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학교 -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5
전성희 지음, 소윤경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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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여태까지 살면서 거짓말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 ? 저요, 저요, 라니? 이런 거짓말쟁이!”

친구랑 약속을 했는데 좀 늦었어.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 미안, 지금 가고 있어~.” 이런 거짓말 한 번쯤은 해봤지? 집에서 이제 겨우 양말 신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런 거짓말은 나도 많이 해봤거든. 그리고 하얀 거짓말이라고, 살다 보면 솔직히 선의의 거짓말, 착한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잖아. 10년 만에 찾아온 제자가 선생님은 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라고 한다든가 동생이 잘못해서 그릇을 깼는데 그릇이 미끄러져서 깨졌다고 엄마한테 거짓말한다든가, 뭐 그런? 그런 거짓말은 용서해 준다, 내가.

그런 사소한 거짓말은 애교로 봐줄 수는 있지만 하여간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알잖아?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은 없니? 좀 섬뜩한 이야긴데,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

뉴스에 보면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들이 자기는 그런 일 한 적 없다고 하다가 증거가 나오면 아랫사람이 한 일이다, 가족이 자기 모르게 한 일이라고 하다가, 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관행(흔히 있는 일이다, 누구나 하는 일이라 잘못인 줄 몰랐다)’이라고 잡아떼고 그러잖아. 도박이나 마약 등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이 진심으로 반성한다.’ 고 참회하는 척 하다가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돌아와 거액의 출연료 받으면서 또 잘 지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고는 있어도 자기 입으로 난 거짓말을 잘 해. 그래서 잘 살고 있지롱. 너네도 나처럼 거짓말 잘하는 방법을 익혀봐~.’ 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진 않잖아? 그런데 말이지, 여기 거짓말을 아예 대놓고 가르치는 학교가 있어.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이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 여러분, 거짓말 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체계적으로 거짓말을 배워 사회 지도층으로 자라날 겁니다.” 이러는 거야.”

 

거짓말 잘하면 성공한다고?

거짓말이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던 사람도 반복되는 거짓말을 스스로 믿게 된다는 점이란다. 모르는 이, 자기를 억압하는 이, 공격적인 이, 강한 사람 앞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거짓말은 그 자체로도 부도덕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거든. 많은 사기꾼들이 거짓으로 만들어낸 자기 정체성을 진심으로 믿는단다.

유아기 아이들은 방어적인 이유로 거짓말을 하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몇 번 혼을 내거나 좋은 말로 설득하면 습관이 되지는 않는대. 즉 대부분의 사람은 치명적으로 부도덕한 거짓말쟁이가 되진 않는다는 거지. 하지만 열대여섯 살의 우리 학생들 중에는 어쩌면 저 녀석은 평생 거짓말을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아이들이 있더라. 그런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거짓말이 무서운 이유

이 책은 거짓말의 심리학을 잘 활용하였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잘 연결시켰어.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그리고 있는 학교’,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든다.

이 책 속의 거짓말 학교는 뻔뻔스럽다. 거짓말을 가르치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 열심히 공부해서 거짓말 잘 하여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렇게 나라에 복무하라고 대놓고 말한다니까? 말도 안 된다고? 그렇지, 거짓말을 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거지. 현실 속 우리 친구들은 다행히 겉으로나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는 말한다. 마음속으로는 하면 좀 어때?’라고 생각할지라도. 위선 아니냐고? 아니, 그 얇은 선을 넘지 않는 것, 그 한 끗 차이, 그게 그렇게 중요하단다, 얘들아. 그게 와르르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거라고.

 

작년 교지에 실렸던 중3 아이의 글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함께공부하고 나누고 싶다. 그게 옳다고 배웠다. 시험 때도 즐겁게 같이 공부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위선을 떤다고 한다. 경쟁상대로만 보면서 자기가 공부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슬픔을 느낀다... 우리 친구들 마음속에 남은 순수함은 현실의 벽 속에서 무너지거나 변질되는 게 아닌가 싶다. 진실 되게 사는 것, 남을 위하는 것, 정직한 것. 그런 것들이 왜 비웃음을 당해야 하는 거지? 어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믿으련다. 성경에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타락한 도시를 창조주가 멸망시키려 할 때 그 큰 도시에 의인(義人)이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고 용서하겠노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한 듯 보여도 극소수의 사람만이라도 진실된 가치를 간직한다면 세상은 지켜진다는 거지. 물론 소돔과 고모라에는 그 열 명이 없어서 결국 절멸 당했다만. 우리 사는 세상은 그래도 진실을 붙들고 살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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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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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저 수행평가요~.”

교무실 밖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은 서양식인가. 그게 뭐 어떤가 싶다가도 아직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건 어느 새 나도 보수적이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깍듯하고 뒤에서는 선생들 욕을 하는 것보다는 친근하게 이름을(그래도 뒤에는 을 붙여주기까지!) 부르는 교사-학생 관계가 나쁜 것만은 아닐 터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그들이 사는 나라’, 아니 그 곳에는 단 한 줄의 법조문이 있다 한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인사할 때 나는 당신보다 높지 않습니다.’라는 의미로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얹는단다. 상상해 보면 재미있다. 내가 교장님 어깨에 손을 얹는 모습, 내가 시아버님 어깨에 손을 얹는 모습... 거꾸로 복도에서 만난 나의 학생이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면?

