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걸음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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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 어둠의 기록

 

하늘빛이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시간적 이미지는 바로 동 트기 전 그 어둠의 시간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 죽었으나 산 사람처럼

 

살아 있는 자뿐 아니라, 죽은 자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사로잡고 있구나!    - 마르크스, 『자본론1』서문에서

 

“마르크스도 신은 아니지!” 마르크스가 서두를 연다. 쇠 우리 안에 갇혀 노란 횃대 위에 앉아 깡마르고 기다란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말라빠진 기다란 두 팔도 축 늘어뜨린 채 마치 늙은 매 같은 ‘너’는 추호도 망설임 없이 이런 말을 던진다. “마르크스는 이미 우리에게 숱한 고통을 안겨줬어!”

 

이 소설의 서술자(화자)는 ‘너’는 누구인가? 그의 존재감을 파악하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소설은 쇠 우리 안에 갇힌 서술자가 쏟아 내놓는 언어의 기록이다. 월요일 오전, 시내 제8중학(우리나라의 중고등과정) 고3 교실이 묘사된다. 직무에 충실한 물리교사 팡푸구이가 수업 중에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교단 위에 엎어졌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미용사 리위찬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여인이다. 카리스마와 팜프마탈의 소유자다. 그녀의 남편 장츠추 역시 제8중학 물리교사다. 팡푸구이와 장츠추의 집은 서로 얇은 벽하나 사이를 두고 이웃해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서로 닮았다. ‘아름다운 세상’ 장례미용사 리위찬은 어렸을 때부터의 행적이 그려진다. 알뜰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경제 감각이 있는 여인이기도하다. 그녀는 어려서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리위찬의 어머니는 비록 지금은 병상에 누워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지내지만, 한창때는 온 도시를 주름잡던 풍류미인이었다. 이 모녀 사이엔 공통의 비밀이 있다. 역시 소설에선 한 역할을 단단히 하는 왕 과장(나중에 부시장이 됨)이다. 이미 그에겐 예쁘고 상냥한 아내와 천진난만하고 활발한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모녀는 왕 과장을 공유한다. 그 반대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저자는 공직자와 권력자들의 성적으로 심히 부적절한 관계를 도마 위에 올린다.

 

일찌감치 장례 미용직에 배치된 리위찬은 처음엔 그 일이 몹시 마땅치 않은 듯 했지만, 이내 적응이 되어 특급 장례사로 시의 모범 노동자로 나아가선 ‘삼팔홍기(三八紅旗) - 중화인민공화국의 전국 부녀연합회가 ’4대 현대화‘에 이바지한 여성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칭호-의 기수가 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 장례미용사를 스토리 전면에 내세웠을까.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하지 않는 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나는 장례미용사가 전체적인 스토리를 리드해가는 이유를 작가가 현재와 과거의 중국의 모습 중 감추고 싶은 모습이 많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하긴 어느 나란들 감추고 싶은 역사의 시간들이 없기야하겠냐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중국의 현실은 여전히 덮어두고 싶은 일들, 포장해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충분히 사람의 이목을 끌만한 매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서방세계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할까. 딱딱하게 굳은 이미지의 공산당 간부의 모습일까? 아니면 리위찬처럼 때로는 사람을 혼미(昏迷)하게 만드는 모습일까? 리위찬은 죽은 자를 산자처럼, 아니 그 이상 더 미화(美化)된 상태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최근 그녀의 작품 중 내세울만한 것은 어렸을 적 그녀에게 성(性)을 지도해줬던 왕부시장이다. 업무 중 급사(急死)한 배불뚝이 부시장을 좀 더 격무에 시달리다 순직한 이미지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다. 배도 얼굴도 홀쭉하게 만든다. 이 기술은 후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신은 계속 죽은 사람으로 있어야 해

 

