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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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쓰면서, 명성황후의 이름을 알고 싶어졌다.

자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의 이름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직책과 또 다른 이름과 별칭들 중에서. 아니 그 모두를 떠나 가장 아깃적 자기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나 자신의 본연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신경숙의 이름이 본명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세 여인 중 가장 자기에게서 멀어지지 않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신경숙이 아닐까 하는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살고 있는 세상이 여자가 자기로 살아가기에 아직도 팍팍한 세상이지만 리진이나 명성황후만 하랴. 그들은 떨쳐 몸밖으로 제대로 나와보고 싶던 자기 자신을 황후라는 명목에, 궁녀라는 신분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

리진의 이야기이지만 끊임없이 명성황후가 나오는 것은, 그녀가 리진의 후원자이고 어머니나 다름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리진과 명성황후의 자아를 동일시하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리진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신경숙은 명성황후를 세상에 나오시라, 나오시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리진이 돌아다닌 세상은 명성황후가 겪어보고 싶었던 궁밖의 너른 세상이다. 리진이 들여다 볼 수 있던 프랑스의 책들은 이지적이고 학구적인 명성황후가 너무가 간절히 원하던 지식 세계의 것들인 것이다.

신경숙은 탁월하다. 이 소설은 어려운 구석이 없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구조가  단순하고 유치하지도 않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고 적확한데도 가볍지 않다. 진정한 글쟁이다. 묵직하고 복잡한 구조를 즐기는 이들은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으나, 아름답고 지적이지만, 자기 무게를 지닌 리진의 모습처럼, 이 작품은 다 읽고 나서도 다 알 수는 없는 그 무엇을 좀더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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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pie 2008-09-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자영이지요.

풀꽃선생 2008-09-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광화문 연가 - 그때 그 시절... 노래와 함께 걷는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들
이영미 지음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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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끼고 사나 보다. 그것을 우리는 '의식'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게 삶의 현장에서 뭐 그리 중요할까 할지 몰라도 신영복 선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입장이 같은' 것이라고 역설할 만큼 그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갖고 사는지는 삶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하다못해 드라마 하나를 보아도 보는 이의 '의식'과 '입장'에 따라 그것은 다 달리 해석된다. 음식도 그렇다. 드라마 식객을 보면서 성찬과 봉주의 차이는 '의식'의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래는 아니 그러한가. 노래는 곡조를 갖기에, 가사에 담겨 있는 사상과 정서를 차치하고도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는 있다. 나는 군가나 찬송가 음률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단조도 좋고 탱고류도 좋다. 일본노래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도 아마 뜻도 모르는 그 가락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돈 데 보이'라는 노래가 멕시코 이민자의 아픔을 다루고 있음을, 노래를 안 지 한참 후에 알고 더욱 그 노래가 사무치게 좋아지는 것은 분명 노래가 갖고 있는 무국적성, 무정부성을 뛰어넘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는 정서에 닿아 있지만 분명 의식과  경향과 바람과 지향의 논리에도 닿아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노래는 앞부분을 빼면 내가 거의 아는 것들이다. 글쓴이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위이지만 7,8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춘을 서울에서 보낸 공감대가 있다. 글쓴이 말마따나 전공과는 별 상관도 없이, 그리고 클래식도 아닌데 그걸 비평하고 분석하는 짓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소릴 사람들한테 들었을 법한데도 대중가요를 관심있게 들여다본 이영미는 이 분야에서 우뚝하다. 그가 만약 좀더 영향력이 있거나 이 책의 반향이 매우 크거나 하다면 여러 사람들이 대중가요의 사회학연구에 좀더 매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책에서 주로 다룬 7,80년대뿐 아니라 90년대나 지금의 노래들도 좀더 구조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지함의 무게를 고귀하게 여기던 우리 세대가, 가사가 뭔지 생각도 안 해보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요즘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부르는 노래에 담겨있는 사회의 아픔이 뭔지, 상처가 뭔지 생각해 보기나 했냐고 자꾸 묻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분석과 비평이 나온다고 해서 아이들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고 듣고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삶이 조금은 묵직해야 살만하다고 느끼는 한 40대에게 또 다른 노래 비평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80년대 민중가요도 그것이 왜 그런 가사들로 쓰여야 했는지, 어째서 일본군가풍이 걸러지지도 않고 섞여들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시적이고 철학적이었는지, 그토록 정서의 육즙이 과도할 정도로 흘러내리던 그 노래들은 왜 이제는 술자리에서조차 불리지 않는지, 그런 비평서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냥 추억에 잠기기 위해서라도 좋다. 물론 그것이 밑거름, 원동력, 도화선, 그런 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 이영미 씨 혹은 다른 누구 없소? 목마른 노래 이야기 더 해 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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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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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씨는 나의 어머니뻘이다. 큰 이모뻘쯤 된다. 내가 20대 때, 그가 40살에 데뷔한 일을 많이 염두에 두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 아니었던 삶을 소설가로 산 삶이 이제 거의 비슷하게 채워가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변해가고 나는 젊은 여자였다가 아이들이 어지간히 큰중년의 여자가 되었다.

