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뜰
강맑실 지음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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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토록 많은 책들이 있겠지. 정보를 주는 책, 지식을 주는 책, 생각하게 하는 책, 세상을 바꾸는 책, 혼자 중얼거리는 책, 생각에 돌을 던지는 책,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하는 책, 잘 먹고 잘 살게 도와주는 책.... 내 책장에도 그런 책들이 쌓이고 쌓인다. 머리맡에 십여 권이 쌓여 그때그때 나를 살게 한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우울할 때 읽는 문학책, 그리고 피곤할 때 읽는 그림이 섞인 편안한 책이다. 여행 에세이도 좋고 그림 이야기도 좋다. 키우지도 않는 강아지 그림이 있는 책이나 가볼 일 없는 북미의 깊은 숲을 거니는 책도 좋아한다. <막내의 뜰>도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아기자기한 표지 그림부터 사람을 잡아 끈다. 어린 시절 집 이야기라니, ‘에 대한 특별한 집착이 있는 내게 이 책은 문학과 그림과 집의 삼박자를 다 갖춘 책이다.

작가의 기억력에 감탄하며 글 내용에 귀여워 키득거리다가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 아껴 읽기로 했다. 정신이 맑은 날엔 복잡한 책들을 읽고 기분이 괜찮은 날엔 공부에 가까운 독서를 하기로 하고 이 책은 힘든 날, 졸린 날, 우울한 날 조금씩만 읽기로 했다.

강맑실 씨는 아마도 나보다 약간은 연배가 위일 터이고 살았던 터전도 다르긴 하지만 왜, 그러니까 60, 70년대에 유년기 아동기를 보낸 이들이 공통으로 겪었던 공기 같은 것이 책에서 느껴진다. 나에게는 서울 살이 중 한옥에서 살았던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의 기억이 조금 비슷할 뿐 그녀가 살았던 집의 분위기는 오히려 어렸을 때 방문한 외가의 모습과 닮았다.

다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은 왜 다 애틋할까. 강맑실 씨가 소환하는 어린 시절의 내음은 나에게도 이불 덮고 엎드려 일기를 쓰던 사춘기 초입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간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어째서 슬퍼지는 건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느낀 점. 어쩜 지은이의 어머니는 그토록 다정하시다냐? 옛날 엄마들은 무뚝뚝한 줄만 알았는데.., 또 자녀가 그렇게 많고 할 일이 많으면 살기 폭폭해서자녀들에게 다정다감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데 저자의 어머니는 말끝마다 오메, 우리 강아지, 무서웠지야? 오메, 우리 애기, 얼마나 추웠을끄나하신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내게도 광주 친구가 있는데 대학 시절 그 친구 집에 갔을 때 애기들 왔냐잉.” 하고 반기시던 목소리가 생각난다. 또 내 친구 중에서 진도에서 온,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한 혜순이 생각도 난다. 이래저래 다정하고 귀한 책이었다,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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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9-0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보면 전라도 분들이 다정다감하고 애정표현이나 말투가 참 살갑더군요.
전 무뚝뚝해서 그런 거 좀 배우고 싶어지더라구요 ^^
다정하고 귀한 책 이야기 읽으며 저의 유년도 생각나고
우리 아이들의 유년도 떠올려보네요. 제 어머니도 다정다감한 엄마는 아니고
저도 아이들한테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

