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지식인마을 7
조지형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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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헤이든 화이트는 그의 저서 [메타 역사]를 통해 역사가들의 저작을 분석하면서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역사 서술에 나타난 이미지의 패턴과 사료의 설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역사 서술에서 역사가들의 시각을 반영한 이미지, 상징, 알레고리를 찾아 분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2. 이 책에서 저자 조지형 교수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레오폴드 폰 랑케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한 에드워드 카 (E. H. 카)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런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역사로 기록된)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우리는 정말 사실을 알 수 있을까?" 


3. 아울러 실증사학에 대한 편견을 우려하고 있다. 실증사학 역사가를 사료에 얽매여 있는 노예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학문적 경향으로서의 실증사학을 지지하지 않지만, 근대 역사학을 열었던 실증사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역사 입문자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4. 저자는 자신이 지내온 역사와 자신이 속한 집단(지역, 국가, 세계 등)의 역사를 보다 명확하고, 깊이 있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식견을 함양하는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5. 랑케는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귀족이 됐다. 1865년 랑케는 독일의 역사학에 기여한 공로로 귀족의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공헌은 독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당시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청년들이 몰려왔고, 공부를 마친 이들은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가 그의 가르침을 전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들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거쳐 '랑케사학' 혹은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6. 랑케는 1824년 [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1494 ~ 1514)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랑케를 일약 세계적인 역사가로 만들었다. 이 책으로 랑케는 학문적 자질을 인정받아 김나지움의 고전학 교사 생활을 접고 베를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책 하나 잘 써서 고등학교 교사에서 대학 교수로 올라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요성과 가치는 그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존경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역사학이 존재하는 한 존경과 비판이 계속될 중요한 책으로 자리매김한다. 


7. 랑케의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책의 서문이 보여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서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역사에는 과거를 판단하거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교훈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고상한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의 일차적 임무는 과거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8. 그렇다면 랑케보다 좀 더 친숙한 이름인 카는 역사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갖고 있을까?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40년 넘게 전 세계적으로 역사학 입문서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선 1964년 길현모 교수가 처음 번역, 출간 이래, 지금까지 대학의 역사 전공생들뿐 아니라 일반 지성인들의 필독서가 되어왔다. 그의 역사 이론은 다른 역사학자의 이론보다 도구주의적이며 실용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9.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한다. 1) 과거에 대한 사실. 2) 역사상의 사실. 3) 역사적 사실이 그것이다. 아울러 그는 "사실들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충고한다. 역사책을 읽고 있으면 그 이면에서 속삭이듯 그 책의 저자(역사가)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 저자의 속삭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10. 그렇다면, 리뷰 초두에 언급한 헤이든 화이트는 랑케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가? "랑케의 역사 개념은 낭만주의의 부정 이상의 것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그 밖의 많은 다른 부정, 즉 헤겔의 선험적인 이론화, 물리학과 당시의 사회이론으로서의 실증주의학파를 통해 일반화된 기계론적 설명 원리, 그리고 공인된 종교적 교리에 나타난 독단론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요컨대, 랑케는 역사가로 하여금 일차성, 특수성, 선명성을 통해 역사의 장을 관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배격했다. 그가 올바른 사실주의적 역사 연구 방법으로 간주한 것은 낭만주의 예술과 실증주의적인 과학, 그리고 당시의 관념론 철학의 방법을 부정한 후에만 달성 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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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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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 기억 속 도깨비들의 이미지는 이렇다. 우선 머리 위에 뿔이 하나 있다. 눈은 하나다. 키는 대체적으로 자그마하다. 상체는 벗었고, 아랫도리는 치마 아니면 반바지다. 어려서는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귀엽다. 아, 뽀글뽀글 튀어나온 방망이를 하나 들었다.

 

2. 이 책의 주인공은 도깨비다. 100년을 살아왔다. 그의 몸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가 존재한다. 그의 이름은 공윤후다.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인 '공(空)', 있지만 없는 날인 '윤',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인 '후'. 그의 외모는 출중하다. 전형적인 도깨비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매력있다. 끌어당김이 있다.

