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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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중에 독재정권 시절의 고문 기술가 하는 말이 나온다. ‘피의자가 내부로 후퇴할 길을 차단하라. 불을 절대 끄지 마라, 절대 혼자 두지 마라, 그에게서 잠과 평온을 빼앗으라, 그러면 곧 자백할 것이다!’ 라고. 이 책 <고독의 위로>를 읽으며 그 대목이 떠올랐다.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행복해 하는 나는 천번 만번을 공감하면서...

이 책의 하고 싶은 말을 간략히 줄이면 이렇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당신, 당신은 잘못된 게 아니다, 그게 얼마나 큰 창의력의 원천인 줄 아느냐? 고독의 함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말해줄게...

 

외향성이 강하고 성취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기 쉬운 시대이기에 혼자 있기 좋아하고 사교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주눅 들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이 갖고 있는 성향의 장점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물론 작가나 예술가들에게 유리한 분석일 수 있다. 그래도 적어도 위로는 된다. 요즘 숱하게 나오는 소극적이면 어때?’, ‘사회성 키우려고 너 자신을 소비하지 마류의 힐링북 혹은 자기계발서들의 심리학적 하이퀄리티 버전이다. 읽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읽고 나면 지원군을 얻은 것처럼 든든해진다.

 

자기 자신과 멀어지지 말라 - 융이 말하는 개인화의 중요성

융은 사람들이 인생의 중간지점에 이르러 신경증이라는 문제를 안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본성이 따르라고 하는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기 때문이다.’고 했다. 일이든 관계이든 외부적인 것에 매몰되면서 자기 자신과 멀어질 때 분열은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바깥 세계의 새로운 진실에 과학자가 공감하고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예술은 안 그런가. 색과 부피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 그림을 보거나 대립하는 주제들이 통합된 음악을 들으면 마치 그 균형이나 통합이 자신의 정신구조에도 존재하는 듯 새로운 일체감이 생기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융이 말하는 진정한 자아의 일체화, 개인화의 과정인가 보다. 괴리, 혹은 분열이 아닌. 꼭 무언가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평범한 개인일지라도 이런 통합과 충만을 맛볼 수 있다. 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뭔가 성취하려 애쓰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것에만 매달릴수록 느끼는 갈증이 있을 때 오히려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그들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거짓 자아를 형성하고 자신의 진짜 느낌과 본능적 욕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자아를 형성한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순응해 살아가면서 결국 인생이 무의미하고 하찮다고 느낀다. 성취와 경쟁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공허감을 느끼는 이유로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고독에서 비롯되는 창의력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흔히 어린 시절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단다. 어른이 되어 기억을 못할 뿐 많은 어린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하나가 되는 경험은 인간과의 관계나 사회성이 아닌 홀로 있음’, ‘혼자 자연과 대면하기’, ‘혼자 신과 대면하기의 경험이다. 자연을 만나고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하는데 어렸을 때에는 가능했던 그 일이 어른이 되어 불가능해지게 되면 결국 융이 말한 분열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사회성과 외향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가치관과는 좀 달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분석심리학이 관계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독이 창의력을 길러주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의 예를 저자는 이렇게 들어본다. 누구나 한 번 쯤 해보았을 생각인데, 어젯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자고 일어나면 명쾌해지거나 무게가 덜어지는 경험들 있지 않은가. 잠이라는 고독의 상태가 주는 선물인 것이다. 잠을 잘 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처럼 꿈을 즐기고 꿈의 메시지를 창의력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혹은 우울증의 도피처로 잠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잠은 일종의 자신과 만나는 시간, 우주와 접하는 시간이 아닐까. 심지어 책에는 정신병이 발생하기 전에 한동안 불면증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매일 밤 꿈이라는 미친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심리학자 그레이엄 윌러스가 부화라고 이름 붙인 창의적 사고 단계가 있다. 알이 부화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브람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뭔가 다른 일을 하면서 몇 달 동안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다. 한숨 자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처럼 한 동안 묵혀두었던 아이디어가 뇌 속에서 저절로 다듬어지고 정돈된다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장기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어떤 계획, 글쓰기 등등은 일기장이나 어떤 곳에 메모해 둔다. 어설픈 초기 계획들을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꺼내 보면 더욱 체계적으로 다듬을 수 있다.

