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연수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3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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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힘 합쳐 키우는 이런 세상, 아직 어딘가에는 제법 있다고 믿어보자. 왜냐하면 작가 김려령이 묘사하는 명도단과 거기 사는 연수, 연수의 친구들이 너무나 리얼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정말 이런 마을이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는 한숨을 섞어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어느 나라의 속담인가를 읊조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힘주어 이 문장을 말하며, ‘그러니까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보아요.’라고 말했었다. 희망과 연대의 훈기가 느껴졌던 저 구호는 이제 그만큼 아이 하나 잘 키우는 건 힘들다.’ 혹은, ‘사회는 아이 낳아 키우는 일에 동참하라! 동참하라! 동참하라!’는 요구로 읽히는 세상이 되었다. 자신의 아이도 잘 낳고 기를 자신이 없는 세상에 남의 아이를 거두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연수는 그렇게 이모부와 사돈 할머니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명리단 온 동네 사람들 손에 잘 큰다. 잘 크고 있다. 심지어 자기 친구들까지 데려와 함께 잘 큰다.

 

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지금의 학교에 옛날 동네, 즉 아이를 함께 키워주는 마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먹여주고 공부할 책을 사주고 문구를 손에 쥐여주고 야단도 치고 안아도 주면서. 물론 대부분의 학교는 아이들의 기대나 부모들의 요구에 못 미치며 무척이나 쌀쌀맞다는 걸 잘 안다. 내가 근무하는 사립학교가 우리 학교 특유의 분위기로 그러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해봐야 자족적인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집에서 맞고 방치되고 욕먹고, 제대로 된 사람다운 태도를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괜찮은 어른으로 다가가려 애쓴다.

 

완득이로 대박이 났던 김려령 작가의 작품은 일관성이 있다. 주변의 어른들이 힘을 합치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어떤 세상은 너무나 냉혹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돌보려 애쓰는 어른들이 분명 있다. 그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깝지만, 그리고 어떤 이들, 어떤 가치관이 득세하느냐에 따라 어중간한 사람들의 태도나 분위기도 달라진다는 게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몇몇 따뜻한 어른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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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
곽미성 지음 / 어떤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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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 특히 삶의 주변을 담은 에세이 글은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작가 이름 기억하는 일을 잘 못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책은 제목보다도 작가 이름으로 기억했다. “뭐였지, 제목이? 이탈리아어 배우는 이야기, 곽미성이, ...” 이렇게.

 

한창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와중에 신문인지 주간지인지 신간 소개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어머! 영어가 아닌 외국어 공부를, 혹시 스페인어?... 는 아니고 이탈리아어란다. 스페인어와 친척어인데? 하여간 외국어 공부 이야기를 담았다 하니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살고 직업도 가진 여성이 뜬금없이 이탈리아어를 공부한단다. 그것도 단지 재미로(즐거움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탈출이자 도피였다. 가장 가볍고 자유로운 해방의 외국어.. 이탈리아어는 천천히 나를 해방시키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확장되고 있었다..라고 작가는 썼다) , 필요나 삶의 절실성 때문이 아니란다. 그의 책에는 이탈리아어를 공유하는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기도 하지만 프랑스에서 살게 된 삶의 궤적도 간간이 등장한다.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들이 다 들어 있다. 한때 프랑스어를 배웠고 그걸 다시 공부하고 싶지만 쓸모에서 실용성이 떨어지는 프랑스어 대신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 나. 그러면서도 사실 딱히 어디 쓰려고라고보다 그냥 재미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나. 뭐 운이 좋다면 스페인 계열 어느 나라 사람들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혹은 어린이책을 번역하는 일에 스페인어와 영어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나이도 너무 많고 실력도 일천해 그냥 별 의미 없는 목표일 뿐인 나. 오히려 우울과 불안을 달래는 용도로 밤마다 침대에 엎드려 혼자 스페인어 동사변화를 외우는 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여기 아닌 다른 곳과 삶을 꿈꾸는 나이며 어쩌면 유럽 사대주의자인지도 모를 나에게 곽미성의 책은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꿈을 충족시킨다.

 

용감하게 낯선 나라에 가서 공부를 했단다. 어쨌든 지금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이제는 재미 삼아 제4의 언어를 공부해 본다. 이탈리아를 배우러 다니는 동안 파리 좌안과 우안을 넘나들고 거리를 활보한단다. 글 맨 마지막에 작가는 나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나의 세계는 계속 커지고 있다라고 쓴다. 그래,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가 생기는 거라고 누가 그랬다. 인정.

