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브레인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놀라운 무의식의 세계
샹커 베단텀 지음, 임종기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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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가?

이를 표현하는 말이 따로 있다. 무의식적 편향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사람들의 의도와 불일치하는 상황을 표현한다. 인간의 행동을 이 ‘무의식적 편향’이라는 맥락에서 생각하면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운동선수임에도 왜 과도한 압박감에 시달리는지, 시시콜콜한 일들로 티격태격 다투는 가족은 왜 그런 것인지, 왜 엉뚱한 판단을 해서 자동차 사고와 같은 소소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아주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까지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안 좋은 사건의 연속성까지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숨겨진 힘을 구체화하기 위해 심사숙고하였고, 하나의 새로운 용어 즉, ‘숨겨진 뇌’라는 말을 만들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숨겨진 뇌라는 말이 우리의 두개골 안에 있는 어떤 비밀요원이나 최근에 밝혀진 뇌 모듈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숨겨진 뇌’는 우리가 깨닫지는 못하지만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다양한 영향력을 가리키는 그 무엇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우리가 왜 의식적인 뇌와 숨겨진 뇌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규칙적으로 두 종류의 경험 즉, 새로운 경험과 익숙한 경험에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의식적인 마음은 합리적이며, 신중하고 분석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서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이해되고, 문제를 푸는 법칙들이 발견되고 난 후에도 문제에 맞닥뜨릴 때마다 매번 다시 심사숙고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 것이다. 숨겨진 뇌는 휴리스틱(heuristic, 안정감을 안전함과 연결하고 불안을 위험과 연결시키는 마음의 지름길)의 달인이라고 한다. 숨겨진 뇌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하기위해 마음의 지름길을 잘 이용한다.


숨겨진 뇌는 발음하기 쉬운 기업의 이름들을 안정감과 연관시켰고, 발음하기 어려운 기업의 이름들을 불안감과 연관시켰다. 안정감은 투자자들이 특정 주식을 선택하며 그 주식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던 이유인 친숙함이나 안전함과 연결되었다. 불안함은 투자자들이 특정 주식들을 피하고, 주식을 과소평가했던 이유인 위험이나 생소함과 연관되었다. 휴리스틱을 낯설고, 알지 못하는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야말로 트러블을 일으키게 된다.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보기위해 계획적으로 행동을 조작했던 심리학자들과 달리,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의 조절은 대부분 일상적인 대화 과정 중에 무의식적이고 무심결에 일어난다. 나는 당신의 무의식적인 신호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한 연구결과를 보면, 네덜란드의 에플 비즈라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가 고객들의 주문내용을 반복해서 말할 때마다 그녀의 팁이 올라갔다. 평균적으로 140 퍼센트 이상의 팁을 주었다. 이러한 방법은 최근 대부분의 외식업소나 서비스부문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또한 숨겨진 뇌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속 좁은 이기심에 조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전측두엽은(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되고 우리에게 전해진 뇌의 한 부분이다. 타지마할과 에펠탑, 우주선과 고전예술, 법과 정부, 즉 문명 자체가 이러한 뇌영역의 산물이다. 우리 사고의 대부분을 바로 이 영역이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사물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선택하고, 판단을 내린다. 뇌의 나머지 영역과 마찬가지로 전측두엽이 수행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이다. 이 영역으로 인해 인간은 사회적 상황 판단 능력과 미적 판단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영역은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숨겨진 뇌는 규칙들을 몸에 익히고 그 규칙들에 따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숨겨진 뇌는, 이름 자체가 주는 은밀한 분위기나 어둠의 요소가 아니라 착하고 밝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숨겨진 뇌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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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
린 맥타가트 지음, 진선미 옮김 / 허원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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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한다.  의사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안 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몰라서 못해주는 부분보다 역설적으로 너무 많이 알아서 못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진짜 모르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자존심 강한 의사라는 부류는 몰라도 모른다고 인정을 잘 안 한다. 그래서 스스로도 모르는 것이 없는 줄 착각한다.