물리교사 팡푸구이의 죽음은 제8중학뿐 아니라 도시의 모든 인민교사들에게 동정과 존경을 받는다. 그의 죽음이 스스로 의도한바가 아니었지만 마치 우리의 전태일을 통해 노동자들의 인권밭에 생명력이 부여된 것처럼 팡푸구이를 통해 교사들의 직무여건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인민들은 “교사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져라! 중년 교사들의 봉급을 인상하라!”고 외쳤고, 돈 잘 버는 기업과 부유한 개인들에게 의연금을 걷어 ‘중년 교사를 위한 건강기금’을 설립하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팡푸구이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팡푸구이가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살다보면 늘 돌발적인 사건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기 십상이지. 이렇게 틀어진 계획은 운명의 변화를 야기하고, 역사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날마다 모든 개인의 신상에, 모든 가정에, 모든 나라에 일어나고 있어. 마르크스주의자는 우연성과 필연성으로 이런 현상들을 해석하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운명과 하늘의 뜻으로 이런 현상들을 해석하고..”

 

정신이 든(살아난) 팡푸구이는 장례식장 냉동고에서 탈출한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온몸에 석회를 뒤집어쓴 채 집으로 향한다. 문을 두드린다. 온 몸이 하얀 남편이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그의 아내 투샤오잉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귀신이야!”. 그리고 기절한다.

 

결국 집에도 못 들어갔다.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갈 데라고는 이젠 한 곳 뿐이다. 동료 교사 장츠추의 집이다. 그의 아내는 시의 모범 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로, 이름은 리위찬이다. 작가는 이미 리위찬의 존재를 앞서 여러 번 언급했음에도 마치 처음인 듯 그녀를 소개하며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에! 팡 선생님, 당신 죽은 거 아니었어요?" 장례미용사가 놀라서 물었다. ”내가 선생님을 냉동고에 들여놓았잖아요?“ 장츠추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팡 선생, 자네 죽은 거 아니었어?“ 이쯤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죽은 줄 알았더니 다시 살아났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나. 에헤라디야~ 하고 말면 이야기도 끝이다. 문제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소설의 무대가 사회주의체제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당신이 죽었대도 좋고, 죽지 않았대도 좋아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대도 좋고, 처음부터 죽은 게 아니었대도 좋아요.” 그녀(리위찬)가 말했다. “어차피 선생님 사정이니까. 하지만 시에서는 선생님이 죽은 줄 알아요. 장의사에서도 선생님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학교에서도 죽었다고 생각하고, 투샤오잉(팡푸구이의 아내)과 팡룽,팡후(아이들)도 선생님이 죽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선생님은 살아 있을 수 없어요.”

 

결론이 묘하다. 살아 있을 수 없다니. 그럼 제대로 죽으란 이야긴가. 확실한 것은 현재 상황에 팡푸구이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야말로 전국적인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죽어야 산다는 말이 있다. 팡푸구이가 죽음으로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 모두가 덕을 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가족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다.

 

 

페이스 오프

 

밤새 그들(팡푸구이, 장츠추, 리위찬)은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결론을 뽑아낸다. 팡푸구이가 그 자리에 함께 있긴 했으나, 그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바로 옆인 자기집에 가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을 뿐이다. 장츠추 부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이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고비이자, 대목인관계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 장례미용사는 장츠추와 비슷하게 생긴 팡푸구이의 얼굴을 약간 매만져(그런데 사실 약간이 아니었다) 장츠추 대신 제8중학 물리교사로 보낸다. 장츠추는 교사 월급에 목을 매고 사느니 진작부터 장사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했으니 장사꾼이 되어 돈을 번다. 두 사람이 번 돈을 합한 다음 둘로 나누어 두 집안의 생활비로 쓴다. 부엌에 팡푸구이를 위해 침대를 하나 놓는다. 팡푸구이는 투샤오잉과 계속 동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등이다.

 

어찌보면 황당한 결론이지만, 어쨌든 세 사람에겐 최상의 합의점이었다. 그러나 희극처럼 시작된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게 될 줄은 세 사람 모두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나 혼자 결정해서 시행해야 할 일은 혹시 잘못 되더라도 나 하나의 실책이나 피해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럿이 어우러져 결론을 내린 경우 역시 잘 못된 방향으로 나갈 경우에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다. 서로 상대방의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많다. 내 탓이 아닌 네 탓이다.