 

위니콧은 우리에겐 누군가 곁에 있지만 혼자 있는 상태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상태 기도라면서. 곁에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기도하는 사람은 혼자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때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느낌과 접촉한다. 기도는 신을 움직이거나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 기도와 명상을 하는 동안은 이전까지만 해도 관련이 없던 생각과 느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기도의 시간과 비슷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뇌가 가장 좋은 상태로 기능하고 개인이 각자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상상력의 중요성

프로이트는 상상은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다리라고 했다. 물론 그는 공상을 현실도피로 보긴 했지만 공상하는 능력이 없다면 물질적인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교, 음악, 문학, 그림도 나올 수 없다. 고야는 공상이 무시된 채 이성만 남으면 괴상한 괴물이 태어난다. 이성과 결합된 공상은 예술의 어머니며 경이로운 예술품의 원천이다.” 라고 말한다.

공상이나 망상의 한계가 있음을 말하지만 나는 망상으로 끝나고 마는 공상일지라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망상으로 끝나도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망상 단계일 때는 이것이 이론이 될지 망상으로 끝날지 어찌 아는가 말이다. 범죄적이고 파괴적인 망상이 걸작 추리소설로 탄생할 수도 있고 망상이었던 가설이 과학계의 정설이 된 예도 많으니까.

 

고독과 아동 심리의 연관성

이 책은 고독한 기질이 어렸을 때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언급하는데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정서나 기질 형성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읽었다. 융은 아동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신경증 반응을 보일 때 문제의 해답은 대개 아이 자신보다 부모의 심리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융의 저서에서 아동기의 심리에 대해 별 언급이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일반적으로 집착 행동은 불안감을 암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것은 엄마가 돌아온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 자기가 필요로 할 때 애착 인물이 언제든 옆에 있어줄 거라고 믿는 아이는 애착 인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잘 견딘다.

유아기에 부모와 신뢰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 아이라면 불안감을 많이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좋은 대상의 내입(內入)’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내입이란 애착 인물이 한 개인의 내면 세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누구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고 혼잣말을 하는 상황을 자주 활용한다면 이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이미 내 상상의 일부가 되었음을 즉, 좋은 대상이 내입되어 있는 상태임을 나타낸다. 아이가 차츰 혼자 있어도 편안해 할 때 이 과정은 시작된다.

 

그런데 엄마가 충분히 사랑을 주어도 애착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자폐증의 경우) 아이가 불안해하고 부모에게 지나치게 순응할 때에는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학대를 하지 않아도 아이가 부모의 사랑이 조건부라고 느낄 때에는 지나치게 순종적일 수 있다. 부모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거짓자아를 만들어놓고 진짜 자아를 억누를 수도 있다. 착한 아이가 유독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부모가 조건 없이 사랑해줄 거라고 확신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내면의 가치를 느끼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아이들이 자아 존중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 요소에 의존해야 한다. 외부의 고통이 들어오면 유독 취약해진다(자아 존중감이 낮은 아이가 된다)

 

아이가 한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면 아이는 엄마와 시선과 등을 돌리는 회피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일시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처음 3개월 동안 엄마가 아기와의 신체접촉을 꺼리거나 화를 내거나 겁을 주면 아기가 회피행동을 할 수 있다(아이를 무시하거나 빈정거리거나 놀리거나 노려보는 엄마 등).