 

여행기에 허기와 추위, 불안이 없고 반려동물 키우는 이야기 속에 냄새와 털날림이 없어 좋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여행지로서는 빵점에 가까웠던 파리라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모두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파리를 편안히 드나든다. 곽미성에 감정이입하여 셰익스피어 컴퍼니 서점도 지나치고 언젠가 오들오들 떨며 올랐던 노트르담 광장을 거쳐 이탈리아어를(혹은 스페인어를) 배우러 가 본다. 나에게는 그림책의 도시로 기억되는 볼로냐로 어학 체험을 떠나는 상상도 해본다.

 

이미 다녀온 곳들이지만 스페인어가 능숙해진다면, 그리고 훗날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진다면 다시 쿠바나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 마드리드의 큰 서점에 가서 어린이 책을 많이 많이 사오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보다 스페인어권 책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우리 서점 시장을 생각해서, 일단 내가 번역을 해본 뒤, 정말 좋은 책은 한국어 번역을 추진해 보는 상상도 해본다. 이 모두는 꿈이지만 이루어지든 아니든 상관은 없다. 나는 그저 그 꿈꾸는 시간을 즐길 뿐이다. 나의 꿈놀이에 곽미성은 물을 부어주었다. 글 쓰는 동안 그도 즐거웠겠지? 읽으면서 나도 즐거웠다. 만약 내가 나만의 스페인어 공부 이야기책을 쓰거나 뭔가를 번역하거나, 번역을 위해 또다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여행을 간다면 나의 그 모든 행보가 누군가에게 또 즐거움을 줄 수도 있겠지? 삶이 행복한가 아닌가는 지금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아니다. 앞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기대가 우리를 살게 한다. 괜히 자꾸 희망을 가지라라고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하여간, 당분간은, 덕분에, 이로써, 행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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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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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들이 머리맡에 즐비하다. 너무 많은 책들을 동시에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일부러 일곱 권 이내로 볼 책을 정리하고 나머지 책들을 책장 높은 곳으로 옮겨 버렸다.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옮겨지지 않고 내 곁에 남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역시 그림이 있는 책, 만화, 자수나 옷 만들기, 드로잉에 대한 책, 나무나 풀, 새 이야기 들이다.

가끔 옷도 만들고 뜨개질하는 것도 좋아하며 드라마를 틀어놓고 수놓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여유로울 때 하는 일들이고 대개는 의무감으로 채워진 시간들로 바쁘다. 집안 일, 직장의 일, 그리고 어렵고 무거운 책들을 읽고 정리하는 일, 영어나 스페인어 공부... 오해는 마시라. 이런 일들은 내 생존이나 생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이다. 아무도 내게 어려운 철학책이나 과학책을 읽으라 강요하지 않으며 실력이 늘지도 않는 영어 공부나 스페인어 공부는 사실 앞으로 써먹을 일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런 묵직한 일을 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가 보다, 나는.

그런 와중에 짬을 내어 그림을 그리고 옷을 짓고 수를 놓을 때 가장 행복한 나를 발견한다. 뜨개질도 참 좋아하는 일이지만 몇 년 전 남편의 모자 몇 개를 뜬 이후 거의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러면서 뜨개실도 만지작거리고 오래 전 아이들 어렸을 때 떠 입혔던 스웨터를 꺼내 품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그래! 이 책은 나를 들뜨게 하고도 남았다. 다른 이가 뜨개질하는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느끼고도 싶었다! 이 책을 읽다 잠든 날들이 참으로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게다가 아일랜드의 삶을 사는 글쓴이의 이야기는 이국의 풍광과 삶의 경험까지 들려준다.

다만, 그이의 뜨개질 솜씨는 나같은 범인이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뜨개질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토록 몰입하고 이토록 발전하며 이토록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든다고? 그렇다면 글쓴이는 완전 몰입형 인간이거나 뜨개질에 타고난 이이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다니!

그이의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함뜨(온라인을 통해 함께 뜨개질하는 일)’ 이야기였다. 온오프 세계의 장점을 잘 버무린 이 연대의 힘은 참 아름답다. 문어발 이야기도 재미있다. 새로운 열정으로 새 작품을 뜨기 시작하며 일을 벌려놓는 것.