 

어쨌든 팡푸구이는 동료교사인 장츠추의 얼굴을 카피한다. 장례미용사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집에서 성형수술을 한다. 그녀가 메스를 댄 것은 단지 죽은 자와 산자의 차이다. 아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얼굴이다. 얼굴을 칭칭 감았던 붕대를 풀고 맞닥뜨린 팡푸구이와 장츠추는 서로 심한 당혹스러움을 견디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 사람 모두 상상조차 못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팡푸구이는 그의 아내 투샤오잉에게 비록 얼굴은 바뀌었지만 '내가 당신 남편이야!'하고 몇 번을 대시했으나 거듭 히스테릭한 반응만 왔을 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사건과 인물들의 갈등이 때로는 돌직구로 때로는 매우 서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가히 언어의 예술사다.

 

 

자, 그렇다면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하나. 분필. 소설의 서술자는 쇠 우리 안에 갇힌 채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그는 팡푸구이도 될 수 있고, 장츠추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소설에선 이어지진 않았으나 후에 팡푸구이의 페이스 오프가 탄로 나면서 지엄한 당과 순진한 인민을 우롱한 죄로 쇠 우리안에 갇혀 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서술자가 오로지 분필만 먹는다는 것이다. 일체의 음식을 모두 거부하고 오직 분필만 먹는다. 청자들은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끊임없이 서술자에게 분필을 공급한다. 색색가지 분필을 먹은 서술자는 그 값을 하기 위해 역시 색깔 있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쏟아낸다. 분필은 판서(板書)용이다. 식용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이 결국 문자로 기록된다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이 곧 언어가 아닌 문자라는 것이다. 이는 이 소설의 작가 모옌이 관모예라는 본명이 있지만,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이란 필명을 쓰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즉, 서술자는 작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둘. 리비도.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19금에 가까운 리비도 기운이 덮여있다. 독자에 따라선 자칫 성애(性愛)소설로 비쳐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가 매우 서운하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도입부분에 나오는 여주인공(킬러)의 도발적인 성욕(카페에서 처음 본 남자에게 ‘당신 그것 쓸 만하냐 묻는다.’.)을 접하면서 ‘이런, 이런 책이었어?’하고 책을 덮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작가가 그려내는 리비도는 부와 권력집단의 부도덕하고 절제되지 못하는 성(性)을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인간들의 원초적인 감정과 욕구가 리비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고 있을 뿐이다.

 

셋.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 지금 중국의 지도부는 급속히 전개되는 자본주의 시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저 좋게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금력(金力)또한 권력(權力)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예의 주시하면서 염려하고 있다. 큰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정치와 경제력의 결탁이 일부 집단에게만 부의 축적이 이뤄진다는 경제적 불균형도 그려진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영원한 레지스탕스 슬라보예 지젝이 그의 저서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오늘날 중국이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 중 하나.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의 목표는 (새로운 지배층인)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 지도자들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이 담보하는) 안정적 위계질서 없이는 자본주의의 불안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 길을 택하게 될까? 더 일반화하자면, (구)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영자로 재부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그들의 뿌리 깊은 적대감이 부르주아 계급 없는 관리자 체계를 지향하는 최근 자본주의의 추세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이다. 양쪽 모두, 과거 스탈린의 말대로 "조직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넷. 교육현장에 대한 염려. 이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비춰진 교사들의 처우문제와 교육현장은 그래도 우리가 좀 낫지 않나 싶다. 오죽하면 학교를 때려치고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들은 줄줄이 강물로 뛰어들고 있다.

 

다섯. 열세 걸음. 책을 읽기 전에 진작부터 제목에 마음이 머물렀다. 왜 열세 걸음일까? 열세 걸음밖에 못 나간 것이 아니라, 열세 걸음이나 걸어 간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3이란 숫자가 길(吉)한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답이 나오겠거니 했다. 여덟 걸음에 답이 나왔다. 참새 시리즈의 한 꼭지 같은 글이 실려있다. “...만일 참새가 열세 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자네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린다지 뭔가!”

