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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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분에 40년 만에 클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 너무 재미있고 다정해서 아껴 읽었다. 중간에 친절하게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코드를 넣어두었기에 글 조금 읽고 음악 듣고, 이렇게 책을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에 베토벤 전기를 읽기도 했고. 방학을 틈타 2, 3분짜리 주요 부분만 듣는 방식이 아닌 전곡 감상을 도전해 본다. 팟캐스트 <월말 김어준>에도 마침 클래식 코너가 있어 그와 더불어 입체적으로. 방학마다 주제를 정해놓고 자가 연찬을 하는데 이번에는 클래식과 팟캐스트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그림 연습을 하면서 보낸다.

 

베토벤은 내게 신세계였는데 발랄함보다 묵직함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 때문에 모차르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야말로 편견이었음을 이번에 발견한다. 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폭 빠졌다. 쇼팽이 자신의 장례 때 써달라고 했던, 나의 사랑하던 친구이자 강원도 선배가 젊은 날 하염없이 듣던 그의 <레퀴엠>만은 뒤로 미룬다. 브람스와 드보르작이 좋았고 호불호가 갈린다 하는 말러의 교향곡들 또한 내게는 참으로 좋았다. 책은 순서 없이 읽었는데 어쩌다 보니 쇼팽을 맨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쇼팽을 듣고 있다. 2월에는 그리그와 드보르작을 연주한다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공연에 혼자 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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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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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학생용으로 주문했는데, 어머,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두꺼운 책은 일단 학생들이 집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안에 졸라맨 그림이 풍성하다. 남학생들은 수학을 엄청 싫어하면서도 엄청 좋아한다. 국어나 영어나 수학이나 다 염증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남성성이 강한 교과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은 있지만 높은 경지에 나아가는 게 힘든 학생들에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 수준을 생각하면 이과적 성향이 뚜렷하고 수학을 좀 잘하면서 인문 과목도 싫어하지 않는 학생들이어야 권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남중생들은 전반적으로 학업성취가 떨어지다가 뒤늦게 고양되는 편이다). 게다가 미국문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지만 수학과 과학을 문학적으로 기술해 놓은 책들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독서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내 책장에는 가벼운 물리학, 천문학, 수학, 과학 일반 에세이들도 있다. 그리고 뭐, 그 책들 전부를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고 관심 없는 분야는 적당이 후루룩 읽어줄 수도 있다. 이 책은 어떤 학생에게 어떻게 권할까. 독서 시간에 어떻게 책소개를 할까에 초점을 두고 읽긴 했지만 복권의 통계학이나 세금 부분은 꽤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지난 겨울 기말고사 수학 시험 감독에 들어갔을 때, 평소에도 질문이 많던 한 학생이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에서 삼각형 빗변의 길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가 이상하다며 인쇄 오류가 아니냐고 내게 질문을 했다. 교과목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감독 교사가 답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보통은 질문이나 이상이 없는지 출제교사가 교실 순회를 하기 때문에 그때 질문을 하도록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궁금해졌다. 그 학생이 문제를 풀어보니 도저히 그런 빗변의 길이로는 문제를 풀 수 없었기에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 아닐까? 내가 한 번 풀어볼까? 내가 대답을 해줄 수는 없어도 오류인지 아닌지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피타고라스 정리 수주의 중2 수학 문제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루트 계산법도 생각나지 않고... 겨우 그 문제를 풀었는가 싶어 다음 문제에 도전해 봤지만 역시 허걱, 이었다. 그러다가 종이 쳤다. 감독교사는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걷고, 감독 날인하는 시간 외에는 내내 학생들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보련다. 그래도 두 문제라니!! 아무리 대학 입학 이후 수학문제 풀 일이 거의 없었다지만 말이다.