 

3' 당연히 이 소설은 환타지 스토리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남긴 코드는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이다. "너 좋을대로 해.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4. 도깨비가 왜 이 땅에 나타났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는 마술사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살아가며 마술사의 그것처럼 마술같은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선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저 기적처럼, 마술처럼 무언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5. 산해음허(山海陰虛)의 기(氣), 초목토석(草木土石)의 정(精)이, 옮겨 물들고 섞여 합쳐져서 이매로 화하니, 사람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고 유(幽)도 아니고 명(明)도 아니나 또한 일물(一物)이다.  [해동잡록 권6]에 나오는 이야기다. 도깨비를 표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도깨비에게도 역사와 전통이 있다.

 

6.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 스토리의 백미다. 처음 시작은 신경섬유종이 얼굴을 뒤덮고 있는 어느 불운의 여인을 행운으로 바꿔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딱 혹부리 영감이야기다. '활'이라고 있다. 윤후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다. 그가 중간 중간 공윤후를 설명해준다. '활'이 깨어난 것도 윤후의 영향이다. 우정국이 문을 열던 1884년, 윤후가 말을 거는 바람에 잠에서 깼단다. '활'은 윤후곁을 지키며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7. 사람은 눈으로 봐야만 믿는 존재이다. 아니 눈으로 보고도 안 믿는 경우도 있다. 내 눈에는 보이나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일 수도 있다. 그 반대일 경우도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한다.  "늙어서 눈이 어두워지면 별수 없이 손과 코로 세상을 보고 거기에 내가 기억해둔 색을 입혀야 하지. 그러니까 눈이 밝을 때 부지런히 세상을 봐둬야 많은 색을 기억해둘 수 있단다."

 

8. 도깨비도 찾아갈 것이 있나보다. 사람만 무엇엔가 홀려서 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 무언가를 찾으러 인간 세상에 왔다. 강제로 뺏어갈 수도 있지만, 조건을 내걸고 찾아가려 한다. 이 과정이 스토리의 전체적인 흐름을 리드하고 있다.

 

9. 다시 공(空) 이야기로 가본다. 사실 공은 비어 있는 것 같으나, 꽉 차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병이나 어항에 물이 꽉 차있으면 마치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의 기억 어느 한 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의식이 너무 꽉 차 있어서 존재감을 못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책 말미에 남긴 말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느림이 필요 할 때 지금 있는 시간과 장소 밖으로 눈을 돌려 오래 된 것들을 뒤적여봅니다. 내 머릿속 한구석에 묻혀 있는 오래된 것들도 꺼내봅니다. 그 안에서 진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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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의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조르주 풀레 지음, 조한경.이현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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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스개소리로 넘길 이야기지만,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이 비평가 또는 평론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책이 있으면 작가가 있고, 독자가 있고, 비평 또는 평론가 그룹이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비평, 비평가이다. 이 책에선 일관되게 '비평가'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독자는 모두 비평가이기도 하다.

 

2.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정한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라고 할 수 있는 독서 행위는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를 전제한다." 그러나 두 의식의 일치를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그에 앞서 열렬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비평이 가능하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행동하게 된다.

 

3. 저자 조르주 풀레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프루스트를 들고 있다. 프루스트에겐 글을 쓰는 창작 행위에는 독서가 필요하며 독서를 통한 문학의 비평적 발견을 전제한다. [장 상퇴유], [희열의 나날들], 그리고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전 그(프루스트)는 단순한 비평가이자, 단순한 독자였다. 그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가 무엇보다도 먼저 꿈꾼 것은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도전 의식이 꿈틀댄다. 목표로 할 만하다.