이 책은 의사들이 별로 읽고 싶지 않다거나, 폄하서적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기술이 아닌 인술(仁術)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은 내용이다. 저자 린 맥타가트는 현대의학의 신념에 과학적 의문을 제기한 저널리스트이다. 영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한 건강전문잡지 〈What Doctors Don't Tell You〉의 편집인이며 발행인이다. 저자는 제도권 의학이나 대체의학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좋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 의료인이 의학 관계 서적을 집필한다는 자체가 모험이다. 그 수많은 전문용어와 의학적 지식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하게 언급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내용은 의료인이 집필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내용의 깊이가 상당하다.


책은 전체적으로 6파트로 구분된다. 1)의료속의 거짓과학 - 현대의학의 비과학성을 고발한다. 2)인간에서 기계로 옮겨간 진단의학. 3)예방의학의 오류. 4)과잉치료의 진실 5)수술 만능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6)자기조절을 통한 건강관리에서는 자가 치유의 신비를 소개한다.


이 책이 씌어진 것은 저자의 실제적인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한 때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저자는 살아가면서 몇 차례의 걸쳐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살아가며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 상당히 오랫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주위 사람들의 죽음, 본인의 결혼, 이혼, 실직 등의 사건을 겪으면서 머리칼도 자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날로 쇠잔해져갔다. 수 없이 많은 질병들(가히 종합병원이라는 말을 붙일법한)을 치료하기 위해 기본의학은 물론 “급기야 영양사, 동종요법사와 같은 주변의료를 거쳐 결국에는 호흡전문가에서 기전문가와 같은 의료의 가장자리까지 다녀보았다”


“처음 발병한 후 몇 해가 흐른 1987년 여름에는 절망이 나를 덮쳤다. 정확한 진단을 모른 채 오랫동안 몸이 아플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거나 내가 호소하는 증상이 꾸며낸 것이며, 애들처럼 관심을 끌어보려는 태도라는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내심이 필요한 나라에서는 암이나 한센병처럼 어려운 병이 아니라면 병을 안고 살아갈 방법을 배우거나 문제가 있어도 불평하지 말고 조용히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저자는 본인의 병이 불치병이 아니라, 치료의 방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축적되면서 면역체계가 무너져서 온 병.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물질들이 매일 내 몸을 오염시키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식습관도 엉망이었고 여러 가지 영양소가 부족했었다. 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동안 잘 견딜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약과 특별히 엄선한 식품보조제 한 보따리를 먹고 나서야 나는 신선하고 가공하지 않은 치료용 식사를 조금씩 하게 되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세탁소 주인이 내게 피부 관리를 받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나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 후에도 상당한 시간을 몸을 회복시키는데 보내야했다. “치료 기간 동안에 나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과학과 치유의 기술은 물론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은 환자가 자신의 치료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스스로하고 환자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때 더 잘 회복되는 것 같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되고 함께 책임질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될 수 있었다. 나는 약이나 수술 없이 단지 식습관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였다. 치유란 올바른 약과 수술방법을 찾아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자신의 생명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복잡한 과정이다.” “의료는 과학적 근거나 상식이 아니라 맹목적인 신념에 너무나도 많이 의존하고 있다.”


마지막 챕터 ‘자기 조절을 통한 건강관리’는 건강과 의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의사들 중에서도 현대 의학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비판하면서 실제 임상에서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영양의학의 적절한 운용은 부작용이 없으면서 인체의 균형감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은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민감하다. 제약회사와 상업적 의사그룹, 정부관료 들의 마피아적 결속감은 때로 희극적인 비극(?)을 연출한다.

“정부기구들은 영양의학을 범죄 비슷하게 취급한다. 1993년 5월, 워싱턴주 켄트에서 방탄조끼를 입은 미국 식품의약청 소속 직원들이 총을 겨냥한 경찰의 엄호를 받으며 영양치료사 조나단 라이트 박사의 클리닉을 포위했다. 그들은 노크도 하지 않고 한 사람이 마치 코만도처럼 문을 발로 차며 들어가는 것을 신호로 사방의 출입구를 강제로 열며 무장경찰과 단속 직원들이 클리닉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라이트 박사의 죄명은 비타민 주사제 사용이었다.”


