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사 -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통찰
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 박수철.유수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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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언어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어느 한 사람이 어딘가에서 최초의 단어를 내뱉었고, 다른 누군가가 그 말을 이해했다? 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문자로 기록 될 수 있는 것만 언어일까? 식물도 말을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통상 말이라고 표현하지만 동, 식물 간에도 엄연히 소통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단지 우리가 입에서 내는 소리만 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스티븐 로져 피셔(Steven Roger Fischer)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 소장으로, 100여권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하고 편집했다.

이 책은 『문자의 역사』『읽기의 역사』와 함께 언어에 대한 그의 탐구를 정리한 3부작 중 하나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에서 현대를 거쳐 미래까지, 모든 동물의 언어에서 인간의 언어까지,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다른 언어학 관련 서적에 비해 다른 면이 있다. 다른 책들은 잘 알려지거나 재생되고 있는 인류의 언어들에 대한 언어학적 변화를 전문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 책은 인간의 언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생물의 언어까지 아우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조류와 고래류, 영장류를 대상으로 행해진 혁신적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언어의 역사에는 인간 언어외의 언어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원시 형태의 언어들은 여전히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 존재를 깨닫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연계의 의사소통들을 감지해내는데 현대 기술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실험에 정밀한 모니터 징비들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외 동물의 ‘언어’라는 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단지 실제적으로는 비언어인 것에서 언어적인 면을 억지로 읽어내어 동물들에게 언어를 ‘부여’하고 있을 뿐인가?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야생에서 이루어지는 대형 유인원의 의사소통은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유인원사이의 의사소통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몸짓 언어와 소리의 풍부한 결합으로 구성되는 반면, 후자는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해서 인간의 상징기호나 단어에 유인원이 반응하게 만든 것뿐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험이 행해진 결과,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일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아무리 매개수단이 인위적이고 그 결과가 훈련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동물 사이에 의미 있는 정보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이미 존재하는 신경통로를 이용해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와 대화를 나눈다.


인간의 음성 언어 역사에서 핵심이 되는 근본적인 의문이 두 가지 있다. 어떻게 ‘단어’가 출현했으며, 어떻게 ‘구문체계’가 생겨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문제에 가장 잘 대답하기 위해서는 언어 보편소들을 조사해볼 수밖에 없다. 가장 기본적인 ‘어휘목록’은 그 표현법이 개미는 페르몬으로, 꿀벌은 춤으로, 호미니드는 음성언어로 각기 다를지라도 모든 생물이 똑같이 공유하는 법이다. 그러나 유아의 음성 어휘목록 속 어휘들은 더 긴 구조의 문장으로 결합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단어로 설명되지도 못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의 언어처럼 유아의 언어에는 구문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어린이들에게는 ‘내재적 소인’이 있어서 문장을 만들 때 어떤 공식적인 원칙을 저절로 선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인공 언어가 이러한 원칙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으면 인공 언어는 익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통의 어린이가 자연 언어를 익히는 것만큼 ‘쉽고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가설은 실험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내재성’이라는 개념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이 개념은 역동적인 사고 과정에서 유추되는 보편적인 언어의 특성을 규명하기보다는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내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음성언어는 수십만 년에 걸쳐서 인간의 뇌와 발성기관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다. 인간의 뇌 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말이 더욱 명료해졌고 이와 동시에 화학적 신호나 몸짓 언어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졌다. 이렇게 되자 발성기관은 더욱 특화되었고 말의 발달로 사회는 더 복잡해졌으며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뇌 용량은 더욱 늘어났다. 이렇게 인과관계는 양방향으로 작용했다. 한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을 촉진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낸 것이다. 점진적인 진화의 속도에 발맞춰 원시적인 사고와 말은 더욱 정교한 사고와 말로 발전해갔다. 현대의 인간 언어도 이런 식으로 계속 진화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원시적인 화학적 신호나 몸짓 언어는 거의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물러난 듯 보인다.