폭력을 쓰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친근하게 대하는 또래 친구나 보호자들을 피하고 공격적으로 대하며 보호자들에게 예측 불가능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요즘 아이들이 관계형성에 자주 실패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의 원인이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예전 엄마들은 잔소리를 했을지언정 아이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학원이나 학습 문제로 아이와 엄마들의 적대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예 아이들이 순응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관계는 강남에서 많이 본다. 남자고등학생이 엄마와 손을 잡고 학원에 들어가는 모습은 기괴하다.)

 

아이는 겁을 먹으면 애착을 강렬하게 원한다(애착의 주된 기능이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이기 때문). 보호해 주어야 할 엄마가 위험의 원천이 된다면 아이는 갈등에 직면해서 접근, 회피, 분노를 오락가락한다. 회피는 상대방이 자신을 미워할 거라는 두려움에서 오는 행동, 순응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혹은 사랑이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다. 아동학대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음을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울

늘 우울하거나 건강이 좋지 못한 어머니와 지내야 하는 아이들은 지나치게 불안해하며 눈치를 본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기분은 금방 알아차린다. 보호자에게 쉽게 의지하지 못한다. 자신은 남에게 의지가 되어주면서도 제대로 된 관계 맺기는 잘 못 한다. - 내 이야기구나 싶었다. 내가 특별한 분리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늘 불안감에 싸여 사는 이유가 단지 기질 문제라고 생각했는데(그러고 보니 나의 부모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맏이로 젊은 엄마(엄마가 22살에 나를 낳았다)의 삶의 무게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스란히 듣고 살아야 했던 내 성장과정 탓이었다. 나는 애어른 소리를 들었지만 사실은 부모 무게를 짊어졌던 거였다.

 

아름다움을 머리로는 인식하면서 감정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우울증의 특징이다. 특히 남학생들에게 이런 현상을 많이 본다. 얼핏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감성의 크기가 작아서 그런가 싶어 문학의 힘으로 그것을 키워보려 하지만 어쩌면 세대 전반, 시대 전반의 우울증 탓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교사나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 뭔가를 하도록 권하는 것은 위험하단다. 동정과 격려 사이에서 세심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격려는 자신의 절망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한다. 물론 그 균형을 정확히 잡아서 과하지 않은 격려, 오해받지 않을 칭찬을 하는 일은 참 어렵다. 우울의 가장 큰 원인은 게으름이며 가장 좋은 치료약은 일이다. 학생들에게 아주 작은 과제, 그러나 해낼 수 있는 일,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미션을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극복하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에 비해 더 쉽게 불안정해지면서도 자신의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더 많이 갖추고 있다.

<7년 동안의 고독>을 쓴 이디스 본은 1949년 헝가리에서 체포되어 영국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어 독방에 갇혔지만 시를 암송, 번역하고, 짓고, 알고 있는 6개 국어 어휘들을 기억하고 가보았던 도시의 거리를 상상 속에서 산책하면서 정신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소작농의 대의를 지지해 감옥에 갇혔는데도 수감자들에게 신분이 다르다고 배척당해 괴로워했다. 하지만 점점 배신감은 그들에 대한 믿음으로 전환되었다. 감옥생활 4년 동안 도스토옙스키는 무의식적 연상 기법을 사용, 억압된 기억을 풀어내고 심리적 장애와 병적 집착을 완화했다.

 

빅터 플랭클도 그랬고 신영복 선생도 그랬다. 용기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지옥에 있으면서도 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들이 무조건 긍정적이고 낙천적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 친밀감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때가 많다. 오히려 그들의 냉철한 지혜는 그들로 하여금 관계가 나빠질 때 별로 혼란스러워하지 않게 해준다. 친밀한 인간관계에 삶의 의미를 과도하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크지 않아야 과장하지 않을 수 있다. 다정하되 매몰되지 말 것...

그런 지혜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아이가 커가면서 확립해 가는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여주며,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고 아이의 요구에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단호하게, 무조건 받아주지 않으면서도 다정하게반응해야 한다.