나는 아이들이 어려 가장 바빴던 시절에 한창 뜨개질에 몰두했던 적이 있다. 딸아이가 네 살, 다섯 살 때, 아들이 열 살 때 스웨터를 떠서 입혔다. 잠도 모자라던 그 시절의 육아 스트레스를 뜨개질로 녹여냈다고나 할까. 그리고 아이들과 옷 이야기를 하며 알콩달콩했고, 그 옷들은 작품으로 남아 지금도 추억의 대화거리가 되고 있다. 그때 떠 준 옷 이야기를 모티브로 <세상에서 가장 큰 담요> 동화책을 썼다. 돌아보니 눈물과 힘겨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겨준 나의 뜨개질 역사다. 곧 다시 누군가를 위해 예쁜 옷을 떠 보리라. 글쓴이에 기대, 이번에는 솜씨가 훨씬 업그레이드 된 멋진 옷을 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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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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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쓸 무렵, 정부에서 과학 연구 예산을 3조 원 가까이 삭감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과학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그게 말이 되나 싶은 뉴스가... 과학이 우리 삶의 고마운 기반이 됨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그런 필요한 영역의 예산 삭감 기사는 우리로 하여금,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가나, 우려하게 만든다. 마침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맨 앞에 메모해 놓은 내용이 김대중 정부에서(IMF시절임에도) 과학과 공학 분야 신진 연구자 지원에 중점을 둔 학문후속세대 양성 사업에 해마다 2천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는 내용이다. 즐겁게 읽은 책인데 씁쓸한 마음으로 서평을 쓴다.

 

우리 가족이 유시민의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돌려가며 읽으면서 나눈 대화 중 하나가 그가 경제학을 전공했다면서? 경제학은 문과 중에서도 꽤 이과적인 과목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끝날 무렵까지 유시민은(어떤 이들에게 천재라고까지 칭송을 듣는 그 유시민이) 자기는 과학도 모르고 수학에도 천재들을 따라잡을 수 없노라고, 일반적인 인간들, 특히나 문과인들에게는 인간계/신계처럼 넘사벽의 어떤 존재들인 양 추앙의 언어를 늘어놓는다. , 경제학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나 넘사벽인 과목인데.....

 

글을 읽으며 조금 헷갈렸던 부분이 있다. 그는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님 통섭이라 말하면서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등한시한다고 문제라고 말하는 건가.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공부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과학자들에게서 인문적 소양이 부족할 때 얼마나 세상이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과학 공부하려는 염도 내지 않는 수많은 인문학도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또 내 머리 위의 물음표 하나.

물론 대부분 해설서이긴 하지만 마침 이 책과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상태였다. <장미의 이름> 속 상상 속에서 사라진 책의 주인공, 철학사에서 겉핥기로 늘 등장하는 아리스토아저씨가 온갖 방대한 분야에 오지랖 넓은 연구를 했다는 사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지금 서양 철학사에 끼친 영향이 어마무시하다는 사실에 놀라 그에 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 자연과학을 포함하여 사방팔방에 연구의 촉수를 뻗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의 생각이 앞서나가다 못해 현대 서양인들의 문화와 가치에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더더욱 놀랐다. 하지만 유시민은 오히려 그의 영향력이 큰 만큼, 당시에 그가 범한 오류가 얼마나 많은 세월 폐해를 끼쳤는지 말한다. ‘케플러와 갈릴레이 등 과학혁명 여명기 과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랜 지적 권위의, 그러나 틀린 자연과학) 이론과 싸워야 했다.’ 면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루 한 바퀴 도는 별의 움직임과 태양계 다른 행성의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던 천동설에 대해 지상계와 천상계는 서로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는 것을 예로 든다. 유시민은 인문학 천재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과학적 오류를 잘못된 지적 권위’, ‘잘못된 인문학의 폐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래, 이제 그 이론이 잘못된 것이란 건 인정. 하지만 그땐 거기까지밖에 생각이 못 미치던 시대라구!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줄 내가 알았겠니?” 하지 않을까?