 

멈춰야 할 때가 있고, 나아갈 때가 있다. 현재 중국은 광속도 정도가 아니라 마하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작가는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디 중국의 상황에만 대입시키랴. 우리는 너나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분위기다. 시력 시야 모두 시원찮은 양무리가 앞서가는 양의 꼬리만 보며 모두 절벽 끝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간다더니 딱 그 짝이다. 아무리 높은 산도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 내가 살고 남도 살리는 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나는 이리 달려가고 있나 자주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담게 된다.

 

여섯. 기다림과 문 두드림. ‘하늘빛이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말을 다시 옮긴다. 소설의 결말엔 마음이 아프다. 좀 더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좀 더 지혜롭게 서로 마음을 모아 봤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얇은 베니어판 한 장 이웃해있지만, 먼 그대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이 애달프다. 지독한 어두움은 새벽하늘과 바통 터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왜 생각 못했을까. 좀 더 기다렸으면 좋았을텐데..

 

문 두드림. 소설의 초반(페이스 오프 전까지)엔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는 ‘문 두드림’이 있다. 독자의 의식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작가가 의식적으로 그리하고 있다. 이 역시 우리 살아가며 필요한 부분이다. ‘깨어있음’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현재 중국의 활동 작가 중 모옌과 함께 옌렌커를 주목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옌렌커가 세 살 아래)인 두 작가의 공통점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써야 하고 읽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건필을 빈다. 그저 나는 열심히 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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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원매 지음, 최일의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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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 / 내 몸이 용의 등 위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 돛이 솟구치는 물보라와 나란하다 / 닻줄을 맬 곳조차 없는데 / 선창 밖으로 악어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 금산과 초산은 나그네가 오는 줄을 아는 것인지 / 성 밖으로 나와 멀리서 나를 맞이한다.     -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전문

 

이 시는 시인(원매)이 살던 강소성 남경을 떠나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가다 금산과 초산이 있는 진강시를 거의 눈앞에 두기까지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남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니, 그 안에 타고 있는 시인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긴장될까. 더군다나 외로운 나룻배에 혼자라니. 내가 다가간 것이 아니라, 금산과 초산이 마중 나온다는 표현이 백미다. 금산과 초산은 지금의 전장시 일대에 있는 풍광이 기려하고 아름다운 산이라고 한다.


원매(袁枚, 1716~1798)는 청조(淸朝) 강희 55년 3월 절강성 전당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원매의 생애는 대략 학문 정진과 구직 시기, 관직 재임 시기, 수원(강년현 소창산)거주 시기, 명승지 유람 시기 등 모두 네 시기로 나뉜다. 일찌감치 관직에 오르며 그의 역량을 발휘했지만, 마치 시종처럼 온종일 고관들을 접대하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그리고 문학 창작에 전심전력을 다하기 위해 관직을 물러난다. 그는 "공업을 세움이 나라에 보답하는 길이지만 문장에 종사함도 역시 나라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원매는 원래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 직접 자연 산하를 둘러보고 흥취를 느끼려는 유람벽이 있었다고 한다. 시인의 명승지 유람시기는 그의 나이 67세 때부터 82세 까지다. 배로, 가마로 또는 걸어서 명승지를 돌아보며 스냅 사진을 남기듯 詩로 남겼다.