자리에 돌아와 이 책 앞 부분의 실수, 허수, 무리수, 유리수 부분을 다시 읽어 보고 루트 부분도 보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수학의 정석스러운 유형의 수학책이 아니다. 공식이 많고 수학 풀이에 도움이 되는 수학책을 보고 싶은 학생이나 학부모라면 이 책의 수다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난 문과인개벼, 한국에서 문과는 죄송한 일이라는데, 어쩌지? 이런 학생들에게 숨어있는 수학 1센티미터를 찾아주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수학이란 수학은 다 너무 좋아. 이런 학생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을 터이고. 나에게는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남성성을 통계로 정리한 부분과 린데그린의 세금 이야기가 신기했다. 이 사람, 수학교사라면서 도대체 정치 문화 경제 모르는 게 뭐야? 그걸 다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게 더 신기했고.

 

그리고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도 요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중학생들이 국어를 재미있게 생각할 수 있게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쓰지는 않을 거다.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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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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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에는 그야말로 감각에 관한 모든 지식이 집대성되어 있다. 삶에 필요한 잡다한 지식을 얻는 재미가 있는데 문장 또한 원문을 찾아 읽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아예 필사를 하기 위해 따로 테이프를 붙여둔 페이지도 여럿이다.

 

나는 노안이 오기 전까지 굉장히 좋은 시력을 가지고 40여 년을 살았지만 반면 왼쪽 청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그보다 긴 세월을 살아야 했다. 감각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나빠질 때야 비로소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청력은 너무 오래라 그만 익숙해져 버렸지만 눈이 불편해지자 세상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이 없는 존재는 귀신이나 천사뿐이라고 말하면서 감각으로부터의 자유는 긍정적인 어떤 것, 초월적 평정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좋은 감각이 늘 우리를 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인공 이소골 수술을 하고 나서 처음엔 잡음과 소음이 너무 선명하게 들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적응을 하고 난 후엔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음악을 입체적으로 듣게 된 기쁨을 맛본다. ‘죽음과 강렬한 감각은 공포인 동시에 특권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감각은 그로 인해 행복하든 불편하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준다. 하긴, 살아있다는 것 역시 공포이자 특권 아닌가.

 

책은 맨 처음 후각을 다룬다.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과 미각은 공통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너무나 궁금하다. 아무리 멋지게 묘사를 한들 알 수가 있나. 가령 제비꽃 향기 같은 것.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그건지 몰랐을 것이다. 무슨 향수를 사야 할지 몰라서 제비꽃 향의 바디 워시를 샀지만 분명 나폴레옹을 행복하게 했다던 조세핀의 향이 이런 냄새는 아닐 것 같더라.

 

혁명의 열정을 담은 신경림 절창 <돌아가리라>에는 그이의 몸에서는 신살구 내음/취할 듯 진한 살구꽃 내음이란 구절이 나온다. 시적 화자는 땅을 잃어버려 반역과 혁명의 열기에 젊은 혈기를 싣는 젊은 농노인 듯 하며 그의 연인 연이의 몸에서 살구향을 맡았다는 것이다. 젊은 날, 좋아하는 여자에게서 살구향이 나더라는 이야기는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보았다. 나 역시 스무 살 시절, 남자친구 몸에서 항상 똑같은 비누냄새가 난다고 느꼈더랬다(결혼하고 그 향기가 사라졌다.)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인 시절에만 만x을 수 있는 페로몬의 향기일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레 미제라블>의 마리우스가 그랬듯, 80년대 거리의 우리들이 그랬듯, 혁명의 열정은 늘 사랑의 열정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다.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만이 누군가를 미칠 듯이 사랑하여 없는 향기도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또 그런 이들만이 혁명을 꿈꿀 수 있는 것이리라.

향기는, 냄새는 그 실체는 묘사하기도 어렵고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는 면에서 허망하고, 아름답다. 저자 역시 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냄새는 수수께끼이고 이름 없는 권력이며 성스러움이다.’라고 표현했듯이. 학생들과 문학적 글쓰기 공부할 때 익숙한 냄새 설명(묘사)하는 글 써보기로 시작해 볼까 한다. 누구나 냄새에 대한 경험은 있으니까.

 

향수 이름에는 그 편안한 향과 반대로 강렬한 이름이 많단다. 데카당스(타락, 쇠퇴, 퇴폐), 포이즌, My sin, 오퓸Opium(아편) Indiscretion(무분별, 경솔) 옵세션(집착), 터부....

