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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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노자 선생의 팬이다. 그가 매력적인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언젠가 우연히 신문에서 그의 칼럼을 읽은 게 계기가 되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ARS로 수재의연금을 순식간에 억 단위로 모으는 한국인의 온정에 찬사를 보내며,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본인들은 왜 모르냐고 환기시켰던 글. 진정한 칭찬은 칭찬받는 사람을 오히려 겸손하게 만들면서 저 안 깊은 곳으로부터 고무시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마력을 교육적으로 잘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박노자 선생의 목소리가 나를 그렇게 고무시켰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쁜 세월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뜬구름 위에 올려놓는 칭찬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냉철하고 정확해서 피해갈 수 없는,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선은 또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칼럼에서도 읽었다. 설왕설래는 많았어도 논지조차 잡히지 않았던, 그래서 반대를 할지라도 어설프기 그지없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명쾌한 정리가 기억에 남는다. 영어공용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닌 그 논의 자체가 품고 있는 혐의를 간파한 넓은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일품이다. 정말 누구 말대로 그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구사할 수 있는 명쾌한 문장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부끄럽게도 나는 대한민국의 중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말이다.

그의 매력은그가 이방인, 그것도 서구나 북미 사람이 아니란 데에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한국인이라는 것도, 그가 무척 젊다는 것도(젊은데도 그토록 정연하다니!), 그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왔다는 것도, 그가 사랑하는 문화적 정신적 영역이 동양적이고 유교적이고 한국적(이라기보다 조선적)이라는 것도(사실은, 그가 사랑하는 정신적 세계는 어디에도 없고,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논점은 날카롭지만 꼬이지 않았다는 것도, 그의 비수같은 문장에는 어딘가 슬픔이 묻어있다는 것도(연민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종교적인 냄새도 난다. 그의 이성을 보완하는 감성이랄지...), 다 매력이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라 말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이 박노자의 글을 이루고 말해준다. 글로써 만나지만 실제로도 한 번 만나 술 한 잔 하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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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를 위한 불꽃놀이 - 핀두스의 두번째 특별한 이야기 핀두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2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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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렇게가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이 책을 만나지 못했을텐데... 등골이 시릴 만큼 고맙다. 우연히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받을 일이 아니었더라면 서점에서 고르지는 않았을 듯 싶다. 그림의 선도 요즘 그림책같지 않고 글씨도 너무 많고. 솔직히 배달을 받고 나서도 그리 탐탁치 않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아이를 위해 잠자리에서 읽어주다 보니 아이보다도 내가 더 매료될 만큼 첫째, 그림이 좋았다. 정말 어딘가 페테르손의 마을이 있을 것 같다. 그의 마을과 집, 헛간, 그 안의 이런저런 살림들이 머릿속에서만 나온 것 같지 않다.

스벤 누르드크비스트의 그림이 그리 모던한 편은 아니라지만 새벽, 아침, 흐린 저녁 등등 시간대별로 그 느낌을 살린 그림에 작가의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여우 쫒기를 하다가 꼬박 새벽을 맞아 버리는 창가에서 창밖으로는 동트는 새벽하늘이 보이고 집안에서는 날밤을 새버린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들뜨고 또 안도하는 아늑한, 식구들(그래봐야 페테르손 할아버지와 닭들과 고양이 핀두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페테르손은 어떤 사람일까.