풀꽃선생 2022-09-05 20:36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 님, 잘 지내시죠? 서재 활동을 하지 않는 제가, 사람들이 잘 읽지도 않는 책의 서평을 올릴 때에도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준다고 생각할 때마다 프레이야 님을 떠올립니다. 잘하거나 못하거나 어깨를 두드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감사해요. ^^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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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백년만의 고독>을 고등학교 때 읽었던가? 그 이후에도 바르가스 요사, 보르헤스, 네루다 정도나 읽었으려나.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문학에는 왠지 모를 친숙함 같은 게 있다. 그러고 보니 중남미 문학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읽히려고 산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먼저 읽어본다. 제목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세대 간 정서적 이해를 말하려나, <고슴도치의 우아함>처럼 편견을 넘어서는 이야기려나. 읽기 전 작가에 대한 소개글과 이 소설이 나온 배경을 보니 혹시 남미의 혁명적 상황을 다룬 정치 소설이려나. 하지만 그 어떤 예측도 다 빗나갔다. 오히려 처음부터 뜨거운 아마존의 열기가 느껴지는 이 소설은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었을 때의 어리둥절함이 떠오른다. 물론 그보다는 주제도 명쾌하고 인물도 이야기도 훨씬 매력적이지만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었을 때의 찝찝함이 다시 생각난다...)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묵직한 태도와 철학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조르바가 가진 마초적인 면모에서 여성적 소외를 느꼈던 섭섭함은 볼리바르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강인한 사람이지만 유연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암살쾡이를 죽이려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세계의 질서’. 그러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질서에 대한 경외를 버리지 않는다. 둘 사이에 흑백논리적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다. 자연은 그대로 자신의 흐름이 있고, 거기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결코 오만해서도 자연을 이기려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살아내야 하는 생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려거나 짓밟을 생각은 없으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노인과 동물의 싸움의 장면은 묘하게 경외감을 부른다.

<노인과 바다>는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노인이 왜 남는 것 하나 없는 참치잡이를 하고 그 뼈다귀를 끌고 돌아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연애소설>에서는 그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인생이란 게 성공과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생명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땅에 생명을 지고 나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 풀꽃, 벌레, 동물,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말이다. 소설 속 노인과 동물은 둘 다 그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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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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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은 도대체 오지랖이 어디까지일까? 단지 글을 재미있게 쓴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쓴 의학(?) 관련 책을 집어든다? 반쯤은 그런 호기심으로 이 책을 선택해 보았다. 각종 여행기라면 저널리스트가 쓰고도 남겠지만 의학, 과학 등은 전공자가 아닌데 단지 취재만을 해서 쓸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의구심은 모두 사라졌다. 제목 그대로 우리 몸에 관한 모든 지식을 망라한 듯한, 그의 취재력과 탐구력에 경의를 표한다.

몸에 관한 상식과 생활에 유용한 의학 지식이 빼곡하다. 무엇보다 딱 일반인의 눈높이로 지식을 전할 뿐 아니라 빌 브라이슨 특유의 문체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이 두꺼운 게 문제일 뿐.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행해진 인체 실험과 그 사후 조처에 관한 것이다. 같은 전범국가이지만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사과하고, 교육을 통해 재발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는 반면 일본이 자신의 잘못을 뭉개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두 나라의 문화나 의식, 태도의 차이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잘못도 있다.

 

전후 많은 독일인들은 붙잡혀서 전쟁 범죄로 재판을 받았지만 일본인들 중에는 처벌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승전국인 미국에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면을 받았다. 731부대를 창설하고 운영한 의사인 이시이 시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민간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미국과 일본은 연합국과 전범국, 승자와 패자, 점령국과 피점령국의 관계였음에도 굉장히 이상한 관계다. 비유하자면 인질범과 인질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묘하게 유대관계 같은 게 형성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그냥 인간적으로 끌려서 그런 것일 리 없다. 일본이 보통의 패전국처럼 증오로 적국 미국을 맞이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이해 타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여기에 미국의 이해가 만나 둘은 적대적인 관계에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737 부대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응징하기는커녕 그들의 생체 실험 성과물을 공유하는 것으로써 일본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이 저토록 뻔뻔스럽게 구는 것에는 미국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미국은 비열한 강자의 전형을 보이며 한때는 자기가 잔인하게 가격했던 자에게 2인자의 자리를 내주는 비뚤어진 리더십을 보인다.