정년을 앞둔 음악선생님이 계셨었다. 예술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이 드셔도 참 독특하고 멋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철없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이였다. 그분을 보면서, 몸은 나이들어도 마음은 나이를 잘 안 먹는구나, 사람이 원숙해진다는 것은 몸의 나이만큼 마음도 성숙한다는 뜻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이 늙지 않는 이는 본인은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이 피곤해서 그렇지.

하지만 정작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은 늙되 마음은 미성숙한 나를 느낀다. "내가 나이는 이렇게 먹었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야!"가 드라마의 대사만은 아닌 것이다. 좋게 말하면 영원한 청춘이요, 나쁘게 말하면 철이 안 난 것이다. 사람이,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고 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성숙하고 그러나 감성은 여전히 맑게, 그렇게 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들이 잘 조화가 되어서 어른스럽고 점잖되 청년과 같은 열정과 감성으로 살 수 있다면...

나는 박완서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나이들었음을 느꼈다.  그는 70대이지만 참 묘하게 내 나이 즈음의 정서도 섬세하게 그린다. '마흔아홉 살'을 읽으면서, 그 또래들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을 참 잘 그렸다 싶다. 그러니까 박완서 씨는 딸뻘의 정서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뜻일게다. 한편 나는 그가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대목에서, 세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그리워하는 정서적 고향의 접점을 발견한다. 돈암동 주변의 개량한옥이 떠오르는 '그 남자네 집' 에서 그는 20대 꽃다운 처녀였지만 그 동네 풍경은 곧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내 마음 속의 풍경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서의 뿌리를 10대, 20대에 읽고 들었던 여러 책들과 음악 속에 내리고 있는 내가 자의식 강한 90년대 소설과 참으로 '쿨'하기 짝이 없는 오늘 날의 소설 들(특히 일본 풍의 소설 혹은 신세대 소설이라는 것들)에 넌더리를 낼 때 오랜만에 박완서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래, 이런 게 소설이지, 진짜 소설이지, 먹은 것도 없이 입만 텁텁한 패밀리 레스토랑 음식 같은 요즘 것들아, 좀 배워봐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나 더, 어머니 뻘인 박완서 씨의 섬세한 감성을 읽으면서, 우리 엄마는 글재주 말재주가 없어 저리 표현은 못하나 그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글이라는 무기를 가진 이들은 복 받은 것이다. 박완서 씨, 행복하셨으면, 그리고 그런 복을 갖지 못한 나의 어머니도 그 안에 감춰진 샘물들이 어떻게든 다시 솓아나게 해드렸으면, 그런 바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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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판]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 특별보급판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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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도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것 같다. 물론 그다지 어려운 책도, 학술적인 책도 아니지만 일반대중이 굳이 관심있게 읽을 책인가 싶다.

일단, 이 책은 지은이가 세계적으로(주로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했던 심리실험의 현장이나 당사자를 찾아가는 르포 형식으로 쓴 에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딱딱한 학술서적과는 다르다. 게다가 그냥 객관적으로 어떤 학자가 어떤 심리실험을 했고 공헌한 바는 무엇이다, 로 끝나지 않고 그 심리학자는 어떤 처지에서 그런 실험을, 왜 시도했는지, 그 실험 전후의 감성이나 심리는 어떠했는지도 다룬다. 그래서 글은 지루할 만할 즈음에 촉촉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물론 나같은 독자에게는 말이다.

나는 지식채널을 통해 스탠리 밀그램의 '권력과 복종'에 대한 실험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과 논술반에서 이 주제로 토론하고 글을 써 보았다. 역시 지식채널을 통해 목격자가 많을수록 범죄의 현장을 수수방관하는 '다수 방관자 효과'를 접한 적이 있다. 여러가지 사회 현상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것(물론 그 이전에 많은 실험들을 통해 분석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어놓은 학자들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그런 의문들을 책은 다 설명해주진 못하지만 좀더 체계화시켜 준다.

