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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월간말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참 부럽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이 콜롬비아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다. 어딘가, 그것도 불모의 땅에 공동체를 구축하고 자신들이 살고 싶은 세상을 꾸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는 상상만으로도, 여태껏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인 공동체 사회의 예를 본 적이 없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척박한 정치적, 자연적 여건에도 이상적인 혹은 거기에 가까운 공동체 사회를 만들었다는 가비오따쓰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에겐 없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첫째, 파울로 루가리라는 돈도 많고 머리도 좋고, 바른 의식과 열정을 두루 갖춘 신화적 지도자가 있었다.
둘째, 한때였으나마 그들의 노력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주려 했던 문화대통령이 후원자로 있었다.
셋째, 기술력, 과학적, 공학적으로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채우고 건설해 가는 열성적인 사람들이 모였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 가비오따쓰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무엇인가를 서술할 때 촛점을 이데올로기라든지 열정, 혹은 정서적 측면에 맞추기보다 현실적 여건과 그것을 이겨내가는 과정, 기술적 고려, 실험정신, 그것의 성공 및 활용 여부를 다큐멘터리 찍듯이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만약 이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였다면 오히려 흥미진진했을 것을... 감탄을 하면서도 지루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술적 측면의 성취를 참으로 건조하게 서술해갔기 때문이 아닐지.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하고 갈증나는 것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이 일들을 해냈던 것일까, 심지어는 이미 도시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던 대학교수, 음악가, 교사 등등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가비오따쓰에 와서 땀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일까. 가령,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힘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당연히 돈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이 일생을 걸게 했던 동력이 무엇일까. 단지 환경을 살리는 그러면서 인간도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땅을 이루어 나간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인지. 그 동력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책을 덮는 내내 알 수 없었다.
만약 나 혹은 누군가가 남한땅에 우리 나름의 이상적인 공동체촌을 만들고 싶다고 해도 이 책이 얼마나 실용적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은 좀 짜게 나온다. 다만 우리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실용서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 열정의 전이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좀 멀게 느껴졌었다. 그게 아쉽다.