정에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므로 독자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라고 한 말은 무참하게도 내게 해당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이 책은 누가 뭐래도 박사가 될만큼 공부한 사람의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 이 말인즉슨, 박사가 될만큼 공부한 사람만 읽어야 하는 수준의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이 일본에서는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것도 사상가나 비평가, 전공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뭔가를 창조하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작가, 음악가, 미술가, 디자이너, 활동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나의 독서수준이 의심스러워져서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푸코의 『말과 사물』이 출간 당시 모닝빵(!)처럼 팔려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큼 기죽었다. 근데 이 책은 『말과 사물』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이 책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는 1차원적인 독서만 했고, 텍스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2차원적인 독서는 거의 불가능했으며 나의 관점을 투사해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의 의견을 더하는 3차원적인 독서는 엄두도 못냈음을 책 위에 손을 얹고 고해한다. (사실 면벽수행에 가까웠다. 진정 텍스트가 벽처럼 느껴졌다;;;)


구조주의자들이 쓰는 문장들이 원래부터 읽기 쉽지 않다고는 누누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사사키 아타루의 독특한 문체가 주는 쉬운 듯 어려운 듯 묘한 방식의 설득력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을 때처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될 줄 알았는데, 이 책에서는 독특한 문체 때문에 구조주의자들의 문장을 이해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거기다 분량 때문에 호흡도 너무 길고!  웬만큼 어려운 책도 진득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거나 다 읽고 난 후에 이해 못한 부분을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깨치는 그런 독서 경험을 해왔는데 이 책은 진정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어려웠다. 그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에 깊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도, 아니 이건 어디 가서 다 읽었다고 하긴 무안하니 훑었다고 말해야겠다. 어쨌든 그러고도 라캉과 푸코와 르장드르가 공명하는 시공, 그들의 논리가 한순간에 소생하는 시공을 내 머리로는 포착하지 못했다. 좀더 공부하고 내공을 쌓은 후에야 제대로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어쩌면 가슴으로 포착했거나 어설픈 감상에 불과한 내 깨달음이라도 한 줄 남겨보려고 한다. 저자가 밝힌 바대로 라캉과 르장드르, 푸코에 대한 “통일된 시점”이나 “이 셋을 논할 필연성”은 없어 보였기에 나는 이들이 속한 구조주의의 대의와 대략이나마 이해한 기본적인 논지를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혹은 상보적으로 병치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리하여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전에 푸코가 말년(죽기 1년 전)에 했던 말을 인용해보려한다.


철학자의 일, 그것은 오늘이란 무엇인가 논하는 것이고, “오늘날의 우리”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유래 없는 파멸의, 밤의 함몰지대라거나,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 아침이라거나, 그런 단언을 하고 마는 드라마틱하고 연극적인 안이함에 몸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른 날들과 똑같은 하루이거나, 오히려 다른 날들과 완전히 똑같지 않은 하루인 것입니다. (p739)


그리고 저자의 결론, 혹은 결론을 대신한 문장도 인용해봐야겠다.


그렇다. 오늘은 다른 어떤 날과도 다를 바 없는 하루이고, 그 어떤 날들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하루,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닮은 데가 없는 이 하루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끝이 없다. 우리가 태어나 죽는 찰나의 영겁, 짧은 영원 속에서 몇 번이나 밤은 도래할 것이다.(생략) 가자. 우리는 가자. 우리는 글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유하자, <거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3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근거율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손에 쥐기 위해. 지키기 위해. 굶주림에 저항하고 추위에 저항하고 죽음에 저항해 살아남기 위해. 모든 죽음과 위험의 선동을 웃어넘기기 위해. 전진하기 위해. 옆으로 한 발 나가기 위해. 소격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직조하기 위해. 투쟁하기 위해. 독박하기 위해. 이기기 위해. 지기 위해. 승리하고 패배하는 기쁨을 위해. 이윽고 이로는 다했다. 붓을 놓을 때가. 그러나 끝은 없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p773)


나는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의 ‘관계’에서, ‘오늘’이라는 하루의 연속성이 가져다주는 짧은 영원 속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영원한 야전’이라는 개념에서 자신의 꼬리를 문 원형의 뱀인 ‘우로보로스’를 떠올렸다. 라캉과 푸코와 르장드르가 공명하는 시공, 그들의 논리가 한순간에 소생하는 시공 속에서 내가 본 것은 “거짓은 요새의 안쪽에 숨어 있고 순간적이지만, 진실은 바깥의 야전에 있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전의 허물을 벗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듯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고, 시작이 없는 끝, 끝이 없는 시작, 시작과 끝이 연대하는 ‘영원한 야전’은 바로 우로보로스의 형상을 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나 또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재독할 때는 더 발전한 나를 만나고 싶다.