전문상담교사 공부를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 인간을 유형화하는 것, 심리검사를 하는 것, 대화법을 배우는 것이 과연 아이들을 덜 아프게 하고 더 행복하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계속 떨치지 못했다. 그것은 심리학이나 상담공부나 상담자의 책임이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나 자신이 공부를 통해 유능한 상담교사가 될 자신을 갖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그런 회의가 들 때 (상담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 특히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들 때마다) 나는 책에 손을 뻗어 문제를 해결한다. 가슴이 묵직한 문제가 생길 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막막하거나 힘들 때,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손이 닿는 일부터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새 문제가 해결되어 있거나 지나간 세월만큼 뭔가가 뿌듯하게 쌓여있거나 하더라. 또 하나의 방법은, 그 문제와 닿아 있는 책을 골라잡는 일이다. 일단 관련된 책을 가장 넓은 외연까지 조사한다. 그리고 책을 모은다. 사거나 빌리거나. 그렇게 쌓인 책을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 가지에 가지를 벋어 또 다른 외연으로, 더 넓은 범위로 생각은 확장된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정작 책에 해결책이 있는 경우보다는,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이 마치 건축물처럼 생각의 집을 지어 그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들을 떠오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은 참으로 힘드는 일임을, 나는 참 부족한 상담교사임을 느끼고, 일단 어떤 책이라도 손에 잡아보자고 오랜만에 심리학에 관한 책을 손에 든 게 이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 동시에 읽었다. 입체퍼즐을 맞추듯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길들이 또 열리고 있음을 느낀다. 책 몇권으로 나는 유능한 상담교사로 거듭나진 못했지만 내 안에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반성과 더 많은 열망들이 열리고 돋아나고 서로 연결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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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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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들었다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다. 대중적으로 쉬운 책도 아니요, 한국 사회의 정서에 잘 맞는 책도 하니요, 체 게바라가 우리 나라 역사나 사회 현상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베스트 셀러라니..

그럼 당신은 이 책을 왜 읽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너무 많은 답변, 다 할 수 없는 답변들이 있다.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나의 잡식성 독서취향과 국어선생으로서 세상사에 고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매우 합리적이고 누구에게도 걸릴 것 없는 대답을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게바라를 다룬 다큐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러 갔다. 어느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하이퍼텍 나다에 혼자 앉아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집중해서 보았다. 책은 오히려 산만했다면(그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필자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는데) 영화는 활동가 게바라보다는 청년 에르네스토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보다 감성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진정한 혁명은 뜨거운 가슴에서 비롯된다. 가끔 수많은 혁명가들이 그들이 매듭지어놓은 결과물에 의해 평가받고 일을 잘 해냈는지 하는 행정력으로 평가를 받기 일쑤지만  그들의 출발을 제대로 인정받는 일은 드물다. 왜, 게바라처럼, 충분히 개인적으로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사람이 혁명의 길로 나섰는가를 물어야 한다. 많은 불운했던 혁명가들과는 또다른 출발, 거기에 놓여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열정,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했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가슴에 품은 청년 에르네스토를 이해해야 한다. 아, 어쩌면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사랑하기 힘든 공산주의자인 그를 읽고 흠모하는 이가 많은 것도 그의 이념보다 가장 바닥에 흐르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그것을 우리가 그리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전인교육(全人敎育)이란 말은 한 독재자의 구호였지만 그가 몰락하고도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가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과연 독재자의 사욕과 무관하게 '전인'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혹은 그렇게 교육을 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완벽한 인간을 지향하는 교육이 그럴 가능성을 지닌 1%의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에게 엄청난 질곡이 된다는 것을 오랜 교직생활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나 가끔 올바른 삶의 태도, 인간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감성에 여러 사람을 잘 다루는 매력, 일을 수행하는 뛰어난 능력, 아름다운 외모까지 두루두루 갖춘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주변의 그런 사람들은 좋은 어머니를 가졌거나 자연으로부터 배웠거나 친구, 민중, 이웃에게 배우기도 했고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벼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감사하게도 하늘로부터 그런 천성과 재능과 인격을 받기도 했다.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의사라는 안락한 직업, 중산층의 편안한 이기심을 버렸던 점을 강조한다. 그가 게릴라전에 능한 뛰어난 혁명가이지만 그런 혁명가들이 흔히 빠질 수도 있는 냉혹함과 잔인함이 아닌 따뜻한 사람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했음을 말한다.무엇보다 생사의 기로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었던 사람이며 시를 가까이 했던 사람임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 더, 가장 높은 곳에 있을 수 있을 때 스스로 선택해서 숲으로 걸어들어갔던 사람임을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 알량한 권력과 권좌의 맛을 잘 모를테니 게바라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권력'을 멀리하던 그의 자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하려는 말인지도 모른다. 유명해지려 하지 말것, 높은 곳에 앉으려 노력하지 말것, 낮아질 것, 더 작아질 것, 아이들 등 뒤로 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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