그런 태도도 납득이 안 되지만 더 놀라운 건 일본이다. 원자폭탄으로 두 개의 도시를 초토화한 점령국 미국을 최애 동맹국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니.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리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형적 태도가 필요하지만 강자들끼리 놀아나는 꼴을 참아주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피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혜로운 정부가 필요하며 우리 스스로가 지혜로운 국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재미있게 읽은 의과학 상식 책에서도 담론은 정치 사회적으로 나아가게 되는구나.

 

책 속에서 얻은 생활에 꼭 필요한 유용한 지식들을 정리해 본다.

- 생활비타민 D는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뼈와 이를 튼튼하게 하고 면역력 증진, 암과의 싸움을 돕고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 전 세계인 중 50퍼센트는 비타민 D 결핍상태란다.

- 데시벨은 로그 단위로 산술적 증가가 아니라 자릿수의 증가를 의미한다. 10데시벨인 두 소리의 합은 20데시벨이 아니라 13데시벨. 96데시벨은 90데시벨보다 약간이 아닌 두 배 시끄러운 것이다.

- 아직 인공혈액은 만들지 못했고 연골은 자체 치료도 보충도 할 수 없다.

- 체온 1도가 오르면 바이러스 증식 속도가 200배 느려진다. 염증은 본질적으로 몸이 손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면서 생기는 것. 침입자와 마주치면 백혈구는 사이토카인이라는 공격용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몸이 감염에 맞서 싸울 때 열이 나고 아픈 느낌이 나는 것은 바로 이 물질 때문이다. 면역계가 모든 방어 수단을 총동원하여 마구 날뛰는 것이 사이토카인 폭풍이다.

- 아낙필락시스는 항생제, 식품, 라텍스, 곤충 등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기도를 막는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이다(백신 부작용)

- 항생제 남용과 그로 인한 장내 미생물 고갈로 점점 자가면역 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다. 여성이 자가면역 질환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 비타민은 우리 몸이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성분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만들 수 없는 잡다한 13가지 화학물질이다.

- 저밀도 지방 단백질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부르는 것. 콜레스테롤 관리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섬유질은 몸이 완전히 분해할 수 없고 열량도 전혀 없고 비타민도 전혀 들어 있지 않지만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어 준다.

-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위험할 수 있다. 몸은 수분 균형을 잘 관리하지만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콩팥이 물을 빨리 제거할 수 없게 되고 혈액의 나트륨 농도가 위험할 만큼 희석돼 저나트륨혈증이 올 수도 있다.

- 하인즈 케첩의 1/4은 설탕이다. 코카콜라보다 설탕 함량이 많다.

- 요즘의 과일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당분이 많아지도록 선택적으로 진화되었단다. 반면 과거의 과일보다 철분, 칼슘, 비타민 A등은 더 적다. 현대농업은 질은 낮고 수확률이 높으며 생장을 촉진하는 쪽으로 과일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몸은 소금을 만들지 못하므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적으면 무기력해지고 많으면 혈압이 치솟고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 나트륨은 건강을 위협한다.

 

사춘기 자녀를 둔 이들에게 유용한 아이들에 관한 의학 지식들도 있다.

- 뇌는 완전히 형성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대 청소년 뇌 회로는 약 80%만 완성된 상태이고 쾌락과 관련이 있는 앞뇌 측좌핵은 10대 때 최대 크기로 자란다. 이 시기에는 도파민을 많이 생산한다. 그래서 10대 때 감정이 격렬한 것이란다.

- 사춘기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영양 상태가 좋아져서 그런 듯하다.

