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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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꿈을 자주 꾼다. 아무 쓸모도 없는 건축학 에세이에 폭 빠져 산 적도 있다. 이유가 무얼까 궁금했다. 어렸을 때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면서. 혹은 잠시나마 건축과를 가고 싶었던 학창 시절의 꿈 때문인가 싶어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집은 의식의 세계를 상징한다는 지점에서 무릎을 쳤다. 꿈속의 집의 크기와 상태가 나의 의식의 세게를 뜻한다니, 왜 그리 늘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하는지, 왜 꿈속 집에는 잠기지 않은, 혹은 잠기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는 문이 그토록 많은 건지, 그 집의 수많은 방들의 정체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역시 너무 많은 나의 관심사, 불안을 저장한 무의식의 세계로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건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심리학자들의 해석이니까 그리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 맞는 표현이리라.

요즘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아껴 읽고 있다. 시집을 읽는 기분으로 이해를 접고 감성만으로 읽어도 너무 좋다. , 혹은 집과 비슷한 공간에 대한 시적 상념에는 사람들의 공통된 부분이 있나 보다. 이정록 시인의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를 읽을 때 느꼈던 공감 비슷한. 그런데 최근에 강맑실과 공선옥에게서 비슷한 감성을 만난다. 내가 이 집들의 이야기에 끌린 것처럼 그들도 자기 집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은 추억과 감성과 감각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지금 나의 의식 세계를 구축하는 상징이자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공선옥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 조촐함이 좋다. 화려한 말빨(글빨)과 과장된 스토리가 없어도 슬픔과 더불어 삶이 있어서 좋다. 물론 현실에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끔찍하고 더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지만 대개의 삶이란 적당히 구질구질하면서도 적당히 인간성을 버리지 않은 소소하고 다사로운 것, 혹은 고달픈 것 아닌가. 공선옥은 그런 글들을 쓴다. 당연히, 좋아하는 작가의 사적인 삶은 궁금할 수밖에. 그가 들려주는 자기 집 이야기는 그런 방식의 듣고 싶은 이야기이리라. 만약 또 다른 공00 소설가나 요즘 거의 연예인급으로 잘나가 김00 소설가가 자기 어린시절 이야기나 집 이야기를 썼다 하면 호기심이 가면서도 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언변에 적절히 겸손한 척하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걸 아니까. 매력적이라 미운데도 묘하게 끌리던 학창 시절 잘나가는 예쁜 애를 보는 것 같은 불편함과 시기심. 하지만 공선옥은 친구로 치자면 생전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 그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하지만 대화를 나눠 보니 단 몇 마디만으로도 그의 지성과 인품의 깊이로 나를 감복시키는 그런 친구 같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지만 말을 걸어봐야 자기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을 리 없는 그런 친구의 글이 교지에 실렸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맨 처음 펼쳐 읽어볼 것이다. 그리고 또 역시 내 직관은 정확하구나, 나는 사람을 알아본 것이야, 라며 흐믓해했을 것이다. 이 책도 그랬다. 삶의 궤적이 나와 일치하지 않지만 나는 그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가 아무리 고생의 젊은 날을 지나왔더라도 삭신이 쑤시기 시작하는 늙기 시작하는 시점의 집들은 제발 따스하고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집이 너무 좋아서 밖에 나가기 싫더라도 할머니(그나 나나 곧 할머니가 될 터이니)들이 평안한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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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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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면 나처럼 남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교사가 이상하거나 안쓰럽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남중이 꼭 그렇게 거칠기만 하지 않은 것처럼 서현숙 선생이 만난 소년원도 그랬으리라 짐작해 본다.

