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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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삶이, 옹골차게 계획한 대로 실행되고, 헛짓 없이 보람을 엮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악한 무리가 있고 그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는 바른 사람이 있고 그에게는 열정이 있고 그와 비슷한 생각과 열정을 지닌 이들이 곁에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나마 악한 무리를 물리치고 세상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탤 수만 있다면, 혹여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그 목숨이 아깝지 않을 보람이 있는 일이었더라면, 

그런 삶은 살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밤은 노래한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성에 열정에 세상에 대한 순수한 정신까지 가졌던 젊은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저 순수한 감성으로 맑게 살 수 있는 젊은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다지도 허무하게 죽어가야 했을까, 혹은 망가져야 했을까... 

김연수를 처음 읽었다. 신문 칼럼에서 재기를 발견했다면 이 소설에서 무게를 보았다. 난 조금 무거운 소설이 좋다. 가슴이 아프더라도. 덮여진 이야기를 다시 읊어줄 수 있는 작가 정신이 아쉬운 시대이지 않은가. 요즘 드문 이런 소설가를 이제서야 발견할 만큼 소설과 거리를 두고 산 문학도가 나였구나 싶다.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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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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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만큼 최승희가 잘 이해되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눈으로, 범인(凡人)의 눈으로, 현대의 눈으로, 혹은 당시의 눈으로... 어떤 눈으로 보아도 최승희를 최승희로 보아주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그녀는 시대을 거슬러 제멋대로 사는 여자로 보였을 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친일과 친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혼을 지닌 이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 앞에 놓인 시대의 무게 앞에서 고뇌하는 그녀의 깊숙한 내면을 읽어주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친일을 말하든 명예를 말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춤추는 일, 나는 이름난 무용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선전수가 아니라 그저 춤꾼일 뿐이라고 최승희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김선우는 듣는다. 

나는 98년 왼쪽 귀를 수술하고 일주일 입원해 있는 동안 최승희 전기를 읽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절판된 뿌리깊은나무의 책이었던 듯 하다. 사진 속의 그녀는 빛나는 존재였는데 아무래도 20세기의 후반의 그녀가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을 거슬러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몸가짐도 그렇게 모던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눈빛이라니!  외로운 병실에서 흑백사진 속의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치명적인 수술은 아니었지만 텅 비어 있는 하늘과 겨울 숲만 보이는 병실에서 충분히 외로웠고 충분히 맑았을 때 만난 그 사람은 딱딱한 전기문에서나마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듯했다. 치열한 것, 열심히 사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것의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무엇으로  충만한 것. 공유와 공감. 그렇게 아플 때가 아니었으면 나도 조금은 날선 눈으로 냉철하게 그녀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김선우를 좋아한다. 몇 권의 책으로 사람을 안다 말하기 어렵겠지만 이 사람은 글과 사람이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그토록 농염한 시를 쓰는 그녀가 맑고 고즈넉한 눈빛을 가진 것이 오히려 그 진정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는 그녀가 한겨레 신문에 피 토하듯 세상을 갈하는 목청을 담아내기에, 혼이 맑은 이이기에 오히려 죽어가는 것들, 어리고 약한 것들에 겨누어진 칼날에 서슬 퍼런 야단을 쏟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선우가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시 칼럼을 연재했다. 한때 안도현이 조선일보에 글을 실었다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다. 나 역시 그 일이 서운하게 느껴진다. 한 편으로는 그 사람에게 무슨 생각이 있었으려니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이 마음에 문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른 이를 받아들일 여지도 적어지려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떤 눈으로 보면 최승희는 한없이 이기적이어서 세상에 눈 돌리기보다 자기의 예술적 욕심(그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개인적 성취욕일 수 있다)에만 빠져 살았던 사람일 수 있다. 자기 욕심을 위해 세상에 눈을 감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성의 품으로 김선우가 안아주었듯이 때로는 좀더 깊고 넓은 마음의 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두 아름다운 여자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헷갈리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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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홀릭 - 예술가들의 광기 어린 예술혼, 정신과 전문의 정유석의 심리학 에세이
정유석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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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때 그 사람 '속'이 궁금해질까. 지긋지긋하게 속 썩이는 아들놈, 나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친구, 너무너무 사랑하게 된 그 사람, 나에게 늘 친절하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나의 동료.... 

어찌 되었건 그 속이 궁금한 사람들은 내 삶에 매우 중요하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랜 기간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었다. 더 이상 그게 궁금해지지 않게 된 것은 나이를 먹으며 내가 성숙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됐기 때문일까.  