 

4. 프루스트는 작가이면서 비평가였다. 월터 스트로스는 비평적 활동이 그의 부차적인 활동이였다고 했지만, 샹탈은 반대로 프루스트가 비평의 첫걸음을 내디딘 다음에야 비로소 소설에 손댈 수 있었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작가와 비평가의 행보를 같이 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 [장 상퇴유]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서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에 몰두한 독자다. 독자는 독서에 골몰하다가 작품 세계에 빠진다.

 

5.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독서를 하다가 발자크 또는 플로베르의 리듬에 순치된 우리는, 우리의 내밀한 목소리는, 독서를 마치고 나서도 그들의 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런 느낌이 나도록 책을 읽어야 하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과 보조를 맞추는 일보다 독자와 작가를 가깝게 해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독자와 작가를 하나 되게 한다. 독자에게 작가의 가장 내밀하고도 은밀한 사고방식, 감각방식,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독서란 "자기 안에서의 재창조다."

 

6. 한 작가의 작품 하나만 읽어보고 그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한 작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한 작품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비평에 관한 한 확인이 없는 인식이란 없다. 그래서 '전작주의'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다양한 모든 작품에서 그들 전체에 대한 어떤 공통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자체가 무리 일 수 있다. 그것은 한갖 꿈으로 그칠 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총체적 우주의 조각난 이미지에 불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런 면에선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독서는 필요하다. 그 조각들을 서로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진정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 저자 조르주 풀레는 비평가이다. 스무 살 때부터 비평가의 소명을 절감했다고 한다. 시간, 공간이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의의에 대해 몰두했던 조르주 풀레는 비평의 업적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주로 교제한 비평가들로는 마르셀 르몽, 장 루세, 장 스타로뱅스키 등이 있는데,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스위스, 특히 주네브였기 때문에 그 일단의 비평가들을 주네브학파라고 부른다. 이 책은 비평의 비평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들레르, 프루스트, 가스통 바슐라르, 사르트르 처럼 작가와 비평가로 두 집 살림을 한 인물들과 순전히 비평가 그룹에서만 활동한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8. 저자는 [비평적 의식의 현상학]이라는 챕터에서 책과 독자, 독서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텅 빈 방, 책상 위에서 책이 독자를 기다린다. 모든 문학작품들은 그런 상태에서 최초의 상황을 맞는다.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무기력한 하나의 단순한 대상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누군가가 자신을 그러한 무기력과 물질성에서 구해주기를 도서관 서가나 서점 진열장에서 기다린다.(...) 진열장에 꽂힌 책들은 내게 구매자가 나타나 선택해주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장의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안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동물은 사물 취급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자가 관심을 보이지 전까지 책은 모멸을 안은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이따금 책들이 희망에 차 있음을 본다. '나를 읽어 주시오'라고 금방이라도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책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공감한다. 특히 내 체온이 전해지면 더욱 그러하다. 이젠 책이 더 이상 그냥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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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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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맞춰보시렵니까?
하고 있는 일에 스스로 만족한다. 자기 일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무슨 일이든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시작한다. 밥그릇을 걸고 일을 한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작곡을 하건 다작(多作)이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전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두루두루 관심을 갖는다. 깊고 넓게 판다. 평생학습을 모토로 한다. 물 먹은 경험이 있다. 매사에 개방적이다. 실력이 있기에 자신감이 충만하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비록 나에게 맞지 않는 일 같아도 최선을 다한다. 개인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한다. 결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 사람을 만난다. 미리미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다. 적게 일하고도 많이 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잠은 안 자도 되고, 라면만 먹고 살아도 된다. 생활이 심플하다. 잡다한 약속이 없다. 규칙적이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지 않는다. 할 일이 명확하다. 리듬 깨지는 것을 싫어한다. 일을 할 때는 온전히 일에만 집중한다. 그들만의 루틴이 있다. 외국여행이나 출장 갈 때 기내 반입용 슈트케이스 하나면 된다. 이 외에도 한량없이 많지만, 이쯤에서 줄입니다. 이들은 바로 고수(高手)들입니다.