내 제자들 중 몇몇도 소년원에 갔다. 거길 다녀와서 어른이 되어 나를 찾아온 아이도 있고 가르쳤던 아이가 나중에 소년원에 갔다는 소문이 들려온 경우도 있다. 아슬아슬했지만 보호관찰 중인 아이를 담임 맡아 무사히 졸업시킨 일도 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지켜보았기에 그 아슬아슬함을 잘 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잘못을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자라온 배경이나 시절이 그 아이들을 거기까지 내몰게 된 인과관계를 헤아려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그들이 스스로 범죄를 저질렀다기보다 그렇게 잘 못 살도록 잘못 가르쳤거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원인이 안으로 쌓여 있던 아이들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한순간이다. 운도 따른다. 나 역시 그럴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가르칠 땐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떨며 한 해 한 해를 지나오곤 했다. 마치 이 얼음강을 건너지 않을 수는 없는데 얼음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살얼음을 밟고 건너가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 속에서 서현숙 선생님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에 매우 공감한다. 사실 책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만났던 그 소년들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뭐 이런 것들. 혹여 그런 것들을 만났더라도 선생님은 불쾌해하기보다 이해했을 것이다. 적어도 소년원에 오게 된 일이 그들의 잘못만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 불안의 몸짓들을 달래고 책으로 마음을 만나갔을 것이다.

책을 주면서 절대 읽고 오지 마라고 하면 아이들은 더 열심히 읽어온다는 대목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그리고 서현숙 선생님이 책에 쓰신 ‘(소년원에서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을 받는데) 그 교육에 좋은 삶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포함시키면 어떨까라는 말씀에 격하게 공감한다. 저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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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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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하는 매혹적인 생명체를 목격했다. - 저자가 바닷가 갯벌에서 생명들의 움직임을 보며 한 말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우울증의 기분을. 아니, 대학 갓 입학한 무렵, 정말 세상이 회색빛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가 우울증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기억한다. 시대의 아픔에 끌려가고 매 맞는 동기, 선배 들을 보며 내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이 부끄러워 어찌어찌 의지로 극복했던 것 같다. 그나마 다 돌아보니 그랬더라, 이지 그땐 우울증이라는 말을 흔히 입에 담지도 않았던 시절이니까.

요즘도 가끔 이유를 모를 우울이 덮칠 때가 있다. 설명할 수 없다. 무슨 일이 나의 우울 호르몬을 건드렸는지, 그게 그렇게까지 칙칙할 일인지, 논리적으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이 안 된다. 나 자신이 납득되지 않으므로 누군가에게 나 요즘 우울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땐 잠을 많이 자든지 일부러 맛있는 걸 마구 먹어대든지 아님 청소를 한다. 우울이 급습할 조짐이 보일 때 내가 먼저 선공격하는 거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런 경계에 있을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있거나 자신이 관리할 방법을 가진 사람은 그나마 다행인 경우임을 나도 잘 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것도 공감. 이 책의 지은이 에마 미첼은 마치 동아줄(정신줄)을 붙잡고 이 생의 하루하루 매 시간시간을 견뎌내는 심정으로 숲을 헤매고 글을 쓰고 어찌 됐든 살아내왔을 거다. 책에서는 우울증 증세를 마음 속에서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하지만 도무지 가라앉을 줄 모르는 압도적인 자기혐오와 비판이 폭발한다. “난 무가치한 인간이야.”라는 머릿속 요란한 소음이 들린다라고 표현한다. 내가 청소를 하며 우울감을 날려버리는 것처럼 에마 미첼은 자연을 사랑하는 이라 새를 보러, 새 풀을 만나서, 바람을 맞으러 나갈 힘이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우울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날은 정말, 아무것도 못할 텐데 말이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 시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흥분을 느끼게 한다(채집 황홀).

