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니다 - 프란츠 파농 평전
패트릭 엘렌 지음, 곽명단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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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가진 사람이 태어났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지만 그것을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 적당한 명망을 얻는 데에 사회적 적대세력을 만들지 않는 데에 써먹지 않았다. 세상과 맞설지라도 부릅뜬 눈으로 자신이 통렬하게 깨달았던 비참한 현실과, 그 현실에 함께 뿌리가 닿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의 자의식은 너무나 강했고, 그것은 재능있는 자신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재능이고 품성이고 나발이고, 적당히 타협해 주지 않는 인간에게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백인의, 식민의자들의 우월의식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그것을 깨뜨리고 싶어하는 혁명적 의식이었다.

종종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을 비교한다. 엊그제 신문에서인가는 백인과 흑인으로서의 두 혁명가를 비교하는 글을 읽었다. 이제는 자본주의자들의 상품이 된 하얀 공산주의자와 아직도 악마라는 평을 벗지 못하는 흑인 지성이라고. 그러나 내게 두 사람은, 모두 의사 출신이었고 자신의 땅이나 동족들 가운데서도 충분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건강하고 왕성한 지적 능력과 지도력 추진력을 가진 공통점을 가졌으되 사람을 융화하며 앞으로 나가가는 사람과 옳은 것이 아니면 용서하지 않던 돌파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교된다.

나에게 파농은 대학 시절 읽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저자였다. 그 책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야학을 다니던 무렵 읽었던 그 책이 참으로 처절하고 뿌리깊은 것이었다는 느낌은 남아있다. 문맹인, 환자, 민중들이 단순히 계몽과 지도의 대상만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루어야 할 세상은 저 만큼 있고 함께 이길을 이끌어갈 동지는 적고 적들은 너무나 강고할 때 손잡아 이끌어 비참에서 구해내고 싶은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의 손을 억지로라도 잡아당기고 싶었던 파농의 마음 말이다. 책 표지에서 파농은 그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어쩐지 산 속으로 들어서 소리없이 최후를 맞이한 게바라에게서 권력도 등진 仙人의 모습 같은 것이 있다면 파농에게는 죽어도 그 눈을 감지 못했을 것같은 처연함이 있다. 처연함은 분노로, 악으로 절규로, 그렇게 오래오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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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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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이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을 산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동물들의 저 오묘한 표정이 말이 통하고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나의 사랑하는 이, 나의 어린 아들, 나의 악동들, 밉고 싫은 동료나 상사... 들과 어찌나 닮았는지 싶어진다. 그래, 말을 나눌 수 있거나 없거나 영혼과 생명을 가진 것들은 '알 수 없는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을 뛰어넘는 표정과 몸짓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작년 내 반에 한 아이가 전학 왔다. 곱상하게 생겼지만 길고 고운 손가락에서 담배냄새가 나던 아이. 나중에 안 것이지만 오토바이 절도와 사회봉사의 전과(?)가 있던 아이. 그 아이에게 전학 온 초기에 이 책을 주었다. 마음 속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난 널 꼭 졸업시킨다. 꼭... 그 아이에게 이건, 비밀인데, 그 책으로 독후감 수행평가를 해도 좋아. 이렇게 말하자 여자아이처럼 예쁜 글씨로 독후감을 써왔다. 난 우울할 때 자주 이 책을 읽는다, 아니 본다, 라고..

우여곡절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그 아이는 통학 시간만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마다 않고 1년 잘 다니고 졸업을 하였다. 하필 그 아이가 전학 왔을 때 내 책꽂이에 꽂혀 있어 준 이 책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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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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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를 무조건 미워하지는 말자고 애써 마음 잡은 후 이제는 좀 잘 팔리는 것들 중에서도 좋은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되어 얻은 책 중에 <나무>도 들어간다.

일단 재미있다.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다. 기발한 상상력과 만만찮은 지적 토대 위에서 출발하는 재미이다. 게다가 메시지가 있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한결같이 이 드넓은 우주 속에서, 지식과 진리의 광활함 속에서, 인간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사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한낱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일깨운다.

가령,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온 우주생성 장난감이나 어린신들이 자기가 맡은 세상을 조작하는 이야기에서는 이 지구를 이 우주를 비웃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일필휘지, 종횡무진, 어찌 보면 참 잘난 척하는 듯이 보이는 작가 베르베르가 그 자신이 속한 인간이라는 종을 비웃는 것이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읽는 발걸음마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

미약한 한 존재,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애완동물'이라는 시선을 받을지도 모르고 겨우 10을 알고 천하의 지식을 가진 듯 오만한 우스운 존재인지도 모를 우리 인간,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존재라서 이 삶이 비천하고 허약하다고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비록 생성과정에서 실패해 버린 버려진 우주의 한 모퉁이에서 아름답지 않은 신의 지배하에 살지라도 아직도 무궁무진 생각하고 깨닫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즐거운 삶이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유쾌한 낙천주의자이다.