 

2. 그럼 좀 밑으로 내려가 볼까요? 고수가 있으면 상대적인 호칭 하수(下手)가 있겠지요.
하고 있는 일이 영 맘에 안들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한다. 결심만 계속한다. 누군가 나를 평가한다는 것에 엄청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만나는 사람이 늘 한정되어 있다. 일상생활이 폐쇄적이다. 쉽게 포기한다. 공부는 학교에서 한 것으로 만족한다. 오래 일하지만 버는 것은 신통찮다. 주변 환경이 늘 정신없다.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 생활이 불규칙하다. 변수가 많다. 일관성이 떨어진다. 쓸데없는 약속이나 이벤트가 많다. 차분히 앉아 있지 못한다. 감투 쓰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국회의원에 출마라도 할 것처럼 늘 바쁘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눈에 띄는 열매가 없다. 대충대충 넘어간다. 고수가 디테일에 대한 집념에 몰두할 때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뭘 저렇게까지 하나. 대강 하지. 저래서야 피곤해서 어떻게 살까?" 여핼 갈 때 온갖 살림을 다 챙겨간다. 사흘이 아니라 한 삼년 살다 올 사람같다. 이 외에도 많고도 많지만 이쯤 줄여볼까 합니다.

 

3. 그대는 고수입니까? 하수입니까? 아니면, 이 책에는 나오지도 않는 용어지만 중수(中手)입니까? 고수를 향해서 전진 중이시라구요? 그러셔야지요. 저 역시 그러합니다. 그저 막연히 생각하던 고수의 개념이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잡혔습니다. 고수, 멋진데요. 적게 움직이면서도 많은 수확이 있습니다. 몸이 덜 고생합니다. 누구나 고수가 되고 싶지요. 그러나, 나와 내 주변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처음에 좀 망서려졌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이 자기계발이지요. 그래서 큰 기대를 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읽게 되었습니다. 고수에 올라서는 것도 이유가 있고, 하수에 머무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4. 그렇다면, 나의 삶에서 고수라 이름 붙일만한 것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의 직업적인 면에서는 물론 자신있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늘은 왠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쓰는 일입니다. 일주일에 평균 5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씁니다. 의외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5. 어떻게 그렇게 책을 읽느냐? 무슨 비결이 있냐?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게 된 것은 약 2년 전 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그저 마음 내키면 한 달에 3~4권 정도 리뷰를 남기곤 했지요.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약 1년 전 부터입니다. 매일 2시간 이상씩 책 읽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이젠 일상화되었습니다.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술친구가 없는 것도 나에겐 다행입니다. 책을 좀 빨리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가 그냥 눈에 들어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리뷰를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눈은 책을 읽고 있으나 마음 한 자리엔 이미 리뷰가 써지고 있지요.

 

6. 리뷰를 안 쓰고 책만 읽으면 일년에 한 400 권 이상은 읽을 것 같습니다만, 올해 목표는 300 리뷰입니다. 현재 172 권째 올렸으니까 무난히 목표점에 도달 할 것 같습니다. 딱히 비결은 없는 듯합니다. 아직은 저에게도 일이 있고, 직장이 있습니다. 업무시간이 적은 편이 아닙니다. 시간이 한가한 것도 아닙니다. 평일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 공휴일도 거의 출근합니다. 어떤 땐 점심 시간도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바쁜 일상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서 리뷰를 쓰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업무 시간에 책 읽을 시간은 내기 힘듭니다).

 

7. 막연한 이야기를 적은 것 같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책의 키포인트가 그냥 눈에 들어오고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역시 쉽게 그려지는 것은 그 동안 꾸준히 읽고 써온 습관 탓이라고 말씀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원래 고수는 자기 자랑을 안한다고 하는데, 자랑처럼 늘어 놓는것을 보면 아직은 좀 먼듯합니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잘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만, 현재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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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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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학문이 그러하지만 특히 인문학은 사람이 중심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Sudia Humanitatis)'에서 출발했습니다. 과거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문학 장소는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운영하던 아테네 근교에 위치한 '아카데미아'가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라톤 아카데미'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이곳 아카데미아에서 아테네 리더들에게 파이데이아(Paideia) 즉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2.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은 키케로라고 합니다.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을 통해 리더가 갖추어야 할 지도자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키케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합니다. "인문학(Studia)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멋진 표현입니다.