 

옆으로 납작한 봉우리 /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 /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연이어져 걷고 또 걷는다 /  이윽고 한 봉우리 앞에 이르니 더 이상 갈 수 없는데 / 내가 가마꾼에 업혀 하늘로 올라간 건 아닐까 의심이 든다 / 가마꾼이 웃으며 말한다 / "여기가 동정서산 표모봉의 가장 높은 꼭대기랍니다."  / 멀리 사방으로 하늘을 보니 끝없이 푸르고 / 만 줄기 흰 물결은 시야를 어지럽힌다 / 유리처럼 평평하게 펼쳐진 호수에 비친 대지는 잠겨 있고 / 몇 갈래 밥 짓는 연기 아래 인가가 숨어 있다 / 몸소 속세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 어떻게 호수 한가운데 산이 있음을 알았겠는가! / 오직 배와 노의 힘을 빌려야만 / 사람 사는 세상과 서로 소통할 수 있으니 / 무릉도원처럼 닭 울고 개 짓는 소리 들으며 / 태호의 늙은 어부는 분주하다 / 그렇지 않다면 설사 신선이라도 바라보기만 한 채 다가갈수 없을테니 / 천추만대에 걸쳐 누가 봉래궁에 이를 수 있겠는가! / 하느님이 내가 온 걸 시샘이나 하는 듯이 /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 가마 덮개가 떨어졌다 다시 날아가고 / 갓끈은 목에 걸기 어렵다 / 차가운 구름이 입안에 가득하건만 삼킬 겨를도 없이 / 교룡의 기운 같은 비바람이 사람에게 다그쳐 온다 / 두려움에 오래 머물기 어려워 / 안개 속에서 저절로 발길이 돌려졌다 / 자줏빛 고래는 오지 않고 누런 학은 멀리 있어도 / 노부는 길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바람이여, 바람이여, 나에게 불어오는 이유가 있음을 아나니 / 세상에 제일 높은 사람은 되지말라 나에게 권하는 것이리라.

                      - '표묘봉에 올라' 전문.

 

표모봉은 태호(太湖) 동정서산(洞庭西山)의 서남쪽에 있으며 해발 337미터다. 동정서산의 최고봉으로 태호 72봉 중에서 으뜸을 차지한다. 항상 운무에 싸여 있기 때문에 마치 전설 속의 표묘한 선경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은 가장 높은 표묘봉에 오래 서 있지 못하도록 비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마치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권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높다고 칭송해주는 사람은 언젠가 같은 입에서 가장 낮은자로 불려질 수도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높다고 자만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은 무엇으로 치유될꼬.


원매시의 특징

청대(淸代) 중엽의 주요 시론가이자 시인이었던 원매는 시단에 성령설(性靈說)을 제창하며 시에 성령(性靈)을 자유로이 표현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성령설은 청대 시단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전통 규범에 구속되어 있던 청대의 시가를 해방하는 역할을 했다. 원매가 말하는 성령은 크게 성정(性情)과 영기(靈機)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다. 성령의 '성'이 성정이라면 '영'은 영기라 할 수 있다. 성정의 의미는 대략 시인의 진실한 감정이란 뜻으로, 영기는 시인이 천부적으로 지닌 재능과 영감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원매는 시에 시인의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천성적으로 타고난 시적 재능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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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동물이 정말? - 우리가 몰랐던 동물에 대한 놀라운 사실 Wow! 정말? 시리즈
엠마 다즈 글, 마크 애스피널 그림, 존 우즈워즈 자문, 김보미 옮김 / 솔빛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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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진짜?  대화 중에 나오는 이 말은 진위여부를 떠나서 놀라움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보는 순간. 진짜 그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2. 그동안 몰랐던 정도가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읽던 부모가 아니면 절대 모를 이야기들.  고릴라는 사람 흉내내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같은 잠자리에서 하루 이상 자지 않는다고? 매일 밤 잠자리 찾아나서는 것도 일이겠네..아니, 그냥 서로 돌아가면서 자면 되겠구나. 오늘은 고릴라A, 내일은 고릴라B의 잠자리..등등. 동네 한바퀴.

 

 

 

 

3.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난다. 타조알을 삶는 모습을 봤는데, 대단했다. 숫자로 표시되니까, 더 리얼하다. 타조알 한 개의 무게는 달걀 24개의 무게와 같다. 알의 길이가 15cm. 너비는 13cm. 타조알 한 개를 삶으려면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단다.