언어적 분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형적 분류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계보적)분류이다. 유형적 분류는 특별한 언어적 현상을 기반으로 해서 언어를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 같은 언어는 고립어에 속한다. 고립어는 단어 하나가 하나의 형태소(뜻을 가진 최소의 언어 단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가 많은 형태소로 이루어져있고 그 경계가 불분명한 언어도 있다. 이런 언어를 굴절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라틴어를 들 수 있는데, 문장에서의 쓰임새에 따라서 하나의 단어가 corporis, corpori, corpore 등으로 형태가 달라진다. 세 번째 유형의 언어는 교착어로, 하나의 단어가 많은 개별적인 형태소로 이루어지는 언어이다. 또한 이 형태소에는 독립형태소와 종속형태소가 있다(영어의 ‘drive'처럼 홀로 설 수 있는 형태소는 독립형태소이고, 영어 ’driver'의 ‘~r'처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홀로 설 수 없는 접미사 같은 것들이 종속형태소이다).


문자언어의 세계를 더듬어본다.

약 4,000년 전에 익명의 수메르 사람이 “입과 손이 서로 어울리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서기이다.”라고 점토에 새겨 넣었다. 문자는 말없는 그림으로부터 서서히 ‘진화’하지 않았다. 문자는 애초부터 실제적인 인간의 말의 도해적(圖解的) 표현으로 출발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남아있다. 심지어 자칼에게 불멸의 생명을 부여한 기원전 3400년경의 가장 오래된 이집트 성각문자(hieroglyph)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칼’이라는 이집트어 단어를 즉각 떠오르게 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레너드 블룸필드는 “언어과학은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의 한 수단이다.”이라고 썼다. 그 수단은 수천 년을 가로지른다. 문어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고대인들은 인간의 말을 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로 신성시했고, 그런 믿음은 아직도 서로 무관한 여러 문화에서 남아 있다. 체계적인 언어 연구는 기원전 1000년기에 인도와 그리스에서 출발했고, 지금까지 상호보완적인 전통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라틴어로 번역한 그리스어 문법용어, 즉 명사. 대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관사. 타동사. 자동사. 어형변화. 격변화. 시제. 격. 성(性). 주어. 목적어 등은 지금도 대부분의 서양사회에서 언어를 설명할 때 쓰인다.


저자는 결어(結語)를 이렇게 맺고 있다.

“언어는 인류의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학자 로버트 딕슨의 말이다. 아닌게아니라 인간사회는 언어 없이 상상하기 어렵다. 언어는 우리 삶을 규정하고,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나타내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원천이다. 그러나 언어는 영구적, 안정적, 고정적 존재가 아니다. 줄기차게 흐르는 역사의 강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부단한 흐름 속에 있고, 끈질기게 변하고,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바꾸고, 죽어가고, 생기를 되찾고, 자란다. 비록 수천 년에 걸친 언어 변화의 일반적인 특징을 확인 할 수는 있지만, 개인용 컴퓨터 같은 기술혁신을 통해 변화 자체의 동력이 바뀌어 전례 없는 양상의 언어 변화가 나타날 수 도 있다. 이런 식으로 언어는 인간사회의 가장 가변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으며,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는 한 항상 언어는 존재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언어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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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혁명 - 소셜이 개인의 화두라면 클라우드는 기업의 화두이다
찰스 밥콕 지음, 최윤희 옮김, 서정식 감수 / 한빛비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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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기업의 데이터를 외국에 보관한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다. 편견과 터부(금기)를 깨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한국은 아시아의 데이터센터 허브가 될 것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30일 일본 통신기업 소프트뱅크와 공동으로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자국 데이터는 자국에 저장, 관리 한다는 정보기술(IT)의 오랜 관행이 깨지는 순간이다. - 동아일보 (20110531)
(이런 결정을 내린 요인 중 이번에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노로도는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모든 병을 낫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이지요.” 그렇지만 노로도는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한 셈이다. 프라이빗 클라우드는 기업 데이터센터에서 하나로 관리되는 가상화된 서버의 클러스트이다. 클라우드 클러스트는 작업 부하가 심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확장되거나 축소 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만병통치?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IST)이 내린 클라우드 컴퓨팅의 정의를 본다.
“클라우딩 컴퓨팅은 관리에 필요한 노력이나 서비스 공급업체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빠르게 설정하고 사용할 수 있는 컴퓨팅 리소스(네트워크, 서버, 저장장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등) 공유 풀에 네트워크를 필요할 때마다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모델이다. 사용 가능성을 여러모로 확대하는 클라우드 모델은 기본 특징 다섯 가지와 서비스 모델 세 가지, 배포 모델 네 가지로 구성된다.