 

3. 내 마음대로 한 줄 더 붙이고 싶습니다. "인문학은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이 땅에 살아가야 할 목적과 의미를 불어 넣어줍니다." 사실 한 없이 낮아진 자존감(자기 존재 감각)만 회복된다면, 좌절할 이유도 자살할 이유도 없어지지요. 이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될 책은 아니지만, 저자 최준영이 인문학 관련 글과 강의를 통해 현재 낮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 이야기부터 풀어놨습니다.

 

4. 저자는 전작 [결핍을 즐겨라]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 치유 인문학'을 전했지요. "비어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결핍은 희망을 품고있는 가능성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에서도 역시 인문학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만난 생각들' 그리고 그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펼쳐집니다.

 

5. 저자의 장점은 그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장과정, 학력, 가정사,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등을 매우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이야말로 저를 키우는 밑거름이자 자양분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어쩌면 부끄러움을 먹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의 다른 말은 '결핍'입니다. 극복하지 못한 결핍과 그 결핍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게 바로 저이고 저의 책입니다."

 

6. 힐링이란 단어가 여기저기 뜨는 요즈음입니다. 그 만큼 우리 모두가 힘들다는 이야기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힐링이란 단어가 너무 남발되다보니 멀쩡하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마음병 환자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힐링과 이웃인 '위로'라는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저자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임할 때마다 가슴에 새기는 말이 있답니다. 우산을 받쳐주는 위로가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위로'를 생각한답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겠냐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7. 지난 10년 간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한 저자는 인문학을 통한 성과라는 표현보다는 '인문학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의미에 힘을 주고 있군요.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빈곤은 '분배의 문제'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문학의 관점에서 빈곤은 분배의 문제 이전에 '관계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점 역시 공감합니다. 노숙인, 미혼모 시설 엄마들, 여성 가장들은 생활고보다도 사람들과의 관계 단절과 편견, 선입견 때문에 더욱 마음들이 힘들어지곤 하지요. 그 힘든 마음들에 에너지를 채워주는 일에 인문학이 처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해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 보다는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지요.

 

8. 책의 후반부엔 저자의 독서 생활이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내 이야기를 쓴 것 같기도 합니다. 글쓰기에 대해 쓴 부분이 눈과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저는 글을 잘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꾸준히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글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면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글쓰기 능력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묵묵하게 꾸준히 쓰는 것이야말로 글쓰기 실력을 쌓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박에 늘지 않습니다. 꾸준히 쓰면 조금씩 감각이 생기는데, 그것도 아주 더디게 진행됩니다."

 

9. 현재 나의 글쓰기는 일 주일에 평균 5권 정도되는 북리뷰 쓰기가 전부입니다. 책을 읽으면 거의 리뷰를 쓰는 편이지요. 어떤 땐 리뷰를 쓸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먼저 따지기도 합니다. 읽기 전에 오는 감이라는 것이 있지요. 다른 리뷰어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지 몰라도 다른 리뷰는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특히 읽어야 할 책은 출판사 리뷰나 홍보의 글도 외면합니다. 자칫 그 단어나 문구에 붙잡히면 정작 내가 리뷰를 쓸 때 내 나름의 느낌을 그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0. 평소 마음에 담고 사는 생각으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무엇인가 기대 하는 일, 무엇인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지금 많이 힘드시다구요.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가슴이 촉촉해지고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게 되는 부분이 한 두 군데 쯤은 있으리라 생각듭니다. 그럼 됐지요. 참..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는 일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말엔 당연히 나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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