그걸 저자는 향수는 충격을 주는 동시에 우릴 사로잡고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면서 기쁨을 주는 불안이라고 표현했다. 그래, 그런 걸 매혹이라고 하겠지. 비 오기 전, 혹은 비 온 후의 바람 냄새를 좋아하는 데 그게 습기가 후각 능력을 높여주고 저기압이 휘발성을 만들어서 그렇단다. 예민한 감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문학을 하게 만들거나 과학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전자에 해당하고 내 동생은 후자에 해당한다. 다른 요소와 결합하면 달리 발현이 되겠지만 나의 예민한 후각은 나를 더 감성적으로 만드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였나 보다. 인간의 후각은 점점 약화되며 중년일 때 가장 그러하단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비의 냄새, 숲의 냄새, 내 아이들의 냄새에 둔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마를 받은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아기들에 비해 체중 증가 속도가 50% 빠르단다. 사랑의 손길이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실험으로도 입증되었지만 과학이 아니어도 그냥 이해가 되는 대목 아닌가?

나의 자녀들은 지금도 부모나 조부모에게 스킨십을 아끼지 않는다. 그애들이 어렸을 때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느낌이다. 그게 아이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그리고 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자주 만지고 안아주고 주물러주며 키웠지만 그렇게 키운 것이 늙어가는 우리에게 돌아온다. 참 감사한 일이다.

작년에 학부모 상담연수 대신 전교생 가정에 보낸 내 자녀 이해하기편지 시리즈에 당신은 오늘 당신의 자녀를 안아주었습니까?’ 질문을 던지며 하루 한 번 이상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 주거나 악수를 하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행동을 하시라고, 체크리스트를 보내 보았다. 답신은 의무가 아니었는데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1/5이 넘는 학부모님이 한달 간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다정한 말을 건넸던 체크리스트를 빼곡하게 작성해 보내왔다. 아이들이 가정통신문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발신물들을 거의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 달 내내 그리 하는 부모님의 과제를 만나본 일 많지 않으실 학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분량이었다. 늙어서 다 돌려받으실 거다.

 

책 속에서 본 내용 중 촉각은 시각과 더불어 우리가 삼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부분, 그리고 실험에 따르면 손이나 팔을 잡아주기만 해도 혈압이 떨어진다’, ‘염주 돌리기 같은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뇌파의 패턴을 바꿔놓는다.’, ‘기혼이냐 독신이냐의 차이 없이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생존한다는 내용이 참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경계가 애매해진 가치관들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다정하게 다가가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학교에 다니고 싶다. 옷깃을 살짝 잡으면 선생님?’ 하고 다가오는 아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책 이야기, 공부 아이기 친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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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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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의와 배려는 얼마나 힘이 있을까. 학교에서 어린 소년들에게 배려와 공감의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노라고 어느 시사주간지에 칼럼을 썼더니 세상 독한 댓글들이 달렸다. 이 험한 경쟁사회에 살아남아야 할 아이들에게 선생들이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나 가르치고 있으면, 그 아이들이 나약하게 자라 도태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부도덕한 교사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런 댓글은 어떤 정신 나간 한 사람이 자기 안에 쌓인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어쩌다 올린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댓글을 단 또 다른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댓글이 더 많긴 했지만 나는 공감과 배려가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순진함에 스스로 웃음이 나왔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중학생들과 좋은 낯으로 좋은 이야기들만 나누며 살아서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보고 있나 보다, 내가.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나가야 할 세상은 그악스러우니 남을 밟고 올라가라, 강해져라, 독해져라, 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아이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들을 것이며 아마도 스스로 몸으로 깨닫게 될 거다. 강해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강해진다고 해서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버리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배려를 가르쳐도 세상에 나가서 각박한 현실을 만날 텐데, 배려를 배웠다고 해서 나약해지지 않을 텐데, 잔혹한 전사를 키우듯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란 말인가?