김기덕이나 홍상수 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보인다. 나는 '작가주의 영화'라는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뜻인가 보다 하고 짐작을 해 본다. 대개의 소설가나 화가나 영화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온전히 날것으로 자기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려진 작가를 더듬어 읽는 것이 작품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기덕은 어떠한가. 미안한 이야기지만 가끔 김기덕이 영화를 찍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사람, 살인자가 되었거나 정신병원에 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아픈 것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소설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지는 않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자기 안의 아픔과 넘쳐나는 이야기들을 주체하지 못해 작품을 해낸다고 생각한다. 김기덕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 만큼 아픈 '내'가 많은 사람 같다. 그 상처를 영화로 만들어서, 자기가 자기를 화면으로 들여다 보면서 치유를 하고 있지 않을까. 마치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 스스로가 감추고 싶을 만큼 많이 고통스러운 상처를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고 울게 하고 풀게 하는 것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인 것처럼. 김기덕은 상처가 많지만 자기 스스로 그것을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김기덕에게 영혼을 치유하는 약은 영화이다. 

예술가들은 그런 면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은 이들임에 틀림없다. 살면서 받은 상처를 모든 이가 말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쓸 수 있고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그런 자기치유의 무당과 같은 능력을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개는 자기 상처를 스스로 핥기 위해 글을 썼고 그런 과정에서 덩달아 많은 사람들의 상처가 함께 치유가 되었다.  

물론 상처가 치유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예술 활동 하는 이들이 모두 자기 작품으로써 구원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문학은, 예술은 그들의 질곡이 되어,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삶을 미쳐가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재능으로 저주이기도 했으리라. 

글쓰기의 치유능력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삶의 고통에서 문학 속으로 유체이탈에 성공한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예세닌의 시에서 톨스토이의 필력에서 고독하나 맑게 씻기는 영혼들을 본다. 저자가 조금만 더 따뜻하고 문학적인 필체로 아팠던 예술인들의 혼을 보듬었더라면 글 읽는 마음이 더 행복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대체로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어서 얻은 과제,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제 하나가 있다. 심리학을 알면(제대로 알든 어설피 알든) 사람을 볼 때 자꾸만 저 행동은 분열적 망상, 저 행동은 투사, 저 남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저건 알콜성 치매, 저 아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기미가 좀 있고 저 아이는 애착 형성에 실패한 유분증.... 따위의 평가를 하는 것, 이것이 과연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궁금증이다. 대개 학문은 이해의 바탕이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노릇을 하는 것이니 알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 그러지 못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름답다, 가엾다고 느끼는 것이 더 따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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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 해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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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면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면서,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공동체 의식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었다. 다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한 수난의 역사 속에서, 저마다의 역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이어져 있는 형제의식은 우리처럼 단일민족, 단일민족 노래를 부르면서 자긍심과 고립감이 묘하게 얽혀 있는 민족에겐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적대감만 가득한 우리 땅의 지형을 보라.  

그런 형제의식이 체 게바라를 자기 나라도 아닌 쿠바로 알제리로 떠나게 했겠지. 권력을 '지양'한다며 홀로 숲으로 떠난 그, 미소가 아름답던 혁명가는 지금도 시적 그림자를 사람들에게 드리운다. 혁명의 의지보다도 토대가 굳건한 이념적 논리보다도 마음으로 미소로 노래로 시로... 의사였고 혁명가였는데 어째 그는 시인이고 예술가의 느낌으로 더 남아있는가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서인지도 모르겠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도, 일 포스티노, 혹은 지중해 속의 그 시인도, 아니 심지어는 프리다 칼로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것을 놓고 사람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정열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슬픔과 열정과 실천력이 어우러진 그들의 역사와 정서... 

나는 오늘 한참 전에 읽다가 다른 공부 때문에 미뤄 두었던 이 책을 3부부터 이어서 끝까지 보았다. 역시 사두고도 미처 끝까지 듣지도 못했던 CD도, 글을 읽으면서 틈틈히 찾아 들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슬픔의 정서에 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낯설지 않다. 팝송을 들을 때는 마음에 닿는 것과 아닌 것의 구별이 심한데 (물론 엄선된 것들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라틴 음악은 어려서 들은 음악을 되새기듯 편안하다. 나는 학교 메신저에 붙이는 짧은 몇마디 말에 간간히 이 책에 등장하는 시들을  적었었다. 오늘은 그것을 Hasta Siempre로 바꾸었다. 라디오 등에서 자주 들었던 노래다. 대한민국 땅에서 체 게바라를  생각하는 일이 아무  두려움 없는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는 많은 세계인들에게 이미 또다른 징표가 된 것일까. 순수하게 아름다운 음률과, 그것과는 또 다르게 현실적인 가사 사이에서 기분이 묘하다.

빅토르 하라, 비올레타 파라, 파블로 네루다, 프리다 칼로...내가 아는 많지 않은 라틴의 이름들. 이들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혁명과 예술이 다른 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총을 들었던 또 다른 손에 수첩을 들고다니며 시를 썼던 체 게바라까지. 그들의 죽음이 라틴의 미래에는 축복이 되기를,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한 지식인도 그들의 추모곡을 들으며 함께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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