(기본 특징)
* 주문형 셀프서비스(On-demand Self-service)
* 폭넓은 네트워크 접근성(Broad Network Access)
* 리소스 풀(Resource Pooling)
* 빠른 신축성(Rapid Elasticity)
* 측정된 서비스(Measured Service)

(서비스 모델)
* 서비스형 클라우드 소프트웨어(SaaS, Cloud Software as a Service)
* 서비스형 클라우드 플랫폼(PaaS, Cloud Platform as a Service)
* 서비스형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IaaS, Cloud Infrastructure as a Service)

 

(배포모델)
* 프라이빗 클라우드 (Private Cloud)
* 커뮤니티 클라우드 (Community Cloud)
* 퍼블릭 클라우드 (Public Cloud)
*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Hybrid Cloud)

(주)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는 중립성과 느슨한 결합, 모듈성, 의미 있는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 지향적으로 변해 클라우드 패러다임을 완전히 활용한다.
‘소셜이 개인의 화두라면, 클라우드는 기업의 화두’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 찰스 밥콕은 IT 전문잡지 〈인포메이션위크〉의 전문기자이다. 〈컴퓨터월드〉, 〈인터렉티브위크〉에서 근무했으며 〈디지털 뉴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밥콕은 시러큐스 대학에서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베이스라인매거진〉의 커버스토리 ‘맥버스트, 맥도널드 그룹의 컴퓨팅 시스템 개조 실패 사례’로 2003년 제시 닐 비즈니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1979년 설립된 〈인포메니션위크〉는 IT미디어의 선두주자로 실용적이고 시사성 높은 IT 이슈나 트렌드에 대한 분석 기사를 제공한다. 2백만 명이 넘는 웹사이트 방문자, 44만 명이 넘는 잡지 구독자가 〈인포메이션위크〉를 읽는다.

이 책의 감수자 서정식(KT 클라우딩 컴퓨팅 사업 총괄)은 크라우딩 컴퓨팅의 시작을 ‘구름 속에서 혁명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또 다른 IT 혁명이자 최근 가장 큰 바람을 몰고 있는 트렌드이다. 리서치 및 자문회사 가트너가 설문을 통해 선정하는 10대 IT 트렌드에서 클라우딩 컴퓨팅은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1위에 선정되었다. 가트너가 10대 IT 트렌드를 선정한 이래 2년 연속으로 1위에 선정된 것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최초였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논란은 진행 중이지만 그 바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서정식은 이 책이 클라우드가 만들어내는 의미와 전략적 가치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는 최초의 클라우드 전략도서라고 평하면서 ‘감수의 글’ 말미에 다음 같은 글을 적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그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많은 경우 정보가 문서로 출판되는 동안 한 단계 더 진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내용이 거의 2010년 중반 이후의 정보로 구성되어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가 되어 줄 것이다. 아마존이나 구굴 등 클라우딩 컴퓨팅 선도업체들은 자신들의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를 절대 공개하지 않으므로 어떻게 어느 규모로 구성되고 운영되는지 짐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궁금증을 상당히 현실성 있고 깊은 검증을 통해 많은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대부분의 신생기업이나 기술들은 앞으로 더 눈여겨봐야 할 것들이다.
 유칼립투스, 네뷸라, 고그리드 등은 한국에서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글로벌 클라우드 업계에서는 상당히 주목받고 있다. 향후 이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계속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흥밋거리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몇 군데를 인용해본다.
 

“최근에 거리에서 아이폰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주변 차량들조차 신경 쓰지 않고 걸어오는 행인과 부딪친 적이 있는가? 이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다. 클라우드에서 흘러나올 다양하고 깊이 있는 서비스는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 안에 소형 디지털기기 화면에 펼쳐지는 새로운 문화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문학, 예술, 영화와 같은 영향세력은 부차적인 차원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회의론자들마저도 역사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마지못해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같이 치열한 디지털 문화혁명에 맞서 당신의 회사가 차지할 위상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클라우드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지 이해한다면 다가올 시대에도 계속 살아남아 발전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클라우드를 깨우다

