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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박완서 씨는 나의 어머니뻘이다. 큰 이모뻘쯤 된다. 내가 20대 때, 그가 40살에 데뷔한 일을 많이 염두에 두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 아니었던 삶을 소설가로 산 삶이 이제 거의 비슷하게 채워가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변해가고 나는 젊은 여자였다가 아이들이 어지간히 큰중년의 여자가 되었다.
정년을 앞둔 음악선생님이 계셨었다. 예술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이 드셔도 참 독특하고 멋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철없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이였다. 그분을 보면서, 몸은 나이들어도 마음은 나이를 잘 안 먹는구나, 사람이 원숙해진다는 것은 몸의 나이만큼 마음도 성숙한다는 뜻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이 늙지 않는 이는 본인은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이 피곤해서 그렇지.
하지만 정작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은 늙되 마음은 미성숙한 나를 느낀다. "내가 나이는 이렇게 먹었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야!"가 드라마의 대사만은 아닌 것이다. 좋게 말하면 영원한 청춘이요, 나쁘게 말하면 철이 안 난 것이다. 사람이,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고 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성숙하고 그러나 감성은 여전히 맑게, 그렇게 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들이 잘 조화가 되어서 어른스럽고 점잖되 청년과 같은 열정과 감성으로 살 수 있다면...
나는 박완서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나이들었음을 느꼈다. 그는 70대이지만 참 묘하게 내 나이 즈음의 정서도 섬세하게 그린다. '마흔아홉 살'을 읽으면서, 그 또래들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을 참 잘 그렸다 싶다. 그러니까 박완서 씨는 딸뻘의 정서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뜻일게다. 한편 나는 그가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대목에서, 세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그리워하는 정서적 고향의 접점을 발견한다. 돈암동 주변의 개량한옥이 떠오르는 '그 남자네 집' 에서 그는 20대 꽃다운 처녀였지만 그 동네 풍경은 곧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내 마음 속의 풍경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서의 뿌리를 10대, 20대에 읽고 들었던 여러 책들과 음악 속에 내리고 있는 내가 자의식 강한 90년대 소설과 참으로 '쿨'하기 짝이 없는 오늘 날의 소설 들(특히 일본 풍의 소설 혹은 신세대 소설이라는 것들)에 넌더리를 낼 때 오랜만에 박완서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래, 이런 게 소설이지, 진짜 소설이지, 먹은 것도 없이 입만 텁텁한 패밀리 레스토랑 음식 같은 요즘 것들아, 좀 배워봐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나 더, 어머니 뻘인 박완서 씨의 섬세한 감성을 읽으면서, 우리 엄마는 글재주 말재주가 없어 저리 표현은 못하나 그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글이라는 무기를 가진 이들은 복 받은 것이다. 박완서 씨, 행복하셨으면, 그리고 그런 복을 갖지 못한 나의 어머니도 그 안에 감춰진 샘물들이 어떻게든 다시 솓아나게 해드렸으면, 그런 바람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