 

사실 나는 이 책 속 그림들, 내가 좋아하는 작은 풀싹들이나 새들의 흔적이 좋아 읽기 시작했지 우울함에 관한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도 책은 저자가 찾아 헤맨 숲과 들판과 바닷가 이야기를 담았다. 우울은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니 맘껏 읽으시라. 나도 아껴 읽었다. 같이 산책 나가는 기분으로, 같이 반딧불이를 찾아 나갔다가 모기에 뜯기는 기분으로, 같이 숲 스케치를 나가는 기분으로, 같이, 마당에 새들을 부르려 모이를 늘어놓는 마음으로. 삶에 치여 숲에 갈 시간이 없는 나는 이 책으로 습기어린 숲 향기를 대신 체험한다. 고맙다. 나도 우울한 날 많아, 동의하는 이 기분, 그리고 나 대신 자연을 산책하는 그의 노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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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 책 읽는 고래 : 고전 5
진은영 글, 김정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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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대충 읽었지만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니체가 어떤 시대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해도 그의 작품들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 심오해서일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화에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하긴 철학자들이 대중의 이해를 구하지는 않더라만). 절박함에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새삼 예수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심오하든 신비롭든, 비이성적이든 그는 대중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이야기꾼이다는 것. 니체의 모호함은 어쩌면 유럽의 문화전 전통 혹은 기원일 수는 있겠지만 예수같은 설득력은 갖지 못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 전 지구적 삶의 근원이 된 유럽 정신에서 매우 중요한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 이해고 나발이고를 떠나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헛소리를 지껄인 병약하고 사회성 없었던, 자의식 과잉의(그래, 내가 그의 저서를 온전히 읽기 이전에 칼 융이 쓴 <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를 먼저 읽은 게 잘못일 수도 있다. 융은 니체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분석심리학적으로 그가 자의식 과잉이라고 보았다), 글빨은 좀 있는 그런 관종....은 아닌가 싶었던 사람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정신적 영향을 끼쳤다지 않은가.

 

요즘 한참 잘 팔리는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주인공인 시인 진은영. 베스트셀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예외 없이 이 책을 구입해 읽고 있다. 좋은 시들이 많다. 세월호를 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사랑스러운 시집. 그러나 한국에서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 시집의 선방이 과연 작품만의 힘일까 의심스럽긴 하다.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그이가 철학해설서를 썼().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니체를, 그것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서? 오래 전에 상담실에 구입해둔 책을 왜 이제 읽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책은 운명처럼 자주 나를 부르곤 하는데 이번에도 상담실 서가를 정리하다 이 책이 나를 부르는 바람에 다시 손에 넣고 읽게 되었다. 너 요즘 니체를 뒤적인다며? 니체 원서는 난해하지만 남들이 해석해놓은 니체를 더러 찾아 보았다며? 그리고 진은영도 읽는다며? 그럼 이 책은 어때? 너의 천둥벌거숭이 남중딩 제자들이 이 책을 읽을 일은 별로 없을 거야. 대신, 네 수준에 딱 맞을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함 읽어보렴. 이러면서.

 

그리고 결론. 이 책은 놀랍다! 나는 진은영이란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니체가 이토록 쉽게 이해가 되며 심지어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니!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니체를 읽을 일 없을지라도 이 책을 나의 제자들에게, 아니 어린이들에게도 읽히고 싶어졌다, 그저 이 책을 읽는 일만으로도 어린 그들에게 뭔가 깊이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어린 자녀와 제자에게 삶의 자세와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은 어른들,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과 성찰을 위한 독서가 필요한 어른들도 이 책을 읽으시라.

 

그간 오해했던 니체에 호감이 생기게 된 대목이 여럿 있다. 가령, 우리 사는 세상의 요란법석함을 니체는 매우 사랑했단다.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한다(세상은 아이들의 놀이터 같은 것). 사람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대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니체는 말했단다. 그가 현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람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기질과 그가 주장한 아모르 파티는 일맥상통한다. 니체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요즘의 잣대로 평가할 사람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현실을 즐기는 발랄한 진보의 가치관과 접점이 있어 보인다.

