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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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깊은 사람은 평생 마음이 가난하다. 내가 그러했는데, 내 아들이 또 그러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슬픔이 저의 것이요(윤동주)... 슬픔이 곁에 있어 슬픔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네가 고맙다. 네가 있어서 고마웠는데 너로 인해 슬퍼서 또, 네가 고맙다.

나는 공지영이 부럽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낸 그녀는 글재주와 미모와 예민한 감수성과 자의식과...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일찌감치 성공하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이상한 충만감과 이상한 부족감을 느낀다. 혹시 그 부족감에는 그녀에 대한 시기심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곤 하였다. 그러나 신현림이나 신경숙, 한비야 등등에게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나는 글쓰는 이들에게 좀더 겸손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기자랑의 다름 아니라고 믿는 이상한 습관 탓인지도...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수도원 이야기라는 것, 또 하나는 책 속의 스산하고도 어여쁜 수도원들의 사진들 때문이었다. 사진 속의 수도원을 그리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바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공지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녀의 글을 읽고 18년 만에 다시 영성체를 받았다는 종교적 체험에 의심도 가졌다. 한때 같이 근무했던 사람 중에 감수성의 과잉으로 종교적 편력이 심했던 어떤 여교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감수성의 깊이가 어쨌든지 간에 여행 중에 한없이 들여다보이는 자기자신의 모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많은 공감을 했고 감정이입도 했다. 결혼, 출산, 글쓰기, 자기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회한, 그 사람이 까발리고 울었던 자기 고민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읽은지 1년이 지난 이번 가을에 다시 한 번 책 속의 수도원들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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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1 - 애장판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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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리가면을 죽기 전까지 세 번쯤 읽을 생각이다. 지금은 고등학교 때 이후 두 번째니까 한 번쯤 더.

어린 시절,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天才가 나에게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었다. 어느 날 알고 보니 나는 부잣집 딸이었더라는 상상처럼, 간절히. 내일 모레 마흔인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숨겨진 어떤 가능성이, 마치 미켈란젤로를 아직 만나지 못한 대리석처럼 숨겨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중2때부터 연극 공연장을 혼자 찾아 다니며 구석자리를 지키던 나에게 유리가면 속의 마야는 마치 내 모습 같이 보였다. 무대에만 오르면 신기가 내린 사람 같이 달라지는 마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내게도 그런 끼가, 내게도 그런 열정을 읽어줄 영원의 지지자가 있다면...

연극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쓸수도 그릴 수도 없는 만화가 이 유리가면이다. 깊이 있게 들어가서 영혼으로 쓰고 그린 것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만 이 만화는 아마도, 배우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소망이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마야가 폭풍의 언덕의 캐더린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울었다. 폭풍의 언덕을 책으로 읽을 때는 히스클리프가 미친놈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캐더린의 유령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에서 정말 이렇게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 새벽에 가슴을 저미며 울었다. 나이 서른 여덟에.

물론 다시 읽으니 전형적인 만화적 구도가 눈에 보이고 마야와 아유미의 대결구도도 정형화가 되어 읽히긴 한다. 일본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선과 악, 혹은 두 재인들 간의 치열한 경쟁, 겉으로 보기엔 좀더 화려하고 뛰어나 보이는 사람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사실은 미묘한 차이, 섬세한 천재성으로 인해 결국은 초라해 보이던 주인공에게 승리의 눈길이 돌아가는, 그런 구조 말이다.

어째 매번 마야의 소박하지만 생동감있는 타고난 끼를 누군가가 발견해주는가 말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행과 뛰어남은 종종 아무의 눈에도 띄질 않아 그냥 그대로 묻혀버리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마야와 아유미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방향으로 자신들의 과제를 소화해 가는 모습은 정말 예측이 불가하다. 천재는 마야가 아니라 작가 바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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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우물에서의 은어낚시 - 1990년대 한국단편소설선
이남호 엮음 / 작가정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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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구입하면 뿌듯하기야 한결같지만 이 책이 오던 날은 더 그랬다.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마치 어떤 영양소가 특별히 결핍되면 그 음식을 갈구하게 되듯 가끔 내게 소설이 필요하다. 너무나 바빴던 날들이 지나면, 너무 열심히 살았던 날들이 지나면, 시처럼 저녁바다처럼 그렇게 살았던 날들이 너무 길면, 난 지적으로 고아하지도 않고 환상의 세계도 아니며 뒤도 돌아볼 수도 있는 허름한 재래시장 같은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진다. 그럴 때 소설은 나에게 결핍되었던 어떤 무기질과도 같다. 그럴 때 난 이 책을 샀다. 가끔 그렇게 소설 한두 편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갈증을 종합선물셋트처럼 푸짐하게 마련했다. 그래서 아껴 읽었다.

