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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롱현 사람들 - 개혁기 중국 농촌 여성의 삶, 가족 그리고 문화
이현정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12월
평점 :
『펑롱현 사람들』 - 개혁기 중국 농촌 여성의 삶, 가족 그리고 문화
_이현정 / 책과함께
1.
대체적인 국가에서 인권문제를 들여다볼 때, 어린이나 여성은 늘 뒷전이다.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고연령층에 대해 그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해나가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인류학과 교수이자, 중국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 산간마을을 토대로 마오 시대의 공산당 시절과 개혁개방 후 달라진 여성들의 생활과 문제점을 밀착 취재했다. 중국 여성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펑롱현(風龍縣)은 중국 허베이성 동북 지방의 끝자락으로, 베이징시(北京市)에서 2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만리장성의 동쪽 끝 산지에 자리 잡고 있다. 펑롱현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허베이성 내에서 가장 빈곤한 현 중 하나로 꼽혔지만, 2021년 개통된 친황다오시와 탕산시를 잇는 고속도로가 펑롱현을 지나가게 되면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주변에는 최근 광산개발이 한창이다. 철광이 스무 군데 이상이고 매년 40만 톤 이상의 철광석을 생산한다. 이 광산들은 펑롱현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가깝게는 산둥성(山東省)에서부터 멀리는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돈 많은 외부 사업가들이 투자하고 펑롱현 정부가 개발을 인준해주며 현지 농민들이 계약직 광부로 고용되는 삼자간 협업 형태를 띠고 있다.
2.
중국이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별로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비판 및 계몽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경제구조 개혁의 달라진 양상 중 ‘개별가족의 특수성’은 일견 좋아 보이는 듯하나, 여성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주민들에게 여성의 문제는 남녀차별이나 (가정 내)구조적인 폭력의 문제라기보다 해당 가족의 사사로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이야기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 농촌 여성들의 높은 자살률이다.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세계가 주목해야 할 정신보건 문제’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 농촌 여성들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여성의 입장과 그들을 바라보는 타자의 생각과 시선이 상반된다. “여자들이 속이 너무 좁아서 그래(女性的心眼太小)”라는 마을 주민들, 농촌 여성들은 배운 것이 없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집안에 무슨 사소한 일이라도 발생했다 하면 대뜸 농약부터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곤란, 친척과 이웃 간의 질투, 배우자의 혼외정사와 도박, 강요된 혼인 등과 같은 일들이 여성들에겐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느니 죽는 게 더 낫다(死的比活着更好)”라는 말을 하겠는가.
3.
“결국 중국 농촌에서 여성의 자살이 빈번했던 이유는 한편으로 농촌의 전통적인 성별구조 및 개혁개방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문화적 환경이 야기한 다양한 삶의 문제들과, 다른 한편으로 고립된 농촌 공동체에서 세대를 거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대응 전략이 함께 관여한 결과이다.” 여성의 속이 좁아서라기보다는 마치 경주마의 차안대(遮眼帶)처럼 중국 농촌의 사회구조와 역사적 환경이 여성의 속마음이 도달할 수 있는 지평을 그만큼 좁혀놓은 것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날의 10대나 20대 여성들은 왜 윗세대 여성들이굳이 자살을 선택해왔는지 잘 납득하지 못하는 변화가 오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