비타민과 식품은 예방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질병의 발생에도 식품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유방암 전문의 마이클 바움 박사는 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래에는 암으로 진단받는 즉시 모든 암세포들을 대포를 쏴 몰아내어 해결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 신체의 자연방어기전을 조절하여 역학적 균형을 이루어 질병을 치유하는 좀 더 정교한 방식이 될 것이다.”

저자의 다음 말은 우리가 의사 앞에서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환자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의사에게 무언가를 질문하면 그의 권위를 해치는 행위며 매우 무례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의사와 환자의 이와 같은 특수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당신이 배관공이나 목수에게 집수리를 부탁하며 무례한 일인 것 같아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매우 소극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의사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술을 제안할 때 우리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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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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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하늘엔 별들도 많고 이 세상엔 읽어야 할 책도 많다.


장정일의 8권 째 독서일기이다. 저자의 원래 포부는 60세가 될 때까지 20여권이 넘는 『독서일기』를 내는 것이었고, 그때까지 같은 제목을 유지하려했었는데, 책도 많이 못 내고 책 제목마저 바꿔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한다.


“책제목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나의 독서 버릇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빌려 읽기가 너무 아까운 좋은 책이나, 다 읽고나서 필히 곁에 두어야 할 책을 뒤늦게 산다. 이런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책 가운데는 읽고 나서 버려지는 것들도 많다. 책을 읽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듯 버리는 일도 그럴 것인데, 내가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외출을 할 때 버릴 책을 미리 준비했다가 아무 공중전화박스의 전화기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 요즘 공중전화박스는 휴대폰 통화자가 잠시 소음을 피해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들르는 공간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리라.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사이로 난 길이다.”


참 희한타. 저자가 책에 올린 독후감은 내가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책들이 많다. 이런 책도 있었나 싶다. 그래서 더욱 책 읽기가 흥미롭다. 소위 베스트셀러 서적하곤 거의 담을 쌓았다. 참 재주도 좋다. 어지간히 읽히지 않을 책들만 튀어나온다.

책 제목만 적어본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암베드카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재스퍼존스가 문제다’ ‘불쏘시개’ ‘돈가스의 탄생’ ‘꿈의 노벨레’ ‘장미와 씨날코’ ‘폭주노인’ ‘또라이 제로조직’ ‘게공선’ ‘황천의 개’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 ‘단두대에 대한 성찰’ 등등.


글을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다.

책의 마지막 글이 그렇다. 「사라지지 않을 ‘책 문화’를 위하여 / ‘나쁜 책’을 권해도 무방한 계절은 없다.」이다.

“여름철을 맞아 국립중앙도서관이 일반인들을 위해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80선을 선정, 발표했다. 그런데 그 목록을 보는 순간, 방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 (.....)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가 추천했다는 ’좋은 책‘의 면면을 살펴보니, 도무지 내가 읽고 싶거나 지인에게 권할 만한 책보다, 외면하거나 말리고 싶은 책이 대부분이다. (....)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80선’ 에 붙은 댓글은, 몇 년 전에 국방부가 23권의 금서를 선정했을 때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댓글과 천양지차다. (......) 국방부 덕분에 급기야 해당 도서들의 판매량이 모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 가운데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은 기사가 나온 다음 날, 판매부수가 전일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났다니, 만성적인 불황에 허덕이던 출판계는 국방부의 ‘뻘짓’으로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특수를 맞았다. 이 무슨 무도(武道)의 시대란 말인가? 무반(武班)이 읽지 말라고 선정한 금서가 문반(文班)이 추천한 책보다 훨씬 낫다면, 앞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은 ‘좋은 책’선정을 매번 국방부에 위탁하는게 좋겠다. (.......)