 

권력을 꿈꾸지 않는 그런 공동체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둘만 있어도 서열이 형성되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살면서 시시때때로 그 권력관계를 느끼며 산다. 꼭 눈에 보이는 우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관계는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다. 심지어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자주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는 병을 핑계로 엄마와의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는 것이라고까지 해석하지 않는가. 그래서 현실적으로 나는 저런 진정한 평등의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세계를 꿈꾸는 것보다 어차피 인간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나은 정치적 관계, 합리적 권력관계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하긴 나처럼 출발을 하다 보면 그 끝은 합리적 원칙, 더 복잡한 법치이런 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 걸 보면 이 소설을 쓴 한창훈은 나와 달리 아나키스트(국가와 정부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건넨 학생은 재기발랄하고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였다. 책이 가지고 있는 밝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어서였지만 학업에 짓눌린 학생을 만난다면 이 책 속 이야기 중 <그 아이>라는 글을 읽히고 싶다. 사실은 학생들보다 부모님들이 읽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날개를 활짝 펴는 소년의 이야기이므로. 먼 훗날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아이로 커야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 진리는 우리 부모들은 왜 모르는 건지 참 안타깝다.

상상력이 아름다운 단편들이라 읽기도 쉽고 재미도 있지만 읽고 나서 마음이 행복해지는 소설이다. 제목은 그러니까 행복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는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한 평화와 평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현실에서 실현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나라를 꿈이라도 꾸어야 조금이나마 근접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보다는 더 평등하고 지금보다는 평안하고 욕심 없이 평화로운 그런 나라.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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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詩겠습니까 2 - 중학생이 사랑하는 시 아침이슬 청소년 13
이상대 엮음 / 아침이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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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하시겠습니까>는 중학교에서 오래 국어를 가르친 이상대 선생이 국어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시를 고르고, 그 시에 감상을 달아 쓴 시선집이다. 고른 시도 중학생에게 이지만 덧붙여진 학생들의 감상이 귀엽고 재미있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그보다는 좀 더 어른스러운 시들이 많다. 모두 시를 좋아하는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누군가 묻는다, 시가 밥 먹여주느냐고. ‘시인이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소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년도 넘은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 시는 돈도 밥도 되지 않는 그 무엇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거꾸로 묻겠다. 세상에는 돈도 밥도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지만 때로는 그런 것들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지 않느냐고.

시의 가치는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비슷하다. 땅으로 내려와 밥풀도 되지 않는 별들. 그러나 밤하늘에서 별이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라. 시는 땅 위의 별빛이다. 아이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소년들의 별에도 아름다운 봄이 오고 그들 밤하늘에서도 별처럼 시가 빛나기를, 윤동주의 시를 빌어,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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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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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어디선가 들은 아름다운 구전가요가 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제는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 모두 눈을 감고 생각하자

 

(중략)

산속에 사는 사람 감자 캐먹고

물가에 사는 사람 물고기 먹고

뒤뜰의 풀잎은 이슬 먹는데

별나라 사람들은 무얼 먹을까

 

쌍안경으로 별자리가 보이냐?

작사가도 작곡가도 알 수 없는 이 노래, 윤동주의 <눈 감고 간다>와 앞부분이 비슷한 이 노래가 나의 시심(詩心)과 우주적 상상력을 동시에 자극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 역시 태양을 사모하고 별을 노래하는 아이였던 까닭이다. 6학년 교과서 거의 끝부분에 실렸던 지구과학은 신비롭고 흥미로웠다. 학습을 해야 할 내용 - 태양계 별들의 순서나 거리 따위 도 재미있었지만 덧붙여진 별자리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진심으로 별나라가 궁금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가 과학연구학교였던지라 6학년 여름방학 내내 과학연수를 받는 교사들과 함께 과학교과서 전 과정의 실험을 다 해 보며 서울 어린이과학경진대회 준비에 매진했다. 그때는 나름 과학소녀였다. 그리고 그해 가을 무렵 지구과학을 배울 때에는 엄마에게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디선가 당시 신세계 백화점 맨 위층에서 학습용 천체망원경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해 엄마를 설득했던 것 같다.

엄마가 어렵사리 사온 것은 그러나, 천체망원경이 아니라 고감도의 쌍안경이었다. 엄마는 그것도 무척 비싼 것이고 백화점에 천체망원경을 팔지 않아서 대신 사온 것이라고 하셨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을 보았는데 당연히 별이 보일 리 없다. 고개를 뒤로 꺾고 하늘을 휘젓던 내게 보인 건 달님. 그런데 놀랍게도 달의 분화구가 다 보이는 게 아닌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달의 앞모습만 보는 게 지쳐서 그만 둘 때까지, 꽤 오랜 가을과 겨울의 시간 별자리 대신 달을 바라보면서 사춘기 초입을 지났다. 그때 엄마가 진짜 천체망원경을 사다 주셨으면 혹시 이과로 진학하고 천문학을 전공했으려나.