- 아데노신이 쌓이면 졸린다. 십대 청소년은 호르몬 때문에 아침 잠이 많다. 저자는 그래서 학교가 등교 시간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고교 86%가 우리나라 고등학교처럼 아침 8시 반 전에 시작한다는데 이걸 9시 등교로 돌린 건 참 잘한 일이었던 거다. 최근 보수 교육감들이 다시 이전처럼 등교 시간 자율로 정책을 바꾸려 하고 있다. 옆의 고등학교는 아침 740분이면 모든 학생이 등교하는데 볼 때마다 아이들 수면 시간을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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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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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이 고등학생 및 대학생 필독도서라고? 읽기 어려운 문장은 아니지만 너무 방대하고 일반인이 읽을 필요가 없는 자료들로 가득한데? 여기에도 그 흔한 한국식 출판문화의 폐해가 작동한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든다. 출판사나 소위 서울대 신입생 교양도서 목록등등이 행한 문화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좋지 않은 책이라는 건 아니다. 역사를 과학적으로(방대한 자료로써) 접근했다는 점, 이미 레비-스트로스가 구축하긴 했지만 문화나 문명의 우위라는 건 없다는 관점, 그 치밀성 덕분에 역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 등 가치로운 면이 많다. 긴 시간에 걸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함께 읽으면서 통시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한 점에 있어서는 내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독서였고. 하지만 혹여 내 제자들 중 똘똘한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가서 읽어보렴하고 권할까 해서 살펴본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라는 답이다. 역사, 문화인류학 등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선생이라면, 독서광이라면 읽어볼 만하지만 굳이 학생들의 필독도서여야 할까? 저변이 넓은 책으로서라면 <사피엔스>가 그 역할에 더 충실할 것 같다.

 

<사피엔스>가 역사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 철학과 정치 등 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다면 <, , >는 문명사를 깊이 파고든다. 저자 스스로도 말했지만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역사는 과학적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에 대해 방대한 자료로 과학적 논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 책은 내내 왜 서구 유럽의 문명이 결국 지배적 문명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다. 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전적 우위 따위는 없다는 것, 환경적 조건이 가장 크다는 것, 그 환경적 조건의 출발은 가축화와 식물화, 즉 농경으로 정착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총과 금속을 개발할 수 있었는지라는 것이다. 이것에서 앞섰던 유럽은 결국 다른 지역을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병균으로 토착민들을 멸살하였다.

문명이 앞섰다는 점에서는 중국이 오히려 유럽보다 먼저인데도 유럽이 세계문명을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유럽의 적절한 분열이 다양성으로, 경쟁으로 유럽 사회를 더 발달시켰다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내 견해를 더해 자본주의적 자유와 경쟁 문화가 더해져 유럽 문명의 우위를 결정지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결론을 주장으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자료와 수치, 통계를 논거로 입증하는 게 재레미 다이아몬드의 서술 방식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접근이 흔지 않았기에 그의 저서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그는 유럽 문명이 지배적 문명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더 훌륭한 가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학자로서 냉철함을 유지하며 글을 쓰지만 다양성이 인정된 덕분에 더 맛있어진 독일 맥주 이야기나 문명과 거리가 멀지만 생존을 위해 유럽인든보다 더 똑똑해진 그의 뉴기니 친구 이야기를 통해 전체주의적이고 지배주의적인 문명이 더 좋은 것은 아님을 말한다. 인류가 수렵채집 양식을 버리고 농경사회로 접어든 것도 결코 축복이 아님을, 자본주의적 효용성이 크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님을, 뉴기니의 문명이 유럽보다 뒤처져 보인다고 해서 그곳 사람들의 인간적 가치도 뒤처진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독자로서 의문을 갖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저자는 중국이 조선, 항해술 등 각종 기술과 문명에서 유럽보다 앞섰음에도 근대에 발전에 있어서는 뒤처진 이유를 통일이라고 보았다.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중앙집권적 정부의 지시와 그에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체제가 오히려 발전에 독(?)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중국은 선진화된 나라였고 거대한 국가였음에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화하고 점령하는 일에 쉽게 나서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유럽 문물은 다른 지역을 식민화해서 얻은 수많은 자원을 에너지로 해서 발달했다. 지금은 가장 인간적이고 품위 있어 보이는 지점에 도달했을지 모르지만 그 이전 역사에는 피가 묻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유럽과 달랐다. 중국이 약소국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중국에는 그런 식민지적 자양이 없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유럽문명의 발달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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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럽 - 당신들이 아는 유럽은 없다
김진경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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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만나면 나의 글을 돌아보게 된다. 좋은 관점, 폭넓은 공부와 취재, 사회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안목....