 

고독을 사랑한 사람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 관심을 덜 보이고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하며 내면의 관심사에 더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조부모와 손자손녀 관계가 더 편안할 때가 많은 것은 노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점차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정도가 줄어들기 때문일 것. 손자손녀가 느끼기에 조부모는 부모만큼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편안한 사이로 지낸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마틴 쿠퍼가 베토벤의 마지막 음악 형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중에게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고 청중의 관심을 끌거나 흥미를 얻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작곡가는 그저 자신과 교감하고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며 소리 내어 생각하고, 사고의 순수한 본질 그리고 사고 자체와 좀처럼 구별되지 않는 음악과정에만 관심을 가진다.”

 

베토벤과 리스트는 작곡가로서 공통점이 거의 없었지만 두 사람 다 초기 중기에는 청중의 공감을 사기 위해 화려한 기교를 사용하다가 후기에는 그런 노력을 포기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사람들, 불가에서 말하는 내려놓은 자. 자연과 우주와 신과 예술과 기꺼이 합일하는 사람들. 내면을 바라보기에 자기 안의 창의성을 잘 길어올릴 수 있는 사람들. 내성적인 당신, 고독과 자주 접하는 당신을 결코 우울한 사람이라고 자조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이 책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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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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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소설이고 사서 선생님이 강추한 소설이라 망설이지는 않았지만 하와이 이민자 이야기라니, 그다지 관심을 두었던 적 없는 소재라 좀 뜨악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 재미있어서 이러다 잠을 설치겠다 싶어 책을 덮었다. 아껴 읽어야지 하고.

 

일제 강점기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몰락한 양반집 처자 버들이가 사진 결혼으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난다. 조선에서의 이야기도, 결혼을 위해 일본을 거쳐 머나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도, 얼굴도 본 적 없는 남편감을 그리며 설레는 이야기도, 가서 만난 남편 가족의 슬픈 이야기도, 온유하면서도 강인한 조선여자 버들이 하와이 이민자 어머니로 살아내는 이야기도 모두 참 재미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듯 보이는 버들이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 중 가장 좋았던 장면은 자기 옛 정인 이야기를 들려준 남편 태완에게 시어머니 묘지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지는 가 볼랍니더.”

태완이 고개를 번쩍 들어 버들을 보았다.

딴 가시나한테 마음 다 준 사나라 캐도 지는 당신하고 계속 가볼랍니다. 가다 보면 당신 맘도 돌아오는 날이 있겄지예. 당신도 노력하겄다고 어무이 앞에서 약속하이소.”

태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고마, 퍼뜩 일나소. 지 손도 놓칠 깁니꺼?”