- 별점은... 너무 어려웠으므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만큼의 글쓰기 수준으로 독자를 만나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때문에 별 세 개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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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지난 뉴스들이 있었다. 태국의 방콕에서 일어난 테러로 파손된 문화재 앞에서 웃는 얼굴로 셀카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 관광객,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광경을 언덕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구경하고 심지어 박수치며 환호하는 이스라엘 시민들, 뉴욕 지하철역에서 한인이 선로에 추락했는데 지하철이 진입하는 순간을 특종 사진이라고 찍은 기자…….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사람들의 이런 감정 상태를 무어라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막연했었는데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설명이 되었다.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사람들을 굳이 뉴스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흔하게는 인터넷에 쏟아지는 댓글들의 내용만 봐도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어지는 고민 속에서 만난 책이 바로 ‘도덕적 불감증’이다.  


그런데 처음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순간 도덕적인 고민이 아닌, 엉뚱한 고민에 빠졌다. 서평으로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한줄평에서 번역의 문제가 언급되어 책을 읽기 전부터 내심 불안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나도 번역의 문제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번역이 매끈하다해도 쉽게 읽을 내용이 아니다. 혹시 번역은 매끈한데 내 이해력이 딸려서 문장이 머릿속에서 해체되나 의심도 해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조차 맞지 않은 문장이 빈번하게 보였으니까. 그런 이유로 번역된 문장을 다시 재구성해서 이해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고 읽는 속도가 더욱 더뎌졌다. 솔직히 중간에 덮어버리고 읽은 내용만 가지고 다 읽은 척하며 적당히 리뷰를 써볼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새해에 읽는 첫 책에, 그것도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책을 읽는데 나부터 도덕적 불감증을 가지고 리뷰를 쓰면 안 되니까;; 도덕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읽길 진짜 잘했다. 번역 때문에 읽지 않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물론 더 나은 번역으로 개정판이 나와준다면 좋겠지만. 바우만의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어서인지 번역의 오류를 나름 극복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나서 느끼는 가슴의 묵직함이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이 책은 돈스키스와 바우만의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돈스키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이 책에서 비중이 상당했고(심지어 결론에 해당하는 책의 마무리도 바우만이 아니라 돈스키스가 한다) 질의 안에 포함된 내용이 질의 이상으로 의미 있었다. 인터뷰나 질의응답 방식의 글들이 대부분 내용의 체계가 떨어지고 단발적 구성이기 십상인데 이 책은 내용이 대화의 흐름을 타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다루는 내용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목차에 나온 주요 문장들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길을 잃지 않는 독서가 필요했다.


이 책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우리 시대의 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덕적 불감증은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서 초래되었고, 도덕적 불감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되지만 자주 언급되는 소설들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이다. 세 권의 소설을 읽었다면 내용의 이해가 더 쉬울 것이고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계기로 분명 읽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 바우만의 저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책을 더이상 안 읽고 버틸 수 없어 보인다. 올해는 꼭 읽어보기로 했다. 


도덕적 불감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메타포들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의 모습을 한 DIY다”라는 메타포가 이 책의 핵심이다. 이케아는 후반부에 나오는 어니스트 겔너의 ‘모듈형 인간’이라는 개념과 묶어서 이해하면 될 것 같고, 페이스북도 역시 후반부에 나오는 ‘절름박이 악마’와 ‘돈 후안’을 묶어서 이해하면 되지 싶다. (이게 나의 오독이라 할지라도 내겐 영감을 주는 멋진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라고?”일 것이다. 도덕적 불감증을 극복할 방안은 있느냐? 음……. 어느 신문의 신간 소개에서 이 책의 결론이 다소 어색하다고 기자가 적어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다소 어색하다는 그 결론 외에 도대체 무슨 결론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그 기자에게 되려 묻고 싶어졌다.(기자분이 이 책을 끝까지 읽었으리라는 믿음이 없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엔 다소 어색하다는 그 결론이 가장 뻔하지만 가장 기본이고 가장 당연한 결론이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기 가장 어렵다는게 문제지만. 두 지성의 대화를 과정을 따라 오롯이 읽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답이기에 여기에 구태여 내용을 적지는 않겠다. 번역의 문제가 있음에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어야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답을 통해 잃어버린 소중한 감수성을 발견하시길 독려해본다. (결론만 도려낸 답은 오히려 불감증을 야기할 것이다)


- 번역은 별 두개만 주고 싶은데 책에 담긴 내용 때문에 별 네개.

- 돈스키스와 바우만의 신간이 올봄에 해외에서 출간되나보다. “Liquid Evil”이라는 끝내주는 제목을 가진 책이다. 유동하는 악마쯤 되려나. 최근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뒷이야기일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부디 이 책은 멀쩡하게 번역되어 출간되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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