고양이 한 마리를 손주처럼 데리고 사는 그는 어쩌면 무지하게 외로운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가치로 마냥 행복한 사람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살짝 미치고 적당히 일반적 가치를 초월한데다 꼬인데 없이 여유있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자기네 닭 잡아먹으러 온 여우가 너무 마르고 절뚝거린다고, 폭죽을 터뜨리면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르니 관두겠단다. 천천히 사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상의 미세하고 따뜻한 아름다움이 그에게는 보이나보다. 아, 그리고, 핀두스, 너무 귀엽다. 고양이들 특유의 비아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양이치고 참 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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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야기 - 찔레꽃 울타리 찔레꽃 울타리
질 바클렘 지음, 이연향 옮김 / 마루벌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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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머위와 댕이네 집과 마을이 너무 예뻐서이다. 어렸을 때 걸스카웃이었는데, 스카웃 교본 비슷한 책에 캠핑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 작은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그런 캠핑은 한 번인가 두 번밖에는 못 해보았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아름드리 숲도 없었다(캠핑할 수 있는). 하지만 두고두고 그 그림은, 숲의 어두운 저 쪽이 주는 신비감과 더불어 그림 속으로 쏙 들어가 살아보고 싶은 이상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내 전생의 몇 번째쯤인가의 생에 그런 숲속 삶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질 바클렘의 그림은 그런 숲의 '삶'을 정말 예쁘게 그린다. 나무 둥치가 통채로 머위네 집인데(부자다!) 그걸 단면도로 보여준다. 그루터기 밑에 작은 삐걱문과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방마다 키가 작은 창문이 있어 작은 쥐들은 창가에 매달려 눈 오는 걸 구경한다. 집 내부는 또 얼마나 예쁜데! 그야말로 사납지 않은 것들로 집안을 꾸며 놓았다. 벽에서는 참나무 냄새가 날 거다. 찬장 꼭대기에는 두고 먹을 돌능금열매가 사람으로 치면 호박만 한 게 얹혀 있고 그 밑엔 아주 작은 잼이며 마말레이드 병 따위가 헝겊 뚜껑에 덮여 있다. 이 조선 땅에서는 100년 전에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18,9세기 유럽식 인테리어다.

내가 유럽 취향이라서가 아니라, 나무로 집을 꾸민 것, 금속성이 없는 것, 자로 재어 반듯하게 잘라내고 잇댄 것이 아닌 것이어서 좋은 것이다. 촌스럽고 따스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너무 예쁘니 현실감이 없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머위와 댕이처럼 평화롭기 살긴 어렵다. 아니, 실지로 머위와 댕위가 정말 살고 있다면 그들의 현실도 그림책에서처럼 행복하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아름답게 하기도 하지만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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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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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이 나온 영화 '유리'를 본 게 언제였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 영화도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것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이 책을 읽으며 받은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구나. 박신양을 고른 것도 잘된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상권 부분을 영화로 만든 그 '유리'는 참 핍진한 상태에서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금도 떨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는 그것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임을 몰랐고 구도를 말하는 영화라기보다 젊은 날의 한 생각 많고 마음 속 몸 속이 번잡한 견딜 수 없는 젊은이의 모습 - 일부는 나의, 당신의, 그의 젊은 열정과 궁금과 욕망과 번뇌를 닮은 - 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보니 그저 작품을 그대로 옮기려 몸부림을 쳤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박신양은 괜찮았지만 이름을 기억 못하는 촛불중과 수도부 역의 배우들, 그들의 추운 연기는 계산된 것이 아니라면 참 거북했다. 그래서 내 일기장에는 이 영화에 대해 어설픈 사춘기의 뭐 어쩌구 이런 식의 낙서가 적혀 있는 걸로 기억한다.

박상륭의 소설을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어렵게 쓰여진 것들은 십중 팔구 가짜라고 굳게 믿는 나로서는 철학과에 다니는 제자가 이 책을 사달라 했을 때 사춘기적 지적 허영과 객기에서 못 벗어난 줄 알고 조금 걱정을 했었다. 그 아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으리라 믿고 잠시나마 그리 생각했던 것 미안함을 전한다.

솔직히 상권을 읽으면서 긴 시간을 잡아 먹어 가며, 무슨 철학책을 읽는 줄 오해를 받아가며 오래오래 이 책을 품고 다닌 나 스스로가 좀 짜증나기도 했었다. 영화 속 촛불중의 좀 역한 연기 탓에 ~입지, 하는 말투는 견디기 힘들었고 살해와 낮잡한 성이 구도의 길로 '미화'되는 것인지 어떤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박상륭 식의, 일종의 시 같은(그러니까 말하자면 시적 허용 비슷하군) 그 문체의 아름다움이 죽어 쓰러진 '나'의 주검을 안고 부르는 수도부의 노래에서 극에 달하고, 하염없이 유리를 찾아 헤매이고 유리 안에서 또 찾아 헤매이는 그 황량함의 이미지가 또한 아름답고, 책 한 권에 걸친 피곤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는 헤맴 뒤에 찾은 '읍내'의 현실적 느낌과 풍경이 너무 안온해서 상권 뒤쪽 쯤 가서는 갑자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불승으로 등장하지만 예수의 행각을 하며 성경에 대해 설파한다. 그 대목에서는 다시 한번, 처음부터 꼼꼼히 성경을 읽고 싶어졌다. '나'의 설파에 숱한 부분을 공감하기에도 그랬고, 정말 오랜만에 어린 시절 사랑하는 맘으로 읽었던 성경에 대해 이토록 오래 말하는 자리가 있었던가 싶어 향수에도 젖었다.