“마이클잭슨닷컴(MichaelJackson.com)스토어의 경우 스토어 사이트상에서 한 번에 쇼핑객 200명의 거래를 처리하고 댓글을 기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자 사이트에는 음악 구입을 원하는 팬들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댓글을 남기기를 소망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소니 뮤직은 24시간 동안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밀어닥쳐 마이클 잭슨 뮤직 스토어에 접속하려 애쓰는 사태를 지켜봤다. 많은 이들이 댓글을 남기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서버가 다운되지는 않았지만 앨범 세부정보를 확인하려는 이들 모두가 해당 정보를 제공받을 수는 없었으며, 트래픽이 사이트를 이미 압도하는 바람에 음악을 구매하고자 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구매하지 못했다.
(.........) 소니뮤직의 최고경영진은 자사의 음악 사이트에 대한 접속이 원활하지 못해 구매 희망고객이 먹통이 된 사이트에서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고 기다려야하는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훨씬 다 많은 서버 공간과 더 넓은 대역폭을 구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클라우드(Cloud)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구름에서 엄청난 비를 쏟아 부을지? 아니면, 그 구름이 걷히고 강렬한 자외선을 쏟아부어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엄청난 변화의 시대 중심에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닐지라도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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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아플까 - 몸과 마음의 관계로 읽는 질병의 심리학
대리언 리더 & 데이비드 코필드 지음, 배성민 옮김, 윤태욱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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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병에 걸리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가?
이러한 질문을 놓고 정신분석학자와 과학자가 질병의 비밀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다.

이 책은 과학적 분석과 신뢰 가는 결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학과 함께 심리학과 정신의학적인면의 경계면에 서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개하고 있다. 공저자의 일인인 대리언 리더는 정신분석가가 증상이나 억압 같은 정신분석학의 개념보다, 환자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사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것을 촉구한다.

이 책은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난 감정이 신체 질병의 발생은 물론이고, 질병의 경과가나 치료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다. 또 우리의 무의식과 상징이 질병에 끼치는 영향을 다룬다. 대리언 리더는 라캉과 프로이트를 연구하고 임상에서 정신분석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코필드는 응용수학, 수학철학,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응용수학에선 인체와 관련된 통계를 가지고 질병을 설명하며, 정신신체의학에 속하는 현상들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은 왜 병에 걸리는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병을 걱정하는 태도도 병을 유발할 수 있다. 여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체험을 처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인간은 문제를 처리하는 존재이다. 선사시대 동굴 벽에 새겨진 사냥 그림에서 감방 벽에 새겨진 낙서까지 인간은 여러모로 사건을 기록한다. 말하기와 쓰기는,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말하고 쓸 수 없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몸의 질병이 소통양식을 대체하는 사례가 있을까?

이 문제를 탐구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 무엇보다 정신신체질병(psychosomatic illness)은 없다. 주요 질병 가운데 오직 마음의 문제 때문에 걸리는 병은 하나도 없다. 마음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질병도 없다. 결국 몸과 마음은 잠재적으로 얽혀있다.”

“신체증상이 같아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일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으며, 심리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도 서로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개개인에게 어떤 요인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물론 몸이 쉽게 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별을 경험하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등 ‘생명’과 같은 소중한 것을 상실하게 될 때 특히 위험하다. 우리는 힘들고 때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하면 우리 몸은 쉽게 망가진다. 그렇게 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뚜렷한 원인 없이도 건강이 쉽게 나빠진다.”

“환자들은 짜증을 자주 낸다. 일반 의사들이나 전문의의 빡빡한 스케줄에서 환자는 그저 한줄짜리 일정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입원환자는 의료진이 자신과 소통하는 방식보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에 더 만족한다고 한다. 일반 진료에서도 컴퓨터가 점점 더 많이 사용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서 키보드로 자주 자료를 입력한다는 뜻인데, 그러다보니 환자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환자가 초진을 받을 때 의사가 입을 떼기 전에 환자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23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언론매체에서 새로운 질병을 소개하면서 이런저런 의학적 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건강 서적이 늘어나면서 질병의 명칭도 확실히 늘고 있다. 절대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증상도 지금은 질병이 되었고, 심지어 20세기 후반에는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인도 아예 질병으로 분류된다. 고혈압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잠재 변수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질병이 되었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임상적 비만도 다른 질병을 유발 할 수 있는 요인이었지만, 오늘날은 이것들 자체가 질병이다. 위산 역류도 질병 목록에 추가되었다. 위산 역류는 그저 평범한 속 쓰림 증상이었지만,지금은 위산 역류질환으로서 질병 목록에 올랐다. 새로운 명칭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는 더 쉽게 약을 요구할 수 있다.”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룩생크는 1931년 영국 의학심리학 학회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언젠가 감정에 북받쳐 우는 것도 ‘발작 눈물 흘림 증상’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이 질병은 손수건과 소금기 없는 식단, 수분 섭취 제한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눈물샘을 초기에 없애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프랜시스의 농담은 정말 실현되었다. 이런 연유로 안과 의사를 찾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안과 의사에게 이런 말만 들었다. “당신은 지금 우는 겁니다!”