 

4. 글보다는 그림이 돋보이는 책이다. 당연 글은 그림을 보충해준다. 그림으로 꽉 찼다. 등장하는 동물 가족들은 고릴라, 타조, 벌새, 악어, 사자, 치타, 바닷가재, 상어, 코끼리, 사향고양이, 캥거루, 코뿔소 외에도 여러 동물들의 독특한 특성과 재미있는 사실이 좋은 일러스트와 함께 나와 있다.

 

 

 

5. 글쓴이 엠마 다즈는 영국 켄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편집자이다. 일러스트 마크 에스피널은 오렌지, 타임 아웃 등 다수의 잡지에 활동을 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6. 황제펭귄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저 '대단하군!'이라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었다. 암컷펭귄은 알을 하나 낳고 먹이를 먹으러 떠난다. 암컷이 없는 17주 동안 수컷 펭귄이 알을 품는다. 그런데 가슴에 품는 것이 아니라, 알이 얼지 않게 하려고 알을 자신의 발 위에 올려놓는다. 떨어뜨리는 순간 끝이다. 펭귄은 알을 다시 집어 올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목숨 걸고 지켜야한다. 암컷이 돌아 올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꼼짝을 못하니 못 먹는것이다. 암컷은 알하나 낳아놓고 어찌 그리 오래 비우는지 모르겠다. 사람같으면 곰국이나 끓여놓고 간다지만..아뭏든 지독한 부정(父情)이다. 알을 떨어뜨렸다간 새끼도 잃고, 암컷한테 당할 공격이 상당할 테니..나는 펭귄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6.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자존감이 상승된다. 물론 아이의 성격에 따라선 '잘난 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이니까 봐주자. 하긴 이 책의 편집자도 어린 시절에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들이 모여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지식에 대한 추구를 만든 원천이 되었다고 하니 아름다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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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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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가 직접 쓴 책은 아니고, 드니 로베르 와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인터뷰하고 레미 말렝그레가 삽화를 그리고 강주헌이 옮겼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역자 강주헌은 서문에서 이런 말을 올렸습니다. "이 책은 지금껏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띤다. 그동안 촘스키 관련 글을 읽으면서 쌓인 궁금점을 프랑스의 두 언론인(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이 우리를 대신해서 촘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시원스럽게 풀어주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촘스키가 지금까지 발표한 글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는 동시에 촘스키 사상의 고갱이와 시대의 통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선 촘스키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지식인의 만행을 폭로합니다. 지식인의 역할이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로 단정 지으면서 그렇게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민주화 되는 과정 중(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분리시키는 일이 어려워 질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 일상에서 나의 뇌리 속에 심어지는 광고 효과와 같을 것입니다. 이를 촘스키는 '인위적 욕구'라고 표현합니다. '인위적 욕구'를 통해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소위 '지식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촘스키가 추구하는 '지식인'은 마음가짐을 바로 갖는 사람입니다. 무엇에 대한 마음가짐인가?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보는 마음가짐이 그것이라는 것이지요. 촘스키는 '저명한 지식인'이 곧 진정한 지식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편 '저명한 지식인'이란 그들만의 고유한 권력체계 내에서 '책임 있는 지식인'이란 직함을 부여받은 사람이란 것인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자칭 '책임 있는 지식인'이라는 망상과 착각에 빠진 것은 어찌해야 할지. 


복잡성이 점점 증대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떤 사안에 대해서 그 누군가가 상황 파악을 지혜롭게 해서 책임지고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한 사람이나 몇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진 결단의 위험을 막기 위해선 책임을 의무화하고 인류 전체가 깨어 있어야 함이 필연이지요. 역사적으로 소위 지식인들의 잘못된 독단 때문에 역사가 유토피아의 실험장으로 만들어진 사례가 제법 많습니다. 그 피해는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매우 길고 크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시 촘스키에게 돌아갑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는 진실을 무엇이라 정의하고 있나 들어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책을 보십시오. 이 책은 지금 의자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꾸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현실을 사실대로 설명 할 때 우리 모두가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이 타이틀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단어가 있습니다. '권력(權力)'입니다. 촘스키는 권력의 중심이 부자나라에 몰려 있다고 합니다. 재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세계무역기구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전쟁무기와 다름 없다고 하네요. 그 이유는 세계무역기구의 목표가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강력한 정부를 원합니다. 그들을 보호해 줄 강력한 정부 말입니다. 2백 년 전, "기업이 정부의 도구이자 정부의 지배자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 제임스 메디슨(미국 공화당 소속 제4대 대통령으로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움)의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합니다. 