가벼운 재생지, 너무 예술적이지도 않은 삽화, 빨리 읽을 수 있는 속도감... 내 어린 친구들에게 권할 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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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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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나 <창가의 토토>처럼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한 여교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 땅의 많은 교사들도 <내 생애의 아이들>을 몇 개, 몇 수십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가브리엘 루아만큼의 고운 문장력을 지니지 못했을 뿐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두 장 넘어가면서, 아마도 드미트리오프 가의 아이들 이야기를 읽을 때쯤이었나,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교사였거나 단지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니고 참 애들은 이뻐, 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넘어 그 아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깊이 바라보며 생각하는 연민으로 가득찬 시선. 아마도 다른 교사를 만났더라면 미처 발견되지 않았을 그 아이만의 능력,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던 혜안. 그것이 있었다.

모든 것에서 뒤처진 드미트리오프에게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맘껏 자기를 표현하게 하는 이야기나 종달새라 불리는 소년의 아름다운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행복을 전하는 장면은 자기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책 속의 한 장면 장면들이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 건, 그녀가 바로 갓 소녀를 벗어난 그 젊은 여선생일 때가 아닌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간 후 인생을 되돌이켜 생각하면서 쓴 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도 같다.

가브리엘 루아,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언덕을 넘어 머나먼 길을 찾아가는 젊은 여선생, 막 사춘기를 맞이하는 야생마 같은 메데릭과 함께 험산을 넘나들고 논보라를 헤치며 난 여기서 생을 마치지 않으면 아주 많은 여행을 다닐 거야, 라며 열망을 태우는 저 열정적인 젊은 여인...

처음엔 이렇게 놀라운 교사가 끊임없이 자기가 시골 여선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것이 난 안타까웠다. 그러나 용서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인생의 규모가 자꾸 그녀를 넓은 세상으로 불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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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왜 하지? - 꼼꼼하게 들여다본 아홉 개의 수업 장면
서근원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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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아마도) 실명으로, 실제의 학교 수업을 비디오나 오디오로 기록하듯이 고스란히 담아놓아 남의 수업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다른 이의 수업을(가능하면 날것으로 보는 게 더 좋지만) 들여다 보면 이만저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연구수업이 아니더라도 동료의 양해를 얻어 자주 수업참관을 한다. 대개는 아이, 별거 없는데, 그러면서 쑥스러워 하지만 사실은 그 별거 없는 수업, 자습도 시키고 학습활동도 풀고 이 단원에서 저 단원으로 어설피 넘어가는 그 순간을 보아도 그 교사의 아이들 대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얼마나 아이들을 존중하는지, 유머감각과 융통성이 있는지, 자기 교과에 능통한지, 아이들을 잘 다루는지, 정말 사랑하는지...

물론 이 책은 초등학교 현장을 다루고 있어서 내 입장에선 좀 아쉽기도 했지만 어쨌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필자가 어떤 경로로 섭외한 수업인지는 몰라도 잘 꾸며진 수업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잘 꾸며진 연구수업, 공개수업은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평소에 쓰지 않던 경어를 쓰고, 평소에 쓰지 않던 학습목표를 칠판 왼쪽 위에 적어두고,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모둠 수업, 멀티미디어 수업도 하고, 심지어는 한 번 리허설도 하는 그런, 그런 수업을 보고 얻는 것은 별로 없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안다.

우리는 '쌩쑈'를 통해 다른 동료들도 나만큼 애들과 씨름한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난장판 교실에서 아이들을 정돈하고 차분히 수업을 이끌어가는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 만하다가도 의문이 드는 건, 그렇다고 일부러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안이한 수업조차를 취재에 넣은 것인지 하는 거다. 꼼꼼히 들여다본 아홉 장면의 수업이라며, 책 한 권에 고작 아홉 장면이라면 유형화가 되어서 엄선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물론 그들 중 유창한 수업과 늘어지는 수업, 아이들이 움직이는 수업과 교사의 카리스마로 살아남는 수업, 많은 교재와 도구를 현란하리만큼 사용하는 수업과 교과서 하나로 감동을 주는 수업을 횡으로 종으로 잘 짜면 더 좋을 터이겠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홉'이라고 선정되려면 어떤 '이유'가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체계화가 되지 않았더라도, 아홉 아니라 열아홉 장면의 수업이, 장면 그대로 실렸더라면 난 더 재미나게 읽고 얻는 바가 많았을 것 같다. 필자는 어떤 소명을 느끼며, 전문가적 안목으로(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입장에서) 각 수업에 대한 평가를 달아준다. 그 평가들이 나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는 거부감. 차라리 그냥 수업만 보여주었더라면,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와 교사의 자질 및 교육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무엇이 선이고 후인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성심껏 쓴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문제라는 것인지, 아니면 교사의 자질이 문제라는 것인지, 그러니까 교사가 줏대와 가치관을 세워 수업을 잘 하라는 것인지 교육부보러 교육과정을 잘 세우라는 것인지, 교사에게 잘못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내가 보기엔 아홉 교사는 각기 단점 못지 않게 흔히 볼 수없는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칭찬해 주었더라면 지금쯤 그 교사들, 더 뿌듯해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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