 

상상력이 풍부해야 과학을 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다 보면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정연함으로 끝을 맺을 것이지만 저자처럼 그 중간을 감성과 상상력으로 채우는 이들이 있겠다 싶다. 아니, 과학자야말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입증하는 그 과정은 상상력이 아니면 가지 못할 미지의 길이지 않은가.

가끔 자신의 우울의 끝을 우주로 날리는 학생들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 중에는 생각을 확장하고 확장하다 하늘과 별에 대한 궁금함으로 펼치는 이들도 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학생 중에 그렇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넌지시 드러낸 아이가 있다. 그에게 <코스모스>를 선물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어른이 보기에도 너무 두껍다(보급판도 자그마치 719). 아무리 아름다운 문체에,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라 해도 과학의 기초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루할 것이다. 나 역시 어떤 대목은 중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한 과학상식에 기대어 갑자기 튀어나오는 유클리드나 피타고라스를 겨우겨우 감당하며 읽어야 했으니, 공부가 싫고 학교가 괴로운 그 학생에게 과학책을 건넨 게 과연 잘한 일일까? 하지만 나는 아무 데나 펼쳤을 때 여기저기 보이는 행성들의 사진이나 상상화라도 들여다보라고 이 책을 안겨주었다. 혹시 또 아는가, 우울이 극심할 때, 그러나 우주로 날아갈 수 없을 때 상상으로 별나라를 여행하듯이 이 책의 아무 대목을 읽으며 그 소년도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지.

 

우울 따위 우주로 날려 버려!

케플러가 자기 어머니를 마녀사냥에서 구해내기 위해 책을 썼다는 이야기나 칼 세이건이 집필할 때 사슴이 집 앞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어깨 너머로 그 원고를 들여다본(?) 이야기, 원시인들이 별자리를 보며 지구세상을 상상하는 이야기이며 인위도태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일본 바다에서 잡히는 사무라이의 얼굴 모양의 게 이야기 들은 그냥 그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다. 과학은 논리가 아니라 꿈꾸기에서 비롯된 희망임을, 그래서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마치 문학도가 품고 사는 윤동주 시집처럼, 누군가의 손때 묻은 기타처럼, 어린 날을 위로해주던 그림책이나 애착인형처럼 그냥 품고만 있어도 따뜻하고 신비로운 그런 책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이 곳이 아닌 먼 곳으로 가고 싶어 우울하다는 사람을 만나면 당장 이 책을 사서 베개로 삼으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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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들이 쏟아진다 창비시선 376
정재학 지음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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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은 1996년 등단해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시인이다. 그는 우리 학교 사회 교사이기도 하다. 그가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을 동료교사들도 학생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유명세를 떠나서 그저 순수하게 시만 읽어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시인인지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모더니즘의 젊은 기수라는 평을 받는 그의 시는 결코 쉽지 않아 대중적으로 읽히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초현실적인 꿈을 옮겨놓은 듯한 그의 시집 <어머니는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는 어른도, 또 문학을 전공한 이들도 취향에 따라는 선뜻 읽기 어려울 수 있으니 중학생인 우리 학교 학생들에는 좀 난해할 것이다.

 

때때로 학생들이 따라와 묻는다. 정재학 선생님이 정말 시인이냐고. 그렇게 묻는 학생들에게는 그의 <모음들이 쏟아진다>를 권한다. 뭔가 괴이하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가득한 앞의 두 시집보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은 순해졌다.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학교 이야기<정재학 밴드>도 나온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그는 어렸을 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단다)는 시 곳곳에서 곡조를 뿜는다. 주로 재즈와 클래식의 분위기이지만 한창 사춘기에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흑판> 시리즈다.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지만 백일몽 같은 환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수업 중 판서를 하다가 갑자기 뭔가 물컹하더니 손이 칠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흑판(1)>

 

수업을 하던 교사가 자신의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또 다른 폭력의 현장이었던 학교의 피비린내는 21세기에도 근본적인 면에서는 지워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학생 개인의 비참함에 감정이입하는 교사의 시선은 그가 시인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대체 우리가 얼마나 더 죽어야 어른들이 정신 차릴까 - 흑판7). 때로는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람으로 자라나라고 부추기는 것 같은 학교, 혹은 교육 시스템, 혹은 교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하고(여러분은 친구들에게 어떤 종류의 식물과 같나요 - 흑판6 ),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사과는 더 이상 사과가 아니었다. 나무도 더 이상 나무가 아니었다 흑판5).

 

정재학의 시는 때로 아름답고 때로 신랄하다. 어린 아기에게도 아름답고 착한 동화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 것처럼 사춘기 소년들에게 정재학 시는 윤동주와 김소월에 머물던 교과서 시의 세계에서 그 외피를 넓혀줄 것이다. 특히나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라면 곁에서 따뜻하고 뜨겁게 숨 쉬는 시인 선생님의 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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