최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들어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공급자 중심의 경제로 진행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강력하고 전제적인 힘을 지닌 소수 집단이 초강대국을 등에 업고, 때로는 국가의 정책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일부 경제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촘스키는 미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소말리아 사태, 코소보 사태가 도마 위에 오릅니다. 소말리아 사태에서 미국은 독재자를 지원했지요. 독재정권이 전복되자 소말리아는 무질서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내전과 기아가 닥칩니다. 하지만 미국은 뒷짐 지고 구경만 했지요. 결국 1992년 말 내전이 수그러들고 기아 문제가 해결되면서 상황이 개선되었지만, 인도적 지원은 주로 적십자 활동을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내친 김에 코소보 사태 이야기도 해봅니다. 미국은 미국이 개입할 경우 상황이 악화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코소보 사태에 개입합니다. 나토 군이 폭격을 시작하기 전까지 코소보에서 탈출한 난민들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폭격을 개시했지요. 폭격이 시작 되기 몇 주 전 이탈리아의 달레마(이탈리아 연립정부 수상 역임)는 워싱턴을 방문해서, "폭격을 한다면 수백, 아니 수천의 난민이 더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폭격은 진행되었지요. 그리고 그 후 수천의 코소보인이 고향에서 쫒겨나고 학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만이 범죄국가'라고 단정지어야 할까요?  우리는 안전지대일까요? 이 책을 옮긴이 강주헌은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 중 촘스키와의 이메일 등을 통해 수정 보완 하는 중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미국의 지배 아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제 미국계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은행들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지식인'들 또는 행정, 경제 관료들이 더욱 책임있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도 책임 질 사람없는 나라가 어디 제대로 된 나라이겠습니까? 

책이 의자 위에 있으면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고, 책상위에 있으면 책상 위에 있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 말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촘스키가 이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 것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하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다고 믿을 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 친위대원이 될 수도 있고 성인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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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인생 사전 - 삶의 갈림길에서 꼭 한번 물어야 할 74가지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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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부턴가 내겐 혼자 묻고 답하는 시간이 생겼다. 저녁 샤워를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샤워물을 틀어놓고 오늘 하루를 점검한다. 맘에 안 들었던 부분은 씻어내 버리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나를 다독인다. 어느 날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은 샤워하면서 뭘 그리 중얼거려?' 어떻게 밖으로 들렸나보다. 이렇게 답했다.'응. 기도했어.' 틀린 말은 아니다. 기도하듯이 나를 점검한다. 가식의 옷을 모두 벗어버린 알몸뚱이의 나를 바라보며 다듬는다.

 

 

 

 

 

2. 저자에 대해선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이미 100여 권의 저서를 펴낸 국내 최고의 변화관리, 경제경영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책의 부제는 '삶의 갈림길에서 꼭 한번 물어야 할 74가지'이다. 책은 6챕터로 구성되어있다. 자아사전, 생활력사전, 습관사전, 관계사전, 태도사전, 철학사전 등이다. '사전'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내게 필요한 부분만이라도 찾아서 삶의 힌트를 얻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3. 74 소제목 당 3~4쪽 분량의 글이 담겨있다. 책과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도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이면 몇 꼭지 글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저자 자신이 걸어온 길, 책과 사람의 만남, 그의 꿈과 희망, 일상의 모습 등이 그려져있다. 물론 그 중심은 저자의 깊은 사유와 실천의 삶에서 퍼올린 지혜다.