국립중앙도서관에 변명을 해보라면, ‘여름휴가에 맞는 부담 없는 책’이 선정기준이었다는 해명을 할 것이다. 일면 이해가 되나, 그 기준으로도 수준은 있어야했다. 여름휴가에 맞추어 이런 일을 하려는 사서들이 잊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매년 우리가 맞게 되는 여름은, 인생의 덤이 아니다. 여름에도 우리는 먹고, 사랑하고, 싸움하고, 죽는다. 여름이라고 불량식품을 가리지 않고, 헤프게 사랑하고, 건성으로 싸우고, 개죽음을 환영할 사람은 없다. 여름에도 생은 지속된다. 다시 말해 쓰레기 같은 책을 권해도 무방한 계절이란 없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관공서나 공무원들이 명예훼손으로 시민을 고소하는 사태가 미친 개 식은 밥 삼키는 듯하다. 그러니 ‘정권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거나 비판적인 책은 하나도 없다’나 ‘청와대 눈치보며 골랐네’라고 쓴 누리꾼들은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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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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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는 6만 5천여 자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사기」에는 10만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이 『장자』제1편 소요유(逍遙遊)이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이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릴없이 거닌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무도(舞蹈)에 가깝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작 그 자체가 목적이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 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장자』를 읽는 독법이 대체로 ‘소요유’와 ‘자유’의 측면에 과도하게 치우쳐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저자 강신주는 장자를 새롭게 해석하면서(이미 장자와 관련된 책을 세 권이나 출판했다고 함)망설임도 있었지만, 『장자』에 등장하는 아나키즘적 전통에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결단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앞서의 책과 다른 좀 더 전체적인 시선에서 장자의 문제의식, 철학적 해법 그리고 정치철학적 함축들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장자』에는 노자사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매우 혁명적인 사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망각과 연대의 실천철학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아주 근본적인 사유이지요. 망각과 연대는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소통(疏通)이라는 말로 정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통이라는 개념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와 혼동하지는 마십시오. 커뮤니케이션은 어원 그대로 어떤 공적인(communis)영역의 권위를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자유로운 혹은 야생적인 개체를 주어진 공동체의 규칙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이와 달리 소통은 글자 그대로‘막힌 것을 터버린다’는 뜻의 소(疏)와 ‘새로운 연결’을 뜻하는 통(通)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개념입니다. 결국 이 개념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극복하여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소통이란 개념이 혁명적인 뉘앙스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진다. 장자와 철학, 해체와 망각의 논리, 삶의 강령과 연대의 모색 그리고 보론으로『장자』읽기의 어려움, 노자와 장자가 다른 이유가 실려 있다.

“장자는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불가능한 듯 보이는 과제를 자신의 철학적인 문제로 끌어안고 집요하게 사유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자가 제안했던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많은 우회로를 거칠 필요가 있다. 장자와 우리 사이에는 2천 년도 더 지난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와의 대화에서 도움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비트겐슈타인과 레비나스 라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타자성이라는 문제에 있어 두 사람만큼 장자에 필적할 만한 사유를 전개했던 철학자도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자 이해를 위해 현대 철학자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 시점에서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장자의 사유가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화해될 수 없는 두 원리가 실제로 마주치는 곳에서, 각자는 타자를 바보니 이단자니 하고 선언한다. 나는 내가 타자와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그 타자에게 근거들을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물론 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디까지 가겠는가? 근거들의 끝에는 (결국)설득이 있다.

-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타자와의 관계는 공동체와의 전원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며, 우리가 타자의 입장에서 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공감도 전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에 대해 외재적인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는 하나의 신비와의 관계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외재성이며 혹은 그의 타자성이다. -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장자도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들보다 앞서 타자를 발견했고 그 문제를 끈덕지게 사유했던 철학자이다. 어느 경우든 타자의 발견이란 사건은, 나 자신이 나만의 규칙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적인 사태이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비트겐슈타인이나 레비나스를 넘어서는 어떤 측면이 있었다.

장자는 우리가 타자와 적절히 소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사유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우린 장자의 구체적인 제안들을 들을 만함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조급한 마음의 독자들을 위해서 장자가 제안한 한 가지 방법을 살짝 엿보도록 하자.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를 자신의 수레로 삼아 그것과 노닐 수 있도록 하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것’ [不得己]에 의존해 중(中)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 「인간세」


且夫乘物以遊心, 託不得已以養中, 至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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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3 -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 시가 내게로 왔다 3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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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본다. 저자 김용택 시인의 촌평 내지는 감상부터 적어본다.