버들이 태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냥 그런 아픈 역사와 사연으로 그칠 수도 있었던 이 소설은 역사적 이야기도 담는다. 우리는 잘 모르는 재미동포들의 독립운동 이야기와 파벌에 얽힌 씁쓸한 이야기가 세세히 담겨 있다. ,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승만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말아먹게 되었을까 늘 의아했다. 욕심을 부렸다는 것도 알겠고 임시정부 대통령 자리를 꿰차려 했던 것이나 서둘러 정권을 잡느라 분단을 앞당긴 것도, 독재를 하고 하야를 한 과정도 다 알겠는데 다만 미국에서 뭘 어떻게 했기에 독립운동가들 사이를 분열시켰다는 건지는 잘 몰랐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것을 읽어도 잘 모르겠던 그 내용들이 이 책에 있다. 같은 동포끼리도, 심지어 독립운동을 하고 거기에 힘을 보탠 이들까지도 이승만 파 박용만 파로 나뉘어 갈등했던 이야기가 거기 있다. 이제야 알겠다. 이것은 그저 갈등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처 풀지 못한 역사의 실타래의 실마리가 거기 있다. 이 소설을 묵직하게 여겨야 할 이유이다. 하와이에 건너간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삶을 선택했지만 결코 조국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전부터 있던 대한부인회 회원들이 조선의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부인구제회를 새로 설립했다.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 다치거나 감옥에 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이금이를 청소년 소설 작가로 가두지 말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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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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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하게 사는 법이 있다. 성공했을 때는 내가 열심히 했고 뛰어나서, 라고 생각하고 실패했을 때는 운이 안 따랐다거나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주변 사람이야 어떻든 자기긍정성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인격적으로는 겸손한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요, 심리학적으로는 자기건강성이 강한 건지 반대로 병적인 자아 확장인지 본인은 모른다. 특히나 재능이 있거나 무언가 성취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래 전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한 여선생님이 자기가 돈 벌어 외제차 타고 다니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외제차를 부도덕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십 년 전 이야기이긴 하다. 나는 그 사람이 돈을 잘 벌 수 있게 되기까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던 건 아니었겠냐고, 특별히 탈세나 탈법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사회구조적 혜택을 입은 사람들도 모두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잘살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로버트 프랭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나 보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우리는 조금 먼저 미래에 도착했습니다>에서도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 그와 비슷한 것 같다. ‘건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미덕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그런 사회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어떤 경쟁사회도 완전히 공정하지는 않다는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돈이나 배경뿐 아니라 재능을 타고나는 일도 당연히 기득권자의 몫이다. 심지어 성실함마저도 사회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숱한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동료교사의 발언에 주목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에 있어서 행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러 공공투자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렇다. 못 사는 사람, 실패한 사람들을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공공투자나 세금으로 운용되는 여러 가지 제도가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내 주변에도 그저그런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간부로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는 늘 요즘 청년세대에게 주어지는 각종 복지 혜택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돈 없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스타벅스 커피는 꼬박꼬박 마시는, 육아 핑계를 대고 온갖 꼼수를 부리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소수이며 대다수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직접 말은 안 하지만 자기처럼 노력으로 개룡(개천에서 나온 용)’이 된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부자는 아니지만 머리 좋은 부모 밑에서 성실함을 보고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기득권을 지녔다. 육아를 전담해주는 친정어머니 덕분에, 그리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학비 덕분에 박사학위를 땄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그걸 못해내는 사람들의 부족한 노력을 비웃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었다. 물론, 책을 다 읽어도 그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평생을 스스로의 노력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며 자부심을 느껴온 그에게 그 세계관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자기철학을 부정하는 힘든 일일 테니 말이다. 그래, 세계관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경멸하지는 말아다오. 그들이 너와 같은 안정된 가정, 도와주는 부모, 좋은 머리를 타고났다면 그들도 저렇게 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 인정해다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걸 그대로 인정하기만 하면 세상이 허무하긴 할 거다.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 하지만 운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이 결국 고꾸라지는 모습도 많이 본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나마 세상에 질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한다. 하지만 아예 그 영역을 벗어난 사람들도 많다. 미국은 더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별 혜택을 못 누리고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에 반발하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미국 내 불평등을 세계적으로 확장할 때, 그들 개개인의 가난을 감수할 만큼 미국인으로서 누리는 세계적 혜택을 더 인정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 거대한 나라가 이 불공정한 세계,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누리는 승자독식의 사회, 그 가치관을 거부하지 않아야 개인은 가난하더라도 나라는 부유한’, ‘개인에게는 가혹할지라도 국제적으로는 공정하다고 생각되는지금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래저래 저 거대한 제국은 언제 문을 닫을까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미국이 무너지면 지구 전체가 멸망할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하는데 과연 그럴지 궁금하기도 하고. 뜬금없는 소리지만 미국의 몰락하며 온 세계가 패닉에 빠진다면 상대적으로 쿠바나 북한 같은 나라는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게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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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럽게, 도시락부 살림 YA 시리즈
범유진 지음 / 살림Friends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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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육복지 업무를 맡고 있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서 문화체험을 하는 활동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원격수업으로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늘다 보니 부모나 형제들과 갈등이 생겨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맛있는 꾸러미, 가족화합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았다. 동네 피자 샐러드 이용권과 마스크, 음식 관련 책, 담임 선생님의 손편지, 가족과의 대화시간을 찍은 사진이나 활동 소감을 적는 간단한 과제지 등을 우체국 택배상자에 넣어 학생들 집에 보내는 것이다. 가족과의 대화가 필요한 스물세 명의 학생 네 모두 일흔 네 명의 식구들을 위해 선생님들 열네 분이 모여 편지도 쓰고 포장도 하고 그랬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사서 선생님께 도서 추천을 요청했더니 음식과 관련한 재미있는 책을 많이 소개해 주셨다. 수박 수영장, 여우 비빔밥, 구미호 식당, 식빵 레시피 채, 달걀 요리 책 등. 그 중 이 책 <맛깔스럽게 도시락부>는 내가 읽어보기 전이었던지라 단 한 가정에도 보내지 못했다. 뒤늦게 읽었는데, 어머, 참 재미있다~!