의사가 아는 해부학과 환자가 생각하는 해부학은 다르다. 환자는 특정 부위가 아프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의사가 살펴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환자는 특정 부위의 장기가 아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장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19세기에 의사들은 이런 문제를 세세하게 연구했다. 그들이 보기에 환자가 느끼는 몸은 해부학에서 말하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가 지적하는 아픈 부위나 장기는, 적어도 환자 본인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다.

단어가 상상 속의 몸을 이룬다.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 “저 사람은 눈엣가시여.” 이런 표현은 정말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 증상이 일어난다고 상상하는 신체부위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이탈리아 이민자가 세운 로세토라는 마을이 있다. 이민자들은 19세기 후반 남부 이탈리아 로세토 발 포르토레 출신이다. 로세토의 인구는 1,600명 정도 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몇 년 동안 건강 조사를 하고 이웃 마을과 비교 연구한 결과,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률은 신기하게도 이웃 마을이나 미국 전체와 비교해도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로세토 주민들은 특별한 건강식을 먹지도 않는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흡연량도 이웃 마을과 같았다. 하지만 연구자는 로세토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상부상조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의 자녀도 부모만큼 건강했다. 하지만 로세토를 떠난 이민자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게 병에 걸렸다. 사실 이와 비슷한 스터디 결과는 종종 있어왔다. 여러해 전 일본의 최고 장수마을인 오키나와에서 연구된 결과물도 같은 결론을 냈다. 섭취하는 음식물, 환경 등도 장수의 요인으로 거론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네트워크가 많을수록 건강하고 장수했다는 리포트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환자가 될 수 있다(이미 환자인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우리의 내러티브를 의료 체계에 도입해야한다. 하지만 의료계가 내러티브를 다루려면 많은 것을 구비해야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저런 일을 해볼 수 있다. 질병 이론과 치료 사례를 조사할 때 우리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개인사를 표현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을 위한 조건이 있다. 환자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의학 훈련의 근본 문제를 꼬집어보자. 의사에게 가장 적절한 배경 지식이 꼭 자연과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듣고 해석하는 기술을 철저히 익힌다면, 의대에 들어오기 전에 수행하는 과학적 연구 못지않게 이런 기술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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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호흡 기도 (핸디북) 영성의 글들 18
정원 지음 / 영성의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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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는 호흡과 같은 것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러나 막상 호흡과 기도의 관계를 설명함은 미흡하다. 호흡기도는 전통적으로는 예수기도라고 부르며 더러 심장기도, 마음의 기도라고 부르기도 하는 동방기독교 전통의 뿌리 깊은 기도다. 기독교영성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이 기도는 5세기에서 8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발전되었고 사막에서 생활한 남녀 교부들에게서 발견되었다. 시내 반도의 저술가들은 예수기도와 호흡의 리듬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것은 중세 시대에 분명해졌다. 중세 시대에 이 기도는 정교회 수도자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고, 19세기에 익명의 저서인 「순례자의 길」 로 말미암아 이 기도가 러시아에서 서방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예수호흡기도의 기본 요소 및 사상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며,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호흡이나 심장의 고동과 리듬을 맞추어 짧은 기도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기도문의 내용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다.
아울러 1)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고
          2) 하나님의 자비를 호소하며
          3) 반복하여 되풀이하되
          4) 내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시간도 중요하다.

「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아가서 5:2)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는 비결은 ‘호흡기도’에 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훈련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저절로 움직여 입에서 마음(심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쉬지 않고 기도하며 주님과 교류하는 은혜를 얻게 된다.」

기도의 중심은 무엇일까? 기도가 다른 행위와 구별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도가 인격적인 것이며 그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며 구체적인 대상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류하는 것이다. 내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대상을 향하는 것이다. 기도의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향한 마음이 있는 것, 이것이 기도의 중심요소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인격적인 교류이지 방법적이고 테크닉적인 것이 아니다. 외적으로 보았을 때 기도하는 것 같은 자세와 행위가 있다고 할지라도 대상이 없거나 그 대상을 향한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 20:22)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숨을 내쉬셨다. 그것은 혼자의 탄식이 아니었다. 제자들을 향하여 분명하게 숨을 내뿜으신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성령을 주시면서 취하신 행동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부어주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숨을 들이마시면서 성령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쉰 것은 단순한 한숨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충만한 그 영을 제자들에게 공급하시는 방편이었다.