여기 담긴 작품이 모두 좋았는가,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양귀자의 소설은 늘 재미있지만 숨은꽃도 괜찮았다. 아마도 언젠가 읽은 것도 같다. 겉으로 초라하고 억세 보이는 시골 사내, 그 나름의 초탈한 삶의 이치를 꿰고 있는 남자 냄새 많이 나는 거친 사내, 그 안에 삶의 회한을 읽을 줄 아는 감성을 지녀 단소부는 술집여자를 알아 볼 수 있었던 사내... 그것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아니무스다. 또한 내 초임발령 5년의 세월을 보낸 강원도 어느 지방에서 만날 법한, 있을 법한, 한 교실에서 나와 공부했던 사내아이들 중 어떤 아이의 혹은 그 아비의 것일 법한 그런 이미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바다가 아니더냐.

이렇게 여러 편을 모아 두껍게 만든 책들 대부분에는 큰 것 밑에 작은 놈을 껴묻어 파는 한 상자의 사과처럼 상술이 묻어있거나 작품을 모아 엮은 이의 편협함으로 인해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그렇게 날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마치,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놓인 종합선물셋트를 열었을 때 싫어하는 과자가 하나도 없어 두고두고 한 열흘 쯤 뿌듯했던 그 날의 기억처럼 말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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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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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에 걸린 분옥이와 그녀를 사랑하는 동준이 이야기는 두세 번을 읽어도 눈물이 난다. 세상끝에 오두마니 홀로 놓여진 분옥이의 초라한 섬돌에 동준이 놓고 간 짚신이며 갈대비며, 동냥으로 모은 돈으로 사온 어여쁜 얼레빗, 그리고 저녁마다 들려주는 피리소리.. 그렇게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사람 몇 없는 지금 세상에ㅡ 그런 사랑 받을 수 있다면 아파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살다가 동준이 품에서 죽어간 분옥이는 서럽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군더더기 많이 달려 자아에 침잠하다 못해 자기도 모를 소리로 헤매고 다니는 요즈음의 소설과 달리 참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급히 좌절하기도 하고 곰실곰실 살림을 모아 다독거리며 잘 살아가기도 하고... 그 이야기의 진행이 어쩐지 동화처럼 뿌듯하기도 하고 전설처럼 아득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같이 할머니에게 고모에게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아직도 이산가족 모이는 자리에 가면 소설이나 동화, 아니 전설보다 더 기막힌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권정생님의 영혼은 특별히 작고 연약하다. 그래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지 모른다. 따뜻하다. 하나님이 그러라고 그분을 그리도 아프게 하셨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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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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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에 등장하는 지복덕 할머니였나. 다음에 어딜 가냐 하니 '근덕'이라 대답했던 게. 근덕은 내 첫 발령지인 삼척시에 가깝다. 근덕 해변을 달리던 시내버스의 흔들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초저녁 술 한 잔과 함께 고즈넉하게 이 책을 읽다 그 단어에 그리움이 치민다. 게다가, 그 할머니, 거기 뭐가 있는데요? 하는 작가의 질문에 '바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내가 요즘 너무 보고 싶어하는 저녁 6,7시쯤의 바다가 있다. 아마도 노익상 씨 사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의 바다는 새벽바다와 비슷하다. 그 시간이 되면 파도가 잘 치지 않는다. 그리고 바다는, 청회색, 짙은 은회색이었다가 어두워진다. 그 페이지를 펼치며 왈칵 울었다.

그래, 그건 내 개인적인 추억과 그리움이라 치자. 공선옥씨가 보기 좋고 놀기 좋은 관광지나 유적지를 다니며 글을 쓴 것이 아니기에 그가 만난 사람들은 아프고 그가 다닌 길은 눈으로만 따라 다니기에도 참 곤하다. 나는 그가 효순이와 미선이가 죽은지 얼마 안되어 찾아간 그 동네를 따라 읽으면서도 눈물이 났고 배달호씨를 추모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또 많이 울었다.

이 땅에 공부 잘하고 야물던 가난한 집 아들들이 공고를 갔다, 그건 그들에게 자랑이었다는 대목에서, 그래, 맞다,는 생각과 더불어, 얼마전 화물연대 소속 한 간부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을 참 잘하는 걸 듣고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 아는 것이 참 많네, 라고 생각했다가 스스로 부끄러웠던 기억도 났다.

나는 그 배달호 씨 이야기 부분을 언젠가 수업에 활용하고 싶다. 그토록 쉬운 언어로 이땅의 노동자들의 자부심과 좌절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글이 드물 듯 싶어서. 그러나 아이들도 나처럼 치미는 분노와 막막한 슬픔으로 눈물 고이리란 생각은 않는다. 나는 잠시, 내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냉철하게 이 글을 잘 읽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나의 눈물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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