나는 <시사인>을 통해 김진경의 글을 처음 만났다. 그는 지면에서 코로나 시대의 유럽이 결코 세계인들의 귀감이 되지 못함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 <오래된 유럽>에서는 제목이 의미하듯 더 이상은 이상적이지 못한 유럽의 민낯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준다. 프랑스에 사는 목수정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에 사는 김진경도 폭넓은 안목을 지닌 한국 출신의 지성인이면서 관찰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현지 삶을 살아가는 이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하고 귀한 글을 쓴다.

 

나는 지난 겨울 이후 지금까지 클래식이나 팟캐스트를 그림 그리는 일이 푹 빠져 살고 있다.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 음악, 여행, 미술,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콘텐츠를 다루는 그 팟캐스트는 정말 재미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부분 유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원근법을 공부하겠노라고 출력한 사진 속 풍경은 아름다운 유럽의 거리다. 어떤 작가가 해마다 휴가 때는 유럽에 다녀온다고 해서 유럽에 대한 열망 혹은 열등감이 있는 이인가, 혼자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이 보고 뭐라 할 일이 아니다. 나에게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질투가 난다. 그들이 누리는 문화적 아름다움, 깊이, 그런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속상함 같은 게 있다. 그들이 누린 풍요와 그들이 이룬 아름다움은 식민지 침탈과 전쟁, 약탈의 역사에 기반해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실상을 보았다고 해서 열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의식과 감성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다.

그런 와중에 김진경의 책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유럽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님을 구체적인 사례와 근거를 들어 말해준다. 김진경은 코로나를 통해 드러난 공동체 시스템의 문제점뿐 아니라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교육, 다문화 정책, 이민자를 대하는 태도, 현실을 극복하는 대처 능력에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좋은 유럽인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다. 아마도 내가 부러워하는 유럽적 이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일 터이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함께 연대할 때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유럽인의 위상. 아마도 내가 열등감을 가지고 가장 부러워하는 측면일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성숙한 연대를 구현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유럽. 그런데 저자는 과연 그런가? 당신이 아는, 혹은 꿈꾸는 유럽이 실존하는가?’ 묻는 것이다.

 

학교 교사이므로 특히 나는 유럽의 교육이 한국의 교육 못지 않게 계급의 대물림에 기여한다는 이야기에 눈이 갔다. 한국은 압축성장과 군부독재, 권력의 부패를 경험했기에 그런 현상이 개발도상국 발전과정의 필연적 부산물쯤으로 여겨졌지만 도대체 유럽은 왜? 자본주의가 발달했지만 복지와 사회민주주의적 국가 개입에 대한 성숙한 담론이 풍부했던 유럽이 왜? 책 속에 답은 없었다. 저자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유럽을 대안 삼지는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령 의료보험제도. 미국의 허술한 의료보험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지만 스위스도 별로 다를 바 없단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의료보험 수가는 턱없이 높고 의료비는 더더욱 부담스럽다. 이쯤 되면 대안을 유럽이 아니라 변형되고 왜곡된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살아온 줄 알았던 우리나라에서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유럽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경제 문화 예술 철학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 말고도 다양성, 존중, 배려, 토론, 공감, 공정의 문화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표현의 자유 논쟁에서 의문점을 갖게 된다. 뭐랄까, 꽤 멋진 아이인 줄 알았는데 궤변을 늘어놓는 위선자임일 밝혀진 것 같아, 혹은 알고 보니 잘난 것도 똑똑한 것도 아닌 친구가 허우대만 멀쩡했던 거였나 싶을 때의 실망감 같은?