이런 요리 관련 활동이 아니어도 그냥 우리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다. 등장하는 학생들 하나하나의 사연은 다양하고 아프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음식을 통해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어른스러운 아이들도 등장한다. 아픔을 이겨내는 저마다의 사연도 뭉클하다. 모든 아이들을 다 주인공 삼아 시점을 다양화한 것도 독특하다. 다만 아이들 하나하나의 사연만으로도 소설 한 편이 될 법한데 변태성욕자 이야기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좀 아깝다. 하긴, 마지막에 도시락부 아이들이 저마다 싸온 음식을 모아 커다란 도시락 바구니를 만드는 것처럼 저마다의 사연이 모여 어우러지게 하는 게 글쓴이의 의도였는지도 모르지.

직업 때문에 청소년 소설을 많이 읽느라 나의 문학적 영양소를 다른 데서 채울 시간이 없을 정도인데 요즘은 정말 잘 쓴 청소년 소설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한강과 조선희 이외에는 최근에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도 전혀 갈증을 느끼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구분을 넘어, 특히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의심하지 말고 영역을 넓혀 소설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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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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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의 유의미함에 대해서 은유, 정여울, 리베카 솔닛, 정희진 등이 이야기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버지니아 울프도. 누군가 나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세 번째 책이 나왔을 때. 바쁜 와중에 책을 쓰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물었지만 그 질문은 내게 나는 왜 글을 썼으며, 쓰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환원되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답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였다. 살아있음의 증명을 글이 대신해 준 것이었다. 어려서는 글이란 다른 예술적 재능들과 마찬가지로 타고나는 것이지, 범인들이 함부로 집적거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공부하겠노라고 선택했지만 그냥 읽는 게 좋았고 나아가서는 가르치며 아이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을 뿐이지 쓰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천상의 문장은 타고나야 쓰지 갈고닦아 쓸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제자들에게 문학이 곧 삶이 되는그런 삶을 가르쳐왔듯 나도 삶 속에 녹아 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소소하고 시시하고 사사롭지만 글로 담아내며 내 삶을 다독이고 조금이라고 괜찮은 사람이 되려 애쓰기, 힘든 일을 글쓰기로 위로받기,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세울 때 글쓰기로 주변을 다스리기, 등등

 

고미숙이 말하는 글쓰기의 의미는 나의 것보다는 좀 더 학구적이기는 하다. 일단 우리의 몸이 걷고 움직이며 살아가듯 우리의 정신은 글쓰기로 그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변과 교감하기 위해서(독설적 글쓰기를 버렸다 한다), 아기가 직립을 위해 고개들기를 하듯이 튼실한 일상과 거룩한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위해서,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질문이다 . 삶에 대한 질문, 사람에 대한 궁금증, 사물에 대한 호기심,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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