 

 

 

 

4. "자신을 제대로 아는 일은 성공과 행복을 위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자신의 그릇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채우고 또 채우듯이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미혹함이나 덧없는 것들에 시간과 주의와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지상에서 머무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음을 기억하면서요."   -'나'란 사람의 그릇.
...사뭇 평범한 이야기다. 단지 내것으로 만들지 못하고,'당신 이야기네..'하고 넘어가니 문
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례이다.

 

5. 김난도 교수팀이 여러 해동안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트렌드코리아'는 사회의 심층분석을 통해 제목 그대로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트렌드코리아 2014'에선 2013년 예측내용을 점검하며 '나홀로 라운징(Alone with Lounging)'을 소개한다. - 라운지에 나 혼자다.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만나고 가볍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라운지에 -ing를 붙인 용어이다. 라운징은 장소의 개념에서 조금 더 확대된 개념이다. 김교수팀은 '나홀로 라운징' 트렌드는 휴식과 재미를 통한 자아찾기의 갈망과 점점 개체화되는 사회인구학적 변화가 만나 생성된 것이라는 부언설명을 붙인다. '1인 노래연습장', '홀로여행', '나홀로 영화관람' 등에서 뮤지컬, 라이브 콘서트 등 장르의 구분없이 증가하는 추세다.

 

 

 

 

 

6. 저자는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을 소개하면서 '외로움과의 동행'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외롭다고 해서 사람들을 찾고, 자꾸 외로움을 피하고 없애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좋은 방법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과 대화하는 일이고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멋진 방법입니다.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지요." 내가 해본 결과 좋은 방법이다.

 

7.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 한 가지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68일 정도라고 한다. 어떤 행동을 두 달 남짓 꾸준히 하면 습관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주,객관적으로 좋은 습관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반대로 나쁜 습관은 그리 힘들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그냥 생각없이 하면 된다. 본능에만 충실하면 된다.  "책을 통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삶에서 자극을 받아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동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 동기를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을 구체적인 행동이나 습관을 습관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삶이 그리 먼 얘기만은 아닐 겁니다."

 

 

 

 

8. 저자에겐 아무래도 '독서'의 영향이 클것이다. 저자는 읽고 쓰면서 자신을 만들어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디지털 시대의 독서'라는 꼭지글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서는 '무지의 세계를 환히 비춰주는 등대의 불빛. 자신만의 속도로 온전히 하나의 세계를 만난다.' 저자가 나열하는 독서의 장점에 깊이 공감한다. '독서는 지식을 늘려주고, 사고력을 키워준다. 독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독서는 언어능력을 발달시켜 준다.' 내 생각을 보태면 '독서를 통해 나를 안다. 그리고 당신을 이해한다.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본다.'

 

9. 혼자 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무리 속에 뒤섞인 페르소나는 자기 자신도 잘 못 알아볼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를 의식하면 좀 덜 후회하지 않을까. 연희동에 있는 어느 피자집에 이런 문구를 써붙여놓았다. '사장이 보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을 볼 때마다 맘에 안든다. '내일의 고객이 보고 지나간다'라고 했으면 좋을텐데, 사장은 오직 직원이 꽤 안부리고 일을 잘하느냐 안하느냐에만 관심이 쏠려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피자집은 바로 정류장앞에 있다. 저자의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처럼'이라는 꼭지제목에 붙인 나의 단상이다.

 

10. 이 방법은 우리 모두가 저자의 조언대로 당장 해봤으면 하는 부분이다. '때로는 안테나 끄기'-TV에서 스마트폰까지 적절한 시점에 로그아웃하라. 인생을 지배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서 저는 한 가지 과제를 마치고 또다른 과제를 시작할 때는 중간에 컴퓨터를 끕니다. 집중적으로 업무를 할 때는 스마트폰도 꺼버리지요. 이렇게 '오프'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외부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일종의 의식입니다.".  나는 그날 읽을 책을 완전히 다 소화하기 전까진 절대로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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