 

이 책, 사소한 따스함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은 좋은책이지만 어쩌면 내가 받은 공격과 비슷한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 작디작은 선의가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주겠느냐, 혹은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런 것도 선의라고 할 수 있냐, 이런 식의.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이런 글과 책들이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올해 새학기 중1 ‘한학기 한 권 읽기수업에 따스한 책상자라는 프로그램을 넣었다. 청소년 소설마저 상상력의 극대화, 각박한 현실의 상징적 반영이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어떤 소설들은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아이들에게 속삭여준다. <순례주택><이상한 의류수거함><시간을 파는 상점><나의 우주에게> 이런 책을 담아놓았다. 험한 세상을 이겨내는 마음은 결코 냉정한 마음이 아니다. 그렇게만 살아왔던 사람들아, 당신들이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 보아라.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면 따뜻해지지도 못한단 말이다. 저자 이소영은 배려를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라고 말한다. 깊이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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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보르헤스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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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르헤스의 강연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떤 작가에 열광하면 그의 강연이나 소소한 행적에도 관심을 갖게 되겠지만 문학성이 높은 작품의 저자일수록 강연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문체가 아름다웠던 작가가 말은 평범한 경우도 있고(물론 말이 평범하든 어눌하든, 거장이 실시간으로 내놓는 말을 듣는 그 현장성만으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걸 글로 옮겨놓으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순수한 문학적 정신이 화려한 언변이나 현실적인 표현으로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쩌다 이 책으로 먼저 보르헤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난해하다는 보르헤스의 장벽을 좀 쉽게 넘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아마도 보르헤스는 말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인가 보다. 번역서이긴 하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강연을 한다면 현장에서 듣는 이들에게는 그 음성 자체가 시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스페인어권에서 죽은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이가 내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나는) 개인의 불멸은 믿지 않지만 우주적 차원의 불멸은 믿습니다.

 

이런 말은 내가 사춘기 때 했던 생각과 닿아 있는데, 영성에 관한 언설이기도 하지만 문학의 본질을 건드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현재는 항상 극히 작은 과거와 미래의 미립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 우리는 변하는 존재이자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신비한 존재입니다, .. 가변성 안에 영속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독서처럼 강연도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강연이 청중과의 호흡으로 합작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독서는 내밀한 작업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책을 읽는 순간 저자와 만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어느 날은 막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연인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돌봐야 하는 늙은 부모같이 애틋하면서 지긋지긋해지기도 한다. 책과 내가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염오를 극복하기도 한다.

 

나는 나는 항상 천국은 도서관과 같은 것으로 상상했습니다.’ 보르헤스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의 책장을 바라보며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보고 흐믓해 하다가, 죽기 전에 저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 적 있다. 오래 전에 나온 좋은 책 중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가 매달 새롭고 재미난 책들은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가. 죽음의 시간이 다가옴을 알고 맞이해야 한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읽지 못하고 떠나는 책들이지 싶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말대로 하늘나라에서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면 죽음도 나쁘지 않으리라. 물론 나는 내세도 다음 생도 별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그 문학적 표현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서둘러 책을 읽어야겠다는 강박도 덜어준다. 지금 못 읽으면 죽어서 천천히, 오래오래, 영원히 읽자, 지금처럼 그냥 아무거나 읽고 싶은 것 먼저. 어디에 써먹어야 하므로 읽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읽을 필요도 없고,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오직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

 

에머슨은 도서관을 가리켜 마법에 걸린 수많은 책들이 있는 마법의 방이라고 말함.

그들은 우리가 부를 때에만 잠에서 깨어난다. 우리가 책을 열지 않으면 그 책은 글자 그 자체, 그리고 기하학적인 종이 더미일 뿐.

 

시에 대한 언급에도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그는 시란 이미 존재하지만 숨겨져 있던 것이라면서 시인으로서의 내 임무는 바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어쩌면 나도 그것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한다. 나 역시 내 마음을 그대로 시로 쓴 것 같은 작품들을 만날 때, 이래서 내가 굳이 시인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나에게 시인의 재능이 없어도 아쉽지 않다는, 시인이라는 존재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충만한 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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