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창비 50주년 기념으로 [여름날의 백일장]이라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거기에 운좋게 당첨되었던 적이 있는데^^; 가을호 계간지에 너무 많이 편집되어 실리는 바람에 원문 그대로의 글이 공개된 공간이 여태 없어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이제서야... ㅎㅎ;;;
창작과비평 168호, 나는 이렇게 읽었다.
책을 좋아하는 걸로는 두 번째라면 서러워 할 다독가에 장서가라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내 서재에는 유독 계간지가 없다. 계간지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이유라면, 여기에 나오는 시나 소설, 비평은 어차피 나중에는 대부분 단행본으로 묶여서 나올 것이고, 좋은 평을 받는 책이라면 그때 가서 구입하고 읽을 게 분명하니 굳이 계간지를 사서 드문드문 읽을 필요성을 못 느껴서이다. 계간지를 사면 골라서 읽을 테고, 나의 편식 성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면 읽지 않는 지면이 훨씬 많겠고, 과월호가 되면 다시 읽을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 이번 여름호는 선뜻 구입을 했다. ‘세월호 이후, 다시 생각하는 한국문학’이라는 특집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타 계간지에 게재된 글들을 엮어낸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인상 깊게 읽었기에 [창작과비평]의 특집에도 그만큼의 기대와 관심이 갔다. 계간지를 사면 특집만 읽을 의도였다. 그런데.
‘책머리에’를 읽자마자 숨부터 골랐다. 처음부터 한 방 먹어서 호흡이 흩트려졌다고나 할까. 치고 빠지듯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쏘옥 빠지려는 내 의도를 단숨에 때려눕혔다. 이 계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다시 덤비게 만드는 개괄을 쓴 이가 진은영 시인임을 알고 놀랍고 반가웠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읽은 인상 깊은 글로 인해 이미 나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이었다.
이후로 모든 페이지를 눈여겨보았다. 특집은 말할 것도 없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색하며 읽은 ‘문학초점’란도 좋았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만나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권여선 작가가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만나 이제 막 좋아하게 된 김성중 작가의 최근작을 좌담 형식으로 평을 하는 부분이다. 「국경시장」을 읽으면서 김성중 작가가 가지는 이야기의 힘, 권여선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탄력과 같은 힘을 나도 느낀 바 있으나 마음에 오래 남지 않는 그 무언가가 아쉬웠는데 권여선 작가는 소설적 힘줄이 되어 줄 현실과의 팽팽한 대면의 부재를 여기서 언급했다. 동감하는 바였다. 「국경시장」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김성중 작가는 바다로 나아가는 작가가 되기 위해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 해군의 훈련을 언급했다.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센 파도와 같은 현실과의 팽팽한 대면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
[창작과 비평]에는 지면 곳곳에 현실과의 팽팽한 대면에서 길어 올린 다양한 토론과 사유가 엿보였다. 문예지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는, 뒤늦었지만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번 호를 기점으로 전후 두 갈래로 [창작과비평]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이미 과월호 목차들을 죽 훑었고 정기구독을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이제 막 정기구독자가 되려는 독자로서 의견을 한 마디 보태고 싶다.
“제때에 전환을 이루지 못할 경우 나라가 어떤 혼란과 난경에 빠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세월호사건의 교훈이라고 백낙청 편집인이 지적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가 가지는 거대한 메타포는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적용된다. 위의 교훈은 나 자신과 [창작과비평]에게도 필요하다. 나는 지금 생각의 전환을 이루어 [창작과비평]이라는 계간지를 새롭게 대면하고자 한다. [창작과비평] 역시 한국 문학이 침몰하는 뼈아픈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제때 이루어야할 전환의 문제가 있음을 상기하고 논란에 잘 대처하여 긴 호흡으로 한국 문학에 남아있어주길 바라는 바이다.
세월호 특집의 마지막 부분에 신호성 학생이 남긴 시 속의 물음, 우리의 물음이기도 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그 물음에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곡조없는 만가>가 떠오른다.
나는 선한 사람들이 딱딱한 땅 속에 갇히는 것에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이든, 아름다운 사람이든,
누구나 언젠가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요.
아득히 먼 옛날부터 늘 그래 왔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나와 우리가, 이 사회가, 그리고 [창작과비평]과 문학의 정신은 굴복하지 않기를 읊조려 본다.
백일장 상품으로 받은 책탑입니다. 원래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내정되어 있었으나 편집부에 간곡히 부탁드려서 창비세계문학전집으로 받았어요. 제 생애 이런 감동적인 책더미 선물은 처음이라 울컥했던 기억이 나네요^^ 거기에 계간지 일년 정기구독권까지...
제가 쓴 글에서 언급되었던 책들도 모아봤습니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집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가위 바위 보]라는 청소년 소설의 본문 중에 번역된 부분을 옮겨 적었어요. 네 권 중에 앞의 세 권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가위 바위 보]는 모르는 분들이 더 많으실 듯해요. 소통의 소중함과 시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아주 멋진 청소년 소설이랍니다~ 강추드려요~
그리고 드디어~ 북플 출석 스탬프가 몇 번의 고배 끝에 29일까지 왔어요! 서..설마 내일 하루 깜빡하고 다시 시작하게 될 일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