 

유시민은 인문()자인 자신의 과학공부의 성과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궁극은 무엇인가’,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라는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오히려 과학에서 찾았다면서. 나도 조금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그의 짝꿍인 앤 드류안의 <코스모스>를 연달아 읽으며 느꼈던 희열은, 우주가 너무나 방대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눈물 나게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이 반어만큼 우주 속 인간, 나란 존재가 너무나 미약하고 허무하며, 허무하기에 이 삶에 집착할 필요도 없이 이 작은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과학의 명징한 세계는 한 인간 존재의 그릇에 대한 오만을 비우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과학 공부는 알지 못할 미지와 미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문학도도 읽어야 하는 과학책들 대부분을 나도 읽었거나 읽고 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다윈, 김상욱, 최재천, 정재승, 그리고 여기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은희, 그리고 과학적이라기보다 인문학적 수필에 가까운 심채경의 글 등등. 그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인문학도의 과학 읽기는 유시민처럼 과학에서 인생의 의미 찾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영역이 있고 역할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나는 교사니까, 국어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이런 과학적 사실들,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중학생들 수준에 맞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책을 읽는다. 물론 나의 사회적 역할과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를 이어 이 책을 읽고 있는 남편이 옆에서 계속 감탄을 한다. “유시민 말빨이란, ~!”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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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2 (중급편) - 스페인어를 시작하는 가장 쉬운 방법, 개정판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2
실비아 전(Silvia Chun) 지음 / 실비아스페인어 (SILVIASPANISH)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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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실비아 전 지음

 

지난 겨울부터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오래 전, 스페인 때였는지 쿠바 여행 전인지 사둔 문법 책 한 권과 그 내용을 올려놓은 팟캐스트를 가지고. 그러다가 우연히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을 팟캐스트에서 발견했고 출퇴근길에 듣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을 유튜브에서 찾았을 땐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주 깔끔한 서체로 화면에 스크립트를 온전히 다 띄워놓은 165개의 강의는 한 강의가 대략 20분 전후, 처음부터 잘 따라가면 단계별 발전을 맛볼 수 있게 기가 막히게구성돼 있었다.

나는 이 강의를 공책에 두 번쯤 들었다. 이게 얼마나 잘 정리돼 있는지 앞서 언급한 문법책의 지루함 복잡함과 너무나 비교가 될 정도다. 사실 책이 필요 없이 모든 강의를 받아적는 것으로 문법 공부가 완결될 정도다. 내게는 그런 공책이 두 권 있다. 그런데 별로 필요도 없게 된 책을 왜 샀느냐고? 실비아 선생님에게 너무 고마워서다. 이 강의를 학원에 가서 듣는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까. 책 한 권 사는 가격으로도 부족하다. 만나면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다.

유튜브에는 많은 어학공부 강의들이 있지만 생각보다 스페인어 강좌가 많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이것저것 들어보면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예문이 재미없거나 강사의 목소리나 톤이 나와 맞지 않거나 한다. 이런 말씀은 좀 미안하지만, 국어 교사의 눈으로 보면 한국어 발음이나 표현, 어휘력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분도 많다. 스페인어는 내가 배우는 입장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스페인어 발음이 갖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을 상쇄시켜 줄 수 있는 원어민 발음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준비되지 않은 강의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나의 막귀로 들어도 별로 좋은 스페인어 발음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사투리 억양이 섞여 들어가는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건 좀....

 

다시 한 번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강의의 훌륭한 점을 들어본다.

1. 구성이 완벽하다.

2. 말소리가 또렷하다(한국어 발성과 발음이 깨끗하다)

3. 예문이 꼭 필요하고 적절하게 쓰였다.

4. 스크립트가 정말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5. 스페인어의 가장 큰 함정은 동사 변화를 외우는 건데, 이걸 무수히 반복해 주고, 따라하게

한다. 내가 강사라도 지난번에 동사변화를 정리해 주었는데 또 해야 한다면 귀찮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게다가 인강인데.. 학생들이 알아서 반복시청할 수도 있건만..) 하지만 실비아 선생님은 동사변화, 특히 아센또(액센트)를 정확히 몸으로 익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하지 못했다 해도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니.

 

나는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여러 개 언어를 섞어가며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면 영어와 스페인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편과 언젠가 직항이 생기면 다시 쿠바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그때쯤이면 더듬더듬이라도 여행 스페인어 정도는 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들른 서점에서 동화나 그림책을 잔뜩 사 와 번역 출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스페인어를 다시 공부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루이스 세뽈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덕분이었으니(읽으면서 원문이 궁금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내 스페인어 공부의 유레카였던 실비아 선생님을 꼭 기억할 것이다. 책을 구입하신 분들도 꼭 유튜브 영상을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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