뭐랄까, 그의 낯선 문체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대학 때 한 사랑하는 친구와 너무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절망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썼던 그와 나는 결국 부부가 되어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손짓 하나조차 읽어낼 사이가 되었지만, 사랑하는데 전혀 다른 말을 지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애증이 교차했던 스무살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 때, 비록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고 있지만 그의 영혼만은 하염없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용서했듯이, 박상륭의 이상한 문체는 혹 세상에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해주지 않는 특이한 어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아니며 그의 영혼의 번뇌가 가벼운 것도 아님을, 혹시 이해는 못하더라도 그를 깎아내려서는 안되는 일임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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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지만 옮김, 레인레이 그림 / 마루벌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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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왕자였던 그가, 보석과 금박으로 뒤덮였던 그가, 죽어 동상이 되지 않았더라면 죽는 날까지 호사를 누리고 살았을 그가, 누더기가 되고 납심장 조각으로 남고서야 비로소 천국에 갔다는 이야기는 세상이 혹은 하느님이 참 공평하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자기도 모르게 높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곱게 살아가 고통과 번뇌의 통과의례를 본의 아니게 '못' 겪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인생이란 게 고통받고 고생하고, 특히 고뇌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더 주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실지로 그렇지 못하여 참으로 통탄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왕자'는 그래서 참으로 사랑스럽다. 어쩌면,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서 있으니 사람들의 고통이 보여 견딜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그 높은 곳에서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이 또 한 세월을 보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가 마음 아플 수 있었던 맑고 천진한 마음에 충분히 경의를 보낸다. 그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질과 순탄, 혹은 고난의 인생길 그 어떤 운명이든 그것에 상관없이 남의 고통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그리고 안아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고상한 천성이란 것이 분명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제비'처럼 괜찮은 친구들 만나게 되면 더더욱 빛을 발하리라. 만나서 함께 더욱 더 맑아지고 더욱 더 힘이 나고 더욱 더 실효성이 높아지는, 하나 더하기 하나이되 둘 이상이 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리라.

내가 마루벌의 이 책을 산 것은 순전히 그림 때문이었다. 이렇게 글자가 많은 그림책은 이미 초등학생인 큰 아이를 위해 사는 것이므로 번역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번역에서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고, 혹여 부족한 점이 있었더라도 제인 레어의 아름답기 짝이 없는 그림 때문에 다 용서가 되었으리라. 만약 번역이 문제였다면 나는 이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내가 이야기를 꾸며 들려주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림은 매력적이다.

제비가 가고 싶어하는 이집트의 그림은 마치 벽화같다. 이집트 벽화에서 옮겨온 듯하면서도 한 컷 한 컷에 또 이야기가, 신화가 담겨 있다. 왕자가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은 원근법이나 따위를 무시한 것같이 보인다. 중세의 유럽 지도같은 느낌이 든다. 거꾸로 흐르는 운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손바닥 안에 그 거리를 얹어놓고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말 왕자의 동상이라면 그렇게 한 눈에 도시를 내려다 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가난한 청년 작가의 다락방 그림은 오페라 '라보엠'을 연상시킨다. 그러다가도 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그림은 어느 안락한 주방의 작은 소품처럼 적당히 귀엽고 예쁘장하게만 보이기도 한다. 하얀 눈이 쌓인 거리의 그림은 북유럽을 연상시킨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작은 아이가 이 책을 읽어주자 왕자의 눈을 빼 주는 장면에서 울먹였다. 아무래도 구연을 너무 실감나게 한 탓인 것도 같다. 아니, 사실은 어느 새벽,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이 책을 보다 혼자 울었던 기억이 더 맞는 것 같다. 왕자의 눈을 위해서가 아니라 왕자의 가슴아픔이 아파서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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