 

그가 말하는 위버멘쉬, 강한 자는 니체에 대한 흔한 오해처럼 강인하고 초인적이고 뛰어난 어떤 영웅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면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 돈이든 명예든 이념에든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현대는 개인의 자유가 극강에 이른 듯 보이나 자본주의라는 사슬에 스스로 노예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거짓 자유의 시대이기도 하다. 하긴 어느 시대나 신이든 신념이든 돈이든 인간은 어딘가에 매여 살았지 진정한 자유를 누린 적이 있던가. 아니 앞으로는 있을 것인가. 자유롭지 못해야 평화로운 게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가 누군지 고민하고 자유로워지려 몸부림치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귀엽지 않은가). 그 선봉에는 늘 철학자들이 서 있었다. 니체처럼 목소리 높여 외쳤던 연사는 실제 사람들을 자유로 이끌었든 아니든 사랑받고 존경받고 염두에 두어졌던 거다. 매력적인 인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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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스티븐 리츠 지음, 오숙은 옮김 / 여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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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지은이 자신이 테드(TED)에서 강연한 이야기가 나와서 영상을 찾아보았다. 지은이처럼 열정적인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심지어 그의 목소리와 몸짓도 볼 수 있다니 더욱 궁금할 수밖에. 기립박수까지 받았다고 저자가 은근히(?) 자랑을 하는데도 그 영상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그의 이름 스티븐이라고 한국어로 치면 찾지 못한다. stephen이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열정적인 스티븐 선생님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열정적이다 못해 부잡스럽게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천진한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열정과 기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여러가지 좋은 의미도 있겠지만 열정과 순수한 호기심, 진정한 기쁨을 잃거나, 적어도 표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티븐 선생님에게는 아이들과 하는 모든 일이 즐겁다는, 기대가 된다고 믿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일들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천진하기만 한 열정 덩어리가 아니더라는 말이다.

 

저자의 열정을 짐작케하는 대목 중에는 본인이 학교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괜찮은 지도자를 따라 학교를 옮겨 다녔다는 부분이 있다. 관리자와 교사는 다르다. 각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는 별로지만 관리자로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리고 학교 행정은 분명 중요하다. 좋은 교사와 좋은 활동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행정과 예산은 꼭 필요하니까. 다만 우리의 현실은 프로그램이 좋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이롭다고 해서 거기에 설득될 만큼 교육철학이 훌륭한 관리자가 많지 않다는 것, 아니, 관리자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보통 이런 책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따라 할 구석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엔 그는 너무 많은 일을 했고 너무 열정적으로 살았다. 나도 뭔가 다른 선생님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리츠 선생님처럼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던가,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학업에 다가가는 기술을 지녔던가 돌아보아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의 제자들은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나의 다가감에 고마운 마음으로 호응했지만 그 모든 다가감이 아이들을 즐겁게 했거나 아이들이 변화시켰던 건 아니었다. 그게 당시에는 기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게 학생들과 나 사이에 거리두기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들 삶에 깊이 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그게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어쩌면 결과적으로 더 바람직한 것일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 선생은 이것저것 잘 해냈고 열심히 했지만 그보다 더욱 그가 훌륭한 것은 학생들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 그리고 하나 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점도 칭찬해야겠다. 다음은 스티븐이 학생들과 한 약속이다. 이런 약속을 먼저 정해놓고 새학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 우리나라 학교에서처럼 수업 종 치기 전 자리에 앉아 있자. 친구를 놀리지 말라, 이런 것 말고-물론 그런 약속도 필요하긴 하다. ^^-)

 

교사의 교실 속 합의안

일일 활동 주제, 입구 활동, 출구 티켓을 제공하겠다.

어떤 학생이 묻는 어떤 질문에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답하겠다.

여러분을 품위 있게 대하고 존중하겠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고 언제든 여기서 여러분을 돕겠다.

 

학생들의 합의안

언제나 우리 생각이 눈에 보이도록 하겠다.

우리는 모두를 비록 괴로울 때도 존중하고 사랑하겠다.

과제 내용을 확실히 주지하겠다.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겠다.

이해되지 않을 때는 질문을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발견한 문구 중에 꼭 되새기고 싶은 것이 있다. '포용력이 판도를 바꾼다'. 품이 넓은 사람만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품을 수 있고 해보게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관리자이거나 책임자, 선생, 어른이라면 더더욱 그의 포용력이 아이들을 달라지게 하고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진짜 어른은 호통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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