 

이 책이 유럽의 숨겨진 면면들에 의문을 던진다고 해서 그들이 쌓아 올린 역사와 가치관이 다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유럽은 끊임없이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어쩌면 유럽이 진정 멋진 것은 그들이 이뤄놓은 것들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해온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리하여 유럽 별 거 아니네가 아니라 이 친구들, 이렇게 끊임없이 논쟁하며 살아가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준다. 그렇다면 허술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멋진 친구들이 맞는 거다.

 

기억에 남는 대목을 정리해 본다.

 

수많은 언어 폭력은 더 심한 사건의 전조현상 인정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한국이야말로 가장 아슬아슬한 곳일 수 있다.

 

국가(國歌)의 다양한 의미 - 라 마르세예즈, 이탈리아 국가처럼 전쟁을 암시하는 가사, 영국 여왕을 칭송하는 영국 가사, 기독교 찬송가 같은 스위스 가사, 작곡가 친일 논쟁이 있는 우리나라 애국가 등 논란이 있다는 지적 국가를 부를까 말까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길 때 가장 논란이 덜 된다. 프랑스에서 베일 착용을 금지하자 베일 착용자가 오히려 늘었다는 것도 비슷한 이치인 듯 보인다. 어쩌면 논란 일으키기 좋아하는 이들이 음모에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경계를 가르칠 때 수업자료로 쓸 이야기

(요약) 보든이라는 18세 여성이 길에 세워진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급히 동생을 데리러 가려다가 그건 우리 아이 자전거야!’라고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내려놨다. 주민의 신고로 기소되었다.

프레이터라는 41세 남성이 가게에서 86달러어치의 물건을 훔쳤다. 무장강도로 5년 징역을 산 적 있던 전과자였다. 기소되었다.

이 둘의 재범 위험도를 판단해 형량을 정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미연방은 위험평가risk assessments’라 부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 재범율을 보고 형량을 정한다. 보든이 더 높게 나왔다. 왜냐하면 보든은 흑인, 프레이터는 백인이었기 때문

 

외국인 이민자의 범죄율은 확실히 높다. 스위스 인구 25퍼센트의 외국인이 범죄의 58퍼센트, 독인은 인구 2퍼센트의 불법 이민자가 전체 범죄 용의자 8.5퍼센트를 차지하는 등등. 하지만 이것은 가짜 투명성이다. 독일 14~30세 젊은 남성 인구가 전체 9퍼센트지만 이들은 전체 폭력 사건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러니 이민자가 아닌 젊은 남성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 이민자 차별이라는 이슈와 약간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한데, 인류의 역사는 젊은 남자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아왔다 하고 교육의 모범국가라는 핀란드에서도 남자 중학생의 학력 저하가 가장 큰 교육 난제라 했던 것이 생각난다. 동서고금, 생물학적 이유 때문인지 젊은 남자는 사회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기도 하고 트러블 메이커이기도 했던 것일까. 남중에서 수십 년을 가르치고 있는 나는 힘든 길을 걸어왔던 게 맞다.

 

이란이 반외세를 외치면 전통 회복을 주장할 때 자발적으로 베일을 쓰고 저항한 이란 여성들이 있었다. 페미니즘 민족주의. 1979년 성직자 호메이니를 내세워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에 성공. 하지만 그 다음 새 정부가 반 서구를 기치로 내세우며 여성들에게 다시 베일 착용을 강요했다나. - 역사는 항상 이런 아이러니와 배신의 씨앗을 품고 진화 혹은 반복돼 오고 있구나 싶다. 꼭 가야 할 길이었지만 실수 혹은 오류를 범한 한국 페미니즘 운동과 위안부 운동에 대한 착잡한 마음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오류가 있다고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실수이지만 어떤 것은 적들의 농간에 이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n번방 사건을 수면에 끌어올렸던 사람, 위안부 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가서 망가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이 해왔던 일들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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