무디와 함께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R.A 토레이 목사의 손자로서, 한국의 예수원에서 중보기도운동을 일으켰던 대천덕 신부(영국 성공회)는 이 부분(숨을 내쉬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의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성령을 마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숨을 내쉬시며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숨을 내쉬며’(breathed upon)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창세기 2장 7절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날 ‘하나님의 영을 인간에게 불어넣으셨다’ (breathed into man his own spirit ,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 창 2:7)는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 22~23쪽, 한국양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토털(total)기도라고 한다. 부분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기도하는 것. 우리의 언어가 기도가 되게 하고, 우리의 모든 행동이 기도가 되게 하고, 우리 마음의 묵상과 사소한 생각도 주님께 열납 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숨소리조차도 주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 쉬지 않는 기도이며 토털기도이다.

호흡은 들이마심,(흡,吸)과 내보냄(호,呼)으로 이뤄진다.
영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들이마심은 생명의 충전을 위한 것이며 내보냄은 부정적인 에너지의 배출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호흡의 충분한 마심과 배출은 우리의 영적, 정신적, 신체적 충만함과 정화에 매우 중요하다.

“예수 호흡기도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은혜가 나타난다. 예수의 이름에는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의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 호흡기도의 대표적인 기도문은 ‘끼리에 엘레이손’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그러나 기도 문장은 짧을수록 좋고, 각자 은혜롭게 만든다. ‘예수 충만’, ‘예수 평안’. ‘예수 사랑’, ‘예수 능력’, ‘예수 치유’등이 있다. 방법은 코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쉰다. 천천히 들이마시며 ‘예수’ 내쉬면서 ‘평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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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 리라이팅 클래식 9
황수영 지음 / 그린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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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과 기억』이라는 책의 이해는 그 제목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물질과 기억이라는 쌍은 영원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양극단의 실체들인 물질과 정신의 쌍을 거부하면서 등장한다. 『물질과 기억』은 시간의 차원에서 물질은 단지 이미지일 뿐이고 정신은 기억일 뿐이다. 이미지와 기억은 우리가 접하는 가장 구체적 실재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들, 즉 현상의 전체이다. 그러나 배후의 어떤 실체도 거부되는 점에서 그것들은 존재하는 것들의 전체이다. 시간은 이것들의 배경을 이루는 광대한 차원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의 존재방식 자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간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손은 1859년 10월 18일 빠리에서 태어났다. 고교 때부터 수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여 스승의 애정을 한 몸에 받았던 베르그손이 철학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 데는 프랑스 유심론 철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라슐리에(J. Lachelier)의 『귀납의 기초에 관하여』라는 책의 독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베르그손이 없는 현대 프랑스 철학은 아마도 신칸트주의적 인식론이나 꽁뜨적인 실증주의의 후예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질과 기억』은 1896년 베르그손이 37세가 되던 해에 출간되었다. 베르그손이 첫 저서인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이하 『시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7년만의 일이다. 첫 저작에서 베르그손은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의식의 내면을 관찰하면서 각각의 의식 상태들이 고정 될 수 없게끔 매순간 질적으로 변화한다는 주장을 한다. ‘의식상태의 지속’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이 생각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프루스트로 대표되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학사조를 탄생시킨 철학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비록 출간당시에는 많은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의식상태의 심층적 관찰과 묘사는 많은 시인과 작가들을 두고두고 매료시켰다. 다른 한편 명확한 주장과 엄밀한 근거를 제시하는 이 책의 탁월한 논증적 구도는 까다로운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모범이 되었다.