“유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등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배짱도 좋다. 영화판이 어떤 곳이라고 거기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 유하는 가슴속에 잉잉거리는 호박벌 떼를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호박벌 떼를 가두어놓고 있으니, 속이 얼마나 잉잉거리고 복잡하고 뜨겁겠는가. 그는 그런 자기의 속을 황홀한 감옥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지옥

-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


윤제림 시인의 시를 옮겨본다.


[가족]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 한 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원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 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랫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저자의 멘트를 본다.

“이 시에 대해서 할 말 없다. 이 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은 각자가 알아서들 하고, 할 말들 다 각자 알아서 하라.”

그래서 내가 몇 마디 덧붙여본다. 이 시의 1연과 2연의 공통점은 ‘딱 한번’이다. 한번씩 밖에 안 입은 옷들이다. 시인의 서운한 마음? 아니다. 그런 건 안 보인다. 그냥 정겹다. 여유롭지 않은 삶 속에서 어렵게 장만한 옷 한두 벌,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온 식구들 거다. 같은 상황도 해석하기 나름이고, 소화시키기 나름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이 ‘가족’이다.


이 책의 저자 김용택은 시인이자 선생이다. 선생은 2008년도에 정년퇴직했다.

책 띠지에 있는 저자 사진은 그의 나이를 다시 보게 만든다. 동안이다.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진짜 웃음이다. 1948년생이니까 64살?

정년퇴임 스케치를 일간지 문화면에서 본 듯하다. 그가 가르쳤던 초등학생이 성년이 되어서(시인이 되었다던가?)퇴임식에 참석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 같다. 산골에서 선생을 하면서 문학에 빠져들어 14년을 혼자 공부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외 8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여러 권의 시집, 산문집을 출간했다.

산골마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단순히 ‘지도’라고 표현하기엔 그의 역할이 컸다)순박하고 부드러운 그 마음속에 시 씨앗을 심어주었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보고 가슴이 찌르르 하던 기억이 있다. 김용택의 책상엔 로댕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살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는 자존심과 열정, 그리고 의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 시집은 그가 평소 아껴온 시들을 모으고 그만의 감상평을 붙인 시선집 이다.

앞서 출간된 『시가 내게로 왔다』 1,2권은 우리나라 근대 서정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 이용악에서 박용래와 김수영, 서정주와 고은을 거쳐 장석남, 유하에 이르기까지 근대 초창기 시에서부터 근, 현대 시사(詩史) 100년에 빛나는 아름다운 시들을 두루 엮었다.

이 책은 그 시리즈 3권이다.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라고 되어 있다. 저자의 아는, 모르는 시인후배들의 시작품이리라. 이 책에서처럼 현시대에서 시를 자아내는 젊은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봄직하다. 저자의 감상평은 덤이다.



‘엮으면서’중 일부를 옮긴다.

“모아진 시들을 다 읽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나는 딴 세상에 와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답답한 굴속에서 막 빠져나온 후련함을 맛보았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는 쉽게 말해왔다. 우리 시가,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쉽게도 젊은 시인들을 외면해왔다. 추억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고 이것저것 쓸데없이 ‘보수’하게 만든다. (‥‥) 젊은 시인들의 시 속에서 나는 근대를 넘어선 현대의 짙은 음영을 본다. 자본이 만든 도시의 음울하고 잔인한 음모가, 그 검은 손길이 인간을 넘보는 불안과 긴장의 냄새를 맡는다. 정말 너무나 난감해서 감당하기 힘든 문명 이전 같은 이 야만의 시대에 낯선 시들이 찾아와 나를, 내 온몸을 떨게 한다. 시인에게 꿈은 욕이다. 그러나 이 어인 헛것인가. 저기 저 강굽이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흐르는 물 위로 늘어져 물을 보며 새 눈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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