철학적 동기에서 볼 때 『물질과 기억』은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의도로 씌어졌다. 심신관계의 문제는 데까르뜨 이후에 철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데까르뜨의 심신이론은 제기된 당시부터 여러 가지 반론에 부딪혔으나 베르그손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뇌신경생리학의 발달로 문제점들이 구체적으로 지적되었는데, 이런 이유로 철학자들 내부에서도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베르그손 자신도 당대과학의 발달에 많은 자극을 받았으나, 그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분명히 인정하고 이 영역을 철학적 성찰에 남겨 놓으려한다. 정신과 신체를 연결하는 매개 고리로 베르그손이 선택한 것은 기억이었다. 물론 정신적 기억에서 신체적 기억까지 다양한 종류의 기억현상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심리학이나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에서 다루는 내용을 참조해야했고, 베르그손은 첫 저서를 낸 후 6년간 이 분야들에서 직접 심층적인 연구를 했다. 그러나 과학으로 인간의 의식까지도 남김없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우리에게 물질은 ‘이미지들’의 총체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지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관념론자가 표상이라고 부른 것 이상의 존재, 그리고 실재론자가 사물이라고 부른 것보다는 덜한 존재, 즉 사물과 표상사이의 중간 길에 위치한 존재이다.”

베르그손은 데까르뜨와 달리 기억의 능력을 우리 정신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의식은 곧 기억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렇지만 의식이란 감정, 감각, 의지, 표상, 관념, 기억과 같은 갖가지 심적 요소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기억은 의식의 한 요소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게다가 의식은 현재에 관한 것이고 기억은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닐까? 데까르드에게 사유는 순간에 포착되는 현재적 의식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기억은 명중한 의식에서 제외된다. 베르그손의 지속의 철학은 바로 이 생각에 도전한다. 의식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지 현재에 관련된 것만 포함하지 않는다. 의식상태는 끝없는 흐름 속에서 연속되기 때문에 흘러간 것이라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재의 의식에 나타나지 않은 뿐이다. 베르그손은 현재에 나타나지 않는 의식 상태를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의식은 넓은 의미에서는 현재 의식에 떠오르는 것이다.
의식상태의 지속, 끝없는 잇따름 속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보존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은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다. 
 

생명체는 원시적 형태에서조차 감각과 운동으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베르그손은 이것을 감각-운동체계라고 부른다. 본래 감각과 운동은 하나를 이루었지만 점차 두 개의 다른 기능으로 분화되면서 운동능력을 빼앗긴 감각세포는 자극을 전달하고 정념을 느끼는 기관으로 축소되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감각과 운동이 분화되기 이전의 원시생명체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상상하기가 어렵다. 원시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극이 곧바로 반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베르그손은 지각조차도 행동과정의 일부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생명체에게는 지각이 정념보다 더 근본적인 작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계적 식별은 신체 안에 각인된 습관이지만 과거 이미지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다만 거기서는 행동하는데 필요한 이미지기억들이 이미 선택되어 습관 기억이 작동할 때 동시에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것들은 처음 습관기억이 형성될 무렵에는 의지적으로 투입되지만 일단 습관이 형성된 뒤에는 자동적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언제나 능동적으로 과거이미지를 불러와 대상의 지각에 투입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행동을 하려 할 때가 아니라 대상 그 자체를 파악하려 할 때 필요하다. 처음 보는 대상이나 분석이 필요한 복잡한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기억을 불러내 참조해야만 한다. 베르그손은 이런 경우를 ‘주의 깊은 식별‘이라고 부른다. 주의 깊은 식별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주의’(attention)라는 심리생리학적 현상이다. 주의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정신을 집중한다는 일상적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프랑스의 심리학과 철학에서는 정신의 중요한 기능으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베르그손은 자신의 철학을 한마디로 “시간이 존재하고 그것은 공간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스피노자의 ‘영원의 관점’을 단번에 ‘시간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관점에 설 때 현재는 언제나 지나가고 있는 흐름이며 수학적 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현재를 수학적점과 같이 생각한다면 과거는 지나간 현재들로 구성될 것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무수한 현재들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진정으로 과거가 존재하는가? 거기에는 각각의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미래도 마찬가지로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무수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거대한 전체는 순간의 함수로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거기에 과거, 현재, 미래를 가르는 기준이 있을까? 베르그손은 이러한 체계가 과학이 다루는 시간이며, F(t)로 표현되는 함수는 순간성 속에서 모든 것이 주어진 체계라고 한다. 이 체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임의의 순간 t로 분해되어버린다. 그런데 과거는 무수히 지나간 순간들이고 미래는 다가올 순간들이며 현재는 바로 지금의 ‘한 순간’이라면, 과학이 다루는 순간들이란 기본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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